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런던.
노래를 알기 전에 먼저 이름부터 알게 된 여자.
오래 전 어느 잡지에서 처음 만났던 꽤나 촌스러운 이름의 여자 가수.

내가 줄리 런던의 노래를 듣기 전부터 막연한 예단을 가지게 된 것은
줄리 런던의 노래에 관한 에피소드를 쓴 사람의 글솜씨가 훌륭해서였을까.

아니라면 5,60년대식의 구닥다리 느낌이 물씬 풍기는 줄리 런던이라는 약간 촌티나는 이름때문일 수도 있었겠고.

몇 년이 지난 뒤에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 여자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때
나는 조금의 괴리도 없이 줄리 런던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낯선 집에서 들리던 이 여자의 노래를 골목길에서 끝까지 듣고 있었다던 그 사람의 이야기에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았으니까.  
  


그럭저럭 괜찮은 날에는 혼자 술이라도 맛보면서 혼자 추억에 잠기고 싶기도 하고
생전 가 보지도 못한 샌프란시스코에 내 마음도 어디 한 귀퉁이 떼어놓고 와버린 듯 애틋해지는, 
우울한 날에 듣자하면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온 누군가가 못견디게 그리워질 것 같은 노래.

반 쯤 술에 취한 내 앞에서 나직하게 이 노래를 불러 준다면
다짜고짜 끌어안고 까닭도 없이 그만 울어버릴 것 같은.
아, 
이름만 들어도 목소리가 느껴지는 참 묘한 여자의 묘한 노래.

..............
아니, 생긴 건 못생겼어. 내 타입이 아니야. 목소리만.... @@ 




일단은 요점 정리부터.
일등입니다.
우에 사진 가운데 보이는 울긋불긋한 색조의 더블입니다.

더블이되 낱장처럼 따로따로 두 장입니다.

바하/ 골드베르크 변주곡.
스투트가르트 쳄버 오케스트라
칼만 올라 - 피아노
미니 슐츠 - 바스

짐작하시겠지만 골드베르크의 잡탕 편곡입니다.
골드베르크의 재즈 편곡으로 잠시 회자되었던 자크 루시에 음반하고는 또 그 맛이 다릅니다.
재즈 냄새가 나긴 나는데 편집도 좀 다르고.
아리아 나오고.....재즈 바리에이션 나오고.... 그다음에 다시 원판 바리에이션 두세곡 나오고
다시 재즈 피아노랑 바스랑 해서 재즈 바리에이션 나오고....

구성이 재미있습니다.
연주 실력은 상당합니다.
스투트가르트야 뭐 두 말 할 것 없으니 공으로 먹고 넘어간다치더라도
일견 상당히 빡빡해보이는(개인적으로 그리 생각하던) 이런 연주 단체가 이런 잡탕 연주를 했다는 게 신기합니다.
때로는 교과서적인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그러다가 다시 리듬이 튀는 재즈 편곡으로...
원곡의 중량감을 훼손시키지않고 나름대로 매우 잘 쪼개서 정돈해놓은 연주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생각에,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의 오케스트라 편곡반하고 자크 루시에 재즈 편곡반을 적당히 섞어 비빔밥을 맹글어 놓은 듯합니다만 개개의 연주 수준이나 해석이 전자의 두 편곡반보다 월등히 낫습니다.
물론 순전히 개인취향이므로 항의나 이의제기는 접수 안합니다.

음질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한국의 굿 인터내셔널 기획입니다.
원 곡 사이사이에 재즈 바리에이션이 낑겨있어 길이가 꽤 길고, 그래서 시디가 두 장입니다.
토탈 런닝 타임은 무려 116분 32초!
모르긴 해도 지금까지 들어 본 골드베르크 중 최장시간입니다.

같은 연주가 재즈 편곡이 빠진 오케스트라 편집 음반도 있습니다만
지가 듣기에는 이 잡탕 반이 색다른 맛도 있고 여유가 있어 좋았습니다.
정통파 연주를 고집하는 분이 아니시라면야.
재미도 있고 연주도 수준급입니다. 음질도 물론이고.
수입반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럼 양념으로 예선, 결선에서 탈락된 선수들.


일단 먼저 자끄 루시에의 재즈 쿼텟.
골드베르크 듣다가 뭐 까무러칠 일 있것습니까만
심심할 때 뜯어먹는 마른 오징어 같습니다. 뭐, 땅콩이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지딴에는 리듬도 한 번 타 볼라고 툭탁거리는데 것도 재미있고.
근데 뭐 명색이 오디오파일 음반이면 뭐하냐고.
이거나 저거나 걸기만 걸면 팍! 삭은 소리나는 괴상한 빈티나지 오디오라서 말이지요.

하여간에 오십년대 재즈 빠에서 연주 했음직한 골드베르크.
얼반 취해서 눈 게슴츠레 내려뜨고 담배연기랑 같이,
이뿌고 색시한 처자랑 같이 들으면 딱 좋을 것 같은 골드베르크.

로잘린 투렉의 피아노
온순하고 따뜻해보이는 연주지만,
또한, 혹자는 골드베르크의 바이블 굴드의 마지막 녹음보다 낫다며 광분하기도 하더라마는
여유 있을 때 조근조근 씹어 먹자면 몰라도 얼추 듣기에는 그 열악한 모노의 압박.
아직까지는 꼭 씹어 먹어 보아야 할 필연적인 화두는 못찾겠습니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일정 부류의 광팬을 거느리고 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언제건 날 잡아서 다시 들이대 볼 염을 두고 일단 보류.

