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에 없이 좀 먼길을 갔다가 돌아오려던 참인데 커피를 사러 들렀던 슈퍼 마켓 맞은 편의 이 집에 눈을 빼앗겼다. 시간에 쫓기고 있던 참이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왔지만 꼭 어릴 때 보았던 진주역 부근의 철도 관사처럼 생긴 집이었다.

커피를 사러 간 일행을 기다리면서 별 생각 없이 주변을 서성거리며 돌아보다가 저 집에 그만 꽂혀 버린 거다.  
누가 뭐라든 지붕의 각도와 집의 크기가 아주 환상적으로 맞아 떨어진 아름다운 집이었다. 처마 밑의 그늘도 그렇고 벽면의 여백 같은 것도 훌륭하다. (아무튼 매우 주관적이다. 음.) 이 오래 된 집이 묵은 기억을 살금살금 건드리는 것이 기분이 묘하다.  

이 집을 사서 수리 하려면 돈이 좀 들겠지?
뼁끼 칠도 다시 해야 할 것 같고 굴뚝도 바로 세우고 을씨년스럽게 처진 나뭇가지도 손 보고 도배 장판에 보일러는 괜찮은지....... 
얼마에 팔 건지 집 주인한테 물어 봤냐고요?
막 해가 지려던 참이라 얼마나 마음이 바빴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마음만 거기다 두고 그냥 돌아왔지.

까닭은 몰라도 내 속에는 공연히 저런 것들만 보면 가슴 한 구석이 폭삭 내려 앉는 어디서 긁힌 상채기인지 덜 아문 딱지인지 그런 것들이 몇 개 있다. 저런 집도 그렇고.
한 번도 살아보지도 못한 저런 집이 왜 오래된 기억 속에 갇혀 있는지.

저런 어정쩡한 시대의 집들은 낡아지면 아무 미련도 없이 허물어지겠지.
저런 집들은 왜 문화재로 지정을 받지 못하는지. 저런 집들도 분명히 시대의 소산이고 유산인데.
포항의 구룡포에 가면 일제 강점기의 일식 건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던데 혹시나 거기도 뼁기 칠 하고 굴뚝 세워서 살고 싶은 집들이 있는지 언제 한 번 가 볼 참이다. 
순천에는 육칠십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세트 장이 있다던데 가까이 지내는 벗이 있어 순천에도 더러 걸음을 하건만 도무지 짬을 내지를 못해서 몇 년간을 벼르기만 하고 있다. 거기도 언젠가는. 
아, 아직도 유소년기의 기억들에 휘둘리는 이 덜 떨어진....  


밀린 책 갖다 주러 도서관을 다녀 오기로 했습니다. 마감시간이 임박해서야 닿을 것 같아서 좀 과속.
휭 달리다보니 길까지 휘청,  삐딱하게 기울어졌습니다.
도서관에서 얼렁뚱땅 꼬맹이 책만 잔뜩 빌려서 김밥 천국에서 저녁 먹고 애 엄마랑 꼬맹이 미장원에다 두고 카메라 들고 나섰습니다.
카메라 바꿨으니 사랑 땜을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미장원에 가면 나는 무슨 파마 약냄새라는 그 냄새를 견디기 힘들어서 잘 안들어 갑니다. 
(애도 아니고 무슨 사랑 땜. 어쨌든 심란할 때는 그저 장난감에 몰두 하는 게 견디기가 그 중 낫습니다.)
 
그래서 머리 자르는 시간동안 일없이 혼자 오락가락 하다가
혹시나 호떡 파는 데가 있나 기웃거려 봤는데 없습니다.
호떡 대신 길 모퉁이에 과일 노점상이 좌판은 벌여 놓았는데 들여다 보는 사람도 하나 없이 쓸쓸하기만 하고. 손님 기다리다 지쳐 가버렸는지 주인도 안보이네요. 그래도 꽤 그럴듯 하게 쓸쓸하길래 몇 장 찍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이리저리 서성거리자니
한적한 변두리 밤길에 카메라 들고 오락가락하는 이가 수상쩍은지 
오고 가는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기도 하고 그래서 좀 멋적어서 그냥 미장원으로 들어 와버렸습니다.
밤바람도 꽤 찹고.


미장원에 앉아서 기다리자니 심심해서 맞은 편의 거울 보고 혼자 셀카 놀이. 
각도 못잡아 다 날려 먹고 맨 엉뚱한 여자 얼굴에 얼굴 귀퉁이만..... 
다 잘랐다고 일어서길래 얼른 그냥 집으로 들어와 버렸지요. 

