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러 나가자는 성화를 못이겨 애매한 시간에 저녁 나들이를 합니다.
이웃 동네 친구까지 있어서 가기 싫다는 티도 못내고 따라 나섰습니다.
마을 뒤를 돌아 회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노가다입니다. 아이고 죽겠다고 엄살이 늘어집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막 넘어가는 햇살에다 저녁 하늘이 그럴듯 합니다만 오늘 저녁 산보에서 그나마 좋았던 시간은 여기까지였습니다. 해가 떨어질 무렵부터는 아직은 꽤 춥습니다. 




저녁밥 챙겨 먹기가 애매한 시간이라 나온김에 저녁 먹고 들어간다고 동네 분식집에 들어가 늑장을 부렸더니 돌아오는 길이 어두워졌습니다.
춥고 손도 시리고 안그래도 나오기 싫었던 마음까지 겹쳐서 그만 나들이가 싫어집니다. 거기다가 귀찮은 생각이 겹쳐서 짜증이 나고 마음이 부대낍니다.  와중에 어린 놈이 징징 어리광을 핍니다.

'아빠 너무 추워요.'
'.................'
'아빠, 너무 춥다니까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
'자전거 타러 나오자고 했던 사람이 너잖아.'
'.............'
'자꾸 그렇게 엄살 피고 징징거리면 또 자전거 타러 나올 수 있겠어?'
'.............'



하루 걸러 하루 건너뛰면서 잠을 설치고 밤낮을 바꾸면서 몸을 부대꼈더니 컨디션이 아주 바닥입니다.

오늘도 오후 내내 죽은 듯이 누워 있다가 겨우 일어났더니 몸은 피곤하고 으슬으슬 추운데 어린놈은 무작정 나가자고 졸라대고... 공연히 내 심사가 사나운걸 꼬맹이한테 화풀이를 하고는 지는 지대로 풀이 죽고 나는 나대로 우울하고 마음이 쓰여서 그만 입을 다물었습니다.

일부러 바쁜척 분망하게 수선을 떨어보기도 하고 그다지 절실히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탐하면서 즐거운 척 너스레를 떨며 머릿 속을 비워보려 하지만 무망한 시간에는 어김없이 그 빈틈으로 덮어 두었던 생각, 잊고 싶은 생각들이 비집고 올라옵니다. 뭐, 속은 젓을 담더라도 견디는 데는 이력이 났으니 또 오래 견디다보면 언젠가는 이것도 조금씩 무뎌지게 되겠지요. 그 어떤 것들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
참 잘 했네요. 살아 온 세월 값으로 그래도 그만큼은 눌러 앉힐 수 있어서. 젠장.  
어쩌겠습니까. 그냥 살던대로 그렇게 살아야지요. 사람이 시간을 이길 수 없으니 언젠가는 불던 바람도 잦아들고 딱지도 아물겠지요.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그 언젠가는. 
  

꼬맹이와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차가운 저녁 바람에 꽁꽁 얼었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 보니 동쪽 하늘에는 흰 달이 떴습니다. 보름달인가요? 
우리 동네는 동쪽에 산이 없어서 달이 일찍 보입니다. 하지만 저녁 시간의 동쪽 하늘은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달이 허여멀건 게 심심하고 닝닝해 보입니다. 물에서 건져 올린 달이라 허옇게 불었나봅니다.
 

서쪽 하늘에는 노을이 집니다. 오늘 노을은 별로 예쁘지도 않고 그저 그렇습니다.  
어딜 가는 비행기인지 비행운이 꽤 깁니다.
떠나기에는 미련이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모양입니다. 닻을 내린 사람들이거나 덫에 묶인 사람들이거나.
아직은 바깥 바람이 꽤 차갑습니다.  


사진을 올리고보니 서쪽 하늘에 별이 하나 찍혔습니다. 아주 작고 희미합니다.
찾아 보려면 사진을 클릭해서 크게 키워야 합니다. 
  




