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03:15 - Bruch/ Kol Nidrei -Vi/ Y. Bashmet Pf/ M. Muntian
知足.. 또는 至足.
am 11:30 -Telemann/ Fantasy -Vn/ A.Grumiaux
늦잠..
//
간밤에 낙원이 어쩌고 흰소리를 하다보니 오래 전에 어디엔가 남아있던 글이 생각났다.
2004년 1월 31일 새벽. 그러게. 열락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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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足.. 또는 至足.
am 11:30 -Telemann/ Fantasy -Vn/ A.Grumiaux
늦잠..
//
간밤에 낙원이 어쩌고 흰소리를 하다보니 오래 전에 어디엔가 남아있던 글이 생각났다.
2004년 1월 31일 새벽. 그러게. 열락이었는데.
1. 금산사
지난 가을에 근처를 지나다가 들르지 못해서 아쉬웠던 금산사. 그래서 겨울에 왔다. 나는 겨울 여행이 더 좋아.
2. 개암사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던 느낌의 작은 절.
늦게 도착해서 사진 몇 장 날리다보니 이내 어둑구석이다. 상가도 썰렁하니 사람도 없이 잠깐 서성거리다가 결국 캄캄한 밤중에 부안으로 출발. 부안읍이 어딘지 모텔 샤르가 어딘지 동서남북도 모르고 가란대로 갔더니 어찌어찌 무사히 숙소에 도착. 오밤중에도 길눈 밝은 신통방통 내비게이션. 이과 만세. 쓸모없는 문과 나부랭이 같으니.
3. 능제 저수지
부안에서 자고 새벽길을 나섰다. 그리고 긴가민가하던 마음이 탄성으로. 차 세울 곳을 못찾고 잘 못 진입한 골목을 빠져나오느라 진땀. 큰 길을 따라 호수를 따라 돌면 주차장이 있더라.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고 나만 있더라.
4. 장항항
딱히 목표점도 없이 혹여나 시간이 꼬이면 생략하고 지나치리라 생각했던 곳. 여행 계획을 짜면서 지도를 보다가 아무 이유없이 막연히 끌려서 경유지로 매겨 두었던 곳. 그래도 지나치지 않고 혹시나 해서 그 끄트머리까지 갔던 것이 너무 다행이었던 곳. 허름한 폐자재 더미 사이로 보이던 수평선이 거의 감격스러울만큼 반가웠던 곳.
5. 삽교호
가을에 이 앞을 지나치다가 차창 밖으로 언뜻 보이던 지평선에 홀려서 다시 와 본 곳.
6. 상당산성
생각보다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성문에 올라서니 너무 어두워서 한 걸음에 마무리를 못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올라오기로. 시커먼 산성을 혼자 다니다가 멧돼지며 산짐승들 만나면 놀라고 무섭지. 밤눈도 어둡고.
7. 문경 새재
여행의 제법 큰 꼭지로 생각했었는데 생각하고는 많이 달라서 조금 실망하고 많이 지쳤던 곳
8. 도리사
이것으로 2025 첫 여행 끝.
1.
허리가 아팠다. 이삼주 전부터 약을 한 주먹씩 먹고 있는데도 안 나아서. 이러고 자전거 대회를 간다는 게 말이 되나마나 마음이 오락가락하다가 금요일 일정이 비는 바람에 시간이 아깝네 기회가 아깝네 괜히 제풀에 혼자 떠밀려서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이 변할까봐 숙소부터 덜컥 예약. 잘했군. 만사는 불여튼튼이다. 동네 병원에 가서 약도 미리 더 받았다. 그래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기권도 불사하리라는 마음을 먹고. 그런데 집을 나서는데 사실 발이 잘 안떨어지더라. 말 그대로 심신이 편하지를 않아서. 거기다가 추적추적 비까지 오고 말이야.
우선 딴생각 안나게 한달음에 태안반도까지 냅다 올라 가기로 했다. 첫번째 목적지는 가로림만. 경유지는 그 길목에 있는 아산 공세리 성당. 이야, 아시아 동쪽 끝에 콧구녕만한 나라라더니 한 걸음에 갈라니 한 참 가네. 그러게 우리나라가 그렇게 작은 나라가 아니라니까. 뭐, 걸어 다니면 좀 더 멀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나한테 묻지 마라. 나는 잘 모른다. 외가가 한국 기독교 1세대라느니 어머니가 독실한 집사였느니 집구석 여포에 천하없는 졸갑증 팔랑귀 아버지는 유교도 잠시 괴상한 일본식 태양 숭배도 잠시 말년에는 기독교도 잠시... 친가 외가 중에는 세상 시끄럽던 얄궂은 사이비 기독교에 심취한 사람들도 있고 해서 그에 어울리는 기구하고 다양한 종교 체험을 하고 자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모른다.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다. 한 때는 뭔가를 찾아 보려고 나름대로 책도 찾아 읽고 궁리도 많이 해봤지만 다만 세상을 창조했다는 그 신이 있다 하더라도 한국 개신교가 주장하는 그런 형태의, 그런 개념의 절대자는 아닐 거라는 확신만 남았다. 너그들이 그렇게도 기필코 한사코 주장하는 그런 절대자가 정말 이 세상을 만들어 논거라면 그거 뭔가 단단히 잘못 된 거야. 아니면 그 양반 솜씨가 형편 없든지. 그러니 믿어라 말아라 으르딱딱거리지들 마. 그거 다 신성모독이야.
그러게 길을 떠날 때마다 일없이 오래된 성당들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그런 질문을 받을 수도 있지. 뭐, 딱이 종교적인 의미는 아니다. 오래된 절집을 찾아 다닌지는 더 오래 되었으니 그냥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갑지. 나처럼 살짝 어리석은 사람들의 열심들이며 진심들이 모여있는 거 같은 그런 분위기. 그것도 오래된 건물들로만. 사람은 안 가려. 사람은 불신자건 신자건 불자건 집사건 보살이건 무당이건 점쟁이건 뭐건 간에 나한테 적대적이지만 않으면 돼. 밑바닥 잡놈만 아니라면. 그리고 서로 안녕하기로만 한다면.
2. 전주
숙소에서 잠을 좀 설치는 바람에 그냥 이른 아침부터 자전거 타고 한옥마을 한바퀴.
3. 개심사
그리도 오랫동안 내 기억속에 남아있던 개심사. 언젠가는 꼭 다시 찾아가리라 생각 날 때마다 몇 번이고 뇌이던 곳이었는데 그 때 참 아무것도 없이 굽이굽이 산골짜기에 흙마당만 덩그러니 있던 절 입구에는 이제는 흔해빠진 절집들처럼 그냥 그저 그런 어지러운 식당이며 천막따위들. 시멘트로 말짱하게 바른 주차장 너머로 뻔뻔스럽게 닦여진 소방도로. 차를 타고 올라 갈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때 기억이라도 짚어보자 싶어서 걸어 올라갔더니 그 때는 없었던 단청도 찬란한 일주문 하며. 아침부터 굶었어서 요기라도 할까했더니 싼티 역력한 식당 안에는 대낮부터 시끌시끌 얼큰한 늙은이들. 그래 뭐 깜냥대로 한세상 살다 갈 일이지만 낫살이나 제법 들고서는 절집 앞에서 그러고 싶으냐. 주방안에서 설겆이 한다고 덜그덕거리는 주인을 찾았더니 '우리는 1인분 주문은 안받아요.' 그래 그래, 대낮에 질펀한 술자리 보고서는 진작에 짐작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냥 굶고 말지. 공짜로 밥 달라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어지간만 하면 혼자 다니는 여행객은 밥 얻어먹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오래 전 기억보다 좀 더 넓어진 듯 좀 더 멀어진 듯한 돌계단을 한 참 올라가자니 진땀이 바짝 난다. 때 아니게 더운 날씨도 한 손 거들고. 그럭저럭 겨우 절 마당에 들어서니 그 호젓하던 산사는 어디 갔노. 널찍한 절마당에 승용차들이 여기저기. 어린 놈이 건너갔다 건너오던 외나무다리도 새로 만든 듯 그 때 외나무 다리가 아닌 듯 하고 그 아래 연못도 물이 흐려보이네. 그냥 마음을 가다듬기 어려울만큼 섭섭하고 울적해져서 절구경이랍시고 돌아다닐 엄두도 안나고. 아니 내가 너무 기대를 했어서 그런가.. 그럼 그냥 그 때 그 맛있었던 약수나 한 사발 들이키고 하산 하려니 약수터가 어디였더라 짐작도 안 가네.
