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
있는 듯 없는 듯 윤곽이 희미하던 팀파니가 어느 날, '떵!'하고 선연하게 떠올라 가슴을 친다. 

오디오 시스템의 어느 일부분을 개선했을 때 흔히 느끼는 일이다. 때로는 매끈 일변도이던 바이올린이 흔히 쓰는 말로 '송진가루가 풀풀 날리는' 현장감 넘치는 찰현음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또, 전혀 존재가 느껴지지 않던 악기가 저기 혼란한 오케스트라의 뒤편에서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나 가슴을 서늘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오디오라는 괴물에게 자진해서 납공을 하기 시작하는 단초가 된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끝없는 소리의 세계로 빠져들어서 천하의 명기를 찾아서, 또는 절세의 매칭을 찾아서 거의 구도자적인 고행의 길을 자초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적당한 곳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름대로 절묘한 타협안을 고안해내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별로 동요 없이 고요히 조촐한 기기에서 나는 소리로도 쉽게 삼매경에 잠겨 들기도 하고.

'음악은 안 듣고 뭔 쓸 데 없는 돈지랄이냐' 
'저걸 소리라고 듣고 있는 거냐, 귀에 말뚝 박은 막귀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삿대질하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리지만 일단 소리가 명징해지고 해상도가 증가하면 음악적 감흥도 어느 정도 증가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 한계의 모호함에 염증을 느끼고 일찌감치 자신의 범위를 찾아 안주하는 현명한 이들도 많다.(개인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오디오에서 현장음을 찾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라, 어리석은 생각 집어치우고 연주회장이나 부지런히 댕기라는 대단히 엄숙한 말씀도 있다.
뭐, 당연히 옳은 말씀일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가급적 대도시 인근에 거주해야만 비로소 그것이 가능하다는 현실을 망각한 망언으로 이 나라의 지역적 문화적 차별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사는 촌사람들에게 욕 얻어먹기 딱 알맞을 잘난 척이다.

또, 오디오는 오디오다. 현장음과 비교치 말라, 그것은 또 다른 소리의 세계다. 이런 말씀도 있다.
어느 말씀이 구극의 진리인지 나는 잘 모른다. 어쩌면 이 두 세계 사이에는 구극의 진리라는 것이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소리와 음악의 혼돈 속에 갇혀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에 불과하니까. 

그래도 한 삼십년 넘게 음악이랍시고 끼고 살다보니 나름대로 할 말은 많다. 그러나 할 말이 많다고 해봤자 재미없는 자기변명에 합리화가 거개인 그렇고 그런 백인백색의 중구난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꺼내 놔 봤자 본전도 못 건지고 얼른 주워 담을 객소리.

굳이 어거지로 결론을 내려 본다면, 좋으면 좋은 대로,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그 시간, 그 장소, 그 상황에서 좋은 감동을 받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게 대충 버무린 나의 생각이다. 정답이 없거나, 있다 해도 답을 모르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 박쥐같은 생각일 수도 있고.

칼날 같은 핀 포인트 맞춰놓고 꼭지점에 망부석처럼 앉아서 듣든지, 대구마구 양껏 볼륨 올려놓고 마당 쓸면서 듣던지 그건 각자의 몫이다. 

돈지랄이다 싶으면 조촐하게 갖춰 들으면 될 일이고 일생을 두고 추구해야 할 무엇이다 싶으면 가산을 탕진해서라도 덤벼 볼 일이고.
다만 옆집 사람이 제 배짱에 안 맞다고 삿대질은 마시라는 거다. 다들 하시는 말씀대로 궁극의 목적은 음악을 듣는 데 있는 것이지 상대방을 꺾어서 던져버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니까.

진공관이 좋다 티알이 좋다 갑론을박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시디가 좋다 비니루가 낫다 옥신각신도 잊을만하면 또 올라온다.
나는 마구 듣기만 할 줄 알았지 이론에는 맹탕인 청맹과니라 그 논쟁(언쟁?)들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기기에 몰입하지 말고 음악을 듣자는 근사한 말씀들과는 달리 같은 문화적 입맛을 매개로 모여든 공간에서 재생장치와 소스에 대해 증명하고 반박해야 할 무슨 이론과 주장이 그렇게도 사납고 드센지 곁에서 얼쩡거리며 구경만 하다가 앗 뜨거라 싶어서 빠져나오곤 한다.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무찌르고 나서 듣는 음악은 더욱 더 감동적일까?

육군 졸병 때 손바닥보다 작은 산요(소니?)라디오에 이어폰(요즘 나오는 근사한 몇 만원, 몇 십만 원짜리 전문가용 스테레오 이어폰이 아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한 개짜리(only one ear !!!) 상아색 백 원짜리 싸구려, 그야말로 이어폰이ek.)꽂아서 야간 입초 때 주번 사관의 눈을 피해서 듣던 에프엠 방송과, 오디오쟁이들의 집을 방문해서 듣는, 그 지극정성으로 다듬고 맞춘 그들의 소중한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수입 음반들의 소리는 그 감동의 격이 다른 것일까?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일까?

그 때와 비교하자면 아마도 순수하게 음악 그 자체에 몰입하는 경우는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 더 좋으면 더 좋은 것이다, 뭐 두리뭉실 그런 생각이겠지.
오로지 희미한 라디오 소리에서도 가슴 설레고 콧마루를 비비던 열정은 식은 듯해서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음악적(?.. 마땅한 수식어의 고갈이다....)으로 타락한 지경에 이르렀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때와 비교해자면 욕심이 좀 더 많아졌다고 할까. 아님 좀 뻔뻔스러워졌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것만으로는 안 돼, 이제 난 좀 비싸졌거든? 내게 좀 더 깊은 감동을 바란다면 한 결 나은 품질로 승부를 걸어 보란 말씀이지.'

한 마디로 음악과 오디오에 바라는 것이 많아진 것이겠지. 물론 음악에 대한 생각이나 관점, 이런 것도 그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본 글귀를 여기 그대로 대입한다고 그리 무리는 없을 듯.

'아는 만큼 들리고 지금 들리는 것은 그 때와 같지 않으리라.'


푸가의 기법을 듣는 순간 음악이 문학적 상상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오래전 어느 LP 재킷 뒷면에서 읽었던 글인데 아직도 간혹 생각이 난다. 정확한 문장이 저랬던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튼 대강 그런 뜻으로 쓰여 진 말인 듯하다.
'문학적 상상력' 이라는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문장을 썼지만 이것은 내가 느끼기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 음악에 자극된 감수성이 무작위로 건져 올리는 과거 자신의 궤적이나 상상력이 계통 없이 혼연, 조합된 막연한 느낌 같은 것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말대로라면 푸가의 기법을 들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는' '무아의 경지' '열반'  뭐 그런 상태가 된다는 걸까? 잘못 이해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일단은 그런 것 말고는 딱히 어떤 상태인지 가늠해 보기가 힘 든다.


