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또 다른 패거리

정체불명(학과 불명)의 여학생 패거리.
바쁜 점심시간에 여섯인지 일곱인지 우르르 들어와서 테이블 두 개 차지하고는
'나는 안 마실래요.' '나도' '나도'....... 맨 마지막에 남은 여학생,
'그라모 내는 마시야 되나? 가스나들... 아저씨, 나도 안마시고 싶은데.'

이런 정신없는 놈들, 커피 마시기 싫다면서 커피 집에는 뭐하러 왔노? 공원으로 가거라.
그날 내가 그 패거리들에게 커피 팔았을까요 안 팔았을까요.
그건 비밀이랍니다.


9. 어떤 여선생

어쩌다 마감 시간 다 돼서 들어와서는 바 에 앉아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마감 설겆이 하느라 정신없는 노총각 쥔장얼굴만 빤히 쳐다보던 어떤 여선생.
'선생님, 마칠 시간입니다.'
'아저씨, 마감 하고 차 한 잔 하러 가실래요?'

세상에, 찻집에 앉아서 찻집 쥔더러 차 한 잔 하러 가자니.
그리고 그 시각에 어디 가서 차를 마신단 건지.
그날 그 여선생이랑 나는 찻집에를 갔을까요 술집에를 갔을까요.
아니면 안녕히 가세요 내 쫓고 문 닫았을까요.

그러게 이십년이나 지난 이야기에 참 시덥잖은 비밀도 많아요.


10. 큰 곰.

모 음대 성악과 학생.
친구 따라 어찌어찌 알고 와서는 내 찻집 단골 귀신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음역이 드문 베이스바리톤이랍니다.

베이스바리톤을 뽑을려니 덩치는 산 만 한데 하는 짓은 꼭 개구쟁이.
간혹 마감 후에 같이 한 잔 하러 가기도 했지요.
한 잔 걸치고 어쩌다 기분 내키면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천둥산 박달재를 뽑는데
아, 여자 아니라도 뿅 가게 황홀합니다. 거짓말 안보태고 그 술집 유리창이 덜덜 떨리는데 그 날 그 술집에 있던 술꾼들 벌떡 일어서서 박수치고 앵콜 부르고 난리 났습니다.
그날 그 술꾼들 유사 이래로 성악가가 부르는 천둥산 박달재는 처음 들어 봤을테니까.
기회가 된다면 성악가가 부르는 뽕짝을 꼭 한 번 들어보시도록. 정말 근사하답니다.

지금은 내 고향 인근 어느 여고에서 훈장질 한다던데 결혼 직후에 잠시 보고 못 본지 십 여년도 훌쩍 넘어버렸네요. 그런데 명색이 성악과 출신인데 도무지 가곡이나 아리아를 부르는 꼴을 못봤습니다.
맨날 부르는 게 뽕짝이나 꺾어 제끼고. 하기사 그 친구 고돌이도 얼마나 재미있게 친다고.


11. 작은 곰

큰 곰이랑 이름이 성만 다르고 이름이 같아서 작은 곰이기도 하고
생긴 것도 좀 못생긴 오동통이라 얼추 근사치에 가까운 별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긴 건 대충 생겼는데(진수야, 혹시 보거든 따지러 와라.) 기타 솜씨는 일품이라 아주 좋았지요. 노래도 잘 하고.

때때로 죽이 맞는 날이면 오디오 꺼버리고 나랑 둘이서 사이먼과 가펑클 흉내도 내 보고 트윈 폴리오 노래도 불러보고 재미가 좋았지요.
여러 방면으로 재주도 많고 감각이 좋아서 내 아쉬울 때면 수시로 손을 빌리기도 한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게다가 가슴팍은 여려 터져서 내가 찻집 그만 둘 무렵에 모 과의 여학생에게 꽂힌 채로 아주 가슴을 젓담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어떻게 됐는지.


12. 오리(도날드 박)

단골 의대생. 궁뎅이가 오리 궁둥이라고 별명이 그만 도날드가 되어버린 비운의 사나이.
내 커피가 맛있다고 장부 만들어놓고 월말 계산하던 괴짜.
언젠가 마감 후에 몇이 어울려 포장마차에서 한 잔 나누는데, 말끝에 우연히 고등학교 때 어쩌고저쩌고.....