가장 켐프답지않다고 생각한 빌헬름 켐프의 피아노.
사실은 가장 먼저 골드베르크를 접한 연주였는데,
덕분에 이후에 듣는 모든 연주가 한동안 얄궂게 들렸음.
그래도 나름대로 매우 댄디하고 모던한 연주가 아니었을까 일단은 박박 주장합니다.
사실 켐프 할배 그 자체가 댄디하고 모던하기는 하지만 니맛도 내맛도 없는 닝닝구리 영감탕구.... @@..

완다 란도브스카나 랄프 커크패트릭의 하프시코드는 정말 골드베르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연주였습니다.
듣고 있다가 십중팔구 잠들어버렸으므로... @@..

케이트 반 트리트의 오르간... 잠시 신기하다가 이내 멀미 동반..

로다머의 기타는 튀는 재미로,

외트베스의 기타는 아리아만 좋았음.

미샤 마이스키 트리오는 화사하고 멋지지만 씹어도 국물이 잘 안나와서 패스.

글렌 굴드의 80년 녹음은 중언부언 할 필요도 없는 골드베르크의 신약같은 존재이므로
기 죽어서 그냥 패스.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의 오케스트라 편곡
처음에는 매우 신선했으나 슈터트가르트를 듣고는 갖다 내버렸음.

그 외 앤드류 패럿의 피아노나 트레버 피노크의 하프시코드도 있으나
끝까지 듣기에는 내가 너무 게을러터졌거나 연주가 지나치게 담백한 이유로 고만 패스.

하여간 있다가 없는 판도 있고 없다가 생긴 판도 있지만
용량이 딸리는 관계로 얼추 우수마발로 대충 패스하고 지나갑니다.


서랍 정리하다가 발견한 뜬금없는 음악 감상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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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은 음악광이고 오디오쟁이라고 주변 여기저기 실속없는 입소문만 나서는 때때로 몇 곡 선곡해서 녹음 좀 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생일 선물도 있고 학기말에 아이들 담임 선생님께 드릴 선물도 있지만 그 중 잦은 것은 태교 음악이다.
애들 엄마는 내 오디오의 건강 증진에는 인색하면서 이런 때는 본전 뽑자고 덤빈다.

‘구룡포에 뉘 선생이 임신했다던데...’
‘포항 허 선생도 배 불렀다더라.’

.......... 그래서 어쩌라고? @@...
........

무릇 선물이란 마음을 담은 물품을 무상으로 주고받는 일이므로 그 물품의 내용을 두고 음이다 양이다 옥신각신 할 필요가 도대체 없으니 선물을 주고 받는 다는 것은 불문곡직하고 대체로 매우 바람직한 행위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인데다가 더더우기 음악을 선물 한다는 일은 고금에 그 짝을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아름다운 일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사안이 애매한 경우에는 제목이 그럴싸한 얇직하거나 헐직한 책이라든지 아니면 대충 줏어다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이나 이런 것들을 수시때때로 남발하고는 있지만, 뭐, 이런 경우에는 모른척 안그런척 그거 꼭 해야되냐? 슬쩍 한 번 튕겨 본다. 

내가 고장난 오디오 붙들고 머리카락 빠져가며 고심할 때나 
밤이 늦도록 삐그덕 거리는 오디오 만지면서 진땀 뺄때 그대는 가재미눈으로 날 쳐다보지 않았던가?
염치도 좋구나. 그래놓고 시방 나한테 일거리 하청을 준다는 것인지?
....... 뭐 대충 이런 심사다.

애 엄마는 기계치다.
명색이 오디오쟁이와 한 지붕 밑에서 근 이십년을 살아왔으나 아직까지도 조금이나마 복잡하게 생긴 기기는 아이고 무시라, 아예 만져 볼 생각을 안하는데다가 앞으로도 그것이 개선될 기미는 조금도 없다.
지는 거실에서 바느질하고 내가 마당에서 김치독 묻을 땅 파고 있는 아름다운 구도에서도,
보소, 소리가 너무 시끄러바요,
소리 줄여 달라고 굳이 창문 열고 날 찾는다.

-‘거, 오른 쪽 맨 밑에 누런 앰프 도랑태 다섯개 중에 가운데 껏이 보륨이야~
........아이 깜짝이야. 귀청 떨어지것네. 이런 쇠불알! 왼짝으로 돌리야 된다니깐!!!’

목이 쉬도록 쎄가 빠지게 석달 열흘을 가르쳐 줘 봤자 며칠 안가서 또 마당에 있는 나를 부른다.

‘담이 저그 아부지이~~ 소리가 너무 커요오~~~’

그러니 뭐 하나 녹음 할라치면 나한테 떫은 소리를 못할 밖에는.

나는 테이프 녹음은 자타공인 실력파다.... 라고 말하고싶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오디오나 음악에 관심 없는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 우위에 불과한
순전히 주관적인 평가일 뿐이다.

또한
다들 아시다시피 테이프 녹음은 그 음원이 엘피 일 경우에는 거의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의 중노동에 속한다.
특히 한 삼십분 이상 걸리는 대곡일 경우 노심초사 근근히 녹음을 하던 중, 끝날 때 쯤해서 틱! 하고 한 번 튀고나면
아아..... 무상하다. 

