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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있는 오래된 비닐판 중에 유로디스크에서 나온 외르크 데무스의 슈베르트 피아노 곡집이 있습니다.
즉흥곡, 왈츠, 등등 잡동사니로 섞인 판인데 그중에 1면 네번째 곡이지요.

Klavierstu"ck Es-dur op.posth. No.2 D 946,2(Komp. 1828).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녹음도 별로 많지않은 그렇고 그런 곡입니다.
하지만 때로 친지들이 뭐 하나쯤 녹음을 부탁할시면 거의 빼놓지않고 중간에 끼워넣는 감초입니다.
뭐 그래봤자 이게 대체 무슨 곡이냐는 반문은 지금껏 단 한 번 밖에 받아보지 못했지만.
게다가 어떤 이는 그 곡 별로더라고 김을 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 차별해서 넣거나 빼거나 합니다. 순전히 내 맘입니다.

이걸 듣고 있노라면 얼핏, 베토벤의 아델라이데가 그려내는 이미지와 엇비슷한 듯도 하고,
그보다도 조용조용 좀 더 아득한 이야기를 하는듯 하고 어찌 보면 슬픈듯, 어찌 보면 또 지극히 아름다운듯,
겉으로 드러나기를 고요하고 행복해보이나 그 속에 어쩐지 흠씬 젖은 가슴팍 한두개 품어있는듯도 보이고.
그러다가도 그저 아늑하게 잠기고만 싶은,
그래서 드물게 음악을 듣다가 이 음악 그저 끝나지 않고 한없이 계속되기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데무스 판으로 연주시간이 8분 21초라 소품 치고는 별로 짧은 편도 아닙니다.

그러다가 혼자 생각에 혹시 슈베르트가 이 곡을 노래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혹시 이 곡을 뼈대로 해서 꾸민 절절히 아름다운 노래가 유럽 어느 고서점 구석에 꼭꼭 숨어 있지는 않을까 허튼 생각도 해봤고. 뭐 역시나 그 이상은 아는바가 없습니다. 이 곡도 이 음반 외에서는 들어 본 적이 없고.
듣자하니 브렌델이 연주한 것이 일찌감치 발매가 되었더라는 말은 들었는데
어쩐지 그리 열나게 찾아헤매고싶은 생각은 들지않았습니다.
내가 느끼는 브렌델의 연주 스타일이나 이미지가 이 곡과는 썩 어울릴 것 같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뭐 어쨌든 혼자 생각으로는 이건 반드시 노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다 안되면 누군가 아무나 독문학에 정통한 이를 꼬드겨서 맘에 드는 가사를 붙여 달래서
분더리히 처럼 곱게는 못해도, 피어스처럼 유장하게는 못해도,
(이 곡에는 디스카우는 안 맞을 것 같습니다. 하기사 알 수 없기는 하지만.)
독일어를 모르니 그 뜻이나 음을 달달 외기만이라도 해서
남 안볼 때 힘들여 한번 불러 보고싶은 욕망을 꽤 강하게 느껴보았던 곡입니다.
혹, 이게 노래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슈베르트는 일생의 큰 실수를 저지른 셈이라고 박박 우기고싶기도 할만큼
그 선율이 가곡적(?)인데.......
이거 누가 독일어로 가사 붙여서 신곡 발표회라도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
슈베르트 곡에 노래아닌 것이 어디 있냐는 말씀이지요?
무식하게 자다깨어 봉창 두드리는 소리 말라는 말씀일 것이고.
원 참, 그렇기는 합니다. 뜬금없이 뭔 신곡 발표회라니. 좋으면 그냥 좋았지 느닷없이 무슨 학예발표회도 아니고... 그래도 하도 좋아서 그래봤지요.
그래도 참 궁금하고 아쉽습니다.
때로는 별로 감흥없는 곡에도 열심히 가사를 붙인 슈베르트가 왜 이 아름다운 곡을 그냥 콩나물로만 남겨 두었는지.

.....
것도 무식한 이야기란 말씀이신데..
그 아쉬움이 이 곡을 들을때마다 무럭무럭 자라서 급기야는 눈물 콧물 땟국물로
가슴을 아예 젓담아버리게 할라고 그래서 그런 거라고요?
슈베르트가 그런 잔머리까지 굴렸다고요?
엣기! 앞뒤 꽉 막힌 로맨티스트 슈베르트 짱구로는 그런 잔머리 못 굴리네요.  

하기사 이 애잔한 곡에 절절한 가사를 완성시켜 그 누군가의 절창으로 불러제껴버리면
그 자리에서 가슴이 터져서 칵 죽어버릴 사람도 더러 몇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하지요.
아픈 사랑 한 두개 쯤 가슴에 품어안고 이 풍진세상 허위허위 살아가는 이들,
너덜너덜 코 푼 손수건 같은 그리움 가슴에 품어 밤마다 앓아눕는 화상들,
사는 것이 아쉬워 아쉬워 그저 밤이 더디가기만을 고대하는 사람들.

나 아닌 척 뒷짐 지고 먼산 두리번거릴 것 없네요.
암만 청맹과니 촌놈이라도 꽤 쓸만한 촉수 하나쯤은 갖고있는 법이랍니다.
시방 이 곡을 피아노 소리로만 듣기에도 때때로 공연히 코 끝이 시큼시큼 기분이 얄궂그만.
일단 한 번 들어나 보시고 아니라고 장담을 하시든지 장을 담그시던지 말든지.

2003.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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