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오래 전에 이 사람 음반을 처음 사서는 이름을 어찌 읽지 못해 고심하다가 저렇게 읽고 말았습니다.
웃지 맙시다. 그 땐 난감해서 고민 꽤나 했구만요.

첼로에 막 재미를 붙여가던 때여서 이름 값으로 이것저것 꽤나 사 들였고 지금도 이 사람 음반이 몇 개 남아있긴 합니다만 이제는 별로 매력을 못 느낍니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처음 접한 것도 로스트로포비치의 2번 3번이 커플링 된 한 장짜리 음반이었지요.
대개 그런 경우에는 각인이 되어서라도 손이 자주 갈 법한데 처음 몇 번 들어보고는 그만 그대로입니다.


그 때 내 돈 주고 샀던 한 장짜리는 예비군들 골라 쓸어낼 때 쫓겨 나가고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라이센스 샘플 엘피 두 장짜리 시커먼 음반만 갖고 있는데 그것 마저도 안 꺼내본 지가 제법 됐네요. 간혹 생각이 날 때면 푸르니에를 듣거나 뱅가드에서 나온 야니그로에 손이 가지 웬만해서는 좀처럼 잘 안듣게 되어버렸습니다.



녹음이 적은 편이 아니어서 어딜 가나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는 자주 눈에 띄는데 내가 아직 보질 못해 그런 건지 이 영감님의 앙상블 연주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연주 스타일이 워낙에 튀는 성향이라 그런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또한 그리 정이 안 가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힘차고 화려한 보잉으로 인한 대편성의 협주곡 같은 것은 아주 멋진 음반도 더러 있지요. 대표적으로 카라얀이랑 협연한 드볼작 협주곡 같은 건 아주 압권입니다. 그를 거장이라 칭하는 이유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지요.  


하지만 독주곡이나 이런 데서는 그리 매력이 없습니다. 한 십년 전쯤에 요란하게 광고까지 하면서 나온 바하 무반주 첼로조곡에서는 그만 아주 실망을 하고야 말았고. (이것도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습니다만.)
그가 젊어서 녹음했다던 무반주 첼로조곡 2/5번 커플링 음반에서는 좀 아슬아슬하나마 열기 같은 것도 느껴져서 괜찮았는데 만년에 녹음한 그 유명한 시디는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백화점식 양념 불고기 같은 느낌으로 내 장서에서는 고만 탈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소문난 잔치.


하여간 이 음스티 영감님의 연주는 내 욕심에는 늘 2 % 가 부족합니다. 싫어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썩 애착이 가는 것도 아닌 불가근 불가원. 내게는 꼭 그만큼의 영감님입니다.
아무튼 그놈의 음스티라는 얄궂은 이름 때문에 고심참담을 했던 생각이 나서 이야기를 꺼내 봤습니다. 그래도 그 뒤에 나온 어떤 영감님 이름보다는 발음이 좀 나은 편이었지요. 예프게니 음라빈스키....




손님, 마감시간입니다.


열한시가 넘었는데 집에 안가고 대체 뭘 하는지.

콧구멍만한 찻집 주인에게도 사생활은 있는 법이지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이십여 년 전 어느 해 초겨울 어느 때. 남도의 어느 소도시 지방 대학의 캠퍼스 후문 앞. 저녁 시간에만 시간제로 뛰는 아르바이트 여학생도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간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는데 이 손님들은 도무지 나갈 생각을 안 합니다.


구석자리 웅크리고 앉아서 서로 열심히 상대방의 신체를 탐구하며 도무지 나갈 생각을 않는 마지막 손님에게 일부러 커피 잔을 덜그덕 덜그덕 소리 내어 씻는다든지, 설거지 하던 사이폰 스프링을 일부러 그 쪽으로 튕겨 날려서 찾는 척 옆에서 서성거린다든지 창문 열고 환풍기 켜 놓고 청소기 돌리고 근 삼십 분 가까이 있는 눈치 없는 눈치를 다 줘서 겨우 내 쫓고는 셔터를 내리고 간판 불을 껐습니다.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남녀상열지사는 참 아름답고도 쓸쓸한 일이지만 어지간만하면 때와 장소를 좀 가려서 해주면 좋으련만.


손님이 나가자 나는 하는 체 하던 청소를 얼렁뚱땅 마친 뒤 난로 앞에다가 소파 세 개를 붙인 다음 느긋이 드러누워 게으름을 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종일 벌겋게 달아올랐던 갈탄 난로의 열기가 식어 으스스 추워지기 전까지 순전히 나만을 위한 복된 시간을 가질 참입니다.


