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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은 음악광이고 오디오쟁이라고 주변 여기저기 실속없는 입소문만 나서는 때때로 몇 곡 선곡해서 녹음 좀 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생일 선물도 있고 학기말에 아이들 담임 선생님께 드릴 선물도 있지만 그 중 잦은 것은 태교 음악이다.
애들 엄마는 내 오디오의 건강 증진에는 인색하면서 이런 때는 본전 뽑자고 덤빈다.
‘구룡포에 뉘 선생이 임신했다던데...’
‘포항 허 선생도 배 불렀다더라.’
.......... 그래서 어쩌라고? @@...
........
무릇 선물이란 마음을 담은 물품을 무상으로 주고받는 일이므로 그 물품의 내용을 두고 음이다 양이다 옥신각신 할 필요가 도대체 없으니 선물을 주고 받는 다는 것은 불문곡직하고 대체로 매우 바람직한 행위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인데다가 더더우기 음악을 선물 한다는 일은 고금에 그 짝을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아름다운 일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사안이 애매한 경우에는 제목이 그럴싸한 얇직하거나 헐직한 책이라든지 아니면 대충 줏어다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이나 이런 것들을 수시때때로 남발하고는 있지만, 뭐, 이런 경우에는 모른척 안그런척 그거 꼭 해야되냐? 슬쩍 한 번 튕겨 본다.
내가 고장난 오디오 붙들고 머리카락 빠져가며 고심할 때나
밤이 늦도록 삐그덕 거리는 오디오 만지면서 진땀 뺄때 그대는 가재미눈으로 날 쳐다보지 않았던가?
염치도 좋구나. 그래놓고 시방 나한테 일거리 하청을 준다는 것인지?
....... 뭐 대충 이런 심사다.
애 엄마는 기계치다.
명색이 오디오쟁이와 한 지붕 밑에서 근 이십년을 살아왔으나 아직까지도 조금이나마 복잡하게 생긴 기기는 아이고 무시라, 아예 만져 볼 생각을 안하는데다가 앞으로도 그것이 개선될 기미는 조금도 없다.
지는 거실에서 바느질하고 내가 마당에서 김치독 묻을 땅 파고 있는 아름다운 구도에서도,
보소, 소리가 너무 시끄러바요,
소리 줄여 달라고 굳이 창문 열고 날 찾는다.
-‘거, 오른 쪽 맨 밑에 누런 앰프 도랑태 다섯개 중에 가운데 껏이 보륨이야~
........아이 깜짝이야. 귀청 떨어지것네. 이런 쇠불알! 왼짝으로 돌리야 된다니깐!!!’
목이 쉬도록 쎄가 빠지게 석달 열흘을 가르쳐 줘 봤자 며칠 안가서 또 마당에 있는 나를 부른다.
‘담이 저그 아부지이~~ 소리가 너무 커요오~~~’
그러니 뭐 하나 녹음 할라치면 나한테 떫은 소리를 못할 밖에는.
나는 테이프 녹음은 자타공인 실력파다.... 라고 말하고싶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오디오나 음악에 관심 없는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 우위에 불과한
순전히 주관적인 평가일 뿐이다.
또한
다들 아시다시피 테이프 녹음은 그 음원이 엘피 일 경우에는 거의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의 중노동에 속한다.
특히 한 삼십분 이상 걸리는 대곡일 경우 노심초사 근근히 녹음을 하던 중, 끝날 때 쯤해서 틱! 하고 한 번 튀고나면
아아..... 무상하다.
그래서 나는 옛적부터 데크 앞에 앉아서 씨름할 때는 공연히 몹시 어려운 작업을 하는드끼 필요 이상으로 인상 팍 구기고 앉아서 모가지에 힘이 뻣뻣하게 들어 간 채로 억시기 튕기는 경향이 있다.
아, 물론 애 엄마도 지 부탁으로 녹음 할 때는 다소 뜰브나마나 서포트에 진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평소에 소 닭 보듯 하다가 그런 때면 내 주변을 뱅뱅 돌면서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는 이야기다.
일진이 좋다면야, 엇주구리, 더러 뜬금없이 사과도 깎아주고 시키잖은 커피도 한 잔 갖다준다.
그런데.... 요즘은 녹음 매체의 주종이 시디로 옮겨졌으니 조금은 편해 졌나?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단 녹음 과정이야 시디가 비할바없이 간편하다.
시간도 단축 되고 프로그램 띄워서 한꺼번에 집어 넣어 놓으면
시간하고 남은 공간까지 주르르 나오니 테이프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이긴 하다.
