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막걸리 이야기를 한다. 술 채널인가보다. 전통방식으로 제대로 빚은 술이라고 채널 주인장이 엄지를 세우는데 막걸리 이름이 지란지교다. 많이 오래 전에 '지란지교를 꿈꾸며' 라는 유안진 시인의 글을 읽었었다. 읽고 참 좋았고 부러웠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시인이 부러웠고 그런 친구를 소망하는 것도 멋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썼던 친구에 대한 글도 생각했다.

'궂은 비 오는 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반팔이면 조금 서늘할 그런 비오는 날이면 좋겠다. 무료한 오전에서 오후로 건너가는 그 때쯤 한 손에 안주 접시를, 한 손에 마시다 남은 술병을 들고 슬리퍼 신은 발로 내 집 문을 두드리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구구절절 고하고 뇌이지 않아도 찾고 반길 수 있는 친구라야겠지. 살짝 붉어지기 시작하는 낯빛으로 쓰윽 웃으면서 제 집처럼 주섬주섬 술상 채비를 하는, 아니라면 그냥 발로 이불 걷어내고 그냥 방바닥에 주저앉아 잔을 권하는 그런 친구라면 좋겠다. 뭐 대단한 인생들을 살아 오지는 않았으니 소소히 사람 이야기나 세상 이야기면 족하지. 그러구러 빗소리도 바람소리도 적적할 무렵이면 술도 족하겠지. 둘이 천장 보고 누워서 낮잠 한 숨 자고 나서 먼저 깨는 놈이 파한 술상 치우고 저녁먹고 가거라 어슷한 저녁나절에 친구는 가고 나는 남아서 저 불한당 같은 놈때매 낮잠을 자고 말았으니 오늘 밤 잠은 다 잤구나 별 걱정을 다하면서 텔레비전에 뭐 볼 거 있나 뒤적거리는 그런 날이면 좋겠다. '  뭐, 이런 글이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던 술 좋아하는 친구 하나를 잃었다. 아니다. 내가 잘라 낸 것인가. 아니, 내가 자르고자 한 것은 아니나 결국에는 그런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도 다시 되잡거나 탄식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도 얼마쯤 은연중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인가 싶기도 하고. 친구의 오래 된 술버릇 때문에 같이 술을 마신 뒤가 언제나 버겁고 마음이 어지럽길래 너랑 이제 술은 안마실란다 이제는 만나면 밥만 먹자 했더니 그 길로 소식을 끊어버렸다. 소식을 끊은 것인지 인연마저 끊은 것인지 잘 모르기는 하지만 어느 쪽이건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는 나도 그냥 세월에 흘려버렸다.

살아 온 날보다 남은 날이 많이 짧아진 나이에 그런 일로 속 시끄럽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지. 아마 그 무렵 쯤 썼던 글이었던 듯 하다. 나도 술 좋아했고 친구도 좋아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고되다면 인자는 그리 않아야지. 마주 앉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고 행복해야지 마주 앉은 사람이 있어서 불편하다면 그게 뭐야. 그러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없다면 술을 버려야지. 술을 버릴 수 없다면 사람이라도 버리든지.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너도 행복하지 않은 거야. 뭐, 그래도 하도 오랜 친구다보니 가끔은 생각이 나고는 한다. 잘 살고 있는지. 살아는 있는지. 여전히 술 많이 먹고 사는지. 모르지. 넌 꼴도 보기 싫은 놈이야라고 돌아 선 게 아니라서 어느 날 궁금해서 안부를 물을 지는 모르지. 그 때가 온다면 이번에는 내가 지란지교를 한 병 들고 가마. 먹다 남은 것이 아닌 새 것으로. 하지만 딱 한병이야. 술 병이 나서 오늘 내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막걸리 한 잔 쯤은 나눌 수 있겠지. 하지만 딱 그까지야. 예전의 너 같으면 아마도 어렵겠지만. 한 병이 두 병이 될 듯 하면 나는 이제 그 길로 일어설 참이지. 아, 물론 애초에 거절을 해도 나는 좋아. 내가 먼저 던진 말이 있으니 흔쾌히 감수할 생각이야. 그래도 살아 온 날들이 적지 않으니 남은 시간은 각자 알아서 서로 안녕하기로 하고. 쓰다보니 여기까지 왔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지란지교를 수소문 할 생각은 아니야. 어쩌다보니 오늘 지란지교라는 이름의 막걸리와 술꾼 친구가 같이 떠오르길래 그냥 생각을 되작거려 보는 것이지. 하지만 우리는 지란지교처럼 그러지는 못했던 듯 하다. 그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아니, 혹시 우리는 酒乱之交였을까? ㅎㅎ....  오늘은 내 글처럼 비가 오지는 않아. 많이 추운 날이지. 잘 살아. 그러게 찬 바람이 걱정이 되는 나이들이 되었구나.     

포항에 비가 내린다. 종일 집 안에 있다가 이웃 가게에 간다고 나섰더니 아니, 모른 사이에 비가 꽤나 내리고 있다. 종일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아파트 생활은 참 고요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적적하다 해야 하나. 촌에서 사는 것이 고요하고 적막한 줄 아는 사람들은 안 살아 본 사람들이다. 큰 놈이 스무살이 넘도록 동해안 촌구석에서 살아봐서 안다. 빗소리 듣고 바람소리에 수런거리고 담벼락 밖 동네 사람들 싸우는 소리, 창 밖에 들고양이, 봄이면 개구리, 뻐꾸기며 웬 별별 산새들 소리까지 다 듣고 산다. 당신이 고요한 삶을 그리워한다면 아파트로 가라. 비 오는 줄도 모르고 살 수 있다. 

각설하고, 나는 비가 오면 무작정 좋은 사람이다. 비 오는 날은 좋은 날이다. 더우기 타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 비가 내리고 있다면 그 날은 어떤 무언가로부터 위로받는 날이다. 나는 포항이 고향은 아니다. 동해안의 촌구석도 고향이 아니다. 그런데 고향에서도 느끼지 못하던 비 오는 날의 위로를 어느 때인가부터 받고 있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제도 병원 나들이 하느라(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서울 갔다 돌아오는 길에 포항이 가까워질 무렵 마른 겨울 풍경이 젖으면서 기차 차창에 빗방울이 비껴 스칠때 일없이 반가웠다. 역에서 벗어나 주차장으로 가는 잠깐동안 꽤 찬 바람에 빗방울이 제법이었지만 그것도 좋았다. 오늘 저녁 잠깐 나들이에서 받은 위로도 좋았다. 젖은 아스팔트에 번지는 자동차 불빛들, 젖은 길을 스치는 자동차 타이어 소리들, 우산에 빗방울 소리, 조금씩 젖는 어깨. 아, 물론 우리집 길목의 잘 생긴 은행나무 잎이 어제 비바람에 다 떨어져버려서 조금 섭섭하기는 했다. 빛깔이 참 고왔는데.

나는 곧 라이더가 될 예정이다. seaman이라는 일본의 어느 여자 라이더의 유튜브를 보다가 제대로 뽐뿌를 받아버렸다. 그 젊은 처자의 여행 스타일이 나와 너무 닮은 것과 블로그에 깔린 음악들의 취향이며, 가끔씩 올리는 사진의 구도, 오토바이 라이딩이 보여주는 그 광활한 시야와 개방감에 그만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한 달 전 쯤 간신히 2소 면허를 따고 몇 달 동안 벼르던 모델이 연말 프로모션을 한다길래 이 번 기회에 질러버리려고.  얇은 지갑에 잠깐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로 내 남은 시간들을 주저앉히지는 않으려고. 십년 가까이 몰두했던 산악자전거 라이딩이 이제는 조금 버거워진 탓도 있다. 그래도 한 동안은 병행할 생각이지만. 도파민이 미친 듯이 폭발하는 산악 다운힐의 쾌감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지. 그러니 나는 아직도 철딱서니 없이 나이만 먹은 낭만객에 몽상가다. 

그런데 살짝 걱정이 하나 생겼다. 라이더가 되고 나서도 돌아오는 길에 내리는 비가 반가울까? 축축하게 젖은 몸으로 젖어서 미끄러운 길을 털털거리며 조마조마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글쎄... 뭐, 일단 해 보고..  

am 03:15   - Bruch/ Kol Nidrei  -Vi/ Y. Bashmet   Pf/ M. Muntian

知足.. 또는 至足.

 

am 11:30  -Telemann/ Fantasy   -Vn/ A.Grumiaux

늦잠..

//

간밤에 낙원이 어쩌고 흰소리를 하다보니 오래 전에 어디엔가 남아있던 글이 생각났다.

 2004년 1월 31일 새벽.  그러게. 열락이었는데. 

 

1. 금산사

지난 가을에 근처를 지나다가 들르지 못해서 아쉬웠던 금산사. 그래서 겨울에 왔다. 나는 겨울 여행이 더 좋아.