아, 물론 이 시간쯤 되면 얼추 어슬렁거리고 찾아와서 손끝에 닿는 맑고 차가운 소주잔을 예찬하며 나를 유혹하는 사탄의 자식들이라든지, 아니면 초저녁부터 마감 시간까지 밥도 안 먹고 바에 죽치고 앉아서 커피 한 잔 값으로 저녁 한나절을 낭비하면서 되잖은 음악론을 거품 물고 지껄이다가 간판 불이 꺼짐과 동시에 쩝쩝 은근히 입맛을 다시며 인근 모퉁이 포장마차의 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익고 있는 닭똥집이나 시들어빠진 쑥갓 구겨 넣은 뜨거운 우동 국물을 찬양하는 단골손님들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기는 합니다만.


오늘은 다행히도 그 원수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마도 초저녁부터 종강 기념으로 망태가 되어서 학교 앞 막걸리 집 탁자 위에 안주와 함께 어질러져 있든지 밀린 리포트 때문에 빈 머리 채우느라 도서관 로비에서 줄담배나 뻑뻑 빨아대고 있을게 틀림없지요.
그 원수들이 없으니 어쩐지 조금 허전한 기분이긴 하지만 간만에 찾아온 평화를 내 스스로 깨고 사탄의 유혹을 자청할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사탄은 내 속에도 몇 마리 들어 있지요. 그것이 다만 그 며칠 사이에 그동안 임시변통으로 쓰던 양철쪼가리 싸구려 앰프를 내다 버리고 개비한 근사한 파이오니아 리시버 때문에 뒤집어 진 리비도의 서열에 눌려있을 뿐이지만.
게다가 이 녹턴형 리시버의 시꺼먼 창에 새파랗게 밤하늘 같이 푸른 문자색은 그것만으로도 그냥 예술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자태만으로도 내 마음을 빼앗는 마물이지요.


이걸 가져와서는 십만 원은 받아야겠다는 오디오쟁이 후배를 얼르고 달래고 협박하다가 공짜 커피를 수시로 제공한다는 미끼를 던진 뒤에야 근근이 만 원쯤 깎아서 사고 보니 주머니는 당장 허전해졌지만, 그 댓가로 벙벙거리던 피아노 소리는 댕글댕글하게 바뀌었고 떡덩어리처럼 뭉텡이로 나오던 오케스트라는 가닥가닥 풀어헤쳐져서 제자리를 잡으니 며칠 몇 끼 굶은 들 뭐 대수겠습니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데.


스위치 박스로 가서 실내등을 대충 끄고 난로 옆의 작은 전구만 몇 개 켜 두었습니다. 아직도 조금은 발그레 하게 달아있는 갈탄 난로에 화목 조각을 두어 개 더 던져 넣고 나면 물 날은 두툼한 쥐색 카페트 때문인지 이런 때면 실내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합니다.


아하. 조용한 밤에 들으니 역시 별 소리가 다 납니다. 조용하기만 한 줄 알았던 듀얼 1219의 아이들러 구르는 소리가 나직하게 우르릉거리고 이내 그 비할 수 없이 당차고 선명하고 맑고 매끄러운 파이오니아 리시버의 맑은 소리가 텅 빈 홀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오디오를 바꾸고 난 뒤 그 결과가 만족스러울 때의 희열은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참 이해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합니다. 열락이지요. 아무튼 그렇게 한 밤중의 복된 시간은 조금씩 흐르고 종일 서빙하느라 지쳐버린 나는 음악에 취해 있다가 어느새 깜빡 잠이 들었었나봅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요?


머리끝이 쭈뼛 섰습니다. 졸다 깨서 헛소리를 들은 건가요? 아닌데?
아니 대체 누가 어둑한 구석에서 중얼중얼 흥얼거리는 건지. 내가 조는 사이에 술 취한 주정뱅이가 들어 와서 웅크리고 앉은 것도 아닐 테고 아니면 어떤 간 큰 도둑놈이 장물 챙겨놓고 콧노래를 부른단 말인지. 내가 필시 잠이 덜 깬 거지. 그럴 리가 있나.
화들짝 일어나서 불을 다 켰습니다.
홀에는 아무도 안 보입니다. 주방 뒤의 커튼을 열고 방안을 살펴봐도 아무도 없습니다. 저 윗자리 책장 있는 원탁 쪽을 봐도 아무도 없네요.
그럼 혹시 화장실에서 귀신이 쭈그리고 앉아서 만두를 주워 먹고 있는 건지. 화장실도 말끔히 비었습니다. 그럼 대체 아까 그 소리는 뭐지요? 아차! 또 들립니다.
저게 지금 피아노 소리를 따라 흥얼거린다는 말이지요. 이게 대체 뭔 조화인지.


