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인해(@@... ) 영덕 시외버스 터미널.


비가 꽤 내린다. 오전 내내 지붕에 꽂히는 빗소리.
제법 소란스러운 소리인데도 빗소리는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궁금하지 않다. 이제는 대부분의 현상들에 대한 호기심이 다 그렇다.

욕실 창문을 열고 내려다 보니 빗줄기가 꽤 제법이다.
우리 집에서 빗소리가 제일 잘 들리는 곳은 욕실이다.

젖은 남새밭이 우중충해 보여서 몇 장 찍어 본다. 며칠만에 카메라를 들어본다.
매사에 무기력증이 스며드는 모양이다.
무기력해지건 무감각해지건 이제는 별로 걱정도 안된다.

 
컴퓨터에 사진을 걸어서 멍하니 보다가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나섰지만 다 늦은 시각이라 멀리도 못 간다. 앉은뱅이같이 이웃동네만 기웃거린다. 
그 사이 비는 그치고 풍경이 남았다. 

화진리 들어가는 길가에 보리를 심어 두었다. 이제는 보리도 관상용인지.
어쨌든 아직 익지 않은 풋보리가 남아있다. 참 오랜만에 보는 풋보리. 청보리. 고등학교때 아카데미 문집 이름이 풋보리였던가 싶다.
몇 몇 얼굴들이 생각난다. 


화진리를 지나서 월포를 돌아 나가는 길 옆 논두렁에 백로가 앉았다.
해 마다 이 때쯤이면 물 담은 논에 산천이 거꾸로 처박힌다. 
렌즈를 바꾸고 행여나 날아 갈까 조심조심 가까이 다가 가도 꼼짝을 안한다.
하긴 누가 먹을 게 없어서 백로를 잡아 먹지는 않을 것이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제는 얼추 서로 길들여지나보다. 


습기 머금은 바람에 홀려서 어슬렁거리다보니 그 새 해가 기우나보다.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나오길 잘했다. 매일 비나 내렸으면 좋겠다. 지붕만 새지 않는다면.
그러게 비 새는 지붕은 언제 고치냐고... 






처음엔 꽤 좋은 느낌이었는데
날이 갈 수록 물에 빠진 채 손에 닿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느낌.
허방을 디디고 떨어지는 꿈처럼.


다시 시작했던 동기는 완전히 소멸된 것인가.

채우려고 애를 써도 이제는 느낌이 오지않는다.
동기가 소멸하면,
그리고 재충전되지 않는다면 동력도 멈추게 되겠지.
내가 그렇게 간절히 기대했던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정말 그만큼이었는데

잃은 것은 지난 겨울 감당하기 힘들만큼 터무니없이 낭비해버린 감정과 시간.
얻은 것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침에 현관을 나서려던 애 엄마가 눈이 빨개져서 뭔 카드를 하나 들고 왔다.
아직 자고 있는 꼬맹이가 깰세라 얼른 보고 제자리에 둬야한다고 수선이다.
 


뭘, 꼬맹이가 스승의 날이라고 선생님에게 쓴 편지구만 뭘 그래.
이 사람도 나이가 들어가나보다. 엊그제는 큰 놈 편지를 보고 울었다더니.

보니, 작년 가을 쯤 폐원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간 피아노 선생님에게 쓴 편지다.
.........
생각보다 많이 자랐구나.
맨날 개구짓이나 하고 철딱서니 없는 놈이라 여겼는데 .

어제 밤에 선생님들한테 줄 선물 만든다고 법석을 떨더니 꽤 예쁘게 만들어놨다.
아마도 그걸 보고 애 엄마가 뭔가 하고 뒤져봤나보다.
그러게 애들 편지나 수첩은 왜 뒤져보고 그러냔 말이지.
......
그래서 또 이런 편지도 보고 가슴팍이 설렁거릴 수도 있지만 말이지....


그 무지개 학원 선생님도 우리집 꼬맹이에게 유난히 각별하긴 했었지만
꼬맹이도 지가 여섯 살 들면서부터였으니 꼬박 삼년 반을 내리 다녔던 피아노 학원이라 정이 많이 들었었나 보다.
헤어진 이후로 별로 말이 없길래 그저 그런가보다 생각에 두질 않았었는데
언제 한 번 짬 내서 그 선생님 보러 다녀와야 할 것 같다.    

