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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는 그렇게 들어야지.
깊은 밤 사방으로 짙은 커튼 드리우고 아득히 가라앉은 누우런 방.
번쩍거리는 하이엔드 오디오라면 좀 그렇겠지?
손때 삼삼하게 앉은 고물 나발 앞에 이리저리 삭아빠진 판때기들 발 끝으로 밀어놓고
침침하게 가라앉은 흐린 날에 흐린 알전구 뎅겅 노랗게 달아놓고
이불 대충 구겨서 한 쪽에 밀어두고 삐딱하게 누워서 입꼬리에 피다만 꽁초도 하나 물고 들으면 좋지.
핑게 좋은 술 한 잔으로 핏줄 속의 알콜 농도를 적당히 높여두면 감상에 더욱 도움이 되고말고.
짓무른 눈자위 축축하게 적셔서 들어야지. 듣다보면 어느 새 언뜻 이빨 빠진 쳇 베이커랑 마주앉아
엣다 너도 한 잔, 그럼 나도 한 잔.
주고 받고 수작하다보면 늬가 난지, 내가 뉜지, 고만 쑤세미처럼 헝클어지고
세수도 하지말고 발도 씻지말고 턱 밑에 깎지 못한 수염도 한 사흘 길러두면 더 좋지.
내가 반드시 그리 해서 이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뭐 어쨋거나 나는 그 노래때매 적잖이 망가지고 말았다니까.
그 노래는 냄새가 너무 진해서, 진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져서 말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거야.
희거나 검거나 가거나 말거나 울든지 말든지...
그러게 내 어깨 위에 얹힌 건 대체 무엇일까.
내 가슴 속에 쑤셔 박혀서 밤낮으로 툭탁거리는 저 시커먼 덩어리는 대체 또 무엇일까.
낡은 세월에 낡은 것들 사이에 끼어 박혀서
도리 없이 밤 낮으로 낡아가는 녹슨 베어링 같은 것인지 뭔지 말이야.
마이 훠니 발렌타인.
원 세상에 별 지독한 노래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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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베이커는 이 녹음을 마지막으로 보름 뒤에(한 달 뒤라는 말도 있고) 네덜란드의 한 여관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추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재즈에는 문외한이라 이렇다 저렇다 말 할 입장이 안되지만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작은 정신적 손상을 입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정말로 삶에 대한 어떤 미련이나 애착도 다 놔버리면 저렇게 지독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