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여행을 하다보면 한적한 국도변 여기저기 용도변경 되어 좀 뜨악한 모습으로, 혹은 제 딴에는 제법 그럴싸한 모습으로 변신한 폐교들을 더러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그 변신한 폐교사에 구경삼아 들어갔다 나오신 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넓고 큰 빈 집을 흉물스럽게 비워놓는 것 보다야 조금 손 봐서 각종 수련장이며 야영장, 예술마을, 도예촌, 박물관, 경로당, 노인 병원 등등 그나마 사람 냄새가 끊이지 않도록 그렇게라도 해 주는 것이 마을을 위해서나 폐교를 위해서나 더 나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 또한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나는 그 어떤 경우이든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것부터 틀려먹었다고 생각하는데다가 기왕에 폐교가 된 학교를 다른 용도로 바꾸어 쓰는 것은 더 못마땅합니다. 중이 떠났다고 절을 여관으로 바꾸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요. 비유가 좀 억지스럽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마는.
하여간 그만큼 못마땅하다는 겁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합니다. 학교가 문을 닫은 마을이 얼마만큼 빠른 속도로 생기를 잃어 가는지. 아이들이 재재거리며 뛰어놀지 않는 골목은 졸지에 적막강산입니다.
집집마다 사람이 들어있는 것 만 해도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칠십 팔십 꼬부랑 할매 할배들 허리 짚고 호미 들고 논밭 나들이에 숨만 차지요. 햇볕 쨍한 한낮에 골목에 나가보세요. 사람새끼 그림자 하나 보이나 안보이나. 
학교가 없는 마을은 떠났으면 떠났지 더 이상 사람 안 들어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안 들어옵니다.
귀농이요? 귀향이요?
어떤 미친놈이 제 새끼 공부시킬 학교도 없는 동네로 귀향한답디까?
도시인들의 전원생활? 아이고 꿈도 크셔라.
학원 없는 마을만 해도 억장이 무너질 엄마들이 버티고 있는데 학교 없는 마을에 뭘 믿고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 온답니까. 어이가 없어서 턱이 떨어져 나갈 소립니다.

그래도 명색이 역사가 오십 년인가 육십 년인가 이 동네 중학교 꼬라지 보면 한숨 납니다.
전국의 시골 학교들이 장삼이사로 비슷한 꼴일 것은 자명합니다만 과목은 열 세과목에 선생님은 일고여덟 되나마나. 대충 짐작이 가시지요? 그나마 예체능 교사들은 시수 채우느라 수십 킬로 떨어진 두 학교 세 학교 겸무 뜁니다. 학부모에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대접 받으면서 어떤 교사가 시골학교 오려고 합니까? 그러니 틈만 나면 시내로 튀려고 호시탐탐, 촌에 발령 받으면 에라 모르겠다, 자빠진 김에 쉬어 가자.

그저 대한민국 촌구석에 사는 것들은 사람도 아닙니다. 제 자식 이모저모 뜯어봐서 한 구석이라도 될성부르다 싶으면 이런 더러운 대접 받으면서 촌에서 안삽니다. 땡빚을 내서라도 도시로 나가는 게 맞습니다. 뭐 안 그래도 나도 음으로 양으로 압박은 많이 받습니다. 큰 놈이 고등학교 졸업하면 어떻게든 작은 놈을 데리고 포항 인근으로 나가봐야 할 참입니다. 내가 나가기 싫으면 애 엄마랑 둘이 묶어서 방이라도 얻어 내보내야합니다.
강남 팔학군에서도 망할 놈은 망하고 변방 깡촌에서도 날 놈은 나느니라, 잘 살고 못 살고는 니 하기에 달린 것이지 학교 좋은 데 나온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라, 알듯 말듯한 고집으로 촌에서 살자고 고집을 부렸던 나도 이제는 뒷심이 딸려서 더 버티지를 못합니다.