.......
그래서 기특하고 대견하냐고?
당연하지.
당연하지만.
그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야.
큰 놈이 자랄 때도 똑 같이 느꼈던 거지만, 애들이 자라고 점점 생각이 커지고,
그래서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나 생각에 몇 번 감동 받고 하다보면
반드시 그 기쁨의 그늘 아래로 슬그머니 자리 잡는 아쉬움. 그 사이에 아이들은 품을 떠나고 그리고 곧 무릎이 허전해진다는 것.

어느 노래 가사가 그랬었지.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라고.
하지만 반드시 괴롭고 힘들어서만 삶의 무게를 느끼는 건 아니야.
기쁨도, 오늘 아침과 같은 생경한 놀라움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생각과 깨달음, 거기에서 느끼는 세월의 무게는 정말.

뭐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지.
머리 끝이 닳고 닳도록 재고 싸우고 궁리하면서 살아 온 날들이 그리 헛되지는 않았더라는 그런 거.
그럭저럭 어디 내 놔도 그리 부끄럽지 않은 놈들로 만들어놨다는 뿌듯함 같은 거.
이것 봐.
그러길래 술은 왜 끊는다고 그러고 말이야.
이런 날은 그저 부부가 마주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혼곤히 취해보는 것도 참 좋은 일이지 않으냔 말이지. 
 


白丈禪師는 一日不事면 一日不食이라는 계율을 만들고 지킨 선사이다.
어느 날 선사가 밭에 나가 제자들과 일을 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한 제자가 큰 소리로 웃더니 손을 털고 절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선사는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생각했다.

‘장하다! 저 놈이 드디어 진리의 문에 들었구나.’


그날 저녁 선사는 그 제자를 불러 물었다.


“제자야 너는 어떤 도리를 깨쳤길래 그렇게 크게 웃었더냐?”

“.......저는 일을 하던 중 배가 고파 참을 수가 없었는데 그때 마침 밥을 먹으라는 북소리를 듣고 신이 나서 웃었습니다. 그래서 절에 돌아와 밥을 먹었을 뿐입니다.“

선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
덕망 높은 선사도 때때로 헛다리를 짚는 모양이다.
나같은 불한당이 그 스승이었다면 속으로 생각하기는 뭘 생각해,
손 털고 일어서는 놈을 그 자리에서 붙잡아서는, 이런 싹수 없는 놈, 일 안하고 어딜 내빼냐...... 대번에 패대기를 쳐버리지.

남의 속내를 짐작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며 선문답이라는 것이 갑남을녀, 장삼이사가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뜻도 되겠다.
또한, 때때로 선문답이랍시는 글들을 보노라면 그 뜻이 필요 이상으로 심오한 데가 있다.
그렇지.
말 그대로 참 심오하기는 한데, 거기에서 나는 참 궁금한 것이 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은 고사하고 지가 하는 말 뜻이라도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일까?
아니면 아예 둘 다 제 생각만으로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남보기에는 그럴싸하게 도통한 시늉만 하고 있든지.

내가 눈 앞에 놓인 밥그릇밖에 못보는 잡놈이라 그런지도 몰라.
아니면 밥그릇 포장하는 기술이 모자라든지.
뭐 어쨌든 바람 먼지 자욱한 이 사바세계에서는 그 놈의 아리송한 선문답은 안봤으면 해서 말이지.
사람이 사람이다보니 살다보면 서로 꼬이기도 하고 뒤틀리기도 하고... 그래서 서로 언성 높이고 삿대질 할 때도 있지. 더러 툭탁거리기도 하고.
그런 때 뒷구멍에 슬그머니 고개 내 밀고는 뭔가 있음직해 보이되
실은 밥도 아니고 막걸리도 아닌 소릴 툭 던져놓고
저 혼자 뒷짐 지고 먼산 보는 사람이 있지.
옆에서 보자하면 참 거시기 하다.


