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다.
흐리고 춥고 쓸쓸하다.

이런 날은 부디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낮에도 전등불을 밝힌 저자 거리에서 반가운 이들을 만나 하등 쓸모없는 말들을 지껄이며 시간을 낭비하고, 
그리하여 이윽고 비라도 슬금슬금 뿌려지면,
아아, 비로소 나도 가슴 설레는 사랑을 해야만 하는데.
아주 따뜻하고 편안하고 반짝거리고 세련된 부드러운 연인과의 불타는 연정이었으면 좋겠는데.
기왕에 한다면 말이지. 

어쨌든 이런 날이다.
흐리고 춥고 쓸쓸하고 외로운 날이다.
Famous blue raincoat. 코헨의 노래다. 레오나드 코헨. 지독한 노래.
이 소도둑놈 같은 친구는, 아, 정말 어쩌자고 이렇게 끝없이 쓸쓸한 노래를 지어 불렀을까.

저 흐린 하늘 중간 어디 쯤에 떠도는 어쿠스틱 기타,
지극히 고요한 눈 덮인 벌판 위를 유령처럼 떠다니는 듯한 누군지 알 수 없는 여인네의 목소리. 
저 여인이 혹시 제인일까. 아닐까.
요즘 들어 자꾸 달착지근한 여자 목소리가 듣고 싶다. 아무래도 내가 바람이 든 모양이다.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어버린 모양이다.

하지만 일어나기가 싫다.
이 음반이 꽂혀 있는 너덜너덜한 엘피 꽂이를 뒤적이려면 구겨서 밀쳐놓은 이불을 치워야 하고
이불을 구겨 던지는 장소는 하필이면 그 누런 판때기가 있는 구석 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래서 이 음반을 찾아 걸지 않으면
코헨의 왼쪽 어깨너머에서 부르는 그 여자 가수의 절창을 찾아 들을 수가 없는데.
저 소도둑놈 같은 친구는 왜 이렇게 끝없이 쓸쓸한 노래를 지어 불렀을까.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정말 어쩌자고 이런 날에.

 famous blue raincoat

It"s four in the moring, the end of december
I"m writing you now just to see if you"r better
New york is cold but i like where i"m living
There"s music on clinton street all thru the evening
I hear that you"r building your little house
deep in the desert
You"r living for nothing now
I hope you"re keeping some kind of record
Yes and jane came by with a lock of your hair
She said that you gave it to her
That night that planneded to go clear
Did you ever go clear?
The last time we saw you, you looked so much older
Your famous blue raincoat was torn at the shoulder
You"d been to the station to meet every train
You came home alon without lili marlene
And you treated my woman to a flake of your life
And when she came back she was nobodys wife
Well., i see you there with a rose in your teeth
One more thin gypsy thief
Well, i see jane"s awake
She sends her regards
And what can i tell you my brother, my killer
What can i possibly say
I guess that i miss you, i guess i forgive you
I"m glad you stood in my way.
If you ever come by here for jane or for me
Well, your enemy is sleeping and his woman is free
Yes, and thanks for the trouble you took from her eyes
I thought it was there for good so i never tried.
And jane came by with a lock of your hair
She said that you gave it to her
That night you planned to go clear
Sincerely, a friend








한 때 노래방만 가면 두드러기가 나던 때가 있었지.

노래를 전혀 못하는 음치라서가 아니야. 도대체 아는 노래가 있어야 말이지요. 

명색이 이제는 한 고개 넘어가는 나이에 그래도 벗이랑 어울려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자면 경우와 장소에 따라서 장단 맞출 만큼은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 때의 내 가슴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깊은 고민이요 자괴감이더란 말씀이야.
언젠가
누군가가 쓴 글 중에 소풍이나 야유회 가서 흥 돋을만하면 마이크 넘겨받아 차렷 자세로 목소리 깔고 동심초 불러서 분위기 깬다는 그런 곤란한 푼수들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거 꼭 날더러 한 이야기 같아서 정말 찔끔했었구만.

오래 전 직장 생활 할 때 체육대회 끝나고 뒷풀이를 한다길래 엉거주춤 따라 갔다가 돌아와요 부산항에 일편단심 민들레야 천둥산 박달재 한참 신난 좌중에서 진짜로 동심초 불러서 확 깨게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바로 나라니까.