첫 느낌이 절 마당이 훤한 것이 무슨 중국 무협영화에 나오는 절 같더라. 어느 귀퉁이에서 소림승들이 얍얍 당랑권 자세로 나타 날지도...@@.. 오른쪽이 국보 미륵전.
뭔가 느낌이 있기는 한데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네. 법당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하여튼 만나서 좋았던 미륵전.
언덕 위에 있는 적멸보궁. 겨울 나무를 이고 있어서 그런지 좀 막막하더라.
춥고 사람이 없어서 적적한 축구장만한 절마당.
언제나 내 눈을 잡아끄는 절지붕과 겨울나무와 하늘
불타는 황금 광배.. 이 불상도 국보라던가

2. 개암사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던 느낌의 작은 절. 

일주문은 없고 불이교.;.. 인줄 알았더니 들어올 때 눈길 때매 일주문을 안거치고 옆구리로 들어왔었고만.. 그저 미끄러울 때는 길 조심 발 조심....
큰 바위를 이고 있는 대웅전. 바위를 이고 있어서 蓋巖寺 인가 했더니 開巖寺였다.그러게 설마 절 이름을 그리 얄팍한 이름을 지었을리가.
해 넘어갈 무렵의 개암사. 가는 곳 마다 조금씩 시간이 늘어져서 이러다가는 혹시나 오늘 내로 바다를 보지 못할까 마음이 뒤숭숭.
결국 어둑해서야 도착한 격포. 바람 사나운 저녁 바닷가. 몇몇 서성이던 사람들도 다 돌아가고 나만 남았더라.
격포 옆에 채석강. 바람이 어마어마.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
해는 지고 흐리고 어두운 하늘에 그중 눈에 띄던 채석강 인근의 카페 정원수. 이름 붙은 명승지가 아니면 어때서. 보기에 좋고 느낌이 있으면 그것으로 명승이지.

늦게 도착해서 사진 몇 장 날리다보니 이내 어둑구석이다. 상가도 썰렁하니 사람도 없이 잠깐 서성거리다가 결국 캄캄한 밤중에 부안으로 출발. 부안읍이 어딘지 모텔 샤르가 어딘지 동서남북도 모르고 가란대로 갔더니 어찌어찌 무사히 숙소에 도착. 오밤중에도 길눈 밝은 신통방통 내비게이션. 이과 만세. 쓸모없는 문과 나부랭이 같으니. 

저녁 먹고 잠깐 부안 구경. 소소하지만 적적하지는 않았던 부안. 단정하고 반빡반짝하던 작은 소읍.

3. 능제 저수지   

 부안에서 자고 새벽길을 나섰다.  그리고 긴가민가하던 마음이 탄성으로. 차 세울 곳을 못찾고 잘 못 진입한 골목을 빠져나오느라 진땀. 큰 길을 따라 호수를 따라 돌면 주차장이 있더라.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고 나만 있더라.

흐려서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흐려서 또 좋기도 했던 그림들. 왼쪽 수풀로 가려서 안보이는 쪽은 보트 선착장. 선박 운전면허시험도 여기서 본다던가.
오른쪽 나무 아래로 빙 돌아 산책로. 동이 트는지 하늘이 조금 밝아지는 중.
철새가 바글바글.. 뒤뚱뒤뚱 오동통한 매력적인 바디라인으로 봐서는 무슨 오리같기는 한데 아는 게 없으므로 그냥 철새.
색깔이 아쉬운 아침 놀. 거 봐, 오리 치고는 너무 날렵한 거 아니야?
생각보다 꽤 넓었던 능제지. 여름에는 제트 보트도 다닌다고.큰 비가 와도, 오래 가물어도 물이 줄지도 넘치지도 않는다는데 어디서 흘러 들어오는 물도 없는데 신기하다 그랬던가.
조금씩 밝아지면서 엷게 채색이 되어가는 물빛. 이른 시간처럼 흐리고 철새 소리만 소란할 뿐 고요하고 예쁘더라.
귀(굽이)가 99귀라 100개가 되는 날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거라는 어지간한 동네마다 있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도 딸려있는 오래 된 저수지. 뭐, 내 보기에는 저수지라기보다는 아주 크고 깊고 멋진 호수였다. 날씨도 많이 춥고 그랬지만 그저 좋기만 해서 두시간이 넘도록 홀린듯이 자전거로 둘레길을 돌았던 능제 저수지. 혹 갈려면 이른 아침에 가는 것을 추천. 그 시간에 갔던 나는 좋았으니까.
떠나기 전에.잡은 나무 하나. 제목은 빛나는 나무. 선택받은 나무. 불타는 나무 등등... 아. 유치하다. 어쨌든 나이스 타이밍..

4. 장항항

딱히 목표점도 없이 혹여나 시간이 꼬이면 생략하고 지나치리라 생각했던 곳.  여행 계획을 짜면서 지도를 보다가 아무 이유없이 막연히 끌려서 경유지로 매겨 두었던 곳. 그래도 지나치지 않고 혹시나 해서 그 끄트머리까지 갔던 것이 너무 다행이었던 곳. 허름한 폐자재 더미 사이로 보이던 수평선이 거의 감격스러울만큼 반가웠던 곳. 

장항제련소 굴뚝. 토양 오염이 심해서 지금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채로 회복중.
장항항의 끄트머리에서 건너다보이던 풍경. 갈비뼈를 드러낸채로 드러누운 갯벌. 흐린 하늘과 썰물이 만들어 낸 멋진 그림.
생각도 못했던 선물같은 풍경을 만나서 신났음. .
영하의 날씨에 생바람을 맞으면서 거의 한 시간.
문수사로 가던 중 신호대기 중에 내 눈을 때리던 표지판의 햇빛때문에 한 컷. 열어 놓은 루프 창 밖으로 띵띵 얼어붙은 겨울 하늘.
서산 문수사. 기대했었는데 문수사라는 이름으로 연상되던 이미지와 너무 다른 모습에 허탈.
문수사를 빠져나오던 길에 신기한 풍경. 목장터라는데 정말 나무 한 그루 없이 바리깡으로 싹 밀어버린 민둥산 언덕.
자다가 눈 뜨면 어리둥절 할 것 같은 흔하지 않은 풍경. 한우 목장터래.
목장터 구경하고 다시 운전석에 앉았더니 이런 반가운 그림이! 적산거리 십만. 딱 십만. 얻어걸린 재미있는 사진.

5. 삽교호

가을에 이 앞을 지나치다가 차창 밖으로 언뜻 보이던 지평선에 홀려서 다시 와 본 곳.

자전거로 제방길을 돌아보려했더니 고병원성 AI때문에 못가라고 막아뒀더라. 그래서 옆 동네로 돌아서 들판이나 보고가자 하고 나갔더니 거기는 열려있데? 시간은 좀 더 걸렸지만 그래도 비슷한 곳을 볼 수 있어서 다행.
길을 다니다가 지평선이나 수평선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가슴 설레는 압도적인 풍경
여행 내내 거의 이 그림같은 날씨와 색깔과 기온이었음.
삽교호 제방을 되짚어 되돌아 오던 길에

6. 상당산성

생각보다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성문에 올라서니 너무 어두워서 한 걸음에 마무리를 못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올라오기로. 시커먼 산성을 혼자 다니다가 멧돼지며 산짐승들 만나면 놀라고 무섭지. 밤눈도 어둡고.

성문 까지만 올라갔다가 중동무이를 하고 다시 내려와서 청주에 사는 지인을 만나 오랜만에 얼굴보고 밥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리고 담배냄새가 좀 남아있는 숙소로. '아우님의 새벽에 관한 글을 읽었을 때 맑은 물을 들여다보는 거 같았어요' 오래 전에 썼던 짧은 글을 새삼스럽게 칭찬해 주던 늘 고마운 분. 오랜만에 본 얼굴이라 세월이 많이 느껴져서 좀 쓸쓸했음. 나도 그만큼 늙었겠지.
다음날 새벽 너무 시간이 이른 탓에 이러나 저러나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나기로. 숙소 인근 해장국 집 근처 골목.
새벽달이 남아있는 해장국집 골목. 밥은 괜찮았는데 주문할려고 잠시 메뉴판 보는 사이에 그냥 섞은 국밥을 갖다 주더라. '어쩌꺼나, 다들 그렇게 잡숴요...' 살짝 당황했지만 맛이 괜찮아서 그냥 익스큐즈. 새벽부터 예민해지기 싫어서도 그렇고. 하지만 아주머니, '다들'이 되고싶지 않은 까탈쟁이도 가끔 있다우...
상당산성 고갯마루에서 어디론가 넘어가는 새벽길
저 굽이를 돌아서면 어쩌면 멀리 청주 시내를 볼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꽤 몇 구비를 걸었지만 생각보다 산이 깊었다. 그래도 좋았던 아침 산성.
산성을 좀 더 돌아보려면 어디로 내려갈까요. 어리둥절한 나그네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고 홀연히 사라진 산객.
그 길에서 만난 산새. 무슨 딱따구리같은 소리를 내고 있길래 찾아봤지. 아니, 진짜 딱따구리인가?