마음이 부대끼고 어리둥절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꽃밭 정리하는 보살님에게 약수터 어딨냐고 물었더니 그 약수 막힌지가 언제인데 지금 와서 그 약수를 찾냐고 어디서 오셨길래 그리 오랜만에 오셨냔다. 오래 전에 어린 놈 손 잡고 와서 그 물 참 맛있게 마시고 갔었는데 물이 없어 많이 섭섭하다하니 그러게 이 좋은 절을 왜 인자사 늦게 왔냐고 그 보살님도 그 세월이 그냥 섭섭하단다. 그러게 그 많은 세월 다 보내고 나는 왜 이제서야 왔을까. 그냥 좀 헛헛해서 그 물 마실라고 밥도 물도 굶고 올라왔노라 실없는 소릴 던지니 약수는 못드려도 생수는 한 병 드릴 수 있다고 안에 있는 작은 보살님을 불러서 평창수 한 병 건네 주신다. 그러게 개심사에 와서 평창수를 드시것네요. 섭섭해서 우째요. 그래도 보살님 덕에 이렇게 맛있는 평창수도 마셔보네요. 고맙습니다. 보살님도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땀 닦고 인사하고 돌아서니 그냥 다 허전하고 섭섭하다. 배도 고프고 허리도 아프고 먼 길 돌아왔는데 절집은 옛 절집이 아니고 세월도 그 세월이 아니네. 오늘은 날이 아니었는갑다. 안 올 걸 그랬어. 그냥 다시 오고싶은 마음만 묻어 두고 살걸. 괜히 왔어.
4. 셋째날.
손꼽아두었던 데는 얼추 돌았으니 인자는 남는 게 시간이라 어디를 어떻게 들여다볼까 궁리를 하다가 그림이 근사하던 색장정미소를 일단 가 보기로. 누구는 좋더라 누구는 거길 왜 가냐 호불호가 갈리드만 게다가 느닷없이 나타나던 입구를 첫 걸음에 찾지 못해서 잠깐 헤메는 사이에 나타난 예쁜 길 이름. 이쪽 동네가 확실히 센스며 감성이며 은근 내 타입이야. 좋아요.
별 기대없이 왔다가 마침 아침 햇살 받은 풍경이 좋아서 한 참 머물렀던 색장정미소. 100년 된 건물이라는데 나름 원형을 잘 살려서 보존해놓은 현역 카페였다. 아직 오픈 전이라 차는 못마셨지만 주인 영감님의 배려로 혼자 아래 위층을 오르내리면서 구경을 하고 사진도 여럿 찍었다. 고물 감성 가득한 시대착오적인 카페다.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은 꼭 한 번 가볼 만한 명물. 호불호가 조금 들쭉날쭉하기도 하겠지만 나는 좋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적당한 시간에 차도 한 잔 하고 그러고 싶은 곳.
팔복 예술공장. 폐 공장을 밀어버리지 않고 살려 둔 것은 찬성. 하지만 굳이 채색하고 가공해서 예술스럽게 만들려고 한 것은 반대. 폐 건물이 음흉해지지 않도록만 최소한의 관리만 하면서 폐허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꽤 많았던 곳.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주렁주렁 줄 서서 내 동선을 막아서던 시티투어 관광객들이 좀 거추장스럽기는 했지만.
5. 10월 27일 이번 여행의 메인 이벤트. 2024 장수 MTB XCM
이 때 까지는 그래도 좋았지. 살짝 들뜬 분위기에 날씨도 그만했고 들뜬 기분이라 그랬었나 허리도 좀 덜아픈 듯 어디 한 번 덤벼 볼만하다는 느낌에 으랏차차, 나는 이 날을 위해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랬었지. 그러고 한 30몇 km 쯤 까지는 그럭저럭 앞서거니 뒷서거니 재미있고 신나고 그랬는데, 무릉고개 고갯마루 쯤에서 갑자기 생전 처음 느껴본 허벅지 통증. 얼결에 손으로 짚은 허벅지는 쥐가 나서 꽈비기처럼 마구 뒤틀려있었다. 아무래도 한쪽허리를 안쓰려고 좀 삐딱하게 용을 써서 자세가 망가졌던 듯. 하도 아프길래 처음에는 허벅지 근육 어디쯤이 절단 된 줄 알았고만.
뭐 어쨌든 페달링이 불가능한 지경이니 일단 의료팀에 전화를 했는데 왜 전화를 안 받아. 아니 뭔 의료팀 번화번호를 써놓지를 말등가. 뭐 그래도 어찌어찌 다리를 질질 끌며 고개를 넘어서서 다시 달려보니 쥐났던 건 어지간히 풀리기는 했는데 어쩐지 그 느낌이 아직 꿈틀꿈틀 남아있어서 다시 또 그럴까 잔뜩 쫄아버린 쫄보. 하나 씩 둘 씩 나를 추월해가는 사람들 등짝만 보고있자니 망연자실 의기소침. 거의 꼴찌에서 몇 번째가 되다보니 컷 오프 시간 안에 들기는 글러버렸고 비까지 두들겨맞고 길 안내하던 군청 직원들한테 미안해서 그냥 차에 실려가기로. 내 뒤에 몇 명 남지 않았던 사람들도 다 같이 챙겨 담고 중간 지점쯤까지 차로 점프. 떡국 한 그릇 먹고는 잠깐 쉬다보니 또 혹시나 괜찮을지도 몰라 욕심이 나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 여차하면 다시 뒤틀릴 것 같은 느낌이 스믈스믈 남아있어서 소심한 나를 다시 하나 둘씩 지나쳐 멀어져가는 등짝들... 결국 한 10여키로 달리다가 kom 구간 고갯마루에서 기다리고 있던 트럭에 다시 타고 말았다. 그걸로 내 레이스는 끝. 최소한 컷오프는 면하자 했는데 미션 실패!. 괜찮아. 비겁하지는 않았잖아.........사실 81km 거리에 획득고도가 2000 넘는 구간이라 심리적으로도 압박이 없지 않아서 멀쩡히 달렸어도 시간 내에 완주 했을까? 싶은 생각도 없지는 않다. 뭐, 쥐나고 비 오고 그런 김에 핑게거리 생긴거지.
05:30 포항 출발
09:30 고한역 도착
그러게 왜 먹지도 않는 아침밥은 먹겠노라고 안하던 짓을... 예상보다 날이 좋아서(?) 꽤 뜨거운 볕에 뱃속은 더부룩, 초반 컨디션이 아주 바닥이다. 처음부터 긴 오르막이라는 생각에 겁먹은 거지. 멍청하게 무턱대고 밥을 먹을 게 아니라 뱃속을 비운채로 당만 보충하고 가볍게 출발했어야 했다. 어쨌든 기껏 골라 찾아 간 식당은 실패. 그러니 역에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고를 일은 아니다. 밥은 정말 맛이 없었고 주인 영감의 불친절에 기분까지 잡쳤음. 콧구녕만 한 식당에서 혼자 온 손님이라고 홀대. 거기다가 나는 집밥 같은 밥을 원했는데 이보시오 영감님 그래도 이건 너무 집밥이잖아. (이 날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밥이 어떤 의미인지를 비로소 알았다. 대개 우리가 식당에서 기대하는 집밥 같은 밥은 형태는 집밥이되 맛과 간의 균형이 잘 잡힌 솜씨 좋은 손맛으로 지은, 심지어 깨끗하고 정갈한 밥과 반찬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식당의 밥은 정말 지나치게 집밥이었다. 저그 집에서 대충 차려먹는 집밥. 세상의 사장님 여러분, 조미료를 갖다 부어도 좋고 양념을 처발라도 좋으니 밥은 제발 좀 먹을만하게 만들어 달라고! 아침 부터 개 짜증이다.) 오죽하면 내가 밥을 남겼을까! (나는 잘 먹는다. 어지간만 하다면 집에서건 밖에서건 밥을 잘 안남긴다. 그렇게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먹는다.)