'?....오리씨, Z고 나왔어요?'
'예.'
'몇 회 졸업생이이시세요?' (말이 좀 새기 시작하지요?)
'55회 졸업인데요.....?'
'........................................내는 46횐데...'
'........!.... 아이고 행님!!!.'

그리하여 그날 밤 무담시 떡이 되도록 퍼 마셨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시방은 울산 어디선가 산부인과 개업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13. 코끼리 커플

뚱뚱이 의대생 커플.
남녀 공히 그리 보기에 나쁘지 않을만큼 뚱보였는데 사람들이 참 어질고 겸손해서 찻집에 들어서기만 해도 아주 즐겁고 반가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씩 앞에 놓고 둘이 육중한 몸을 기울여 머리 맞대고 소근대는데 그거 가만 보다가 하도 귀엽고 우스워서 코끼리 커플이라고 진짜 별명을 지었더랬습니다. 코끼리 아저씨와 고래 아가씨...
내가 찻집을 그만 둘 무렵 결혼을 했다든가 약혼을 했다든가 소문을 들은 듯한데 기억이 아심하여 확신은 못합니다.그래도 아마 틀림없이 하고야 말았을겁니다.
그렇게 닮기도 어렵지요. 남매라 우겨도 될듯 했는데 안했다면 천명을 거스르는 일이 아닐까요.



##손님 이야기를 듣고는 성질 못된 누군가는 도대체 9번 에피소드는 믿을 수가 없다며 거품을 물기도 했으며,
순전히 이미지 구축을 위한 소설이 아니냐고 눈을 부릅뜨고 기염을 토했는데,
아니, 나도 한 때는 모모한 사람들처럼 꽤나 인기도 있고 거시기 했답니다.
권불십년에 화무십일홍이라 지금이야 또 나잇값은 해야 하니 그저 그만하지요 뭘.  gggg...




1. 천사.

그 때 내 찻집 테이블은 표면이 아주 매끄러웠습니다.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표면. 유리처럼 반들반들한 탁자에는 손만 갖다 대도 지문이 남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앉은 자리는 반드시 흔적이 남게 마련이지요. 손님이 나가고 탁자를 정리할라치면 적잖이 성가십니다. 뭔 탁자를 이따위로 장만했냔 말입니다.
.... 제작할 때 착오가 생긴 걸 사람 좋은 척, 그냥 좋은 게 좋다고 쓰기로 해놓고선 뒤늦게 타박이지요.

하여튼 흩어진 설탕이며 크림 같은 건 기본이고 담뱃재며 흘린 커피 자국에 손자국까지,
하다 못해 물걸레로 닦으면 물 자국이 그대로 남는 탓에 반드시 마른 걸레로 반들반들할 때까지 마무리를 해야 깨끗해집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그런데 이 화장기 없는 맨얼굴의 아가씨가 앉았던 자리는 도대체 사람의 흔적이 없어요.
혹시나 해서 머리를 옆으로 처박고 역광으로 살펴봐도 거울같이 반들반들 반짝반짝.
도대체 사람이 앉았는지 귀신이 앉았는지.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마시고 난 커피 잔 바닥에 옅은 갈색으로 남은 커피 한 방울. 설탕 통이며 크림 통을 열어봐도 숟가락 자국도 없어요.
갈 데 없는 천사네 뭐. 화장기 없이 수수한 얼굴이며 늘 단정한 매무새도 얼마나 예뻤는지.
아무튼 그렇게 한동안 내 찻집의 단골손님이더니 어느 날 그냥 조금씩 뜸 해지다가 회자정리,
인간사가 늘 그렇듯이 그 뒤로 종무소식이지요.
늘 목욕탕에서 갓 나온 천사 같다고 생각해서 참 보기좋았던 처자였습니다.


2. 이브 몽땅

그 사나이가 들어오면 커피 한 잔을 갖다 주고 잠시 한 숨 돌린 후에 나는 음반을 갈아 끼우지요. 말 안해도 자동입니다.
무슨 음반이냐고요?

이브 몽땅이 부른 '파리의 하늘 밑'.



