아주 오랜만에 본 아름다운 영화.
오래 된 고전 영화를 본 둣 마음까지 아렸던 영화.

군더더기 없고,
어거지로 설정한 엉터리 갈등 '거의' 없고
간결한 대사 멋지고
주연 조연 망라해서 연기도 좋고
스토리도 그럴듯했고
여주인공도 예쁘고. @@....
다만 끄트머리의 신파는 좀 그랬고.

미스터 감독씨.
이게 실화가 아니라면 그냥 상투적인 해피엔딩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았는데.
문학이나 음악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영화는 웬만하면 관객을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인데. 어떠신지?

뭐, 그래도 참 오래간만에 좋은 시간이었어요.
이정도면 짧은 인생 중에 한두 시간쯤은 충분히 낭비할 만 했어요. Thank you!



사무엘 바버를 올려놨다가 아차 싶어서 금방 꺼버리고 TV를 켠다.
밑도 끝도 없는 섹스 앤드 시티. 재미없어서 돌려버린다. 

이건 또 장총 들고 뛰어 다니는 구식 전쟁이네.
그렇고 그런 미국 영화를 보고 있을 때 느끼는 미국 놈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섹스, 돈, 주먹, 전쟁, 그리고 죽으나 사나 저그 나라 만세다.

게다가 이놈들은 길 가다가, 구두 사러 갔다가, 밥 먹으러 갔다가, 오줌 누러 갔다가, 

어디서든 배꼽 높이만 맞으면 아무데서나 한다. 무슨 개 아들 딸도 아니고.
화장실에서도 하고 차 안에서도 하고 길바닥에서도 하고 엘레베이터에서도 하고.
저런 드런 놈들. 

일생 살아가다 불같은 사랑을 하나 만나서 목숨 걸고 저질러 보는 건 차라리 처절하기라도 하다지만. 이거야 원.


안주는 냉장고 뒤져서 찾아 낸 반찬 토막들이다. 

빈속에 일단 한 잔 부어 넣어보니 식도부터 찌르르 한 것이 황홀하다. 이 맛에 겨울 소주를 마시는 거지. 여름 밤 독작처럼 비질비질 덥지도 않고.


밤에 혼자 술을 마시면서는 이제는 나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거의 절대로. 

생각에 빠지는 것이 싫어서 그렇다. 

아니, 생각에 빠지는 것이 무서워서 그렇다. 

어떻게든 눈을 번잡하게 해 두어야 잡생각이 덜 끼어 든다. 하다 못해 간장게장 홈쇼핑이라도 켜놔야 생각이 흐리멍덩해진다. 눈을 닫고 귀만 열어놓았다가는 뇌세포의 급격한 신진대사로 수명이 짧아진다. 생각에 치어서 죽고 싶은 때가 오기 전에는 이제는 아마도 이 버릇 안 바꿀 걸.

술에 조금씩 빠져들면서 브람스의 추락하는 클라리넷을 듣는다든지 퍼셀의 그라운드 따위에 중독 되면 

그만 억장이 무너지지. 

듣고 있노라면 기억이나 추억을 자극하는 노래나 파퓰러들은 좀 더 직설적으로 심장을 상하게 하고. 

아는 거 몇 개 없는 올드 팝이나 싸구려 감상 자극하는 베스트셀러 얹어 놔 봤자 그것도 득 되는 거 없고. 


하기야 음악마저도 없다면 더 야단이다만. 적막강산에 기억이나 생각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눈이 휙 돌아가 그만 사단이 날지도 모르지. 그래서 이제는 그런 것들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사실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머리를 대패질하듯 부대끼는 일상에 묻혀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살던 별별 기억이나 생각 가닥들이 알콜에 녹아서 흐물흐물 번지기 시작하면 감당이 안 돼. 때로는 취한 김에 이대로 미친 듯이 달려가서 확 그냥 일 저질러버릴까. 그런 생각도 들고.
저지를 것이 뭔지는 나도 몰라요. 그냥 요즘 들어 사는 데 대한 기준이나 생각이 많이 바뀌고 흔들려서.
그러다보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쑥 깃발이 솟기도 하고 불 안 땐 굴뚝에 연기도 나고....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눈 질끈 감고 확 그냥....

아서라, 뒷감당은 어찌 할라고.