나의 경우, 어떤 곡을 듣기만 하면 한없이 청명한 하늘과 싱그럽기 짝이 없는 풀밭이 정확하게 수평으로 나누어진, 그리고 꽤 멋지게 보이는 나무 하나가 달랑 바람에 휘감기며 서 있던, 오래 전 살던 방의 한 쪽 벽에 걸려 있던 달력 그림이 줄기차게 생각난다든지, 슈베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몽롱한’ 환상곡 바 단조의 초입부를 들으면 어쩐지 별로 행복하지 못했던 유년기의 어느 봄날 언덕 위로 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면서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일로 혼자 울면서 풀만 집어 뜯고 있던 그런 기억이 꼭 떠오른다든지, 이런 저런 기억과 상념의 연상들이 이른바 ‘문학적 상상력’이 아닌가 짐작해 보고 있다.
주로 상쾌하거나 즐거운 기억보다는 어쩐지 우울하고 침침하고 외로운 기억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최소한 떠들썩한 기억보다는 고요하고 적막한, 하여간에 어떤 음악에는 어떤 류의 기억들. 이런 등식이 성립되는 경우가 많다.


하긴, 또 이런 경우도 있다.
늘 듣던 곡인데도 연주자를 바꾸어 들었을 때 그 연주를 비교하자 치면 마냥 '소리'만으로 음악을 듣는 경우도 적잖이 있기는 하다.
그것 아니라도 대부분 바하 전후의 음악을 들을 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소리, 주로 작곡한 이가 주장한 선율과 연주자의 역량에서 배어나오는, 단지 '소리가 주는 어떤 느낌'을 즐기면서 그냥 듣는 그런 경우도 더러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푸가의 기법을 듣는 순간에 다가오는,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어떤 깨달음과 같은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하여간 뭐가 뭔지 정확한 의미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 때 성악은 가사의 내용으로 인해서 그 이상의 상상력을 제한해버린다는, 그래서 그 가사 내용 이하의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연상 작용만큼만 아름다운, 그래서 질이 좀 떨어지는 음악이라는 예단을 가지고 음악을 들었던, 좀 시건방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것 역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섣부른 금 긋기였다고 지금은 반성하고 있다.


큰 놈이 어렸을 적에 녀석과 잠자리에 들면서 자주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그 곡을 들으면서 아무거나 생각나는 걸 서로 이야기하는 놀이를 꽤 오랫동안 했었다. 해 보면, 듣는 곡에 대한 선입견을 이미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나는 늘 한다는 것이 대부분 선율에 이끌려 나오는 이런 저런 풍경이나 서정이나 정경이다.
반면에 어린놈은 어느 때는 귀찮은 듯이 아주 간단하게, 또 어느 때는 지루할 정도로 무슨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듣고 있노라면 대부분 낄낄 웃음이 나오는 그런 유치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이랑 놀면서 다툰 이야기라든지 어디 여행을 가거나 놀러 가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에 자의반 타의반 윤색을 한 이야기들, 그리고 동화에 나올법한 이야기들의 짬뽕이 태반이었다. 그래도 그 놀이는 꽤나 오랫동안 꾸준히 했었다. 나 또한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려고 노력했었고. 어린놈이 나름대로 서양 고전음악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며 통로일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지금에야 뭐 내가 듣는 음악들은 콧방귀도 안 뀌고 힙합에다 알앤빈지 뭔지 지 혼자 잘났지만.


다시 푸가의 기법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 가보자.
글쎄, 그 이야기가 오로지 화성이나 멜로디의 유희만으로 음악을 즐기는 것이 더 고급하게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라는 뜻이라면 나는 선뜻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물론 소리 그 자체에 감동받아서 긴장을 풀지 못하고 부동자세로 끝까지 듣게 되는 그런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리고 솔직히 그런 경험은 기분 나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문학적 상상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다'/라는 문장의 미묘한 뉘앙스는 그것이 좀더 상급의 무엇이라는 주장인 듯해서 그다지 유쾌하지가 않다. 물론 일단은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그리고 그 사람은 글의 끝머리쯤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미완성 된 열아홉 번 째 마지막 곡의 끝에서 별안간 뚝 끊어지는 마지막 음표 뒤에 이어지는 정적에서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꼈다/


글쎄. 지금 생각해봐도 이건 좀 과장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뭔가 좀 쓸쓸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긴 했지만 아이고, 그렇다고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까지 느끼게 될까 싶긴 한데,
오늘도 현악 사중주로 편곡된 푸가의 기법을 듣다가 그 마지막 곡에 대한 해설이 생각나서 또 한번 느껴보려 잔뜩 짓누르고 기다려봤지만 뭐 별 무신통이었다.
아무래도 그 해설가가 너무 '문학적'으로 근사하게 포장을 했거나, 아니면 내가 가진 음악적 감수성이나 내재율이 푸가의 기법 같은 곡에서는 족탈불급으로 턱없이 부족하든지 무슨 사단이 있을 수도 있겠다. 뭐 그렇다고 음악 듣고 억장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내 발등 찍으며 장탄식을 할 노릇도 아니고.


연주회장에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한 때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워낙 고답한 생각이 없지 않은 문화적 울타리를 갖고 있는 분야인지라, 무턱대고 '개혁적인 코드'를 갖다 들이밀며 혁명의 깃발을 흔들어댈 수는 없는 노릇이겠다. 하지만 그 때 그 문제로 가까운 지인과 의견 상충으로 평소 그리 생각치 않았던 그 사람 자체에 대한 개운치 않은 느낌마저 들었던 기억을 되새겨 보면서 서양 고전음악이 연주되는 연주회장에서의 어떤 '예의'의 경계에 대한 생각으로 이것저것 연결 되지 않는 뜬금없는 생각들이 줄을 이어 따라 나왔다.


그래서 혹, 그 예절이라는 것이 어떤 류의 '격리감'이나 작위적인 '청결감' 같은, 은밀하게 제한된 공간에서만 거래되는 무슨 '선민의식'같은 것들이 아니기 만을 바라는 마음에서 주제넘게 한 마디 꺼내 본 것이지.


