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가도 한 두 번 갈까말까 한 고향이 가자 하니 한 주일에 두 번도 갈 일이 생긴다.
엊그제 성묘 갔던 길을 또 되짚어 다녀 왔다.
가는 김에 기억을 더듬어 엊그제 길 잃었던 곳을 찾아 복기를 해 봤다. 

1022번 지방도.
물금역인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지만 눈맛이 시원한 것이 좋구나.
이런 맛에 한번 쯤은 길도 잃어 볼만 한 것인가. 이래서 사는 건 재미있다. 언제 어디로 튀어서 누구를 만나게 될 지 누가 알아? 삶의 굴곡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눈 아래 아슴하게 뻗은 철길을 보고 차를 세운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경부선.
타이밍이 잘 맞아서 꽤 그럴싸하게 황혼녘의 들판을 달리는 열차를 볼 수 있었다.
달리는 기차를 보면 공연히 나도 그 속에 있고 싶어진다. 나도 기차 속에서 후랑크 소세지랑 맥주 마시고 싶다.

산골 야경.
아주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가 내리막 길에 들어서면서 본 산 아래 마을.
생각하지 못했던 각도에서의 야경이라 묘한 느낌이었다. 
그 시각 그 길을 지나치던 몇 대의 차들은 껌껌한 산비탈에서 카메라 들고 왔다갔다하던 나를 뭘로 생각했을까?
색다른 시각때문인지 이 마을을 낮에 본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마음 먹은 김에 돌아 오는 길도 이리로 와 볼까?

  

꽃이 아니다. 화단 경계석 돌 틈에 자라난 무슨 풀이다. 얼핏 정구지 같기도 하고.
별 것 아닌 것이 제법 우아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어서.


민들레.
우리집 마당은 민들레 꽃밭이다. ......... 이건 순 잡초 밭이라는 말이구나.
그래도 뱀 나올만큼 우거진 수풀만 아니면 없는 것 보다 낫다. 흙 밟고 살자면 풀도 봐야지.

내 집 마당에서 십 수년을 자라고 있지만 이름도 모르는 꽃.
누가 물어 보면 그냥 빨간 밥풀떼기.

엊그제 나를 우울하게 했던 앵두 꽃 원본.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면 어떨까? 어쩌면 지금하고는 좀 다른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부서진 대문 한켠에 핀 시계꽃. 내 집 마당에는 이것도 민들레 못지않게 많다. 
   

어머니 산소 앞에 피어있던 이름 모르는 들꽃.
남겨 두려고 생각은 했었는데 예초기로 날려버렸다. 덕분에 셋째 누님한테 한 마디 들었다.


수민이네 집 마당의 벚꽃. 오른쪽 아래에 두릅도 희미하게 찬조 출연.


역시 수민이네 마당의 배꽃. 이화에 월백하고........
달 뜨는 날에 한 번 나가 봐야겠다.      


풀 숲의 들꽃. 이름은 몰라요. 


  논둑에는 꽤 많다. 저 놈들은 이름을 알 수 없으니 모두 그냥 '들꽃'이다. 
그러고보니 식물에게는 왜 이름이 없을까. 들꽃 뿐이냐? 국화는 열 송이 백 송이가 있어도 그냥 '국화'들이고
장미가 백만송이 있어도 그냥 '장미'일 뿐이다. 왜 그렇지?


한동대 복도 계단에서. 
바깥의 벚꽃이 아우성치듯이 벌어 있길래.


꽃이 있어서 봄이 겨운 것인지. 아니면 꽃이라도 있어서 겨운 봄을 그나마 견디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카메라 들이 댈 꽃이라도 있으니 그럭저럭...  


                


밤길을 달렸다. 고속도로가 오랜만이라서 조금 감각이 무디어졌나보다. 더듬이가 낯설어 한다. 가속 차선에서 속도를 내지 못해 멈칫거리기도 했다. 사람이 좀 달라져버린 것 같다.
가다가 휴게소에서 밥도 먹는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  


그리고 터널 속에서. 

시속 120Km짜리 패닝 샷이다. 왜 이렇게 위험한 짓을 하냐고?
...........야간 운전은 조용하고 적막하다. 졸릴 때나 온갖 생각들이 끼어들어서 생각이 번잡해질 때는 오히려 이게 낫다. 물론 좀 위험하긴 하다.

네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내 고향이다. 진주.
도착이 늦었다. 누님들과 성묘를 가기로 한 길이다.
진주에서 하루 밤을 자고 내일은 지리산 자락 끄트머리 어머니 산소까지 한 시간을 더 가야 한다.

풀이 그다지 많이 우거지지는 않았다. 한식 벌초는 별로 할 게 없다. 잠깐이면 된다.

