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국도.


때로는 나도 저렇게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다. 과속으로.
거기가 어디인지 몰라도.


Pegao/Jos'e Feliciano





F35-105



난전. 
그것이 무슨 축제이든 꼭 있어야 하는 축제의 백미는 난전이다.

모든 축제는 사람이 모여서 득시글거리는 것이 목적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또한 거기에 모여 든 사람들은 
먹고 마셔야 한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으러 왔으니 그것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가져야 한다. 하지만....................

(천원짜리 야바위에 열중하는 우리집 꼬맹이. 저게 커서 뭐가 될까...)

그리고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해야 한다. 그 대상이 누구이든 괜찮단다. 부라보!!!


그래서 축제에는 난전이 있어야 하며

그 중에서도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 것은 쌀쌀한 날씨에 김 펄펄 오르는 오뎅과 번데기. 
(겨울 거리 축제에 오뎅이 빠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


그리고 온통 먹고 놀자판인 난전의 격을 한 끗 높여주는 멋쟁이들. 거리의 화가들.


그렇게 축제 구경은 끝났다.
두 번의 야바위와 두 봉지의 번데기와 낯 간지러운 외설로 발라 놓은 싸구려 불쇼와.
용돈과 하고 싶은 야바위 사이를 줄타기 하던 꼬맹이는 두 번을 울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끓었다 식었다 하던 애비는 지치고...
누가 와서 무슨 노래를 하는지 졸리는 어린 놈을 데리고 공연장을 지나치다가 지금도 지겨운 책 붙들고 기숙사에서 애쓰고 있을 큰 아이 생각에 조금 아쉬워 하다가 조금은 우울해지고
그리고 막 떠나려던 순간에 머리 꼭대기 바로 위에서 터지던 불꽃 놀이의 어마어마한 폭음으로 우리집 꼬맹이는 또 한 번 기겁을 해서 울고.... 그렇게 축제 구경은 끝났다.
게딱지 모양으로 자른 스티로폼 냉장고 자석 하나와 풍선 야바위로 딴 싸구려 하트 쿠션 하나를 남기고.

..

겉보기에는 매우 성공적으로.   

  


K135





/80년대 중반 쯤 한참 음악에 불붙기 시작했던 어떤 후배 녀석. 어느 날 박하우스의 베토벤 소나타 판때기를 들고 와서는 인상 팍 쓰면서 묻기를,
'형님! 도대체 버투소(virtuoso)가 누구요?'
(아시다시피, virtuoso는 ‘거장적’이라는 뜻입니다. 되는대로 비르투오조라고 읽기는 합니다만. 하기야 어지간한 판 자켓에는 거장적인 연주라는 뜻으로 너도나도 virtuoso 라고 써 놓긴 했었습니다. 피아노도 치고 바이올린도 잘 키고 못하는 것 없던 그 놈의 버투소....)


/처자들 앞에서 있어 보이는 척 하는 데 있어서 고전음악이 꽤 유용한 도구임을 간파한 어떤 만화방 쥔. 뭔가 이야기 끝에,
'나도 어제 드보르(Dvor.....作?) 판 하나 샀는데.'
(Dvořak.... 뭐, 처음 듣는 사람들은 헷갈리기 좋을만한 이름입니다. 드볼작에게 가서 왜 이름을 그딴 식으로 지었냐고 멱살 잡고 따져 볼까요?)


/어느 소 연주회에서 어떤 기타리스트 왈,
'아노니모스(anonymous)의 로망스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anonymous. 작자 미상, 작자 불명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그날 객석에서는 여기저기 소소한 웃음이 났었습니다만, 뭐 어때요? 연주만 잘 하면 됐지.)