 

아니, 아저씨. 이런 무서운 다리가 있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한참을 걸었는데 다시 돌아 갈 수도 없고 말이야.... 다리가 많이 높고 많이 삐그덕거려서 많이 무서웠음. ㅜㅜ,,
문경 새재 가던 길. 여행을 하다보면 눈 앞에 열리는 길 옆의 풍경때문에 설렐때가 더러 있다. 여태 보지 못하던 풍경들. 시간들. 그래서 가끔 한적한 길을 운전하다가는 그냥 달리는 채 노파인더로 무턱대고 셔터를 누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낮은 확률로 꽤 멋진 그림을 건지기도 하지.
이것도 그렇게 가슴으로 찍은 사진. --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가슴팍에 대고 찍었다는 뜻임. ㅋ
얻어 걸린 각연사. 국도를 달리던 중에 '천년고찰 각연사'라는 큼지막한 이정표를 보고 즉흥적으로 들어선 산길. 경험상 절집으로 들어서는 길이 심상찮으면 십중팔구 그 절도 좋았었다.
그러게 이 호젓한 일주문의 분위기를 보라니까! 괜한 짐작에 그 절의 도력이 드높아지면 그 산천이며 나무들도 견성을 하여 그 자태가 남달리 고아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뭐, 반드시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야 뭐, 인과관계가 거꾸로일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예불가는 스님의 뒷모습을 슬쩍. 스님이 법당에 들어선 잠시 뒤부터 들리던 목탁소리와 염불소리도 많이 좋았음. 여느 절들에서 듣던 녹음된 그렇고 그런 방송 염불소리가 아니라 정말 오랜만에 듣는 내공 깊은 찐한 라이브... 그래서 그런지 절집의 분위기도 오가는 사람들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오연한 느낌이 있었더라. 그러게 뭐, 내가 분위기에 좀 잘 휩쓸리기는 하지...
하도 좋아서 절을 떠나기 전에 다시 한 컷. 어쩌면 다시 와보고싶을지도 모를 얻어 걸린 각연사

7. 문경 새재

여행의 제법 큰 꼭지로 생각했었는데 생각하고는 많이 달라서 조금 실망하고 많이 지쳤던 곳

주흘관. 문경새재 3관문 중 첫번째 관문. 이 조차도 입구 주차장에서 한 참 걸었어야 했다. 그래도 군더더기 없이 딱 관문만 버티고 서 있던 느낌은 괜찮았음.
주흘관 지나서 조곡관으로 가는 길.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었다.
조곡관 채 못미쳐서 교귀정 여기까지 걷다가 다시 돌아서고 말았다. 1.허리도 아프고 2.시간도 애매했고 3.걷는 중에 KT 고객센터랑 TV문제로 옥신각신 하는 바람에 기분도 다운. 그것도 그렇지만 조령관까지 갔다 오기에는 나 같은 형태의 여행 타입은 시간 소모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전동차가 운행된다길래 그거라도 이용을 해볼까 했지만 오가는 동안 한 번도 보지를 못했으니 아마도 평일에는 운행하지 않는 듯. 다음에 기회가 있더라도 무작정 조곡관 조령관을 목적으로 오기에는 부담스럽다. 새재공원 전체의 오가는 길을 온전히 즐기고 느끼려면 꼬박 하루를 여기에만 집중해야겠더라. 여행계획의 착오.
문경 들어서는 길의 '영남대로' 이름은 좀 허장성세였고 그랬지만 독립적으로는 괜찮은 조형물이기는 했는데 이후의 풍경들이 너무 쇠락해서 허전했다. 공들인 용기에 비해 내용물은 공허한 그런 느낌..
여행 계획에 마침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챙겨 넣은 문경 장날. 점심 식사도 장터에서 해결해볼 심산이었는데 완벽한 판단 미스. 오래전에 살던 시골 오일장보다도 더 초라한 쇠락한 장터. 이만큼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할망장이라는 이름까지 복원을 해서 살려보려 한 것이겠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좌판에 놓인 물건들도 그냥 검은 비닐봉지채로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고. 그 어떤 정책도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은 막지 못할 듯. 많이 허전하고 무기력하고 쓸쓸했던 문경 오일장.
에디슨 치킨.호프. 희한한 상호와 업종의 조합이었다. 하긴 이런 게 가끔씩 있기는 하지. 포항 양학동의 립스틱 해물탕./ 경남 사천의 불란서 호떡 /진주에서 본 초원 폐차장/...
폐역 불정역.
문경 관광 안내의 추천지로 올라있는 불정역. 내가 느끼고 싶은 폐역사의 그것은 아니었던 그냥 불정역.
고모산성. 문경 새재에서 기대가 어긋났던 탓에 기대치가 낮아져서일까. 첫 인상부터 눈에 들고 반가웠던 고모산성. 남문.
산성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역시 화각이 다르면 세상이 달라보여.
성벽 위에 화살처럼 꽂힌 털빠진 억새풀.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남문. 그.... 무슨 느낌이 있기는 한데 하여튼 괜찮은 그림이었음. 둘 다 새로 쌓은 성벽이긴 한데 내 고향인 진주의 진주성과는 좀 다른 느낌. 산 중턱을 가로지른 성벽이라 그런가? 좀 더 걷자면 토끼비리(토끼나 뛰어 다닐 수 있을만큼 좁고 까칠한 벼랑길이라는 뜻이라고) 까지 갈 수 있다던데 양호하지 못한 허리 건강 관계로 삼가.
성벽 위에서 시선을 건너편 산으로.

8. 도리사

도리사 입구의 살벌한 경사각. 작년 봄에 왔을 때 뒷바퀴가 스핀을 하는 바람에 시껍을 했는데 올해는 아예 겁 먹고 아래쪽 주차장에 차를 놓고 걸어 올라가는 중.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목탁 한다발. 태조선원 끝기둥에 매달린 목탁 한 다발.
극락전. 규모는 작고 아담해도 슬쩍 휘어져 날아가는 처마 끝의 곡선과 그걸 다부지게 잡아채고 있는 용마루며 늙지도 젋지도 않은 기둥과 단청의 채색까지 ...... 멋진 집이야...
태조선원 옆으로 비껴 들어오는 저녁 햇살. 따뜻해보이지만 날씨는 꽤 추웠음.
목탁 식구들 클로즈업.
절지붕 너머로 보이는 사바세계. 영주 부석사에서 내려다보는 눈맛들을 다들 칭송하고 그것은 나도 이론 없이 찬성하지만 여기 도리사의 그것도 못지않다. 적멸보궁 앞에서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낙동강은 더욱 일품. 이걸 다시 보고싶어서 도리사를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
적멸보궁 앞 계단 위에서 당겨 본 낙동강. 연무가 좀 많아서 살짝 아쉬움.
태조선원 마루에서 하얗게 빛나는 장지문들. 태조선은은 템플스테이 숙소로 쓰이는 모양이던데 내가 템플스테이를 하자한다면 제일 먼저 여기로 오고싶음.그 이유는 별 거 없음. 그냥 이 건물이 좋아서. 끄트머리 기둥의 목탁 식구들도 예쁘고.
도리사를 나서던 길에 기묘한 모습의 모과나무와 떨어진 모과들. 스님들이 모과를 별로 안좋아하는지?

이것으로 2025 첫 여행 끝.

1.

허리가 아팠다. 이삼주 전부터 약을 한 주먹씩 먹고 있는데도 안 나아서. 이러고 자전거 대회를 간다는 게 말이 되나마나 마음이 오락가락하다가 금요일 일정이 비는 바람에 시간이 아깝네 기회가 아깝네 괜히 제풀에 혼자 떠밀려서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이 변할까봐 숙소부터 덜컥 예약. 잘했군. 만사는 불여튼튼이다. 동네 병원에 가서 약도 미리 더 받았다. 그래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기권도 불사하리라는 마음을 먹고. 그런데 집을 나서는데 사실 발이 잘 안떨어지더라. 말 그대로 심신이 편하지를 않아서. 거기다가 추적추적 비까지 오고 말이야.

우선 딴생각 안나게 한달음에 태안반도까지 냅다 올라 가기로 했다. 첫번째 목적지는 가로림만. 경유지는 그 길목에 있는 아산 공세리 성당. 이야, 아시아 동쪽 끝에 콧구녕만한 나라라더니 한 걸음에 갈라니 한 참 가네. 그러게 우리나라가 그렇게 작은 나라가 아니라니까. 뭐, 걸어 다니면 좀 더 멀기는 하겠지만.... 

소박하고 차분했던 예배당. 이런 예배실을 들어서면 뭐랄까, 정수리에 젖은 물수건이 하나 얹히는 것 같이 좀 그렇기는 하다.
'슈고하난 자와 무거은 짐진쟈난 내게로 오라 내 너희를 도으리라' 고전 한글체 성경구절로 새긴 아치, 보기드물게 지팡이를 짚은 예수상 휴일 낮에도 조명이 밝혀진 제단, 열 두개의 촛대, 그 아래 성모상까지 소박하지만 마음이 설렐만큼 위엄 있고 아름다운 제단이었다.

