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풀밭에 있다.
그 어떠한 흔적도 없는 원시의 땅에 혼자 누워있다.

산비탈은 햇살 받아 밝게 푸르고 하늘은 온 세상을 덮어 고요하다.
보이지않는 어디선가에서는 맑은 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만 어린 풀잎들만 엷은 바람에 조금씩 흔들릴 뿐이다.

선악도 없고
문명도 없고
생사도 없으며
그 어떤 인과나 현상도 없이  
종교적인 고양감이나 격정의 눈물까지도 말끔히 씻어버린
이루어 말할 수 없는 맑음이며 고요함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인간을 넘어서버리는 기이함이다.

심신이 부대낄때면 나는 이 곡을 한없이 반복해서 듣는다.
음반을 얹고 스피커 앞에 바짝 다가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혼자 듣는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나도 씻겨진다.
그리하여 잠시나마 나도 때를 벗고 눈을 씻는다.

심상이 얇은 잡배의 싸구려 감상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나는 이 곡을 종교의 그것보다 더 우위에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이 음악을 사랑한다.
그리하여 이 음악을 쓴 사람은 말 할 것도 없이 이것을 연주한 이들조차도 사랑해 마지않는다.
그 언젠가 내게 조용히 누워 숨을 거둘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혹시, 나는 그 순간에 이 곡을 듣고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리해야겠다면 반드시 이 음반으로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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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대공' 3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pf/호로쇼프스키
vn/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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