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뜰에 노는 땅을 개간(?)해서 남새를 갈아 먹기로 했다.
내리 몇 해를 묵혀놨던 땅이라 풀만 무성하다.
비온 다음날로 날을 받아서 연한 놈은 뽑아 던지고 질긴 놈은 호미로 찍고..
풀뿌리가 엉머구리로 얼키설키 호미 대가리가 걸려서 일이 안된다.
겨우 풀 걷어냈다 싶으면 돌밭이 덜거럭 삐거덕.

내리 박기만하면 빠각빠각 걸리는 자갈로 인하야 이미 천원짜리 최신형 호미 하나를 해 먹고야 말았다. 이런 젠장. 

이삼일 풀 뽑고 돌 뽑아내느라 용을 썼더니 수 년전에 주사 몇 방으로 땜질해놓은 허리가 수상타.
아서라. 남새 몇 포기 뜯어 먹을라다가 구들지고 자리보전할라.
호미 던지고 대충 먼지 터느라 툭탁거리는데 지나가던 발걸음이 인기척을 한다.


-‘머어를 심굴라꼬요.’
-아, 예. 들깨라도 뿌려보까 싶어서요.

골목 어귀 좀팽이 영감네 아주머니다.

-‘마카 돌밭이라 들깨나 숨가야 되겠니더.’
-그러게요. 하도 돌이 많아서.

-‘그래도 하마 곱게 잘 했니더. 영 돌밭이드마.’
-뭐, 할 줄은 모르고 숭내만 냅니다.

-‘..... 돌밭에 너무 심쓰지 마소... 우리 영감도 젊어 그래 씨가 빠지게 일만 하다가...’
-.?..

-‘우리 영감 절고 댕기는 거 봤제요. 인자는 인나도 몬하고 방구석에 저래 짊어지고 있어요. 거, 황사 마이 왔던 날에요.’

발걸음을 옮길듯 말듯하다가 들고 있던 다라이를 길에 내려놓고는 먼데 산을 보면서 허리를 펴고 한숨 한 번 쉬고 시작한 아주머니의 넋두리다.


-‘...하마 묵던 약이 다됐다고 약타러 간다카글래, 바람도 누렇키 저리 씨기 부는데 바람 잔 날에 가소 말맀드마 저런 더런녀러 쏘가지, 부애를 내고 픽 나가데요. 그 날에 고만 아다리가 돼서 중간에 오도가도 몬하고 자빠져서 눈이 희꾼해서 말도 한마디 몬하고.. 온 얼굴에 풍인지 머인지 깨같은 기 쏘시락하이 올라와서 보도 몬하고.. 그래 포항 빙원에 응급실로 실꼬 갔드이, 젊어 하도 일을 마이해서 더 낫기는 몬하고 인자 들일도 말고 조심하라카데요.
뭔 일을 하고잡아(하고싶어서) 그래 마이하는 사람이 어데있능교.
자석새끼들 공부시키고 출세 시킬라꼬 죽으나사나 지게지고 댕깄지요.

아들이고 딸이고 다 옛말이지 대학 시키고 대학나온 며느리 봐 봤자 다 헛일이시더.
아랫녘에 뉘는 중학 나온 며느리 봤어도 시부모 봉양이 그럴 수가 없는데 대학 나와서 높은 공부한 며느리 얻었디이 수주이 높아 무식한 부모하고는 말도 잘 안 통하고 글니더.

산비딱에 돌 파내고 뻬가 뿡그라지도록 일해서 공부시키봐야 인자는 부모 봉양도 구찮고 저그는 저그대로 잘났고. 소용엄니더...‘

-그럼 아저씨가 시방 운신을 못하시는가요.

-‘그래 조신하이 드러눕어마 있었으마 하마 삽짝은 걸어 댕길낀데 조런녀러 영감태기 그 새를 몬참고 니아카에 소 매서 끄꼬 가다가 고랑에 자빠진 채로 소가 니아카를 밀고 가삐리서 다리에 뼈가 보이도록 조지놨제요. 인자는 살이 오그라들어 다리를 피도 몬하고 오그리도 몬하고 ......
저라다가 죽지요 멀. 하마 칠십 여덜인데 낼모레 팔십 아인교... 마 소용 엄니더... 들깨나 흩어서 이파리나 따묵고 그라소. 너무 애쓰지 마소. 다 소용엄니더...’


연전에 인물 허연 두 아들 내외 손자손녀 앞세우고 명절 나들이에 입이 귀에 걸렸더니 그 새 먼 일이 있었나보다. 꾸부정한 아주머니 옆 얼굴을 보자하니 허여멀금 신수 괜찮던 얼굴이 그래 그런지 좀 거죽하다.
뭐라고 거들기도 그렇고 말리기도 그래서 고만 던져 놨던 호미 다시 들고 돌 골라내는 시늉을 하고 있자니 다라이 다시 집어들고 주섬주섬 둑길을 오르면서 다짐을 둔다.

-‘성새임요. 이양 대강하소. 들깨야 엔간하마 잘 올라오지요.’
-예, 그러지요 뭐.

공연히 마음이 선듯해서 호미 다시 쥔 김에 잔돌 몇 개 더 골라내고 있자니 그 아주머니 다라이에 뭔 푸성귀 담아 이고 어느새 둑길 따라 돌아 내려오는데 그 새 한 숨 돌렸는지 목소리가 조금 낫네.

-‘낳기 뿌리 노소. 자아 우에는 하마 모종했는데 성새임은 쪼매 늦었니더. 드문 거 보담사 솎아내는 기 낫제. 어린 것들은 솎아서 무치 묵으마 돼요. 하마 곱기 잘 했니더.’



오며 가며 툭툭 던지고 간 말에 나 혼자 괜히 뒤숭숭해져서 호미 쥔 채로 멍청하게 아주머니 뒷모습만 좇다가 나도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중얼거려봤다.

.....
그러게 사람이란 짐승은 꼭 나이 들면서야 게우시 눈이 띄고 귀가 틔는지.

하기사 그 중에 아주 늙어서도 지 발 끄트머리만 내려다보고 자슥들 속 썩이는 밴댕이들도 없지는 않더라마는.
희거나 껌거나 간에 아버지 세상 뜨시고 난 담에야 도 닦은 듯 흰소리 주절거리는 나도 똑같지 뭘.
아지매는 괜히 오다가다 엉뚱한 소리 해쌓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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