평소에 패싸움은 개싸움이라 치부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그것보다는 차라리 좀 시끄럽더라도 멱살잡이가 낫다.
개새끼 소새끼 눈탱이 밤탱이가 돼도 최소한 사람 냄새는 나거든.
꼭 할 말이 없거나 내공이 딸린다면 입 닥치고 조용히 있어주면 그것으로 좋을 때도 많아.
거룩하거나, 혹은 심오한 선문답은 도사들끼리만 했으면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
아니면 이 좋은 봄날에 절구경이라도 가서 먼 산 보고 하든지.
뒷뜰에 노는 땅을 개간(?)해서 남새를 갈아 먹기로 했다.
내리 몇 해를 묵혀놨던 땅이라 풀만 무성하다.
비온 다음날로 날을 받아서 연한 놈은 뽑아 던지고 질긴 놈은 호미로 찍고..
풀뿌리가 엉머구리로 얼키설키 호미 대가리가 걸려서 일이 안된다.
겨우 풀 걷어냈다 싶으면 돌밭이 덜거럭 삐거덕.

내리 박기만하면 빠각빠각 걸리는 자갈로 인하야 이미 천원짜리 최신형 호미 하나를 해 먹고야 말았다. 이런 젠장. 

이삼일 풀 뽑고 돌 뽑아내느라 용을 썼더니 수 년전에 주사 몇 방으로 땜질해놓은 허리가 수상타.
아서라. 남새 몇 포기 뜯어 먹을라다가 구들지고 자리보전할라.
호미 던지고 대충 먼지 터느라 툭탁거리는데 지나가던 발걸음이 인기척을 한다.


-‘머어를 심굴라꼬요.’
-아, 예. 들깨라도 뿌려보까 싶어서요.

골목 어귀 좀팽이 영감네 아주머니다.

-‘마카 돌밭이라 들깨나 숨가야 되겠니더.’
-그러게요. 하도 돌이 많아서.

-‘그래도 하마 곱게 잘 했니더. 영 돌밭이드마.’
-뭐, 할 줄은 모르고 숭내만 냅니다.

-‘..... 돌밭에 너무 심쓰지 마소... 우리 영감도 젊어 그래 씨가 빠지게 일만 하다가...’
-.?..

-‘우리 영감 절고 댕기는 거 봤제요. 인자는 인나도 몬하고 방구석에 저래 짊어지고 있어요. 거, 황사 마이 왔던 날에요.’

발걸음을 옮길듯 말듯하다가 들고 있던 다라이를 길에 내려놓고는 먼데 산을 보면서 허리를 펴고 한숨 한 번 쉬고 시작한 아주머니의 넋두리다.


-‘...하마 묵던 약이 다됐다고 약타러 간다카글래, 바람도 누렇키 저리 씨기 부는데 바람 잔 날에 가소 말맀드마 저런 더런녀러 쏘가지, 부애를 내고 픽 나가데요. 그 날에 고만 아다리가 돼서 중간에 오도가도 몬하고 자빠져서 눈이 희꾼해서 말도 한마디 몬하고.. 온 얼굴에 풍인지 머인지 깨같은 기 쏘시락하이 올라와서 보도 몬하고.. 그래 포항 빙원에 응급실로 실꼬 갔드이, 젊어 하도 일을 마이해서 더 낫기는 몬하고 인자 들일도 말고 조심하라카데요.
뭔 일을 하고잡아(하고싶어서) 그래 마이하는 사람이 어데있능교.
자석새끼들 공부시키고 출세 시킬라꼬 죽으나사나 지게지고 댕깄지요.

아들이고 딸이고 다 옛말이지 대학 시키고 대학나온 며느리 봐 봤자 다 헛일이시더.
아랫녘에 뉘는 중학 나온 며느리 봤어도 시부모 봉양이 그럴 수가 없는데 대학 나와서 높은 공부한 며느리 얻었디이 수주이 높아 무식한 부모하고는 말도 잘 안 통하고 글니더.

산비딱에 돌 파내고 뻬가 뿡그라지도록 일해서 공부시키봐야 인자는 부모 봉양도 구찮고 저그는 저그대로 잘났고. 소용엄니더...‘

-그럼 아저씨가 시방 운신을 못하시는가요.