그러게 뒷감당 걱정할 정신이 있다면 애초에 저지르지도 못해요. 순전히 말만 동학당이지.
어쨌거나 하건 말건 간에 생각만으로도 사람이 상하니까.
그러니 모쪼록 건전하고 유쾌하게 살아야지. 결사적으로 유쾌하게. 눈물이 팍 쏟아지도록 행복하게.
 ....흥. 지나가던 개가 다 웃는다.


다시 영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속전속결 헐리우드 영화를 좋아한다. 질척한 뒤끝이 없기 때문이다. 

탐미적이고 집요한 잉크 빛의 예술 영화라든지 제 3세계의 수준 높은 문화 영화들은 함량에 버겁다. 

그렇다고 걸핏하면 슝슝 날아 댕기는 중국영화는 취향이 아니고. 

그래도 혹시나 여자 주인공이 아주 멋지게 예쁘면 그것도 간혹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를 보라. 그 얼마나 재미가 좋은가.
때리고, 부시고, 죽이고, 보너스로 틈만 나면 아무데서나 거시기를...
게다가 첨단 하이테크가 빚어내는 그 현란한 영상까지.

그리고 다 보고 난 뒤에는 적어도 한 시간 이내로 그 영화의 내용이나 인상은 의식에서 지워진다. 그런 영화를 보았노라는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가슴 속에 뭔가 질척한 것이 남아 있으면 이제는 힘이 든다. 기분도 칙칙해지고. 그러다보니 자꾸 가볍고 단순한 영화만 찾게 되고, 그러다보면 사람까지 얄팍해지는 건 아닌가 싶은 걱정도 없지는 않지만.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밤이 꽤 깊었다.
왜 술을 혼자서 마시냐고?
몰라서 그렇지 밤 깊어 혼자 마시는 술도 즐기려면 그 얼마나 깊고 오묘한 즐거움이 있는데. 다들 몰라서 하시는 말씀들이지.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창밖으로 설렁대는 밤바람에 선듯하니 가슴을 설레기도 하고 들 고양이 흘레붙는 소리에 머리칼이 삐죽 솟기도 하고. 대숲에 바람 쓸리는 소리 들리면 구신인지 도깨빈지 서성대는 듯도 하고. 밤늦게 안자고 있으면 공연히 뭐 하는 거 같은 느낌도 들고.

그래서 나는 혼자 술을 마신다. 독작이 끝나고 나면 나는 혼자 뭔가에 격앙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무척 깊이 가라앉아버리기도 하는데 그래봤자 오래 못가고 대부분 혼자 뭔가 흥얼대거나 주절대다가 어느새 머리를 박고 잠들어버리지.


그렇지. 아시는 분은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그거야.
몸과 마음은 늘어지게 피곤한데 머릿속은 맹숭맹숭. 

그거 해 보면 참 못할 짓이다. 그러다 보면 또 그놈의 술을 찾는 거지.
그러다보면 더러는 생각지도 못한 부산물들이 잠자리까지 따라와서 저그들끼리 웅성대기도하지만 그래봤자 일단 알콜에 꺾인 몸을 이기지는 못한다. 계획대로 잘 진행이 되어서 눈꺼풀이 슬슬 내려오면 이제는 시디나 한 장 돌려놓고 불 끄고 자야지. 오디오야 뭐 지 혼자 벌겋게 달아서 날 샐때까지 헛바퀴를 돌든지 말든지.
내일 아침에는 또 내일을 만나야 하니까. 모두들 안녕.






한 때 노래방만 가면 두드러기가 나던 때가 있었지.

노래를 전혀 못하는 음치라서가 아니야. 도대체 아는 노래가 있어야 말이지요. 

명색이 이제는 한 고개 넘어가는 나이에 그래도 벗이랑 어울려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자면 경우와 장소에 따라서 장단 맞출 만큼은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 때의 내 가슴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깊은 고민이요 자괴감이더란 말씀이야.
언젠가
누군가가 쓴 글 중에 소풍이나 야유회 가서 흥 돋을만하면 마이크 넘겨받아 차렷 자세로 목소리 깔고 동심초 불러서 분위기 깬다는 그런 곤란한 푼수들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거 꼭 날더러 한 이야기 같아서 정말 찔끔했었구만.

오래 전 직장 생활 할 때 체육대회 끝나고 뒷풀이를 한다길래 엉거주춤 따라 갔다가 돌아와요 부산항에 일편단심 민들레야 천둥산 박달재 한참 신난 좌중에서 진짜로 동심초 불러서 확 깨게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바로 나라니까.


그래도 뭐 나도 통기타 들고 70년대 포크송 계열로 놀자면 제법 불러대기는 하지. 