심지어 옆자리 손님 셋은 아침부터 술판 벌여놓고(소주 빈병이 벌써 여러병) 씨근거리며 떠들고 주인 영감은 손님 더 받기 싫다는 건지 사람들 밥 먹고 있는데 안에서 문걸어 잠그는 괴상한 짓까지. 세상에 하다하다 주인이 진상인 식당도 있네.
그런데 밥값 낼려고 보니 카드가 없어요.. 카드 지갑 안에는 잔액도 없는 체크카드만 덜렁. 설상가상. 아마도 어제 집앞 한강마트 갔다가 추리닝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은 듯.ㅜㅜ. 심지어 식탁에 앉았을 때 폰을 꺼냈더니 배터리 부족이네?. 이건 또 뭐야. (나중에 보니 자동차에 충전 케이블 불량. 엎친데 덮치고 자빠지고... ㅜㅜ)
고한역에서 출발해서 만항재 정상까지 네비상으로 50분 나오길래 넉넉하게 1시간 잡았는데 폰 충전하느라 차 공회전 시켜놓고 몇십 분, 카메라 안 갖고 출발해서 다시 빠꾸, 좀처럼 컨디션이 오르지를 않아서 시간 지체로 또 몇십 분, 만항재 도착해 보니 12시 10분이었다. 예상대로라면 11시 전에 도착했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걸까. 곳곳에서 덜거덕 삐그덕.
‘운탄고도 가세요?’ 친구들과 여럿이서 로드 타고 올라온 젊은 친구. 그렇다니까 부럽단다. 자기도 산악자전거로 한 번 탔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고. 그러게 나도 재미있었으면 좋겠네. 그런데 나도 초행길이라 해 줄 말이 별로 없다오.
‘조심하세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만나면 다들 하는 인사다. 자전거로 운동을 하다보면 더러 다치기도 하니까. 그래서 이런 인사는 진심이다. 산악보다는 로드가 사고는 크게 난다. 산악자전거가 자주 처박히고 넘어지고 많이 다칠 것 같지만 로드는 사고가 나면 무섭게 난다. 산악자전거는 산에서 속도가 나봤자지만 로드는 내리막에서 속도 붙으면 거의 5, 60이다. 그 정도 속도에서 낙차하는 순간 아스팔트에서 맨 몸으로 이 속도를 다 받아내야 한다. 꽤 오래 전 어느 해 겨울에 역시 자전거를 좋아하던 친구와 같이 로드 사이클로 장거리 라이딩을 하다가 친구가 낙차를 하면서 얼굴을 크게 다친 적이 있기도 하다. 거기다가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라서 자동차랑 엮이는 사고도 더러 생긴다. 그저 오버 페이스 하지 말고 조심조심 산악이나 로드나 다치지 않고 오래 타야지. 모든 운동이 다 그렇지만 자전거는 속도가 있어서 무섭다.
운탄고도는 예상보다 노면이 거칠다. 부분부분 낙차하면 데미지가 꽤 있을 것 같은 굵은 파쇄석들이 깔려 있는 구간도 많고 비가 많이 왔었는지 얕은 물골들도 있어서 내리막에서 속도가 붙으니 오히려 웬만한 싱글보다 좀 더 긴장된다. 그런 길에서는 가속도가 붙은 상태로 돌 하나 잘못 밟으면 그냥 슬립이니까. 경사각이 꽤 부담스러운 업힐도 중간중간 섞여 있다. 결국 화절령에서 체력 압박으로 잠시 멈춰서 사북으로 그만 내려갈까 갈등도 했다. 아니, 맨 다운힐이라 그러드만 가끔씩 섞여있는 업힐도 이거 꽤 만만찮구만? 평면 지도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복병처럼 나타나는 업 다운들.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포기하면 언제 다시 올라고 어쩌구 셀프 가스라이팅 시전....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맞아. 거기서 자존심 접고 중도 포기했어야 했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체력보다는 시간이 더 문제였다. (시간 계산 오류는 중대한 문제다. 도대체 뭔 생각으로 시간 계산을 한 거냐.) 오늘 만난 여러 명의 머피 중에 가장 큰 녀석이었다.
계획상으로는,
14:00 예미역 도착 소요시간 3시간 예정
14:56 기차로 고한역으로 출발
17:00쯤 차를 갖고 다시 예미역 도착해서 자전거 싣고 속초로 출발. 가는 길에 경로를 건의령 쪽으로 해서 해 지는 건의령을 그윽하게 감상하고 강릉에서 곰치국으로 저녁 먹고 속초로 갈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 때쯤 기차에 타고 있어야 할 나는 오후 네시가 넘도록 아직도 운탄고도 위에서 자전거로 죽어라 다운힐 중이었다.
사족:/새비재를 넘고 나서 계속되는 마지막 콘크리트 포장 길은 좀 별로였다. 차라리 비포장 임도면 재미라도 있지 브레이크를 놓아버릴 수도 없는 어정쩡한 급경사각의 어정쩡한 포장도로. 나중에는 이거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그 길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함백역이라는 낯선 이정표. 내 계획에는 함백역이라는 지명이 없었는데? 왜 예미역은 안 나타나고 함백역이지? 어쨌든 운치 없고 무지막지한 다운힐 끝에 드디어 16:20분쯤 함백에 도착했다. 그리고 함백역을 찾았지만 정작 동네에는 함백역이라는 이정표는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도 모른단다. 이건 뭔 말이지?
-함백역은 어디로 가요?
/길 건너 지나가는 학생(으로 보였음): 몰라요. 여기는 역 없어요. (뭔 말이야, 오는 내내 본 이정표가 몇 갠데.)
-함백역은 어디로 가요?
/지나가는 아저씨: 아, 저는 여기 안 살지만 검색해 볼께요.(정말 친절한 사람. 감사합니다. 하지만 검색은 실패 )
-함백역은 어디로 가요?
/다리를 건너가던 할머니: 그기... 함백역은 인자는 역이 안 해요.. (^^. 할머니들의 화법은 재미있다.) 기차 탈라믄 저만치 내려가서 예미역으로 가야 돼요. 한 참 가야 돼요.
드디어 예미역이 등장했다. 그리고 함백역은 있었지만 지금은 폐역이 되었다는 것을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비로소 알았다. 그러나 마나 결국 플랜B였던 16:08분 기차도 놓쳤다. 예미역에서 고한역으로 가는 기차 시간표는.
12:22
14:56 플랜A
16:08 플랜B
21:51
다음 기차는 21:51 6시간 가까이 남았다. 나는 왜 이 다음 기차가 오후 여섯시쯤이라고 생각했을까. 이런 낭패가 없다. 숙소까지는 언제 들어가나. 이대로라면 새벽 두세시가 돼서야 속초 도착이다. 멘탈이 바삭바삭 깨져 나간다.
버스는 없어요? 동네 가게에 물어봤더니 함백에서 고한가는 버스는 아침 시간에 하루 한 번. 이제 없다는데. 아니, 도대체.... 듣자하니 정선군에서는 예미리를 MTB마을로 조성해서 라이더들에게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고 그렇게 지역 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어쩌고 그러드만 정작 와보니 문 닫고 영업도 안하는 썰렁한 MTB호스텔, 나 말고는 아무도 없던 자전거족, 버스도 없고 기차도 없고...
