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고전음악이라는 것을 들어 본 것은 중학교 다닐 무렵이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흔히 보기는 어려웠던, 그리고 우리 형편에는 좀 과분했던 장전축이라는 것이 집에 있기는 했지만 그 전축 아래 칸에 꽂혀 있던 음반이라야 아마도 아버지께서 사 놓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백아가씨, 돌아가는 삼각지, 또, 무슨 아리조나 카우보이 따위의 판들만 몇 장 뒹굴어 다닐 뿐, 음악은 무슨 개뿔을 음악, 나도 덩달아 양떼를 몰고 가는 목장의 아가씨나 시건방지게 따라 해 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장전축/ 네 발 달린 가구에 가까운 일체형 전축.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은 아마도 거의 골동품으로 분류해야 할 겁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쯤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장전축 아래에 놓인 아주 낯선 판때기를 한 참 들여다 봅니다.
판 앞쪽은 누런 간판 같은 곳에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개발새발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시꺼먼 배경에 어떤 사람이 허연 실루엣만 드러낸 채로 팔을 벌리고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판의 뒤 쪽에는 낯설지 않은 사람의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베토벤의 초상화였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이라고는 그 때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지만 그 당시에 무슨 영문인지 그 빨간 마후라를 두르고 겁나게 노려보고 있는 쑤세 머리 베토벤의 근엄한 초상화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기 저기 많이도 걸려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 국민학교 앞 동네 이발소에도 하나 걸려 있었지요.)


쉽게 말해서 뭔가 있어 보이는 껍데기에 끌렸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뭐, 그 때나 지금이나 이론적인 배경에는 초연한 내 습성대로 뭐가 어찌 되었든 말든 그 뭔가 있어 보이는 판때기를 꺼내서 무작정 호마이카가 번쩍이는 장전축에 판을 올려놓고 들어 보았는데, 이게 뭐가 상당히 시끄럽고 야단스럽기는 한데 또 전혀 그렇지만은 않은, 좀 묘한 기분을 들게 하는, 말하자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 본 서양 고전음악이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묘하게 가슴팍을 설렁거리게 하는 느낌도 없지 않아서 그 생면부지의 소리를 미련스럽게 꽤나 오래 듣고 앉아 있었습니다.

나중에 확인된 바, 그 판은 그 당시에 열애에 빠져 있던 둘째 누나가 연인과 주고받은 선물 중의 하나였는데 그게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이었습니다. 당연히 흔해 빠진 카라얀의 연주였고.
이렇게 어설프게 첫 음악 세례를 땡판(내가 불법 해적 복사판에 부여한 호칭. 매우 멋진 호칭이라고 혼자 우겨 봅니다. 음.)으로부터 받은 나는 그 뒤로도 간간히 연인의 선물에 현혹 된 둘째 누나에게서 반 강제적으로 음악 고문을 당해야 했고, 사실 당시에는 별 대단한 감흥을 받은 바도 없던 나는 겨우 곡 이름 몇 개를 외워서는 그 당시에 그야말로 문화의 불모지인 지방남도의 끄트머리에서 삭막하게 서식하던 친구들에게 은근히 잘난 체를 하는 유용한 도구 정도로 써 먹고 있었습니다.

그럭저럭 세월이 가고 솜털만 있던 입 언저리에 슬금슬금 꺼먼 털이 듬성듬성 솟아 날 무렵에는 그래도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제법 귀에 익은 멜로디 들은 조금씩 흥얼거리게 쯤 되었는데 게다가 주변의 주변머리 없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같잖게도 '클래식 도사'정도로 인식되는 불미스러운 일도 생겼지요. 그 시대 지방 소도시의 문화적 황폐함에 축복 있으라!
그 때만해도 교향곡이나 협주곡 같은 큰 곡들을 끝까지 듣는다는 것은 무제한의 인내심과 상당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과중한 정신노동 이었으니 그 클래식 도사라는 칭호는 모자라는 내실을 무표정으로 감추기에 능했던 나의 포커페이스에 기인한 99프로 야바위 수준으로 생각하면 딱 맞을 겁니다.

그 사이, 우리 집의 호마이카 장전축은 아마도 폐기 처분 되었는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침 지방 방송국 중계소에 다니고 있던 세 째 누나가 그 중계소의 기술자가 얼렁뚱땅 꾸민 리시버 앰프와 막통 스피커를 어떻게 구해 왔는데 거기다가 플래터가 손바닥만 한 플레이어도 하나 따라 왔습니다.
거 참, 다리 넷 달린 일체형 장전축만 보던 눈에는 그게 참 묘하게 보였습니다. 어떻게 전축을 갈가리 찢어서 만들어 놨느냐- 이거지요.
그래도 소리 하나는 꽤 그럴 듯 했습니다. 곡에 따라서는 제법 스테레오 흉내를 내기도 했으니까. 말하자면 장족의 업그레이드가 된 셈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황당한 조합이었습니다.

앰프- 묻지마 표 자작 리시버.
플레이어- 8인치 플래터가 달린 동네 전파사 표.
- 플래터가 작은 접시만 해서 엘피 판을 올려놓으면 절반은 허공에 뜹니다.
톤암- 영구 고정식 그냥 톤암.
카드리지-압전형(싯가 100원-200원. 양면 사용가능하므로 매우 경제적임.)
스피커-출처를 알 수 없는 국산 6인치 풀레인지 막통 나발
(이것은 유닛이 풀레인지 용이라는 것이 아니고 네트워크니 뭐니 아무것도 없이 달랑 양철 프레임의 유닛 하나만 달려 있었습니다. 아, 그러고비니 도니 모니 따질 거 없이 풀레인지가 맞기는 맞습니다.)