그래도 뭐 나도 통기타 들고 70년대 포크송 계열로 놀자면 제법 불러대기는 하지. 

뭐, 노래를 잘한다는 자랑은 아니니 눈 흘기지 맙시다. 남이사 내 노래를 어떻게 듣거나 말거나 간에 하여튼 수십 곡 정도는 내리 부를 자신이 있었다는 이야긴데...
뽕짝은 왜 그렇게 싫었을까. 고리답답해 보이고 어쩐지 천박해 보였던 뽕짝들. 하기야 지금도 천박하기 짝이 없는 얄궂은 뽕짝들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 혀를 차면서 외면했던 구닥다리 뽕짝들이 수년 전부터 이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으로 슬금슬금 내 입 주변으로 맴돌기 시작하더라는 말씀이다.

그 때는 어쩌다 한 번씩 불러 봐도 도대체 내 체질에 안 맞는 듯해서 남의 옷 뒤집어 쓴 듯이 어색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불러 봐도 가락 끝마디가 멋지게 꼬부라지는 것이 꽤 그럴 듯 하다. 이제는 밤중에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졸음이 오는 때면 어김없이 뽕짝 시디를 밀어 넣고 고래고래 몇 곡을 불러 제끼지. 운전 중 졸음에는 그저 뽕짝이 그만이야.

 게다가 뭐라고 멋지게 표현할 재주가 없기는 하지만 내 가슴 밑바닥 있는 걸 슬금슬금 긁어내는 뭔가가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연유로 해서 드디어 내 딴에는 애를 써서 레파토리를 몇 개 장만했어.


그런데 이제는 어쩌다 노래방에 따라 갈 때면 혹시나 누가 내 레파토리 선점할까봐 노심초사야. 

예닐곱 개 될까 말까 하는 그거 그나마 남들이 다 불러버리면 나는 뭘 부르냐는 거지. 

무게 잡냐, 분위기 잡친다, 이런 억궂은 비난을 면하려면 마이크 돌아 올 때마다 한 곡씩은 얼추 불러야하는데 그거 참 모르는 사람은 정말 이해 못할 고민 중의 상고민이올시다.

그래도 뭐 하여튼 이제는 뽕짝이 좋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구성진 가락과 가사 밑에 숨겨진 은근하고 상투적인 눈물 냄새며 땀 냄새며 땟국 절은 살 냄새가 이제야 맡아지더라는 거야. 똑 부러지고 세련된 화성으로 반짝거리는 포크 계열의 노래나 발라드풍의 노래들도 그렇다고 그 가치를 다 잃은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그렇게도 구질구질해 보이던 뽕짝이며 트로트들이 그 속에 이런 은근하고 눈물 어린 사람 냄새를 품고 있었던가 싶다보니 그걸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한 세월 보내버린 나는 오갈 데 없는 반풍수거나 얼치기임에 틀림없어.

 
1.4 후퇴 때의 흥남부두 풍경이라든지 이런 기록물들을 보면서 그 때의 실화를 그대로 그려서 불렀다던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노래를 같이 듣노라면 부녀 생이별의 그 애절함이 얼마나 절절한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데 그걸 뽕짝 가락이 아니었더라면 어찌 그리 절절히 불렀겠냐고.
그렇지. 뽕짝은 어른들의 노래더라, 결국은 그 말이다. 늬는 한 고개 넘어서서 이제야 어른이냐고 대번에 가재미 눈 흘겨 뜨고 으르릉거릴 분들도 없지는 않겠다만 


뭐 그래도 할 말은 없습지요. 뽕짝에 관해서만큼은 도대체 입 뗄 여지가 없으니 좀 떫어도 고스란히 뒤집어 쓸 밖에.
어쨌든 그 이전자전 고린내 나는 뽕짝들이 이제야 가슴 한 구석에 슬그머니 깃들어 자리를 잡나 싶다보니 기분도 묘하고 이제는 그만 한 고개 아주 넘었나 싶어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고.  
아,  그럼 오늘은 다락에서 케케묵은 기타나 꺼내서 열심히 배우고 익힌 뽕짝이나 몇 곡조 구성지게 뽑아 볼까나. 

아니, 그렇다면 옆에서 장단 맞출 친구도 몇 있어야 구색이 맞는데, 내친 김에 그냥 오늘 밤 온갖 친구 다 불러 내서 적당히 한 잔 걸치고 앗싸 노래방에나 쳐들어 가버릴까! 


