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진 것이 없는데 안이는 가진 것이 많아서 신기해요.’
꼬맹이의 친구 하영이입니다.
반에서 제일 작은 친구입니다. 키도 작고 몸도 가벼워서 우리 집 꼬맹이랑 같이 서 있으면 아주 동생뻘로 보입니다. 우리 아이가 너무 커 보여서 좀 열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안이는 자기 방도 있고 자전거도 있고 피아노도 있고 인형도 많고 집에 화장실도 두 개고... 정말 신기해요.’
‘부럽다’도 아니고 ‘샘 난다’도 아니고 신기하답니다.
무슨 교육을 받아서 그리 표현하는 것 같지는 않고 정말로 그리 생각하는 것으로 보여서 오히려 내가 더 신기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하영이가 생각하듯 그럴싸하게 잘 사는 집은 절대 아닙니다. 길 가다 오며 가며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보통의 서민일 뿐입니다. 시골 마을 서른 평 남짓 장마철이면 물 새는 스레트 지붕 이고 살고 있습니다. 신기한 부잣집 전혀 아닙니다.
‘안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작년에 안이 생일날 뵈었던 하영이에요.’
애 엄마는 하영이의 인사말에 여운이 남는다고 몇 번을 거푸 들먹입니다.
요즘 ‘뵈었던’ 이라는 단어를 쓰는 애가 어디 있냐고 감탄입니다.
때로는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너무 비현실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바람에 생뚱맞고 약간은 희극적인 느낌마저 없지 않지만 아무튼 보기 드문 사고방식을 가진 열 살짜리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혹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겉으로 드러내고 화를 내거나 삐지는 일이 없을 그런 아이로 보입니다. 그냥 혼자 돌아 서서 눈물 찍어 내고 혼자 삭이는 그런 몽실이 같은 옛날 아이. 운전을 하면서 애 엄마와 둘이서 하영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자니 뒷자리에 있던 꼬맹이가 제 친구라고 한 마디 거듭니다.
‘하영이 착해요.’
그래. 아빠가 봐도 착한 것 같구나.
요새 세상에는 저렇게 착한 것도 신기한 일이 됩니다. 저렇게 아주 턱이 갸웃 돌아 갈 만큼 착해버리면 그것도 이 험한 세상 살아가는데 한 재산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만.
내 아이는 그렇지 않았으면, 나쁘지 않을만큼은 조금은 사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입니다. 일생 안으로만 잦아들어서 속앓이만 잔뜩 하고 살아 온 어리숙한 일생을 거듭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지요. 그래도 제 품성은 갖고 태어나는지 우리 집 꼬맹이도 어릴 때 봐서는 제법 한 가닥 할 것 같던 겉보기와는 다르게 눈물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 많습니다. 요새는 좀 맹랑해야 잘 살아 남을 것 같은데.
어제도 하영이가 놀러 왔습니다.
집에는 일찍 가봐야 아무도 없다고 가방을 맨 채로 곧바로 왔습니다.
꼬맹이 방에서 한 참을 놀다가 내가 뭘 뒤적거리는 사이에 잠시 내 방에 들어 온 우리 꼬맹이를 따라 들어서면서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조금 숙이면서 나즈막하게 인사를 합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생각하던 바가 있어서 응 그래, 하고 무심히 내색은 안했지만 하영이는 참 신기한 아이입니다. 하영이의 부모님이 그리 가르쳤을까요?
그리 가르쳤다면 그 부모님도 대단하지만 엄마 아빠가 그리 가르쳤다고 또 그대로 따르는 아이가 잘 있을까요. 하루가 멀다 하고 말과 글이 미쳐 날뛰는 광속으로 변해가는 이 시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