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모양으로는 살풍경하고 배타적인 모습이지만 어쩌다 만나게 되면 추억처럼 다시 되돌아 봐 지는 유리병 담장.
이제는 변두리 낡은 집들이 아니고서는 보기 힘들어진 풍경.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이 나즈막한 담장위의 깨진 유리병을 두려워하랴만,
그래도 6,70년대 방범의 총아였던 유리병 담장.


이거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다.

이발소며 여염 집이며 하다 못해 수학여행 기념품 연필꽂이에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배경에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도 있었고.
금언과 격언의 남발시대였을까. 
지리산 기슭에서 반벌거숭이로 뛰어다니던 그 때 그 시절, 나는 '인내'라는 것이 무슨 식물 이름인줄 알았다. 
식물 아니면 '그 열매'가 왜 나오겠냐는 말이지.

그리고 베토벤.
나는 이 쑤세미 머리의 베토벤이 그 때 그 시절의 이발소며 여염집 대청마루 한 가운데에 걸려 있어야 할 이유를 아직도 알지 못하며, 더우기나 아예 음악이나 예술 전반에 대해서는 완전 깡통이었던, 참 지지리도 공부하기 싫었던 사촌 형의 공부방에 이 베토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던 까닭은 대체 뭐였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촉발시킨 첫 그림. 오늘도 무사히.
그 때 그 시절 급행버스 운전수 앞쪽 벼름박이나 택시 '다찌방'에는 거의 반드시 있었다.
멀미 냄새 기름 냄새 가득한 버스 앞유리창 벼름박에는 비로드에 노란 술 달아 흔들흔들 멋진 커튼까지 걸쳐놓고 
그 한 가운데 쯤에는 반드시 오늘도 무사히...  

특별한 이유는 없다.
어느 날 화장실에 앉아 뒤적거리던 해 묵은 오디오 잡지의 탐방기사 사진에서
아마도 그 집 안주인이 만들어 걸었을 것으로 보이는 스킬 자수의 이 그림을 보았고,
그리고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수십년을 휘돌아서 어릴 때 보았던 그 뽀얗고 예쁘게 생겼던 소녀의 기도가 괜히 다시 보고싶어져 안달이 났었지.

내가 이런 그림을 줏어다 모은다 했더니
뜬금없는 웬 박학다식한 안다이박사 왈,  
그건 소녀가 아니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사무엘의 기도하는 모습이며,
누구라더라, 거시기, 하여튼 유명한 서양화가의 그림이 원본이라드만,
하지만 그 말씀이야 말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으로 유식한 말씀이지. 

이 그림의 제목은 보시다시피 '오늘도 무사히'이며
이 그림의 주인공은 그 시절 한국의 고물 급행버스 운전사를 아버지로 둔 어여쁜 소녀였더라는 말씀이니
이런 엄연한 사실 앞에서 원본이 어떻고 구약성경이 어떻고
영국 화가 거시기며  다니엘이니 사무엘이니 개 풀뜯어먹는 소릴 말라는 말씀이야.

길을 막고 물어 봐 봐.
모사건 베껴 그렸건 네다바이를 해 먹었건 간에 어쨌든 이제 이 그림은 이 나라에서 만큼은  난공불락의 네오크라식이라니까. 
그러게 참 벨일이다. 뜬금없이 이게 왜 보고싶었지?
구할 수 있다면 하나 구해서 우리집 벼름빡에 액자해서 걸어놓고싶구마는..

/2008년 2월 22일 강원도 정선 레일바이크 아우라지 역 부근에서/


산판 같은 곳에는 이 물건이 더러 현역으로 남아있다는 말은 들었었다.
듣기는 들었으되 정말 살아 있는 이 물건을 직접 내 눈으로 목격했을 때의 생경스러움이란.

전설의 육발이.
6,70년대 먼지 자욱한 유년의 신작로를 주름잡던
아니, 거 참,
도무지 전설로만 떠돌아 그 사실을 확인 할 방법은 막연하되
어쨌든 들리는 소문에 그 힘이 참 무지막지하여 천하에 견줄 짐차가 없더라던 그 육발이.