나는 그만 부리나케 외투를 집어 들고 찻집을 나서버렸습니다. 누구든지 내 역성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야 할 판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무서웠거든요.
다행히도 찻집 앞 아파트 모퉁이 포장마차에는 후배 녀석 하나가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막 술심이 오르기 시작하는 녀석을 다짜고짜 뒷덜미를 잡은 채로 끌어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술 마시다 졸지에 끌려나온 녀석은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뭔 귀신이 씨나락 까먹고 앉은 이야기를 하냐고 핀잔입니다.
이런 나쁜 놈.
나만 하니까 그래도 귀신이랑 용감하게 싸워 무사히 탈출을 한 거지 너 같으면 그 자리에 까무라쳐서 지금쯤 거품 물고 있을 거라고 허풍을 쳤습니다.


못내 가기 싫다고 주리를 트는 후배를 얼르고 달래다가 결국은 해결사 노릇을 해주면 돼지 갈비로 근사하게 한 잔 사겠다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약조를 하고서야 후배를 귀신 밥으로 삼아 노래 귀신이 중얼거리는 찻집으로 끌고 들어갔지요.
푸근하고 정겹던 내 찻집은 그 날 저녁 잠시 사이에 귀기가 흐르는 무시무시하고 어둠침침한 귀곡산장으로 변해 있었고 화목이 다 타버린 난로는 그 사이에 거의 식어서 어슬한 냉기까지 감돌고 있었습니다. 내버려두고 갔던 턴테이블에서는 다 돌아간 톤암이 제자리걸음을 하느라 직직거리는 소리만 나오고 있었고.


그제서야 가만 살펴보니 내가 참 놀라기는 놀랐던 모양으로 내실 방문은 열어 놓은 채로 커튼은 말려서 한쪽으로 밀려있었고 화장실 문은 훤하게 열린 채 의자까지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었네요. 아이고 망신스러워라.
일단은 그래도 귀신 밥을 하나 데리고 왔으니 조금은 진정이 되어서 다소 여유를 찾았습니다. 톤암을 제자리에 올려놓고 대충 정리를 한 다음 후배와 조용히 앉아서 또 다시 그 귀신이 중얼거리기를 기다렸지요. 하지만 이게 뭔 눈치를 챘는지 이젠 끽 소리도 없습니다. 한동안 기다리던 그 녀석은, 거봐라 대명천지에 무신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냐며 핀잔이었고 나는 졸지에 헛것을 보고 자지러진 겁쟁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가만 다시 생각을 해보자. 귀신이 설마 나보다 못생긴 후배를 더 무서워해서 내 뺀건 아닐 테고, 나하고 놀자 하다가 내가 달아나니 심심해서 가 버린 건지?
잠시 궁리 끝에 언뜻 생각이 난 것이, 옳거니! 그 귀신은 피아노 소리를 따라 중얼거렸었지. 그러니까 내려놓았던 톤암을 다시 음반 위에 올리고 음악을 다시 흘려보자니까요. 그럼 혹시 그 귀신이 또 찾아올지도 몰라요. 가만, 떠들지 말고 잘 들어보라니까!


..............!!!!


거 봐! 들리지!
드디어 사라졌던 중얼거림이 다시 들리기 시작하자 그 녀석도 아연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윽고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귀신을 찾아내기 시작했는데, 모가지만 달랑 남은 달걀귀신이건 스르르 치마 자락 미끄러지는 처녀귀신이건 뭐가 보여야 찾지. 형체는 없고 소리만 중얼거리는 귀신을 무슨 수로 찾는다는 건지.
뭔가 찜찜한 가운데 홀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이게 혹시 바하의 유령은 아닐까, 내가 몹시도 음악을 사랑하여(....) 구천에 떠돌던 바하의 유령이 지가 만들어 놓은 피아노 소릴 듣고 얼른 날아와서 내 찻집 구석 어느 한켠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우울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별 황당무계한 추리까지 하고 있었는데,


눈치 빠르신 분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그건 음반에 녹음된 피아니스트의 중얼거림이었고 그 판때기는 굴드의 골드베르크 연주였다는 싱거운 이야기입니다.
아니, 원, 그 괴팍 맞은 굴드의 괴상한 연주 버릇도 얄궂기는 하지만 왼 종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대던 음반인데 왜 그때서야 그 소릴 들었냐고요?
그거야 낮에는 장사한다고 분주하고 밤에는 한 잔 하러 나간다고 바쁘고, 그리고 음악이라고 맨 이 음반만 들어대는 것도 아니니 그렇지요.
그래도 그렇지 아닌 밤중에 그런 등신같은 난리 법석이 어디 있냐는 말이지요.


사실 뭐 그 음반도 그렇고 프랑스 조곡도 그렇고 가만히 귀 기울여 듣다보면 굴드의 중얼거림이 더덕더덕 뭍어 있지만 바꾸기 전의 고물 앰프로 들을 때는 잘 안 들렸어요. 그러니까 그 귀신 소동의 범인은 이 잘생긴 파이오니아 리시버라는 얘기입니다.
때마침 기말 시험 무렵이라 술친구들이 안 찾아오고, 밤은 이슥하여 쥐 죽은 듯 고요했고, 게다가 며칠 전에 개비한 앰프를 제대로 들어본 첫 날이었고, 이런 게 우연히 딱 하나로 맞아 떨어져서 그야말로 ‘아다리’가 된 거였지요 뭐.