하지만 나한테 묻지 마라. 나는 잘 모른다. 외가가 한국 기독교 1세대라느니 어머니가 독실한 집사였느니 집구석 여포에 천하없는 졸갑증 팔랑귀 아버지는 유교도 잠시 괴상한 일본식 태양 숭배도 잠시 말년에는 기독교도 잠시... 친가 외가 중에는 세상 시끄럽던 얄궂은 사이비 기독교에 심취한 사람들도 있고 해서 그에 어울리는 기구하고 다양한 종교 체험을 하고 자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모른다.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다. 한 때는 뭔가를 찾아 보려고 나름대로 책도 찾아 읽고 궁리도 많이 해봤지만 다만 세상을 창조했다는 그 신이 있다 하더라도 한국 개신교가 주장하는 그런 형태의, 그런 개념의 절대자는 아닐 거라는 확신만 남았다. 너그들이 그렇게도 기필코 한사코 주장하는 그런 절대자가 정말 이 세상을 만들어 논거라면 그거 뭔가 단단히 잘못 된 거야. 아니면 그 양반 솜씨가 형편 없든지. 그러니 믿어라 말아라 으르딱딱거리지들 마. 그거 다 신성모독이야. 

그러게 길을 떠날 때마다 일없이 오래된 성당들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그런 질문을 받을 수도 있지. 뭐, 딱이 종교적인 의미는 아니다. 오래된 절집을 찾아 다닌지는 더 오래 되었으니 그냥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갑지. 나처럼 살짝 어리석은 사람들의 열심들이며 진심들이 모여있는 거 같은 그런 분위기. 그것도 오래된 건물들로만.  사람은 안 가려. 사람은 불신자건 신자건 불자건 집사건 보살이건 무당이건 점쟁이건 뭐건 간에 나한테 적대적이지만 않으면 돼. 밑바닥 잡놈만 아니라면. 그리고 서로 안녕하기로만 한다면. 

가로림만으로 들어가는 웅도마을 입구. 그저 하늘에 걸린 전봇대만 보면 환장을 하지.
일없이 적막하고 쓸쓸하던 이런 풍경도 매일 보면 심드렁해질까. 마침 물이 빠졌다가 막 들어오기 시작하던 참이라 소원대로 갯벌 구경은 실컷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갯벌이라더니 과연 어마어마한 갯벌이었다. 아심하게 살짝 연무가 낀  날씨도 좋드만. 오래 전에 김포반도 싸리섬에서 원치 않은 갯벌 체험을 무지막지하게 했던 이후로 갯벌만 보면 뭔 향수병 비슷한 것이 도져서..... 그래서 잘 알지. 저 까마득한 갯벌 어느 물골에서 얼쩡거리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렀던 몽산포해변. 뭔가 구성진 유행가 한 곡조 뽑아야 할 것같은 이름이다.
여기는 운여 해변. 지는 해를 따라 잡아보려고 제법 달렸는데 생각보다 길이 꼬불꼬불 예상보다 꽤 길었다. 그래서 낙조 타이밍을 놓친 걸까. 노을 맛집이라더니 해는 벌써 떨어지고 없고 그다지 강렬한 인상은 못받았고 파도도 없고 노을도 흐릿하고 그래서 좀 쓸쓸하고 그랬다. 뭐, 쓸쓸한 건 상관없어. 풍경에 취해 잠시 괜한 청승을 떨다 왔지 .

2. 전주

숙소에서 잠을 좀 설치는 바람에 그냥 이른 아침부터 자전거 타고 한옥마을 한바퀴.

전주난장/ 유튜브에서 보고 썩 관심이 갔었는데 직접 가 보니 아직 개문전인데도 어쩐지 좀 장삿속으로 보여서 그만 관심이 식었다. 그래서 그냥 어때, 나 많이 낡았지? 하는 외관만 보고 만족하는 걸로.
전동성당. 문이 닫혀있어서 접근 할 수 없었음. 성당 안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첫 인상이 좀 위압적으로 보이긴 하더라.
숙소 주변 천변에 열린 새벽 난전. 잘 생긴 쪽파가 큼직한 한 단에 오천원! 싸고 좋드만 일정이 멀고 험해서 그냥 포기 그러고는 사지 못한 쪽파가 못내 아쉬워서 사흘 밤낮을 쪽파 꿈만 꾸었다는 거짓말. 나중에는 결국 쪽파 여섯단으로 파김치를 뒤집어 썼다는 이야기..
전주 향교 뒷골목
전주 향교 앞길. 이른 아침에 한바퀴 돌아 본 전주 한옥마을의 대략적인 분위기가 이랬다.
까치밥이라고들 그러고 나도 그리 알고 있었는데 정작 까치들이 홍시 파 먹고 있는 건 처음 봤다. 그래서 기념 사진!
완주 삼례성당. 예배당 내부가 그냥 동네 목사 교회같았다. 원래 그랬는지 아니면 뜯어고쳤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기대했던 그런 것이 없어서 그래서 약간 어색하기도 하고 비호감이기도 하고..그래서 별로 둘러보고싶은 생각도 없었고.
삼례성당 맞은 편의 무슨 북카페. 건물도 그렇고 분위기도 앉아서 커피라도 한 잔 할까 싶은 마음이었는데 아직 영업 전인지 왜그런지 사람이 들어 서도 아는 체를 안 하길래 나도 그냥 두리번거리다가 도로 나서고 말았다.
익산 나바위 성당
짙게 채색된 예수상과 촛대. 오래 된 성당은 이런 맛이지.
백골같이 허연 뼈다귀들로 받쳐놓은 듯한 예배당. 여느 성당들과는 달리 스테인드 글라스는 없고 무슨 이유인지 그냥 유리창에 한지를 발라서 무슨 민화같은 걸 그려놨었는데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성당 내외관이 아쉬울 정도로 얼기설기 어설픈 느낌이었다. 나는 이 민화들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나바위 박물관 앞에서 성당 뒷모습 기와지붕을 이고 있는 회랑도 좋던데...
성당 박물관과 성체 조배실 성경에 이른대로 해석하면 떡집이라는 말씀이겠지.
강경 성지성당/ 외관이 어쩐지 스페인이나 지중해 근처에 서 있을 것같은 느낌이었는데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좀 휑뎅그렁.. 아주 오래 전의 진주 칠암성당이 연상되었었는데 정작 칠암성당은 화재로 소실되었다더라. 그 성당 외관은 얼추 생각나는데 내부는 어땠는지 기억이 없어. 사진도 찾을 수가 없네.

3. 개심사

서산 개심사

그리도 오랫동안 내 기억속에 남아있던 개심사. 언젠가는 꼭 다시 찾아가리라 생각 날 때마다 몇 번이고 뇌이던 곳이었는데 그 때 참 아무것도 없이 굽이굽이 산골짜기에 흙마당만 덩그러니 있던 절 입구에는 이제는 흔해빠진 절집들처럼 그냥 그저 그런 어지러운 식당이며 천막따위들. 시멘트로 말짱하게 바른 주차장 너머로 뻔뻔스럽게 닦여진 소방도로. 차를 타고 올라 갈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때 기억이라도 짚어보자 싶어서 걸어 올라갔더니 그 때는 없었던 단청도 찬란한 일주문 하며. 아침부터 굶었어서 요기라도 할까했더니 싼티 역력한 식당 안에는 대낮부터 시끌시끌 얼큰한 늙은이들. 그래 뭐 깜냥대로 한세상 살다 갈 일이지만 낫살이나 제법 들고서는 절집 앞에서 그러고 싶으냐. 주방안에서 설겆이 한다고 덜그덕거리는 주인을 찾았더니 '우리는 1인분 주문은 안받아요.' 그래 그래, 대낮에 질펀한 술자리 보고서는 진작에 짐작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냥 굶고 말지. 공짜로 밥 달라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어지간만 하면 혼자 다니는 여행객은 밥 얻어먹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개심사 입구는 여기였다. 뻘건 흙마당에서 들어섰던 세심동 개심사.

오래 전 기억보다 좀 더 넓어진 듯 좀 더 멀어진 듯한 돌계단을 한 참 올라가자니 진땀이 바짝 난다. 때 아니게 더운 날씨도 한 손 거들고. 그럭저럭 겨우 절 마당에 들어서니 그 호젓하던 산사는 어디 갔노. 널찍한 절마당에 승용차들이 여기저기. 어린 놈이 건너갔다 건너오던 외나무다리도 새로 만든 듯 그 때 외나무 다리가 아닌 듯 하고 그 아래 연못도 물이 흐려보이네. 그냥 마음을 가다듬기 어려울만큼 섭섭하고 울적해져서 절구경이랍시고 돌아다닐 엄두도 안나고. 아니 내가 너무 기대를 했어서 그런가.. 그럼 그냥 그 때 그 맛있었던 약수나 한 사발 들이키고 하산 하려니 약수터가 어디였더라 짐작도 안 가네. 

