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령 고갯길을 넘어가던 중에 작은 아이가 멀미를 해서 차를 세웠다.
마침 길 옆에 잔설이 깔린 오솔길이 참 예쁘길래 큰 아이더러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
다 흔들어 놨네.
큰 아이는 카메라가 고물이라 그렇다고 우긴다만.

버리려다가 가만 보니 흔들린김에 못생긴 얼굴이 조금 보완이 된듯도 하고
배경이며 구도가 그냥 괜찮아 보여서 적당히 왜곡 시킨 채로 올려 본다.  

사진이 흐린 것이 나는 다행이지만 덩달아 얼굴이 흐릿해진 개구쟁이 작은 아이는 손해다.
파란 색연필로 블로그에 띄워진 내 얼굴을 그린 놈이다. 네 살때 그렸다.
아니 뭐, 보나마나 메추라기 애비에다가 콩껍질 뒤집어 쓴 팔불출이란 핀잔이나 듣겠지요만..., @@... 





♣♣♣♣♣
어둑한 골방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출세와는 거리가 좀 먼 책들을.

남보다 재빠른 감각으로 남보다 앞서기 위한 책들을 열병이라도 앓듯이 읽어야 하는데.

책을 백 권쯤 가려내서 커다란 상 위에 쌓아놓고

제대하는 8월 말까지 다 읽어 치우려고 작정하고 있습니다.

(중략---------)
.....
연희와 만나면 형에 관한 이야기는 삼갑니다.

그 여자가 순수하게 사랑한 처음이자 마지막일 사람이 형이니까.

그 여자도 자기 양심을 부끄러워합니다. 가치관의 갈등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형의 건투를 빌며 넋두리 접습니다. 낙원 드림.


♣♣♣♣♣
Dear 여윈 선배님.

방학동안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sons & lovers 를 읽었습니다.

(큰일 했다 큰 일 했어.)

puppet man 인 우리 선배님 따분하시죠.

뭔가 재미있는 일이 터지도록 기도 할까요.

(중략------)

........

여위고 빼빼하고 불쌍하고 고독하시고 심심하신 선배님 안녕히 계세요.


--커다란 후배 선정.


♣♣♣♣♣

낯 설은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삽니다.

잘 지내시지요?

오랜만에 소식 접하여 마냥 기쁜 맘에 몇 번이나 반복하여 읽어보아도

모든 글자들이 가물거리기만 합니다.

이게 테크닉의 문제인지 스타일의 문제인지 아니면 거리의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잘 지내신다는 이야기는 듣고 있습니다.
(중략-----)

....

직관도 무지에서 오지는 않을 듯 합니다.

많은 경험을, 거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

감정들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 시켜 가십시오. 소극적인 것은 껍데기뿐일지도 모르지요.


--연희


♣♣♣♣♣

찌는 게 아니라 아주 튀기는 날씨다. 점심 반찬으로 튀김이 나온다면 우스울 것 같다.

안 간다 안 간다 하면서도 세월은 어영부영 가나보다.

코는 시월에 수술하기로 했다. 가슴은 이상 없더라.

나는 왜 이렇게 못나서 너처럼의 갈등과 희열을 맛 볼 수 없는지 생각할수록 병신스러울 뿐이다.

너 같은 놈 때매 나 같은 비극이 생기기도 하는 것을 잊지 마라.

(중략------)
..........

날이 더우니 모일 때마다 개 이야기뿐이다.

나도 소주 한 병 쯤을 마실 수 있게 되었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이마에 정맥이 선 네 얼굴 보고 싶다.

뜨겁게 살아라. 너도 나도.


--근호


♣♣♣♣♣

부패와 썩은 몰골들이

항시 주변을 메우고 있고

탁한 놈은 팽팽한 오물 주머니를 차고

옆에 서서 터뜨릴 기세고.

(중략------)

.........

많은 시간, 많은 이야기들 진심으로 고마웠고

진주에서의 하루는 기억하겠소.

모쪼록

건강 속에 만나서 과격한 느낌으로 태웠으면

쓴 술 한 잔은 달지 않겠소.


-중수


♣♣♣♣♣
(전략-------)

시외전화라도 한 통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생각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생활은 어떠십니까.

안경에 더벅머리 형의 얼굴이 선합니다.

짬나는 대로 찾아 뵐 테니 남강 변에서 개다리소반 마주 할 준비나 하십시오.

얄팍한 호주머니 그거나마 다 축내고 올 작정이니

마음 굳게 먹고 그 날은 지리산 가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시월 팔일 휴가 출발합니다.

-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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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를 정리하다 마구잡이로 쌓아 둔 종이 뭉치에서 나온 오래 된 편지들.

누렇게 바래고 삭아 만지면 귀퉁이가 부서진다.


그랬었구나 그랬었구나.

낡고 지친 편지 몇 장을 뒤적이다가 오래 지난 상념으로 조금씩 앓는다


편지는 식은 아궁이처럼 쓸쓸할 뿐인데

오히려 일없는 가슴만 비시시 일어나 이내 조금씩 기척을 하고

오래 오래 지나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을 누렇게 묵은 책꽂이에 잊은 듯 남겨두었다가

공연히 아팠다 웃었다 하는 것도 홀로 썩 민망한 일이지만

그래도 참 그때가 조용히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 나도 나이만큼은 낡았나보다.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


낙원/

나이는 나와 동갑이면서 학번이 하나 늦어 나더러 꼬박꼬박 형으로 부르던 후배.

이 친구가 가사를 짓고 내가 곡을 붙인 노래가 모모대학 방송국 공식 방송국가로 남아 있다.

자랑이다. ㅎㅎㅎ.. 