그래서 나는 옛적부터 데크 앞에 앉아서 씨름할 때는 공연히 몹시 어려운 작업을 하는드끼 필요 이상으로 인상 팍 구기고 앉아서 모가지에 힘이 뻣뻣하게 들어 간 채로 억시기 튕기는 경향이 있다. 
아, 물론 애 엄마도 지 부탁으로 녹음 할 때는 다소 뜰브나마나 서포트에 진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평소에 소 닭 보듯 하다가 그런 때면 내 주변을 뱅뱅 돌면서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는 이야기다.
일진이 좋다면야, 엇주구리, 더러 뜬금없이 사과도 깎아주고 시키잖은 커피도 한 잔 갖다준다.

그런데.... 요즘은 녹음 매체의 주종이 시디로 옮겨졌으니 조금은 편해 졌나?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단 녹음 과정이야 시디가 비할바없이 간편하다.
시간도 단축 되고 프로그램 띄워서 한꺼번에 집어 넣어 놓으면
시간하고 남은 공간까지 주르르 나오니 테이프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이긴 하다.
그러나 엘피를 시디로 옮기고 싶을 경우에는
일반 가정에서의 그것은 순전히 실시간 노가다이매 일견 매우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기도 하고
그 소요 장비의 이동과 설치 또한 허리 부실한 중년에게는 적잖은 부담이며, 게다가 녹음 중에 에러가 나면 아예 갖다 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 물론 다소의 디지털 기기를 구비한다면 그 작업의 난이도가 현저히 수월해지며 그 편집의 묘 또한 콧노래가 나올만큼 손쉬워진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모르는 바 아니나.... 
모든 것은 그것이면 다 해결 된다. ... 그것... 

아무튼 그래서 음으로 양으로 그 놈의 태교음악 편집을 더러 하게 되는데,
말을 그리 꺼냈으니 태교음악이지 그냥 그렇구나 흘려 놓고 듣는다는데 의의를 둔다면 몰라도
그 효과에 대해서는 솔직히 반신반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반에 반신도 안 한다.

우리집 큰 놈이 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깐에는 최대한 신경 써서 '태교 음악' 테이프를 대여섯개 만들었었다.
사나희 태어나 처음으로 아부지가 된다는데 그 아니 들뜨고 설레일소냐.
내가 날마다 경배하여 마지않는 B짜 항렬 영감들은 물론이요 동서고금을 통해 태교에 최고로 좋다는 M모씨의 음악까지 최대한 주옥같은 곡으로 엄선....
애들 엄마도 첫 아이 때라 그랬는지 작은 놈 뱃속에 들었을때모냥 대충 한 잔 걸치고 들어오는 일도 없이 매우 경건하였으며, 뭐 어쨌거나 그놈의 테이프가 마르고 닳도록 참 열심히도 많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 테이프, '짱구 음악'이라는 제목을 달고 지금도 집구석 어딘가에 구불러 댕긴다....

그런데....  
태어나는 놈은 순전히 지 성질대로 태어나는 벱인지 아니면 우리집 큰 놈이 돌연변인지
이 놈이 철들면서 미치고 환장하는 음악이란 게....
........ 말도 하기 싫다.

도대체 귀신 씨나락 까묵는 랩인지 힙합인지 
아,
언제나 그렇듯이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므로
힙합 매니아들의 항의나 질타는 접수 못한다. (☜ 당연히 보험이다....)
  
하여간에 음악이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어쨌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최소한 태교 음악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알든 모르든 뱃속에 있을 때 지 엄마가 듣던 음악에 대한 최소한의 친근감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도대체 자기 스스로 음악을 선택 할 수 없었던 유아기 때를 제외하고는
내가 흘려놓은 음악에 대해서 친화적으로 다가 온 적은 거의 없었던 듯하니 부애가 나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음악이 사람의 품성을 만들어 준다는 가설에는 콧방귀다.
그것도 매우 강력한 콧김을 동반한 콧방구다.

저간의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그놈의 허울좋은 태교음악이란 것에 대한 내 견해는 이렇다.
오로지 타고 나기를 음악을 좋아하게 타고 나서
살다 보니 또 어찌어찌 음악을 접할 기회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잠재된 감수성이 촉발.... 어쩌구.... 그런 주의자다.      

기회가 있어 코딱지만 한 놈들 여럿 앉혀놓고
별 다른 예고나 설명 없이 고전음악을 흘려 놓아보는 실험을 몇 번 해본적이 있다.
열에 칠팔은 틀림 없이 졸거나 주리를 틀거나 딴짓이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한 두 놈쯤 신통하게 듣고 있는 경우가 있다.
끝나고 물어 보면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그 곡에 대한 그럴싸한 인상도 없지않고.

하지만 나는 그 한 두 놈이 저그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그 엄마들이 거룩하고 숭고한 음악을 들으며 태교를 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태교 음악 무용론자다.
차라리 임산부의 정서 순화나 심리적 평정을 위해 고요하고 편안한 음악을 찾는다면
그거야 뭐 굳이 반대할 명분도 생각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이나 사상이나 철학은 사실 별 상관이 없다.
그 누군가가 ‘태교음악’이라는 선물을 필요로 한다면,
그리고 그‘필요’의 날짜가 서서히 촉박해지면,
나는 그 목적과 시기에 부합하는 그렇고 그런 그럴듯한 음악들을 쎄가 빠지게 고르고 추려낸 다음
그 누군가를 위한 태교 음악이라는 근사한 제목이 붙을 시디를 편집하고, 꿉고, 껍디기를 만들고....
견마지로를 다하여 밤새 뺑이를 친다....