고전음악은 그것대로 좋은 것이로되 고전음악을 향유할 줄 안다는 것이 즐거움을 넘어서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을 은연중 업신여기는 도구로 사용되거나 귀부인의 목이며 가슴에 귀금속이나 보석으로 치장 된 브로치나 목걸이처럼 자랑거리나 과시용의 장식품으로 저자에 유통되는 것은 음악, 또는 예술 전반보다 명확하게 우위에 있어야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 사건은 사건 그것대로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토막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대체 무슨 연관이 있냐고?
늘 그렇듯이 내가 말 해 놓고도 도무지 정리가 잘 안되긴 하지만, 이야기 끝에 따라 나오는 걸 보면 어디선가 맞닿은 곳이 있기는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서양 고전음악을 듣는 방법이나 태도 같은 곳에서 가끔 보이는 그 쪽 계통 사람들의 묘한 선민의식 같은 것들과 푸가의 기법을 이야기 했던 그 해설가의 요령부득의 해설이 어쩐지 색깔이 비슷해 보여서 그랬을까.






카라얀이라는 이름을 이야기하자면 더러 만나게 되는 말이 있다.
‘드런 놈!’
‘독재자!’
‘상업적이지!’
‘쇼맨십이야!’
‘개폼으로 먹고 사는 싸구려!’
‘나치의 개!’
‘조미료 투성이’

일단 나치에 관련된 역사적인 논란거리에 대해서는 밀어 두기로 하자. 나는 카라얀이라는 자연인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노란 간판 모양의 성음 라이센스 음반으로 만났던, 지금은 죽고 없는 어떤 음악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니까.
이런 저런 사료나 기록들을 보면 그의 전력이나 처세술 같은 쪽으로는 일면 수긍이 가기는 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음악까지도 싸구려에 쇼맨십만으로 발라 놓은 깡통이라는 견해에는 선뜻 공감할 수는 없었다. 물론 내 입맛에 비해 조미료끼가 다소 있다는 것은 동의를 하는 편이다. 다만 그것도 느끼해서 못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한 사람의 예술과 인격을 동일선상에 놓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나는 일단 한 인간의 도덕률이 타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것을 강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도 도마에 올리려면 또 논란거리가 될 충분한 소지가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밀어 두자.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기준은 각자의 신념에 뿌리를 박고 있으니 자칫하면 험악한 분위기를 자청할 우려도 없지 않은데다가 안그래도 심란한 봄날에 이런 무거운 주제로 갑론을박하자면 뒷심도 딸릴 것 같고. 

즐겨 뽑아드는 애장반에서는 꽤 오래전에 빠졌지만 누가 뭐래도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 5번은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연주다. 물론 누구에게나 각자의 추억에 뿌리박은 추억의 명반이야 한 두 장쯤 있기 마련이지만 나에게는 열 몇 살 때 호마이카 장전축 앞에 주저앉아 주술에 걸린 듯 꼼짝없이 듣고 있었던 그 땡판(그 당시 한 장에 백원, 이백원씩 하던 불법 해적판)이 절대 버릴 수 없는 추억의 명반이다.


하도 돌려 대서 이제는 바늘을 얹어 놓기가 두려울정도로 스크래치도 심하고 아주 걸레처럼 찢어져버린 재킷을 비닐 테이프로 얼기설기 땜질 해 놔서 보기에도 참 그렇다. 게다가 현역에서 은퇴한지가 벌써 수십년이라 손길도 멀어진 채 먼지들이 틈틈이 끼어 있지만 나는 그래도 이 고물딱지를 버리지 못한다.

그 때 그 시절, 술이라도 한잔 마신 날이면 젓가락이며 볼펜을 지휘봉 삼아 휘두르며 객기를 부리곤 했던 덕에 지금도 카라얀의 베토벤 5번이라면 그 호흡을 거의 기억하고 있다. 아, 악보도 제대로 못 읽는 까막눈이가 진짜로 무슨 지휘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감흥에 못 이겨 겉보기에 그럴싸하게 흉내를 낸다는 것이지. 
그러다가 나도 한 때는 남들이 하도 무섭게 패대기를 쳐 대길래 공연히 주눅이 들어서 이거, 온 세상에 널린 게 카라얀이로구나, 흔해빠진 순 싸구려 음악을 나 혼자만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돈이 장에 간다니까 나도 거름 지고 따라 나서는 격으로 엉거주춤 사갈시 해본 적도 있었다만.

우연이건 필연이건 그를 통해서 서양 고전음악에 세례를 입은 지 수십 년이다. 이만큼 나이도 먹었고 이 나이 먹을때까지 그래도 끊이지는 않고 그럭저럭 서양 고전음악에 발을 적신채로 살아왔으니 이제는 웬만큼 그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가 되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가 최소한 세평에 휩쓸려 매도되어 마땅한 싸구려 지휘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카라얀의 베르디 서곡집을 듣고 그 몰취미함에 질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음반은 일찌감치 내 장서에서 퇴출 되고 말았고. 그 외에도 그저 그런 개성 없는 연주로, 혹은 감성의 깊이나 색깔이 맞지를 않아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음반들도 적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연주들이 모두가 그럴까.
전력이 어떻고 상업주의가 어떻다고들 말은 하지만, 음악과 오디오에 관한 글 중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거이 읽어 마지않는 정관호 씨가 언젠가 극찬해 마지않던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연주에 대한 평에도 공감을 하는 편이고, 나 개인적으로는 오페라 간주곡집에 들어 있던 노트르담 간주곡을 그 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만큼 소름 끼치게 깊은 기복으로 연주 할 지휘자가 그리 흔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게 어떤 음반을 고르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할 때 나는 그렇게 말한다.
‘누구 누구의 연주가 나는 좋더라. 그것이 없다면 저것. 그리고 이건지 저건지 잘 모르겠다든지 선뜻 선택하기가 망설여진다면 카라얀의 것으로 하는 것은 어떨지. 그러면 최소한 완전히 망치는 일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가장 훌륭한 연주가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완전히 망쳐버린 선택이 될 가능성은 상당히 줄일 수 있는 연주. 나는 일단 그렇게 생각한다. 거의 대부분의 장르에서 평균 이상은 한다는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상업주의에 쇼맨십이라지만 칠팔십 년대만 해도 비주얼은 물론이거니와 일반적인 정보마저도 터무니없이 취약했던 촌구석에서의 카라얀은 비주얼이건 쇼맨십이건 도대체 사진조차도 그리 쉽사리 구경 할 수 없었으니 비주얼에 의한 현혹도 미혹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듣는 비난과 악평도 음악 외적인 요소와 함께 그의 음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불공평한 분위기에 편승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사상과 철학이 구린 예술가가 어떻게 아름답고 숭고한 결과물을 내 놓을 수 있겠느냐며 추상같이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이들의 결연한 비판도 나름대로의 입지를 갖고는 있겠지만 나는 블라인드 테스트로 음악을 듣기만 해서는 연주자의 사상과 도덕성까지 구별해 낼 자신이 없다. 심지 깊은 푸르트뱅글러의 연주도 물론 좋아하지만 굳이 선입견을 갖고 카라얀의 연주를 기피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아, 혹시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도 카라얀이 대체로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냄새가 나는 곡들보다는 드라마틱하고 문학적인 색채가 짙은 곡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있다. 간혹 그렇게 느끼기도 했고. 그렇다면 나도 그에 대한 약간의 편견은 갖고 있다는 뜻일까.