이놈의 나라는 본교가 분교가 되고 분교가 폐교가 되는 나라입니다. 손바닥만 한 시골학교를 우습게 보는 나라라면 국토 균형발전은 개나 물어가라고 던져 주는 것이 옳습니다.
구십 년대 후반, 순전히 경제적 잣대를 들이대어 재적생이 적어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전국에 산재하던 분교장의 문에 못질을 하고 공식적으로 학교 통폐합을 추진하던 어떤 정부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정부는 국가 재정의 긴축을 이유로 교사 정원까지 줄였습니다. 그 돈 아껴서 얼마나 대단한 데 썼을까요? 이런 나라가 도시의 인구집중을 걱정하고 인구분산을 도모해요? 헛소리.

그래서 나는 예술 마을이다 도예촌이다 뭐다 그럴싸하게 화장한 채로 뻔뻔스럽게 길가에 간판까지 걸고 서 있는 廢校舍들이 곱게 안보입니다.
이름만 비단으로 얄궂은 뼁끼 칠 뒤집어 쓰고 서 있는 폐교사들.
나는 그거 보면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정치모리배들의 위장술로 보여서 아주 배알이 꼴립니다. 차라리 서까래가 썩어 내려앉아 귀신이 들락날락 하는 꼬라지 그대로 내비 둬야, 아니, 사람 사는 동네에 학교 꼬라지가 왜 이 모냥이냐, 나라 꼬라지가 같잖다 보니 백년지대계가 허물어지는 거 아니냐, 뭐 이런 경각심이라도 일깨워야 한다는 그런 얼척 없는 고집입니다.


국토 발전의 균형이나 기회의 균등을 생각했다면 교사 정원을 늘여서라도 학교를 지켜야했고 어쩔 수 없이 통폐합을 하기로 했다면 기존의 정원이라도 유지시켜서 소외된 지역의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양질의 교육을 도모했어야 옳았습니다. 긴 호흡으로 본다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반드시 마이너스가 될 등신 같은 정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도 두 세 개의 분교가 하루아침에 폐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이거는 아니다 싶은 생각에 촌구석에서 혼자서 개새끼들 소새끼들 욕을 하고 뒤지게 부애를 질렀었습니다. 그 대통령 찍었다던 애 엄마까지 핍박하면서 고래고래 성질을 부렸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름에 TV 다큐멘터리에서 일본의 어느 산골 분교의 입학식인지 졸업식인지를 보았습니다. 그 해에 졸업하는 단 한명의 학생을 위해서 그 나라 교육부 장관까지 행차해서 무게를 실어주던 그 나라의 교육행정을 보고나서는 그 후로 용도 변경 된 폐교만 보면 자꾸만 속이 뒤틀리고 배알이 꼴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도 매사가 디테일에서 저 나라에 뒤지는 거다. 두고 봐라,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을 계산기 하나로 또닥거려 내팽개치는 나라는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치르고 말거다. 두고 봐라, 두고 봐라, 내가 명도고 내가 남해보살이다. 그리되나 안 되나 내기를 해도 좋아... 악담을 하고 저주를 했습니다.
...............
그런데 그 치러야 할 대가 속에 나나 내 새끼가 포함 된다면?
이런 빌어먹을, 염병할.   
아, 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니 숨이 찹니다. 마지막으로 내 작은 놈 이야기만 하나 하고 끝내지요.

내가 살고 있는 이쪽 변방 깡촌 초등학교에는 인근 분교장들 통폐합하면서 교육부에서 하사한 노랑 버스가 두 대 있습니다. 동네 인근에 분교장을 못질 해버렸으니 그 동네 사는 학생들 본교까지 실어 나르라고 보내 준 버스지요. 그런데 그 버스, 오백 미터 떨어진 동네 아이들은 태워다주고 오리, 십리 떨어진 동네 학생들은 안태워줍니다.
마침 내가 사는 동네가 혜택이 없는 동네라 거 왜 그러냐고 따졌더니 한다는 말씀이, 오백 미터 떨어진 옆 동네는 폐교 된 저쪽 분교장에 해당 되던 동네라 태워 주고 오리, 십리 떨어진 우리 동네랑 그보다 더 먼 산 넘어 동네랑 갯가 마을은 원래 이쪽 본교 해당이라 차 태워주면 안된답니다. 그 지침, 그 썩어 문드러질 교육부에서 내려왔답디다.