한 이삼십분 갖은 궁리를 하다가 별수 없다, 자전거로 꼬인 것은 자전거로 풀자. 결국 자전거로 고한 까지 되돌아가기로 했다. 지도상으로는 30Km 자전거로는 2시간 쯤. 국도를 타고 우회할 생각이라 이미 체력이 바닥인 점을 감안해서 예상 시간 2시간 반을 잡았다. 흠, 늦어도 저녁 7시 8시 전후면 도착하겠군. 도대체 다음 기차가 밤 열시라는 게 말이야 방구야.
문제는 이미 좀 늦은 시간인데다가 남은 배터리가 30%라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불안한 상태. 도중에 배터리 나가면 20Kg쯤 되는 전기 산악자전거를 인력으로 밟고 가는 중노동 예약이다(...). 초반 10Km 가까운 오르막을 배터리 아낄려고 1단으로만 주행했다. 미련 곰탱이. 아마 이 때 그나마 남은 체력을 거의 소진해버린 것 같다. 체력과 배터리 잔량의 등가 교환이냐. 그나마 기 쎈 오르막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그냥 끌바로 걸었다. 그러니 예상보다 시간은 점점 지체되고 민둥산역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야간 라이딩은 생각도 안 했기 때문에 라이트 안 챙김. 후미등도 없음. 믿을 건 바지 뒤쪽에 달린 야간 반사 띠 두 줄. 완전 스텔스 자전거로 깜깜한 국도를 달렸다. 특히 터널 안은 극한 체험이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는 거의 미사일 지나가는 소리처럼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터널을 빠져나오고 사북 가까이 쯤 왔을 때 자전거 배터리가 꺼졌다. 이제 망한거다. 20키로짜리 전기자전거는 동력이 끊어지자 천근만근이다. 자전거의 무게는 물론이고 체인으로 연결된 모터 기어까지 순전히 다리 힘으로 돌려야 한다. 되로 받고 말로 내 주는 느낌.
그 와중에 꼬맹이한테 전화가 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꼬맹이 전화를 안 받을 수는 없지. 아빠 강원도 또 갔네? 자전거 타러 왔지롱. 뭐 어쩌고 잠깐 통화하다가 ‘아빠 지금 자전거 타는 중이라 급한 일 아니면 좀 있다 전화하께’. 그리고 잠시 후에 폰 배터리 아웃. 애초에 출발 할 때 40% 충전이었으니 여태 버틴 것만도 다행이지. 아무튼 동력 끊기고 네비까지 먹통이다. 길 잃음. 두 번 잃음. 아니, 조금 전에 표지판에 고한까지 2Km 이드만 가도가도 끝이 없네. (이 때 사실 고한 시내로 간다는 것이 엉뚱한 방향의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것도 집에 돌아와서 지도를 보고서야 알았다) 낮이면 방향이라도 가늠이 되겠지만 해는 지고 깜깜한데 동서남북이 오리무중. 도무지 분간이 안 됨. 생판 처음 온 동네에서 제대로 멘탈 털리고. 탈진. 거기다가 길 물어본 택시기사는 뭔 길을 그 따위로 알려주냐..왼쪽 길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꺾었어야 했잖아!! 그 양반 운전하는 사람 맞나? 여하튼 배터리 나간 자전거를 맨다리로 밟으면서 네비도 없이 물어물어 간신히 밤 9:30분에 고한역 주차장에 삭은 미역 꼴로 기진맥진 도착. 헤이, 7, 8시면 도착하겠다더니? 내 고집과 무모함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차라리 혼자서 야간 등반을 하는 게 백번 낫지. ..........아니야, 그래도 21:51분 기차를 탔으면 아직 도착도 안했을 거야! (오늘 촬영한 본격 원 테이크 영화 ‘정신승리. 후회는 없다’ 내가 주인공이다.)
자전거를 차 뒤에 달고 운전석에 앉는데 온몸의 감각이 어색하다. 늘 앉던 운전석이 뭔가 불편해서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 등받이도 세워 보고... 하루 종일 거의 열 시간을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있어서 그런가 보다. 손 발 허리 어깨 목은 물론이고 엉덩이는 거의 짓무를 지경이다. 저녁으로 곰치국을 먹겠다고? 배가 고파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 태백에서 동해로 넘어가 동해시를 지나는 어느 길목에서 초코바 두 개를 샀다. 곰치국은 어딜 가고 초코바 두 개라니... ㅜ.ㅜ 하지만 이제는 고속도로에 올라서 차로 달리기만 하면 되지. 얼추 시간을 보니 자정 전에는 도착하겠구만. 역시 그 막차를 안타기를 잘했어. ....@..@
그리고 아마도 동해에서 강릉 어느 사이쯤 되었을 듯. 운전 중에 언뜻 룸미러를 보는데, 어라? 자전거가 안 보이네? 후미형 캐리어라 항상 뒷유리 쪽이 가려져서 불편했는데 뒷유리가 훤하다. 오만가지 생각이 순식간에 쓸고 지나갔다. 만약 자전거를 어디엔가 흘려버렸다면, 그리고 혹시 오밤중에 다른 차가 길바닥에 떨어진 자전거를 못 피하고 사고라도 난다면.... 진짜 식은땀이 뭔지 알겠더라. 강릉 근처 어느 나들목 근처 갓길에 급히 차를 세우고 나가보니 세상에, 뒷바퀴를 묶은 벨트가 끊어져서 뒷바퀴가 캐리어 밑으로 빠지는 바람에 프레임을 잡고 있던 클립이 무게를 못이겨서 놓쳐버린 듯. 앞바퀴만 벨트에 묶여서 자전거는 차 뒤에 매달려서 질질 끌려오고 있었더라. -니가 무슨 헥토르냐. 한 일 이십 분쯤 그리 끌려 온 듯. 핸들 바 왼쪽이 그립 채로 갈려나가고 안장도 칼로 자른 듯이 갈려 나갔다. 뒷바퀴는 왼쪽 사이드블럭 깍두기가 다 닳아서 짝짝이가 되어있었다. 핸들바도 안장도 시속 100키로로 아스팔트 바닥에 갈면서 끌려왔으니 칼로 자른 듯 매끈하게 잘 갈렸더라. 심지어 안장은 가죽 리폼 한 뒤 첫 라이딩이었다고. 리폼한 보람도 없이 결국 장렬하게 전사 해버린 셀레 스트라토스... ㅜ.ㅜ (이 모든 사태 파악은 다음 날 아침 숙소 주차장에 내려가 보고서야 알게 됐음. 밤중에 자전거 올려 싣고 오기도 정신 없었다니까.) 자전거야 형편없이 상해버렸지만 그래도 앞바퀴 벨트라도 묶여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십년감수. 모골이 송연.
되짚어 생각해보니 그 전에 차가 한 번 좀 다른 느낌으로 꿀렁거리기는 했었다. 그래도 설마 상상이나 했겠냐고. 단순히 길이 꿀렁거렸나보다 별생각 없이 계속 달렸는데 아마 그때 떨어진 게 아닐까.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차 하나가 번쩍번쩍 뒤에 와서 서더니 마이크로 뭐라고 떠들어 대는데 대충 들어보니 고속도로에서 서 있지 말고 나가서 정리하라는 말 같더라. 아니, 떨어진 자전거를 다시 올려야 나가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수습하고 있는 사람한테 뭔 씨도 안 먹힐 잔소리를. 신경질이 나서 개 소리 할 거면 그냥 갈 길 가라고 막 소리를 질렀는데 아마 안 들렸지 싶다. 문 닫고 앉아서 나와보지도 않더라니까. 그 정도면 순찰대가 그냥 야매로 순찰하는 거 아니냐?