마음이 부대끼고 어리둥절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꽃밭 정리하는 보살님에게 약수터 어딨냐고 물었더니 그 약수 막힌지가 언제인데 지금 와서 그 약수를 찾냐고 어디서 오셨길래 그리 오랜만에 오셨냔다. 오래 전에 어린 놈 손 잡고 와서 그 물 참 맛있게 마시고 갔었는데 물이 없어 많이 섭섭하다하니 그러게 이 좋은 절을 왜 인자사 늦게 왔냐고 그 보살님도 그 세월이 그냥 섭섭하단다.  그러게 그 많은 세월 다 보내고 나는 왜 이제서야 왔을까. 그냥 좀 헛헛해서 그 물 마실라고 밥도 물도 굶고 올라왔노라 실없는 소릴 던지니 약수는 못드려도 생수는 한 병 드릴 수 있다고 안에 있는 작은 보살님을 불러서 평창수 한 병 건네 주신다. 그러게 개심사에 와서 평창수를 드시것네요. 섭섭해서 우째요. 그래도 보살님 덕에 이렇게 맛있는 평창수도 마셔보네요. 고맙습니다. 보살님도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땀 닦고 인사하고 돌아서니 그냥 다 허전하고 섭섭하다. 배도 고프고 허리도 아프고 먼 길 돌아왔는데 절집은 옛 절집이 아니고 세월도 그 세월이 아니네. 오늘은 날이 아니었는갑다. 안 올 걸 그랬어. 그냥 다시 오고싶은 마음만 묻어 두고 살걸. 괜히 왔어. 

4. 셋째날.

손꼽아두었던 데는 얼추 돌았으니 인자는 남는 게 시간이라 어디를 어떻게 들여다볼까 궁리를 하다가 그림이 근사하던 색장정미소를 일단 가 보기로. 누구는 좋더라 누구는 거길 왜 가냐 호불호가 갈리드만 게다가 느닷없이 나타나던 입구를 첫 걸음에 찾지 못해서 잠깐 헤메는 사이에 나타난 예쁜 길 이름. 이쪽 동네가 확실히 센스며 감성이며 은근 내 타입이야. 좋아요.

바람쐬는 길이긴 한데 그렇다고 길 곳곳에 바람개비를... 참.... 길 이름이 바람쐬는 길이면 그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나 가만히 서서 기다려볼 법도 한데 여기저기 바람개비들이 뱅뱅 돌고 있으니 바람은 놓치고 바람개비 구경만 하다 말았네.
동네를 두 바퀴 돌고서야 찾아낸 색장정미소. 그냥 근현대 문화재쯤인줄 알았더니 현역 카페였다.

별 기대없이 왔다가 마침 아침 햇살 받은 풍경이 좋아서 한 참 머물렀던 색장정미소. 100년 된 건물이라는데 나름 원형을 잘 살려서 보존해놓은 현역 카페였다. 아직 오픈 전이라 차는 못마셨지만 주인 영감님의 배려로 혼자 아래 위층을 오르내리면서 구경을 하고 사진도 여럿 찍었다. 고물 감성 가득한 시대착오적인 카페다.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은 꼭 한 번 가볼 만한 명물. 호불호가 조금 들쭉날쭉하기도 하겠지만 나는 좋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적당한 시간에 차도 한 잔 하고 그러고 싶은 곳.

팔복 예술공장. 폐 공장을 밀어버리지 않고 살려 둔 것은 찬성. 하지만 굳이 채색하고 가공해서 예술스럽게 만들려고 한 것은 반대. 폐 건물이 음흉해지지 않도록만 최소한의 관리만 하면서 폐허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꽤 많았던 곳.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주렁주렁 줄 서서 내 동선을 막아서던 시티투어 관광객들이 좀 거추장스럽기는 했지만.

↑ 이 것은....나도 모르게 잡힌 내 그림자. 렛츠고! 전주앤 완주. 맨 나랑 앞서거니 뒷서거니 시티투어 관광객들.
한옥마을 근처에 있던 국립무형문화유산원/ 어느 유튜버가 꼭 가볼만 하다고 강권하다시피. 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압도적인 규모에 비해서 볼거리는 빈약했고 안내도 부실해서 그냥 그랬다. 가족들 구경하라고 보내놓고 휴게실 소파에서 숙면하던 싸나희가 인상깊었던 곳. 사진마저 노출이 날아가버려서 좀 더 부실하네...
무형의 소리와 헤어져서 유리장 속에 유형으로 갇힌 북과 부채.
허재비/ 허수아비하고 같은 뜻이라는 모양이던데 언뜻 제웅같은 느낌도 들고 그래서 신기해서 한 컷.
잼버리 전망대에서 본 새만금 간척지/ 칠팔월 염천에 이런 허허벌판에서 잼버리 대회를 열어버린 미친 것들... 대체 뭘 처먹고 살면 그런 괴상한 물건들이 될까.
한옥마을 경기전 앞길
시간이 애매하게 떠버려서 공연히 들어가 본 경기전. 이 더운 날에 한옥마을 일대를 그 거추장스러운 한복들을 굳이 빌려입고 다니냐 싶어 속으로 혀를 찼더니 경기전에 들어서서는 그 사람들 덕에 묘하게 들뜬 분위기가 괜찮았다. 포토 존 앞에 임금이 되고 공주가 되고 무사가 되어서 길게 늘어서서 멋적은 얼굴로 사진찍을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재미있고.아하, 어우동도 있었고 한량같은 갓쟁이도 있었구나. 덕분에 나는 재미있고 좋았어요. 이런 날에는 아무것도 없이 훤하고 널널한 흙마당도 일없이 좋더라.
해 질무렵 전동성당. 끝내 들어가 보지를 못해서 섭섭. 그럼 안녕.

 

5. 10월 27일  이번 여행의 메인 이벤트. 2024 장수 MTB XCM

출발 전 대회장/ 장수 MTB XCM
생각보다 참가자가 많아서 내심 좀 놀랐음. 복장들이 중구난방. 반바지에 쫄쫄이가 대세지만 쌀쌀한 날씨에 패딩조끼도 등장. 나는 긴 바지에 긴 저지. 하지만 나는 사진에 없음.
나는 이응 ~ 히읗 해당자이므로 이짝으로. 유쾌한 어깃장. 이'짝'으로 오십시오. 나는 이런 거 좋아..ㅋ
출발하자 곧 만나는 장수 방화동 휴양림을 관통하는 임도. 경치가 아주 그냥 끝나드만.
타고 건널 수는 없었던 징검다리. 혹, 풀샥이라면 우당탕탕 한 번 도전해 봤을까? 덕분에 세 번인가 네 번인가를 들바. 덕분에 또 경치가 아주 그냥....

이 때 까지는 그래도 좋았지. 살짝 들뜬 분위기에 날씨도 그만했고 들뜬 기분이라 그랬었나 허리도 좀 덜아픈 듯 어디 한 번 덤벼 볼만하다는 느낌에 으랏차차, 나는 이 날을 위해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랬었지. 그러고 한 30몇 km 쯤 까지는 그럭저럭 앞서거니 뒷서거니 재미있고 신나고 그랬는데, 무릉고개 고갯마루 쯤에서 갑자기 생전 처음 느껴본 허벅지 통증. 얼결에 손으로 짚은 허벅지는 쥐가 나서 꽈비기처럼 마구 뒤틀려있었다. 아무래도 한쪽허리를 안쓰려고 좀 삐딱하게 용을 써서 자세가 망가졌던 듯. 하도 아프길래 처음에는 허벅지 근육 어디쯤이 절단 된 줄 알았고만.

뭐 어쨌든 페달링이 불가능한 지경이니 일단 의료팀에 전화를 했는데 왜 전화를 안 받아. 아니 뭔 의료팀 번화번호를 써놓지를 말등가. 뭐 그래도 어찌어찌 다리를 질질 끌며 고개를 넘어서서 다시 달려보니 쥐났던 건 어지간히 풀리기는 했는데 어쩐지 그 느낌이 아직 꿈틀꿈틀 남아있어서 다시 또 그럴까 잔뜩 쫄아버린 쫄보. 하나 씩 둘 씩 나를 추월해가는 사람들 등짝만 보고있자니 망연자실 의기소침. 거의 꼴찌에서 몇 번째가 되다보니 컷 오프 시간 안에 들기는 글러버렸고 비까지 두들겨맞고 길 안내하던 군청 직원들한테 미안해서 그냥 차에 실려가기로. 내 뒤에 몇 명 남지 않았던 사람들도 다 같이 챙겨 담고 중간 지점쯤까지 차로 점프. 떡국 한 그릇 먹고는 잠깐 쉬다보니 또 혹시나 괜찮을지도 몰라 욕심이 나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 여차하면 다시 뒤틀릴 것 같은 느낌이 스믈스믈 남아있어서 소심한 나를 다시 하나 둘씩 지나쳐 멀어져가는 등짝들... 결국 한 10여키로 달리다가 kom 구간 고갯마루에서 기다리고 있던 트럭에 다시 타고 말았다. 그걸로 내 레이스는 끝. 최소한 컷오프는 면하자 했는데 미션 실패!. 괜찮아. 비겁하지는 않았잖아.........사실 81km 거리에 획득고도가 2000 넘는 구간이라 심리적으로도 압박이 없지 않아서 멀쩡히 달렸어도 시간 내에 완주 했을까? 싶은 생각도 없지는 않다. 뭐, 쥐나고 비 오고 그런 김에 핑게거리 생긴거지.    

