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산사

지난 가을에 근처를 지나다가 들르지 못해서 아쉬웠던 금산사. 그래서 겨울에 왔다. 나는 겨울 여행이 더 좋아.

첫 느낌이 절 마당이 훤한 것이 무슨 중국 무협영화에 나오는 절 같더라. 어느 귀퉁이에서 소림승들이 얍얍 당랑권 자세로 나타 날지도...@@.. 오른쪽이 국보 미륵전.
뭔가 느낌이 있기는 한데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네. 법당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하여튼 만나서 좋았던 미륵전.
언덕 위에 있는 적멸보궁. 겨울 나무를 이고 있어서 그런지 좀 막막하더라.
춥고 사람이 없어서 적적한 축구장만한 절마당.
언제나 내 눈을 잡아끄는 절지붕과 겨울나무와 하늘
불타는 황금 광배.. 이 불상도 국보라던가

2. 개암사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던 느낌의 작은 절. 

일주문은 없고 불이교.;.. 인줄 알았더니 들어올 때 눈길 때매 일주문을 안거치고 옆구리로 들어왔었고만.. 그저 미끄러울 때는 길 조심 발 조심....
큰 바위를 이고 있는 대웅전. 바위를 이고 있어서 蓋巖寺 인가 했더니 開巖寺였다.그러게 설마 절 이름을 그리 얄팍한 이름을 지었을리가.
해 넘어갈 무렵의 개암사. 가는 곳 마다 조금씩 시간이 늘어져서 이러다가는 혹시나 오늘 내로 바다를 보지 못할까 마음이 뒤숭숭.
결국 어둑해서야 도착한 격포. 바람 사나운 저녁 바닷가. 몇몇 서성이던 사람들도 다 돌아가고 나만 남았더라.
격포 옆에 채석강. 바람이 어마어마.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
해는 지고 흐리고 어두운 하늘에 그중 눈에 띄던 채석강 인근의 카페 정원수. 이름 붙은 명승지가 아니면 어때서. 보기에 좋고 느낌이 있으면 그것으로 명승이지.

늦게 도착해서 사진 몇 장 날리다보니 이내 어둑구석이다. 상가도 썰렁하니 사람도 없이 잠깐 서성거리다가 결국 캄캄한 밤중에 부안으로 출발. 부안읍이 어딘지 모텔 샤르가 어딘지 동서남북도 모르고 가란대로 갔더니 어찌어찌 무사히 숙소에 도착. 오밤중에도 길눈 밝은 신통방통 내비게이션. 이과 만세. 쓸모없는 문과 나부랭이 같으니. 

저녁 먹고 잠깐 부안 구경. 소소하지만 적적하지는 않았던 부안. 단정하고 반빡반짝하던 작은 소읍.

3. 능제 저수지   

 부안에서 자고 새벽길을 나섰다.  그리고 긴가민가하던 마음이 탄성으로. 차 세울 곳을 못찾고 잘 못 진입한 골목을 빠져나오느라 진땀. 큰 길을 따라 호수를 따라 돌면 주차장이 있더라.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고 나만 있더라.

흐려서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흐려서 또 좋기도 했던 그림들. 왼쪽 수풀로 가려서 안보이는 쪽은 보트 선착장. 선박 운전면허시험도 여기서 본다던가.
오른쪽 나무 아래로 빙 돌아 산책로. 동이 트는지 하늘이 조금 밝아지는 중.
철새가 바글바글.. 뒤뚱뒤뚱 오동통한 매력적인 바디라인으로 봐서는 무슨 오리같기는 한데 아는 게 없으므로 그냥 철새.
색깔이 아쉬운 아침 놀. 거 봐, 오리 치고는 너무 날렵한 거 아니야?
생각보다 꽤 넓었던 능제지. 여름에는 제트 보트도 다닌다고.큰 비가 와도, 오래 가물어도 물이 줄지도 넘치지도 않는다는데 어디서 흘러 들어오는 물도 없는데 신기하다 그랬던가.
조금씩 밝아지면서 엷게 채색이 되어가는 물빛. 이른 시간처럼 흐리고 철새 소리만 소란할 뿐 고요하고 예쁘더라.
귀(굽이)가 99귀라 100개가 되는 날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거라는 어지간한 동네마다 있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도 딸려있는 오래 된 저수지. 뭐, 내 보기에는 저수지라기보다는 아주 크고 깊고 멋진 호수였다. 날씨도 많이 춥고 그랬지만 그저 좋기만 해서 두시간이 넘도록 홀린듯이 자전거로 둘레길을 돌았던 능제 저수지. 혹 갈려면 이른 아침에 가는 것을 추천. 그 시간에 갔던 나는 좋았으니까.
떠나기 전에.잡은 나무 하나. 제목은 빛나는 나무. 선택받은 나무. 불타는 나무 등등... 아. 유치하다. 어쨌든 나이스 타이밍..

