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생의 음식은 동태탕이다. 생태탕도 괜찮고 대구탕도 좋지만 굳이 꼽으라면 동태탕이다. 

80년대 어느 해 아마도 초봄이었을 것이다. 김포반도 어디쯤에서 철야 행군을 하고 있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는 있었지만 밤 새 비가 내렸고 이른 봄의 쌀쌀한 날씨와 비바람으로 군화 속도 축축했다. 식사추진이 제대로 안되는 바람에 전날 저녁밥도 못먹고 건빵과 건빵 봉지에 포함된 라면 스프를 찍어먹으면서 허기를 때우고 있었기 때문에 배가 고픈 것은 물론 속도 쓰리고 배고픔과 추위와 군대라는 이것저것 억눌린 짜증때문에  많이 지치고 우울해져있었다. 흐린 하늘 때문에 여전히 깜깜했지만 아마 새벽녘이었을 것이다. 넓은 벌판의 논두렁길을 지나서 작은 동네를 빠져나갈 때 코 끝으로 동태찌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순간 총 맞은 것 처럼 정신이 아득해졌었다. 길가의 작은 창문이 처마 밑에 노랗게 불이 켜진 채로 살짝 열려 있었고 거기서 나는 냄새였다. 나는 음식에 관한 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만큼 강한 충동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때는 할 수만 있다면 대열을 이탈해서 그 집으로 들어가 구걸이라도 하고싶었다. 그 황홀한 동태찌개 냄새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대열은 계속 이동중이었고 허락 없이 대열을 이탈할 수도 없었고 허락을 해 줄리도 없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음식 한 그릇이 내 자존감을 흔들어버릴만큼 강렬한 충동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딱 말 그대로 '구걸을 해서라도 먹고싶었다'. 하지만 시커먼 판초우의를 뒤집어 쓴 인정머리 없는 대열은 끝도 없이 이어져 터벅터벅 그 마을을 지나 또 다른 깜깜한 벌판으로 이어졌고 나의 눈물어린 동태탕은 그렇게 허무하게 멀어져 갔다. 기구한 사연도 없고 대단한 서사도 없다.  그 동태탕에 관한 이야기는 그냥 이게 다다.

입대 전에도 동태탕을 좋아했냐고?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동태탕이라고해서 자주 먹지도 못했거니와 별로 기억에 남는 음식도 아니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생각도 나지 않는 그렇고 그런 찌개 중의 하나였을 뿐. 오로지 그날 새벽 그 마을에서 누군가가 끓이고 있던 동태탕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렸지. 몇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밤 새 걸었던 배고픔과 건빵이 만들어 낸 속쓰림과 춥고 질퍽거리던 날씨와 수면 부족과 비바람과 어깨를 파고들던 군장의 무게와 등등 그런 저런 것들이 동태찌개 냄새 하나에 모조리 매몰되어 내 후각세포에 어마어마한 각인을 새겨버린 것이지.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 동태탕을 숭배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동태탕은 내게 구원의 음식이 되었고 주야장창 사시사철 시도 때도 없이 동태탕 찬가를 불러댔다. 물론 좀 더 선도가 좋은 생태탕이나 대구탕도 좋아하지만 내게는 단지 동태탕의 아류일 뿐이야. 그 때의 기억 때문에 그들은 영원히 동태탕을 넘어설 수는 없어. 그리고 그 맛을 불문하고 그것이 동태탕이면 한 수 접고 닥치는대로 잘 먹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맛이 없어서 먹다가 말고 숟가락을 놓아버린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나의 동태탕에 관한 장황한 무용담을 들은 어느 지인이 그렇다면 자기가 알고 있는 아주 기막힌 동태탕 집을 소개해주겠다면서 가르쳐 준 7번 국도변의 어느 휴게소에 있는 식당이었고, 그것은 명백히 죄악(罪惡)이었다. 세상에 동태탕을 맛없게 만들 수가 있다니! 나는 결국 구원의 음식이던 동태탕을 반도 못 먹고 숟가락을 놓았고 식당을 나서던 나는 허무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그 지인과 누군지도 모르는 그 식당의 주방장에게 어마어마한 비난을 퍼부었다. 세상에 인간의 탈을 쓰고 동태탕을 맛 없게 만들 수 있다니!! 도대체 어디가 기가 막히다는 거야!!!      