그렇더라도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내가 즐겨 뽑아드는, 사춘기 때부터 내 가슴을 흠씬 적셔 온 카라얀이 남긴 수많은 명연주들을 배척하고 기피할 생각이 없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약간 구린내 나는 명언을 여기다 갖다 붙여도 될까. 
.............안될까?


혹시 제목을 혼동하여 열어 보신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서 만덕이는 오먼디, 즉 필라델피아의 상임 지휘자였던 유진 오먼디의 막가파식 애칭입니다. 오만덕.
베토벤을 배도빈으로 부른다든지 모차르트는 모재도, 카라얀은 갈호윤, 장드롱은 장도룡 등등 한 참 치기만만할 때 만들어 즐기던 좀 억지스런 애칭들입니다.


각설하고,
오만덕 영감님은 지휘자로서는 일단 인상이 별로입니다.
카라얀처럼 은근히 신경 쓴 외모에 포토제닉까지 다분히 염두에 둔 사진들이며 현란한 지휘 폼이라든지, 아니면 오토 클렘페러처럼 무시무시한 얼굴에 번쩍이는 안경, 말 안 듣고 삐딱하니 엉기다가는 한 대 얻어터질 것 같은 카리스마. 첼리비다케나 솔티처럼 대충 찍어 놔도 뭔가 있어 보임직한 근엄한 인상이라든지 뭐 그런 게 안 보입니다. 그냥 선하게 둥글둥글 생긴 얼굴에 지휘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훌러덩 벗겨진 대머리.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음반 표지의 사진을 보면 모르긴 몰라도 똥배도 적잖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체형입니다.


모름지기 한 무리의 리더라면 일단은 코가 좀 근사하게 생기고 볼 일입니다. 아니, 뭐 그렇다고 그래봤자 서양 사람인 오만덕 영감이 내 코보다야 작을까마는 그래도 하관이 약간 빠진 얼굴에 코가 길쭉하니 매부리코 쯤 되어서 얼굴 한 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으면 어쩐지 내실여부는 차지하고라도 뭔가 범접할 수 없어 보이는 권위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이 영감님은 다른 지휘자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 순하고 착해 보인다는 겁니다. 비교적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그런지 나는 오먼디의 교향곡이나 관현악곡에서는 그리 매력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일등은 하나도 없고 이등도 드뭅니다. 하지만 오늘의 주제인 협주곡으로 옮겨 가 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교향곡이나 관현악 곡에서 단점으로 여겨지던 선의 유약함과 고저장단 기복의 무난함이 독주자와의 앙상블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막힌 장점으로 둔갑합니다. 독주자를 서포트 하면서 적당한 무게를 실어 밀어 부치는 호흡이 기가 막힙니다.
순전히 주관적인 기준이지만 내가 일등으로 꼽은 연주들을 한 번 나열해 보겠습니다.


★호로비츠 협연의 라흐마니노프 3번. 카네기 실황입니다.
삼악장이 끝나자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환호와 박수소리만 들어도 본전은 건질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생각하는 연주입니다.


루빈시타인 협연의 쇼팽 2번.
만덕이 영감님이 루빈시타인과 협연한 1번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도 쇼팽의 1번에서는 스크로바체프스키 지휘의 협연이 가장 좋았습니다만 이 1번과 라이센스 커플링으로 발매되었던 발렌시타인 협연의 2번은 만덕이 영감님의 지휘반에 비하면 맛이 많이 싱겁습니다. 똑같은 독주자를 두고 지휘자만 달리 녹음 되었으니 비교하기가 딱 됐지요. 오먼디가 일등입니다.


오이스트라흐 협연의 차이코프스키.


역시 오이스트라흐 협연의 시벨리우스.

나는 이 두 곡의 연주를 듣고 난 뒤로는 단 한 번도 다른 연주를 탐 내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역시 일등입니다.


반 클라이번 협연의 라흐마니노프 파나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도 괜찮습니다.


아쉬케나지 협연의 라흐마니노프 3번.

아쉬케나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연주만큼은 자주 듣게 됩니다.
호로비츠의 같은 곡과 비교해서 좀 더 세련된 연주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라흐마니노프 3번에서는 일등이 두 개란 말이냐! 혼내실까봐 미리 설레발을 쳐 놓습니다. 호로비츠는 실황에서 일등, 아쉬케나지는 스튜디오 녹음에서 일등입니다... @@..
어느 하나를 빼기 싫을만큼 둘 다 좋아하는 연주라서 그렇습니다.


앙뜨르몽 협연의 생상 2번.

노오란 볕이 쏟아져 내리는 늦가을, 한적한 국도를 창문 열어놓고 달리면서 듣기 좋은 연주입니다. 클래식이라면 무조건 귓가에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이라도 가슴이 슬쩍 설렐만할 겁니다. 조수석에 새까만 나이방 쓴 묘령의 여인이 타고 있다면 모르긴 해도 그 날 밤은 귀가가 몹시 늦어지거나 갑자기 바쁜 일로 외박을 하기가 십상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음.


하기야 뭐 그 정도 일등 안 해본 톱클래스의 지휘자가 있냐 없냐 따지고 들면 별로 할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묘하지 않습니까? 교향곡이나 여타의 관현악곡에서는 그저 그런 타작이나 양산해 내던 만덕이 영감님이 괜찮은 독주자를 만나 협주곡만 만지면 아연 근사한 물건들을 속속 맹글어 놓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두리뭉실한 영감님이 불가사의한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기야 보통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저런 연유로 특별한 자리에서 참 빛나 보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혹자는, 독주자들이 다 내로라하는 거장들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삐딱하게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똑같은 독주자의 경우라도 서포터를 잘못 만나서 그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고만 지지부진 납작하고 볼품없는 타작을 만들어 놓은 예는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 역도 당연히 성립합니다. 제아무리 탄탄한 실력을 가진 오케스트라며 지휘자라도 협주곡의 심지를 훑어나가는 독주자의 역량이 태부족이면 그거 들어보나 마나지요.
하여간에 이 협주곡이라는 장르는 그러한 변수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매력이 있으므로 비교 감상이라는 좀 좀스러운 재미를 찾기는 그 중 으뜸입니다.