자유 민주주의라고?
....개 풀 뜯어묵는 소리.
세상살이가 대개 그러하듯이 황량한 변방, 적막한 깡촌 마을의 겨울에도
그 사상과 행위의 자유는 제한 되어 있다. 그것도 매우.
.............물론 앞서 이야기 했듯이 가뭄에 콩나드끼 때때로 뻐기거나 튕겨보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익히들 아시다시피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사태는 나의 책임이며.....
또한 역시 짐작 하시다시피... 짐짓 튕겨보는 그 시간 또한 나의 바램보다는 매우 짧다...




악보를 보고 익히고 되새겨서 힘써 빚어낸다고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지. 아니고 말고.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울컥하고 쏟아져버리는 이것이다. 내가 미치는 것은.
연주가 어떻고 곡의 해석이 어떻고를 따지기 전에. 그보다 훨씬 더 이전에. 그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아니, 그것이 존재하기도 전에.
무심한 척 슬쩍 당겼다가 놓아버리는 완급은 아주 넋이 달아나고 .

그의 음악은 음악 이전의 것이다. 그의 음악은...
모든 연주자를 망라해서 음악의 원형질에 가장 근접해 있는 사람.
인간에게 왜 음악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사람.

조금만 더 나은 음질로,
스테레오는 바라지도 않지만,
조금만 양호한 환경에서 녹음한 음원으로 남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나도 동의한다. 백 번 천 번이고 동의를 하지만
그나마 그의 음악이 이런 정도로나마 우리 곁에 남아있어 준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아아. 카잘스.
나는 그가 느린 템포만 잡아도 무턱대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바하의 아다지오.
바하가 듣는다면 다짜고짜 덥석 껴안아버릴 것 같은 카잘스의 바하. 
그래서 이번만큼은 바하가 아닌 카잘스의 아다지오로.



그렇게 오며 가며 음악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가 어느 해 쯤엔가 드디어 그런대로 오디오 냄새가 나는 물건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가지고 있던 양철쪼가리 오디오가 수명을 다하면서 하나씩 사라지고 난 다음 한동안을 소리를 듣지 못해서 전전긍긍 하다가 아르바이트 반 아버지께 공갈 반 등등으로 간신히 마련했지요.

앰프/ 인켈AK 625 (요즘도 심심찮게 인터넷 장터에 거래되는 AK 650의 동생뻘입니다.
그 때야 황홀했던 건 당연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냥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까만색의 타원형 푸시버튼이 접점 불량이라 애를 먹었지만.)
스피커/ 역시 인켈. 모델은 기억나지 않고 유닛이 한국 마샬의 것으로 박혀 있었습니다.
10인치 우퍼가 달린 3-Way였는데 일단 모양은 그저 그랬고 덩치와 무게는 봐줄 만 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인켈 상표만 붙은 12인치 양은 플래터가 얹힌 허깨비 턴테이블.
카드리지는 지금도 기억이 선명한 piezo YM-121


싸구려 턴테이블에 딸려 나온 이 별 것 아닌 카드리지가 왜 기억에 남아있나 하면 먼저 이야기했던 그 무시무시한 ‘엘피 절삭용’ 세라믹 압전형 바늘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디오를 새로 구입한 기념으로 거금을 들여서 새로 사온 라이센스 판 위에 처음으로 그 piezo YM-121라는 마그네틱 카드리지를 올려놓는 순간 압전형 바늘의 경직되고 불안한 움직임과는 달리 조금씩 휘청거리는 듯 소리 없이 트래킹하는 그 자태와 부드럽고 청아한 소리를 듣는 순간 거짓말 조금 보태서 눈물 핑 돌았을 만큼 감동 했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그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어디서 만든 얼마 정도의 물건인지도 모르면서.

이 때 들었던 엘피가 장드롱 연주의 바하 첼로 조곡입니다. 이 엘피는 지금도 내 장서에 건재하고 있으며 꽤 자주 돌려 댄 음반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깨끗하고 깊은 음질을 유지하고 있어 나는 아주 흡족해 하고 있습니다. 해설집이나 명반 가이드 같은데서 이 장드롱의 연주를 본 적은 없지만 그 노래하듯 유려한 보잉이며 유장하고 부드러운 해석은 여타의 거장들과 비견해서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 명연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박박 우겨봅니다.


이후로 몇 달 동안의 꿈결같은 음악과의 동거.
친구들과 소주 몇 잔을 나누고 돌아 온 늦은 저녁에 작은 스탠드 불빛만을 밝힌 채 콧구멍만 한 내 골방에서 조용히 흘려 듣는 바하는 열락이었습니다. ....그 뼈마디 저리던 열락이여...
...
적어도 그 소중한 오디오를 내 방에 잠궈 두고 까까머리 장정으로 변신해서 입영열차를 탈 때까지만 말입니다.


김포반도 끄트머리 임진강 하류, 강화도 부근.
멀리 아심하게 우렁찬 한국화약 굴뚝이 보이고 밤이면 바닷물 소리에 두견이만 우는 곳.
말이 좋아 해안경비지 이게 무슨 해안이야.
만조 때나 겨우 발밑에 찰싹거리는 바닷물 구경. 물 빠지면 갯냄새 진동을 하는 진흙 구덩이 갯벌.
그늘이라고는 지푸라기 그늘도 없는 땡볕 아래 소금기 버석이는 갯벌에서 조석으로 노가다,
말뚝에 되똑 올라앉아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개망둥어(짱뚱어)와 먹지도 못하는 외다리 게딱지.
1미터가 넘는 붉고 푸른 갯지렁이, 니가 무슨 지렁이야 거의 뱀이드만.
한 발 빠지면 두발 곧 이내 빠져야하는,
그리하여 파충류처럼 벌벌 기어야 살아 돌아 올 수 있는 곳.
아아 여보시오. 여기는 또 다른 혹성. 생존 해 있는 지구인은 응답 하시오.
분 냄새 나는 애인은 면회도 안 오고 말이야. 염병.