그 난리법석의 주인공인 잘생긴 파이오니아 SX 1500 TD라는 리시버는 내가 몇 년 뒤 찻집을 그만두고 어찌어찌 대충 장가를 들고 난 후 내 방에서 양껏 사랑을 받다가, 사는 것이 허랑하여 고향을 떠나 동해안으로 이사를 와서까지 수 년 동안 깡통 출력석 하나 갈아 준 것 말고는 별 고장 없이 내게 견마지로를 다하다가, 나 때문에 이 몹쓸 길로 접어들어 지금은 럭스만 앰프에 프로악 스피커 매어서 듣고있는 동생의 입문기로 시집갔다가, 그럭저럭 천수를 다하고 어느 고물상으로 실려 갔지요.


그래도 스물 네 시간 돌려대는 찻집에서 몇 년을 버티다가 오갈 데 없는 백수 손에서 아침부터 밤중까지 또 몇 년을 돌려대고, 어지간히 오래 버틴 셈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쓴 걸로 치면 수십 년은 쓴 셈 일겁니다.
지금도 그놈과 비슷한 걸 보면 그냥 괜히 하나 가지고 싶어서 침을 꿀꺽 삼키지요. 나의 그 구식 일제 리시버들에 대한 애정은 어딘가 좀 맹목적인 데가 있어서.
미국제나 유럽제들도 이뿐놈들이 많지만 크게 호화롭지도 않으면서 은근히 아름다운 일제 구식 리시버들이 나는 하염없이 좋아요. 거기다가 문자 창이 새까만 녹턴형이면 그만 나는 무장해제가 되고 맙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놈을 하나 만난다면 하나 끼고 살고 싶은데 운이 안 닫는지, 아니면 워낙에 나이가 많은 놈들이라 만나는 놈들마다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은 일생 보듬고 갈만한 놈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틈만 나면 산수이나 파이오니아 녹턴형 리시버 하나 챙겨 볼 욕심은 늘 꿀떡같이 품고 있답니다.


마지막으로,
전혀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그 귀신 밥으로 삼았던 후배에게 돼지갈비를 샀냐고요?
흥.
지가 해결해 준 것도 아닌데 왜 삽니까? 그래도 내가 자린고비는 아니라서 그럭저럭 이슥해진 오밤중에 둘이서 사이좋게 한 잔 하기는 했지요. 그냥 싸고 양 많은 안주로.





흐리다.
흐리고 춥고 쓸쓸하다.

이런 날은 부디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낮에도 전등불을 밝힌 저자 거리에서 반가운 이들을 만나 하등 쓸모없는 말들을 지껄이며 시간을 낭비하고, 
그리하여 이윽고 비라도 슬금슬금 뿌려지면,
아아, 비로소 나도 가슴 설레는 사랑을 해야만 하는데.
아주 따뜻하고 편안하고 반짝거리고 세련된 부드러운 연인과의 불타는 연정이었으면 좋겠는데.
기왕에 한다면 말이지. 

어쨌든 이런 날이다.
흐리고 춥고 쓸쓸하고 외로운 날이다.
Famous blue raincoat. 코헨의 노래다. 레오나드 코헨. 지독한 노래.
이 소도둑놈 같은 친구는, 아, 정말 어쩌자고 이렇게 끝없이 쓸쓸한 노래를 지어 불렀을까.

저 흐린 하늘 중간 어디 쯤에 떠도는 어쿠스틱 기타,
지극히 고요한 눈 덮인 벌판 위를 유령처럼 떠다니는 듯한 누군지 알 수 없는 여인네의 목소리. 
저 여인이 혹시 제인일까. 아닐까.
요즘 들어 자꾸 달착지근한 여자 목소리가 듣고 싶다. 아무래도 내가 바람이 든 모양이다.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어버린 모양이다.

하지만 일어나기가 싫다.
이 음반이 꽂혀 있는 너덜너덜한 엘피 꽂이를 뒤적이려면 구겨서 밀쳐놓은 이불을 치워야 하고
이불을 구겨 던지는 장소는 하필이면 그 누런 판때기가 있는 구석 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래서 이 음반을 찾아 걸지 않으면
코헨의 왼쪽 어깨너머에서 부르는 그 여자 가수의 절창을 찾아 들을 수가 없는데.
저 소도둑놈 같은 친구는 왜 이렇게 끝없이 쓸쓸한 노래를 지어 불렀을까.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정말 어쩌자고 이런 날에.

