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현관을 나서려던 애 엄마가 눈이 빨개져서 뭔 카드를 하나 들고 왔다.
아직 자고 있는 꼬맹이가 깰세라 얼른 보고 제자리에 둬야한다고 수선이다.
 


뭘, 꼬맹이가 스승의 날이라고 선생님에게 쓴 편지구만 뭘 그래.
이 사람도 나이가 들어가나보다. 엊그제는 큰 놈 편지를 보고 울었다더니.

보니, 작년 가을 쯤 폐원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간 피아노 선생님에게 쓴 편지다.
.........
생각보다 많이 자랐구나.
맨날 개구짓이나 하고 철딱서니 없는 놈이라 여겼는데 .

어제 밤에 선생님들한테 줄 선물 만든다고 법석을 떨더니 꽤 예쁘게 만들어놨다.
아마도 그걸 보고 애 엄마가 뭔가 하고 뒤져봤나보다.
그러게 애들 편지나 수첩은 왜 뒤져보고 그러냔 말이지.
......
그래서 또 이런 편지도 보고 가슴팍이 설렁거릴 수도 있지만 말이지....


그 무지개 학원 선생님도 우리집 꼬맹이에게 유난히 각별하긴 했었지만
꼬맹이도 지가 여섯 살 들면서부터였으니 꼬박 삼년 반을 내리 다녔던 피아노 학원이라 정이 많이 들었었나 보다.
헤어진 이후로 별로 말이 없길래 그저 그런가보다 생각에 두질 않았었는데
언제 한 번 짬 내서 그 선생님 보러 다녀와야 할 것 같다.    

.......
그래서 기특하고 대견하냐고?
당연하지.
당연하지만.
그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야.
큰 놈이 자랄 때도 똑 같이 느꼈던 거지만, 애들이 자라고 점점 생각이 커지고,
그래서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나 생각에 몇 번 감동 받고 하다보면
반드시 그 기쁨의 그늘 아래로 슬그머니 자리 잡는 아쉬움. 그 사이에 아이들은 품을 떠나고 그리고 곧 무릎이 허전해진다는 것.

어느 노래 가사가 그랬었지.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라고.
하지만 반드시 괴롭고 힘들어서만 삶의 무게를 느끼는 건 아니야.
기쁨도, 오늘 아침과 같은 생경한 놀라움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생각과 깨달음, 거기에서 느끼는 세월의 무게는 정말.

뭐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지.
머리 끝이 닳고 닳도록 재고 싸우고 궁리하면서 살아 온 날들이 그리 헛되지는 않았더라는 그런 거.
그럭저럭 어디 내 놔도 그리 부끄럽지 않은 놈들로 만들어놨다는 뿌듯함 같은 거.
이것 봐.
그러길래 술은 왜 끊는다고 그러고 말이야.
이런 날은 그저 부부가 마주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혼곤히 취해보는 것도 참 좋은 일이지 않으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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