경품 추첨. 고금을 털어 이런 저런 행사에 경품이라고는 당첨 된 적이 없었는데
웬일로 타이어 한 벌 당첨. 옆에 종이컵은 배고파서 먹고있던 식어빠진 튀김 순대.... 그래도 삼대구년만에 당첨이니 가문의 영광이다.
폐막. 추적추적 내리다 말다하는 빗방울 속에 다들 집으로. 체력을 있는대로 다 태웠는지 고속도로 올라서자 말자 미친듯이 쏟아지는 졸음. 간신히 졸음쉼터에 차를 세우고는 얼마나 곯아떨어졌는지 눈을 떠보니 벌써 해는 지고 밤이더라.... 그럭저럭 시난고난 한밤중에야 집에 도착.
소금꽃이 하얗게 핀 등판. 못 뛰게 되면 사진이라도 남겨야지하고 받았던 번호판. 완주에 실패한 자의 상처뿐인 완주메달.. 그래도 괜찮아 재미있었잖아. 쉰내나는 사진 한 장으로 오늘을 기념해야지.잔치는 끝났고 10월은 지나가고....

 

 

한국 산악자전거의 성지! 

장장 45Km의 장쾌한 다운힐!

시간이 멈춰있는 길, 닥치고 운탄고도! ... 뭐 어쩌고, 자전거쟁이들이 그런 수식어를 잔뜩 붙여놓은 운탄고도. 나름 애정을 가지고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 언젠가 꼭 가보리라, 생각은 꿀떡이었지만 집에서 멀기도 하고 맨날 혼자타는 독립군이라 선뜻 동력이 잘 안생겼는데 어찌어찌 발심을 내고 날을 잡았다.

5:30 포항 출발

09:30 고한역 도착

아니, 그러게 왜 평소에 먹지도 않는 아침밥은 먹겠노라고... 예상보다 날이 너무 좋아서 꽤 뜨거운 볕에 뱃속은 더부룩, 초반 컨디션이 아주 바닥이다. 처음부터 긴 오르막이라는 생각에 겁먹은 거지.  무턱대고 밥을 먹을 게 아니라 뱃속을 비운채로 당만 보충하고 가볍게 출발했어야 했다. 어쨌든 기껏 골라 찾아 간 식당은 실패. 밥은 정말 맛이 없었고 주인 영감의 불친절에 기분까지 잡쳤음. 콧구녕만한 식당에서 혼자 온 손님이라고 홀대거기다가 나는 집밥 같은 밥을 원했는데 이보시오 영감님 그래도 이건 너무 집밥이잖아. (이 날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밥이 어떤 의미인지를 비로소 알았다. 대개 우리가 식당에서 기대하는 집밥 같은 밥은 형태는 집밥이되  맛과 간의 균형이 잘 잡힌 솜씨 좋은 손맛으로 지은, 심지어 깨끗하고 정갈한 밥과 반찬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식당의 밥은 정말 지나치게 집밥이었다. 저그 집에서 대충 차려먹는 집밥. 세상의 사장님 여러분, 조미료를 갖다 부어도 좋고 양념을 처발라도 좋으니 밥은 제발 좀 먹을만하게 만들어 달라고! 아침 부터 개 짜증이다.) 오죽하면 내가 밥을 남겼을까! (나는 잘 먹는다. 어지간만 하다면 집에서건 밖에서건 밥을 잘 안남긴다. 그렇게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먹는다.)
심지어 옆자리 손님 셋은 아침부터 술판 벌여놓고(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말끔한 정장차림에 소주 빈병이 벌써 여러병) 씨근거리며 떠들고 주인 영감은 손님 더 받기 싫다는 건지 사람들 밥 먹고 있는데 안에서 문걸어 잠그는 괴상한 짓까지. 세상에 하다하다 주인이 진상인 식당도 있네.
그런데 밥값 낼려고 보니 카드가 없어요.. 카드 지갑 안에는 잔액도 없는 체크카드만 덜렁. 설상가상. 아마도 어제 집앞 한강마트 갔다가 추리닝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은 듯.ㅜㅜ. 이체를 할라고 폰을 꺼냈더니 배터리 부족이네?. (나중에 보니 자동차에 충전 케이블 불량. 엎친데 덮치고 자빠지고... ㅜㅜ)   

고한역에서 출발해서 만항재 정상까지 네비상으로 50분 나오길래 넉넉하게 1시간 잡았는데 폰 충전하느라 차 공회전 시켜놓고 한 참,  카메라 안 갖고 출발해서 다시 원점으로 빠꾸, 더부룩한 뱃속에 좀처럼 컨디션이 오르지를 않아서 시간 지체로 또 몇십 분,  만항재 도착해 보니 1210분이었다. 예상대로라면 11시 전에 도착했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걸까. 곳곳에서 덜거덕 삐그덕. 

운탄고도 가세요?’ 친구들과 여럿이서 로드 타고 올라온 젊은 친구. 그렇다니까 부럽단다. 자기도 산악자전거로 한 번 탔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고. 그러게 나도 재미있었으면 좋겠네. 그런데 나도 초행길이라 해 줄 말이 별로 없다오

조심하세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만나면 다들 하는 인사다. 자전거로 운동을 하다보면 더러 다치기도 하니까. 그래서 이런 인사는 반 이상이 진심이다. 하지만 산악보다는 로드가 사고는 크게 난다. 산악자전거가 자주 처박히고 넘어지고 많이 다칠 것 같지만 로드는 사고가 나면 무섭게 난다. 산악자전거는 산에서 속도가 나봤자지만 로드는 내리막에서 속도 붙으면 거의 5, 60이다. 그 정도 속도에서 낙차하는 순간 아스팔트에서 맨 몸으로 이 속도를 다 받아내야 한다. 꽤 오래 전 어느 해 겨울에 역시 자전거를 좋아하던 친구와 같이 로드 사이클로 장거리 라이딩을 하다가 친구가 낙차를 하면서 얼굴을 크게 다친 적이 있기도 하다. 거기다가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라서 자동차랑 엮이는 사고도 더러 생긴다. 그저 오버 페이스 하지 말고 조심조심. 산악이나 로드나 다치지 않고 오래 타야지. 모든 운동이 다 그렇지만 자전거는 속도가 있어서 무섭다.

운탄고도는 예상보다 노면이 거칠다. 부분부분 낙차하면 데미지가 꽤 있을 것 같은 굵은 파쇄석들이 깔려 있는 구간도 많고 비가 많이 왔었는지 얕은 물골들도 있어서 내리막에서 속도가 붙으니 오히려 웬만한 싱글 트레일보다 좀 더 긴장된다. 그런 길에서는 가속도가 붙은 상태로 돌 하나 잘못 밟으면 그냥 슬립이니까. 경사각이 꽤 부담스러운 업힐도 중간중간 섞여 있다. 결국 화절령에서 체력 압박으로 잠시 멈춰서 사북으로 그만 내려갈까 갈등도 했다. 아니, 맨 다운힐이라 그러드만 가끔씩 섞여있는 업힐도 이거 꽤 만만찮구만? 평면 지도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복병처럼 나타나는  업 다운들.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포기하면 언제 다시 올라고 어쩌구 셀프 가스라이팅 시전....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맞아. 거기서 자존심 접고 중도 포기했어야 했어.

도롱이 연못 앞 개활지 여기서 조금 더 가면 화절령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체력보다는 시간이 더 문제였다. (정말 중대한 문제였다. 도대체 뭔 생각으로 시간 계산을 한 거냐.) 오늘 만난 여러 명의 머피 중에 가장 큰 녀석이었다.

계획상으로는,

14:00 예미역 도착 소요시간 3시간 예정

14:56 기차로 고한역으로 출발

17:00쯤 차를 갖고 다시 예미역 도착해서 자전거 싣고 속초로 출발. 가는 길에 경로를 건의령 쪽으로 해서 해 지는 건의령을 그윽하게 감상하고 강릉에서 곰치국으로 저녁 먹고 속초로 갈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 때쯤 기차에 타고 있어야 할 나는 오후 네시가 넘도록 아직도 운탄고도 위에서 자전거로 죽어라 다운힐 중이었다.

사족:/ 새비재를 넘고 나서 계속되는 마지막 콘크리트 포장 길은 좀 별로였다. 차라리 비포장 임도면 재미라도 있지 브레이크를 놓아버릴 수도 없는 어정쩡한 급경사각의 어정쩡한 포장도로. 나중에는 이거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그 길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함백역이라는 낯선 이정표. 내 계획에는 함백역이라는 지명이 없었는데? 왜 예미역은 안 나타나고 함백역이지? 어쨌든 운치 없고 무지막지한 다운힐 끝에 드디어 16:20분쯤 함백에 도착했다. 그리고 함백역을 찾았지만 정작 동네에는 함백역이라는 이정표는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도 모른단다. 이건 뭔 말이지?