씩씩하게 건빵을 물고 국방의 의무에 전념하던 육군 100번 알보병.
대한민국 국방의 초석 육군 일등병이었던 나는 꼴등병때 통합병원에 누워 듣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부대로 갖고 오지 못하게 되어 곧 음악에 대한 금단증상 때문에 마음고생을 자심하게 하게 되었었는데 어찌어찌 하다 지금은 어디서 구했었는지 기억도 희미한 초소형 라디오를 외박 길에 하나 구해갖고 왔습니다. 이건 지금의 초박형 전자계산기와 비슷하게 생긴 물건인데 백원짜리 상아색 이어폰 -진정한 빈티지 이어폰- 을 반드시 꽂아야만 한쪽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겉모양도 계산기와 너무 닮아 정말 전자계산기같이 비닐로 된 수첩 표지 같은 것이 덮여 있었는데 접어서 전투복 상의의 가슴팍 주머니에 넣으면 거의 있는지 없는지 자국이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얇고 작았습니다. 아마도 보나마나 일본 것이었겠지요?

하여튼 어디선가 이걸 하나 구해서 야간 입초 때마다 멀리 김포 공항으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의 불빛을 보면서 한 쪽 귀로는 주번사관의 순찰을 살피고 남은 한 쪽 귀로는 심야 음악방송을 들으면서 혼자 득의만만 기꺼워했습니다.
하지만 이 물건은 워낙에 두께를 줄이려다 그리되었는지 도대체 서울 인근에서도 방향을 얼마나 심하게 타는지 지글거리기 시작 할 때는 방향 잡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던지. 거기다가 참
호 속에 폭 파묻혀서 눈만 빼꼼 불빛이라고는 없는 새까만 갯펄이며 바다 쪽을 보고 있어야 하는 처지에 방향 잡느라 뒤돌아서서 라디오를 듣자하면 그게 소린들 제대로 들리겠으며 또 휑하니 비워 둔 뒤통수는 간첩이 오는지 구신이 오는지 뒤숭숭하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몇 달을 올빼미로 살다보니 해 뜨면 터덜터덜 둑길 걸어 돌아와서 오전 한 때 비몽사몽 자고 일어나 잠만 깨면 삽 들고 노가다에 보수작업인데 해만 뜨면 음악은 뭔 음악. 다만 점심시간 시작을 알리는 연병장 가득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엄정행의 오오 내 사랑 목련화만 수도 없이 피고지고 그랬지요.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엄정행이나 목련화 노래만 생각하면 바로 그 땡볕 자욱하던 시뻘건 연병장만 생각납니다.

그렇게 음악과 슬슬 뜸해져가던 어느 날 서울 시내로 외박을 나갔던 나는 딱히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었던지라 귀동냥으로 주워들었던 명동의 필하모니를 물어물어 찾아 갔습니다. 군바리 외박에 혼자서 음악 감상실이라.... 참 주변머리 없는 육군 쫄병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날 일생을 두고 벗어나지 못할 깊은 내상을 입게 됩니다. 
명동 필하모니의 그 야박하도록 두꺼운 크리스탈 유리잔에 부어 주는 음료수 한 잔을 앞에 놓고 침침한 감상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서 참 간만의 호젓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습니다. 몇 곡 듣는 척 하다가 졸다가 거의 잠결이었는데 그 잠결에 가슴을 제대로 울리는 낮은 피아노 소리를 듣고는 화닥닥 잠이 깨어버렸습니다. 분명 낯익은 곡인데 이게 왜 새삼스럽게 가슴을 쿵 내려 앉히는 거냐는 말입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2번이었습니다. 1악장 도입부의 피아노의 어둡고 깊은 타건. 처음으로 음악이 아닌 '소리'를 듣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리히테르의 연주였습니다. 
막간에 오디오실을 찾아가서 음반 자켓을 보여 달라고 부탁을 했었지요. 그 때까지는 이 음반만 구해 얹으면 그래도 비슷한 소리는 나와 줄줄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전역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렵사리 이 음반을 구해서 내 오디오에 얹어 보고는 아니나 다를까 아주 좌절하고 말았지요. 그렇게 좋기만 하던 내 오디오는 이제 아주 천덕꾸러기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제대로 노래도 못하는 것이 왜 쓸 데 없이 덩치만 크냐고...
내가 고향을 떠나 있던 사이에 집 부근에 새로 생겨 있던 작은 찻집이 내 병을 아주 부채질을 해 대는데, 내 또래의 젊은 친구가 주인장이었던 그 찻집에는 내 인켈 스피커의 절반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조그마한 AR 북셀프에 불빛도 흐릿한 구닥다리 산스이 리시버를 물려서 가라드 턴테이블로 비닐 레코드들을 돌려대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아주 가당찮았거든요.