혹시 서양 고전음악에 막 입문해서 점점 재미를 붙여 나가는 분들이나 연주자별로 비교 감상의 재미에 맛들인 분들은 이 협주곡의 마법에 발을 한 번 디뎌 보는 것도 삶에 기름칠이 될만 한 썩 괜찮은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만덕이 영감 말고도 무수히 많은 협주곡의 명연들이야 쌔고 쌨습니다만, 하여튼 이 순해빠져서 꽥 소리도 못 지를 것 같이 생긴 두리뭉실 만덕이 영감님이 근래에 계속해서 내 손에 집히길래 오랫동안 품어왔던 만덕이 찬가를 한번 목청껏 불러봤습니다.


뭐, 순전히 혼자 생각이니 전문가나 이론가 여러분께는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부디 어떤 촌놈이 겁도 없이 나서서 장바닥에서 깨춤을 추었구나 그리 여기시고 증빙 자료나 전문용어를 동원한 피박만큼은 씌우지 마시기를 고대 앙망하는 바입니다.

 



이십여년 전쯤이었습니다. 밤낮으로 미친 듯이 피아노 음악을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시절 다 썩은 고물딱지 오디오에서 나오는 그 멍청한 소리로도 피아노는 무작정 좋았으니까요. 이유는 없습니다. 아니, 모릅니다.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기억이 없으니 그냥 이유는 없는 걸로 해 놓지요. 찾아 내봐야 그럴싸한 사연이 있을 것도 아니고.


그 거대한 기계 덩어리. 수많은 나사와 역시 수많은 기어, 경첩, 희고 검은 많은 스위치(?) 그리고 자동차의 그것만큼 많은 페달. 튜닝을 하기 위해서는 거의 자동차 바퀴 빼는 연장 비슷한 걸 들고 덤벼야하는 그 괴상하고도 거대한 악기. 그 엄청난 무게의 덩치가 어쩌면 그렇게 신묘한 소리를 내는지. 그 복잡하고 난삽하기 짝이 없는 연결 장치를 거쳐서 나는 소리가 어쩌면 사람마다 다르고 손가락마다 다른 소리를 내 주는지.


겉보기에 가장 비인간적인 악기. 악기라기 보다는 가구에 가까운 물건.
직접 손가락으로 현을 긁거나 누르는 것도 아니고 입 냄새 나는 바람을 불어넣어서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닌 것이.


뭣에 홀린 듯이 닥치는 대로 사들였습니다. 아마 그 당시에 나왔던 라이센스 음반은 거의 휩쓸어 샀을 겁니다. 물론 난해한, 또는 나로서는 불가해한 음악들은 빼고.


하여튼 무작정 사 놓고는 무작정 들어댔지요. 종래엔 음악과 곡명과 연주자들이 뒤섞여서 머릿속이 퉁퉁 불은 잡탕이 되어버렸고.
사람이건 기계건 용량을 초과하면 탈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급기야는 곡을 듣고 곡명이 생각나지 않으면 안달복달하는 강박증 비슷한 증세가 생겼었지요. 물론 지금은 완쾌 되었으며 이제는 오히려 뭔가를 알려 하면 매우 강력한 방어기제가 발동하여 눈꺼풀이 저절로 덮이는 부작용까지 생겨버렸지만. 눈감고 무작정 듣고 무작정 좋아할 줄 밖에 모르는 까막눈이...


그래서 어쩌다 음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면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잘도 지껄입니다.
'이론적인 배경에 초연한 거시기지. 음악은 음악일 뿐. 난 그저 들을 뿐이고.‘
어떻습니까. 조금 거시기 하긴 하지만 어물쩡 둘러대는 솜씨는 쓸 만 하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좀 켕기는 것이 일찌감치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서 어찌어찌 그런대로 쓸만한 이론적 지식 같은 것도 같이 습득해 놓았더라면 하는 만시지탄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저 어디 가서 풀 좀 세우려면 다소 복잡하고 아리송하게 들리는 전문용어들이 딱 제격인데.


하여간에 피아노 입니다.
몇 해가 지나자 거의 미친 듯이 파고들던 피아노가 어느 순간에 좀 뜸해졌습니다. 피아노는 그렇게 뚜렷한 이유도 없이 내게 다가 왔다가 또 그렇게 별다른 계기도 없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습니다. 그 이유 또한 모릅니다. 변덕일 수도 있고 용량 초과로 탈이 났었는지도 모르고.
그 대신 그 자리를 현이 메꾸었습니다. 하지만 현은 피아노가 그러했던 만큼 광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있던 만큼에서 조금 더.


현재까지 내가 오디오를 세팅할 때 다른 것보다 조금 순위를 먼저 두는 첼로도 그렇고, 비올라는 그 코맹맹이 같은 비음(?)의 매력에 많이 끌리지만 판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애를 먹었습니다.
서울이나 그럭저럭한 큰 도시에 사시는 혜택 받은 문화인들은 잘 이해가 안 되실지 모르지만 그 당시 지방 소도시, 거기다가 서울에서 매우매우 멀리 떨어진 한반도 끄트머리에 처박힌 소도시의 음반시장은 생각 이상으로 열악했습니다.


원판 구경은 언감생심, 라이센스 음반들도 그저 서울, 부산 등지의 도매상에서, 그것도 반품이 안 될 만한 그렇고 그런 뻔한 레퍼터리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좀 별난 음반 하나 구할라치면 음반 가게 아가씨의 비위 맞추느라 손바닥에 지문이 닳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서울 부산 나들이 때면 적금 찾아 음반 가게 순례가 큰 행사였지요.
(인터넷은 커녕 컴퓨터란 물건조차 낯설던 고랫적 이야기입니다. 쓰다가 생각해보니 격세지감이 유난하네요.)


그러니 촌구석에 사는 게 죕니다. 그래서 아직도 내 판꽂이에는 쓸 만한 엘피 원판이라고는 가뭄에 콩 나듯 겨우 수 십장 꽂혀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도 육, 칠십 년대 불법 해적 땡판에 비하면 라이센스라도 감지덕지이긴 하지만.