뭐, 노래를 잘한다는 자랑은 아니니 눈 흘기지 맙시다. 남이사 내 노래를 어떻게 듣거나 말거나 간에 하여튼 수십 곡 정도는 내리 부를 자신이 있었다는 이야긴데...
뽕짝은 왜 그렇게 싫었을까. 고리답답해 보이고 어쩐지 천박해 보였던 뽕짝들. 하기야 지금도 천박하기 짝이 없는 얄궂은 뽕짝들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 혀를 차면서 외면했던 구닥다리 뽕짝들이 수년 전부터 이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으로 슬금슬금 내 입 주변으로 맴돌기 시작하더라는 말씀이다.

그 때는 어쩌다 한 번씩 불러 봐도 도대체 내 체질에 안 맞는 듯해서 남의 옷 뒤집어 쓴 듯이 어색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불러 봐도 가락 끝마디가 멋지게 꼬부라지는 것이 꽤 그럴 듯 하다. 이제는 밤중에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졸음이 오는 때면 어김없이 뽕짝 시디를 밀어 넣고 고래고래 몇 곡을 불러 제끼지. 운전 중 졸음에는 그저 뽕짝이 그만이야.

 게다가 뭐라고 멋지게 표현할 재주가 없기는 하지만 내 가슴 밑바닥 있는 걸 슬금슬금 긁어내는 뭔가가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연유로 해서 드디어 내 딴에는 애를 써서 레파토리를 몇 개 장만했어.


그런데 이제는 어쩌다 노래방에 따라 갈 때면 혹시나 누가 내 레파토리 선점할까봐 노심초사야. 

예닐곱 개 될까 말까 하는 그거 그나마 남들이 다 불러버리면 나는 뭘 부르냐는 거지. 

무게 잡냐, 분위기 잡친다, 이런 억궂은 비난을 면하려면 마이크 돌아 올 때마다 한 곡씩은 얼추 불러야하는데 그거 참 모르는 사람은 정말 이해 못할 고민 중의 상고민이올시다.

그래도 뭐 하여튼 이제는 뽕짝이 좋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구성진 가락과 가사 밑에 숨겨진 은근하고 상투적인 눈물 냄새며 땀 냄새며 땟국 절은 살 냄새가 이제야 맡아지더라는 거야. 똑 부러지고 세련된 화성으로 반짝거리는 포크 계열의 노래나 발라드풍의 노래들도 그렇다고 그 가치를 다 잃은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그렇게도 구질구질해 보이던 뽕짝이며 트로트들이 그 속에 이런 은근하고 눈물 어린 사람 냄새를 품고 있었던가 싶다보니 그걸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한 세월 보내버린 나는 오갈 데 없는 반풍수거나 얼치기임에 틀림없어.

 
1.4 후퇴 때의 흥남부두 풍경이라든지 이런 기록물들을 보면서 그 때의 실화를 그대로 그려서 불렀다던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노래를 같이 듣노라면 부녀 생이별의 그 애절함이 얼마나 절절한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데 그걸 뽕짝 가락이 아니었더라면 어찌 그리 절절히 불렀겠냐고.
그렇지. 뽕짝은 어른들의 노래더라, 결국은 그 말이다. 늬는 한 고개 넘어서서 이제야 어른이냐고 대번에 가재미 눈 흘겨 뜨고 으르릉거릴 분들도 없지는 않겠다만 


뭐 그래도 할 말은 없습지요. 뽕짝에 관해서만큼은 도대체 입 뗄 여지가 없으니 좀 떫어도 고스란히 뒤집어 쓸 밖에.
어쨌든 그 이전자전 고린내 나는 뽕짝들이 이제야 가슴 한 구석에 슬그머니 깃들어 자리를 잡나 싶다보니 기분도 묘하고 이제는 그만 한 고개 아주 넘었나 싶어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고.  
아,  그럼 오늘은 다락에서 케케묵은 기타나 꺼내서 열심히 배우고 익힌 뽕짝이나 몇 곡조 구성지게 뽑아 볼까나. 

아니, 그렇다면 옆에서 장단 맞출 친구도 몇 있어야 구색이 맞는데, 내친 김에 그냥 오늘 밤 온갖 친구 다 불러 내서 적당히 한 잔 걸치고 앗싸 노래방에나 쳐들어 가버릴까! 