 



모짜르트의 39번 교향곡에는 두 개의 주제가 대립되어 서로 발전, 융화하며.. 이런 소나타 형식의 악곡은 서로 다른 두 문명의 융합이라는 근대 서양문명의 기조와 그 궤를 같이 하고.. 결국 이런 형식의 악곡은 당대의 문화가....


일없이 TV 음악채널을 켜놨더니 저렇게 근사하고 근엄한 해설이 흘러나온다.


......저런 해설을 들으면 나는 그만 주눅이 들고 까닭없이 눈치가 보인다. 때로는 짜증이 좀 나기도 한다. 

음악 하나 들으면서 근대 서양문명의 기조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 원. 

그나마 음악은 안 나오고 해설만 계속 되길래 그냥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저런 해설을 듣다보면 그만 흥미도 반감되고 감성도 죽어버리지. 내가 워낙에 이론적으로 취약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론적 배경이나 저런 해설스러운 해설은 사실 별 관심이 안간다. 음악 하나 듣는데 꼭 저런 해설이 필요한지도 의문이고. 

막대한 지식을 섭렵하든지, 아니면 두꺼운 책이라도 뒤적거려봐야 나올만한 그런 해설을 앞세운 방송들은 아무래도 좀 그렇지.

그냥 무턱대고 듣다보면 어느 순간에 아, 이거다 하고 뭔가 꽂히고, 

듣는 것만으로는 욕심이 안차면, 그제서야 책이며 정보들을 뒤적거리는... 

음악을 듣는데 무슨 타입이 있고 줄기가 있을까마는 굳이 따지자면 나는 그런 타입이다. 

음식은 먹어서 맛있으면 그만이고 음악은 들어서 좋으면 그만이라는 주장이지


병이 들었거나 음식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밥 그릇을 엎어다가 저울에 달고 시험관에 밀어 넣을 필요가 있겠지만 

배고파서 밥상에 앉은 사람들 앞에 앉혀놓고 그 쌀은 수분 함량이 어떻고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분포는 이러저러하며 국을 끓인 미역은 어느 바닷가에서 누가 뜯어다가 어느 집 마당에서 말려서... 그걸 꼭 알고 먹어야 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밥만 다 식어버리지.

먹고 맛있으면 그만인 거지. 몸에 좋으면 더 할 나위 없고. 다 먹고 나서 하도 맛있는 음식이라 대체 이 밥을 누가 지었는지, 반찬은 뭘로 만들었는지 궁금한 사람은 그 때 가서 물어보거나 공부를 하면 될 일이고.


음악은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끼라고 만들어 놓은 물건이지 눈 부릅뜨고 따지고 분석하고 시시콜콜 머리 싸매라고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건 음악 학자들이나 음악가들에게 맡겨 두고 우리는 마르고 닳도록 듣다가 감동하고 눈물짓고 그러면 그만인 것이다. 

걸핏하면 써 먹는 말 그대로 머리를 삶으면 귀는 절로 익을 걸 왜 미리 귀만 잡고 땡기고 흔드냐고. 


현학 취미. 

그건 어디 가서 목에 힘 줄 때나 쓰시고 음악은 그저 되는대로 부지런히 들어서 섭취할 일이다. 

음악이야 많이 먹어서 체할 일도 없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이고 말고.

거기다가 적잖이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는 나한테 넌지시 뭔가 말을 걸어오는 그런 음악이며 연주가 좋아. 

뭔가를 굳세게 주장하거나 머리 싸매고 생각해야하는 그런 음악들은 이제는 숨이 가빠서. 

때로는 굳어버린 머리나 가슴팍을 쑤셔서 뭔가 울컥 치밀게 하는 그런 것에 환장을 하기도 하지만 

요즘 들어 그보다 더 좋은 건 뭔가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는 음악이다. 

듣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도 멱살 잡고 흔들어 깨우지도 않으면서 그냥 저 혼자서 나직나직 뭔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아니면 저 혼자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그냥 가버리는 그런 음악.


아, 그래도 그런 곡들을 전혀 안 듣는다는 거는 아니다. 