DA16-45

올림푸스 구식 카메라를 몇년간 들고 다니다가 느닷없이 펜탁스로 갈아 탔습니다. 
펜탁스를 선택한 이유는 첫째, 구식 수동 렌즈를 쓸 수 있다는 것과 짙고 무거운 발색(이라고들 주장하는)에 대한 기대감.
첫번째 이유는 아마도 내가 구닥다리라서 그럴 겁니다.
워낙에 구식 물건들을 좋아하다보니 일단 렌즈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도 무조건 무겁고 투박한 옛날 수동 렌즈가 더 멋져 보입니다. 오 갈 데 없는 고물 취향이지요.
하지만 펜탁스에 조금씩 익숙해 질수록 아주 잘 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펜탁스를 선택하게 된 두 가지 이유가 한꺼번에 충족이 됩니다. 
구식 수동 렌즈가 내게 보여주는 색에 말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 컴퓨터에 사진이 쌓여 갈수록 점점 기분이 좋아집니다.
좋은 기분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못한 나는 속으로만 혼자 신나서 깨춤을 춥니다.
'그것 봐!  잘 한거야!' 

아니, 뭐 별 것 아닌 사진을 두고 너스레가 장황하구나, 싶으시겠지만 막눈에 막손이라 그냥 주먹 댄 눈으로  그리 여기고 삽니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유는 흔히들 생각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남기기'위한 수단입니다. 내가 보고 느낀 대로를 남길 수 있을만큼의 솜씨만 되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앞으로 솜씨가 많이 늘어서 나도 눈으로 시를 쓸 수 있게 되면 정말 좋겠지만 그거 아무나 되는 것 아니지요. 그냥 그림 일기나 쓸 수 있을만큼 찍어내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꼬맹이의 생일 파티를 마치고 멀리 사는 친구를 데려다 주러 작은 어촌까지 왔다가 잔잔한 내항의 수면에 비친 저녁 하늘 색깔을 몇 장 찍었습니다.



내가 본 그대로, 아니, 그보다 약간, 아주 조금 더 호들갑스럽게 나왔습니다. 드디어 내 카메라와 대화가 된다는 이야기지요. 자, 그래서 그것으로 오늘은 충분히 행복하기로 합니다. 
굿모닝 Pentax !    굿모닝 candy !




오늘은 우리집 꼬맹이 생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책가방을 맨 채로 열명이 들이닥쳤다.

 예약해놓은 파티를 마치고 시끌벅적 먹어 치우고

이번에는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서 난리 법석.

그리고는 동네 뒷산으로 우르르 몰려 나갔다.
저그 집이라고 우리집 꼬맹이가 대장짓 해 먹고 그 뒤로 친한 순서대로 조르르... 머스마들은 꼴등병...
무슨 동네 탐험대라고 깃발까지 만들어 들고는 산기슭을 헤매고 댕긴다.

해가 기울도록 놀다가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먼 데 사는 놈은 내가 차로 데려다 주고
그러고 나니 머리가 띵 하게 아프단다. 얼마나 들떠서 놀았던지.

'아빠는 선물을 따로따로 받는 게 좋아요 아니면 친구들꺼 다 합쳐서 하나로 받는 게 좋아요?'
'아부지는 생일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왜요?'
'어렸을 때 생일 파티를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왜 생일 파티를 안해요?'
'.....................'

이런 시대에도 어린이 날이 아직 있어야 할까? 
이미 자식이 상전이 되어버린 시대. 이성을 잃은 자식 사랑과 얄팍한 상업주의가 결탁한 이 시대의 어린이날. 
아, 그래도 꼬맹이 생일날인데 이런 심란하고 무거운 주제는 다음 기회에. 오늘은 생일 축하만.

돼지야, 니가 내 딸로 태어난 것이 정말 다행이다...  

.

너도 그러냐?
잘 자라. 
(어릴때 하도 통통해서 붙인 아명이 돼지다. 아주 통통했었다.)



  


예정에 없이 좀 먼길을 갔다가 돌아오려던 참인데 커피를 사러 들렀던 슈퍼 마켓 맞은 편의 이 집에 눈을 빼앗겼다. 시간에 쫓기고 있던 참이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왔지만 꼭 어릴 때 보았던 진주역 부근의 철도 관사처럼 생긴 집이었다.