 



모짜르트의 39번 교향곡에는 두 개의 주제가 대립되어 서로 발전, 융화하며.. 이런 소나타 형식의 악곡은 서로 다른 두 문명의 융합이라는 근대 서양문명의 기조와 그 궤를 같이 하고.. 결국 이런 형식의 악곡은 당대의 문화가....


일없이 TV 음악채널을 켜놨더니 저렇게 근사하고 근엄한 해설이 흘러나온다.


......저런 해설을 들으면 나는 그만 주눅이 들고 까닭없이 눈치가 보인다. 때로는 짜증이 좀 나기도 한다. 

음악 하나 들으면서 근대 서양문명의 기조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 원. 

그나마 음악은 안 나오고 해설만 계속 되길래 그냥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저런 해설을 듣다보면 그만 흥미도 반감되고 감성도 죽어버리지. 내가 워낙에 이론적으로 취약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론적 배경이나 저런 해설스러운 해설은 사실 별 관심이 안간다. 음악 하나 듣는데 꼭 저런 해설이 필요한지도 의문이고. 

막대한 지식을 섭렵하든지, 아니면 두꺼운 책이라도 뒤적거려봐야 나올만한 그런 해설을 앞세운 방송들은 아무래도 좀 그렇지.

그냥 무턱대고 듣다보면 어느 순간에 아, 이거다 하고 뭔가 꽂히고, 

듣는 것만으로는 욕심이 안차면, 그제서야 책이며 정보들을 뒤적거리는... 

음악을 듣는데 무슨 타입이 있고 줄기가 있을까마는 굳이 따지자면 나는 그런 타입이다. 

음식은 먹어서 맛있으면 그만이고 음악은 들어서 좋으면 그만이라는 주장이지


병이 들었거나 음식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밥 그릇을 엎어다가 저울에 달고 시험관에 밀어 넣을 필요가 있겠지만 

배고파서 밥상에 앉은 사람들 앞에 앉혀놓고 그 쌀은 수분 함량이 어떻고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분포는 이러저러하며 국을 끓인 미역은 어느 바닷가에서 누가 뜯어다가 어느 집 마당에서 말려서... 그걸 꼭 알고 먹어야 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밥만 다 식어버리지.

먹고 맛있으면 그만인 거지. 몸에 좋으면 더 할 나위 없고. 다 먹고 나서 하도 맛있는 음식이라 대체 이 밥을 누가 지었는지, 반찬은 뭘로 만들었는지 궁금한 사람은 그 때 가서 물어보거나 공부를 하면 될 일이고.


음악은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끼라고 만들어 놓은 물건이지 눈 부릅뜨고 따지고 분석하고 시시콜콜 머리 싸매라고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건 음악 학자들이나 음악가들에게 맡겨 두고 우리는 마르고 닳도록 듣다가 감동하고 눈물짓고 그러면 그만인 것이다. 

걸핏하면 써 먹는 말 그대로 머리를 삶으면 귀는 절로 익을 걸 왜 미리 귀만 잡고 땡기고 흔드냐고. 


현학 취미. 

그건 어디 가서 목에 힘 줄 때나 쓰시고 음악은 그저 되는대로 부지런히 들어서 섭취할 일이다. 

음악이야 많이 먹어서 체할 일도 없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이고 말고.

거기다가 적잖이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는 나한테 넌지시 뭔가 말을 걸어오는 그런 음악이며 연주가 좋아. 

뭔가를 굳세게 주장하거나 머리 싸매고 생각해야하는 그런 음악들은 이제는 숨이 가빠서. 

때로는 굳어버린 머리나 가슴팍을 쑤셔서 뭔가 울컥 치밀게 하는 그런 것에 환장을 하기도 하지만 

요즘 들어 그보다 더 좋은 건 뭔가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는 음악이다. 

듣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도 멱살 잡고 흔들어 깨우지도 않으면서 그냥 저 혼자서 나직나직 뭔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아니면 저 혼자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그냥 가버리는 그런 음악.


아, 그래도 그런 곡들을 전혀 안 듣는다는 거는 아니다. 

가는 세월이 희미해지고 앞뒤가 어리둥절할 때면 그 때 그 시절에 들었던 그 무지막지한 음향을 간혹 맛보면서 지그시 고양되어 보는 것도 심신에 자양이 되고 말고. 다만 그 이전처럼 그런 곡을 다반사로 듣기가 버겁더라는 말씀이다. 