가는 세월이 희미해지고 앞뒤가 어리둥절할 때면 그 때 그 시절에 들었던 그 무지막지한 음향을 간혹 맛보면서 지그시 고양되어 보는 것도 심신에 자양이 되고 말고. 다만 그 이전처럼 그런 곡을 다반사로 듣기가 버겁더라는 말씀이다. 

그러게 내사 자빠져 자든지 코를 불든지 나는 나대로 자다 깨다, 지는 지대로 투덜투덜 뭔가 이야기를 해주는 그런 음악이 이제는 훨씬 좋다니깐...





베토벤의 교향곡 5운명입니다.

세상에 흔해 빠진 게 베토벤의 운명입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장르를 털어서 가장 많은 녹음을 한 음반이 아닐까요.

 

어제 운명을 들었습니다.

들을려고 들은 게 아니라 4번을 듣다보니 커플링 된 5번도 따라나왔습니다.

첼리비다케 실황 녹음이었습니다. 베토벤의 4번 중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입니다.

하지만 이 고집불통의 첼리비다케 영감님도 5번만큼은 그다지 심에 차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1악장만 듣고는 꺼버렸습니다.

 

한 때 이 곡에 미쳐서 자나 깨나 돌려댔던지라 한 가닥 한다하는 연주는 제법 들어 봤었지요.

한 세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은 물론이고 근래 한 참 유행하던 원전악기 연주들에다가 새로 태어난 신생 지휘자며 굴드의 피아노 연주까지.

한동안은 닥치는 대로 구한 음반들을 수 십장 쌓아 놓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전곡 비교 감상을 한답시고 패대기를 친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고 시간 아까워라.

 

당연히 다들 한다하는 거장이며, 나 같은 얼치기보다야 적어도 십억 배 쯤은 더 음악을 사랑했을 이 위대한 할배들의 녹음이 하나인들 허투루 내 놓은 게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무식이 용맹이라고 이건 옳다 저건 그르다 더러더러 침깨나 튀기기도 했습지요.

그 와중에 별 기대9 없이 내 손에 왔다가 지나치게 사랑을 받은 나머지

그 사랑이 너무 지나쳐 그만 비명횡사하고 만 음반이 있었으니, 바로 요 아래 처참한 몰골로 깨져버린 야노스 페렌치크/헝가리 국립 관현악단의 연주입니다.

저 음반 역시도 어제 들었던 첼리비다케처럼 4,5번이 커플링이라 그만 또 가슴 아픈 사연이 생각나서 주절거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 집 큰 놈이 막 걸음마를 할 때쯤이니 아마도 1992년 겨울 쯤 되지 않았을까요.

서울 다녀오는 길에 종로 어디쯤인가에 있던 SK플라자에서 저 음반을 샀습니다. 페렌치크가 연주하는 리스트에 매료되어 있던 차라 은근히 기대를 하고 집어 들었지요.

 

집에 돌아와서 일청을 한 후, 뭐 그다지 대단한 연주는 아니라고 일단 점수를 매겼습니다.

하지만 1악장 중간쯤에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서늘한 생동감에 슬쩍 소름이 돋았던 바람에 어쩐지 자꾸 손이 갑니다. 날이 갈수록 듣고, 듣고, 또 듣고 또 듣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리 몰랐던 것이 들을 때마다 그 느낌이 새로운 것이 급기야는 그 부분이 나올때쯤이면 팔에 오싹 소름이 돋고 눈물이 핑 돌기도 했지요.

, 관현악이 다소 기복이 덜하다거나 녹음이 답답하다거나 이런 단점들은 단칼에 휙! 날아 가버리고 오로지 그 날개 달린 듯 상승, 하강하는 현 합주의 생명력에 넋을 잃었습니다. 급기야는 아예 리피트를 걸어놓고 하루 종일 이 음반만 돌려댔습니다. 아주 미쳐버린 거지요.

 

그렇게 페렌치크의 운명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던 어느 날

어린놈이 배고프다고 징징대길래 어디보자, 그렇다면 아빠가 우유를 타 주마, 방 한 구석에 있던 젖병을 들고 더운 물이 어디 있더라, 왔다리 갔다리 하는 차에, 한 순간 지끈!’ 별로 크지는 않으나마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린 놈이 털퍽거리며 걸음마를 하다가 막 꺼내놓은 저 음반을 작신 밟아버린 거지요. 황망간에 어린 놈을 대충 달래놓고 탈기를 하고 들여다보니 그나마 다 쪼개진 건 아니고 반을 쪼개놨는데 하필이면 4번은 멀쩡하고 그 금쪽같은 5번이 들어있는 부분만 딱 쪼개놨습니다.