간혹 다른 곡을 얹어 달라고 예의 바르게 부탁하는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내 찻집에 올 때마다 그 곡은 반드시 듣고서야 일어서던 사나이지요.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크지 않은 키에 늘 모직 콤비 자켓을 입고 나타나던 그 사나이 말입니다.
언젠가
뭔 사연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오래 전에 헤어진 연인과 같이 좋아했던 곡이라던데
늘 혼자 와서 조용히 앉아 담배 하나 피워 물고 이브 몽땅의 그 노래를 지그시 듣고는
나갈 때마다 좋은 음반을 갖고 계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치사를 하곤 했었습니다.

그 사나이, 내가 찻집 그만 두기 전에 서울로 발령 받아 간다고 인사하고 갔는데
아. 그 사나이,
가슴 아린 옛사랑 이제는 가슴에 묻어두고
좋은 사람 만나서 알콩달콩 따시게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가슴 아린 옛사랑은 낡은 편지처럼 가슴에 묻어 두고 그리 따시게 살고 있을 걸요.
아주 멋을 제대로 알고 있는 로맨틱한 사나이였다니까요.


3. 깐깐한 의대생

키 크고 얼굴 멀건 의대생.
혼자 와서도 꼭 6인용 커다란 원탁을 차지하고 앉아서 아주 두-꺼운 의학 원서 펴놓고 시커먼 뿔테 안경 만지작거리며 혼자 구시렁구시렁 커피 한 잔으로 두 시간 이상 때우고 나가던 커피 귀신.
커피 맛에는 아마 웬만큼 꿰고 있었던지,
혹 싸이폰에서 시간을 조금 넘겼거나 드리퍼에서 내렸다가 다시 끓인 커피는 귀신같이 알고 바꿔달라던
아, 그 지긋지긋한 배암의 혓바닥.

그래도 커피 장사 몇 년에 타성에 젖어 게을러지던 내게 경각심을 깨워주던 손님이었습니다.
지금쯤은 나이 사십 넘은 중견 의사가 돼서 어딘가에서 허연 가운 입고 그윽하게 폼 잡고 있겠지요.
여전히 까다롭기 그지없는 입맛으로 커피 즐기고 있을까 몰라.
그 까다로운 성벽으로 환자 보자면 나쁜 소리는 안들을 것 같은데.


4. 술 귀신

반드시 술에 쩔어서야 문 열고 들어서던 사나이.
뭔 아는 척을 그리도 하고 싶은지
시시콜콜 구석구석 듣도 보도 못한 얄궂은 음악들만 찾아서 수첩에 빼곡이 메모를 해 갖고 와서는 나더러 얹어달라고, 아니, 찻집에 이런 음악도 있냐 없냐 맨날 억지 부리던 사나이.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죽치고 앉아 한 곡 끝나면 또 한 곡, 끝없이 주머니에 부시럭부시럭 메모 꺼내며 듣도 보도 못한 곡명 주저리 외고 앉아서 아는 체 할려고 무진 애쓰던 사나이.

에이 참, 내 커피 한 잔 덜 팔아도 밥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겠지,
아이고 지겨워서, 넌 인제 내 집에 고만 와라 하고 내 쫓아버렸던 사나이.
귀신은 뭐 하고 있었을까 그런 인간들 좀 안 잡아가고.


5. 그 여자

학생도 아니고 선생도 아니고
(의대, 미대, 음대만 남아있던 캠퍼스 앞이라 손님의 대부분이 학생 아니면 교수였음.)
아주 막돼먹은 느낌은 아닌데 짙은 화장으로 야릇하게 묘한 분위기의 여인네.
아주 세련된 옷차림에 유창한 서울 말로 촌놈 기죽이던 그 여인네.
언젠가 밤늦게 와서는 오늘 밤 소파에서 좀 자고 가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었는데.
어마 뜨거라,
노총각 혼자 기거하는 찻집에 그 어인 해괴한 말씀이냐고
간곡히 고사하여 겨우 돌려보내고 돌아서서는,
이런 젠장, 이십년이 다 되도록 생각 할 때마다 후회가 막심하네요. 그것 참. @@.....


6. 숙희(?) 숙현(?)