우리 집 꼬맹이, 날씨 어지간만 하면 자전거 타고 씩씩하게 잘도 댕기지만 춥거나 덥거나 일기 불순한 날은 이 몸이 몸소 수송을 해야 합니다. 큰 놈 태어나서부터 여태껏 그래도 깡촌이 좋다하고 뭉기적거리며 버티고 살고는 있는데 날이 갈수록 한심해지는 이런 순 드런 놈의 학교 정책을 보자 하니 과연 이 잘난 나라의 썩을 놈의 촌구석에서 계속 똥고집으로 버티고 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목하 고민이 열두 보따리올시다.



/경북 동해안

식이 어마이 사우 잘 났다꼬 온 동네 시끄럽그러 주끼쌓드마는 가실에 저그 기집을 패 갖고 눈티가 시퍼러이 울고불고 친저어 와가꼬 지기뿐다꼬 날리났다카이. 사나가 하마나 못났시모 기집을 패나. 설에 끄꼬 온 차도 우리 아아가 보이께네 빌리 온 차라카드마. 내 그래 그캤지. 그 사우 잘났시모 시사아 잘난 놈 개락이라캤다.

아이고 선생님 잘 오소. 저녁 드싯니껴. 떡 좀 자실라니껴? 머 디리껴? 무꾸 디리껴? 다발이 너무 많으마 무거바 들고 가것니껴. 옷다 갖다디리껴?

/경북 안동(내륙)

식이 어매 사우 잘 났닥고 온 동네 분주케 주께대드라마는 갈게 지 기집을 자들어가주고 눈티가 시퍼러이 방티를 만들어가주고는 울고불고 친저어 와 가꼬 주게뿐닥꼬 난리났다그이. 사나가 을매나 못났으머 지 기집을 패나. 설에 끌고 온 차도 우리 아아가 보이께네 빌래 온 차라 그드라마는. 내 그래 그캤지. 그 사우 잘났으머 세사아 잘난 놈 개락이라그랬다.

아이고 선샘요. 잘 오소. 지역 드셨니껴? 떡 좀 자실라니껴? 머 디리까? 무꾸 디리까? 다발이 너무 많으머 무거워 들고 가겠니껴? 내중에 갖다 디리까요?

/대구(경북)

시기 조곰마 사우 잘 밨다꼬 온 천지 시끄럽꾸로 언성시럽기 지끼쌓티마는 팔월에 저그 가씨나를 팼는지 공갔는지 눈티 퍼~러이 해가 울고불고 친저에 와가꼬 지기뿐다카민서 쌩찌랄삥을 다했다 안카나. 사나가 을매나 몬났시마 기집을 다 공구노. 설에 타고 온 차도 우리 아가 카던데 그거 빌리온 차라 카데. 그카길래 내가 안캤나 그 사우가 잘났시마 잘난놈 쌔비렀다 안캤나.

아이고 샘 오싰서예. 지녁은 잡싸아심미꺼. 떡 좀 자실람미꺼? 머 디리까예? 무꾸 디리까? 다발이 너무 많으모 무거바 들고 가겠심미꺼? 내재 갖다디리까예?

/진주(경남 서부)

식이 저그매 사우 잘 났다꼬 온 동네 시끄럽구로 짜다라 씨부리쌓드마는 추석 안에 저그 가수나를 때리가꼬 눈티가 시퍼러키 울고불고 친저에 와가꼬 지기삐리끼다꼬 지랄지랄했다 아이가. 사내가 올매나 못났시모 계집을 때리것노. 설에 끌꼬 온 차도 우리 아아가 봉께 빌리 온 차라 카대. 그래서 내가 글캤다. 그 사우가 잘났시모 세사아 잘난 놈 천지 삐까리라 안캤나.

