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것 봐요!'
아침에 꼬맹이가 학교 간다고 나서다가 호들갑이다.

우리집 마당의 앵두 꽃이다.
어디서 보고 왔는지 우리집도 앵두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졸라대서
작년 봄에 묘목을 사다가 저랑 같이 심었었다.
작년 한 해 꽃도 없고 열매도 없이 되다 만 이파리만 몇 개 달고 있더니 올 해에는 드디어 꽃이 피나보다.
꼬맹이 녀석 어제까지도 모르고 있다가 억세게 반가운 모양이다. 하긴 나도 몰랐다. 
 

봄 꽃들은 기다리지 않아도 밤 사이에 언뜻 찾아 온다.
그래서 좋으냐고?

꽃이야 누가 싫어 하나. 꽃 피고 새 우는 사이에 세월을 슬쩍 속여 넘기는 것이 괘씸한 거지.
한 살 더 먹은 걸 실감나게 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저놈의 봄 꽃이거든.
또 한 겨울 잘 넘기셨습니다. 올 한 해도 무사히....

그런데 앵두꽃이 흰색인가? 앵두 꽃은 막연히 빨간색일거라고 생각했었나보다. 

나무며 꽃이며 아는 것이 있어야지. 주는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가보다 하고 그만이다.
그래. 긔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앵두 나무가 아니라서 앵두가 안열리면 꽃 만 보고 앵두는 한 사발 사 먹으면 되지.

봄이 오긴 왔나보다. 꽃 볼 일이 많아지는 걸 보니. 
우리집 꼬맹이,
작년 한 해 틈틈이 우리집은 앵두 안열리냐고 조르더니 올해는 혹시나 몇 개 맛 볼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쩐지 노래가 좀 안어울리는 것 같지만.... @@...

16-45 DA


자동차 검사 받으러 갔던 정비공장 주변에서.

나는 벚꽃이나 매화같은 꽃들을 보면 공연히 답답하다.
이른 봄부터 잎이 피기 전에 서둘러 피는 꽃들은 다 그런 편이다.
목련이나 개나리도 그렇고 진달래도 그렇고..


성급하게 꽃부터 피웠다가 질 때는 아주 처참할 정도로 무너지니 하는 말이다.
초록색 새잎들이 돋을 무렵이면 꽃이 떨어지고 짓무르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게 공연히 보기가 안쓰럽다.
이제 저 놈들은 가을 들어 잎이 지도록 꽃은 피우지 못할 것이다. 꽃이 없으면 잎으로 산다지만, 글쎄.  
그렇게 어렵게 필려거든 질 때는 왜 또 그렇게 허무하게 짓물러 버리는지. 기왕에 그리 서둘러 필려거든 잎이 피어서 웬만큼 무성해질 때까지라도 기다리든지. 그 때쯤이면 지더라도 그리 허무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벚꽃이 맞다. 벛꽃이 아니다. 이제는 철자법도 오락가락 하는구나.
 




A28-135



어제 OCN을 켰더니 '해바라기'를 한다는 자막이 떠 있었다.
잠을 설친 채로 외출을 했다가 돌아온 참이라 많이 피곤하기도 했지만, 일단 보기로 했다.
까닭없이 간혹 생각이 나던 영화였다.

그런데, 이런, 다른 해바라기였다.
이름이 얼른 생각 나지 않는데, 우리집 큰 놈이 좋아한다던 그 배우였다. 드라마 식객의 성찬이 역을 맡았던.
맥이 빠져서 삼사분 정도 잠깐 보다가 그냥 꺼버렸다.




해바라기. 꽤 오래 된 영화.
소피아 로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늘 그 음악이 생각나고 간혹 다시 보고싶어지기도 하는 영화다. 
전쟁때문에 꼬일대로 꼬인 인생과 사랑에 대한 회한, 체념, 뭐 그런 더러 볼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그 놈의 막막하던 우크라이나의 평원에 넘실대던 해바라기 밭의 영상과 음악때문에.