4. 장항항

딱히 목표점도 없이 혹여나 시간이 꼬이면 생략하고 지나치리라 생각했던 곳.  여행 계획을 짜면서 지도를 보다가 아무 이유없이 막연히 끌려서 경유지로 매겨 두었던 곳. 그래도 지나치지 않고 혹시나 해서 그 끄트머리까지 갔던 것이 너무 다행이었던 곳. 허름한 폐자재 더미 사이로 보이던 수평선이 거의 감격스러울만큼 반가웠던 곳. 

장항제련소 굴뚝. 토양 오염이 심해서 지금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채로 회복중.
장항항의 끄트머리에서 건너다보이던 풍경. 흐린 하늘과 썰물이 만들어 낸 멋진 그림.
생각도 못했던 선물같은 풍경을 만나서 신났음. .
영하의 날씨에 생바람을 맞으면서 거의 한 시간.
문수사로 가던 중 신호대기 중에 내 눈을 때리던 표지판의 햇빛때문에 한 컷. 열어 놓은 루프 창 밖으로 띵띵 얼어붙은 겨울 하늘.
서산 문수사. 기대했었는데 문수사라는 이름으로 연상되던 이미지와 너무 다른 모습에 허탈.
문수사를 빠져나오던 길에 신기한 풍경. 목장터라는데 정말 나무 한 그루 없이 바리깡으로 싹 밀어버린 민둥산 언덕.
자다가 눈 뜨면 어리둥절 할 것 같은 흔하지 않은 풍경. 한우 목장터래.
목장터 구경하고 다시 운전석에 앉았더니 이런 반가운 그림이! 적산거리 십만. 딱 십만. 얻어걸린 재미있는 사진.

5. 삽교호

가을에 이 앞을 지나치다가 차창 밖으로 언뜻 보이던 지평선에 홀려서 다시 와 본 곳.

자전거로 제방길을 돌아보려했더니 고병원성 AI때문에 못가라고 막아뒀더라. 그래서 옆 동네로 돌아서 들판이나 보고가자 하고 나갔더니 거기는 열려있데? 시간은 좀 더 걸렸지만 그래도 비슷한 곳을 볼 수 있어서 다행.
길을 다니다가 지평선이나 수평선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이런 압도적인 풍경
여행 내내 거의 이 그림같은 날씨와 색깔과 기온이었음.
삽교호 제방을 되짚어 되돌아 오던 길에

6. 상당산성

생각보다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성문에 올라서니 너무 어두워서 한 걸음에 마무리를 못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올라오기로. 시커먼 산성을 혼자 다니다가 멧돼지며 산짐승들 만나면 놀라고 무섭지. 밤눈도 어둡고.