그러게 내사 자빠져 자든지 코를 불든지 나는 나대로 자다 깨다, 지는 지대로 투덜투덜 뭔가 이야기를 해주는 그런 음악이 이제는 훨씬 좋다니깐...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대한다는 것은 그 무엇인가로부터 한 없이 초라해지려는 노력이다.
자진해서 헐벗어 남루해지려는 것이며.
애써서 자존과 자긍을 버리고 힘들여 초라하고 남루해지려는 눈물겨운 노력이다.

그래도 그 무엇인가를 조건 없이 간절히 원한다면
애써서 그렇게 초라해져 볼 일이다.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하더라도.
갈증을 벗어나기 위해 끝없이 소금물을 들이키는 것처럼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죽어도 반성하지 않는 마른 가시처럼 메마르고 앙상한 고집같은 것들처럼.


/소금물을 마셔도 죽지 않는 바다 물고기가 되고싶은 날에.




베토벤의 교향곡 5운명입니다.

세상에 흔해 빠진 게 베토벤의 운명입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장르를 털어서 가장 많은 녹음을 한 음반이 아닐까요.

 

어제 운명을 들었습니다.

들을려고 들은 게 아니라 4번을 듣다보니 커플링 된 5번도 따라나왔습니다.

첼리비다케 실황 녹음이었습니다. 베토벤의 4번 중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입니다.

하지만 이 고집불통의 첼리비다케 영감님도 5번만큼은 그다지 심에 차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1악장만 듣고는 꺼버렸습니다.

 

한 때 이 곡에 미쳐서 자나 깨나 돌려댔던지라 한 가닥 한다하는 연주는 제법 들어 봤었지요.

한 세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은 물론이고 근래 한 참 유행하던 원전악기 연주들에다가 새로 태어난 신생 지휘자며 굴드의 피아노 연주까지.

한동안은 닥치는 대로 구한 음반들을 수 십장 쌓아 놓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전곡 비교 감상을 한답시고 패대기를 친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고 시간 아까워라.

 

당연히 다들 한다하는 거장이며, 나 같은 얼치기보다야 적어도 십억 배 쯤은 더 음악을 사랑했을 이 위대한 할배들의 녹음이 하나인들 허투루 내 놓은 게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무식이 용맹이라고 이건 옳다 저건 그르다 더러더러 침깨나 튀기기도 했습지요.

그 와중에 별 기대9 없이 내 손에 왔다가 지나치게 사랑을 받은 나머지

그 사랑이 너무 지나쳐 그만 비명횡사하고 만 음반이 있었으니, 바로 요 아래 처참한 몰골로 깨져버린 야노스 페렌치크/헝가리 국립 관현악단의 연주입니다.

저 음반 역시도 어제 들었던 첼리비다케처럼 4,5번이 커플링이라 그만 또 가슴 아픈 사연이 생각나서 주절거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 집 큰 놈이 막 걸음마를 할 때쯤이니 아마도 1992년 겨울 쯤 되지 않았을까요.

서울 다녀오는 길에 종로 어디쯤인가에 있던 SK플라자에서 저 음반을 샀습니다. 페렌치크가 연주하는 리스트에 매료되어 있던 차라 은근히 기대를 하고 집어 들었지요.

 

집에 돌아와서 일청을 한 후, 뭐 그다지 대단한 연주는 아니라고 일단 점수를 매겼습니다.

하지만 1악장 중간쯤에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서늘한 생동감에 슬쩍 소름이 돋았던 바람에 어쩐지 자꾸 손이 갑니다. 날이 갈수록 듣고, 듣고, 또 듣고 또 듣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리 몰랐던 것이 들을 때마다 그 느낌이 새로운 것이 급기야는 그 부분이 나올때쯤이면 팔에 오싹 소름이 돋고 눈물이 핑 돌기도 했지요.

, 관현악이 다소 기복이 덜하다거나 녹음이 답답하다거나 이런 단점들은 단칼에 휙! 날아 가버리고 오로지 그 날개 달린 듯 상승, 하강하는 현 합주의 생명력에 넋을 잃었습니다. 급기야는 아예 리피트를 걸어놓고 하루 종일 이 음반만 돌려댔습니다. 아주 미쳐버린 거지요.