아이고 샘 오싯심미꺼. 저녁 잡샀심미꺼. 떡 좀 잡술랍니꺼? 머 디리까예. 무시 찾심미꺼? 다발이 너무 많으모 무거버서 가아 가것심미꺼. 난중에 갖다디리까예?

/울산(경남 동부)

시기 어무이가 사우 잘났딱꼬 그래 마 온 마실에 시끄럽구로 씨버리 쌋티마는가실게 저거 안들을 눈티가 반티가 대도록 패갔고 마 울고 불고 친저어 와갔고 주기뿐닥꼬 날리가 난능기라. 사나가 을매나 몬났시마 저거 안들을 패노?설에 끄꼬온 차도마 우리 아아가 보이 빌린 차라 카더마는 내사마 그 사우가 잘났으면 시사 잘난 놈이 천지 갈백까리다 안핸나?

아이고 선상님 오시능교? 저역 자싰능교? 떡쫌 잘술랑교? 무시쫌 디리꾜? 따바리가 너무 마나서 무거버 들고 가겐능교? 마 이따가 갓따드릭까요?




내 고향은 경남 진주. 사는 곳은 경북 동해안.
같은 경상도라고?
처음 이사 와서 몇 달 동안은 말을 못 알아들어서 애를 묵었다니까.
특히 할매들 이야기는 외국어 같애서 아주 까막눈이야. 이십년이 다 된 지금도 팔 할밖에 못 알아들어요.
아, 위에 예문들을 대충 삼천만이 통하는 말로 번역을 하자면 얼추 이래요.


식이 어머니 그 사위 잘 봤다고 온 동네 떠벌이고 다니더니 그 사위란 놈, 지난 가을에 제 안사람을 줘 패서 눈탱이가 아주 시퍼렇게 밤탱이가 돼서 친정으로 왔다데. 울고 불고 그놈의 자식 죽여 버릴 거라고 길길이 뛰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 사내가 얼마나 못났으면 여자를 두들겨 패냐고. 설에 타고 왔던 차도 우리 집 애가 보니 빌려 온 차라드만. 그래서 내가 그랬다. 아따, 그 사위 놈이 잘났으면 세상에 못난 놈 하낫도 없겠다고.

아이고, 선생님 오셨어요? 저녁은 드셨는지 모르것네. 떡 좀 드실래요? 뭐 찾으세요? 무 찾으세요? 다발이 너무 커서 못 들고 가실 건데. 이따가 댁으로 배달해 드릴까나?


TV 드라마에 나오는 동서남북 짬뽕으로 섞어 놓은 경상도 말을 듣고 있자니 공연히 속이 니글거리고 심통이 사나와져서 말이지.
기왕에 사투리를 흉내 내자면 제대로 알고나 쓰던지. 게다가 배우라는 것들은 도대체 억양 연습이나 하고 녹화를 하는지. 억양은 서울 경기도 억양에다 말은 아주 동서남북 국적불명으로 마구잡이.... 모국어가 아니라서 정 어려우면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려고 애를 써야지. 경기도 사투리에 경상도 억양 붙여 놓은 거나 뭐가 달라. 

당연히 저 예문들은 각자 그 쪽이 제 고향인 내 벗들이 수고를 해 주었지요. 경상도에서 수십년을 살아 온 나도 아는 곳만 알거든. 
그러니 이 사람들아. 이 나라는 서울 경기도 태생의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야.  경상도 말은 동서남북 어디나 다 똑같은 줄 아는 당신들만 사는 나라가 아니라고. 대체 드라마를 그 모양으로 만들어놓고도 너그들은 밤에 잠이 오나?
아, 예문들은 어느 날 저녁에 동네 가게에 들어섰더니 아지매 둘이서 수다를 떨고 있다가 들어서는 날 보고 하던 말로 대충 재구성해봤지.
저걸 읽어 보고도 이거나 저거나 똑 같구만 그거 뭐 다른 게 있냐는 사람은 난공불락. 그렇다면 더 할 말 없고.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이나 물상 중의 한 순간을 포착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장면을 포착해 내는 것은 손에 카메라를 들었다고 해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길게는 몇 초에서 짧게는 수천분의 일초라는 참 짧은 순간에 담아내는 그림이지만 사람의 삶에 대한 애정과 진지한 생각이 없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진을 만들어 내기는 참 어렵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누적된 삶이 없다면 절대로 잡아 낼 수 없는 그림이다.