 famous blue raincoat

It"s four in the moring, the end of december
I"m writing you now just to see if you"r better
New york is cold but i like where i"m living
There"s music on clinton street all thru the evening
I hear that you"r building your little house
deep in the desert
You"r living for nothing now
I hope you"re keeping some kind of record
Yes and jane came by with a lock of your hair
She said that you gave it to her
That night that planneded to go clear
Did you ever go clear?
The last time we saw you, you looked so much older
Your famous blue raincoat was torn at the shoulder
You"d been to the station to meet every train
You came home alon without lili marlene
And you treated my woman to a flake of your life
And when she came back she was nobodys wife
Well., i see you there with a rose in your teeth
One more thin gypsy thief
Well, i see jane"s awake
She sends her regards
And what can i tell you my brother, my killer
What can i possibly say
I guess that i miss you, i guess i forgive you
I"m glad you stood in my way.
If you ever come by here for jane or for me
Well, your enemy is sleeping and his woman is free
Yes, and thanks for the trouble you took from her eyes
I thought it was there for good so i never tried.
And jane came by with a lock of your hair
She said that you gave it to her
That night you planned to go clear
Sincerely, a friend








한 때 노래방만 가면 두드러기가 나던 때가 있었지.

노래를 전혀 못하는 음치라서가 아니야. 도대체 아는 노래가 있어야 말이지요. 

명색이 이제는 한 고개 넘어가는 나이에 그래도 벗이랑 어울려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자면 경우와 장소에 따라서 장단 맞출 만큼은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 때의 내 가슴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깊은 고민이요 자괴감이더란 말씀이야.
언젠가
누군가가 쓴 글 중에 소풍이나 야유회 가서 흥 돋을만하면 마이크 넘겨받아 차렷 자세로 목소리 깔고 동심초 불러서 분위기 깬다는 그런 곤란한 푼수들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거 꼭 날더러 한 이야기 같아서 정말 찔끔했었구만.

오래 전 직장 생활 할 때 체육대회 끝나고 뒷풀이를 한다길래 엉거주춤 따라 갔다가 돌아와요 부산항에 일편단심 민들레야 천둥산 박달재 한참 신난 좌중에서 진짜로 동심초 불러서 확 깨게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바로 나라니까.


그래도 뭐 나도 통기타 들고 70년대 포크송 계열로 놀자면 제법 불러대기는 하지. 

뭐, 노래를 잘한다는 자랑은 아니니 눈 흘기지 맙시다. 남이사 내 노래를 어떻게 듣거나 말거나 간에 하여튼 수십 곡 정도는 내리 부를 자신이 있었다는 이야긴데...
뽕짝은 왜 그렇게 싫었을까. 고리답답해 보이고 어쩐지 천박해 보였던 뽕짝들. 하기야 지금도 천박하기 짝이 없는 얄궂은 뽕짝들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 혀를 차면서 외면했던 구닥다리 뽕짝들이 수년 전부터 이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으로 슬금슬금 내 입 주변으로 맴돌기 시작하더라는 말씀이다.

그 때는 어쩌다 한 번씩 불러 봐도 도대체 내 체질에 안 맞는 듯해서 남의 옷 뒤집어 쓴 듯이 어색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불러 봐도 가락 끝마디가 멋지게 꼬부라지는 것이 꽤 그럴 듯 하다. 이제는 밤중에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졸음이 오는 때면 어김없이 뽕짝 시디를 밀어 넣고 고래고래 몇 곡을 불러 제끼지. 운전 중 졸음에는 그저 뽕짝이 그만이야.

 게다가 뭐라고 멋지게 표현할 재주가 없기는 하지만 내 가슴 밑바닥 있는 걸 슬금슬금 긁어내는 뭔가가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연유로 해서 드디어 내 딴에는 애를 써서 레파토리를 몇 개 장만했어.


그런데 이제는 어쩌다 노래방에 따라 갈 때면 혹시나 누가 내 레파토리 선점할까봐 노심초사야. 

예닐곱 개 될까 말까 하는 그거 그나마 남들이 다 불러버리면 나는 뭘 부르냐는 거지. 

무게 잡냐, 분위기 잡친다, 이런 억궂은 비난을 면하려면 마이크 돌아 올 때마다 한 곡씩은 얼추 불러야하는데 그거 참 모르는 사람은 정말 이해 못할 고민 중의 상고민이올시다.

그래도 뭐 하여튼 이제는 뽕짝이 좋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구성진 가락과 가사 밑에 숨겨진 은근하고 상투적인 눈물 냄새며 땀 냄새며 땟국 절은 살 냄새가 이제야 맡아지더라는 거야. 똑 부러지고 세련된 화성으로 반짝거리는 포크 계열의 노래나 발라드풍의 노래들도 그렇다고 그 가치를 다 잃은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그렇게도 구질구질해 보이던 뽕짝이며 트로트들이 그 속에 이런 은근하고 눈물 어린 사람 냄새를 품고 있었던가 싶다보니 그걸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한 세월 보내버린 나는 오갈 데 없는 반풍수거나 얼치기임에 틀림없어.