-함백역은 어디로 가요?                                                                                                                                                         

 /길 건너 지나가는 학생(으로 보였음): 몰라요. 여기는 역 없어요.  (뭔 말이야, 오는 내내 본 이정표가 몇 갠데.)

-함백역은 어디로 가요?                                                                                                                                                           

/지나가는 아저씨: 아, 저는 여기 안 살지만 검색해 볼께요.(정말 친절한 사람. 감사합니다. 하지만 검색은 실패 )                                                  

-함백역은 어디로 가요?                                                                                                                                                           

/다리를 건너가던 할머니: 그기... 함백역은 인자는 역이 안 해요.. (^^. 할머니들의 화법은 재미있다.) 기차 탈라믄 저만치 내려가서 예미역으로 가야 돼요. 한 참 가야 돼요.

드디어 예미역이 등장했다. 그리고 함백역은 있었지만 지금은 폐역이 되었다는 것을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비로소 알았다. 그러나 마나 결국 플랜B였던 16:08분 기차도 놓쳤다. 예미역에서 고한역으로 가는 기차 시간표는.

12:22
14:56 플랜A
16:08 플랜B
21:51
다음 기차는 21:51  6시간 가까이 남았다. 나는 왜 이 다음 기차가 오후 여섯시쯤이라고 생각했을까. 이런 낭패가 없다. 숙소까지는 언제 들어가나. 이대로라면 새벽 두세시가 돼서야 속초 도착이다. 멘탈이 바삭바삭 깨져 나간다.

버스는 없어요? 동네 가게에 물어봤더니  함백에서 고한가는 버스는 아침 시간에 하루 한 번. 이제 없다는데. 아니, 도대체.... 듣자하니 정선군에서는 예미리를 MTB마을로 조성해서 라이더들에게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고 그렇게 지역 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어쩌고 그러드만 정작 와보니 문 닫고 영업도 안하는 썰렁한 MTB호스텔, 나 말고는 아무도 없던 자전거족, 버스도 없고 기차도 없고...
한 이삼십분 갖은 궁리를 하다가 별수 없다, 자전거로 꼬인 것은 자전거로 풀자. 결국 자전거로 고한 까지 되돌아가기로 했다. 지도상으로는 30Km 자전거로는 2시간 . 국도를 타고 우회할 생각이라 이미 체력이 바닥인 점을 감안해서 예상 시간 2시간반 을 잡았다. 흠, 늦어도 저녁 7시 8시 전후면 도착하겠군. 도대체 다음 기차가 밤 열시라는 게 말이야 방구야.

문제는 이미 좀 늦은 시간인데다가 남은 배터리가 30%라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불안한 상태. 도중에 배터리 나가면 20Kg쯤 되는 전기 산악자전거를 인력으로 밟고 가는 중노동 예약이다(...아니, 뭔 대단한 라이딩을 한답시고 너스레를 떨더니 전기 자전거였어?..... 라고 눈흘기는 사람들에게 설명 몇 줄. / 전기산악자전거. 말하자면 eMTB는 스위치만 땡기면 절로 달리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오토바이나 생활 전기자전거 같이 땡기면 굴러가는 스로틀 방식이 아니라 PAS- (페달 어시스트 시스템의 약자.) 발로 페달링을 해야 그 힘의 일부분을 전기가 보조해주는 그런 개념이다. 거기다가 배터리 용량에 따른 구분이 있어서 내 자전거처럼 출력이 약한 경량인 경우 함부로 배터리를 소진하다가는 돌아오는 길에 배터리 아웃으로 초주검이 되기도 한다. 만약 eMTB 가 아니라면 거리나 시간계획 자체를 크게 수정해야 할 정도라 개념 자체가 다르다. 무동력의 경우 짧고 굵게, eMTB 의 경우는 힘은 덜들지만 거리와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된다. 무동력으로 산 하나 넘을 걸 시간을 길게 잡아 서너개의 산을 넘어다닌다고 생각하시면 맞다. 그러니 전기를 쓴다고 공짜로 날라댕기는 건 아니라는 거. 그래서 전혀 엄살이 아니었다는 거. )

아무튼 초반 10Km 가까운 오르막을 배터리 아낄려고 1단으로만 주행했다. 미련 곰탱이. 아마 이 때 그나마 남은 체력을 거의 소진해버린 것 같다. 체력과 배터리 잔량의 등가 교환이냐. 그나마 기 쎈 오르막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그냥 끌바로 걸었다. 그러니 예상보다 시간은 점점 지체되고 민둥산역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야간 라이딩은 생각도 안 했기 때문에 라이트 안 챙김. 후미등도 없음. 믿을 건 바지 뒤쪽에 달린 야간 반사 띠 두 줄. 완전 스텔스 자전거로 깜깜한 국도를 달렸다. 특히 터널 안은 극한 체험이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는 거의 미사일 지나가는 소리처럼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터널을 빠져나오고 사북 가까이 쯤 왔을 때  자전거 배터리가 꺼졌다. 이제 망한거다. 20키로짜리 전기자전거는 동력이 끊어지자 천근만근이다. 자전거의 무게는 물론이고 체인으로 연결된 모터의 저항까지 순전히 다리 힘으로 돌려야 한다. 되로 받고 말로 내 주는 느낌.
그 와중에 꼬맹이한테 전화가 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꼬맹이 전화를 안 받을 수는 없지. 아빠 강원도 또 갔네? 자전거 타러 왔지롱. 뭐 어쩌고 잠깐 통화하다가 아빠 지금 자전거 타는 중이라 급한 일 아니면 좀 있다 전화하께’. 그리고 잠시 후에 폰 배터리 아웃. 애초에 출발 할 때 40% 충전이었으니 여태 버틴 것만도 다행이지. 아무튼 동력 끊기고 네비까지 먹통이다. 길 잃음. 두 번 잃음. 아니, 조금 전에 표지판에 고한까지  2Km 이드만 가도가도 끝이 없네. (이 때 사실 고한 시내로 간다는 것이 엉뚱한 방향의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것도 집에 돌아와서 지도를 복기해보고서야 알았다) 낮이면 방향이라도 가늠이 되겠지만 해는 지고 깜깜한데 동서남북이 오리무중. 도무지 분간이 안 됨. 생판 처음 온 동네에서 제대로 멘탈 털리고. 탈진. 거기다가 길 물어본 택시기사는 뭔 길을 그 따위로 알려주냐..왼쪽 길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꺾었어야 했잖아!! 그 양반 운전하는 사람 맞나? 여하튼 배터리 나간 자전거를 맨다리로 밟으면서 네비도 없이 물어물어 간신히 밤 9:30분에 고한역 주차장에 삭은 미역 꼴로 기진맥진 도착. 헤이, 7, 8시면 도착하겠다더니? 내 고집과 무모함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차라리 혼자서 야간 등반을 하는 게 백번 낫지. ..........아니야, 그래도 21:51분 기차를 탔으면 아직 도착도 안했을 거야! (본격 원 테이크 영화 정신승리. 후회는 없다내가 감독이고 주인공이다.)

자전거를 차 뒤에 달고 운전석에 앉는데 온몸의 감각이 어색하다. 늘 앉던 운전석이 뭔가 불편해서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 등받이도 세워 보고... 하루 종일 거의 열 시간을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있어서 그런가 보다. 손 발 허리 어깨 목은 물론이고 엉덩이는 거의 짓무를 지경이다. 저녁으로 곰치국을 먹겠다고? 배가 고파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 태백에서 동해로 넘어가 동해시를 지나는 어느 길목에서 초코바 두 개를 샀다. 곰치국은 어딜 가고 초코바 두 개라니... .ㅜ  하지만 이제는 고속도로에 올라서 차로 달리기만 하면 되지. 얼추 시간을 보니 자정 전에는 도착하겠구만. 역시 그 막차를 안타기를 잘했어. ....@..@

그리고 아마도 동해에서 강릉 어느 사이쯤 되었을 듯. 운전 중에 언뜻 룸미러를 보는데, 어라? 트렁크에 걸어서 설치하는 후미형 자전거 캐리어라 항상 뒷유리 쪽이 가려져서 불편했는데 뒷유리가 훤하다. 오만가지 생각이 순식간에 쓸고 지나갔다. 만약 자전거를 어디엔가 흘려버렸다면, 그리고 혹시 오밤중에 다른 차가 길바닥에 떨어진 자전거를 못 피하고 사고라도 난다면.... 진짜 식은땀이 뭔지 알겠더라. 강릉 근처 어느 나들목 근처 갓길에 급히 차를 세우고 나가보니 세상에, 뒷바퀴를 묶은 벨트가 끊어져서 뒷바퀴가 캐리어 밑으로 빠지는 바람에 프레임을 잡고 있던 클립이 무게를 못이겨서 놓쳐버린 듯. 앞바퀴만 벨트에 묶여서 자전거는 차 뒤에 매달려서 질질 끌려오고 있었더라. 한 일 이십 분쯤 그리 끌려 온 듯. 핸들 바 왼쪽이 그립 채로 갈려나가고 안장도 칼로 자른 듯이 갈려 나갔다. 뒷바퀴는 왼쪽 사이드블럭 깍두기가 다 닳아서 짝짝이가 되어있었다. 핸들바도 안장도  시속 100키로로 아스팔트 바닥에 갈면서 끌려왔으니 칼로 자른 듯 매끈하게 잘 갈렸더라. 심지어 안장은 가죽 리폼 한 뒤 첫 라이딩이었다고. 리폼한 보람도 없이 결국 장렬하게 전사 해버린 셀레 스트라토스(좀 비싼 안장.. ㅜㅜ)...  (이 모든 사태 파악은 다음 날 아침 숙소 주차장에 내려가 보고서야 알게 됐음. 밤중에 자전거 올려 싣고 오기도 정신 없었다니까.) 자전거야 형편없이 상해버렸지만 그래도 앞바퀴 벨트라도 묶여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십년감수. 모골이 송연.