아무튼 그렇게 생난리를 치고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늦었지만 맥주 한 캔과 와사비 아몬드로 오늘을 기념하고 곯아떨어져 버렸지. ........... 이걸 계획이라고 세운거냐? 나는 오늘부터 J가 아닌 거다. ㅜㅜ
그래 뭐, 그래도 살아서 돌아왔으니까. 다친 데 없이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비록 자전거는 망가졌지만 몸은 조금 피로할 뿐 무너진 곳은 없으니까. 안장이고 핸들바고 그립에 타이어에 또 어디가 어떻게 됐는 지는 아직 모르지만 단골 바이크 샵 사장님이 다 해결 해 줄테니까. 그래서 부서진 건 새로 갈아끼면 되니까. 그래서 나는 돈 만 좀 더 들면 되니까... 돈 만 .......... ㅜ.ㅜ ...... 그래서 이딴 무용담을 자랑삼아 떠들고 있으니까.
그래 뭐, 사고 안났고 몸 안다쳤고 좀 놀라긴 했지만 그래 뭐, 끝이 좋으면 좋은 거지 뭐.
자, 그래서 오늘 만난 머피는 모두 몇 명이었지? 그놈의 징글징글한 머피들은 어디 숨어있다 오늘 죄다 기어 나온 건지 입이 있으면 한 번 말해봐라. 여하튼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대단한 날이었다. 기념일로 지정해야지. 데이 오브 데이 오브 데이오브 데이....
(사족/ 편의점 맥주 가격 유감. 네 개를 사면 12000원인데 하나만 살라면 4500원. 무슨 가격정책이 그 모양이야. 솔직히 네 캔을 안 살 수가 없잖아! 이건 아닌 척 하면서 거의 강매 수준... 맥주 과소비를 조장하는 편의점 가격정책을 규탄한다!!!)
내 일생의 음식은 동태탕이다. 생태탕도 괜찮고 대구탕도 좋지만 굳이 꼽으라면 동태탕이다.
80년대 어느 해 아마도 초봄이었을 것이다. 김포반도 어디쯤에서 철야 행군을 하고 있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는 있었지만 밤 새 비가 내렸고 이른 봄의 쌀쌀한 날씨와 비바람으로 군화 속도 축축했다. 식사추진이 제대로 안되는 바람에 전날 저녁밥도 못먹고 건빵과 건빵 봉지에 포함된 라면 스프를 찍어먹으면서 허기를 때우고 있었기 때문에 배가 고픈 것은 물론 속도 쓰리고 배고픔과 추위와 군대라는 이것저것 억눌린 짜증때문에 많이 지치고 우울해져있었다. 흐린 하늘 때문에 여전히 깜깜했지만 아마 새벽녘이었을 것이다. 넓은 벌판의 논두렁길을 지나서 작은 동네를 빠져나갈 때 코 끝으로 동태찌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순간 총 맞은 것 처럼 정신이 아득해졌었다. 길가의 작은 창문이 처마 밑에 노랗게 불이 켜진 채로 살짝 열려 있었고 거기서 나는 냄새였다. 나는 음식에 관한 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만큼 강한 충동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때는 할 수만 있다면 대열을 이탈해서 그 집으로 들어가 구걸이라도 하고싶었다. 그 황홀한 동태찌개 냄새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대열은 계속 이동중이었고 허락 없이 대열을 이탈할 수도 없었고 허락을 해 줄리도 없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음식 한 그릇이 내 자존감을 흔들어버릴만큼 강렬한 충동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딱 말 그대로 '구걸을 해서라도 먹고싶었다'. 하지만 시커먼 판초우의를 뒤집어 쓴 인정머리 없는 대열은 끝도 없이 이어져 터벅터벅 그 마을을 지나 또 다른 깜깜한 벌판으로 이어졌고 나의 눈물어린 동태탕은 그렇게 허무하게 멀어져 갔다. 기구한 사연도 없고 대단한 서사도 없다. 그 동태탕에 관한 이야기는 그냥 이게 다다.
입대 전에도 동태탕을 좋아했냐고?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동태탕이라고해서 자주 먹지도 못했거니와 별로 기억에 남는 음식도 아니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생각도 나지 않는 그렇고 그런 찌개 중의 하나였을 뿐. 오로지 그날 새벽 그 마을에서 누군가가 끓이고 있던 동태탕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렸지. 몇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밤 새 걸었던 배고픔과 건빵이 만들어 낸 속쓰림과 춥고 질퍽거리던 날씨와 수면 부족과 비바람과 어깨를 파고들던 군장의 무게와 등등 그런 저런 것들이 동태찌개 냄새 하나에 모조리 매몰되어 내 후각세포에 어마어마한 각인을 새겨버린 것이지.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 동태탕을 숭배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동태탕은 내게 구원의 음식이 되었고 주야장창 사시사철 시도 때도 없이 동태탕 찬가를 불러댔다. 물론 좀 더 선도가 좋은 생태탕이나 대구탕도 좋아하지만 내게는 단지 동태탕의 아류일 뿐이야. 그 때의 기억 때문에 그들은 영원히 동태탕을 넘어설 수는 없어. 그리고 그 맛을 불문하고 그것이 동태탕이면 한 수 접고 닥치는대로 잘 먹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맛이 없어서 먹다가 말고 숟가락을 놓아버린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나의 동태탕에 관한 장황한 무용담을 들은 어느 지인이 그렇다면 자기가 알고 있는 아주 기막힌 동태탕 집을 소개해주겠다면서 가르쳐 준 7번 국도변의 어느 휴게소에 있는 식당이었고, 그것은 명백히 죄악(罪惡)이었다. 세상에 동태탕을 맛없게 만들 수가 있다니! 나는 결국 구원의 음식이던 동태탕을 반도 못 먹고 숟가락을 놓았고 식당을 나서던 나는 허무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그 지인과 누군지도 모르는 그 식당의 주방장에게 어마어마한 비난을 퍼부었다. 세상에 인간의 탈을 쓰고 동태탕을 맛 없게 만들 수 있다니!! 도대체 어디가 기가 막히다는 거야!!!
어쨌든 동태탕은 지금까지도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반드시 먹어야 하고 봄이 되기 전에 몇 번은 더 먹어야하는 음식이 되었고 어느 식당을 가든 메뉴에 동태탕이 있으면 다른 걸 먹더라도 괜히 한번쯤은 갈등을 한다. 한 때 구내식당처럼 친구들과 수시로 드나들면서 먹었던 포항 흥해읍의 한선뚝배기. 정말 맛있었는데 한 동안 뜸하다가 찾았더니 그 새 어디론가 이사 가버리셨드만. 많이 아쉬웠다. 나는 지금도 동태탕을 만들때면 그 한선뚝배기집의 아주머니가 가르쳐주신 조리법을 기준으로해서 만든다. 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동태탕은 무조건 맛있는 음식이지만.
'결사적으로 유쾌하게'
이십대 이후의 내 좌우명이다.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좌우명이 저꼴이라 그런지 나는 그다지 유쾌하게 살지는 못했다. 좌우명이니 가훈이니 금언이니 이념이니 뭐 간판처럼 내 걸어 놓은 이따위 것들은 대체로 그렇지 못한 자들의 몸부림이나 얼굴 가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생이 그렇지 못한 꼴이니 꿈이라도 꿔보겠다는 그런 거야. 그러게 안되는 걸 억지로 만들려다보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자세는 망가지고 그렇게 가짜배기에 싸구려가 돼 가는 거지. 그래도 그렇게 꿈꾸며 살고싶기는 하다. 어떻게 지금이라도 만화같이 살아보는 거 안될까? 먹고 살 생각은 안하고 도무지 뜬구름 잡는 소리만 지껄이는 별종이라고? 맞아. 나는 몽상가다. 알고 있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내가 몽상가라서 니가 불편한가? 일생을 내 뒷다리를 걸면서 훼방질에 지적질에 죽어라 망해라 저주를 일삼던 지긋지긋한 인간들. 숨좀 쉬고 살자고 비명을 질렀더니 우정이랍시고 사랑이랍시고 송곳구멍같은 뻔한 소리만 지껄이던 인간들.