 
1.4 후퇴 때의 흥남부두 풍경이라든지 이런 기록물들을 보면서 그 때의 실화를 그대로 그려서 불렀다던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노래를 같이 듣노라면 부녀 생이별의 그 애절함이 얼마나 절절한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데 그걸 뽕짝 가락이 아니었더라면 어찌 그리 절절히 불렀겠냐고.
그렇지. 뽕짝은 어른들의 노래더라, 결국은 그 말이다. 늬는 한 고개 넘어서서 이제야 어른이냐고 대번에 가재미 눈 흘겨 뜨고 으르릉거릴 분들도 없지는 않겠다만 


뭐 그래도 할 말은 없습지요. 뽕짝에 관해서만큼은 도대체 입 뗄 여지가 없으니 좀 떫어도 고스란히 뒤집어 쓸 밖에.
어쨌든 그 이전자전 고린내 나는 뽕짝들이 이제야 가슴 한 구석에 슬그머니 깃들어 자리를 잡나 싶다보니 기분도 묘하고 이제는 그만 한 고개 아주 넘었나 싶어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고.  
아,  그럼 오늘은 다락에서 케케묵은 기타나 꺼내서 열심히 배우고 익힌 뽕짝이나 몇 곡조 구성지게 뽑아 볼까나. 

아니, 그렇다면 옆에서 장단 맞출 친구도 몇 있어야 구색이 맞는데, 내친 김에 그냥 오늘 밤 온갖 친구 다 불러 내서 적당히 한 잔 걸치고 앗싸 노래방에나 쳐들어 가버릴까! 


 



모짜르트의 39번 교향곡에는 두 개의 주제가 대립되어 서로 발전, 융화하며.. 이런 소나타 형식의 악곡은 서로 다른 두 문명의 융합이라는 근대 서양문명의 기조와 그 궤를 같이 하고.. 결국 이런 형식의 악곡은 당대의 문화가....


일없이 TV 음악채널을 켜놨더니 저렇게 근사하고 근엄한 해설이 흘러나온다.


......저런 해설을 들으면 나는 그만 주눅이 들고 까닭없이 눈치가 보인다. 때로는 짜증이 좀 나기도 한다. 

음악 하나 들으면서 근대 서양문명의 기조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 원. 

그나마 음악은 안 나오고 해설만 계속 되길래 그냥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저런 해설을 듣다보면 그만 흥미도 반감되고 감성도 죽어버리지. 내가 워낙에 이론적으로 취약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론적 배경이나 저런 해설스러운 해설은 사실 별 관심이 안간다. 음악 하나 듣는데 꼭 저런 해설이 필요한지도 의문이고. 

막대한 지식을 섭렵하든지, 아니면 두꺼운 책이라도 뒤적거려봐야 나올만한 그런 해설을 앞세운 방송들은 아무래도 좀 그렇지.

그냥 무턱대고 듣다보면 어느 순간에 아, 이거다 하고 뭔가 꽂히고, 

듣는 것만으로는 욕심이 안차면, 그제서야 책이며 정보들을 뒤적거리는... 

음악을 듣는데 무슨 타입이 있고 줄기가 있을까마는 굳이 따지자면 나는 그런 타입이다. 

음식은 먹어서 맛있으면 그만이고 음악은 들어서 좋으면 그만이라는 주장이지


병이 들었거나 음식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밥 그릇을 엎어다가 저울에 달고 시험관에 밀어 넣을 필요가 있겠지만 

배고파서 밥상에 앉은 사람들 앞에 앉혀놓고 그 쌀은 수분 함량이 어떻고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분포는 이러저러하며 국을 끓인 미역은 어느 바닷가에서 누가 뜯어다가 어느 집 마당에서 말려서... 그걸 꼭 알고 먹어야 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밥만 다 식어버리지.

먹고 맛있으면 그만인 거지. 몸에 좋으면 더 할 나위 없고. 다 먹고 나서 하도 맛있는 음식이라 대체 이 밥을 누가 지었는지, 반찬은 뭘로 만들었는지 궁금한 사람은 그 때 가서 물어보거나 공부를 하면 될 일이고.


음악은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끼라고 만들어 놓은 물건이지 눈 부릅뜨고 따지고 분석하고 시시콜콜 머리 싸매라고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건 음악 학자들이나 음악가들에게 맡겨 두고 우리는 마르고 닳도록 듣다가 감동하고 눈물짓고 그러면 그만인 것이다. 

걸핏하면 써 먹는 말 그대로 머리를 삶으면 귀는 절로 익을 걸 왜 미리 귀만 잡고 땡기고 흔드냐고. 


현학 취미. 

그건 어디 가서 목에 힘 줄 때나 쓰시고 음악은 그저 되는대로 부지런히 들어서 섭취할 일이다. 