별로 값나가지 않는 물건들로 절묘한 소리를 들려주었지요. 모델을 기억하지 못하는 좀 묵직해 보이는 일제 산스이 리시버 앰프에다 가라드 턴테이블(301 이니 이런 유명한 것은 아니었고 그 보다는 조금 하위 기종으로 보였습니다.)에 슈어 91을 달아서 AR-4X를 울리고 있었는데 이게 참 절세의 매칭이었습니다. 따뜻하면서도 흐리멍덩하지 않은 그 속 깊은 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군 제대 후에 복학때까지 애매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그 곰팡내 나는 지하 찻집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기로 굳게 결심을 했지요.

밤이 늦도록 그 찻집에서 뭉기적거리는 날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곳의 골수 당원들과도 교분을 트게 되었고 내 방에서 엄격한 출입금지 처분을 받고 있던 내 소중한 LP들이 이제는 뻔질나게 그 곳을 드나듭니다. 물론 밤늦은 시각, 문을 닫은 뒤에는 소주와 깡통 안주와 컵라면 따위로 성찬을 마련하고는 밤을 새워 입씨름을 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아, 물론 그 때의 입씨름은 오디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음악에 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때 만큼은 오디오에 관한 한 더 이상의 소리도 욕심나지 않았고 남쪽 끄트머리의 작은 소도시에서는 욕심을 내 본들 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밤이 늦도록 몇 몇 악당들과 소주를 마시면서 기염을 토하는 일이 피 끓는 백수 시절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괜찮은 백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껏 나름대로 음악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줄기를 잡게 된 것이 그 때의 그 늦은 시간들이 내게 남겨주고 간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때때로 그 시간들과 사람들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그 찻집 주방에서 잘 생긴 얼굴로 커피를 끓이면서 나무 숟가락을 들고 열심히 지휘를 하던 아르바이트 주방장은 지금도 때때로 가족을 대동하고 만납니다. 때로는 학교 동창이나 옛 친구들보다 더 허물이 없이 편안하기도 합니다. 음악이 얽어 준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처음 고전음악이라는 것을 들어 본 것은 중학교 다닐 무렵이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흔히 보기는 어려웠던, 그리고 우리 형편에는 좀 과분했던 장전축이라는 것이 집에 있기는 했지만 그 전축 아래 칸에 꽂혀 있던 음반이라야 아마도 아버지께서 사 놓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백아가씨, 돌아가는 삼각지, 또, 무슨 아리조나 카우보이 따위의 판들만 몇 장 뒹굴어 다닐 뿐, 음악은 무슨 개뿔을 음악, 나도 덩달아 양떼를 몰고 가는 목장의 아가씨나 시건방지게 따라 해 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장전축/ 네 발 달린 가구에 가까운 일체형 전축.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은 아마도 거의 골동품으로 분류해야 할 겁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쯤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장전축 아래에 놓인 아주 낯선 판때기를 한 참 들여다 봅니다.
판 앞쪽은 누런 간판 같은 곳에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개발새발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시꺼먼 배경에 어떤 사람이 허연 실루엣만 드러낸 채로 팔을 벌리고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판의 뒤 쪽에는 낯설지 않은 사람의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베토벤의 초상화였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이라고는 그 때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지만 그 당시에 무슨 영문인지 그 빨간 마후라를 두르고 겁나게 노려보고 있는 쑤세 머리 베토벤의 근엄한 초상화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기 저기 많이도 걸려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 국민학교 앞 동네 이발소에도 하나 걸려 있었지요.)


쉽게 말해서 뭔가 있어 보이는 껍데기에 끌렸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뭐, 그 때나 지금이나 이론적인 배경에는 초연한 내 습성대로 뭐가 어찌 되었든 말든 그 뭔가 있어 보이는 판때기를 꺼내서 무작정 호마이카가 번쩍이는 장전축에 판을 올려놓고 들어 보았는데, 이게 뭐가 상당히 시끄럽고 야단스럽기는 한데 또 전혀 그렇지만은 않은, 좀 묘한 기분을 들게 하는, 말하자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 본 서양 고전음악이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묘하게 가슴팍을 설렁거리게 하는 느낌도 없지 않아서 그 생면부지의 소리를 미련스럽게 꽤나 오래 듣고 앉아 있었습니다.

나중에 확인된 바, 그 판은 그 당시에 열애에 빠져 있던 둘째 누나가 연인과 주고받은 선물 중의 하나였는데 그게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이었습니다. 당연히 흔해 빠진 카라얀의 연주였고.
이렇게 어설프게 첫 음악 세례를 땡판(내가 불법 해적 복사판에 부여한 호칭. 매우 멋진 호칭이라고 혼자 우겨 봅니다. 음.)으로부터 받은 나는 그 뒤로도 간간히 연인의 선물에 현혹 된 둘째 누나에게서 반 강제적으로 음악 고문을 당해야 했고, 사실 당시에는 별 대단한 감흥을 받은 바도 없던 나는 겨우 곡 이름 몇 개를 외워서는 그 당시에 그야말로 문화의 불모지인 지방남도의 끄트머리에서 삭막하게 서식하던 친구들에게 은근히 잘난 체를 하는 유용한 도구 정도로 써 먹고 있었습니다.

그럭저럭 세월이 가고 솜털만 있던 입 언저리에 슬금슬금 꺼먼 털이 듬성듬성 솟아 날 무렵에는 그래도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제법 귀에 익은 멜로디 들은 조금씩 흥얼거리게 쯤 되었는데 게다가 주변의 주변머리 없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같잖게도 '클래식 도사'정도로 인식되는 불미스러운 일도 생겼지요. 그 시대 지방 소도시의 문화적 황폐함에 축복 있으라!
그 때만해도 교향곡이나 협주곡 같은 큰 곡들을 끝까지 듣는다는 것은 무제한의 인내심과 상당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과중한 정신노동 이었으니 그 클래식 도사라는 칭호는 모자라는 내실을 무표정으로 감추기에 능했던 나의 포커페이스에 기인한 99프로 야바위 수준으로 생각하면 딱 맞을 겁니다.