어제도 또 어제도 말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나쁜 놈들이 더 많다고. 당연하지. 세상은 도덕책이 아니니까. 그러니 택도 없이 내 앞에 서서 턱 치켜들고 공자왈 맹자왈 하지 말 것. 하지만 그 나쁜 놈들도 지 세상을 살겠다는데는 나도 이의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나쁜 놈일 것이고. 세상이 내 것이 아니니 부디 각자 쪼대로 살 뿐이다. 그러니 너는 턱없이 내게로 다가와 나를 찌르지 마라. 나를 찌르지 않으면 내가 너를 찌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까. 요즘은 겁도 많아져서 젊었을 때처럼 별로 사납지도 않아요. 언제나 그렇지만 나는 먼저 물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먼저 놓지도 않으니까 조심해. 오래 참는다고 해서 끝내 참으리라고도 생각하지 말고. 나는 다툼이 귀찮을 뿐이지 걸어오는 싸움을 피해서 도망 갈 생각은 없어. 가만 놔두면 나는 조용히 내 자리로 사라질거야. 나는 내 낙원을 지켜야 하니까. 손바닥만한 낙원일지라도.
그래, 뭐, 떠도는 말 중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은 있더라. 꽤 근사해 보이는 말이기는 하다만, 있어보이는 말씀은 거기까지만. 나는 내 낙원을 찾아 도망 친 거야. 그 아우성 악다구니 속에서 굳이 불편한 낙원을 만들 생각도 자신도 없어서.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어떤 이유로든 내가 당신을 거짓으로 속이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힘들게 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당신도 나를 그렇게 하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참지 않거나 버릴 것이니까. 니가 누구든.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는 너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고 반성하고 참회하지 않으면서 가증스러운 혓바닥을 꼬고 말장난 하는 너를 용납하지도 않을 거야. 너는 결국 내 편이 아니거든. 돌아 올 생각도 없잖아? 나는 너를 고쳐 쓸 생각이 없어. 니가 누구든.
걱정할 것 없어. 어차피 사람과의 관계도 상거래와 똑같은 거야. 내가 받은 만큼 니한테 지불할 것이고 너 또한 나한테 그래야 해. 너나 나나 가치가 없는 곳에 지불을 계속할 필요는 없겠지? 가끔씩 끝없이 지불만 하는 경우도 있겠지. 그건 니가 나한테는 그만큼 비싼 몸이라 그런 거야. 그러니 너는 그냥 받으면 돼. 부담스러워 할 것 없어.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나도 본전 생각을 하게 되겠지. 지불하고 싶은 만큼씩 지불하고 사는 거야. 관계는 장신구 같은 거야. 가치가 깨지면 관계도 끝장 나는 거지. 어때, 단순하지? 어려울 거 하나도 없어. 살만큼 살아봤으니 이제는 한 시라도 견디면서 살지는 않을 생각이야. 남의 눈으로 사는 너희들처럼 남의 생각과 판단으로 내 머리를 채우면서 살 생각은 없어. 나한테는 내가 제일 먼저 소중해. 그럼 안녕.
1. 나는 혼자서 배낭 짊어지고 긴 시간 산길이나 들길을 터벅터벅 걷는 것을 좋아한다. 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좋긴하지만 오르고 난 뒤의 지루한 걷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 산에 올랐다고 만세 부르고 앉아 놀다가 내려가는 건 재미 없어. 산에 올랐으면 걸어야지. 가능하면 해가 지도록 하염없이 걷는 게 좋아. 숲길을 걷는 것도 좋고 관목대나 억새밭 사이로 난 길은 더 좋아. 딱히 무슨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전부터 나는 그런 길이 좋아. 신불산 넘어서 영축산 가는 능선길같은 산인듯 들판인듯 황무지같은 느낌.
걷다가 쉬다가 때로는 우두커니 먼 산 바라보면서 생각을 되작거리는 것도 좋고. 봄 가을 평일 산행이면 사람도 별로 없어서 막막할 정도로 조용한 능선에서 선듯한 바람을 맞고 있으면 이보다 더한 도락이 또 있을까 싶기도하다. 바위에 걸터앉아 드문 드문 지나가는 사람들 보면서 초코바나 양갱을 까 먹는 것도 맛있고 재미있고.
억새가 필 때쯤 되면 혼자 사자평에서 노닥거리다가 산에 기대어서 잠깐씩 졸기도 하고 어느 귀퉁이에서 얼핏 잠이 들었다가 어스럼 저녁 나절에 깨어나 앗차, 늦었구나 귀신 쫓아올라 허둥지둥 바쁜 하산길도 짜릿하지. 그런데 예전에는 멧돼지며 곰이며 들개같은 무서운 짐승들이 없었는데 요즘은 그런 짐승들이 좀 무섭긴 하더라.
지금은 젊었을 때처럼 몸을 생각대로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못쓰게 될까 겁나서 욕심껏 오래 걷지는 못하지만 내 몸뚱이보다 더 뚱뚱한 박배낭을 짊어지고 몇 박이고 지리산을 혼자 헤메고 다니기도 하고 그러다가 밤길에 길을 잃어서 어디쯤인지 짐작도 못할 깊은 산골짜기에 고립된 채로 비박을 하고 다음날 아주 거러지 꼴이 돼서 겨우 하산 한 일도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아, 그때 어쩌면 잘못될 수도 있었구나 싶기도 한데 운이 좋았는지 객기 왕성한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그리 무섭지도 걱정되지도 않았었다. 그 때는 휴대폰도 없던 때고 산악 구조대나 119 구조대도 없었으니 혹시라도 일이 꼬일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다행히 친구 중에 프로 산악인이 있어서 평소에 얻어 들은 잡지식을 탈출 할 때 좀 써 먹긴 했는데 어쨌든 앞뒤 없이 나대고 다니다가 자칫했으면 험한 꼴 볼 뻔 했었다.
지금도 날씨가 그럴듯하면 하루 산행을 하고 싶어서 옷장 속에 있는 배낭이며 장비들을 뒤적거려보기도 하지만 사실 조금씩 자신감이 떨어져서 큰 배낭들을 이고지고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아 이제 큰 것들은 당근에다 팔아먹어야 하나 어쩌나 궁리를 하고 있다. 아직은 미련이 남아서 선뜻 그러지는 못하지만. 욕심은 한보따리인데 가진 몸이 점점 부실해지니 옳은 생각을 못하고 다른 데다 핑게를 갖다 씌울까 생각도 한다. 예를 들면 '저 신발 밑창이 다 닳을 때까지만 더 다닐까' 따위의 시한부 핑게.
2. 나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한 때 잠깐이나마 로드 사이클 선수가 되었었는데 뛰어난 자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로드 사이클의 속도감에 중독되어서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달리다보니 어쩌다 남보다는 조금 빨리 달릴 수 있게 되었던 거지 그다지 자랑할만한 실력은 아닌 걸로. 자랑할 만한 실력이었다면 팔뚝에 태극기 달고 깃발 날렸겠지.
그 다음에 빠져든 것이 요즘 어린 친구들에게 한참 인기 있는 픽시. '후미기리'라는 물건이었는데 고정식 뒷기어를 그렇게 불렀다. 일본어 느낌이니 일본어겠거니 하지만 정확한 뜻은 모르겠다. 하여튼 앞 44, 뒤 14. 당시에 트랙 경기에 쓰이던 기어비인데 꽤 매력적인 자전거였다. 그 매력을 알기 때문에 젊은 친구들이 왜 픽시에 열광하는지 이해하는 편이다. 요즘 픽시는 디자인도 아주 세련됐드만.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픽시는 좀 위험하기는 하다. 최소한 브레이크는 달고 다니자.
