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호프만의 뱃노래

사장님,(사장님이 아니라는데 자꾸 사장님이라고)
게 좀 사 가라는 아주머니들의 아우성을 꿋꿋이 물리치고 찍은 컷.
사진을 찍는 내 바로 뒤로 두 사람의 아주머니가 외발 리어카에 대게를 한 짐 싣고 서 있었지만.

항구 쪽 난전에서 맞은편의 등대를 보고.
이번에는 나와 바로 앞의 배 사이에 활어 파는 아지매가 나를 빤히 올려다 보면서 호객...

내항에서 보이는 바깥 바다.
마스트가 높직한 배는 아마도 돈 받고 태워 준다던 요트형 유람선이라는 그 배.
큰 놈이 오면 가벼운 나들이 삼아서 저 배 한 번 타 볼까?

닻.
만화나 영화에서 보던 마도로스표 닻 모양이 아니라 무슨 호미처럼 생긴 닻.

하지만 나는 배를 타는 것이 무섭다.
단단하지 못한 바닥에 떠 있는 것도 그렇고
얼핏 뱃전 너머로 깜깜한 바다 속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그 온갖 놈의 무시무시한 상상 때문에.
사는 곳이 바다 근처라 자주 보기는 하지만
배라는 물상 자체도 그렇거니와 
배가 바다에서 닻을 내리고 뭘 한다는 것이 나는 도무지 요령이 잡히질 않는다.
배는 아마도 내게는 풍경일 뿐 일생 낯 선 대상.

저녁하늘


산보 가자고 조르는 어린놈에게 못이겨 억지로 따라 나섰다가 얻은 그림.
생각보다는 너무 밝게 나왔지만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걸어 두기로 한다.

겉 옷 없이 나서기는 아직은 좀 쌀쌀한 4월의 저녁하늘.

어제는 큰 아이를 데리러 갔다 왔습니다.
가던 중에 시간이 좀 남아서 바닷가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이 사진을 찍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내 또래거나 나보다 조금 어리거나 한 정도의 사나이가 하나 다가왔습니다.

‘뭐 하시는 분인데 사진을 찍으십니까?’

힐끗 쳐다보고 그냥 무시를 해버렸습니다.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잘 알고, 많이 싫어합니다.
긴한 용건도 없으면서 은근히 턱을 치켜 들고 사람을 간보는 타입.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이 정말 궁금해서 묻는다면 나도 웃는 얼굴로 답할 줄 압니다.
카메라를 들고 변두리 동네를 어슬렁거리다보면

‘거, 뭐 좋은 게 있어서 그리 찍습니까.’

하고 물어오는 사람들은 더러 있습니다. 그럼 나도 좋은 얼굴로 답 해 드립니다.

‘지나가다가 보기 좋아서 그럽니다.’ 하고.

하지만 대뜸 목에 풀 세우고 접근하면 그냥 무시해버립니다.
십 중 팔구 말도 안 되는 지분 내세우면서 참견해 댈 허세들이 분명하니까.
제 딴에는 턱 치켜들고 시작했는데
뭐라거나 말거나 씹어버렸더니 기분이 좀 상했던 모양입니다.

‘사진을 왜 찍으시냐고요.’
‘왜 그러시는지부터 말씀 하셔야지?’

좀 귀찮은 생각도 들고 이런 상황이 지겨워서 좀 비틀어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몇 장을 더 찍고 확인을 한 후에 돌아서서 차에 오르는데 이 친구 수첩 꺼내들고 내 차 번호를 적는 시늉을 합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픽 웃고는 물었습니다.

‘거 차 번호는 왜 적고 그러슈?’
‘내가 동네 청년회장이고 새마을 지도잔데 동네에 수상한 사람이 보이거나 하면 감시하고 신고할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고, 대단한 분이셨구만. 거, 잘 보고 또박또박 적어 노세요. 숫자 틀릴라.’

빈정대는 기색이 느껴졌는지 얼굴이 좀 불편해 보입니다.
이런 상대에게 더 이상
이야기 할 건덕지도 없고 
길게 끌어서 나도 유쾌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그럼 계속 욕보세요.’ 한 마디 던져 주고 출발 해버렸습니다.
가면서 백미러로 들여다보니,
이 완장맨, 멍 하니 선 채로 내 차 꽁무니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못됐습니까?
뭐, 인정합니다. 내 성질머리가 솜털같이 보드라운 편은 아니니까.
하지만 아직도 저런 완장들이 목에 풀 세우고 다니는 꼴을 보면 용납이 잘 안됩니다.
생각보다 세상은 참 더디게 개명합니다. 아니, 거꾸로 가는 건지?
이래저래 많이 갑갑합니다.
 

이건 완장 없는 동네에서 찍었습니다.
갑갑한 이야기를 꺼낸 것, 품앗이 용입니다. 부디 더 갑갑해지지는 않으시기를.