-‘그래 조신하이 드러눕어마 있었으마 하마 삽짝은 걸어 댕길낀데 조런녀러 영감태기 그 새를 몬참고 니아카에 소 매서 끄꼬 가다가 고랑에 자빠진 채로 소가 니아카를 밀고 가삐리서 다리에 뼈가 보이도록 조지놨제요. 인자는 살이 오그라들어 다리를 피도 몬하고 오그리도 몬하고 ......
저라다가 죽지요 멀. 하마 칠십 여덜인데 낼모레 팔십 아인교... 마 소용 엄니더... 들깨나 흩어서 이파리나 따묵고 그라소. 너무 애쓰지 마소. 다 소용엄니더...’


연전에 인물 허연 두 아들 내외 손자손녀 앞세우고 명절 나들이에 입이 귀에 걸렸더니 그 새 먼 일이 있었나보다. 꾸부정한 아주머니 옆 얼굴을 보자하니 허여멀금 신수 괜찮던 얼굴이 그래 그런지 좀 거죽하다.
뭐라고 거들기도 그렇고 말리기도 그래서 고만 던져 놨던 호미 다시 들고 돌 골라내는 시늉을 하고 있자니 다라이 다시 집어들고 주섬주섬 둑길을 오르면서 다짐을 둔다.

-‘성새임요. 이양 대강하소. 들깨야 엔간하마 잘 올라오지요.’
-예, 그러지요 뭐.

공연히 마음이 선듯해서 호미 다시 쥔 김에 잔돌 몇 개 더 골라내고 있자니 그 아주머니 다라이에 뭔 푸성귀 담아 이고 어느새 둑길 따라 돌아 내려오는데 그 새 한 숨 돌렸는지 목소리가 조금 낫네.

-‘낳기 뿌리 노소. 자아 우에는 하마 모종했는데 성새임은 쪼매 늦었니더. 드문 거 보담사 솎아내는 기 낫제. 어린 것들은 솎아서 무치 묵으마 돼요. 하마 곱기 잘 했니더.’



오며 가며 툭툭 던지고 간 말에 나 혼자 괜히 뒤숭숭해져서 호미 쥔 채로 멍청하게 아주머니 뒷모습만 좇다가 나도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중얼거려봤다.

.....
그러게 사람이란 짐승은 꼭 나이 들면서야 게우시 눈이 띄고 귀가 틔는지.

하기사 그 중에 아주 늙어서도 지 발 끄트머리만 내려다보고 자슥들 속 썩이는 밴댕이들도 없지는 않더라마는.
희거나 껌거나 간에 아버지 세상 뜨시고 난 담에야 도 닦은 듯 흰소리 주절거리는 나도 똑같지 뭘.
아지매는 괜히 오다가다 엉뚱한 소리 해쌓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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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은 음악광이고 오디오쟁이라고 주변 여기저기 실속없는 입소문만 나서는 때때로 몇 곡 선곡해서 녹음 좀 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생일 선물도 있고 학기말에 아이들 담임 선생님께 드릴 선물도 있지만 그 중 잦은 것은 태교 음악이다.
애들 엄마는 내 오디오의 건강 증진에는 인색하면서 이런 때는 본전 뽑자고 덤빈다.

‘구룡포에 뉘 선생이 임신했다던데...’
‘포항 허 선생도 배 불렀다더라.’

.......... 그래서 어쩌라고? @@...
........

무릇 선물이란 마음을 담은 물품을 무상으로 주고받는 일이므로 그 물품의 내용을 두고 음이다 양이다 옥신각신 할 필요가 도대체 없으니 선물을 주고 받는 다는 것은 불문곡직하고 대체로 매우 바람직한 행위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인데다가 더더우기 음악을 선물 한다는 일은 고금에 그 짝을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아름다운 일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사안이 애매한 경우에는 제목이 그럴싸한 얇직하거나 헐직한 책이라든지 아니면 대충 줏어다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이나 이런 것들을 수시때때로 남발하고는 있지만, 뭐, 이런 경우에는 모른척 안그런척 그거 꼭 해야되냐? 슬쩍 한 번 튕겨 본다. 