한동안 픽시를 타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핸들을 개조해서 산으로 끌고 올라갔었지. 아주 열악한 자전거였기 때문에 사실 제대로 된 산악 주행을 한 것은 아니었고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는 정도로 흉내만 낸 정도이지만. 지금으로 치면 그래블 바이크에 가까운 구성이었다. 핸들은 험로에서의 조향때문에 드롭바와 플랫바를 이중으로 묶은 형태로 개조했었다. 기괴한 조합의 자전거였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산에서 자전거를 타 본 1세대 쯤은 되지 않을까싶다.ㅋ. 물론 지금은 제대로 산악 인증을 받은 산악자전거를 갖고 산으로 올라간다. 가슴이 바싹바싹 타버려 죽을 것 같이 숨가쁜 업힐 뒤에 가파른 산길을 거칠게 내려 꽂는 그 미친 희열을 맛볼라고. 그러다가 날아가고 넘어지고 처박히는 것도 괜찮아. 그러다가 가끔은 다치기도 하지만 그런데서 오는 변태적인 쾌감도 있지. 나 살아있네? 이런 느낌인거. 하지만 깊은 상처나 골절은 오래가기는 하더라. 나이 들 수록 회복이 더디더라고.
가끔은 그 '죽을 것 같은 업힐'을 하다보면 어라? 숨이 잘 안쉬어지네? 진짜 죽을 수도 있겠는데? 겁도 난다. 그러니 어지간 할 때 적당히 해라.. 내 허벅지며 종아리 곳곳에는 찍히고 긁힌 흉터가 몇 개씩 있고 몇 년 전에 다친 양쪽 엄지는 지금도 조금 불편해. 오른 손은 산에서 로프 타다가, 왼 손은 자전거로 산 타다가 다쳤지. 이런 저런 소소한 부상으로 병원 출입도 꽤 했네. 나이 많이 들기 전에 몸은 좀 아끼는 게 좋아. 돌아보면 몸을 너무 함부로 써서 후회되는 게 몇 개 있어.
3. 나는 집을 떠나 멀리 낯 선 곳에서 길을 찾아 헤메고 두리번 거리는 것도 좋고 밤이 깊도록 무턱대고 돌아다니다가 모텔 방 못구하면 차 세워두고 아무데서나 침낭 깔고 별 보고 잘 줄도 알아. 요즘은 늦은 나이에 스포츠카를 하나 구해서 잘 타고 다니는데. 고속도로며 국도며 가리지 않고 창문 다 열고 천장까지 열어놓고 달리는 차 소리 바람소리 음악소리가 난리법석으로 미쳐 날뛰는 중에 오페라 아리아 따위를 고래고래 따라부르면서 달리면 기분이 꽤 그럴 듯 해. 아주 혼자서 영화를 찍는 거지. 누가 본다면 깜짝이야 웬 미친놈이냐 욕바가지를 하겠지만 그럴리가. 누가 일부러 창문 열고 내 노래소리를 들을 리는 없잖아? 눈에 띄는 빨간차에다 자전거까지 달고 다니니 간혹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뭐 어때, 민폐만 아니면 되지. 그렇다고 일부러 빨간 차를 고른 건 아니야. 처음에는 까만 걸 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지. 내가 유리하게 고를 수 있는 색이 하필 빨간 색이라고 해서 망설이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지. 그래 뭐, 본의 아니게 유독 눈에 잘 띄게는 생겼다. 온 세상에 널린 것이 CCTV에 블랙박스에 ... 수틀리면 '아니, 아까 그 자전거 달고 있는 빨간차' , 그러면 오도가도 못하고 박제 되는 거지.
자전거는 왜 달고 다니냐고? 이거 여행 스타일에 따라서는 정말 요긴하게 써 먹을 수 있는 아이템임. 나는 없으면 많이 아쉬워. 전에는 앞바퀴를 떼고 안에 실을 수도 있었는데 차를 바꾸고 나서는 못실어. 뒤에다 달고 다니지. 그러게 뒷자리는 좁아터져서 자전거는 커녕 사람도 못태울 엉터리에 승차감도 딱딱해서 못쓰겠더라고? 알고 샀어. 그냥 예뻐서 산 거야. 좀 비싼 장난감으로. 성능이나 뭐 그런 건 사실 잘 몰라.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이지 뭐. 때려 밟아보니까 겁나게 튀어나가기는 하더라. 그런데 딸들은 좀 불만이기는 해. 아빠 차 샀다 그랬을때는 예쁘다고 좋아라 하더니 뒤에 한 번 타 보고는 입이 댓발 나와서 다시는 안탄다는데! 천장이 낮아서 몸이 다 구겨진다나. ㅋㅋ 하여튼 뭐가 어찌됐든 각설하고 그렇게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야.
4. 그렇긴 한데 문제가 있지. 항상 발이 땅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거. 나는 그게 어디든 바닥을 딛고 있어야 안심이거든. 그러게 내가 내 욕망을 채워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뒷덜미를 잡고 있으니 억울하긴 한데 아니 이게 참 방법이 없네. 북한이 열리고 압록강을 자동차나 기차로 넘어가지 못하면 나는 이 나라를 벗어날 재주가 없다는 거야. 심지어 그 살벌한 유격장에서 유격훈련을 받으면서도 줄타기까지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쫓겨서 했었지만 맨몸으로 십 몇미터짜리 고공사다리를 오르는 코스는 죽어도 못하겠더라. 정말 죽는 게 낫지 안되겠더라고. 그 지랄맞던 유격 조교들이 겁도 없이 뻗대는 꼴등병때매 눈이 핑 돌아서 미쳐 날뛰고 욕하고 굴리고 협박해도 그래 그냥 날 죽이는 편이 빠를거다 하고 버티고 안 올라갔어. 결국에는 조교들도 개새끼 소새끼 욕하다가 포기하드만.
맞아. 높은 곳을 맨몸으로 올라가는 것은 몸에 많이 해로운 일이야. 발은 땅에 딱 붙이고 있어야 돼. 진짜 높은 곳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몸은 편안한 방구석에 앉아 있는데 시각적인 느낌만으로도 그게 반응이 온다니까. 언젠가는 TV 에서 중국 화산 장공잔도길에 빽빽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여 주는데 그냥 실시간으로 욕이 튀어나왔어. 그게 대체 무슨 짓들이야. 그 뿐이냐, 패러글라이딩 윙슈트 스카이 다이빙 짚라인 번지점프 등등... 이런 걸 재미있다고 제 돈 써가면서.. 정말 대체 뭔 짓이냐고. 심지어 그러다가 떨어져 죽기까지도 하네? 그래 뭐, 그런 것들은 그래도 명색이 스포츠고 놀이 기구라고 쳐. 굳이 따지자면 산악자전거 타다가 죽는 사람도 있기는 있으니까. 그런데 루프타핑같은 건 대체 왜 그러는거야? 벼랑 끝이고 고층 건물 옥상 끄트머리에 그 맨손으로 매달려서 턱걸이는 왜 하며 물구나무를 서는 이유는 뭘까? 죽음을 무릅쓰고 하는 행동들이니만큼 내가 모르는 무슨 철학적 사회적인 동기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조회수때문에?
내사 돈 싸들고 와서 부디 가 주십사 한다 해도 어디 근처라도 가까이 가 볼 생각은 추호도 없고 의미도 없지만 어떤 악당이 쳐들어와서 너 총 맞을래 저거 탈래 협박하면 어쩌면 짚라인 까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진짜로 루프타핑 하라면 총 맞고 말지... 말 나온 김에 굳이 그.. 줄 세워 보자면 케이블카-짚라인-패러글라이딩-스카이다이빙-비행기-페루 와이나픽추나 화산 장공잔도 등 그런 길같지 않은 길들-번지점프-윙슈트-프리솔로-루프타핑 .. 대충 그러네. 내가 허용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이 케이블카 정도라니까. 그것도 어지간만하면 안타고 싶지. 얼마 전에도 삼천포 갔다가 케이블카 타기 싫어서 땀을 한 바가지나 쏟으면서 한시간을 걸어 올라갔다고.