좋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그래서 나는 좋은 사진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사진은 그림보다는 글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동영상이 산문이나 소설처럼 서술적이라면 사진은 시처럼 직관적이다. 그래서 그런 그림을 잡아내는 사람들을 눈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주마간산으로 얼핏 지나치다가도 나도 모르게 붙잡혀서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는 사진들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구도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어떤 상황. 그리고 사람의 눈으로 느낄 수 없는 어떤 순간적인 광학적인 현상같은 것들. 같은 사물을 보는 눈이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볼수록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연출된 느낌이 드는 사진들에는 그다지 호감이 가지를 않는다.
꼭 연출이 아니더라도 어딘가 작위적인 느낌을 주는 사진들이 있다. 그런 사진들은 어찌 보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글을 써 나간 실용문의 느낌이다. 사진 자체가 주는 예술적인 감흥보다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써 나가기 시작하는 글은 자연스럽지 않다.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목도 뻣뻣해지고. 아무래도 자신의 의도나 목적에 국한해서 사물을 보게 되기 때문에 시야도 좁아질 수 밖에 없고. 사진이라고 다를까. 어느 경우에나 작가가 작품보다 앞에 나서고 싶을 때 생기는 현상이지. 굳이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을 널리 떨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별로 흠잡을 곳도 없지만 지나치게 자연스러워서 아무 느낌도 없는 사진도 매력 없기는 매한가지. 나는 그런 사진들을 통칭 달력 사진이라고 칭한다. 글로 비교하자면 아무런 생각이 들어있지 않은, 아름다운 단어들만 나열해 놓은 문장인 셈이지. 자신의 시각이 존재하지 않는, 글쓴이의 생각이 들어있지 않은 평면적인 풍경 묘사와 똑 같은.


입맛이 너무 까다롭다고?
그러게 그럴지도. 너는 그런 달력 사진이라도 한 장 만들어 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대번에 코가 납작해져서 할 말이 없지. 하지만 나는 기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아무 느낌이 없는 달력 사진보다는 서투르고 빈 곳이 있더라도 내게 뭔가를 보여주고, 생각하게 하고, 이야기를 걸어오는 그런 그림이 더 좋아. 사진은 사람이 찍는 것이고 똑 같은 피사체를 보고도 어떤 사람의 사진이냐에 따라 사진에 담겨지는 이야기가 달라져야하니까.
까다롭게 굴어서 매우 송구스럽지만 입맛은 순전히 주관적인 것이니 조금 마땅찮더라도 그냥 비 맞은 중이 고개 넘어 가는가보다 그리 여기시기를 바랄 밖에.


좋은 사진을 보고 느낄 때의 감흥은 좋은 시를 읽었을 때와 같다. 좋은 시가 오래 읽히는 것 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도 그렇게 보고 또 보게 된다때로는 나도 어떻게 저런 멋진 사진을 남길 수는 없을까 하고 애꿎은 내 카메라를 흘겨 볼 때도 있지만 그 때 그 시절 그 열악한 성능의 필름 카메라로 가슴을 치는 걸작들을 남긴 그 시대의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딱 고만 꿀먹은 벙어리 시늉만 할 밖에. 그러게 사진은 카메라가 아닌 사람이 찍는 거라니까! 

나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속 깊은 그림으로 담아내는 이들에게 경탄과 존경을 보낸다. 나에게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가르쳐 주는 말 없는 스승들이므로. 그리고 그대들은 눈으로 시를 쓰고 그것을 아무 대가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시인들이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지지 않은 평화를 남에게 줄 수 있다. 이것은 빈손의 기적이다.//
                                          -시골 神父의 일기 / 베르나노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지지 않은 두려움, 혹은 공포나 불안도 남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도 빈손의 기적인가?