내가 고장난 오디오 붙들고 머리카락 빠져가며 고심할 때나 
밤이 늦도록 삐그덕 거리는 오디오 만지면서 진땀 뺄때 그대는 가재미눈으로 날 쳐다보지 않았던가?
염치도 좋구나. 그래놓고 시방 나한테 일거리 하청을 준다는 것인지?
....... 뭐 대충 이런 심사다.

애 엄마는 기계치다.
명색이 오디오쟁이와 한 지붕 밑에서 근 이십년을 살아왔으나 아직까지도 조금이나마 복잡하게 생긴 기기는 아이고 무시라, 아예 만져 볼 생각을 안하는데다가 앞으로도 그것이 개선될 기미는 조금도 없다.
지는 거실에서 바느질하고 내가 마당에서 김치독 묻을 땅 파고 있는 아름다운 구도에서도,
보소, 소리가 너무 시끄러바요,
소리 줄여 달라고 굳이 창문 열고 날 찾는다.

-‘거, 오른 쪽 맨 밑에 누런 앰프 도랑태 다섯개 중에 가운데 껏이 보륨이야~
........아이 깜짝이야. 귀청 떨어지것네. 이런 쇠불알! 왼짝으로 돌리야 된다니깐!!!’

목이 쉬도록 쎄가 빠지게 석달 열흘을 가르쳐 줘 봤자 며칠 안가서 또 마당에 있는 나를 부른다.

‘담이 저그 아부지이~~ 소리가 너무 커요오~~~’

그러니 뭐 하나 녹음 할라치면 나한테 떫은 소리를 못할 밖에는.

나는 테이프 녹음은 자타공인 실력파다.... 라고 말하고싶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오디오나 음악에 관심 없는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 우위에 불과한
순전히 주관적인 평가일 뿐이다.

또한
다들 아시다시피 테이프 녹음은 그 음원이 엘피 일 경우에는 거의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의 중노동에 속한다.
특히 한 삼십분 이상 걸리는 대곡일 경우 노심초사 근근히 녹음을 하던 중, 끝날 때 쯤해서 틱! 하고 한 번 튀고나면
아아..... 무상하다. 

그래서 나는 옛적부터 데크 앞에 앉아서 씨름할 때는 공연히 몹시 어려운 작업을 하는드끼 필요 이상으로 인상 팍 구기고 앉아서 모가지에 힘이 뻣뻣하게 들어 간 채로 억시기 튕기는 경향이 있다. 
아, 물론 애 엄마도 지 부탁으로 녹음 할 때는 다소 뜰브나마나 서포트에 진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평소에 소 닭 보듯 하다가 그런 때면 내 주변을 뱅뱅 돌면서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는 이야기다.
일진이 좋다면야, 엇주구리, 더러 뜬금없이 사과도 깎아주고 시키잖은 커피도 한 잔 갖다준다.

그런데.... 요즘은 녹음 매체의 주종이 시디로 옮겨졌으니 조금은 편해 졌나?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단 녹음 과정이야 시디가 비할바없이 간편하다.
시간도 단축 되고 프로그램 띄워서 한꺼번에 집어 넣어 놓으면
시간하고 남은 공간까지 주르르 나오니 테이프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이긴 하다.
그러나 엘피를 시디로 옮기고 싶을 경우에는
일반 가정에서의 그것은 순전히 실시간 노가다이매 일견 매우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기도 하고
그 소요 장비의 이동과 설치 또한 허리 부실한 중년에게는 적잖은 부담이며, 게다가 녹음 중에 에러가 나면 아예 갖다 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 물론 다소의 디지털 기기를 구비한다면 그 작업의 난이도가 현저히 수월해지며 그 편집의 묘 또한 콧노래가 나올만큼 손쉬워진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모르는 바 아니나.... 
모든 것은 그것이면 다 해결 된다. ... 그것... 

아무튼 그래서 음으로 양으로 그 놈의 태교음악 편집을 더러 하게 되는데,
말을 그리 꺼냈으니 태교음악이지 그냥 그렇구나 흘려 놓고 듣는다는데 의의를 둔다면 몰라도
그 효과에 대해서는 솔직히 반신반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반에 반신도 안 한다.