 



해바라기 꽃은 등신이다. 
별로 멋지거나 그다지 슬퍼보이지도 않으면서 공연히 사람 쓸쓸하게 만드는.

영화 스토리는 다 생각나지는 않는다.
그냥 보고나면 그날 하루는 족히 울적하게 만들만큼 여운이 오래 남던 영화였다는 기억만.
그 언젠가는 OCN에서 해바라기를 돌려 주리라 믿고 오늘은 음악만 듣기로 한다. 해바라기.
눈 감고 그 억장 무너지게 광활하던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 평원을 생각하면서. 선플라워. 해 꽃이란다.
해바라기.




  


차를 갖고 다니기에는 고속도로 보다 국도가 낫다.
국도 보다 좀 더 재미 있는 길이 지방도나 도로 번호도 제대로 붙지 않은 샛길들.
오가는 길에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나는 혼자서 엉뚱한 곳으로 잘 새는 편이다. 
내가 끌고 다니는 고물 밴 뒤에는 자전거도 실려 있고 간단한 취사도구도 있으니 맘만 먹으면 어느 골짜기를 가든 한 나절 지내는 건 별 걱정 없지. 혼자 있는 걸 싫어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별로 폼 나지 않는 좀 적적한 취미생활(?)이기도 하고.
 

갈매기들이 미칠듯이 날아 오르던 포항 송라면 방석리 바닷가 

방어리 선착장. 배를 타는 건 싫어해도 보는 건 좋아한다.

영덕 원척 앞바다에서 접선(?) 중인 배 두 척. 너무 멀어서 잘라서 펼쳤더니 윤곽이 조금 뭉개졌다. 200을 들고 나갈 걸.

포항 오도리 방파제. 눈이 쨍 하도록 선명하던 불가사리들 

영덕 삼사리에서 본 먼 바다. 역시 배는 타는 것 보다 보는 것이 훨씬 좋다.  

바다는 늘 가까이 있지만 마음 먹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늘 해 뜨는 바다만 보면서 살다보니 해 지는 바다도 보고싶다. 그게 꼭 바다가 아니더라도. 


      


‘나는 가진 것이 없는데 안이는 가진 것이 많아서 신기해요.’


꼬맹이의 친구 하영이입니다.
반에서 제일 작은 친구입니다. 키도 작고 몸도 가벼워서 우리 집 꼬맹이랑 같이 서 있으면 아주 동생뻘로 보입니다. 우리 아이가 너무 커 보여서 좀 열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안이는 자기 방도 있고 자전거도 있고 피아노도 있고 인형도 많고 집에 화장실도 두 개고... 정말 신기해요.’

‘부럽다’도 아니고 ‘샘 난다’도 아니고 신기하답니다.
무슨 교육을 받아서 그리 표현하는 것 같지는 않고 정말로 그리 생각하는 것으로 보여서 오히려 내가 더 신기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하영이가 생각하듯 그럴싸하게 잘 사는 집은 절대 아닙니다. 길 가다 오며 가며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보통의 서민일 뿐입니다. 시골 마을 서른 평 남짓 장마철이면 물 새는 스레트 지붕 이고 살고 있습니다. 신기한 부잣집 전혀 아닙니다.

‘안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작년에 안이 생일날 뵈었던 하영이에요.’

애 엄마는 하영이의 인사말에 여운이 남는다고 몇 번을 거푸 들먹입니다.
요즘 ‘뵈었던’ 이라는 단어를 쓰는 애가 어디 있냐고 감탄입니다.
때로는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너무 비현실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바람에 생뚱맞고 약간은 희극적인 느낌마저 없지 않지만 아무튼 보기 드문 사고방식을 가진 열 살짜리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혹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겉으로 드러내고 화를 내거나 삐지는 일이 없을 그런 아이로 보입니다. 그냥 혼자 돌아 서서 눈물 찍어 내고 혼자 삭이는 그런 몽실이 같은 옛날 아이. 운전을 하면서 애 엄마와 둘이서 하영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자니 뒷자리에 있던 꼬맹이가 제 친구라고 한 마디 거듭니다.