누님들도 많이 늙었다. 
나란히 서서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걸 물끄러미 보자니 이렇게 다 모일 수 있는 날이 언제까지일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좀 적적해졌다. 큰 누님은 찬송가를 부르다가 운다.
어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나보다. 원래가 눈물이 좀 많은 양반이긴 하다.
큰 누님은 예순 넷.
어머니보다 더 많이 늙었는데도 어머니 사랑은 못내 그리운가 보다.
내 어머니는 서른 다섯에 생을 마쳤다. 자식을 두고 죽기에는 좀 쓸쓸한 나이다.  

어머니 산소에서 먼 산을 보면 멀리 지리산 자락이 보인다.
저 고개를 넘어서 조금 더 가면 지리산 국립공원 입구가 나온다. 그러니 나는 지리산 촌놈이다.  


늦은 저녁을 먹고 늦게 출발했다. 
핸들을 잡으니 또 멍하니 잡생각이 끼어 든다. 그래서 또 카메라로 장난을 친다. 이 생각은 나를 많이 상하게 하니까. 위험하다고? 그래. 좀 위험하기는 해. 그래도 생각에 붙잡혀서 실수하는 것 보다는 낫거든.
고래고래 노래도 부른다. 요즘 꽂힌 노래가 있다. '서른 즈음에'.
김광석의 노래라는데 나는 이은미가 부른 게 더 좋다. 이 여자는 노래를 제대로 할 줄 안다.
캄캄한 길을 내달리면서 창문을 열어 놓고 이 노래를 미친듯이 따라 부르다보면 때로는 울컥 할 때가 있다. 
그래. 노래건 인생이건 뭔가 좀 울컥 할 때도 있어야지. 속에 젓을 담더라도 말이야. 염병할. 

그러다가 길을 놓쳤다. 무슨 생각을 하다가 놓쳤을까. 여태 수십번, 백번은 넘게 오갔던 길이다.
대충 짐작으로 고속도로를 내려 서서 방향을 잡아 봤지만 방향 감각은 백리나 천리나 날아 가버리고 길이 아주 꼬여버렸다. 한 시간이 넘도록 산골짜기를 헤메고 다녔다. 무턱대고 죽어라 한쪽 방향으로 가다보니 한시간 이십분 만에 아는 길이 나왔다.  
얼이 빠져버린 것 같아 뒤숭숭하다. 근 이십년을 운전 하면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오밤중에 초행길을 가도 한 번도 길을 놓친 적은 없었다. 속이 텅텅 비어버린 것 같다.
그냥 이대로 까마득이 가라앉아버리는 걸까.   

사진을 꺼내 봤더니 묘한 사진이 있다. 그 날 밤 귀신에 홀렸던 이정표일까. 








     

몇 해 전 애 엄마와 큰 애의 교통사고로 온 식구가 두 달 넘게 병원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둘 다 중상이라 처음 며칠은 정말 넋이 나갈만큼 바빴었지요.
입원한지 사나흘 쯤 꼼짝 못하던 환자 둘 눕혀놓고 정신없던 날이었습니다.
애 엄마 수발하랴 큰 놈 수발하랴 2인실 양쪽으로 침대에 눕혀 놓고 동분서주 진을 빼고 있자하니
그 때 다섯살이던 어린놈이 지 애비를 물끄러미 보며 한마디 툭 던집디다.

'아빠가 아팠으면 좋겠다.'
'?....'
'아빠가 아프면 가만 누워 있을 수 있잖아. 힘들게 일 안해도 되고 다른 사람이 물도 떠 주고 밥도 먹여주고....'

다섯 살 어린 놈에게 듣기에는 너무 벅찬 말이라 두고두고 생각이 납니다.
꽤 괜찮은 놈이지요?
병원에서 먹고 살던 그 때
어느 날 아침 나절 병실 바닥에서 바둑이 끌어안고 늦잠 자던 놈입니다.



어제 저녁에 이 놈이 뜬금없이 불쑥 말합니다.
'혼자 자는 거 언제부터 해 봐요?'
젖먹이때부터 지금까지 지 애비 팔베개를 해야 잠이 오는 놈이라
그 말이 기특하긴 한데 갑자기 겨드랑이가 썰렁해집니다.
그래서 어젯 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 방에 이불 따로 펴고 혼자 잠을 잤습니다.
아, 물론 잠이 들 때까지는 아빠가 옆에 누워서 팔베개를 해 줘야 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거나 일기 불순할 때는 언제든지 안방에서 자도 좋다는 조건입니다만.


속은 여려도 구김 없이 꽤 씩씩하게 잘 자라는 것이 고마운 놈입니다.
요즘은 자전거 타고 학교 갑니다. 간혹 자전거 처박고 무르팍에 멍도 들고 그럽니다.
요새는 공부가 좀 하기 싫어지나 봅니다.
뭐 어때요.
공부건 사랑이건 제 물미가 터져야 하는 겁니다. 또 그래야 행복하고.
저 놈이 혼자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곁에 있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당에 핀 앵두꽃을 찍었다.
보기에 괜찮은 듯 해서 조금 매만지다가 별 생각 없이 채도를 죽여보았다.
꽃의 이미지는 사라져버리고 꽃이라는 형태와 개념만 남은 셈이 되었다.
미묘한 느낌. 지금의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일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아니,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고.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바라고 기다리던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
이런 등신.
어렵든 쉽든. 그것은 내 몫의 것이 아니다.
등 뒤에서 닫히는 문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겠지.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았거나.
이제 알았나? 시간은 잔인한 것이다.