찻집에 손님도 없고 음악도 지겹고 할 때면 간혹 기타 꺼내서 혼자 노래 부르곤 했었는데
하필 그 때 들어와서 턱 괴고 앉아 내 노래 끝날 때까지 다 듣고는 아련한 눈빛으로
'노래에서 가을 냄새가 나요.'

아니, 사람 얼굴 처음 보나, 왜 남의 총각 얼굴은 빤히 쳐다보고 앉아서 일도 못하게.
뭔가 그럴싸할 가능성이 농후했건만
늘 단짝 친구랑 같이 와서 수다 떨고 나가는 바람에 고만 그러고 말았지요.
그러게 혼자 오면 어디 덧나나 몰라.


7. 꼬맹이들 떼거리

올망졸망한 음악과 여학생 다수.
장가도 못간 날더러 맨날 아저씨라며 빵이며 주전부리 잔뜩 사 들고 와서는
두 세 시간씩 떠들고는 탁자 위에 껍데기 수북하게 쌓아놓고 나가던 녀석들입니다.
수업 언제냐 나 밥 좀 먹고 오께. 아예 주방까지 맡기고 나갈 만큼 친했던 단골들이었지요.

애구. 저 철없는 것들이 언제 선생이 될라나 싶었는데 손가락 꼽아보니 아따, 그 녀석들도 지금은 마흔 언저리 넘어섰네요. 보나마나 더러더러 제법 머리 큰 아들딸도 두엇 있을테고.
아이고, 참, 세월은 잘도 갑니다. 언제 어디쯤 한 번 볼 수나 있을라는지. 세월아 네월아 그럼 나는 대체 얼마큼 늙었을까요.



# 한 이십년 전에 몇 년간 찻집을 했었습니다.
돈은 별로 못벌었었지만 참 좋았던 때라 그 때 익혔던 얼굴들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만나봐야겠다, 이런 건 아니고 한 번쯤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정도로..
아직도 생각나는 재미있는 손님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독감에 걸려서 음악을 들어보자.
이 때, 홍콩 A형이니 북경 B형이니 하는,
비교적 회복이 더디고 후유증이 심한 독감으로 골라잡으면 더 좋다.
사나흘 제대로 앓아보면 온몸의 진기는 다 빠져나가고 뱀 허물 같은 껍데기만 남는다.
물론 눈치 채셨겠지만 다이어트에도 썩 유효하다.
할 수만 있다면 쓸데없는 생각들로 밤잠을 설친다든지 끼니를 걸러서.
몸을 일시적으로 허약하게 만드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힘에 부치는 무리한 육체노동을 씩씩하게 감행한 후에
난닝구만 입고 찬바람에 땀을 말리는 일도 썩 좋은 효과가 있다.
그리하여 뜬금없이 으실으실 추워지거나 까닭 없이 머리가 띵~ 해지면
일단 몸살감기의 초급 과정으로 진입했다는 신호이니 기뻐해도 된다.

증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두통과 조갈과 현기증,
거기에 고열까지 일습으로 갖추게 되어 일만 가지 인생이 다 귀찮아 질 때쯤 되면
열을 내린답시는 미명하에 냉방이 아주 잘 된 골방에 격리 되어 이불감고 누워서
음악만 냅다 들어보자.


고열에 들떴을 때 들리는 음악은 좀 다르다.
유념해야 할 것은, 평소에 자주 듣던 바로크 음악들,
그 중에서도 단선율이 고만고만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음악들은
정신을 더욱 몽롱하게 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기타(guitar) 곡들도 마찬가지다.
고저 기복이 크고 음량의 기복도 큰 관현악곡들이 그래도 다소 정신을 쇄락하게 해 주지만
땡중 이 앓는 소리 같은 오르간 독주곡이라든지
고전 낭만 시대의 실내악들을 듣자하면
때로 증세가 악화되어 혼수상태를 방불케 하는 경우도 있다.

책이나 여타 매체를 통한 간접 경험, 혹은 제 3자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 등을 백안시 하며 

그거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며 의심귀 들린,
가급적 본인의 직접 체험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진지한 분들은
반드시 경험해 보아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슈타커의 무반주 첼로.
.............
열이 내리면 다시 들어야지.
내가 아무리 이 곡을 사랑해 마지않아서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40도에 육박하는 체열에서는 거의 몽환이다.