어쨌든 동태탕은 지금까지도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반드시 먹어야 하고 봄이 되기 전에 몇 번은 더 먹어야하는 음식이 되었고 어느 식당을 가든 메뉴에 동태탕이 있으면 다른 걸 먹더라도 괜히 한번쯤은 갈등을 한다. 한 때 구내식당처럼 친구들과 수시로 드나들면서 먹었던 포항 흥해읍의 한선뚝배기. 정말 맛있었는데 한 동안 뜸하다가 찾았더니 그 새 어디론가 이사 가버리셨드만. 많이 아쉬웠다. 나는 지금도 동태탕을 만들때면 그 한선뚝배기집의 아주머니가 가르쳐주신 조리법을 기준으로해서 만든다. 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동태탕은 무조건 맛있는 음식이지만.

 

신천지나 구천지나 그놈이 그놈이드만 대문짝만한 벽보까지 붙여놓고 아주 경끼를 하는구나.

기껏 공들여 붙들어 놓은 고객들이 보따리 싸서 거기로 갈까봐 잠이 안오지?

신천지 뻐꾸기가 어느 틈에 들어와 알을 까놓을까봐 잠이 안오지?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뭐에 목말라하는지는 관심도 없지?

수 십 년동안 성경책 하나 눈가림으로 옆구리에 끼고 적당히 혹세무민하면서 사업하다보니 

이제는 뭐가 진짜인지 너희들도 막 헷갈리지? 

솔직히 까놓고 말해 봐. 너희들도 안믿지?

지금 너희들이 하는 거. 그거 신앙 아니야 무당짓이지. 

신천지한테 먹힐까봐 전전긍긍할 수준이면 그냥 교회 문 닫아.

그게 그동안 너희들이 보여준 한국 개신교의 수준이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당신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한 이상 그것은 그것대로 당신이 선택한 당신의 삶일 뿐이다

그러니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삶에 이타적인 삶이라는 장식을 달지 말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삶과 생명을 소모시켰지만 그들은 내가 타인을 위해 희생했노라고 생각하지도,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들 스스로가 그 대상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소모시키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그 고통을 기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삶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며 사람들이 그들을 흠모하고 존경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그러니 희생은 남들이 알아주면 감사하겠지만 내가 나서서 굳이 생색낼 일은 아니야

그걸 굳이 입 밖에 내어 떠벌이는 순간 그놈의 희생은 당신의 자아실현을 위한 마스터베이션이 될 뿐이지. 기어코 그렇게 되고야 만 것을 축하라도 해 주어야 할까.

 가끔 '내 자식을 위해서 나를 희생했노라'고 떠벌이는 덜 떨어진 부모가 있긴 하지

하지만 스스로 자랑하는 그 희생이란 것에 진정성이 있을 리가. 하물며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아닌 타인을 대상으로 감히 내 삶을 희생하고 있다? 누구를 위해서

아, 누구를 위해서라고 말 한 적이 없다고

희생이라는 말은 무엇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된 형태거든

누구도 원하지 않고 누구를 향해서도 아닌 희생이라면 그건 희생이 아니라 헛짓이며 개죽음이라 말해야지

권하건대, 당신 스스로 섣불리 희생을 말하지 말기를. 

희생이라는 단어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값진 말이다

그래서 진실한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선택한 삶에 희생이라는 장식을 하지 않는다

희생은 그 대상이나 제 삼자가 감동하여 머리를 숙여 기릴 때 빛나는 무명의 깃발이지 자신 스스로 입에 물고 가슴에 달 수 있는 양철 훈장이 아니다.

 

 

 

전능한 신이라면

그리고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자애로운 신이라면 부디 알기 쉽고 평이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

만약 그럴 의사가 없다면 전능과 긍휼 둘 중 하나는 버리기를 바란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 큰 그림이 있을 것이라고 변명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의 힘으로 견디어 낼 수 없는 고통을 도구로 사용해야 완성할 수 있는 큰 그림이라면 인격신이라는 헛소리를 집어치우든지.


지식을 산처럼 쌓고 한 수레의 책을 읽어야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당신이라면 

나는 당신을 이해하지 않겠다.

부디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사람들을 위로하고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

당신이 전능하다면.


꿈속에서 나는 힘센 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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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무슨 세계 7대 자연경관에 당첨 됐다던가 뭔가.
이른 아침 바쁜 시간에 후닥닥거리던 와중에 섞어 들어서 그런지 유네스코가 뭐 어쨌다는 걸로 알아들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아니고 좀 쉰내가 나는 이야긴가보다... 

수십년 식민지로 진물까지 다 빨리고 전쟁까지 겪은 알거지에서
오륙십년 만에 뚝딱거리고 올라선 벼락부자라 그런지
일면 대단한 구석도 없지는 않지만 곳곳에 구멍 투성이인 우리나라.
이거야 뭔 봉이 김선달이 한테 털린 등신인지 아니면 요즘 유행 따라 이것도 뭔 꼼수가 있는 건지...