누구든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없다.
누구든지 말을 희롱하고 채색하여 남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자유는 있다
그러나 그 자유로 인하여 타인이 갖게 될 착오와 오도를 방치하고 조장할 자유는 없다.

허울 좋은 평화를 소유한 자들의 손에는 대개 타인의 피가 묻어 있다.
그 평화를 소유한 자들의 손은 날 선 검과 같다. 다만 그들이 칼날을 잡고 있지 않을 뿐이다. 
그것은 평화를 쥐고 있는 빈 손의 죄악이다.






토토로에서 열한 살 사츠키가 길을 잃은 네 살짜리 동생 메이를 찾아서 벌판을 헤매다가 초조한 마음으로 언덕 위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는 장면이다.


병원에서 요양중인 어머니에 대한 걱정에, 길을 잃은 동생에 대한 걱정, 그리고 이제 곧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 이런 바닥없는 근심들을 기우는 저녁햇살로 귀신같이 그려놓은 빛의 묘사.


아이들과 무심히 ‘토토로’라는 만화영화를 보고 있던 나는 저 장면이 지나치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런 섬찟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동시대의 인류라는 점에서는 감사한 일이고 내가 한국인인 반면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본인이라는 점에서는 샘나는 일이었다. 사람의 눈을 희롱하는 빛의 장난을 정말 저 정도로 철저하게 궤뚫고 있다니.

파문 없이 조용히 흐르는 도랑물의 묘사나 밤바람에 골함석 지붕이 휘어져 떨리는 장면들은 그 장면 자체의 묘사도 압도적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장면 하나 하나가 스토리 전체의 바닥을 든든하게 깔아준다는 것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끄덕 할 일이다.

큰 아이가 어렸을 때 사흘 밤낮을 졸리다 못해 둘리를 사 주었던 나는 딱 두 번인가 돌려보고는 그 테이프를 감춰버렸었다.
만화책 둘리는 나름대로 간결한 구성과 캐릭터의 친밀함으로 참 재미있게 본 만화였는데 장편 만화영화로 바뀌어 나온 둘리는 참...
글쎄. 나와는 다르게 장편 만화영화로 나온 둘리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영화건 만화건 또 소설이건 간에 등장 인물의 성격이 일관성을 잃거나, 상황의 흐름이 필연적이지 못하고 작위적인 느낌이 들면 그만 손발이 근질거려서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만화책 둘리와는 달리 애니메이션 둘리는 그 이야기의 설정 자체가 느닷없었고 비약과 과장의 정도가 좀 심해서 아이에게 보여주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 했었던 거지.(매우 완곡하게 표현하기 위해 애를 썼다.)
종이 만화에서의 둘리는 친근하고 유쾌한 친구였는데 만화영화에 등장한 둘리는 종이 만화의 그 개구쟁이 둘리가 아니었다. 개구쟁이라기보다는 거의 성격 파탄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시대를 내세울만한 환쟁이들이 즐비하고 칼날처럼 예리하던 장욱진과 박수근을 낳은 나라인데. 더 가까이에는 허영만도 있고 고우영도 있지 않은가.
언젠가는, 아직은 요원해보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를 능가할 날이 오기는 오.......겠지?
정말로 왜놈들이 쇠말뚝을 박아서 아직 안 되는 걸까?



부록/ 토토로의 더빙에 관하여

밥상 차려서 코앞에 밀어 준 작품에 더빙을 어떻게 그렇게 할 생각을 했을까.
차라리 한글 자막을 그대로 더빙하는 것이 나을 뻔 했다.
여기저기 나타나는 오버 액션들.
인간의 기본적인 감성을 조금도 배려하지 못하는 아둔함.
아. 정말.