44악장까지는 멀쩡하게 잘 돌아가다가 5번 들어서면 이내 틱틱틱틱 튀기 시작해서 건너뛰고 날아가고 밑도 끝도 없이 단숨에 뮤팅 걸려서 끝나버리지요. 허이구........



 

그 때만 해도 뭐 어찌어찌 다시 구할 수 있으려니 했지만 사는 곳은 깡촌이고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쉽사리 물건을 사고팔고 하던 시절도 아니다보니 이리공 저리공 세월은 가고...

그만 십 여년이 훌쩍, 어느 새 음반은 절판 돼 버리고 다시 구할 길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요. 지금 생각해도 애석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깨진 시디조차 버리지를 못하고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그저 인연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리고는 있는데

인간이란 것이 좋았던 것은 왜 그리도 오래 기억하는 것인지. 어제도 오늘도 공연히 페렌치크의 운명 생각으로 아쉬운 마음을 들썩이다가 생각 난 김에 투덜거려 봅니다.

 

 

[비탈리 샤콘느]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



언젠가 비탈리의 샤콘느 음반 표지에다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놓은 걸 보고는 혼자 픽 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비탈리의 샤콘느를 듣다보면 그 비장한 멜로디의 흐름이 사뭇 처절한 바가 없지는 않으나, 사람이 겪어 내야하는 지극한 슬픔이라는 것이 그렇게 시종일관 드라마틱 하거나 비장한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온 몸의 기운이란 기운은 다 빠져 나가고 나 이외의 모든 세상과 단절 된 느낌으로 한 없이 잦아들어 그만 아득하게 맥을 놓아버릴 그런 것이 슬픔이 아닐까 싶은데 말입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밖으로 슬픔을 내지르는 곡은 사실 조금도 슬프지 않습니다. 진짜 슬픔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지요. 불각시에 옆구리를 찔린 듯이, 길가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일시에 가슴이 무너져 내려서 무장해제 되어버리는, 슬픔이나 감동은 그렇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비탈리의 샤콘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나 슬퍼 죽겠으니 제발 나를 봐다오’ 하고 광고를 하는 듯 한, 지나치게 감성적인 멜로디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말 가슴이 무너지도록 슬프다면 그 슬픔을 포장하거나 가공해서 드러낼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뭐야, 창문 활짝 열어놓고 나 슬퍼 다 죽어간다아! 하고 동네방네 나발 부는 주제에,’

뭐 그런 비슷한 생각이지요. 개인적으로 그리 생각했다는 뜻이니 이 곡을 사랑하는 분들께서도 그리 고깝게 여기실 것 까지는 없겠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음악 중 턱없이 억장이 무너졌던 곡은 니콜라에바의 내가 사랑하는 바하 1집에 실려있는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 입니다. 
이 곡을 듣다보면 말할 듯 말할 듯 하다가 차마 다 말하지 못하고 결국 맥없이 주저앉아 눈물 삼키는 듯한 마지막 마디 때문에 정말 억장이 무너져 내리지요.


굳이 비교하자면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가 인간이 내면적으로 겪어 내야 할 슬픔이라면 비탈리의 샤콘느는 조금은 드라마틱하고 또 어느 한편으로는 조금은 자신의 감정을 바깥으로 치장한 느낌이 없지 않은, 그런 슬픔이란 느낌입니다.
하기야 사람마다 귀가 다르고 가슴이 다른데 누가 슬픔이나 절망을 일렬로 줄 서라 저울로 달아 값을 매기겠습니까만. 말하자면 내 개인적인 느낌이 그렇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극단적으로, 그보다 더한 슬픔을 말하자면 나는 모든 소리를 잠그고 눈도 감아 버려야 한다는 쪽입니다. 가슴이 찢어지고 억장이 무너지는데 사람의 소리로 그것을 포장하겠다는 시도부터가 불순하다는 생각이지요. 그래서 더러 미디어에서 보고 듣는 비극적인 현장 상황에다가 음악을 더빙해서 그럴싸하게 드라마화 시키는 짓을 극도로 혐오하는 편입니다. 도대체 타인의 절망이나 슬픔을 재료로 삼아서 팔아먹을 작품을 만들겠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그런 생각이지요.