커피를 사러 간 일행을 기다리면서 별 생각 없이 주변을 서성거리며 돌아보다가 저 집에 그만 꽂혀 버린 거다.  
누가 뭐라든 지붕의 각도와 집의 크기가 아주 환상적으로 맞아 떨어진 아름다운 집이었다. 처마 밑의 그늘도 그렇고 벽면의 여백 같은 것도 훌륭하다. (아무튼 매우 주관적이다. 음.) 이 오래 된 집이 묵은 기억을 살금살금 건드리는 것이 기분이 묘하다.  

이 집을 사서 수리 하려면 돈이 좀 들겠지?
뼁끼 칠도 다시 해야 할 것 같고 굴뚝도 바로 세우고 을씨년스럽게 처진 나뭇가지도 손 보고 도배 장판에 보일러는 괜찮은지....... 
얼마에 팔 건지 집 주인한테 물어 봤냐고요?
막 해가 지려던 참이라 얼마나 마음이 바빴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마음만 거기다 두고 그냥 돌아왔지.

까닭은 몰라도 내 속에는 공연히 저런 것들만 보면 가슴 한 구석이 폭삭 내려 앉는 어디서 긁힌 상채기인지 덜 아문 딱지인지 그런 것들이 몇 개 있다. 저런 집도 그렇고.
한 번도 살아보지도 못한 저런 집이 왜 오래된 기억 속에 갇혀 있는지.

저런 어정쩡한 시대의 집들은 낡아지면 아무 미련도 없이 허물어지겠지.
저런 집들은 왜 문화재로 지정을 받지 못하는지. 저런 집들도 분명히 시대의 소산이고 유산인데.
포항의 구룡포에 가면 일제 강점기의 일식 건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던데 혹시나 거기도 뼁기 칠 하고 굴뚝 세워서 살고 싶은 집들이 있는지 언제 한 번 가 볼 참이다. 
순천에는 육칠십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세트 장이 있다던데 가까이 지내는 벗이 있어 순천에도 더러 걸음을 하건만 도무지 짬을 내지를 못해서 몇 년간을 벼르기만 하고 있다. 거기도 언젠가는. 
아, 아직도 유소년기의 기억들에 휘둘리는 이 덜 떨어진....  


밀린 책 갖다 주러 도서관을 다녀 오기로 했습니다. 마감시간이 임박해서야 닿을 것 같아서 좀 과속.
휭 달리다보니 길까지 휘청,  삐딱하게 기울어졌습니다.
도서관에서 얼렁뚱땅 꼬맹이 책만 잔뜩 빌려서 김밥 천국에서 저녁 먹고 애 엄마랑 꼬맹이 미장원에다 두고 카메라 들고 나섰습니다.
카메라 바꿨으니 사랑 땜을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미장원에 가면 나는 무슨 파마 약냄새라는 그 냄새를 견디기 힘들어서 잘 안들어 갑니다. 
(애도 아니고 무슨 사랑 땜. 어쨌든 심란할 때는 그저 장난감에 몰두 하는 게 견디기가 그 중 낫습니다.)
 
그래서 머리 자르는 시간동안 일없이 혼자 오락가락 하다가
혹시나 호떡 파는 데가 있나 기웃거려 봤는데 없습니다.
호떡 대신 길 모퉁이에 과일 노점상이 좌판은 벌여 놓았는데 들여다 보는 사람도 하나 없이 쓸쓸하기만 하고. 손님 기다리다 지쳐 가버렸는지 주인도 안보이네요. 그래도 꽤 그럴듯 하게 쓸쓸하길래 몇 장 찍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이리저리 서성거리자니
한적한 변두리 밤길에 카메라 들고 오락가락하는 이가 수상쩍은지 
오고 가는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기도 하고 그래서 좀 멋적어서 그냥 미장원으로 들어 와버렸습니다.
밤바람도 꽤 찹고.


미장원에 앉아서 기다리자니 심심해서 맞은 편의 거울 보고 혼자 셀카 놀이. 
각도 못잡아 다 날려 먹고 맨 엉뚱한 여자 얼굴에 얼굴 귀퉁이만..... 
다 잘랐다고 일어서길래 얼른 그냥 집으로 들어와 버렸지요. 