하여간에 또 피아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피아노가 좀 시들해진 건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 어설프나마 조금씩 바뀌었던 오디오가 거기 일조를 한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까닭도 있었겠지만 기억도 잘 나지 않고.
그러다가 또 이 세월 저 세월 가는 사이에 피아노 음악은 내 장서 한 귀퉁이에서 그만 슬슬 찬밥이 되어갔습니다. 닥치는 대로 사재기를 해다가 마구잡이로 듣던 시절은 홀라당 다 까먹고 이제는 한 해가 지나도 손 한번 안가는 판이 다수가 되어 버렸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 당시 좀 잦은 편이던 이사 때문에 그놈의 비니루 판들에 넌덜머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한참 쪼들리고 핍박받던 수난기라 그것이 현금화 될 수 있다는 데 전기불이 번쩍하기도 한 거지요. 쓸모없는(?) 것들을 왜 보듬고 앉아서 사서 고생인가 하는 '대오각성'을 하고야 만 것입니다.
그래서 몽땅 쓸어냈습니다. 한나절을 퍼지르고 앉아서 퇴출 반들을 선발했습니다. 그리고는 선택받지 못한 판들은 내게서 떠나갔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독한 놈들은 이빨을 박박 갈면서. 박스에 담겨서, 뿅뿅 비닐포장지에 둘둘 감겨서, 노끈에 묶인 채로...


그렇게 단 돈 몇 푼에 눈이 어두운 주인에게 버림을 받고 어디론가 몽땅 팔려 가버리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절반 가까이 휑뎅그레 비어버린 판꽂이의 형해를 보고 싶지 않아서 일부는 분해해서 불쏘시개로 꺾어 넣어버렸고 일부는 지금도 부엌에 세로로 물구나무를 서서 후라이팬, 자루달린 냄비들 등, 여러 가지 주방기구들의 수납 가구로 맹활약을 하고 있지요. 엘피 꽂이라는 조금 특이한 사이즈 때문에 갖가지 기능으로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활의 지혜이긴 하지만 따라하지는 마시길. 피눈물 납니다.
아무튼 그 퇴출반들 중에 피아노가 삼분지 일은 넘었을 것 같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좀 더 흘렀습니다. 당연히 오디오도 조금씩 바뀌었겠지요. 그리고 음악에서의 편식도 조금씩 평정이 되어갔습니다. 그리하여 요즘에 들어서 그 때 피눈물 흘리며 쫓겨나간 판들이 조금씩 되짚히기 시작했습니다. 발등을 찍고 싶을 만큼 아깝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이, 사람이 이렇듯 간교하고 바람에 나부끼듯 가볍다는 말인지.


오늘 저녁 무렵 길렐스의 발트시타인을 들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듣는 길렐스의 발트시타인..... 컨디션이 웬만한 오디오가 쏟아 내주는 피아노 소리가 방바닥에 쫙 깔리는 쾌감에 사라진 판들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슈베르트 소나타들, 사티, 모짜르트 소품들, 군소 연주자들의 쇼팽, 일등만 남기고 쓸어 내버렸던 바하의 건반악기 음반들, 베토벤의 바가텔....


켐페인...................밉고 볼성사나운 자식이라도 덜렁 내다 버리지 맙시다.
입양이 잘 되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고약한 부모 만나 흠집투성이가 되어 있노라면 생부모 원망이 하늘을 찔러 꿈자리까지 사나워질지도 모르지요. 밉더라도 깨끗이 입혀서 잘 보관합시다. 긴 세월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효자노릇 한 번 안하겠습니까.


음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오래 전에 이 사람 음반을 처음 사서는 이름을 어찌 읽지 못해 고심하다가 저렇게 읽고 말았습니다.
웃지 맙시다. 그 땐 난감해서 고민 꽤나 했구만요.

첼로에 막 재미를 붙여가던 때여서 이름 값으로 이것저것 꽤나 사 들였고 지금도 이 사람 음반이 몇 개 남아있긴 합니다만 이제는 별로 매력을 못 느낍니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처음 접한 것도 로스트로포비치의 2번 3번이 커플링 된 한 장짜리 음반이었지요.
대개 그런 경우에는 각인이 되어서라도 손이 자주 갈 법한데 처음 몇 번 들어보고는 그만 그대로입니다.


그 때 내 돈 주고 샀던 한 장짜리는 예비군들 골라 쓸어낼 때 쫓겨 나가고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라이센스 샘플 엘피 두 장짜리 시커먼 음반만 갖고 있는데 그것 마저도 안 꺼내본 지가 제법 됐네요. 간혹 생각이 날 때면 푸르니에를 듣거나 뱅가드에서 나온 야니그로에 손이 가지 웬만해서는 좀처럼 잘 안듣게 되어버렸습니다.



녹음이 적은 편이 아니어서 어딜 가나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는 자주 눈에 띄는데 내가 아직 보질 못해 그런 건지 이 영감님의 앙상블 연주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연주 스타일이 워낙에 튀는 성향이라 그런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또한 그리 정이 안 가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힘차고 화려한 보잉으로 인한 대편성의 협주곡 같은 것은 아주 멋진 음반도 더러 있지요. 대표적으로 카라얀이랑 협연한 드볼작 협주곡 같은 건 아주 압권입니다. 그를 거장이라 칭하는 이유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지요.  


하지만 독주곡이나 이런 데서는 그리 매력이 없습니다. 한 십년 전쯤에 요란하게 광고까지 하면서 나온 바하 무반주 첼로조곡에서는 그만 아주 실망을 하고야 말았고. (이것도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습니다만.)
그가 젊어서 녹음했다던 무반주 첼로조곡 2/5번 커플링 음반에서는 좀 아슬아슬하나마 열기 같은 것도 느껴져서 괜찮았는데 만년에 녹음한 그 유명한 시디는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백화점식 양념 불고기 같은 느낌으로 내 장서에서는 고만 탈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소문난 잔치.


하여간 이 음스티 영감님의 연주는 내 욕심에는 늘 2 % 가 부족합니다. 싫어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썩 애착이 가는 것도 아닌 불가근 불가원. 내게는 꼭 그만큼의 영감님입니다.
아무튼 그놈의 음스티라는 얄궂은 이름 때문에 고심참담을 했던 생각이 나서 이야기를 꺼내 봤습니다. 그래도 그 뒤에 나온 어떤 영감님 이름보다는 발음이 좀 나은 편이었지요. 예프게니 음라빈스키....




손님, 마감시간입니다.


열한시가 넘었는데 집에 안가고 대체 뭘 하는지.

콧구멍만한 찻집 주인에게도 사생활은 있는 법이지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이십여 년 전 어느 해 초겨울 어느 때. 남도의 어느 소도시 지방 대학의 캠퍼스 후문 앞. 저녁 시간에만 시간제로 뛰는 아르바이트 여학생도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간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는데 이 손님들은 도무지 나갈 생각을 안 합니다.