내친김에 대포 소리도 한 번 들어보자. 1812.
뻥! 뻥! 역시 뻥이 좀 과하다.
차이코프스키는 지가 쓰는 곡에 지가 휩쓸리는 듯한 혐의가 짙다.
그래도 오랜만에 들어보니 간만에 재미는 있다.

니꼴라에바의 사랑하는 바하 시리즈는 기피 음악이다. 기껏 돌아 온 정신을 다시 원위치 시킨다.

가사 있는 음악들은 모조리 금물이다.
멜로디는 어디로 달아나 버리고 가사만 귓구멍으로 파고든다.
사라 맥라클란의 앤젤은 구멍 뚫린 스폰지같이 들리는구나. 모래밭에서 달리기 하는 기분이다.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는 꼭꼭 숨은 마리아를 찾아서 운동장 백 바퀴 돌기.


소란스런 관현악곡들은 전쟁터다. 천지사방에 병장기 부딪는 소리로 요란하다.
이때쯤 노파심에서 잔소리 한마디 하는데 절대로 비니루 음반(LP)을 만져서는 안 된다.
오한으로 비롯된 진동계수가 한도를 넘어 바늘을 부질러먹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러니 엘피보다 무조건 시디만 듣자.
그것조차도 귀찮으면. 에라, 삼천만의 음악방송 KBS FM이나 켜 놓고 자빠져버리든지.


................
다시 읽어보니 역시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보장할 수 없는 촌평들이다.
다만 체열이 38.5도 이상일 때는 때에 따라 보장할 수도 있다.
책이건 음악이건 역시 머리가 멍청해지면 단순스토리가 더 잘 들린다.
독감으로 고열에 시달릴 때는 별로 철학적이고 싶지 않다. 사색적이고 싶지도 않다. 절대로.
그저 종합감기약 광고처럼 단순 명쾌해지고 싶다. 오로지.언제는 철학적이고 사색적 이기라도 했냐고?
뭐, 열에 들뜨면 헛소리도 나오기 마련이다. 지나가는 말 붙들고 쪼잔하게 시시콜콜 따지지 말자.


어떻든 이런 저런 음악들을 바꾸어 듣다보면 늘 느끼는 것이,
대부분의 음악은 일견 밝고 즐거워 보이는 것들도 
듣다보면 어쩐지 아련한 슬픔을 바탕에 깔아 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의 삶이 그러해서 그러한 것일까?
회자정리. 제 아무리 기뻐 날뛰고 일생 행복에 겨워 넌더리가 나는 삶이라도
종래에는 기어코 슬프고야 마는 이승의 삶이 그리 만드는 것일까?
그런데 내가 시방 무슨 책임지지 못할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걸까?
아, 물론 열에 들뜨면 무슨 소린들 못하겠냐만, 감당 못할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자.
와병 중에 떠는 주접이라도 주접은 용서가 잘 안 된다.


결론은 단순하다. 독감은 하늘로 부터 받은 훌륭한 자아성찰의 도구다.
지극히 단순 명료한 육체적인 고통 하나로 인하여
고귀하고 우아한 척하던 인간의 밑바닥 성질이 다 드러난다.
일생 목숨 걸고 대외비로 지켜 오던 냄새 나는 괴춤 다 풀어 던지고,
품위 유지와 체면과 염치의 굴레에 갇혀 있던 너덜너덜한 본성들이 아주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사나흘 앓다보면 호모 사피엔스는 일찌감치 물 말아 먹어버리고
피테칸트로푸스나 크로마뇽인으로 변신을 하고야 만다는 것이다.
아니 아주 감동적으로 영장류로 변신 할 수도 있겠다. 으르릉...... 아주 사람을 잡는다니까. 일주일 쯤 앓고 육신의 진액을 다 뽑아내고 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공히 폐인이 따로 없다. 

그러니 나이 먹어서 거지발싸개 꼴로 구겨져 방구석에 처박힌 채 구박 받지 않을려면 아프지 말자.


부록/// 독감에 관한 열두 가지 리포트.

1.
그냥 기분이 언짢다.
몇 시간 지속하는 경우도 있고 급성으로 총 맞은 듯이 일순간에 픽 꼬꾸라지는 경우도 있기는 있다.