학꽁치 편을 끝으로 파란닷컴에서 연재하던 식객이 끝났다. 책으로, 웹으로, 참 재미있게 읽었다. 2002년 9월 2일부터 시작해서 6년 3개월 동안 연재 되었단다.
종이 만화로 간행 된 것은 두 번 세 번을 읽었고 동아일보에 연재가 되었다는데 정작 동아일보에서는 못보고 파란닷컴의 카툰 사이트에서 쭉 봤다. 우리나라 만화계뿐만 아니라 문화계를 통틀어 기념해야 할만 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허영만의 만화는 ‘강토’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슨 야구만화를 시작으로 쭉 애독자였는데 사실 무당거미나 각시탈같은 시리즈를 봤을 때만 해도 참 자연스럽게 잘 그린다, 스토리라인도 짜임새가 있어 여느 만화들처럼 비현실적이거나 과장스럽지 않아 좋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오 한강’이라는 단행본을 보고는 생각을 바꿨다.
이 사람은 천재구나. 그리고 꽤 바닥이 깊은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이구나.

허영만의 사물을 보는 시각과 그것을 단순화시켜 드러내는  뛰어난 그림 솜씨에 매료 되고 말았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만화가가 아니라 보는 사람을 따뜻하게 만져 주고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건강한 웃음도 줄 수 있는 숨어 있는 위트와 재치도 남달라서 허영만의 만화를 볼 때는 참 따뜻하고 행복하다.
그런 따뜻함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쉽게 나올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라도 자신의 삶에 대한 기준과 생각이 담겨 있는, 결코 가볍게 보이지는 않는 작품의 무게감 또한 만만찮아서 자료 수집에만 해도 아마 어마어마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치밀하고 방대한 자료수집 없이는 결코 이렇게 자연스럽고 읽기 쉬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니까. 또한 자료수집을 아무리 잘 했더라도 그것을 독자들에게 이렇게 알기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보는 사람이 저절로 미소 짓고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그려 낸다는 것은 허영만이 아니라면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식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난 소감은 '아직 그가 그려내야 할 음식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다.
물론 그 많은 음식들 중에는 조금씩 빠지고 부족한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식객 속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 내가 늘 먹고 만지는 익숙한 음식들 몇 가지는 좀 더 깊이 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 음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읽는다면 그 음식에 접근하는데 별로 부족함이 없을만큼 충분히 섬세하고 친절하다. 식객을 보고 난 뒤로 먹어 보고 싶은 음식이 아주 많아졌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식객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읽을 때 따라오는 즐거움이나 행복함은 더 큰 덤이고.
하여튼 식객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허영만은 우리에게 큰 빚을 지게 됐다. '아직 그가 그려내야 할 음식'이 더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 이런 천재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허영만의 만화가 없었더라면 살아가는 재미가 크게 한 부분 모자랐을 거 같아서 그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쪼록 충분히 쉬시고 빨리 재충전을 해서 아직 결혼도 못한 진수와 성찬이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식객 후편을 만들어내시든지 굳이 식객이 아니더라도  또 우리들의 의표를 찌르는 멋진 작품을 쓰시기를 기원한다. 사랑합니다.
http://media.paran.com/scartoon/cartoonview.php?id=car_087&ord=11&menu=0


아주 오랜만에 본 아름다운 영화.
오래 된 고전 영화를 본 둣 마음까지 아렸던 영화.

군더더기 없고,
어거지로 설정한 엉터리 갈등 '거의' 없고
간결한 대사 멋지고
주연 조연 망라해서 연기도 좋고
스토리도 그럴듯했고
여주인공도 예쁘고. @@....
다만 끄트머리의 신파는 좀 그랬고.

미스터 감독씨.
이게 실화가 아니라면 그냥 상투적인 해피엔딩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았는데.
문학이나 음악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영화는 웬만하면 관객을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인데. 어떠신지?

뭐, 그래도 참 오래간만에 좋은 시간이었어요.
이정도면 짧은 인생 중에 한두 시간쯤은 충분히 낭비할 만 했어요.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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