우리집 큰 놈이 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깐에는 최대한 신경 써서 '태교 음악' 테이프를 대여섯개 만들었었다.
사나희 태어나 처음으로 아부지가 된다는데 그 아니 들뜨고 설레일소냐.
내가 날마다 경배하여 마지않는 B짜 항렬 영감들은 물론이요 동서고금을 통해 태교에 최고로 좋다는 M모씨의 음악까지 최대한 주옥같은 곡으로 엄선....
애들 엄마도 첫 아이 때라 그랬는지 작은 놈 뱃속에 들었을때모냥 대충 한 잔 걸치고 들어오는 일도 없이 매우 경건하였으며, 뭐 어쨌거나 그놈의 테이프가 마르고 닳도록 참 열심히도 많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 테이프, '짱구 음악'이라는 제목을 달고 지금도 집구석 어딘가에 구불러 댕긴다....

그런데....  
태어나는 놈은 순전히 지 성질대로 태어나는 벱인지 아니면 우리집 큰 놈이 돌연변인지
이 놈이 철들면서 미치고 환장하는 음악이란 게....
........ 말도 하기 싫다.

도대체 귀신 씨나락 까묵는 랩인지 힙합인지 
아,
언제나 그렇듯이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므로
힙합 매니아들의 항의나 질타는 접수 못한다. (☜ 당연히 보험이다....)
  
하여간에 음악이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어쨌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최소한 태교 음악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알든 모르든 뱃속에 있을 때 지 엄마가 듣던 음악에 대한 최소한의 친근감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도대체 자기 스스로 음악을 선택 할 수 없었던 유아기 때를 제외하고는
내가 흘려놓은 음악에 대해서 친화적으로 다가 온 적은 거의 없었던 듯하니 부애가 나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음악이 사람의 품성을 만들어 준다는 가설에는 콧방귀다.
그것도 매우 강력한 콧김을 동반한 콧방구다.

저간의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그놈의 허울좋은 태교음악이란 것에 대한 내 견해는 이렇다.
오로지 타고 나기를 음악을 좋아하게 타고 나서
살다 보니 또 어찌어찌 음악을 접할 기회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잠재된 감수성이 촉발.... 어쩌구.... 그런 주의자다.      

기회가 있어 코딱지만 한 놈들 여럿 앉혀놓고
별 다른 예고나 설명 없이 고전음악을 흘려 놓아보는 실험을 몇 번 해본적이 있다.
열에 칠팔은 틀림 없이 졸거나 주리를 틀거나 딴짓이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한 두 놈쯤 신통하게 듣고 있는 경우가 있다.
끝나고 물어 보면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그 곡에 대한 그럴싸한 인상도 없지않고.

하지만 나는 그 한 두 놈이 저그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그 엄마들이 거룩하고 숭고한 음악을 들으며 태교를 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태교 음악 무용론자다.
차라리 임산부의 정서 순화나 심리적 평정을 위해 고요하고 편안한 음악을 찾는다면
그거야 뭐 굳이 반대할 명분도 생각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이나 사상이나 철학은 사실 별 상관이 없다.
그 누군가가 ‘태교음악’이라는 선물을 필요로 한다면,
그리고 그‘필요’의 날짜가 서서히 촉박해지면,
나는 그 목적과 시기에 부합하는 그렇고 그런 그럴듯한 음악들을 쎄가 빠지게 고르고 추려낸 다음
그 누군가를 위한 태교 음악이라는 근사한 제목이 붙을 시디를 편집하고, 꿉고, 껍디기를 만들고....
견마지로를 다하여 밤새 뺑이를 친다....

자유 민주주의라고?
....개 풀 뜯어묵는 소리.
세상살이가 대개 그러하듯이 황량한 변방, 적막한 깡촌 마을의 겨울에도
그 사상과 행위의 자유는 제한 되어 있다. 그것도 매우.
.............물론 앞서 이야기 했듯이 가뭄에 콩나드끼 때때로 뻐기거나 튕겨보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익히들 아시다시피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사태는 나의 책임이며.....
또한 역시 짐작 하시다시피... 짐짓 튕겨보는 그 시간 또한 나의 바램보다는 매우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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