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꽤 내린다. 오전 내내 지붕에 꽂히는 빗소리.
제법 소란스러운 소리인데도 빗소리는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궁금하지 않다. 이제는 대부분의 현상들에 대한 호기심이 다 그렇다.

욕실 창문을 열고 내려다 보니 빗줄기가 꽤 제법이다.
우리 집에서 빗소리가 제일 잘 들리는 곳은 욕실이다.

젖은 남새밭이 우중충해 보여서 몇 장 찍어 본다. 며칠만에 카메라를 들어본다.
매사에 무기력증이 스며드는 모양이다.
무기력해지건 무감각해지건 이제는 별로 걱정도 안된다.

 
컴퓨터에 사진을 걸어서 멍하니 보다가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나섰지만 다 늦은 시각이라 멀리도 못 간다. 앉은뱅이같이 이웃동네만 기웃거린다. 
그 사이 비는 그치고 풍경이 남았다. 

화진리 들어가는 길가에 보리를 심어 두었다. 이제는 보리도 관상용인지.
어쨌든 아직 익지 않은 풋보리가 남아있다. 참 오랜만에 보는 풋보리. 청보리. 고등학교때 아카데미 문집 이름이 풋보리였던가 싶다.
몇 몇 얼굴들이 생각난다. 


화진리를 지나서 월포를 돌아 나가는 길 옆 논두렁에 백로가 앉았다.
해 마다 이 때쯤이면 물 담은 논에 산천이 거꾸로 처박힌다. 
렌즈를 바꾸고 행여나 날아 갈까 조심조심 가까이 다가 가도 꼼짝을 안한다.
하긴 누가 먹을 게 없어서 백로를 잡아 먹지는 않을 것이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제는 얼추 서로 길들여지나보다. 


습기 머금은 바람에 홀려서 어슬렁거리다보니 그 새 해가 기우나보다.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나오길 잘했다. 매일 비나 내렸으면 좋겠다. 지붕만 새지 않는다면.
그러게 비 새는 지붕은 언제 고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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