[註/ 비니루: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CD에 빗대서 LP를 말할 때 오디오쟁이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속어입니다.]


인터넷 장터에서 중앙일보사에서 찍어 낸 음악의 유산을 노 오픈으로 한 질 구했습니다.
한 장 빠진 한 질을 갖고 있었는데 한 이십년 넘게 듣다보니 고물딱지가 다 돼서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또 구했습니다.
원래는 한 장에 육칠천 원 꼴로 팔리던 비싼 음반이었습니다. 라이센스 한 장에 사천 원 남짓 하던 시절이니 꽤 비싼 판때기였지요. 뭐 갖고 있던 것도 제 값 주고 샀던 건 아니고


팔십년대 중반 어느 쯤에 내가 작은 찻집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진주시내 일대를 주름잡고 다니던 찐드기 세일즈맨한테 반 쯤 꼬여서 거의 지갑을 열 뻔 했었는데 뭐 얄팍한 지갑때매 벌벌 떨다가 그만 다시 접었지요. (어슴하나마 기억에 한 질에 사오십 만원이었으니 80년대 중반에 사오십만원이면 만만한 액수가 아니지요?) 
그런데 그 즈음의 어느 날 밤 내 찻집으로 웬 외팔이 사나이가 하나 들어섭디다.
진짜 외팔이는 아니고 한 팔에 깁스를 한 사내였는데 이 친구가 들고 들어 온 게 음악의 유산 전집이었습니다.


LP 60장에 그 무게만큼 무거운 책 열한 권까지 한 팔로 낑낑 이고지고 올라와서는 한다는 말씀이

자기는 저기 어디쯤에서 다방 하던 사람인데 예의 그 찐드기 세일즈맨한테 녹아 떨어져서 사기는 샀지만
도대체 재미가 없어 못 듣겠으니 제발 이것 좀 헐값으로 사라고 그러데요.
소문에 듣자하니 내 찻집에는 이런 재미없는 음반들을 얼씨고 좋다 밤이고 낮이고 돌려대고 있다더라 그러면서.


아이고 나는 그거 살 돈도 없고

 1권 빼고는 거진 내가 가진 음반들이랑 중복되는 곡들이라 살 마음 없다 그랬더니
그 친구 잠시 난감해 하다가 그럼 1권만이라도 사 달라 그럽디다.
그 때 돈으로 판 여섯 장에 2만원 줬나 그랬을걸요.
아 그래서 그 전집 중에 늘 탐나던 1권 '서양음악의 탄생' 편을 얼결에 헐값으로 손에 넣었지요.


그런데 이 친구 또 부탁이 있다는데 그래 무슨 부탁인지 들어나 보자 하니

지가 시방 외팔이가 되어서 이 무거운 물건을 이고지고 못 댕기겠으니 내 찻집에 보관을 좀 했으면 한다고요. 그럼 보관 하면서 좀 꺼내 들어봐도 무관 하겠냐 슬쩍 찔러봤더니 아 얼마든지 많이 들으라네요.
그래서 사나흘 후에 다시 찾으러 오겠노라고 그러면서 그 사나이는 커피 한 잔 마시고 나갔는데
그 길로 그 친구 이십년이 넘어 삼십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전화도 없고 찾아오지도 않고
고만 종무소식이라는 이야깁니다.


결국은 60장에서 1장 빠진 59장을 2만원에 산 셈이 되고야 말았는데

수년간 이 판때기를 쉬엄쉬엄 돌려보니
그 때 그 세일즈맨이 입에 거품을 물던 말들이 모조리 꽝은 아니었던 것이,
평소에 탐 내던 1권 서양음악의 탄생 편은 말할 것도 없이
편집이나 녹음이나 순전히 구색 일색이던 흔해빠진 전집류는 아니더라는 겁니다. 


하여간 요즘 장터에 보니 이 음반이 더러 돌아 댕기는데 거의 한 장에 천원 꼴로 돌아 댕기데요.