구석자리 웅크리고 앉아서 서로 열심히 상대방의 신체를 탐구하며 도무지 나갈 생각을 않는 마지막 손님에게 일부러 커피 잔을 덜그덕 덜그덕 소리 내어 씻는다든지, 설거지 하던 사이폰 스프링을 일부러 그 쪽으로 튕겨 날려서 찾는 척 옆에서 서성거린다든지 창문 열고 환풍기 켜 놓고 청소기 돌리고 근 삼십 분 가까이 있는 눈치 없는 눈치를 다 줘서 겨우 내 쫓고는 셔터를 내리고 간판 불을 껐습니다.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남녀상열지사는 참 아름답고도 쓸쓸한 일이지만 어지간만하면 때와 장소를 좀 가려서 해주면 좋으련만.


손님이 나가자 나는 하는 체 하던 청소를 얼렁뚱땅 마친 뒤 난로 앞에다가 소파 세 개를 붙인 다음 느긋이 드러누워 게으름을 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종일 벌겋게 달아올랐던 갈탄 난로의 열기가 식어 으스스 추워지기 전까지 순전히 나만을 위한 복된 시간을 가질 참입니다.


아, 물론 이 시간쯤 되면 얼추 어슬렁거리고 찾아와서 손끝에 닿는 맑고 차가운 소주잔을 예찬하며 나를 유혹하는 사탄의 자식들이라든지, 아니면 초저녁부터 마감 시간까지 밥도 안 먹고 바에 죽치고 앉아서 커피 한 잔 값으로 저녁 한나절을 낭비하면서 되잖은 음악론을 거품 물고 지껄이다가 간판 불이 꺼짐과 동시에 쩝쩝 은근히 입맛을 다시며 인근 모퉁이 포장마차의 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익고 있는 닭똥집이나 시들어빠진 쑥갓 구겨 넣은 뜨거운 우동 국물을 찬양하는 단골손님들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기는 합니다만.


오늘은 다행히도 그 원수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마도 초저녁부터 종강 기념으로 망태가 되어서 학교 앞 막걸리 집 탁자 위에 안주와 함께 어질러져 있든지 밀린 리포트 때문에 빈 머리 채우느라 도서관 로비에서 줄담배나 뻑뻑 빨아대고 있을게 틀림없지요.
그 원수들이 없으니 어쩐지 조금 허전한 기분이긴 하지만 간만에 찾아온 평화를 내 스스로 깨고 사탄의 유혹을 자청할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사탄은 내 속에도 몇 마리 들어 있지요. 그것이 다만 그 며칠 사이에 그동안 임시변통으로 쓰던 양철쪼가리 싸구려 앰프를 내다 버리고 개비한 근사한 파이오니아 리시버 때문에 뒤집어 진 리비도의 서열에 눌려있을 뿐이지만.
게다가 이 녹턴형 리시버의 시꺼먼 창에 새파랗게 밤하늘 같이 푸른 문자색은 그것만으로도 그냥 예술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자태만으로도 내 마음을 빼앗는 마물이지요.


이걸 가져와서는 십만 원은 받아야겠다는 오디오쟁이 후배를 얼르고 달래고 협박하다가 공짜 커피를 수시로 제공한다는 미끼를 던진 뒤에야 근근이 만 원쯤 깎아서 사고 보니 주머니는 당장 허전해졌지만, 그 댓가로 벙벙거리던 피아노 소리는 댕글댕글하게 바뀌었고 떡덩어리처럼 뭉텡이로 나오던 오케스트라는 가닥가닥 풀어헤쳐져서 제자리를 잡으니 며칠 몇 끼 굶은 들 뭐 대수겠습니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데.


스위치 박스로 가서 실내등을 대충 끄고 난로 옆의 작은 전구만 몇 개 켜 두었습니다. 아직도 조금은 발그레 하게 달아있는 갈탄 난로에 화목 조각을 두어 개 더 던져 넣고 나면 물 날은 두툼한 쥐색 카페트 때문인지 이런 때면 실내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합니다.


아하. 조용한 밤에 들으니 역시 별 소리가 다 납니다. 조용하기만 한 줄 알았던 듀얼 1219의 아이들러 구르는 소리가 나직하게 우르릉거리고 이내 그 비할 수 없이 당차고 선명하고 맑고 매끄러운 파이오니아 리시버의 맑은 소리가 텅 빈 홀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오디오를 바꾸고 난 뒤 그 결과가 만족스러울 때의 희열은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참 이해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합니다. 열락이지요. 아무튼 그렇게 한 밤중의 복된 시간은 조금씩 흐르고 종일 서빙하느라 지쳐버린 나는 음악에 취해 있다가 어느새 깜빡 잠이 들었었나봅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요?


머리끝이 쭈뼛 섰습니다. 졸다 깨서 헛소리를 들은 건가요? 아닌데?
아니 대체 누가 어둑한 구석에서 중얼중얼 흥얼거리는 건지. 내가 조는 사이에 술 취한 주정뱅이가 들어 와서 웅크리고 앉은 것도 아닐 테고 아니면 어떤 간 큰 도둑놈이 장물 챙겨놓고 콧노래를 부른단 말인지. 내가 필시 잠이 덜 깬 거지. 그럴 리가 있나.
화들짝 일어나서 불을 다 켰습니다.
홀에는 아무도 안 보입니다. 주방 뒤의 커튼을 열고 방안을 살펴봐도 아무도 없습니다. 저 윗자리 책장 있는 원탁 쪽을 봐도 아무도 없네요.
그럼 혹시 화장실에서 귀신이 쭈그리고 앉아서 만두를 주워 먹고 있는 건지. 화장실도 말끔히 비었습니다. 그럼 대체 아까 그 소리는 뭐지요? 아차! 또 들립니다.
저게 지금 피아노 소리를 따라 흥얼거린다는 말이지요. 이게 대체 뭔 조화인지.


나는 그만 부리나케 외투를 집어 들고 찻집을 나서버렸습니다. 누구든지 내 역성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야 할 판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무서웠거든요.
다행히도 찻집 앞 아파트 모퉁이 포장마차에는 후배 녀석 하나가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막 술심이 오르기 시작하는 녀석을 다짜고짜 뒷덜미를 잡은 채로 끌어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술 마시다 졸지에 끌려나온 녀석은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뭔 귀신이 씨나락 까먹고 앉은 이야기를 하냐고 핀잔입니다.
이런 나쁜 놈.
나만 하니까 그래도 귀신이랑 용감하게 싸워 무사히 탈출을 한 거지 너 같으면 그 자리에 까무라쳐서 지금쯤 거품 물고 있을 거라고 허풍을 쳤습니다.