/오래 전 어느 다방에서 어떤 아저씨가 바하 관현악 조곡 중에서 G선상의 아리아를 켜달라는데 판때기 뒤적거리던 디제이 란 놈은 잘난 체 한답시고,
'아저씨. 지 선상의 아리아는 바이올린 곡이라우. 뜬금없이 관현악은 무슨.‘
(G선상의 아리아는 바하 관현악 조곡 3번에 나오는 아리아를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편곡 한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 놈의 디제이는 바로 납니다. 반풍수.... 좀 들었답시고 시건방이 늘었었지요. 자다가 벌떡 일어나 식은땀이 날 일입니다. 아주 망신살이 뻗쳤습니다.)


/팔십 년대 중반, 모 음대 앞에서 찻집 하고 있을 때 웬 음대생 하나.
'아저씨, 베토벤 영원 교향곡 좀 부탁합니다. 듣고 리포트 써야 되는데.'
(베토벤에게는 ‘영원’이라는 부제가 붙은 교향곡이 없습니다. 교향곡 3번 ‘영웅’은 있습니다. 이 고집 센 친구, 그게 아니라고 말 해 줘도 영원이라고 우기길래 교향곡 전집을 꺼내 놓고 보여주며 혀를 찼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저 음대생이라면 이정도 상식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백수 시절 아지트로 삼고 죽치던 어느 지하 찻집에 여대생들 우르르 끌고 와서 한참 장광설 풀던 어떤 음대 교수.
'쇼팽의 첼로 협주곡을 켜 주시오!'
(쇼팽은 첼로 협주곡이 없습니다. 첼로 소나타는 있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차마 말하기가 민망해서 지금은 그 음반이 없노라고 얼버무리고 넘어 갔습니다만, 그 잘 생긴 음대 교수님, 언제 쯤 실수 했다는 걸 눈치 채셨을라는지.)



우리 시대에 클래식 음악이 가졌던 좀 묘한 스탠스가 던져 준 가벼운 웃음들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당사자가 되고 보면 등허리에 진땀이 빠질 순간들이었지요. 그저 콩이나 팥이나 모르는 건 모른다고 자복 하고 납작 엎드리는 게 후환을 없애는 길입니다.



'아빠! 이것 봐요!'
아침에 꼬맹이가 학교 간다고 나서다가 호들갑이다.

우리집 마당의 앵두 꽃이다.
어디서 보고 왔는지 우리집도 앵두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졸라대서
작년 봄에 묘목을 사다가 저랑 같이 심었었다.
작년 한 해 꽃도 없고 열매도 없이 되다 만 이파리만 몇 개 달고 있더니 올 해에는 드디어 꽃이 피나보다.
꼬맹이 녀석 어제까지도 모르고 있다가 억세게 반가운 모양이다. 하긴 나도 몰랐다. 
 

봄 꽃들은 기다리지 않아도 밤 사이에 언뜻 찾아 온다.
그래서 좋으냐고?

꽃이야 누가 싫어 하나. 꽃 피고 새 우는 사이에 세월을 슬쩍 속여 넘기는 것이 괘씸한 거지.
한 살 더 먹은 걸 실감나게 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저놈의 봄 꽃이거든.
또 한 겨울 잘 넘기셨습니다. 올 한 해도 무사히....

그런데 앵두꽃이 흰색인가? 앵두 꽃은 막연히 빨간색일거라고 생각했었나보다. 

나무며 꽃이며 아는 것이 있어야지. 주는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가보다 하고 그만이다.
그래. 긔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앵두 나무가 아니라서 앵두가 안열리면 꽃 만 보고 앵두는 한 사발 사 먹으면 되지.

봄이 오긴 왔나보다. 꽃 볼 일이 많아지는 걸 보니. 
우리집 꼬맹이,
작년 한 해 틈틈이 우리집은 앵두 안열리냐고 조르더니 올해는 혹시나 몇 개 맛 볼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쩐지 노래가 좀 안어울리는 것 같지만.... @@...

16-45 DA


자동차 검사 받으러 갔던 정비공장 주변에서.

나는 벚꽃이나 매화같은 꽃들을 보면 공연히 답답하다.
이른 봄부터 잎이 피기 전에 서둘러 피는 꽃들은 다 그런 편이다.
목련이나 개나리도 그렇고 진달래도 그렇고..


