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노래방만 가면 두드러기가 나던 때가 있었지.

노래를 전혀 못하는 음치라서가 아니야. 도대체 아는 노래가 있어야 말이지요. 

명색이 이제는 한 고개 넘어가는 나이에 그래도 벗이랑 어울려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자면 경우와 장소에 따라서 장단 맞출 만큼은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 때의 내 가슴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깊은 고민이요 자괴감이더란 말씀이야.
언젠가
누군가가 쓴 글 중에 소풍이나 야유회 가서 흥 돋을만하면 마이크 넘겨받아 차렷 자세로 목소리 깔고 동심초 불러서 분위기 깬다는 그런 곤란한 푼수들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거 꼭 날더러 한 이야기 같아서 정말 찔끔했었구만.

오래 전 직장 생활 할 때 체육대회 끝나고 뒷풀이를 한다길래 엉거주춤 따라 갔다가 돌아와요 부산항에 일편단심 민들레야 천둥산 박달재 한참 신난 좌중에서 진짜로 동심초 불러서 확 깨게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바로 나라니까.


그래도 뭐 나도 통기타 들고 70년대 포크송 계열로 놀자면 제법 불러대기는 하지. 

뭐, 노래를 잘한다는 자랑은 아니니 눈 흘기지 맙시다. 남이사 내 노래를 어떻게 듣거나 말거나 간에 하여튼 수십 곡 정도는 내리 부를 자신이 있었다는 이야긴데...
뽕짝은 왜 그렇게 싫었을까. 고리답답해 보이고 어쩐지 천박해 보였던 뽕짝들. 하기야 지금도 천박하기 짝이 없는 얄궂은 뽕짝들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 혀를 차면서 외면했던 구닥다리 뽕짝들이 수년 전부터 이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으로 슬금슬금 내 입 주변으로 맴돌기 시작하더라는 말씀이다.

그 때는 어쩌다 한 번씩 불러 봐도 도대체 내 체질에 안 맞는 듯해서 남의 옷 뒤집어 쓴 듯이 어색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불러 봐도 가락 끝마디가 멋지게 꼬부라지는 것이 꽤 그럴 듯 하다. 이제는 밤중에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졸음이 오는 때면 어김없이 뽕짝 시디를 밀어 넣고 고래고래 몇 곡을 불러 제끼지. 운전 중 졸음에는 그저 뽕짝이 그만이야.

 게다가 뭐라고 멋지게 표현할 재주가 없기는 하지만 내 가슴 밑바닥 있는 걸 슬금슬금 긁어내는 뭔가가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연유로 해서 드디어 내 딴에는 애를 써서 레파토리를 몇 개 장만했어.


그런데 이제는 어쩌다 노래방에 따라 갈 때면 혹시나 누가 내 레파토리 선점할까봐 노심초사야. 

예닐곱 개 될까 말까 하는 그거 그나마 남들이 다 불러버리면 나는 뭘 부르냐는 거지. 

무게 잡냐, 분위기 잡친다, 이런 억궂은 비난을 면하려면 마이크 돌아 올 때마다 한 곡씩은 얼추 불러야하는데 그거 참 모르는 사람은 정말 이해 못할 고민 중의 상고민이올시다.

그래도 뭐 하여튼 이제는 뽕짝이 좋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구성진 가락과 가사 밑에 숨겨진 은근하고 상투적인 눈물 냄새며 땀 냄새며 땟국 절은 살 냄새가 이제야 맡아지더라는 거야. 똑 부러지고 세련된 화성으로 반짝거리는 포크 계열의 노래나 발라드풍의 노래들도 그렇다고 그 가치를 다 잃은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그렇게도 구질구질해 보이던 뽕짝이며 트로트들이 그 속에 이런 은근하고 눈물 어린 사람 냄새를 품고 있었던가 싶다보니 그걸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한 세월 보내버린 나는 오갈 데 없는 반풍수거나 얼치기임에 틀림없어.

 
1.4 후퇴 때의 흥남부두 풍경이라든지 이런 기록물들을 보면서 그 때의 실화를 그대로 그려서 불렀다던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노래를 같이 듣노라면 부녀 생이별의 그 애절함이 얼마나 절절한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데 그걸 뽕짝 가락이 아니었더라면 어찌 그리 절절히 불렀겠냐고.
그렇지. 뽕짝은 어른들의 노래더라, 결국은 그 말이다. 늬는 한 고개 넘어서서 이제야 어른이냐고 대번에 가재미 눈 흘겨 뜨고 으르릉거릴 분들도 없지는 않겠다만 


뭐 그래도 할 말은 없습지요. 뽕짝에 관해서만큼은 도대체 입 뗄 여지가 없으니 좀 떫어도 고스란히 뒤집어 쓸 밖에.
어쨌든 그 이전자전 고린내 나는 뽕짝들이 이제야 가슴 한 구석에 슬그머니 깃들어 자리를 잡나 싶다보니 기분도 묘하고 이제는 그만 한 고개 아주 넘었나 싶어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고.  
아,  그럼 오늘은 다락에서 케케묵은 기타나 꺼내서 열심히 배우고 익힌 뽕짝이나 몇 곡조 구성지게 뽑아 볼까나. 

아니, 그렇다면 옆에서 장단 맞출 친구도 몇 있어야 구색이 맞는데, 내친 김에 그냥 오늘 밤 온갖 친구 다 불러 내서 적당히 한 잔 걸치고 앗싸 노래방에나 쳐들어 가버릴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