못내 가기 싫다고 주리를 트는 후배를 얼르고 달래다가 결국은 해결사 노릇을 해주면 돼지 갈비로 근사하게 한 잔 사겠다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약조를 하고서야 후배를 귀신 밥으로 삼아 노래 귀신이 중얼거리는 찻집으로 끌고 들어갔지요.
푸근하고 정겹던 내 찻집은 그 날 저녁 잠시 사이에 귀기가 흐르는 무시무시하고 어둠침침한 귀곡산장으로 변해 있었고 화목이 다 타버린 난로는 그 사이에 거의 식어서 어슬한 냉기까지 감돌고 있었습니다. 내버려두고 갔던 턴테이블에서는 다 돌아간 톤암이 제자리걸음을 하느라 직직거리는 소리만 나오고 있었고.


그제서야 가만 살펴보니 내가 참 놀라기는 놀랐던 모양으로 내실 방문은 열어 놓은 채로 커튼은 말려서 한쪽으로 밀려있었고 화장실 문은 훤하게 열린 채 의자까지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었네요. 아이고 망신스러워라.
일단은 그래도 귀신 밥을 하나 데리고 왔으니 조금은 진정이 되어서 다소 여유를 찾았습니다. 톤암을 제자리에 올려놓고 대충 정리를 한 다음 후배와 조용히 앉아서 또 다시 그 귀신이 중얼거리기를 기다렸지요. 하지만 이게 뭔 눈치를 챘는지 이젠 끽 소리도 없습니다. 한동안 기다리던 그 녀석은, 거봐라 대명천지에 무신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냐며 핀잔이었고 나는 졸지에 헛것을 보고 자지러진 겁쟁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가만 다시 생각을 해보자. 귀신이 설마 나보다 못생긴 후배를 더 무서워해서 내 뺀건 아닐 테고, 나하고 놀자 하다가 내가 달아나니 심심해서 가 버린 건지?
잠시 궁리 끝에 언뜻 생각이 난 것이, 옳거니! 그 귀신은 피아노 소리를 따라 중얼거렸었지. 그러니까 내려놓았던 톤암을 다시 음반 위에 올리고 음악을 다시 흘려보자니까요. 그럼 혹시 그 귀신이 또 찾아올지도 몰라요. 가만, 떠들지 말고 잘 들어보라니까!


..............!!!!


거 봐! 들리지!
드디어 사라졌던 중얼거림이 다시 들리기 시작하자 그 녀석도 아연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윽고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귀신을 찾아내기 시작했는데, 모가지만 달랑 남은 달걀귀신이건 스르르 치마 자락 미끄러지는 처녀귀신이건 뭐가 보여야 찾지. 형체는 없고 소리만 중얼거리는 귀신을 무슨 수로 찾는다는 건지.
뭔가 찜찜한 가운데 홀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이게 혹시 바하의 유령은 아닐까, 내가 몹시도 음악을 사랑하여(....) 구천에 떠돌던 바하의 유령이 지가 만들어 놓은 피아노 소릴 듣고 얼른 날아와서 내 찻집 구석 어느 한켠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우울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별 황당무계한 추리까지 하고 있었는데,


눈치 빠르신 분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그건 음반에 녹음된 피아니스트의 중얼거림이었고 그 판때기는 굴드의 골드베르크 연주였다는 싱거운 이야기입니다.
아니, 원, 그 괴팍 맞은 굴드의 괴상한 연주 버릇도 얄궂기는 하지만 왼 종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대던 음반인데 왜 그때서야 그 소릴 들었냐고요?
그거야 낮에는 장사한다고 분주하고 밤에는 한 잔 하러 나간다고 바쁘고, 그리고 음악이라고 맨 이 음반만 들어대는 것도 아니니 그렇지요.
그래도 그렇지 아닌 밤중에 그런 등신같은 난리 법석이 어디 있냐는 말이지요.


사실 뭐 그 음반도 그렇고 프랑스 조곡도 그렇고 가만히 귀 기울여 듣다보면 굴드의 중얼거림이 더덕더덕 뭍어 있지만 바꾸기 전의 고물 앰프로 들을 때는 잘 안 들렸어요. 그러니까 그 귀신 소동의 범인은 이 잘생긴 파이오니아 리시버라는 얘기입니다.
때마침 기말 시험 무렵이라 술친구들이 안 찾아오고, 밤은 이슥하여 쥐 죽은 듯 고요했고, 게다가 며칠 전에 개비한 앰프를 제대로 들어본 첫 날이었고, 이런 게 우연히 딱 하나로 맞아 떨어져서 그야말로 ‘아다리’가 된 거였지요 뭐.


그 난리법석의 주인공인 잘생긴 파이오니아 SX 1500 TD라는 리시버는 내가 몇 년 뒤 찻집을 그만두고 어찌어찌 대충 장가를 들고 난 후 내 방에서 양껏 사랑을 받다가, 사는 것이 허랑하여 고향을 떠나 동해안으로 이사를 와서까지 수 년 동안 깡통 출력석 하나 갈아 준 것 말고는 별 고장 없이 내게 견마지로를 다하다가, 나 때문에 이 몹쓸 길로 접어들어 지금은 럭스만 앰프에 프로악 스피커 매어서 듣고있는 동생의 입문기로 시집갔다가, 그럭저럭 천수를 다하고 어느 고물상으로 실려 갔지요.


그래도 스물 네 시간 돌려대는 찻집에서 몇 년을 버티다가 오갈 데 없는 백수 손에서 아침부터 밤중까지 또 몇 년을 돌려대고, 어지간히 오래 버틴 셈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쓴 걸로 치면 수십 년은 쓴 셈 일겁니다.
지금도 그놈과 비슷한 걸 보면 그냥 괜히 하나 가지고 싶어서 침을 꿀꺽 삼키지요. 나의 그 구식 일제 리시버들에 대한 애정은 어딘가 좀 맹목적인 데가 있어서.
미국제나 유럽제들도 이뿐놈들이 많지만 크게 호화롭지도 않으면서 은근히 아름다운 일제 구식 리시버들이 나는 하염없이 좋아요. 거기다가 문자 창이 새까만 녹턴형이면 그만 나는 무장해제가 되고 맙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놈을 하나 만난다면 하나 끼고 살고 싶은데 운이 안 닫는지, 아니면 워낙에 나이가 많은 놈들이라 만나는 놈들마다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은 일생 보듬고 갈만한 놈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틈만 나면 산수이나 파이오니아 녹턴형 리시버 하나 챙겨 볼 욕심은 늘 꿀떡같이 품고 있답니다.


마지막으로,
전혀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그 귀신 밥으로 삼았던 후배에게 돼지갈비를 샀냐고요?
흥.
지가 해결해 준 것도 아닌데 왜 삽니까? 그래도 내가 자린고비는 아니라서 그럭저럭 이슥해진 오밤중에 둘이서 사이좋게 한 잔 하기는 했지요. 그냥 싸고 양 많은 안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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