이거 이만큼 천덕꾸러기 취급받을 판은 아니다 싶은 마음에 조금 씁쓸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그 덕에 싼 값으로 구했으니 그도 참 사람 팔자처럼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합니다.
내사 뭐 한 삼십년 넘게 갖고 있는 소스의 주종이 비닐 판때기다보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겠지만
요즘 인터넷 장터에 오백 원 천 원 싸구려 돗대기로 돌아 댕기는 라이센스 비닐 판때기들,
그거 그리 천대받을 물건들 아니라는 거지요.


지그럭 툭탁 잡음 투성이 비니루가 무신 음반 축에나 드냐!

웃기네! 늬들이 비니루 맛을 알아?


뭐 이런 식으로 멱살잡이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니깐 시비 걸지는 마시고.
시디가 좋으냐 엘피가 좋으냐 귀한 밥 먹고 일없이 싸울 일이 아니잖아요?

제 좋은 거 지 알아서 듣도록 그냥 내비 두면 되는 거지요.
상대 당에 대한 가열 찬 비난은 같은 편끼리 모였을 때 술안주 삼아 씹으면 되니깐 그걸로 만족들 하시고.
흑돼지 집에 돼지갈비 맛이 정말 죽이더라, 그러는 사람한테
그거 엉터리다 멱살 잡고 끌어 올려서는 성분 분석 표 쪼가리 들이대면서
길 건너 똥돼지 집 삼겹살이 제대로 된 돼지 맛이라고 핏대 세우고 박박 우기면 대체 그거 뭔일이래요?


아, 하여간에 요즘 라이센스 판때기들이 하도 고물 취급을 받다보니

그거 나중에는 아예 저울에 달아서 근으로 팔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도 해 보지만,
뭐 오리지날 원판이라고 별로 신통치 않은 연주들이 걸핏하면 장당 만원 이 만원 우습게 홋가하는 걸 보면
머잖아 라이센스도 값 뛸 날이 오지 않을까 난망한 기대도 한 번 품어 봅니다.


어쨌든 어제 그놈의 사연 어린 음악의 유산 판때기를

비닐도 뜯지 않은 새 걸로 받아 들고 턴테이블에 얹고 보니 잡티 하나 없는 매끄러운 소리에
격세지감이라든지 상전벽해, 뭐 이런 생각들도 나고 해서 애매한 시간 주절주절 한 번 때워 봅니다.
어찌 됐든 가격대비로 갑자을축 따져보면 꽤 괜찮은 음반이라는 이야기지요.



아하, 혹시라도 그 때 그 사나이가 이 글을 보신다면 얼른 만나서 일단 막걸리라도 한 잔 나누고 난 뒤에

반품을 하든지 정산을 하든지 해야겠지요. 한 이삼십년 묵은 대여료를 내야 할 지 보관료를 받아야 할 지는 둘이서 가위바위보로 결판을 내야 할까요.
아니, 물론 막걸리 값이야 얼마든지 내가 내고말고지요. 동동주에 파전이라도 좋고. 그럼요.



CD. 1
01. 시인의 마을
02. 회상
03. 떠나가는 배
04. 윙 윙 윙
05. 촛불
06. 사망부가
07. 서울의 달
08. 애고, 도솔천아
09. 봉숭아
10. 북한강에서
11. 바람
12. 탁발승의 새벽 노래
13. 우리는
14. 장서방네 노을
15. 하늘 위에 눈으로
16. 들 가운데서
17. 서해에서
18. 사랑하는 이에게 3

CD. 2
01. 실향가
02. 양단 몇 마름
03. 고향집 가세
04. 사랑하는 이에게 2
05. 인사동
06. 한 여름 밤
07. 나 살던 고향
08. 저 들에 불을 놓아
09. L.A. 스케치
10.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11. 92년 장마, 종로에서
12. 정동진 1
13. 건너간다
14. 5.18
15. 수진리의 강

//
정태춘은 이 음반의 1집에 실린 노래들을 사춘기적 값싼 감상의 소산이라 했다 한다.
"우리의 노래가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힘든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멀리서 보이는 불빛처럼 따스함을 전해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없죠. 그런데 정태춘은 달라요. 위로는 무슨 위로냐, 뭔가를 바꿔야한다는 거죠"
이 음반에 담긴 그의 아내 박은옥의 말이란다.
//

....
당신 말마따나 사춘기 적 유치한 감상에 젖어보지 않은 사람이 나이를 먹어 성숙한들
어찌 속 깊은 아픔을 품어 간직할 줄을 알겠으며
당신의 지난날 그 '값싼 사춘기적 감상'의 물을 정말 눈물 나게 감사하며 마셨고
지금도 즐겨 마시고자 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그렇다면 당신의 잣대로는 갖다 내 버려야 마땅할 값싸고 유치한 감성의 소유자일 뿐인가. 