성문 까지만 올라갔다가 중동무이를 하고 다시 내려와서 청주에 사는 지인을 만나 오랜만에 얼굴보고 밥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리고 담배냄새가 좀 남아있는 숙소로. '아우님의 새벽에 관한 글을 읽었을 때 맑은 물을 들여다보는 거 같았어요' 오래 전에 썼던 짧은 글을 새삼스럽게 칭찬해 주던 늘 고마운 분. 오랜만에 본 얼굴이라 세월이 많이 느껴져서 좀 쓸쓸했음. 나도 그만큼 늙었겠지.
다음날 새벽 너무 시간이 이른 탓에 이러나 저러나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나기로. 숙소 인근 해장국 집 근처 골목.
새벽달이 남아있는 해장국집 골목. 밥은 괜찮았는데 주문할려고 잠시 메뉴판 보는 사이에 그냥 섞은 국밥을 갖다 주더라. 살짝 당황했지만 맛이 괜찮아서 그냥 익스큐즈. 새벽부터 예민해지기 싫어서도 그렇고.
상당산성 고갯마루에서 어디론가 넘어가는 새벽길
저 굽이를 돌아서면 어쩌면 멀리 청주 시내를 볼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꽤 몇 구비를 걸었지만 생각보다 산이 깊었다. 그래도 좋았던 아침 산성.
산성을 좀 더 돌아보려면 어디로 내려갈까요. 어리둥절한 나그네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고 홀연히 사라진 산객.
그 길에서 만난 산새. 무슨 딱따구리같은 소리를 내길래 찾아봤지.
아니, 아저씨. 이런 무서운 다리가 있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한참을 걸었는데 다시 돌아 갈 수도 없고 말이야.... 다리가 많이 높고 많이 삐그덕거려서 많이 무서웠음. ㅜㅜ,,
문경 새재 가던 길. 여행을 하다보면 눈 앞에 열리는 길 옆의 풍경때문에 설렐때가 더러 있다. 여태 보지 못하던 풍경들. 시간들. 그래서 가끔 한적한 길을 운전하다가는 그냥 달리는 채 노파인더로 무턱대고 셔터를 누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낮은 확률로 꽤 멋진 그림을 건지기도 하지.
이것도 그렇게 가슴으로 찍은 사진. --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가슴팍에 대고 찍었다는 뜻임. ㅋ
얻어 걸린 각연사. 국도를 달리던 중에 '천년고찰 각연사'라는 큼지막한 이정표를 보고 즉흥적으로 들어선 산길. 경험상 절집으로 들어서는 길이 심상찮으면 십중팔구 그 절도 좋았었다.
그러게 이 호젓한 일주문의 분위기를 보라니까! 괜한 짐작에 그 절의 도력이 드높아지면 그 산천이며 나무들도 견성을 하여 그 자태가 남달리 고아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뭐, 반드시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야 뭐, 인과관계가 거꾸로일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예불가는 스님의 뒷모습을 슬쩍. 스님이 법당에 들어선 잠시 뒤부터 들리던 목탁소리와 염불소리도 많이 좋았음. 여느 절들에서 듣던 녹음된 그렇고 그런 방송 염불소리가 아니라 정말 오랜만에 듣는 내공 깊은 찐한 라이브... 그래서 그런지 절집의 분위기도 오가는 사람들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오연한 느낌이 있었더라. 그러게 뭐, 내가 분위기에 좀 잘 휩쓸리기는 하지...
하도 좋아서 절을 떠나기 전에 다시 한 컷. 어쩌면 다시 와보고싶을지도 모를 얻어 걸린 각연사