 

 

 

 




악보를 보고 익히고 되새겨서 힘써 빚어낸다고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지. 아니고 말고.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울컥하고 쏟아져버리는 이것이다. 내가 미치는 것은.
연주가 어떻고 곡의 해석이 어떻고를 따지기 전에. 그보다 훨씬 더 이전에. 그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아니, 그것이 존재하기도 전에.
무심한 척 슬쩍 당겼다가 놓아버리는 완급은 아주 넋이 달아나고 .

그의 음악은 음악 이전의 것이다. 그의 음악은...
모든 연주자를 망라해서 음악의 원형질에 가장 근접해 있는 사람.
인간에게 왜 음악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사람.

조금만 더 나은 음질로,
스테레오는 바라지도 않지만,
조금만 양호한 환경에서 녹음한 음원으로 남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나도 동의한다. 백 번 천 번이고 동의를 하지만
그나마 그의 음악이 이런 정도로나마 우리 곁에 남아있어 준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아아. 카잘스.
나는 그가 느린 템포만 잡아도 무턱대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바하의 아다지오.
바하가 듣는다면 다짜고짜 덥석 껴안아버릴 것 같은 카잘스의 바하. 
그래서 이번만큼은 바하가 아닌 카잘스의 아다지오로.


/하동 가는 경전선 철길. 오래 된 기억.

친구야.

지난번 고향에서 만났을 때 내게 한 약속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그 약속을 니가 지킬 의사가 있다면, 그 약속은 파기 되어야 하고,

그 기념으로 술잔을 한 번 더 기울여도 좋아.

, 같이 시작해서 같이 망가진다는 조건으로.


하지만 내게 한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한다 하더라도 그 약속을 지킬 의사가 없다면 넌 개뿔이야.

, 사십년 지기의 취중 약속에 그리 야박하게 구냐고,

도대체 취중 인품이 그것 밖에 안되냐고 입을 모아 비난하더라도 나는 이제 너랑 술은 안 마셔.

우리가 이 나이 되어 내가 널더러 술 먹어라 말아라 참견할 일은 아니니

각자 알아서 각자의 인품은 각자 챙기기로 하고.


그 약속을 기억하든 못하든, 지키든 안지키든, 그 약속 자체는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다만 늬가 그런 제안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지.


아하, 그렇다고 해서 널 안보겠다는 말은 아니야. 달리 기분이 상했다거나 속이 꼬인 것은 아니니까.

나이 들어 갈 수록 더 자주 봐야지. 넌 멋진 놈이고 오래 묵은 좋은 친구니까.

다만 이제는 그 오래된 술을 같이 마시지 않아야겠다는 것 뿐이야.

오래 묵은 친구야. 그러니 이제는 만나거든 술은 같이 먹지 말자.

술을 같이 안마신다면 너는 내게 기억도 잘 나지 않을 그런 제안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며칠동안 머리를 기우뚱거리면서 생각을 되작거리지 않아도 좋을 것이거든.

그럼으로 해서 나는 너를 볼 때마다 마음 부대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이고.

자꾸 뜬금없이 생각이 떠오르는 바람에 여태 생각을 이리저리 뒤집다가 올려 놓기로 했네.

내 딴에는 오래 생각했다는 뜻이지.


무슨 약속인지 생각이 안난다면 너무 골 싸매지 마.

그냥 놔두면 세월에 씻겨서 그대로 흘러가버릴 정도의 일이니까.

그리고 이건 니가 달라져서라기보다는 내가 변한 셈이니까.

이제는 속병도 나고, 뒷감당도 잘 안되고

꼭 술잔을 들자하면 그나마 즐거운 시간에 기대어 몇 잔 마실 뿐인데

몸이건 마음이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마음을 접어 놓고 술잔을 들기 싫다는 말이지.

 

안이든 밖이든 참고 견디는 건 싫거든. 술잔을 들면서까지 그래야 한다는 건 더 싫어.

그건 정말 지긋지긋 해.

여태 살아오면서 나도 꽤 지쳐서 그런가 봐. 이제는 좀 쉬고싶다는 거야.

요새 말로 정말 쿨하게 말이지.


아하, 그래도 맛있는 밥집이 있다면 같이 밥 먹고 떠드는 건 언제든지 대 환영이야.

, 물론 밥은 내가 사야지. 요 다음번 밥은 내가 예약이야.

다음에 만나거든 어디든 좋은 곳으로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자.

안녕.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          //狗商 윤영모 씀. 제목 없음.



비 오는 날은 비만 바라보고 비만 생각한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 그럼 넌 비만 생각 해. 

나는 비가 오면 비만 빼고 온갖 것이 다 생각 나. 
오늘은 雨요일이야.
술을 멀리 하면 술이 나를 찾아 헤멜지도 몰라. 나 찾지 마.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         


狗商이 사람 잡네.




4월도 절반이 꺾였다.
이 세월을 잊을까봐 하루하루 낙인을 찍듯이 살지만  
때로는 그냥 정신을 놓아버리고싶기도 하다. 우울해지기 싫어서. 하지만 어느게 나을 지는 나도 모르겠다.

마당의 민들레


저 솜털만 털어내면 저 놈들은 할 일을 다 끝내는구나. 좋겠다.

이렇게 겨운 봄날도 지나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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