나도 당신의 노래를 아직 누구의 노래보다도 더 좋아하고 즐겨 부르지만
언젠가 제 스스로 자신의 옛 노래들을 값싼 감상이라 폄하 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나 또한 그 때 부터 그대를 처음보다는 값을 덜 치기로 작심했었다.

나도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들으며, 목청껏 따라 불러 보며, 시큰해지는 콧날을 비비기도 했지만
그 캄캄하던 칠십 년대 후반 포장마차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아름다운 시인의 마을을 처음 들으면서 받은 충격에 어찌 비할 것이며
思亡父歌가 내게 집어 던진 만장 쪼가리에 묻은 나와 내 아버지의 남루한 삶의 질곡에 비하겠는가.

그런가? 날더러 개인주의자라고?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것 또한 모르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아니라면 그대는 가슴팍이 텅 빈 허깨비의 군상들이 부르짖는 정치적 사회적 혁명과 자유만 소중한 사람이든지.

나 또한 그 아름다운 시인의 마을이 가위질을 당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뚝 솟은 깃발’이 ‘푸른 하늘 구름’으로 바뀌었었다는 것을 뒷날에서야 알았고
그 깃발을 되찾기 위해 그대가 힘들게 싸워 온 이야기를 보고 들어서 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가치 있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우뚝 솟은 깃발이 오르기 전에 먼저 알고 즐겨 불렀던  푸른 하늘의 구름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고 또 우뚝 솟은 깃발이 펄럭일 푸른 하늘 또한 반드시 필요한 배경일 수도 있는 것이다.
노래를 만들어 불렀던 주인은 당신이지만
그 노래를 듣고 사랑할 자유는 우리들에게 남겨 놓았어야 했다는 이야기지.

굳센 팔다리의 투사들도 때로는 뜨거운 가슴을 쥐어뜯으며 사랑을 갈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살아 온 세월이 겨워 서산에 지는 노을을 아파할 줄도 알았어야 했거든.
그렇지 못했거나 그렇지 않았다면
그 투사들은 살 냄새에 땀 냄새며 입 냄새 고약한 지치고 가여운 이웃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정치 사회적 구도의 완성만을 위해 달리는 정치적 도구들일 뿐이라는 말이 되겠지.

세상은 투사들로만 채워질 수는 없다. 그리 되어서도 안 되고.
때로는 힘차게 달리는 다리도 있고 부르쥐는 주먹도 있어야 하지만
그 시각에도 심장은 쉴 새 없이 뛰어야 하고
뱃속에는 냄새나는 음식물 찌꺼기도 더러더러 채워 놓아야 힘이 생기는 법이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그대가 사춘기적 값싼 감상이라고 내 던진 그 노래로 젊은 날을 적잖이 적셔 온 그런 사람들이라야 만이
그대가 지향해 마지않는 멋진 투사도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대의 생각은 어떤지.
또,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과 이웃과 세상은
그것을 가슴이 터져라 품어 본 사람만이 그것을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될 듯한데
그 또한 그대의 생각은 어떤지.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던져 놓았으면 그것으로 그대의 소임은 끝이다.
그 뒤의 그대의 행보가 투사가 되든 혁명가가 되든 그것은 그대의 판단이지만
그대가 이미 세상 사람들의 손에 던져 준 그것들을 차갑게 부정하고
그것을 사랑하고 보듬어 마지않는 많은 이들의 작은 가슴을 보듬어 품을 아량이라고는 없이
그렇듯 값없이 걷어 차버린다면 그대가 진정 바꾸고자 하는 세상의 의미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대의 지난날을 부정하고 폄하한다고 해서 그대의 앞날이 더욱 공고해지는 것은 아니다.
꼭 자신의 과거를 못내 잘라 내 버리고 싶다면 그대는 앞만 보고 그대의 갈 길을 가라.
그러나 지난날의 정태춘은 우리에게 남겨 두고 가라.
지난날의 그대에게 보냈던 우리들의 사랑을 그런 야멸차고 싸가지 없는 말로 배신하지는 말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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