별 일도 없고 큰 일도 없고 그래서 사진 몇 장 찍은 김에 사진따라 몇 마디 써서 일기랍시고 올려 놓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모범적인 일상입니다. 오늘도 얼추 무사히....  

푸가의 기법을 듣는 순간 음악이 문학적 상상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오래전 어느 LP 재킷 뒷면에서 읽었던 글인데 아직도 간혹 생각이 난다. 정확한 문장이 저랬던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튼 대강 그런 뜻으로 쓰여 진 말인 듯하다.
'문학적 상상력' 이라는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문장을 썼지만 이것은 내가 느끼기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 음악에 자극된 감수성이 무작위로 건져 올리는 과거 자신의 궤적이나 상상력이 계통 없이 혼연, 조합된 막연한 느낌 같은 것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말대로라면 푸가의 기법을 들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는' '무아의 경지' '열반'  뭐 그런 상태가 된다는 걸까? 잘못 이해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일단은 그런 것 말고는 딱히 어떤 상태인지 가늠해 보기가 힘 든다.


나의 경우, 어떤 곡을 듣기만 하면 한없이 청명한 하늘과 싱그럽기 짝이 없는 풀밭이 정확하게 수평으로 나누어진, 그리고 꽤 멋지게 보이는 나무 하나가 달랑 바람에 휘감기며 서 있던, 오래 전 살던 방의 한 쪽 벽에 걸려 있던 달력 그림이 줄기차게 생각난다든지, 슈베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몽롱한’ 환상곡 바 단조의 초입부를 들으면 어쩐지 별로 행복하지 못했던 유년기의 어느 봄날 언덕 위로 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면서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일로 혼자 울면서 풀만 집어 뜯고 있던 그런 기억이 꼭 떠오른다든지, 이런 저런 기억과 상념의 연상들이 이른바 ‘문학적 상상력’이 아닌가 짐작해 보고 있다.
주로 상쾌하거나 즐거운 기억보다는 어쩐지 우울하고 침침하고 외로운 기억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최소한 떠들썩한 기억보다는 고요하고 적막한, 하여간에 어떤 음악에는 어떤 류의 기억들. 이런 등식이 성립되는 경우가 많다.


하긴, 또 이런 경우도 있다.
늘 듣던 곡인데도 연주자를 바꾸어 들었을 때 그 연주를 비교하자 치면 마냥 '소리'만으로 음악을 듣는 경우도 적잖이 있기는 하다.
그것 아니라도 대부분 바하 전후의 음악을 들을 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소리, 주로 작곡한 이가 주장한 선율과 연주자의 역량에서 배어나오는, 단지 '소리가 주는 어떤 느낌'을 즐기면서 그냥 듣는 그런 경우도 더러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푸가의 기법을 듣는 순간에 다가오는,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어떤 깨달음과 같은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하여간 뭐가 뭔지 정확한 의미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 때 성악은 가사의 내용으로 인해서 그 이상의 상상력을 제한해버린다는, 그래서 그 가사 내용 이하의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연상 작용만큼만 아름다운, 그래서 질이 좀 떨어지는 음악이라는 예단을 가지고 음악을 들었던, 좀 시건방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것 역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섣부른 금 긋기였다고 지금은 반성하고 있다.


큰 놈이 어렸을 적에 녀석과 잠자리에 들면서 자주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그 곡을 들으면서 아무거나 생각나는 걸 서로 이야기하는 놀이를 꽤 오랫동안 했었다. 해 보면, 듣는 곡에 대한 선입견을 이미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나는 늘 한다는 것이 대부분 선율에 이끌려 나오는 이런 저런 풍경이나 서정이나 정경이다.
반면에 어린놈은 어느 때는 귀찮은 듯이 아주 간단하게, 또 어느 때는 지루할 정도로 무슨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듣고 있노라면 대부분 낄낄 웃음이 나오는 그런 유치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이랑 놀면서 다툰 이야기라든지 어디 여행을 가거나 놀러 가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에 자의반 타의반 윤색을 한 이야기들, 그리고 동화에 나올법한 이야기들의 짬뽕이 태반이었다. 그래도 그 놀이는 꽤나 오랫동안 꾸준히 했었다. 나 또한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려고 노력했었고. 어린놈이 나름대로 서양 고전음악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며 통로일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지금에야 뭐 내가 듣는 음악들은 콧방귀도 안 뀌고 힙합에다 알앤빈지 뭔지 지 혼자 잘났지만.