특히 세라믹 압전형 바늘은 그 중 압권이어서 새 바늘을 하나 갈아서 픽업(헤드 셀 뭉치를 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을 올려놓으면 바늘 끝이 레코드판을 '치익-'하고 파먹는데 바늘 끝에 비닐 레코드의 살점이 깎여서 도르르 말려 올라오기도 하는 기막힌 물건이었습니다. 아주 기겁을 했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버려 먹은 판들이 상당수였는데 그나마 그거라도 쓰다가 바늘 끝이 닳아서 소리가 흐리멍덩해 지면 기발한 생각이랍시고 헤드 셀 위에 십 원짜리 동전 몇 개를 테이프에 붙여서 잔뜩 눌러서 듣고는 했으니, 그게, 레코드판들이 성하게 남아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매우 폭력적인 해결 방법이었다고 생각하며 지금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버려 먹은 땡판들의 일부는 아직도 내 손에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현역으로 뛸 수는 없는 고령자에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부상병들이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한정 없이 랙 한 구석에 꽂힌 채로 '사랑'만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영영 턴테이블에 얹힐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그걸 어떻게 버리겠습니까.

이렇게 음악 소스의 대부분을 땡판으로 충당하면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음질이니 뭐니 고음이 어떻고 저음이 어쩌구 스테이지니 뎁스며 해상도가 어땠냐고요? 
그런 어려운 용어를 구사할 수준이 아닙니다. 고만 넘어가지요.

그로부터 몇 해 지나지 않아서 레코드점에는 보기에도 근사한 성음, 지구, 오아시스,등 국내 굴지의 레코드 회사에서 발매하기 시작한 번쩍번쩍 라이센스 음반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주머니가 빈약한 학생의 신분으로서는 아주 그림의 떡인데다가, 또 라이센스 음반과 같은 곡을 그대로 담은 카세트테이프들도 꽤 많이 보였지만 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장치조차 없었으니 그건 더더욱 그럴 밖에요. 그 당시 카세트 데크들은 엘피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귀했고 고가의 장비였습니다.

대학을 갔습니다.
마침 음악 감상 서클이 있길래 뭐 더 이상 볼 게 있어야지요. 앞뒤 안 가리고 덜렁 가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입을 하고보니 명색이 대학의 서클이라는 것이 여건이 열악하기가 차라리 내가 가진 양철 오디오 찜쪄먹을 수준입니다.
서클룸은 언감생심, 명색이 음악 감상 서클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라는 것이 고작 라이센스 음반 기십장에 땡판이 백여 장. 감상방법은 학교 잔디밭에서 각자 가장 편한 자세로 널부러져서 LP 크기보다 더 작은 휴대용 야전(야외전축) 으로 듣되 될 수 있는 한 각자 가장 심오한 표정으로 듣기.

물론 상당수의 대학 서클이 그러했듯 2차(한 잔!)에 눈독을 들이고 참가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지만 그래도 그 열기 하나만큼은 지금 생각해도 참 순수하고 대단 했었습니다. 지금은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 그립고도 징그러운 화상들.
 

(/야전: 아마 이 물건은 지금 젊으신 분들은 아예 해독이 안 될 것으로 압니다. 물론 그 당시 음악 꽤나 좋아했던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정말 눈물 나는 추억의 오디오이기는 하지만.)

이 야외 전축이라는 것이 AC 전원이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아심하기는 한데 뭐 있거나 말거나 별 상관이 없었던 것이 꽂을 데가 있어야 말이지요. 하여간에 이 물건에다가 건전지를 여러 개 넣어서 '주간(週間)감상회'를 하는데 이게 최신 기술의 초절전형 하이테크가 아니다보니 얼마 가지 않아서 곧 탕진이 되고야 맙니다. 좀 오래 들을라치면 '꽝'하고 두들겨야 할 팀파니가 '구우우웅'하고 슬슬 늘어지기 시작한다는 말이지요.절망적으로 늘어져 버린 카세트테이프의 소리를 연상하시면 거의 비슷합니다.

그나마 스피커는 판때기 얹으면 그 밑으로 숨어버리는 몸체에 붙은 간장 종지만 한 것 하나가 전부였으니, 하이파이에 스테레오? 그거 꿈도 꾸지 말아야지요.
꿈도 꾸지 않았으니까 불만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바람 부는 저녁나절의 캠퍼스 잔디밭에 혹은 앉고 혹은 드러누워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때로는 감흥을 못 이겨 그 산만하게 흩어지던 소리들을 지휘하던, 지금도 간혹 생각이 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어쩌면 학과보다도 더 열심히 드나들었을지도 모를 그 서클은 일 년에 한 두 번씩 시내의 다방이나 예식장을 빌려서 정기 음악 감상회를 하고 적자건 흑자건 간에 뒤풀이도 거나하게 하곤 했었는데 그놈의 스폰서 구하느라 이뿐 여학생들 앞세워서 시내 상가 일대를 누비던 추억도 지금 생각하니 참 아릿하네요.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런 시대착오적인 서클은 아마도 이전자전에 고려장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손만 뻗으면 지천에 음반이고 오디온데 누가 그런 곰팡내 나는 서클을 들어가겠냐는 말입니다. 박물관에나 보관을 하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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