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소리가 듣고싶어서 우드베이스의 오래 된 구식 턴테이블을 하나 구했다.
목을 빼고 이틀을 기다렸더니 운송 중에 쥐어박혀서 두껑은 깨지고 하판은 박살이 났다.
그 서슬에 대미지를 입었는지 한쪽 채널도 먹통이다.
판매자와 통화끝에 환불 받기로 하고 카드리지와 헤드셀은 돌려주고 나머지 큰 덩어리는 내던지기로 했다. 손 떠나면 나몰라라 오리발 신사들이 많은 인터넷 장터에서 그래도 점잖은 분을 만났으니 내가 사는 건 이모양이라도 인덕은 마르지 않았나 싶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제 못쓰는 물건이거니 내다 놓으려다가 가만 보니 적당히 낡은 우드 베이스가 아깝다.
오디오쟁이라봤자 뚜껑만 열면 까막눈이지만 기왕에 내던지기로 한 것이니 죽이되건 떡이 되건 주물러보기로 했다. 한 시간쯤 인두를 꼬나들고 야단법석을 치다보니 소리가 나기는 나는데 찌---  험 소리는 죽어도 안잡힌다. 고약하다. 어딘가에 단단히 쥐어박힌 모양이다.
어쨌든 소리가 나니 판을 한 장 얹어 본다. 70, 80년대 우리나라 노래들이다. 속 빈 강정같은, 그렇지만 목질의 통울림이 묻어나는 둔탁한 소리에 가슴이 착 가라앉는다.

그랬다.
십년 가까이 백원짜리 압전형 세라믹 바늘로 듣다가 포노 이퀄라이저라는 게 반드시 붙어야만 소리가 난다는 마그네틱 카드리지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소리와 흡사하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귀족들의 행진, 트윈폴리오, 송창식, 정태춘, 조동진... 장드롱의 무반주 첼로. 장드롱은 사놓고 차마 듣지를 못했었다. 백원짜리 바늘이 다 긁어먹을까봐.

지금은?
고물이나마 한 때는 방송국에서 깃발 날렸다는 꽤 쓸만한 턴테이블에 시방 구식 빅터 턴테이블에 달려있는 카드리지 보다도 열배는 더 비싼 꽤 유명한 바늘을 달아 두었는데도 그 때만큼 눈물나게 좋지를 않아 쓸쓸하네. 기계가 좋아지면 심성도 기계를 따라가는지.

학교 잔디밭에 드러누워서 건전지 다 돼가는 택트 야전으로 베토벤을 듣고 가슴 벅차하던 그런... 그 때는 순진했다는 이야긴가. 그럼 지금은 뭔지. 교활해진 건가 아니면 까다롭고 삭막해진 건가. 그럴지도 몰라. 귀만 간사해지고 가슴팍은 시멘트처럼 굳어서.

식구들 깰라 소리 낮춰서 박은옥의 비오는 나루를 듣고 있자니 잘 어울리는구나. 어디론가 한없이 흘러가고야 말 것 같은 겨울 새벽. 아주 조용해요. 바람도 없고 개도 짖지 않아 막막한 겨울 새벽. 골목엔 오가는 사람도 없고 별만 시리게 빛나는 적요. 아. 지금 한림정 갈대밭 사이로 달리는 완행 기차 속이면 좋겠다.
좋기는. 서릿발 같은 겨울 새벽, 화살처럼 꽂힌 갈대밭에서 억장만 무너지지. 그래도 물 뚝뚝 흐르는 병맥주 따서  홍익회 후랑크 소세지랑 먹고 마시면 에헤라디여, 아아, 그 가슴 저린 삼등열차의 싸구려 낭만이라니!

아서라.
그러다가 해질 무렵 술 깨어나 보면 낯 선 시골역 대합실 톱밥 난로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 허망함을 어찌 할라고. 쓰고 버릴 말이라도 그 옛날은 꺼내 놓으면 가슴만 다치지
신새벽에 공연한 소릴. 오늘은 구식 턴테이블 돌리다가 시골역까지 갔구나. 정말 세월은 가나보다. 어느 새 판도 다 돌아 툭탁거리고 있구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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