//고소공포증 [acrophobia]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높은 장소에 대해 국한된 공포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공포는 지나치거나(지나치게?) 비합리적이고, 지속적인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무서워하는 대상이나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 하며,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두려움이 유발된다. 높은 곳에 가면 예외 없이 즉각적인 불안 반응이 나타나고, 심하면 공황발작의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환자 본인은 이러한 공포가 너무 지나치거나(지나치게 가 맞겠지?) 비합리적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일상생활이나 직업적, 사회적 기능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정도이다.// 네이버에서 긁어왔는데 괄호 속은 '지나치게'가 맞는 거 같음. 그런데 나더러 환자래. ㅜㅜ 정신병증의 하나라는데..
어떤 사람은 아니, 높은 데를 못간다면서 그럼 산은 또 어떻게 올라가냐고 묻던데 그런 상상력이 부족한 질문은 뭐냐. 여기서 '고소(高所)'라는 것은 해발고도를 말하는게 아니고 단 몇 미터정도라도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추락할 수 있는 조건을 말하는 거라고. 아크로포비아(acrophobia). 그러니까 acro(선단, 말단, 잘린 곳의 정점 뭐 이런 뜻)에 대한 phobia(공포) 인데 이게 고소공포증보다는 오히려 맞는 표현이지. 막연히 단순한 높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해발 천미터 이천미터 이런 산꼭대기는 하나도 안무서워.
막 뛰어 다닐 수도 있고 1915 지리산 천왕봉에서 물구나무를 설 수도 있어. 하지만 건물 옥상 가장자리는 삼층 사층만 돼도 아뜩한 거지. 이거 말이 쉽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느낌인지도 모를 걸. 정말 허리 아래쪽으로 일순간에 피가 싹 빠져나가버리는 느낌이야. 겁먹거나 용기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몸이 반응하는 거야. 공포는 겁이 많거나 담력 뭐 이런거 하고는 다른 이야기라니까. 뭐 떨어져 죽을까봐 무섭고 어쩌고 이게 아니라 위치를 인지하는 순간 즉시 몸이 얼어서 굳어버리는 거라고. 산에 미쳐서 돌아다닐 때도 나름 관록의 산싸나희라고 온갖 개폼은 잡고 다니다가 그놈의 신불산 칼바위 한 번 지나가보려다가 발 밑의 절벽을 보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바람에 돌아서서 말 그대로 엉금엉금 기었었다니까.
아니야. 사실은 기지도 못하고 주저앉은채로 엉덩이를 질질 끌면서 내려왔어. 정말 모양빠지던 날이었지. 그나마 궂은 날이어서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내 뒤에서 칼바위를 지나가려고 기다리던 젊은 커플은 진귀한 구경을 했지. 아니, 저 사람은 걸어가더니 기어서 돌아나오네? 뭐, 그 때도 이미 가오가 몸을 지배할만큼 젊은 나이도 아니었고 얼굴은 스카프로 가리고 있었으니까. 혹 그렇다해도 언제 다시 볼 사람도 아니고 하니 에라 모르겠다 얼굴에 철판 깔고 뭉개면서 뺑소니를 쳐버린 거지. 그러게 진작에 우회로로 갈 것이지....
5. 뭐, 당연히 고소공포증 있다고 자랑하고 뻐기는 건 아니야. 그 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민망하고 미안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는 이야기지. 식구들이나 친구들이 몇 번이나 제주도를 가자커니 해외여행을 가자커니 졸라대도 선뜻 확답을 못하고 있으니. 나 빼고 갔다와라 나는 괜찮노라 이것도 우습고 그렇다고 너희를 위하여 이 한 몸 살신성인의 의지로 비장한 각오로 비행기를 타는 것도 희한한 일이고... 언젠가 같이 가까운 일본이라도 갔다 오자던 어떤 친구는 위스키를 병째로 몇 병 나발 불고 술김에 자고 일어나면 도착해 있을 거라던데 웃기기는 했지만 그건 그래도 점잖은 편이야. 우리집 큰 놈은 아빠 뒷통수를 갈겨서 기절 시킨채로 비행기에 실으면 되겠다던데. 흉악한 놈.
여행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아이고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 많아요 라고 설레발을 치지만, 그래,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 아니긴 한데 그걸 누가 몰라. 당연히 나도 나가고 싶지. 난들 여행이 좋아서 길거나 짧거나 틈만 나면 집 나가고 싶어서 발사심을 하는 인간인데 욕심이 없겠냐고. 나도 세상의 모든 골목을 가 보고 싶은 사람이야. 형편없는 솜씨라도 그런 별별 사진들을 내 느낌대로 내 카메라에 담아 오고싶고. 신기한 음식도 먹어보고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세상도 보고싶다고. 가슴이 뻥 터져버릴 것 같은 어마어마한 대자연도 만나서 내가 이런 멋진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알고 싶고 내가 보고 싶은 곳을 같이 보고싶어하는 나를 닮은 사람들과도 만나보고 싶다고. 극복할 수 없는 현실에 적응을 해버린 것이지 욕심마저 없는 건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 갈 수만 있다면 가고싶은 곳이야 쌔고쌨지.
그런데 얼마전에 정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어. 나 어쩌면 파타고니아 갈려고. 갈 수만 있다면 말이지. TV에서 파타고니아에 있는 스텝이라는 지형을 봤는데, 나, 거기 꼭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나 좋았으면 프랑스의 어느 가문은 그 가문 전부가 통째로 그리로 이주를 해서 정착을 했다던데! 몰라, 정작 가 보면 마음만큼 그리 좋지는 않아서 내가 이꼴을 볼라고 천리 만리를 날아왔구나 발등을 찍을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북미쪽을 더러 다니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한국에서 거기 가려면 남미 직항이 없어 비행기를 네번 타야한다면서 너 가다가 죽을거야 그러던데. 그럼 나는 가면 못 돌아오는 거겠지? 아니면 죽을 날을 받아놓고 가든지..
자식들한테 제사상 못받을까봐 걱정은 아니니까 그건 문제가 아닌데 아니, 진짜로 그럴 수도 있다니까. 할 수만 있다면 자동차 꽁무니에 자전거 얹어서 무사히 갔다가 살아서 돌아오고싶지만 뭔 연륙교가 있는 곳도 아니고 있다 해도 석달 열흘 죽어라 달려야 겨우 닿을까말까한 거리라서. 게다가 어느 동네는 무시무시한 마약이며 갱단이 득시글거린다던데 가는 도중에 어느 오지에서 타이어 빵꾸라도 나버리면 카센타 찾는다고 두리번 거리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쓱싹... ㅎㅎ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아니 참, 정말 가려면 갈 수는 있겠지만 참 가능성도 희박하고 그만한 각오를 감수하고라도 가야하나 싶기도 하고. 나도 내 마음을 몰라. 가기는 어찌어찌 갔다 하더라도 그다음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는 어떻게 타냐고. 그래서 하다하다 그 프로그램에서 잠깐 비치던 그 못견디게 쓸쓸하고 황량한 먼지바람불던 파타고니아 인근 동네 길가의 오두막에다 방을 하나 얻어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 밥 해먹으면서 여생을 보내볼까 하고 상상인지 망상인지까지 해봤더라니까. 참, 내가 생각해도 그걸 생각이랍시고 하고 있는 건지.
몰라. 살 날이 언제까지일지는 몰라도 또 모르는 일이지. 어느 날 마음이 후다닥 뒤집히면 무슨 똥배짱으로 가방 챙겨서 비행기에 덜렁 올라설지도 모르지. ...그래도 혹시 비행기는 한 번만 타고 나머지는 자동차로 가는 꼼수는 없을까? 미국에서 직선거리로 얼추 20000km... 구불텅 남미 대륙을 자동차로 냅다 달리면 하루에 이 삼백 키로... 어디보자.... 안되겠다. 그냥 배 타고 가까?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