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제목을 혼동하여 열어 보신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서 만덕이는 오먼디, 즉 필라델피아의 상임 지휘자였던 유진 오먼디의 막가파식 애칭입니다. 오만덕.
베토벤을 배도빈으로 부른다든지 모차르트는 모재도, 카라얀은 갈호윤, 장드롱은 장도룡 등등 한 참 치기만만할 때 만들어 즐기던 좀 억지스런 애칭들입니다.


각설하고,
오만덕 영감님은 지휘자로서는 일단 인상이 별로입니다.
카라얀처럼 은근히 신경 쓴 외모에 포토제닉까지 다분히 염두에 둔 사진들이며 현란한 지휘 폼이라든지, 아니면 오토 클렘페러처럼 무시무시한 얼굴에 번쩍이는 안경, 말 안 듣고 삐딱하니 엉기다가는 한 대 얻어터질 것 같은 카리스마. 첼리비다케나 솔티처럼 대충 찍어 놔도 뭔가 있어 보임직한 근엄한 인상이라든지 뭐 그런 게 안 보입니다. 그냥 선하게 둥글둥글 생긴 얼굴에 지휘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훌러덩 벗겨진 대머리.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음반 표지의 사진을 보면 모르긴 몰라도 똥배도 적잖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체형입니다.


모름지기 한 무리의 리더라면 일단은 코가 좀 근사하게 생기고 볼 일입니다. 아니, 뭐 그렇다고 그래봤자 서양 사람인 오만덕 영감이 내 코보다야 작을까마는 그래도 하관이 약간 빠진 얼굴에 코가 길쭉하니 매부리코 쯤 되어서 얼굴 한 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으면 어쩐지 내실여부는 차지하고라도 뭔가 범접할 수 없어 보이는 권위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이 영감님은 다른 지휘자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 순하고 착해 보인다는 겁니다. 비교적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그런지 나는 오먼디의 교향곡이나 관현악곡에서는 그리 매력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일등은 하나도 없고 이등도 드뭅니다. 하지만 오늘의 주제인 협주곡으로 옮겨 가 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교향곡이나 관현악 곡에서 단점으로 여겨지던 선의 유약함과 고저장단 기복의 무난함이 독주자와의 앙상블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막힌 장점으로 둔갑합니다. 독주자를 서포트 하면서 적당한 무게를 실어 밀어 부치는 호흡이 기가 막힙니다.
순전히 주관적인 기준이지만 내가 일등으로 꼽은 연주들을 한 번 나열해 보겠습니다.


★호로비츠 협연의 라흐마니노프 3번. 카네기 실황입니다.
삼악장이 끝나자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환호와 박수소리만 들어도 본전은 건질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생각하는 연주입니다.


루빈시타인 협연의 쇼팽 2번.
만덕이 영감님이 루빈시타인과 협연한 1번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도 쇼팽의 1번에서는 스크로바체프스키 지휘의 협연이 가장 좋았습니다만 이 1번과 라이센스 커플링으로 발매되었던 발렌시타인 협연의 2번은 만덕이 영감님의 지휘반에 비하면 맛이 많이 싱겁습니다. 똑같은 독주자를 두고 지휘자만 달리 녹음 되었으니 비교하기가 딱 됐지요. 오먼디가 일등입니다.


오이스트라흐 협연의 차이코프스키.


역시 오이스트라흐 협연의 시벨리우스.

나는 이 두 곡의 연주를 듣고 난 뒤로는 단 한 번도 다른 연주를 탐 내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역시 일등입니다.


반 클라이번 협연의 라흐마니노프 파나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도 괜찮습니다.


아쉬케나지 협연의 라흐마니노프 3번.

아쉬케나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연주만큼은 자주 듣게 됩니다.
호로비츠의 같은 곡과 비교해서 좀 더 세련된 연주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라흐마니노프 3번에서는 일등이 두 개란 말이냐! 혼내실까봐 미리 설레발을 쳐 놓습니다. 호로비츠는 실황에서 일등, 아쉬케나지는 스튜디오 녹음에서 일등입니다... @@..
어느 하나를 빼기 싫을만큼 둘 다 좋아하는 연주라서 그렇습니다.


앙뜨르몽 협연의 생상 2번.

노오란 볕이 쏟아져 내리는 늦가을, 한적한 국도를 창문 열어놓고 달리면서 듣기 좋은 연주입니다. 클래식이라면 무조건 귓가에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이라도 가슴이 슬쩍 설렐만할 겁니다. 조수석에 새까만 나이방 쓴 묘령의 여인이 타고 있다면 모르긴 해도 그 날 밤은 귀가가 몹시 늦어지거나 갑자기 바쁜 일로 외박을 하기가 십상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음.


하기야 뭐 그 정도 일등 안 해본 톱클래스의 지휘자가 있냐 없냐 따지고 들면 별로 할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묘하지 않습니까? 교향곡이나 여타의 관현악곡에서는 그저 그런 타작이나 양산해 내던 만덕이 영감님이 괜찮은 독주자를 만나 협주곡만 만지면 아연 근사한 물건들을 속속 맹글어 놓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두리뭉실한 영감님이 불가사의한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기야 보통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저런 연유로 특별한 자리에서 참 빛나 보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혹자는, 독주자들이 다 내로라하는 거장들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삐딱하게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똑같은 독주자의 경우라도 서포터를 잘못 만나서 그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고만 지지부진 납작하고 볼품없는 타작을 만들어 놓은 예는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 역도 당연히 성립합니다. 제아무리 탄탄한 실력을 가진 오케스트라며 지휘자라도 협주곡의 심지를 훑어나가는 독주자의 역량이 태부족이면 그거 들어보나 마나지요.
하여간에 이 협주곡이라는 장르는 그러한 변수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매력이 있으므로 비교 감상이라는 좀 좀스러운 재미를 찾기는 그 중 으뜸입니다.


혹시 서양 고전음악에 막 입문해서 점점 재미를 붙여 나가는 분들이나 연주자별로 비교 감상의 재미에 맛들인 분들은 이 협주곡의 마법에 발을 한 번 디뎌 보는 것도 삶에 기름칠이 될만 한 썩 괜찮은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만덕이 영감 말고도 무수히 많은 협주곡의 명연들이야 쌔고 쌨습니다만, 하여튼 이 순해빠져서 꽥 소리도 못 지를 것 같이 생긴 두리뭉실 만덕이 영감님이 근래에 계속해서 내 손에 집히길래 오랫동안 품어왔던 만덕이 찬가를 한번 목청껏 불러봤습니다.


뭐, 순전히 혼자 생각이니 전문가나 이론가 여러분께는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부디 어떤 촌놈이 겁도 없이 나서서 장바닥에서 깨춤을 추었구나 그리 여기시고 증빙 자료나 전문용어를 동원한 피박만큼은 씌우지 마시기를 고대 앙망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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