이 물건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은
애초에 이걸 만든 양키들이 그만큼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라면 육이오때부터 굴러 다녔다던 이런 고물딱지를 내다버리지 않고
수십년동안 죽어라고 고쳐 쓰고 있는 우리가 지독한 건지
혹,
그만큼 오래 굴려 먹어도 괜찮을만큼 썩 훌륭한 물건이란 것을
정작 육발이를 만든 저것들은 모르되 안목 깊은 우리만 알아 챈 것인지
짐승이 오래 살면 요물이 되고
물건이 오래면 도깨비가 된다던데
이제는 이 물건은 바야흐로 고물의 경계를 넘어서 골동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만

글쎄 모르지.
간사하기 짝이없는 사람의 심사를 어떻게 믿어.
안그래도 수십년 굴러 먹다보니 이런저런 병통이 없지를 않을 것이니
어느 날 아침 뜬금없이 시동이 불통이라거나
아니래도 뭐 어쩌다 털털거릴 날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 
목에 땀내 나는 수건 두르고
그 팔뚝 한번 건장하게 굵은 쥔장 심기 사나운 날이면
짜증스러운 담배 연기 한 모금에 목숨이 간당간당 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폐차장에 끌려가 납작하게 눌려질 지 누가 알아. 
그나마 오래 된 쇳덩어리라고 아주 값나가는 미제 고물로 추켜 세워 줄 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 시대 한 두어번 타 본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시발 택시는 또 어디 없는지.
하기야 인자는 정말 골동품 수집가가 아니라면 그게 택시로 남아 있을 턱이야 없지.
어쨌든 이 숨차고 어지럽게 달려 가던 세월이 살짝 비껴 간 어느 한 귀퉁이
누가 오래 된 세월을 저리 붙들어 놨는지
저 물건이 꽤 멀쩡한 꼬라지를 하고 저리 서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잖아?
저런 물건에까지 공연히 뭉클해지는 사람의 기억이나 감정이란 것이 때로는 참 끔찍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말이야. 








단순 명료. 인지 효과는 극대...

하지만
도무지 사랑할 수도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는...





간혹 지나치는 국도변의 휴게실.
그다지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상호나 그림의 구성이 영락없는 60년대식이다.
그런 저런 연유로해서 어쨌거나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보고싶은 곳 중의 하나.
혹시라도 저 간판 귀퉁이의 그림처럼 근사하게 생긴 처자가 무료한 초여름 한 낮
목이 빠져라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알 수 없으니까.

최백호의 노래처럼 궂은 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서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 취해서 
더우기나 저렇게 입만 열면 하트가 쏟아져 나오는 못견디게 사랑스러운 처자와 함께라면 말이지.



참 구시대스럽기는 하지만 그 깊은 정취가 그다지 살아나지 않는 얄팍해 보이는 그림에다가
윗쪽의 오고파 아가씨에 비해서 그다지 색시해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나름의 기품도 느껴지지 않고...
게다가 좀 사나워보이기까지 하잖아? 잘 있다가 수 틀리면 홱 틀어질 것 같은 그런...
맞아. 내 타입이 아니야...

하지만 요즘 세상에 어디가서 또 저런 쨍한 이전개업 현수막을 볼 수 있으랴 싶어서 일단은 낙점.
그래도 굳이 읍내의 정다방까지 저 아가씨를 만나러 가고싶은 생각은 그다지 열심이지 않아서
정 다방의 긴머리 아가씨는 다음에 신속 배달로 만나기로 하고 일단은 패스.
아마도 내가 알기로는 가장 경제적인 형태의 상업 간판.
제작시 공간과 무게, 크기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유지 보수 또한 매우 간편한 바,
건물의 흥망과 그 수명을 같이 하는...

포항시 청하면 청하 5일장터
깨진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면
온갖 잡동사니들이 먼지를 두껍게 뒤집어 쓴 채로 방치 되어있는 걸로 봐서 이미 오래 전에 폐업 한 듯.
점포는 사라져도 간판은 남아있음. 마땅히 재조명 받아야 할 매우 매력적인 광고 형태...



영덕군 남정면 부경리 못잊어 횟집 간판.
현존하는 횟집.

다만 지금은 이 담벼락은 매우 현대적(?)인 노랑 페인트로 말끔히 도색되고 말았음.
개인적으로,
그런 야만적인 도색행위는 극력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함.
대체 이런 기가 막힌 문화의 흔적을 왜 지우냔 말이지.


유명무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보다는 조금 진화한 구호.
남몰래 고민 말고 자수하여 광명 찾자는 개인용.
그럼 이건 가족 친지용.
한 때 백주 대로의 괴물이었던 무소부재의 그것. 격세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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