다시 푸가의 기법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 가보자.
글쎄, 그 이야기가 오로지 화성이나 멜로디의 유희만으로 음악을 즐기는 것이 더 고급하게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라는 뜻이라면 나는 선뜻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물론 소리 그 자체에 감동받아서 긴장을 풀지 못하고 부동자세로 끝까지 듣게 되는 그런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리고 솔직히 그런 경험은 기분 나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문학적 상상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다'/라는 문장의 미묘한 뉘앙스는 그것이 좀더 상급의 무엇이라는 주장인 듯해서 그다지 유쾌하지가 않다. 물론 일단은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그리고 그 사람은 글의 끝머리쯤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미완성 된 열아홉 번 째 마지막 곡의 끝에서 별안간 뚝 끊어지는 마지막 음표 뒤에 이어지는 정적에서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꼈다/


글쎄. 지금 생각해봐도 이건 좀 과장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뭔가 좀 쓸쓸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긴 했지만 아이고, 그렇다고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까지 느끼게 될까 싶긴 한데,
오늘도 현악 사중주로 편곡된 푸가의 기법을 듣다가 그 마지막 곡에 대한 해설이 생각나서 또 한번 느껴보려 잔뜩 짓누르고 기다려봤지만 뭐 별 무신통이었다.
아무래도 그 해설가가 너무 '문학적'으로 근사하게 포장을 했거나, 아니면 내가 가진 음악적 감수성이나 내재율이 푸가의 기법 같은 곡에서는 족탈불급으로 턱없이 부족하든지 무슨 사단이 있을 수도 있겠다. 뭐 그렇다고 음악 듣고 억장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내 발등 찍으며 장탄식을 할 노릇도 아니고.


연주회장에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한 때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워낙 고답한 생각이 없지 않은 문화적 울타리를 갖고 있는 분야인지라, 무턱대고 '개혁적인 코드'를 갖다 들이밀며 혁명의 깃발을 흔들어댈 수는 없는 노릇이겠다. 하지만 그 때 그 문제로 가까운 지인과 의견 상충으로 평소 그리 생각치 않았던 그 사람 자체에 대한 개운치 않은 느낌마저 들었던 기억을 되새겨 보면서 서양 고전음악이 연주되는 연주회장에서의 어떤 '예의'의 경계에 대한 생각으로 이것저것 연결 되지 않는 뜬금없는 생각들이 줄을 이어 따라 나왔다.


그래서 혹, 그 예절이라는 것이 어떤 류의 '격리감'이나 작위적인 '청결감' 같은, 은밀하게 제한된 공간에서만 거래되는 무슨 '선민의식'같은 것들이 아니기 만을 바라는 마음에서 주제넘게 한 마디 꺼내 본 것이지.


고전음악은 그것대로 좋은 것이로되 고전음악을 향유할 줄 안다는 것이 즐거움을 넘어서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을 은연중 업신여기는 도구로 사용되거나 귀부인의 목이며 가슴에 귀금속이나 보석으로 치장 된 브로치나 목걸이처럼 자랑거리나 과시용의 장식품으로 저자에 유통되는 것은 음악, 또는 예술 전반보다 명확하게 우위에 있어야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 사건은 사건 그것대로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토막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대체 무슨 연관이 있냐고?
늘 그렇듯이 내가 말 해 놓고도 도무지 정리가 잘 안되긴 하지만, 이야기 끝에 따라 나오는 걸 보면 어디선가 맞닿은 곳이 있기는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서양 고전음악을 듣는 방법이나 태도 같은 곳에서 가끔 보이는 그 쪽 계통 사람들의 묘한 선민의식 같은 것들과 푸가의 기법을 이야기 했던 그 해설가의 요령부득의 해설이 어쩐지 색깔이 비슷해 보여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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