그러나 엘피를 시디로 옮기고 싶을 경우에는
일반 가정에서의 그것은 순전히 실시간 노가다이매 일견 매우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기도 하고
그 소요 장비의 이동과 설치 또한 허리 부실한 중년에게는 적잖은 부담이며, 게다가 녹음 중에 에러가 나면 아예 갖다 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 물론 다소의 디지털 기기를 구비한다면 그 작업의 난이도가 현저히 수월해지며 그 편집의 묘 또한 콧노래가 나올만큼 손쉬워진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모르는 바 아니나....
모든 것은 그것이면 다 해결 된다. ... 그것...
아무튼 그래서 음으로 양으로 그 놈의 태교음악 편집을 더러 하게 되는데,
말을 그리 꺼냈으니 태교음악이지 그냥 그렇구나 흘려 놓고 듣는다는데 의의를 둔다면 몰라도
그 효과에 대해서는 솔직히 반신반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반에 반신도 안 한다.
우리집 큰 놈이 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깐에는 최대한 신경 써서 '태교 음악' 테이프를 대여섯개 만들었었다.
사나희 태어나 처음으로 아부지가 된다는데 그 아니 들뜨고 설레일소냐.
내가 날마다 경배하여 마지않는 B짜 항렬 영감들은 물론이요 동서고금을 통해 태교에 최고로 좋다는 M모씨의 음악까지 최대한 주옥같은 곡으로 엄선....
애들 엄마도 첫 아이 때라 그랬는지 작은 놈 뱃속에 들었을때모냥 대충 한 잔 걸치고 들어오는 일도 없이 매우 경건하였으며, 뭐 어쨌거나 그놈의 테이프가 마르고 닳도록 참 열심히도 많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 테이프, '짱구 음악'이라는 제목을 달고 지금도 집구석 어딘가에 구불러 댕긴다....
그런데....
태어나는 놈은 순전히 지 성질대로 태어나는 벱인지 아니면 우리집 큰 놈이 돌연변인지
이 놈이 철들면서 미치고 환장하는 음악이란 게....
........ 말도 하기 싫다.
도대체 귀신 씨나락 까묵는 랩인지 힙합인지
아,
언제나 그렇듯이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므로
힙합 매니아들의 항의나 질타는 접수 못한다. (☜ 당연히 보험이다....)
하여간에 음악이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어쨌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최소한 태교 음악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알든 모르든 뱃속에 있을 때 지 엄마가 듣던 음악에 대한 최소한의 친근감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도대체 자기 스스로 음악을 선택 할 수 없었던 유아기 때를 제외하고는
내가 흘려놓은 음악에 대해서 친화적으로 다가 온 적은 거의 없었던 듯하니 부애가 나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음악이 사람의 품성을 만들어 준다는 가설에는 콧방귀다.
그것도 매우 강력한 콧김을 동반한 콧방구다.
저간의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그놈의 허울좋은 태교음악이란 것에 대한 내 견해는 이렇다.
오로지 타고 나기를 음악을 좋아하게 타고 나서
살다 보니 또 어찌어찌 음악을 접할 기회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잠재된 감수성이 촉발.... 어쩌구.... 그런 주의자다.
기회가 있어 코딱지만 한 놈들 여럿 앉혀놓고
별 다른 예고나 설명 없이 고전음악을 흘려 놓아보는 실험을 몇 번 해본적이 있다.
열에 칠팔은 틀림 없이 졸거나 주리를 틀거나 딴짓이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한 두 놈쯤 신통하게 듣고 있는 경우가 있다.
끝나고 물어 보면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그 곡에 대한 그럴싸한 인상도 없지않고.
하지만 나는 그 한 두 놈이 저그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그 엄마들이 거룩하고 숭고한 음악을 들으며 태교를 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태교 음악 무용론자다.
차라리 임산부의 정서 순화나 심리적 평정을 위해 고요하고 편안한 음악을 찾는다면
그거야 뭐 굳이 반대할 명분도 생각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이나 사상이나 철학은 사실 별 상관이 없다.
그 누군가가 ‘태교음악’이라는 선물을 필요로 한다면,
그리고 그‘필요’의 날짜가 서서히 촉박해지면,
나는 그 목적과 시기에 부합하는 그렇고 그런 그럴듯한 음악들을 쎄가 빠지게 고르고 추려낸 다음
그 누군가를 위한 태교 음악이라는 근사한 제목이 붙을 시디를 편집하고, 꿉고, 껍디기를 만들고....
견마지로를 다하여 밤새 뺑이를 친다....
자유 민주주의라고?
....개 풀 뜯어묵는 소리.
세상살이가 대개 그러하듯이 황량한 변방, 적막한 깡촌 마을의 겨울에도
그 사상과 행위의 자유는 제한 되어 있다. 그것도 매우.
.............물론 앞서 이야기 했듯이 가뭄에 콩나드끼 때때로 뻐기거나 튕겨보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익히들 아시다시피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사태는 나의 책임이며.....
또한 역시 짐작 하시다시피... 짐짓 튕겨보는 그 시간 또한 나의 바램보다는 매우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