음악이야 많이 먹어서 체할 일도 없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이고 말고.

거기다가 적잖이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는 나한테 넌지시 뭔가 말을 걸어오는 그런 음악이며 연주가 좋아. 

뭔가를 굳세게 주장하거나 머리 싸매고 생각해야하는 그런 음악들은 이제는 숨이 가빠서. 

때로는 굳어버린 머리나 가슴팍을 쑤셔서 뭔가 울컥 치밀게 하는 그런 것에 환장을 하기도 하지만 

요즘 들어 그보다 더 좋은 건 뭔가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는 음악이다. 

듣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도 멱살 잡고 흔들어 깨우지도 않으면서 그냥 저 혼자서 나직나직 뭔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아니면 저 혼자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그냥 가버리는 그런 음악.


아, 그래도 그런 곡들을 전혀 안 듣는다는 거는 아니다. 

가는 세월이 희미해지고 앞뒤가 어리둥절할 때면 그 때 그 시절에 들었던 그 무지막지한 음향을 간혹 맛보면서 지그시 고양되어 보는 것도 심신에 자양이 되고 말고. 다만 그 이전처럼 그런 곡을 다반사로 듣기가 버겁더라는 말씀이다. 

그러게 내사 자빠져 자든지 코를 불든지 나는 나대로 자다 깨다, 지는 지대로 투덜투덜 뭔가 이야기를 해주는 그런 음악이 이제는 훨씬 좋다니깐...





베토벤의 교향곡 5운명입니다.

세상에 흔해 빠진 게 베토벤의 운명입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장르를 털어서 가장 많은 녹음을 한 음반이 아닐까요.

 

어제 운명을 들었습니다.

들을려고 들은 게 아니라 4번을 듣다보니 커플링 된 5번도 따라나왔습니다.

첼리비다케 실황 녹음이었습니다. 베토벤의 4번 중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입니다.

하지만 이 고집불통의 첼리비다케 영감님도 5번만큼은 그다지 심에 차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1악장만 듣고는 꺼버렸습니다.

 

한 때 이 곡에 미쳐서 자나 깨나 돌려댔던지라 한 가닥 한다하는 연주는 제법 들어 봤었지요.

한 세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은 물론이고 근래 한 참 유행하던 원전악기 연주들에다가 새로 태어난 신생 지휘자며 굴드의 피아노 연주까지.

한동안은 닥치는 대로 구한 음반들을 수 십장 쌓아 놓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전곡 비교 감상을 한답시고 패대기를 친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고 시간 아까워라.

 

당연히 다들 한다하는 거장이며, 나 같은 얼치기보다야 적어도 십억 배 쯤은 더 음악을 사랑했을 이 위대한 할배들의 녹음이 하나인들 허투루 내 놓은 게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무식이 용맹이라고 이건 옳다 저건 그르다 더러더러 침깨나 튀기기도 했습지요.

그 와중에 별 기대9 없이 내 손에 왔다가 지나치게 사랑을 받은 나머지

그 사랑이 너무 지나쳐 그만 비명횡사하고 만 음반이 있었으니, 바로 요 아래 처참한 몰골로 깨져버린 야노스 페렌치크/헝가리 국립 관현악단의 연주입니다.

저 음반 역시도 어제 들었던 첼리비다케처럼 4,5번이 커플링이라 그만 또 가슴 아픈 사연이 생각나서 주절거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 집 큰 놈이 막 걸음마를 할 때쯤이니 아마도 1992년 겨울 쯤 되지 않았을까요.

서울 다녀오는 길에 종로 어디쯤인가에 있던 SK플라자에서 저 음반을 샀습니다. 페렌치크가 연주하는 리스트에 매료되어 있던 차라 은근히 기대를 하고 집어 들었지요.

 

집에 돌아와서 일청을 한 후, 뭐 그다지 대단한 연주는 아니라고 일단 점수를 매겼습니다.

하지만 1악장 중간쯤에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서늘한 생동감에 슬쩍 소름이 돋았던 바람에 어쩐지 자꾸 손이 갑니다. 날이 갈수록 듣고, 듣고, 또 듣고 또 듣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리 몰랐던 것이 들을 때마다 그 느낌이 새로운 것이 급기야는 그 부분이 나올때쯤이면 팔에 오싹 소름이 돋고 눈물이 핑 돌기도 했지요.

, 관현악이 다소 기복이 덜하다거나 녹음이 답답하다거나 이런 단점들은 단칼에 휙! 날아 가버리고 오로지 그 날개 달린 듯 상승, 하강하는 현 합주의 생명력에 넋을 잃었습니다. 급기야는 아예 리피트를 걸어놓고 하루 종일 이 음반만 돌려댔습니다. 아주 미쳐버린 거지요.

