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애 엄마와 큰 애의 교통사고로 온 식구가 두 달 넘게 병원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둘 다 중상이라 처음 며칠은 정말 넋이 나갈만큼 바빴었지요.
입원한지 사나흘 쯤 꼼짝 못하던 환자 둘 눕혀놓고 정신없던 날이었습니다.
애 엄마 수발하랴 큰 놈 수발하랴 2인실 양쪽으로 침대에 눕혀 놓고 동분서주 진을 빼고 있자하니
그 때 다섯살이던 어린놈이 지 애비를 물끄러미 보며 한마디 툭 던집디다.

'아빠가 아팠으면 좋겠다.'
'?....'
'아빠가 아프면 가만 누워 있을 수 있잖아. 힘들게 일 안해도 되고 다른 사람이 물도 떠 주고 밥도 먹여주고....'

다섯 살 어린 놈에게 듣기에는 너무 벅찬 말이라 두고두고 생각이 납니다.
꽤 괜찮은 놈이지요?
병원에서 먹고 살던 그 때
어느 날 아침 나절 병실 바닥에서 바둑이 끌어안고 늦잠 자던 놈입니다.



어제 저녁에 이 놈이 뜬금없이 불쑥 말합니다.
'혼자 자는 거 언제부터 해 봐요?'
젖먹이때부터 지금까지 지 애비 팔베개를 해야 잠이 오는 놈이라
그 말이 기특하긴 한데 갑자기 겨드랑이가 썰렁해집니다.
그래서 어젯 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 방에 이불 따로 펴고 혼자 잠을 잤습니다.
아, 물론 잠이 들 때까지는 아빠가 옆에 누워서 팔베개를 해 줘야 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거나 일기 불순할 때는 언제든지 안방에서 자도 좋다는 조건입니다만.


속은 여려도 구김 없이 꽤 씩씩하게 잘 자라는 것이 고마운 놈입니다.
요즘은 자전거 타고 학교 갑니다. 간혹 자전거 처박고 무르팍에 멍도 들고 그럽니다.
요새는 공부가 좀 하기 싫어지나 봅니다.
뭐 어때요.
공부건 사랑이건 제 물미가 터져야 하는 겁니다. 또 그래야 행복하고.
저 놈이 혼자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곁에 있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당에 핀 앵두꽃을 찍었다.
보기에 괜찮은 듯 해서 조금 매만지다가 별 생각 없이 채도를 죽여보았다.
꽃의 이미지는 사라져버리고 꽃이라는 형태와 개념만 남은 셈이 되었다.
미묘한 느낌. 지금의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일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아니,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고.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바라고 기다리던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
이런 등신.
어렵든 쉽든. 그것은 내 몫의 것이 아니다.
등 뒤에서 닫히는 문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겠지.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았거나.
이제 알았나? 시간은 잔인한 것이다.

무망한 기대는 사람을 상하게 한다. 
무망한 기대로 열어 두었던 창이라면 닫아야지. 닫아야 할 것 같다.
나는 몽상가였을까?
또 하나를 접는구나. 많이 아프다.



1. 벌똥
나는 세차하기가 싫다.
웬만한 자동 세차기에는 넣어주지도 않는 고물 밴 숏바디.
손 대 본지 이년인가 삼년인가.
비오는 날이 세차하는 날이고 볕 나는 날에 말려서 쓴다 왜.


그런데 이웃에 양봉하는 할배, 버릇도 더럽게 들여 놨지.
이놈의 벌들이 꽃에 꿀만 따먹고 가면 좋으련만 배설까지 우리 집 마당에서 끝내고 간다는 말이지.
내 차는 회색인데.
옆구리에 까만 띠 둘러놓은 회색인데.
지붕이고 본넷이고 황금색 벌똥이 수백 개 아로새겨지면 내 차는 회색도 아니고 똥색도 아니고. 이런 제길.
벌똥은 봄볕에 바짝 말라붙으면 손톱으로 긁어도 잘 안 떨어져.
젠장. 차 닦기 싫다니까.


2. 벌꿀
벌똥으로 관련하여 나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부여하는 이웃의 영감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꿀 한사발 갖다 준 적이 없다.
나쁜 할배.

토종꿀 몇 년 건드려 본 내 사촌에게 그 소릴 했더니 아주 맛 간 사람 보듯 날 본다.
토종 꿀 한 단지 맹글라면 몇 년을 패대기를 치는데 그걸 줄까보냐고.
그런가.
뭐 그렇거나 말거나 나도 아주 어릴 적엔 외할아버지 댁에서 토종꿀 꽤나 퍼 먹었었잖아.
꿀 한 되에 수십 만 원이든 수백 만 원이든 내 알 바 없단 말이지. 아 근데 그게 그리 비싸냐.


3. 벌집
우리 집에는 꿀벌은 없다. 대신,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말벌은 산다.
처마 밑에 떡 당생이만 한 벌집 지어놓고 허가도 없이 세 들어 산다. 두 개나 있었다.
꼬맹이가 무서워서 마당에 못나가겠단다.
금쪽같은 내 새끼 벌에 쏘일까봐 그 벌집 뜯어냈다. 뭘로 발라놨는지 더럽게도 안 떨어졌었다.
말벌에 쏘일까봐 한 손에 간짓대 한 손에 에프 킬라 들고 전투하듯 뜯어냈다.
떠그럴. 꿀벌이나 올 것이지.