밥 먹는 자리에서 그런저런 기념으로 우리 제주도에 놀러나 갔다 오까 어쩌까 했던 이야기가 그 덕에 좀 시들해져버렸다. 뭐 그래도 올 가을에 큰 낙심을 한 큰 놈도 그렇고 여태 큰 나들이 한 번 못해 본 작은 놈도 그렇고 이래저래 이번 겨울에는 작심하고 제주도 나들이도 한 번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 놈의 뉴세븐원더슨지 뭔지가 오히려 초를 친 것 같아서 말이지... 

퇴근 길에 라디오를 듣는다.
17년 매미라는 게 있단다.
북 아메리카 어딘가에 서식한다는 이 매미는 17년을 땅 속에서 구불다가 단 하루를 매미로 살면서 그 날, 필사적으로 짝짓기를 하고
그리고는 그날로 모두 수명을 다 해서 숲 속 동물들에게 단백질로 섭취되고 만다더라.

과연 세상에는 참 기이한 것들도 많고 신기한 것들도 많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가 참 그렇다.
사람도 매미처럼만 생각한다면 무엇이 두려울까보냐는 말씀이시다.

글쎄다.
그야말로 택도 없는 바른말씀이시다.
지가 매미가 되어보지 않고서야 매미의 심사를 어떻게 미루어 짐작한다는 것인지.
어두운 땅 속에서 17년을 꿈틀거리는 것이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참 그야말로 벌레같은 일생이겠지만
정작 그 긴 세월을 땅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그 매미의 자연스러운 일생이라면 그걸 누구 맘대로 고통스러운 인고의 세월이라고 딱지를 붙일 수가 있냐는 거다.
매미의 입장에서 날개를 가진 성충으로 변신하는 것이 과연 찬란한 최후를 위한 그것인지 뉘가 장담을 해. 
혹시라도 매미한테 물어봐서 그게 오히려 종족 보존을 위한 고통에 겨운 변신이더라고 진저리를 친다면 어쩔거냔 말씀이지.

별 생각없이 내던진 라디오 한마디에 괜히 열불 낼 일도 아니긴 하지만
참, 이렇건 저렇건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행인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매미 입장이 돼 보지도 않았으면서 섣불리 잘난 척은 좀 하지들 말든지.
지나 내나 지구 껍데기에 다닥다닥 붙어 사는 주제에 
사람이란 짐승은 과연 얼마만큼까지 오만하고 독선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학교 국기 게양대 아래 힘빠져 주저앉은 매미.
17년 매미와는 별 상관이 없어보이는 우리 동네의 보통 매미.


열이 안잡혀서 병원 응급실에 간 우리집 꼬맹이.
그 옆 침대에 누워 손등에 링겔을 꽂고 있던 어느 할머니 가족.

뭔 일인지 심사가 사나운 할머니/
썩을녀러 손. 밥 좀 사오라캤드마 배도 안고픈데 뭔 밥을 벌써 묵냐고
지 배애지가 부르마 넘 배고픈 중도 모린다.(아마도 조금 전에 응급실을 슬그머니 빠져나간 할아버지를 말하는 듯) 

일생 저란다. 야아야 나가서 머라도 좀 사오이라. 


며느린지 딸인지 나가서 밥 사옴.

여전히 심통이 난 할머니/
간호원! 이거 안 빼주나. 이거를 빼 조야 밥을 묵지. 

며느린지 딸인지/
어머이. 고마 그래 묵으소. 밥 묵는다꼬 그거를 또 빼고 꼽고 그라것나.

할머니/
이래 가꼬 밥을 우째 묵노. 아나 봐라 간호원!! 이거 좀 빼 주라카이!!!

예의 바른 간호사1/
할머니, 이거는 이러쿵 저러쿵 그래서 꽂고 계셔야 합니다. 꽂은 채로 그냥 밥 드시면 돼요.

할머니/
이거를 이래가꼬 밥을 무라꼬!!! 손목대기에다가 줄로 칭칭 감고 이래 우찌 밥을 묵으라꼬!! 줄을 빼야 밥을 묵지!!

예의 바른 간호사1/
그냥 드셔도 아무 상관 없으니까 앉아서 식사하세요.

신경질 난 할머니/
그랑께 이거를 밥 물때까지마 좀 빼도라카이. 손에다가 줄을 감고 밥을 우째 무그라꼬!!

멀찌기서 보고있던 예쁘장하고 야무지게 생긴 간호사2 쪼르르 잰 걸음으로 와서/
할매! 그거는 빼모 안된다. 안 빼고 묵어도 안 죽는다. 자꾸 떠들지 말고 고마 무라!!

갑자기 기 죽은 할머니/
운냐. 알았다.

너무 웃겨서 입만 딱 벌리고 소리도 못내고 뒤집어 지는 며느린지 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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