 

그렇게 페렌치크의 운명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던 어느 날

어린놈이 배고프다고 징징대길래 어디보자, 그렇다면 아빠가 우유를 타 주마, 방 한 구석에 있던 젖병을 들고 더운 물이 어디 있더라, 왔다리 갔다리 하는 차에, 한 순간 지끈!’ 별로 크지는 않으나마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린 놈이 털퍽거리며 걸음마를 하다가 막 꺼내놓은 저 음반을 작신 밟아버린 거지요. 황망간에 어린 놈을 대충 달래놓고 탈기를 하고 들여다보니 그나마 다 쪼개진 건 아니고 반을 쪼개놨는데 하필이면 4번은 멀쩡하고 그 금쪽같은 5번이 들어있는 부분만 딱 쪼개놨습니다.

44악장까지는 멀쩡하게 잘 돌아가다가 5번 들어서면 이내 틱틱틱틱 튀기 시작해서 건너뛰고 날아가고 밑도 끝도 없이 단숨에 뮤팅 걸려서 끝나버리지요. 허이구........



 

그 때만 해도 뭐 어찌어찌 다시 구할 수 있으려니 했지만 사는 곳은 깡촌이고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쉽사리 물건을 사고팔고 하던 시절도 아니다보니 이리공 저리공 세월은 가고...

그만 십 여년이 훌쩍, 어느 새 음반은 절판 돼 버리고 다시 구할 길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요. 지금 생각해도 애석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깨진 시디조차 버리지를 못하고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그저 인연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리고는 있는데

인간이란 것이 좋았던 것은 왜 그리도 오래 기억하는 것인지. 어제도 오늘도 공연히 페렌치크의 운명 생각으로 아쉬운 마음을 들썩이다가 생각 난 김에 투덜거려 봅니다.

 

 

[비탈리 샤콘느]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



언젠가 비탈리의 샤콘느 음반 표지에다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놓은 걸 보고는 혼자 픽 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비탈리의 샤콘느를 듣다보면 그 비장한 멜로디의 흐름이 사뭇 처절한 바가 없지는 않으나, 사람이 겪어 내야하는 지극한 슬픔이라는 것이 그렇게 시종일관 드라마틱 하거나 비장한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온 몸의 기운이란 기운은 다 빠져 나가고 나 이외의 모든 세상과 단절 된 느낌으로 한 없이 잦아들어 그만 아득하게 맥을 놓아버릴 그런 것이 슬픔이 아닐까 싶은데 말입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밖으로 슬픔을 내지르는 곡은 사실 조금도 슬프지 않습니다. 진짜 슬픔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지요. 불각시에 옆구리를 찔린 듯이, 길가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일시에 가슴이 무너져 내려서 무장해제 되어버리는, 슬픔이나 감동은 그렇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비탈리의 샤콘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나 슬퍼 죽겠으니 제발 나를 봐다오’ 하고 광고를 하는 듯 한, 지나치게 감성적인 멜로디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말 가슴이 무너지도록 슬프다면 그 슬픔을 포장하거나 가공해서 드러낼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뭐야, 창문 활짝 열어놓고 나 슬퍼 다 죽어간다아! 하고 동네방네 나발 부는 주제에,’

뭐 그런 비슷한 생각이지요. 개인적으로 그리 생각했다는 뜻이니 이 곡을 사랑하는 분들께서도 그리 고깝게 여기실 것 까지는 없겠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음악 중 턱없이 억장이 무너졌던 곡은 니콜라에바의 내가 사랑하는 바하 1집에 실려있는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 입니다. 
이 곡을 듣다보면 말할 듯 말할 듯 하다가 차마 다 말하지 못하고 결국 맥없이 주저앉아 눈물 삼키는 듯한 마지막 마디 때문에 정말 억장이 무너져 내리지요.


굳이 비교하자면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가 인간이 내면적으로 겪어 내야 할 슬픔이라면 비탈리의 샤콘느는 조금은 드라마틱하고 또 어느 한편으로는 조금은 자신의 감정을 바깥으로 치장한 느낌이 없지 않은, 그런 슬픔이란 느낌입니다.
하기야 사람마다 귀가 다르고 가슴이 다른데 누가 슬픔이나 절망을 일렬로 줄 서라 저울로 달아 값을 매기겠습니까만. 말하자면 내 개인적인 느낌이 그렇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극단적으로, 그보다 더한 슬픔을 말하자면 나는 모든 소리를 잠그고 눈도 감아 버려야 한다는 쪽입니다. 가슴이 찢어지고 억장이 무너지는데 사람의 소리로 그것을 포장하겠다는 시도부터가 불순하다는 생각이지요. 그래서 더러 미디어에서 보고 듣는 비극적인 현장 상황에다가 음악을 더빙해서 그럴싸하게 드라마화 시키는 짓을 극도로 혐오하는 편입니다. 도대체 타인의 절망이나 슬픔을 재료로 삼아서 팔아먹을 작품을 만들겠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그런 생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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