4. 벌 알레르기
내 친구 마누라는 벌침 알레르기다.
몇 년 전 저그 선산에 벌초하러 갔다가 땅벌에 쏘여서 죽을 뻔 했다더라.
벌 독이 오르면 기도가 부어올라서 숨을 못 쉰다던가.
친구 놈은 그때 마누라 업고 산길 몇 리를 냅다 뛰었다고 생색이 대단하다. 지 아니면 지 마누래 죽었을 거라고. 

드런 놈.
그럼 니 마누라 숨넘어가는데 구경만 하고 있을라 그랬더냐.
크다가 만 쬐끄만한 마누래 업고 뛴 게 뭔 용상에 오른 일이라고.
그나저나 벌 알레르기가 무섭기는 무서운가보다. 우리 집 뒷산에도 땅벌들이 있을까?
아이들 뒷산에 함부로 안 올려 보내야겠다.


5. 벌
봄이 왔다. 제대로 왔다.
뭘로 아냐면 벌똥 보고 안다.
겨우내 꼭꼭 처박혀서 자빠져 자던 벌들이 살 판 났다 앵앵 돌아 댕긴다는 증거다.

봄이야 오건 말건
꽃이야 피든 말든 내 코가 석자라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벌똥은 싫다.
그래서 봄도 싫다.

.....
아, 세차하기 싫다니까!!


하늘. 비현실적인 색이어서 그랬는지 보고 있다가 나른하게 멀미끼를 느꼈던 하늘.


해변의 연인.
최소한 부부는 아니었을 거야.  
저 두 사람 곁을 지나서 내가 사진을 찍은 언덕을 떠날때까지 꼼짝 않고 저리 서 있던 걸 보면.
부부일 수도 있다고요? 백원 걸까?

봄이면 누구나 다 찍는 꽃 사진. 이파리가 군청색으로 나온 이유는 메누리도 몰라요. 

누구나 다 찍는 사진이 그나마 보기에도 좋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참 멍청한 사진. 미나리 꽝.


나와 나란히 달리던 7번 국도. 나는 왜 밤이고 낮이고 길만 보면 환장을 하고 울렁증이 생기는 걸까.

이상 고온도 꽃 샘 추위도 다 소용 없습니다.
아이구나 벌써 덥네 벗어 던질 때는 기척도 안하다가 이 쌀쌀한 날씨에 굳이 밀고 나온답니다.
원수야 악수야 지청구를 해싸도 만사 때가 되면 다 되게 되어 있습니다. 
늦다니 이르다니 암만 날씨 탓을 해 봤자 해마다 우리 동네에서 두릅이 먹기 좋을만큼 자라는 시기는 양력 4월 10일 전후입니다. 이제 막 순이 터져 나옵니다. 



이제 곧 시장에는 산나물들도 쏟아져 나올겁니다. 
봄은 싫지만, 봄나물은 기다려집니다.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니까.   



/사진 생각 없이 올린다고 집에 온 큰 아이한테 구박 받고 포토샵 강의 들었습니다. 
  실컷 키워 노니 잔소리만 합니다.    






7번 국도.


때로는 나도 저렇게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다. 과속으로.
거기가 어디인지 몰라도.


Pegao/Jos'e Feliciano





F35-105



난전. 
그것이 무슨 축제이든 꼭 있어야 하는 축제의 백미는 난전이다.

모든 축제는 사람이 모여서 득시글거리는 것이 목적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또한 거기에 모여 든 사람들은 
먹고 마셔야 한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으러 왔으니 그것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가져야 한다. 하지만....................

(천원짜리 야바위에 열중하는 우리집 꼬맹이. 저게 커서 뭐가 될까...)

그리고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해야 한다. 그 대상이 누구이든 괜찮단다. 부라보!!!


그래서 축제에는 난전이 있어야 하며

그 중에서도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 것은 쌀쌀한 날씨에 김 펄펄 오르는 오뎅과 번데기. 
(겨울 거리 축제에 오뎅이 빠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


그리고 온통 먹고 놀자판인 난전의 격을 한 끗 높여주는 멋쟁이들. 거리의 화가들.


그렇게 축제 구경은 끝났다.
두 번의 야바위와 두 봉지의 번데기와 낯 간지러운 외설로 발라 놓은 싸구려 불쇼와.
용돈과 하고 싶은 야바위 사이를 줄타기 하던 꼬맹이는 두 번을 울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끓었다 식었다 하던 애비는 지치고...
누가 와서 무슨 노래를 하는지 졸리는 어린 놈을 데리고 공연장을 지나치다가 지금도 지겨운 책 붙들고 기숙사에서 애쓰고 있을 큰 아이 생각에 조금 아쉬워 하다가 조금은 우울해지고
그리고 막 떠나려던 순간에 머리 꼭대기 바로 위에서 터지던 불꽃 놀이의 어마어마한 폭음으로 우리집 꼬맹이는 또 한 번 기겁을 해서 울고.... 그렇게 축제 구경은 끝났다.
게딱지 모양으로 자른 스티로폼 냉장고 자석 하나와 풍선 야바위로 딴 싸구려 하트 쿠션 하나를 남기고.

..

겉보기에는 매우 성공적으로.   

  


K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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