 

그렇게 페렌치크의 운명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던 어느 날

어린놈이 배고프다고 징징대길래 어디보자, 그렇다면 아빠가 우유를 타 주마, 방 한 구석에 있던 젖병을 들고 더운 물이 어디 있더라, 왔다리 갔다리 하는 차에, 한 순간 지끈!’ 별로 크지는 않으나마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린 놈이 털퍽거리며 걸음마를 하다가 막 꺼내놓은 저 음반을 작신 밟아버린 거지요. 황망간에 어린 놈을 대충 달래놓고 탈기를 하고 들여다보니 그나마 다 쪼개진 건 아니고 반을 쪼개놨는데 하필이면 4번은 멀쩡하고 그 금쪽같은 5번이 들어있는 부분만 딱 쪼개놨습니다.

44악장까지는 멀쩡하게 잘 돌아가다가 5번 들어서면 이내 틱틱틱틱 튀기 시작해서 건너뛰고 날아가고 밑도 끝도 없이 단숨에 뮤팅 걸려서 끝나버리지요. 허이구........



 

그 때만 해도 뭐 어찌어찌 다시 구할 수 있으려니 했지만 사는 곳은 깡촌이고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쉽사리 물건을 사고팔고 하던 시절도 아니다보니 이리공 저리공 세월은 가고...

그만 십 여년이 훌쩍, 어느 새 음반은 절판 돼 버리고 다시 구할 길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요. 지금 생각해도 애석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깨진 시디조차 버리지를 못하고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그저 인연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리고는 있는데

인간이란 것이 좋았던 것은 왜 그리도 오래 기억하는 것인지. 어제도 오늘도 공연히 페렌치크의 운명 생각으로 아쉬운 마음을 들썩이다가 생각 난 김에 투덜거려 봅니다.

 

 

 


오늘 새벽 블로그의 방문자 누계가 만 명을 넘어섰다.
재작년 여름 큰 아이의 권유로 처음 블로그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글들이나 모아놓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것마저도 한 두달 만져보다가 이것저것 속 시끄러운 일들과 게으름, 의욕상실까지 겹쳐서 그만 다 닫아 걸어두고 일 년 반을 방치했었다.
하도 마음 고생을 하고 해서 나중에는 쳐다보기만 해도 넌더리가 나드만.
에잇, 이만큼 정 떨어졌으면 다시 볼 일 있겠나 싶어서 아주 못질을 해 버렸었는데 지난 겨울 지나면서 까닭 없이 마음이 선듯하니 움직여서 쓸고 닦고 대충 손 봐서 문을 열었더라. 물론 목적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흩어진 글들 정리해두고 여기저기 남겨진 흔적을 지우고 정리할 목적으로.

별 생각 없이 글 옮기는 작업을 하던 중에 간혹 들여다보면 하루에 백 명 남짓, 생각보다는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 보여서 처음에는 그냥 조금 궁금하고 신기하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예상보다 너무 많은 숫자 때문에 좀 어리둥절하고 겁이 난다. 주소를 남긴 것도 내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대체 누가 여길 찾아오랴 하는 생각에 예전에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 여나믄 명에게 문자 날려 준 것으로 그만이었으니까.
아하, 물론 예상에 비해서 너무 많다는 뜻이다. 

그래도 개점 휴업보다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드나드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도무지 흔적이 없어서 많이 궁금하다. 이런 개인 블로그를 만들어 보는 것도 처음이라 서투른데다가 겁도 좀 나고.

사람이 품위가 덜하다보니 걸려 있는 글들이 좀 사납기도 하고 때로는 삐딱하게 비틀기도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그럭저럭 온순한데다가 여리고 상처도 잘 받는, 그런 사람이오니 그래서 혹시라도 마음이 내키시면 망설이지 말고 오가는 길에 흔적이라도 한마디씩 남겨 주시면 아주 안심이 되고 행복할 것 같아서, 그래서 모쪼록 선처 부탁드린다고, 핑계 삼아 한 마디 걸어 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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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걸어 두었던 사이에 안팎으로 힘 든 일들이 있어 심신이 극도로 지치기도 했었고 건강이 좋지 않아서 몇 달 동안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여태 접해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도 조금 들여다보았고.
지지부진하던 일들을 접어버리고 뭔가 다른 길을 모색해보자고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그 속에서 느끼고 경험하고 했던 일들과 몇 가지 생각이 우연히 겹치고 연결 되면서 오히려 내 생각을 되돌려 이전에 하던 일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그래서 다시 돌아 볼 일은 없을 거라고 2년 가까이 그냥 내던지다시피 방치해 두었던 것들을 다시 꺼내서 먼지를 털고 닦고 수선을 피는 중이다. 

다 늦어서 웬 야단법석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음. 어쩐지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집어 든 것 뿐이다. 

아, 정말 몰라요. 아매 며느리도 모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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