7. 문경 새재

여행의 제법 큰 꼭지로 생각했었는데 생각하고는 많이 달라서 조금 실망하고 많이 지쳤던 곳

주흘관. 문경새재 3관문 중 첫번째 관문. 이 조차도 입구 주차장에서 한 참 걸었어야 했다. 그래도 군더더기 없이 딱 관문만 버티고 서 있던 느낌은 괜찮았음.
주흘관 지나서 조곡관으로 가는 길.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었다.
조곡관 채 못미쳐서 교귀정 여기까지 걷다가 다시 돌아서고 말았다. 1.허리도 아프고 2.시간도 애매했고 3.걷는 중에 KT 고객센터랑 TV문제로 옥신각신 하는 바람에 기분도 다운. 그것도 그렇지만 조령관까지 갔다 오기에는 나 같은 형태의 여행 타입은 시간 소모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전동차가 운행된다길래 그거라도 이용을 해볼까 했지만 오가는 동안 한 번도 보지를 못했으니 아마도 평일에는 운행하지 않는 듯. 다음에 기회가 있더라도 무작정 조곡관 조령관을 목적으로 오기에는 부담스럽다. 새재공원 전체의 오가는 길을 온전히 즐기고 느끼려면 꼬박 하루를 여기에만 집중해야겠더라. 여행계획의 착오.
문경 들어서는 길의 '영남대로' 이름은 좀 허장성세였고 그랬지만 독립적으로는 괜찮은 조형물이기는 했는데 이후의 풍경들이 너무 쇠락해서 허전했다. 공들인 용기에 비해 내용물은 공허한 그런 느낌..
여행 계획에 마침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챙겨 넣은 문경 장날. 점심 식사도 장터에서 해결해볼 심산이었는데 완벽한 판단 미스. 오래전에 살던 시골 오일장보다도 더 초라한 쇠락한 장터. 이만큼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할망장이라는 이름까지 복원을 해서 살려보려 한 것이겠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좌판에 놓인 물건들도 그냥 검은 비닐봉지채로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고. 그 어떤 정책도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은 막지 못할 듯. 많이 허전하고 무기력하고 쓸쓸했던 문경 오일장.
에디슨 치킨.호프. 희한한 상호와 업종의 조합이었다. 하긴 이런 게 가끔씩 있기는 하지. 포항 양학동의 립스틱 해물탕./ 경남 사천의 불란서 호떡 /진주에서 본 초원 폐차장/...
폐역 불정역.
문경 관광 안내의 추천지로 올라있는 불정역. 내가 느끼고 싶은 폐역사의 그것은 아니었던 그냥 불정역.
고모산성. 문경 새재에서 기대가 어긋났던 탓에 기대치가 낮아져서일까. 첫 인상부터 눈에 들고 반가웠던 고모산성. 남문.
산성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역시 화각이 다르면 세상이 달라보여.
성벽 위에 화살처럼 꽂힌 털빠진 억새풀.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남문. 그.... 무슨 느낌이 있기는 한데 하여튼 괜찮은 그림이었음. 둘 다 새로 쌓은 성벽이긴 한데 내 고향인 진주의 진주성과는 좀 다른 느낌. 산 중턱을 가로지른 성벽이라 그런가? 좀 더 걷자면 토끼비리(토끼나 뛰어 다닐 수 있을만큼 좁고 까칠한 벼랑길이라는 뜻이라고) 까지 갈 수 있다던데 양호하지 못한 허리 건강 관계로 삼가.
성벽 위에서 시선을 건너편 산으로.

8. 도리사

도리사 입구의 살벌한 경사각. 작년 봄에 왔을 때 뒷바퀴가 스핀을 하는 바람에 시껍을 했는데 올해는 아예 겁 먹고 아래쪽 주차장에 차를 놓고 걸어 올라가는 중.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목탁 한다발. 태조선원 끝기둥에 매달린 목탁 한 다발.
극락전. 규모는 작고 아담해도 슬쩍 휘어져 날아가는 처마 끝의 곡선과 그걸 다부지게 잡아채고 있는 용마루며 늙지도 젋지도 않은 기둥과 단청의 채색까지 ...... 멋진 집이야...
태조선원 옆으로 비껴 들어오는 저녁 햇살. 따뜻해보이지만 날씨는 꽤 추웠음.
목탁 식구들 클로즈업.
절지붕 너머로 보이는 사바세계. 영주 부석사에서 내려다보는 눈맛들을 다들 칭송하고 그것은 나도 이론 없이 찬성하지만 여기 도리사의 그것도 못지않다. 적멸보궁 앞에서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낙동강은 더욱 일품. 이걸 다시 보고싶어서 도리사를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
적멸보궁 앞 계단 위에서 당겨 본 낙동강. 연무가 좀 많아서 살짝 아쉬움.
태조선원 마루에서 하얗게 빛나는 장지문들. 태조선은은 템플스테이 숙소로 쓰이는 모양이던데 내가 템플스테이를 하자한다면 제일 먼저 여기로 오고싶음.그 이유는 별 거 없음. 그냥 이 건물이 좋아서. 끄트머리 기둥의 목탁 식구들도 예쁘고.
도리사를 나서던 길에 기묘한 모습의 모과나무와 떨어진 모과들. 스님들이 모과를 별로 안좋아하는지?

이것으로 2025 첫 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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