2.
오한이 들기 시작한다.
처음엔 열은 안 나고 오한만 든다. 죄 지은 것도 없이 괜히 덜덜 떨린다. 그러니 모쪼록 착하게 살자.

3.
편도선이 붓는다. 목 안쪽으로 불쾌한 느낌이 깊어진다.
그리하여 먹는 것이 즐거워지지 않으므로 신경질이 곱절 늘어난다.

4.
드디어 열이 난다. 올 것이 왔으니 어금니 물고 극력 환영하자. 좋은 말 할 때 각오하는 편이 좋다.

5.
두통, 현기증, 조갈, 등이 동반된다. 속도 메스꺼워진다.

6.
추워서 못 견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덜덜 떤다.

7.
기침은 심오하게 깊어져 컹컹 늑대 소리를 낼 때쯤이면 인제는 잠도 안 온다.
시간은 더럽게 안 간다.

8.
온 몸의 뼈마디가 몇 개인지 셀 수 있다. 마디마다 쑤시고 아프니까.

9.
입 안이 소태가 된다.
맛을 느낄 수 없으므로 소금이나 간장을 무진장 퍼 넣게 된다. 당연히 갈증은 더 심해진다.

10.
점점 살기가 싫어진다.

11.
일찌기 세상을 뜨신 어머니가 몹시 보고 싶어진다.

12.
결국에는 나중에 발등을 찍고 후회 하더라도 일단 장가는 들고 볼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혹시라도 미모의 개인 간병인을 둘 형편이 된다면 또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다.
아니라면 혼자 뒤집어쓰고 한 번 앓아보시든지.


주의 사항/
1.
약 먹으면 일주일, 약 안 먹으면 칠일이면 낫는다는 낭설을 믿지 말자. 그대는 청춘이 아니다.
위의 증상 중 두 가지 이상이 일치한다면 만사 제쳐놓고 병원으로 달려가자.
밥 먹던 숟가락도 내 던지고 빨리 달려가자.
무조건 엄살떨어서 궁뎅이 까서 주사 맞고 끼니마다 약 한주먹씩 삼키자.
그래야 그나마 약기운으로나마 겨우 운신이라도 할 수가 있다.
별 일 있으랴 방심하거나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다가는
갱신도 못하고 걸레처럼 길바닥에 어질러지는 불상사도 생길 수 있음을 상기하자.
치사하게 감기 몸살 따위로 병원을 가냐고?
오기.... 오기나 쎈 척, 그런 거 그대의 일생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2.
운전은 되도록 삼가 하자. 맞은편의 차가 오는지 가는지도 구분이 잘 안 된다.
그래도 기어이 운전을 해야 할 형편이라면 무조건 열은 내려놓고 핸들을 잡으라.
얼음주머니를 뒤집어쓰든지 해열제를 바가지로 들이마시든지 체온계를 아주 박살 내 버리든지,
어찌 됐든 열은 내리고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 안 그러면 죽는다.
체열 38.5도는 혈중 알콜 농도 2.0 이랑 맞먹는다.
눈에 보이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큰 코 다친다. 매사에 눈을 의심해야 한다.
보고도 의심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3.
찬 음식, 술, 날 것 들을 먹지 말자. 꼭 먹고 싶다면 무조건 익혀서 먹자.
생선회도 익혀 먹고 과일은 구워 먹고 술은 연탄불에 두어 시간 졸여서 먹자.
그럭저럭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착실히 먹어 놓자. 배가 고프지 않아도 저울에 달아서 쑤셔 넣자.
뱃속까지 비워두면 영양실조를 동반한 혼수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아, 물론 거룩한 호모 사피엔스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토하지 않을만큼만 먹어야 한다.

4.
열이 내리고 땀이 나기 시작하면 무조건 이불 뒤집어쓰고 땀을 빼자.
자의건 타의건 땀 빼고 나면 인물도 한 인물 더 난다.
땀 빼기에 유용한 도구로는 고전적으로는 구들막에 핫이불 뒤집어쓰기를 비롯해서
소주와 함께 대구 볼태기 찜을 섭취하는 것 까지 매우 다양한 방법이 있다.
다만 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부실한 몸을 끌고 황토찜질방이나 한증막에 기어들어가서 생기는 불상사에 대해서는 본인은 법적 도의적 책임을 면하고자 한다.

