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다.
이발소며 여염 집이며 하다 못해 수학여행 기념품 연필꽂이에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배경에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도 있었고.
금언과 격언의 남발시대였을까.
지리산 기슭에서 반벌거숭이로 뛰어다니던 그 때 그 시절, 나는 '인내'라는 것이 무슨 식물 이름인줄 알았다.
식물 아니면 '그 열매'가 왜 나오겠냐는 말이지.
그리고 베토벤.
나는 이 쑤세미 머리의 베토벤이 그 때 그 시절의 이발소며 여염집 대청마루 한 가운데에 걸려 있어야 할 이유를 아직도 알지 못하며, 더우기나 아예 음악이나 예술 전반에 대해서는 완전 깡통이었던, 참 지지리도 공부하기 싫었던 사촌 형의 공부방에 이 베토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던 까닭은 대체 뭐였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촉발시킨 첫 그림. 오늘도 무사히.
그 때 그 시절 급행버스 운전수 앞쪽 벼름박이나 택시 '다찌방'에는 거의 반드시 있었다.
멀미 냄새 기름 냄새 가득한 버스 앞유리창 벼름박에는 비로드에 노란 술 달아 흔들흔들 멋진 커튼까지 걸쳐놓고
그 한 가운데 쯤에는 반드시 오늘도 무사히...
특별한 이유는 없다.
어느 날 화장실에 앉아 뒤적거리던 해 묵은 오디오 잡지의 탐방기사 사진에서
아마도 그 집 안주인이 만들어 걸었을 것으로 보이는 스킬 자수의 이 그림을 보았고,
그리고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수십년을 휘돌아서 어릴 때 보았던 그 뽀얗고 예쁘게 생겼던 소녀의 기도가 괜히 다시 보고싶어져 안달이 났었지.
내가 이런 그림을 줏어다 모은다 했더니
뜬금없는 웬 박학다식한 안다이박사 왈,
그건 소녀가 아니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사무엘의 기도하는 모습이며,
누구라더라, 거시기, 하여튼 유명한 서양화가의 그림이 원본이라드만,
하지만 그 말씀이야 말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으로 유식한 말씀이지.
이 그림의 제목은 보시다시피 '오늘도 무사히'이며
이 그림의 주인공은 그 시절 한국의 고물 급행버스 운전사를 아버지로 둔 어여쁜 소녀였더라는 말씀이니
이런 엄연한 사실 앞에서 원본이 어떻고 구약성경이 어떻고
영국 화가 거시기며 다니엘이니 사무엘이니 개 풀뜯어먹는 소릴 말라는 말씀이야.
길을 막고 물어 봐 봐.
모사건 베껴 그렸건 네다바이를 해 먹었건 간에 어쨌든 이제 이 그림은 이 나라에서 만큼은 난공불락의 네오크라식이라니까.
그러게 참 벨일이다. 뜬금없이 이게 왜 보고싶었지?
구할 수 있다면 하나 구해서 우리집 벼름빡에 액자해서 걸어놓고싶구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