별 일도 없고 큰 일도 없고 그래서 사진 몇 장 찍은 김에 사진따라 몇 마디 써서 일기랍시고 올려 놓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모범적인 일상입니다. 오늘도 얼추 무사히....  




이제 당신을 실어 드릴 수가 없어요.
더 못갑니다.
녹 슬고 깨지고 부러지고 바퀴도 주저 앉았어요. 이제 더는 당신을 실어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여기서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죽었습니다.  
왜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요?


........
아, 혹시 당신도 죽었나요?


 




언제 다시 너울 위에 몸을 띄울 수 있을까요.
나는 오늘도 뭍에 묶인채로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낡아 갑니다.  



오디오도 그렇고 카메라도 그렇고 기기를 한 번 바꾸면 새로 들어 온 놈이랑 코드를 맞추기 위해서 꽤 시간이 걸린다. 
한 보름전에 충동적으로 카메라를 바꿨는데 아직도 감을 못잡아서 애를 먹는다. 
일단 색이 내 감각에 맞고 구식 수동렌즈들을 쓸 수 있다는 재미도 있다만.
며칠동안 만져본 느낌은 괜찮네. 
내공이 딸려서 아직 마음 먹은대로야 잘 안 되지만. 

영해에서 영양으로 넘어가는 창수령 고갯길에서 마주 보이는 건너편 산능선의 풍력 발전단지다.
지금 한참 공사중인지 맨 오른쪽으로는 대형 크레인도 보인다.
강구에서 영해로 넘어가는 바닷가의 해맞이 공원 단지와는 다른 곳이다. 
꽂혀있는 막대기의 높이가 80미터라니 꽤 어마어마하다. 또 날개 하나의 길이는 30미터...
실제로 달아 매기 전에 조립해서 눕혀 둔 날개를 지나가다 본 일이 있는데 완성된 풍차를 보고 느낀 크기와는 차이가 많았다. 날개 옆에 세워 둔 자동차가 왜소해 보일 정도였으니까.
저 놈이 바람을 받아 힘차게 돌고 있을 때 그 아래 서 있어보면 정말 무섭다.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회전체의 크기를 벗어난 크기 때문에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물건이라 사람의 감성 중의 한 부분을 자극하는 물건이긴 한데 생긴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불만이 없지는 않다. 멀리서 봤을 때 군집을 이룬 모양은 그냥 색다른 맛으로 봐줄만 한데 가까이 가서 보면 너무 기능만 생각한 밋밋한 모양이라 좀 불만이다. 기왕에 오가는 길에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거대 조형물인 셈인데 좀 더 예쁘게 만들 수는 없었는지.  


우리집 꼬맹이가 혼자 색종이로 조물락거리더니 저걸 만들어서 자랑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지간히 심심했던 모양이다.
일단 보기에 재미있다.
열살짜리가 저만하면 잘 만들었네 뭘. 매우 훌륭해요. 음.
보나마나 딸자랑이다. 


봄방학이라고 밤늦도록 안자고 노닥거리는 걸 자라고 이불 펴줬더니 좀 있다가 시무룩해서 내 책상으로 다시 왔다. 재워 달란다.

'아빠가 누워 있다가 잠들라. 아빠는 일이 안끝났는데.'
'아빠, 그런데 나보다 먼저 잠들면 안돼요.'
'같이 자자더니 왜?'
'아빠가 코를 골면 내가 못자요.'
'그럼 아빠랑 안자면 되잖아.'
'그럼 잠이 안와요.'

.................
많이 행복해 보이십니까?



 



태환이네 집 대문앞에는 빨간 자전거가 나들이를 나왔다.


유정이네 집 마당에는 봄이 휘늘어지고


세은이네 집 매화나무(?)도 물색이 다르다.


논둑 아래 돌 틈에는 성질 급한 초록색 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우리집 마당의 산수유는 꽃망울이 터졌네.


무화과 나무도 빼쪽....


그렇구나.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오기는 오나 보다.
하지만 말이지
꽃은 피고 새도 울고 봄이야 오건 말건 나는 이 봄을 어찌 새냐는 말이지.

온 천지에 꽃비가 내릴 때 쯤이면 풀 냄새 흙냄새에 아주 억장이 미어질 걸.
나는 아직 오지도 않은 봄을 어찌 지나가야 할지 벌써 숨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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