그 사이, 우리 집의 호마이카 장전축은 아마도 폐기 처분 되었는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침 지방 방송국 중계소에 다니고 있던 세 째 누나가 그 중계소의 기술자가 얼렁뚱땅 꾸민 리시버 앰프와 막통 스피커를 어떻게 구해 왔는데 거기다가 플래터가 손바닥만 한 플레이어도 하나 따라 왔습니다.
거 참, 다리 넷 달린 일체형 장전축만 보던 눈에는 그게 참 묘하게 보였습니다. 어떻게 전축을 갈가리 찢어서 만들어 놨느냐- 이거지요.
그래도 소리 하나는 꽤 그럴 듯 했습니다. 곡에 따라서는 제법 스테레오 흉내를 내기도 했으니까. 말하자면 장족의 업그레이드가 된 셈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황당한 조합이었습니다.

앰프- 묻지마 표 자작 리시버.
플레이어- 8인치 플래터가 달린 동네 전파사 표.
- 플래터가 작은 접시만 해서 엘피 판을 올려놓으면 절반은 허공에 뜹니다.
톤암- 영구 고정식 그냥 톤암.
카드리지-압전형(싯가 100원-200원. 양면 사용가능하므로 매우 경제적임.)
스피커-출처를 알 수 없는 국산 6인치 풀레인지 막통 나발
(이것은 유닛이 풀레인지 용이라는 것이 아니고 네트워크니 뭐니 아무것도 없이 달랑 양철 프레임의 유닛 하나만 달려 있었습니다. 아, 그러고비니 도니 모니 따질 거 없이 풀레인지가 맞기는 맞습니다.)

특히 세라믹 압전형 바늘은 그 중 압권이어서 새 바늘을 하나 갈아서 픽업(헤드 셀 뭉치를 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을 올려놓으면 바늘 끝이 레코드판을 '치익-'하고 파먹는데 바늘 끝에 비닐 레코드의 살점이 깎여서 도르르 말려 올라오기도 하는 기막힌 물건이었습니다. 아주 기겁을 했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버려 먹은 판들이 상당수였는데 그나마 그거라도 쓰다가 바늘 끝이 닳아서 소리가 흐리멍덩해 지면 기발한 생각이랍시고 헤드 셀 위에 십 원짜리 동전 몇 개를 테이프에 붙여서 잔뜩 눌러서 듣고는 했으니, 그게, 레코드판들이 성하게 남아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매우 폭력적인 해결 방법이었다고 생각하며 지금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버려 먹은 땡판들의 일부는 아직도 내 손에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현역으로 뛸 수는 없는 고령자에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부상병들이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한정 없이 랙 한 구석에 꽂힌 채로 '사랑'만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영영 턴테이블에 얹힐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그걸 어떻게 버리겠습니까.

이렇게 음악 소스의 대부분을 땡판으로 충당하면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음질이니 뭐니 고음이 어떻고 저음이 어쩌구 스테이지니 뎁스며 해상도가 어땠냐고요? 
그런 어려운 용어를 구사할 수준이 아닙니다. 고만 넘어가지요.

그로부터 몇 해 지나지 않아서 레코드점에는 보기에도 근사한 성음, 지구, 오아시스,등 국내 굴지의 레코드 회사에서 발매하기 시작한 번쩍번쩍 라이센스 음반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주머니가 빈약한 학생의 신분으로서는 아주 그림의 떡인데다가, 또 라이센스 음반과 같은 곡을 그대로 담은 카세트테이프들도 꽤 많이 보였지만 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장치조차 없었으니 그건 더더욱 그럴 밖에요. 그 당시 카세트 데크들은 엘피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귀했고 고가의 장비였습니다.

대학을 갔습니다.
마침 음악 감상 서클이 있길래 뭐 더 이상 볼 게 있어야지요. 앞뒤 안 가리고 덜렁 가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입을 하고보니 명색이 대학의 서클이라는 것이 여건이 열악하기가 차라리 내가 가진 양철 오디오 찜쪄먹을 수준입니다.
서클룸은 언감생심, 명색이 음악 감상 서클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라는 것이 고작 라이센스 음반 기십장에 땡판이 백여 장. 감상방법은 학교 잔디밭에서 각자 가장 편한 자세로 널부러져서 LP 크기보다 더 작은 휴대용 야전(야외전축) 으로 듣되 될 수 있는 한 각자 가장 심오한 표정으로 듣기.

물론 상당수의 대학 서클이 그러했듯 2차(한 잔!)에 눈독을 들이고 참가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지만 그래도 그 열기 하나만큼은 지금 생각해도 참 순수하고 대단 했었습니다. 지금은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 그립고도 징그러운 화상들.
 

(/야전: 아마 이 물건은 지금 젊으신 분들은 아예 해독이 안 될 것으로 압니다. 물론 그 당시 음악 꽤나 좋아했던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정말 눈물 나는 추억의 오디오이기는 하지만.)