무망한 기대는 사람을 상하게 한다. 
무망한 기대로 열어 두었던 창이라면 닫아야지. 닫아야 할 것 같다.
나는 몽상가였을까?
또 하나를 접는구나. 많이 아프다.



1. 벌똥
나는 세차하기가 싫다.
웬만한 자동 세차기에는 넣어주지도 않는 고물 밴 숏바디.
손 대 본지 이년인가 삼년인가.
비오는 날이 세차하는 날이고 볕 나는 날에 말려서 쓴다 왜.


그런데 이웃에 양봉하는 할배, 버릇도 더럽게 들여 놨지.
이놈의 벌들이 꽃에 꿀만 따먹고 가면 좋으련만 배설까지 우리 집 마당에서 끝내고 간다는 말이지.
내 차는 회색인데.
옆구리에 까만 띠 둘러놓은 회색인데.
지붕이고 본넷이고 황금색 벌똥이 수백 개 아로새겨지면 내 차는 회색도 아니고 똥색도 아니고. 이런 제길.
벌똥은 봄볕에 바짝 말라붙으면 손톱으로 긁어도 잘 안 떨어져.
젠장. 차 닦기 싫다니까.


2. 벌꿀
벌똥으로 관련하여 나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부여하는 이웃의 영감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꿀 한사발 갖다 준 적이 없다.
나쁜 할배.

토종꿀 몇 년 건드려 본 내 사촌에게 그 소릴 했더니 아주 맛 간 사람 보듯 날 본다.
토종 꿀 한 단지 맹글라면 몇 년을 패대기를 치는데 그걸 줄까보냐고.
그런가.
뭐 그렇거나 말거나 나도 아주 어릴 적엔 외할아버지 댁에서 토종꿀 꽤나 퍼 먹었었잖아.
꿀 한 되에 수십 만 원이든 수백 만 원이든 내 알 바 없단 말이지. 아 근데 그게 그리 비싸냐.


3. 벌집
우리 집에는 꿀벌은 없다. 대신,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말벌은 산다.
처마 밑에 떡 당생이만 한 벌집 지어놓고 허가도 없이 세 들어 산다. 두 개나 있었다.
꼬맹이가 무서워서 마당에 못나가겠단다.
금쪽같은 내 새끼 벌에 쏘일까봐 그 벌집 뜯어냈다. 뭘로 발라놨는지 더럽게도 안 떨어졌었다.
말벌에 쏘일까봐 한 손에 간짓대 한 손에 에프 킬라 들고 전투하듯 뜯어냈다.
떠그럴. 꿀벌이나 올 것이지.


4. 벌 알레르기
내 친구 마누라는 벌침 알레르기다.
몇 년 전 저그 선산에 벌초하러 갔다가 땅벌에 쏘여서 죽을 뻔 했다더라.
벌 독이 오르면 기도가 부어올라서 숨을 못 쉰다던가.
친구 놈은 그때 마누라 업고 산길 몇 리를 냅다 뛰었다고 생색이 대단하다. 지 아니면 지 마누래 죽었을 거라고. 

드런 놈.
그럼 니 마누라 숨넘어가는데 구경만 하고 있을라 그랬더냐.
크다가 만 쬐끄만한 마누래 업고 뛴 게 뭔 용상에 오른 일이라고.
그나저나 벌 알레르기가 무섭기는 무서운가보다. 우리 집 뒷산에도 땅벌들이 있을까?
아이들 뒷산에 함부로 안 올려 보내야겠다.


5. 벌
봄이 왔다. 제대로 왔다.
뭘로 아냐면 벌똥 보고 안다.
겨우내 꼭꼭 처박혀서 자빠져 자던 벌들이 살 판 났다 앵앵 돌아 댕긴다는 증거다.

봄이야 오건 말건
꽃이야 피든 말든 내 코가 석자라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벌똥은 싫다.
그래서 봄도 싫다.

.....
아, 세차하기 싫다니까!!


하늘. 비현실적인 색이어서 그랬는지 보고 있다가 나른하게 멀미끼를 느꼈던 하늘.


해변의 연인.
최소한 부부는 아니었을 거야.  
저 두 사람 곁을 지나서 내가 사진을 찍은 언덕을 떠날때까지 꼼짝 않고 저리 서 있던 걸 보면.
부부일 수도 있다고요? 백원 걸까?

봄이면 누구나 다 찍는 꽃 사진. 이파리가 군청색으로 나온 이유는 메누리도 몰라요. 

누구나 다 찍는 사진이 그나마 보기에도 좋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참 멍청한 사진. 미나리 꽝.


나와 나란히 달리던 7번 국도. 나는 왜 밤이고 낮이고 길만 보면 환장을 하고 울렁증이 생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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