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그제 동네 가게에 뭐 사러 갔더니 쥔장 아지매 왈,

‘서애임요. 차 한잔 하실라능교?’
-잌? 사나이도 없는데 나랑 둘이서?


접때도 몇 번 차 한잔 하자는 걸 매번 바뿌다, 안한다, 그랬더니
아따, 누가 잡아묵나. 안잡아묵으께 커피나 한잔 하고 가소...
눈을 흘기면서 사람 무시하냐 어쩌구 그러길래
아이고 참, 차 한잔 거절하다가 별 소리를 다 듣는구나,
콧구녕만한 동네라 입소문이 무섭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만한 일로 사람 무시할(?)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그 집 문턱에 궁디만 걸치고 앉아서 잽싸게 커피 한 잔 마시고 왔구만
오늘도 뭐 사러갔더니 또 그러네.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늘은 붙잽히면 진짜로 잡아먹힐 거 같애서 몹시 바쁜 척하고 내뺐지요마는.
거 참, 부부지간에 피차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오고가는 길손도 아닌데 대체 왜 그래.
거 은근히 부담스럽구만.


2.
우리 동네 농민후계자 하나는 나만 보면 눈을 내리깔고 외면을 해요.
지하고 싸운 일도 없고 지 밥그릇 뺏아먹은 적도 없는데 공연히 그래요.

내가 집짓고 처음 이사왔던 십 오륙년 전쯤 여름날,
마을 풀베기 안나왔다고 아침부터 술에 꼴은채로 우리집 마당에 서서
지깐에는 제법 텃세하느라고 꼬장 부리드만 그날 이후로 아직도 그래요.
아니, 간도 안맞는 꼬장은 지가 부렸지 내가 부렸나. 참 별꼴을 다 보네.

언젠가 한번은 쓰레기봉지를 내다놓는데, 지나가던 그 친구 하는 말이,
거기다 놓으면 어쩌냐, 들고양이가 물어뜯고 어질러지고... 주절주절...
그럼 저 다른 쓰레기봉지들은 다 뭐냐 그랬더니
다른 사람꺼는 이전부터 내놓던거라 괜찮다고... 이게 대체 뭔 말인지 막걸린지..
그럼 동네 쓰레기 여기 말고 어디다 내놓냐 물었더니 우물쭈물...

생트집에 기가 막히기도 하고
백주대낮에 얼굴 맞대고 어구쇠를 놓으면서 부끄런줄도 모르는 그 희안한 인품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가만 턱을 빼딱하게 해서 쳐다보노라니
차마 내 눈을 바로 못쳐다보고 엉거주춤 지나가며 꼭 한마디는 하고 갑디다.

'하여튼 쓰레기 거기다 내노면 안돼요.'

...... 이사온지 십오년이다. 아직도 텃세하냐? 등신같이.

인자는 나이도 마흔은 족히 넘어섰을껀데 뭐 나한테 섭섭한 거 있었나?
아니면 내가 뭐 혼자 먹고 니는 안주드냐?
애먼 사람한테 꼬장 부릴 정이 있거든 장개갈 생각이나 허든지.
한 세상 사노라면 참 별별 가엾은 영혼을 다 만나요.

3.
동네 끝집 사내가 고만 딴 여자랑 정분이 났다는데
조강지처는 집에다 내버려 두고 딴 동네다 살림 차렸다요.
맨날 트랙터로 논 갈아엎던 사람이 뜬금 없이 물차(활어차) 끌고 다니더라는 소문에
아따, 농사도 만만찮게 많은 사람이 그 농사 다 내뿔고 갈만치 이뿐 여잔가보다 그랬더니
더러 본 사람들 말로는 박색이라던데 뭘.

참 착하고 순한 그 아지매는 우리집 애 엄마하고도 그럭저럭 가까운 편이라 그런지
나도 어느정도는 아지매 쪽으로 기울기는 기울지만
아내는 때때로 사내가 못마땅해서 대놓고 혀를 차며 답답해하지요.

그래도 아서라 말아라.
국물도 한 방울 안 튕긴 주제에 뉘라서 부부간의 일을 알것이며
아니라도 남녀상열지사를 뉘가 왈가왈부하랴 설레발은 쳐놨습니다마는.

그래도 참 못할 짓인 것이.
쇠뿔 끄트머리같은 좁은 동네라 때때로 농삿일때매 더러 내 집앞을 지나기도 하는데
그 편에서도 될 수 있으면 날 외면하랴,
내 편에서도 그 내막을 모르는체 하랴, 참 거시기하고 그래요.


나 또한 내 딴에는 자칭, 시대의 로맨티스트라,
사람으로 살아가자면
때때로 스스로 거역할 수 없는 괴이한 열정에 이끌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요마는
코 앞에서 참 어찌할 수 없이 난처한 꼴을 실시간으로 두고 보자하니
그저 조강지처랑 같이 늙어가면서
머리 굵어가는 자식들하고 옥신각신 밀고 땡기고 그리 사는 것이 그래도 그 중 나은 삶인지
아니면 참 이제 오갈데 없이 저물어가는 신세에 불꽃같은 사랑을 만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세월 이 한 몸 재가 될 때까지 태워보는 것도 한번 해 볼만한 것인지
이건지 저건지 희거나 검거나 희거나 말거나....
오밤중에 비는 추적추적.. 괜히 가슴만 답답하고 쓸쓸한 것이 참 거시기하고 그래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