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벌똥
나는 세차하기가 싫다.
웬만한 자동 세차기에는 넣어주지도 않는 고물 밴 숏바디.
손 대 본지 이년인가 삼년인가.
비오는 날이 세차하는 날이고 볕 나는 날에 말려서 쓴다 왜.


그런데 이웃에 양봉하는 할배, 버릇도 더럽게 들여 놨지.
이놈의 벌들이 꽃에 꿀만 따먹고 가면 좋으련만 배설까지 우리 집 마당에서 끝내고 간다는 말이지.
내 차는 회색인데.
옆구리에 까만 띠 둘러놓은 회색인데.
지붕이고 본넷이고 황금색 벌똥이 수백 개 아로새겨지면 내 차는 회색도 아니고 똥색도 아니고. 이런 제길.
벌똥은 봄볕에 바짝 말라붙으면 손톱으로 긁어도 잘 안 떨어져.
젠장. 차 닦기 싫다니까.


2. 벌꿀
벌똥으로 관련하여 나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부여하는 이웃의 영감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꿀 한사발 갖다 준 적이 없다.
나쁜 할배.

토종꿀 몇 년 건드려 본 내 사촌에게 그 소릴 했더니 아주 맛 간 사람 보듯 날 본다.
토종 꿀 한 단지 맹글라면 몇 년을 패대기를 치는데 그걸 줄까보냐고.
그런가.
뭐 그렇거나 말거나 나도 아주 어릴 적엔 외할아버지 댁에서 토종꿀 꽤나 퍼 먹었었잖아.
꿀 한 되에 수십 만 원이든 수백 만 원이든 내 알 바 없단 말이지. 아 근데 그게 그리 비싸냐.


3. 벌집
우리 집에는 꿀벌은 없다. 대신,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말벌은 산다.
처마 밑에 떡 당생이만 한 벌집 지어놓고 허가도 없이 세 들어 산다. 두 개나 있었다.
꼬맹이가 무서워서 마당에 못나가겠단다.
금쪽같은 내 새끼 벌에 쏘일까봐 그 벌집 뜯어냈다. 뭘로 발라놨는지 더럽게도 안 떨어졌었다.
말벌에 쏘일까봐 한 손에 간짓대 한 손에 에프 킬라 들고 전투하듯 뜯어냈다.
떠그럴. 꿀벌이나 올 것이지.


4. 벌 알레르기
내 친구 마누라는 벌침 알레르기다.
몇 년 전 저그 선산에 벌초하러 갔다가 땅벌에 쏘여서 죽을 뻔 했다더라.
벌 독이 오르면 기도가 부어올라서 숨을 못 쉰다던가.
친구 놈은 그때 마누라 업고 산길 몇 리를 냅다 뛰었다고 생색이 대단하다. 지 아니면 지 마누래 죽었을 거라고. 

드런 놈.
그럼 니 마누라 숨넘어가는데 구경만 하고 있을라 그랬더냐.
크다가 만 쬐끄만한 마누래 업고 뛴 게 뭔 용상에 오른 일이라고.
그나저나 벌 알레르기가 무섭기는 무서운가보다. 우리 집 뒷산에도 땅벌들이 있을까?
아이들 뒷산에 함부로 안 올려 보내야겠다.


5. 벌
봄이 왔다. 제대로 왔다.
뭘로 아냐면 벌똥 보고 안다.
겨우내 꼭꼭 처박혀서 자빠져 자던 벌들이 살 판 났다 앵앵 돌아 댕긴다는 증거다.

봄이야 오건 말건
꽃이야 피든 말든 내 코가 석자라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벌똥은 싫다.
그래서 봄도 싫다.

.....
아, 세차하기 싫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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