성급하게 꽃부터 피웠다가 질 때는 아주 처참할 정도로 무너지니 하는 말이다.
초록색 새잎들이 돋을 무렵이면 꽃이 떨어지고 짓무르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게 공연히 보기가 안쓰럽다.
이제 저 놈들은 가을 들어 잎이 지도록 꽃은 피우지 못할 것이다. 꽃이 없으면 잎으로 산다지만, 글쎄.  
그렇게 어렵게 필려거든 질 때는 왜 또 그렇게 허무하게 짓물러 버리는지. 기왕에 그리 서둘러 필려거든 잎이 피어서 웬만큼 무성해질 때까지라도 기다리든지. 그 때쯤이면 지더라도 그리 허무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벚꽃이 맞다. 벛꽃이 아니다. 이제는 철자법도 오락가락 하는구나.
 




A28-135



어제 OCN을 켰더니 '해바라기'를 한다는 자막이 떠 있었다.
잠을 설친 채로 외출을 했다가 돌아온 참이라 많이 피곤하기도 했지만, 일단 보기로 했다.
까닭없이 간혹 생각이 나던 영화였다.

그런데, 이런, 다른 해바라기였다.
이름이 얼른 생각 나지 않는데, 우리집 큰 놈이 좋아한다던 그 배우였다. 드라마 식객의 성찬이 역을 맡았던.
맥이 빠져서 삼사분 정도 잠깐 보다가 그냥 꺼버렸다.




해바라기. 꽤 오래 된 영화.
소피아 로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늘 그 음악이 생각나고 간혹 다시 보고싶어지기도 하는 영화다. 
전쟁때문에 꼬일대로 꼬인 인생과 사랑에 대한 회한, 체념, 뭐 그런 더러 볼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그 놈의 막막하던 우크라이나의 평원에 넘실대던 해바라기 밭의 영상과 음악때문에.

 



해바라기 꽃은 등신이다. 
별로 멋지거나 그다지 슬퍼보이지도 않으면서 공연히 사람 쓸쓸하게 만드는.

영화 스토리는 다 생각나지는 않는다.
그냥 보고나면 그날 하루는 족히 울적하게 만들만큼 여운이 오래 남던 영화였다는 기억만.
그 언젠가는 OCN에서 해바라기를 돌려 주리라 믿고 오늘은 음악만 듣기로 한다. 해바라기.
눈 감고 그 억장 무너지게 광활하던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 평원을 생각하면서. 선플라워. 해 꽃이란다.
해바라기.




  


차를 갖고 다니기에는 고속도로 보다 국도가 낫다.
국도 보다 좀 더 재미 있는 길이 지방도나 도로 번호도 제대로 붙지 않은 샛길들.
오가는 길에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나는 혼자서 엉뚱한 곳으로 잘 새는 편이다. 
내가 끌고 다니는 고물 밴 뒤에는 자전거도 실려 있고 간단한 취사도구도 있으니 맘만 먹으면 어느 골짜기를 가든 한 나절 지내는 건 별 걱정 없지. 혼자 있는 걸 싫어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별로 폼 나지 않는 좀 적적한 취미생활(?)이기도 하고.
 

갈매기들이 미칠듯이 날아 오르던 포항 송라면 방석리 바닷가 

방어리 선착장. 배를 타는 건 싫어해도 보는 건 좋아한다.

영덕 원척 앞바다에서 접선(?) 중인 배 두 척. 너무 멀어서 잘라서 펼쳤더니 윤곽이 조금 뭉개졌다. 200을 들고 나갈 걸.

포항 오도리 방파제. 눈이 쨍 하도록 선명하던 불가사리들 

영덕 삼사리에서 본 먼 바다. 역시 배는 타는 것 보다 보는 것이 훨씬 좋다.  

바다는 늘 가까이 있지만 마음 먹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늘 해 뜨는 바다만 보면서 살다보니 해 지는 바다도 보고싶다. 그게 꼭 바다가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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