‘하영이 착해요.’

그래. 아빠가 봐도 착한 것 같구나.
요새 세상에는 저렇게 착한 것도 신기한 일이 됩니다. 저렇게 아주 턱이 갸웃 돌아 갈 만큼 착해버리면 그것도 이 험한 세상 살아가는데 한 재산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만.
내 아이는 그렇지 않았으면, 나쁘지 않을만큼은 조금은 사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입니다. 일생 안으로만 잦아들어서 속앓이만 잔뜩 하고 살아 온 어리숙한 일생을 거듭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지요. 그래도 제 품성은 갖고 태어나는지 우리 집 꼬맹이도 어릴 때 봐서는 제법 한 가닥 할 것 같던 겉보기와는 다르게 눈물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 많습니다. 요새는 좀 맹랑해야 잘 살아 남을 것 같은데.


어제도 하영이가 놀러 왔습니다.
집에는 일찍 가봐야 아무도 없다고 가방을 맨 채로 곧바로 왔습니다.
꼬맹이 방에서 한 참을 놀다가 내가 뭘 뒤적거리는 사이에 잠시 내 방에 들어 온 우리 꼬맹이를 따라 들어서면서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조금 숙이면서 나즈막하게 인사를 합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생각하던 바가 있어서 응 그래, 하고 무심히 내색은 안했지만 하영이는 참 신기한 아이입니다. 하영이의 부모님이 그리 가르쳤을까요?
그리 가르쳤다면 그 부모님도 대단하지만 엄마 아빠가 그리 가르쳤다고 또 그대로 따르는 아이가 잘 있을까요. 하루가 멀다 하고 말과 글이 미쳐 날뛰는 광속으로 변해가는 이 시대에.



흥해에서 포항으로 넘어가는 나즈막한 언덕받이 검문소가 있던 자리에 황색 깜박이 신호등이 있습니다.
 그 신호등 바로 뒤에 어느 솟대에서 날아와  앉은 듯한 새 두마리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누가 앉혀 놨는지 참 예쁘게도 앉혀 놨습니다.
자주 오가는 길이라 늘 보면서 속으로 감탄했습니다.
쇳조각 몇 개로 저렇게 예쁜 새를 만들어 앉힐 생각을 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설마 도로 교통법규에 신호등 끄트머리에 새 만들어 붙이란 조항이 있을리는 없고 아마도 신호등을 설치하던 누군가가 살짝 멋을 부려 본 모양인데 삭막한 도시 한 귀퉁이에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다가 저런 여백을 만들어 둘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요.
새를 만든 솜씨도 아주 빼어나서 군더더기 없이 균형이 잘 잡혔습니다.


예쁘지요? 참 예쁘고 고마운 생각입니다.
오고 갈 때마다 눈길이 가고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새 두마리 입니다.
이런 게 진짜 예술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는 헛바람 들어가지 않은 진짜 예술. 


K200/4


내 방의 커튼을 열고 본 오늘 아침 일출이다.
어쩌다보니 며칠 연속 하늘 그림만 올라간다.
그저 하늘은 아무렇게나 찍어도 별로 표도 안나고 탓을 안하기때매...

그림 속의 새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비행물체(?)다.
해를 찍는다고 들이대고 있는데 예고 없이 찬조 출연.

동해 바다에서 방금 건져 올린 싱싱한 해는 아니더라도 간혹 저런 먼지 낀 듯한 일출도 볼만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글거리는 오메가나 금빛 물결 찰랑대는 근사한 바다 일출보다는 동네 일출을 더 좋기는 하다.
더군다나 잠옷 입은채로 찍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고... @@...




/별도 보고 해도 봤으니 오늘은 일찌감치 챙겨서 기절한 내 컴퓨터나 살리러 가야겠다.
그저께 부터 아무 이유도 없이 나자빠져서 회생할 기미가 안보인다. 컴퓨터는 깡통. 맞습니다.



H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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