이 사태의 원흉. 끊어진 뒷바퀴쪽 고정 벨트
칼로 자른 듯 갈려나간 안장. 가죽 리폼 한지 며칠도 안됐는데. ㅜㅜ
역시 갈려 나간 왼쪽 그립. 핸들바도 5센치 정도 같이 갈려나갔다.
양쪽 비교. 오른쪽처럼 생긴 그립이었다.

되짚어 생각해보니 그 전에 차가 한 번 좀 다른 느낌으로 꿀렁거리기는 했었다. 그래도 설마 상상이나 했겠냐고. 단순히 길이 꿀렁거렸나보다 싶었지. 아마 그때 떨어진 게 아닐까.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차 하나가 번쩍번쩍 뒤에 와서 서더니 마이크로 뭐라고 떠들어 대는데 대충 들어보니 고속도로에서 서 있지 말고 나가서 정리하라는 말 같더라. 아니, 떨어진 자전거를 다시 올려야 나가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수습하고 있는 사람한테 뭔 씨도 안 먹힐 잔소리를. 신경질이 나서 개 소리 할 거면 그냥 갈 길 가라고 막 소리를 질렀는데 아마 안 들렸지 싶다. 문 닫고 앉아서 나와보지도 않더라니까. 그 정도면 순찰대가 그냥 야매로 순찰하는 거 아니냐?

아무튼 그렇게 생난리를 치고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늦었지만 맥주 한 캔과 와사비 아몬드로 오늘을 기념하고 곯아떨어져 버렸지........... 이걸 계획이라고 세운거냐?  ㅜㅜ

자정쯤 도착했더니 호스텔 주인장은 이렇게 쪽지와 키만 남겨놨더라. .

그래 뭐, 그래도 살아서 돌아왔으니까.  다친 데 없이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비록 자전거는 망가졌지만 몸은 조금 피곤할 뿐 무너진 곳은 없으니까. 안장이고 핸들바고 그립에 타이어에 또 어디가 어떻게 됐는 지는 아직 모르지만  단골 바이크 샵 사장님이 다 해결 해 줄테니까. 그래서 부서진 건 새로 갈아끼면 되니까. 그래서 나는 돈 만 좀 더 들면 되니까...  돈 만 .......... ㅜ.ㅜ  ...... 그래서 이딴 무용담을 자랑삼아 떠들고 있으니까.                   

그래 뭐, 사고 안났고 몸 안다쳤고 좀 놀라긴 했지만 그래 뭐, 끝이 좋으면 좋은 거지 뭐.

, 그래서 오늘 만난 머피는 모두 몇 명이었지? 그놈의 징글징글한 머피들은 어디 숨어있다 오늘 죄다 기어 나온 건지 입이 있으면 한 번 말해봐라. 여하튼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대단한 날이었다. 기념일로 지정해야지. 정말 데이 오브 데이다 염병...

(사족/ 편의점 맥주 가격 유감. 네 개를 사면 12000원인데 하나만 살라면 4500. 무슨 가격정책이 그 모양이야. 솔직히 네 캔을 안 살 수가 없잖아! 이건 아닌 척 하면서 거의 강매 수준... 맥주 과소비를 조장하는 편의점 가격정책을 규탄한다!!!)

 

내 일생의 음식은 동태탕이다. 생태탕도 괜찮고 대구탕도 좋지만 굳이 꼽으라면 동태탕이다. 

80년대 어느 해 아마도 초봄이었을 것이다. 김포반도 어디쯤에서 철야 행군을 하고 있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는 있었지만 밤 새 비가 내렸고 이른 봄의 쌀쌀한 날씨와 비바람으로 군화 속도 축축했다. 식사추진이 제대로 안되는 바람에 전날 저녁밥도 못먹고 건빵과 건빵 봉지에 포함된 라면 스프를 찍어먹으면서 허기를 때우고 있었기 때문에 배가 고픈 것은 물론 속도 쓰리고 배고픔과 추위와 군대라는 이것저것 억눌린 짜증때문에  많이 지치고 우울해져있었다. 흐린 하늘 때문에 여전히 깜깜했지만 아마 새벽녘이었을 것이다. 넓은 벌판의 논두렁길을 지나서 작은 동네를 빠져나갈 때 코 끝으로 동태찌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순간 총 맞은 것 처럼 정신이 아득해졌었다. 길가의 작은 창문이 처마 밑에 노랗게 불이 켜진 채로 살짝 열려 있었고 거기서 나는 냄새였다. 나는 음식에 관한 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만큼 강한 충동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때는 할 수만 있다면 대열을 이탈해서 그 집으로 들어가 구걸이라도 하고싶었다. 그 황홀한 동태찌개 냄새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대열은 계속 이동중이었고 허락 없이 대열을 이탈할 수도 없었고 허락을 해 줄리도 없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음식 한 그릇이 내 자존감을 흔들어버릴만큼 강렬한 충동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딱 말 그대로 '구걸을 해서라도 먹고싶었다'. 하지만 시커먼 판초우의를 뒤집어 쓴 인정머리 없는 대열은 끝도 없이 이어져 터벅터벅 그 마을을 지나 또 다른 깜깜한 벌판으로 이어졌고 나의 눈물어린 동태탕은 그렇게 허무하게 멀어져 갔다. 기구한 사연도 없고 대단한 서사도 없다.  그 동태탕에 관한 이야기는 그냥 이게 다다.

입대 전에도 동태탕을 좋아했냐고?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동태탕이라고해서 자주 먹지도 못했거니와 별로 기억에 남는 음식도 아니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생각도 나지 않는 그렇고 그런 찌개 중의 하나였을 뿐. 오로지 그날 새벽 그 마을에서 누군가가 끓이고 있던 동태탕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렸지. 몇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밤 새 걸었던 배고픔과 건빵이 만들어 낸 속쓰림과 춥고 질퍽거리던 날씨와 수면 부족과 비바람과 어깨를 파고들던 군장의 무게와 등등 그런 저런 것들이 동태찌개 냄새 하나에 모조리 매몰되어 내 후각세포에 어마어마한 각인을 새겨버린 것이지.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 동태탕을 숭배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동태탕은 내게 구원의 음식이 되었고 주야장창 사시사철 시도 때도 없이 동태탕 찬가를 불러댔다. 물론 좀 더 선도가 좋은 생태탕이나 대구탕도 좋아하지만 내게는 단지 동태탕의 아류일 뿐이야. 그 때의 기억 때문에 그들은 영원히 동태탕을 넘어설 수는 없어. 그리고 그 맛을 불문하고 그것이 동태탕이면 한 수 접고 닥치는대로 잘 먹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맛이 없어서 먹다가 말고 숟가락을 놓아버린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나의 동태탕에 관한 장황한 무용담을 들은 어느 지인이 그렇다면 자기가 알고 있는 아주 기막힌 동태탕 집을 소개해주겠다면서 가르쳐 준 7번 국도변의 어느 휴게소에 있는 식당이었고, 그것은 명백히 죄악(罪惡)이었다. 세상에 동태탕을 맛없게 만들 수가 있다니! 나는 결국 구원의 음식이던 동태탕을 반도 못 먹고 숟가락을 놓았고 식당을 나서던 나는 허무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그 지인과 누군지도 모르는 그 식당의 주방장에게 어마어마한 비난을 퍼부었다. 세상에 인간의 탈을 쓰고 동태탕을 맛 없게 만들 수 있다니!! 도대체 어디가 기가 막히다는 거야!!!      

어쨌든 동태탕은 지금까지도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반드시 먹어야 하고 봄이 되기 전에 몇 번은 더 먹어야하는 음식이 되었고 어느 식당을 가든 메뉴에 동태탕이 있으면 다른 걸 먹더라도 괜히 한번쯤은 갈등을 한다. 한 때 구내식당처럼 친구들과 수시로 드나들면서 먹었던 포항 흥해읍의 한선뚝배기. 정말 맛있었는데 한 동안 뜸하다가 찾았더니 그 새 어디론가 이사 가버리셨드만. 많이 아쉬웠다. 나는 지금도 동태탕을 만들때면 그 한선뚝배기집의 아주머니가 가르쳐주신 조리법을 기준으로해서 만든다. 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동태탕은 무조건 맛있는 음식이지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