이 야외 전축이라는 것이 AC 전원이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아심하기는 한데 뭐 있거나 말거나 별 상관이 없었던 것이 꽂을 데가 있어야 말이지요. 하여간에 이 물건에다가 건전지를 여러 개 넣어서 '주간(週間)감상회'를 하는데 이게 최신 기술의 초절전형 하이테크가 아니다보니 얼마 가지 않아서 곧 탕진이 되고야 맙니다. 좀 오래 들을라치면 '꽝'하고 두들겨야 할 팀파니가 '구우우웅'하고 슬슬 늘어지기 시작한다는 말이지요.절망적으로 늘어져 버린 카세트테이프의 소리를 연상하시면 거의 비슷합니다.

그나마 스피커는 판때기 얹으면 그 밑으로 숨어버리는 몸체에 붙은 간장 종지만 한 것 하나가 전부였으니, 하이파이에 스테레오? 그거 꿈도 꾸지 말아야지요.
꿈도 꾸지 않았으니까 불만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바람 부는 저녁나절의 캠퍼스 잔디밭에 혹은 앉고 혹은 드러누워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때로는 감흥을 못 이겨 그 산만하게 흩어지던 소리들을 지휘하던, 지금도 간혹 생각이 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어쩌면 학과보다도 더 열심히 드나들었을지도 모를 그 서클은 일 년에 한 두 번씩 시내의 다방이나 예식장을 빌려서 정기 음악 감상회를 하고 적자건 흑자건 간에 뒤풀이도 거나하게 하곤 했었는데 그놈의 스폰서 구하느라 이뿐 여학생들 앞세워서 시내 상가 일대를 누비던 추억도 지금 생각하니 참 아릿하네요.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런 시대착오적인 서클은 아마도 이전자전에 고려장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손만 뻗으면 지천에 음반이고 오디온데 누가 그런 곰팡내 나는 서클을 들어가겠냐는 말입니다. 박물관에나 보관을 하든지 말든지.




/80년대 중반 쯤 한참 음악에 불붙기 시작했던 어떤 후배 녀석. 어느 날 박하우스의 베토벤 소나타 판때기를 들고 와서는 인상 팍 쓰면서 묻기를,
'형님! 도대체 버투소(virtuoso)가 누구요?'
(아시다시피, virtuoso는 ‘거장적’이라는 뜻입니다. 되는대로 비르투오조라고 읽기는 합니다만. 하기야 어지간한 판 자켓에는 거장적인 연주라는 뜻으로 너도나도 virtuoso 라고 써 놓긴 했었습니다. 피아노도 치고 바이올린도 잘 키고 못하는 것 없던 그 놈의 버투소....)


/처자들 앞에서 있어 보이는 척 하는 데 있어서 고전음악이 꽤 유용한 도구임을 간파한 어떤 만화방 쥔. 뭔가 이야기 끝에,
'나도 어제 드보르(Dvor.....作?) 판 하나 샀는데.'
(Dvořak.... 뭐, 처음 듣는 사람들은 헷갈리기 좋을만한 이름입니다. 드볼작에게 가서 왜 이름을 그딴 식으로 지었냐고 멱살 잡고 따져 볼까요?)


/어느 소 연주회에서 어떤 기타리스트 왈,
'아노니모스(anonymous)의 로망스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anonymous. 작자 미상, 작자 불명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그날 객석에서는 여기저기 소소한 웃음이 났었습니다만, 뭐 어때요? 연주만 잘 하면 됐지.)


/오래 전 어느 다방에서 어떤 아저씨가 바하 관현악 조곡 중에서 G선상의 아리아를 켜달라는데 판때기 뒤적거리던 디제이 란 놈은 잘난 체 한답시고,
'아저씨. 지 선상의 아리아는 바이올린 곡이라우. 뜬금없이 관현악은 무슨.‘
(G선상의 아리아는 바하 관현악 조곡 3번에 나오는 아리아를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편곡 한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 놈의 디제이는 바로 납니다. 반풍수.... 좀 들었답시고 시건방이 늘었었지요. 자다가 벌떡 일어나 식은땀이 날 일입니다. 아주 망신살이 뻗쳤습니다.)


/팔십 년대 중반, 모 음대 앞에서 찻집 하고 있을 때 웬 음대생 하나.
'아저씨, 베토벤 영원 교향곡 좀 부탁합니다. 듣고 리포트 써야 되는데.'
(베토벤에게는 ‘영원’이라는 부제가 붙은 교향곡이 없습니다. 교향곡 3번 ‘영웅’은 있습니다. 이 고집 센 친구, 그게 아니라고 말 해 줘도 영원이라고 우기길래 교향곡 전집을 꺼내 놓고 보여주며 혀를 찼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저 음대생이라면 이정도 상식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백수 시절 아지트로 삼고 죽치던 어느 지하 찻집에 여대생들 우르르 끌고 와서 한참 장광설 풀던 어떤 음대 교수.
'쇼팽의 첼로 협주곡을 켜 주시오!'
(쇼팽은 첼로 협주곡이 없습니다. 첼로 소나타는 있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차마 말하기가 민망해서 지금은 그 음반이 없노라고 얼버무리고 넘어 갔습니다만, 그 잘 생긴 음대 교수님, 언제 쯤 실수 했다는 걸 눈치 채셨을라는지.)



우리 시대에 클래식 음악이 가졌던 좀 묘한 스탠스가 던져 준 가벼운 웃음들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당사자가 되고 보면 등허리에 진땀이 빠질 순간들이었지요. 그저 콩이나 팥이나 모르는 건 모른다고 자복 하고 납작 엎드리는 게 후환을 없애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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