선정/

그 해에 내가 대장 노릇하던 음악 써클의 여자 후배.

몸집이 커다랗지만 썩 고운 얼굴과 활달한 성격으로 재미있었던 친구.

지방대학에서 꽤나 세련된 도회적인 이미지로 눈길 꽤나 끌었던 친구.


연희/

그냥 어떤 여자.

의사한테 시집가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여자.


근호/

지독하게 가난했던 집구석이 이가 갈려서 무슨 수를 쓰던지 돈을 벌어야 한다던 고등학교 동창생.

비슷한 시기에 같은 병을 같이 앓기도 해서 잘 어울렸던 친구.
잊을만하면 한 번씩 전화는 걸려 오는데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세세한 소식은 잘 모른다.

배고팠던 시절 이 친구와 둘이서 라면 다섯 개와 찬 밥 한 밥통(약 5인분?)을 한 끼에 해치운 추억이 있다.


중수/

군 복무 중, 국군 통합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만났던 해군 친구.

미술 전공에 꽤나 독특한 감각을 가진 친구였는데 결혼식 때 못 가본 탓으로 서로 엇갈려 소식이 끊겨 버렸다.


호경/

군대 쫄병.

시커먼 안경을 쓰고 삐딱이 기질이 농후하던 졸병.

군대가 아니라면 어떻게 각별히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모를 기질이었는데 편지의 내용대로 뻥구라만 쳐놓고 결국 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소식을 모른다.  





칼을 잡았다고 해서 모두 다 검객은 아니다.

검객은 남의 눈으로 상대를 보지 않는다.
검객은 자신의 눈으로 상대를 보고 베어야 할지 지나쳐야 할 지를 스스로 결정한다.
그리고 쓰러질 때도 자신의 이름으로 쓰러진다.

남의 눈으로 상대를 보고 칼을 뽑는 자는 검객이 아니다.
그는, 마루 그늘에 강아지처럼 웅크리고 앉아 주군의 명령만 기다리는 자객일 뿐이다.
또한, 죽은 자객은 이름이 없다.

손에 칼을 쥐었다고해서 누구나 다 검객이 되는 것은 아니다.




I don't even call it violence when it's self-defence.
I call it intelligence.    - Malcolm X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일 경우, 나는 그것을 폭력이라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지성이라고 말한다. -말콤 X)  




...'아이고 아저씨 벨 걱정을 다 합니더. 사다 노모 다 사람 뱃속에 드갑니더. 살 때 좀 마이 사가이소.'
인구 5만 남짓이라는 삼천포에 웬 생선은 이렇게 많은지.  .......삼천포 사람들은 혹시 생선만 먹고 사는 걸까. 



'야이 XX년아, 고기 한 다라이가 머시 우째?... 웃지 마라, 웃기는 새 X이 좋타꼬 웃나!!'
회칼 든 아지매는 당장에 요절을 낼듯이 옆집 아지매를 닥달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웃집 아지매들은 싸우는 게 우습다고 깔깔깔깔 넙덕 웃음으로 뒤집어진다.
적나라하고 무시무시한 욕바가지에 지나가던 나그네도 흠칫 놀라다가 이웃집 아지매들 웃음 소리 덕에 소심하게 안도하면서 그 앞을 지나간다.

고향 간 길에 삼천포 어시장을 다녀왔다.
날씨 풀어졌다더니 아나 맛좀 봐라 갯바람에 얼고 
철벅철벅 낡은 구두는 물까지 먹어서 발끝이 시렸지만
갯냄새 물비린내 생선 비린내 사람 냄새까지 아주 자욱해서 오랜만의 나들이가 썩 행복했다.

 





이런 그림을 보고 색감이 어떠네 구도가 어떠네
씨도 안먹히는 얘기들만 전문가적(?)으로 따지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나는 싫어.
詩는 안읽고 詩 속에 들어있는 단어하고 구절만 붙들고
싸우고 따지고 분석하는 거지 발싸개 같은 삽쟁이들하고 똑같아서 그래.

머리를 삶으면 귀는 저절로 익을걸 다들 왜 귀때기만 잡고 흔들어대는지.
그러니 코딱지 만한 놈들도 어디 시 한 편 써봐라 그러면
귀신이 씨나락 까묵을만 한  단어부터 몇개 골라 들고 조립한다고 흉내들만 내지.

가슴에 꽂히는 비수가 살색 가리고 육질 따지며 꽂힐까
가슴에 날 선 비수가 꽂히거든, 그래서 숨이 턱 막히거든
그만 뜨신 눈물이나 한 주먹 팍 쏟아내고 그 길로 그냥 칵 죽어 버리면 그만이지.

죽을 때는 그냥 죽으면 돼.  
저승 길 욕심 내지 말고 그냥 죽기만 하면 돼.

이런 화이트에 숨 넘어 가도록 환장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리고 그런 화이트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히 신선도에 문제가 많다던데
이런 그림을 그린 위트릴로라는 인간은
살아 생전 이미 머릿속이나 가슴패기가
적잖이 썩거나 부식되어 있었을거야.
좀벌레가 파 묵어서 구멍이 숭숭 뚫렸든지.

그런데도 나는 화이트는 잘 몰라요. 
다만 저놈의 궂은 하늘 아래 비어 있는 골목길 때문에,
저놈의 오후 세시의 적막강산 때문에 그렇지.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바다로 나가는 작은 고기잡이 배.



 


우당탕 소나기가 지나간 후에 작은 아이와 수평선에 걸린 무지개를 보러 나갔다.
거짓말처럼 선명한 무지개였다.
무지개는 과연 빨주노초파남보로 만들어져 있는지 셀 수 있을만큼 크고 짙은 무지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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