5.
아이들을 무조건 격리 시켜야 한다.
아이들을 격리시킬 수 없으면 스스로 격리되자. (예: 불 안 땐 골방이나 문간방 등등,)
거룩한 결단이라고 감동하실 필요는 없다.
어린놈들이 앓기 시작하면 칭병하고 누워서 쉴 수 있는 권리마저 깨끗이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니까.

6.
아내나 남편도 격리 시키자. 둘 다 엎어지면 집안이 쑥대밭이 된다.
또한 긴 병에 곱게 보이는 놈 없다.
며칠 앓다보면 눈구멍 퀭하게 드러누워서 유언무언의 괄시를 받을 각오는 당연지사다.
그래도 같이 앓아누워서 물 한 잔 먹고 싶어도 상호간에 벌벌 기어 다녀야 할 지경보다는
다소의 핍박을 감내하고서라도 한 사람은 성한 편이 낫다.

7.
하여간에 건강한 가족들과는 무조건 격리된 공간에서 구분된 도구를 사용하며
매우 불쌍하게 며칠을 보낼 각오를 하자.

8.
그리고 실컷 아프고 난 뒤에 무슨 큰 벼슬 한 것처럼 이렇게 떠들지 말자.





우리 집 뒷집 실성한 할매는 허구헌날 혼자서 중얼거린다.

어느 집 후처로 들어와 살다가 서방 전처 다 죽고 전처 자식 하나 데불고 살더니 그 전처 자식도 연전에 죽고 달구새끼 몇 마리랑 같이 사는데 그 할매, 간혹 담 너머로 들릴 만큼 괙괙 소리를 질러댄다.


'이년아! 그래서 뭐시 우쨌냐고!!'

'더런 년아! 니가 뭐시 우째서 뭐 어쩌구 그랬단 말이가!!'


원 참, 달구새끼가 뭘 알아들어. 지나가는 들 고양이가 말귀를 알아 듣냐고.

당연히 ‘이년아!’ 라든지 ‘더런 년아!’ 다음의 이야기는 내가 못 알아듣는 말이다. 

뭐 무슨 사연인지는 내 알 바 없고 알아봤자 별 것도 없겠지만 대개 '놈'짜는 없고 주로 '년'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남정네한테 원한을 가졌거나 앙심을 품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여서 저으기 안심이기는 하다.


대개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사람인데다가 천성은 착해 보이는 것이 여차한 경우에도 이웃에게 해꼬지를 할만한 사람은 아닌 듯한데, 어떤 날은 밤이 깊도록 혼자 뭔가를 중얼거리고 간혹 소리를 지르고 그러기도 하지.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또 멀쩡하게 제 정신으로 잠시 돌아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뚤레뚤레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서서 뭔가를 부탁하기도 한다.


'아재요. 선풍기가 왜 안 돌아가는지.'

'아재요. 데레비가 안나오네요.'

'춥어 죽것는디 보일라 좀 돌리주소.'


그러다가 살짝 돌아갈 때는 웃기는 소릴 하고.


'아재네 집 전깃줄이 흔들흔들 하니까 우리 집 지붕 따까리가 다 날아갔잖아요!'

'감나무 앞에 서 있을 적에는 마당을 쓸면 안 되지요.'(??)


아무튼 그 할매는 실성을 했다. 뭘로 보고 아냐면 아무도 없는데 저 혼자 쭝얼거리고 히히덕거리는 걸로 알지. 

그런데 오늘 청소기를 고치러 나섰다가 실성한 이를 둘이나 더 보았다. 

하나는 마티즈 운전석에 앉았던 분칠한 아줌마.

나랑 나란히 서서 신호대기를 하는데 옆자리며 뒷자리에 사람은 아무도 없드만 저 혼자서 '야이 가시나야!'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더니 깔깔 웃기도 하고 연신 뭔가를 주절거리데. 내 신호가 바뀌었으니 그냥 오기는 했는데 영락없이 정신 나간 사람 형상이드만.


읍내 다 와서 엘지 서비스 앞에 차를 세우는데 이번에는 순경 하나가 순찰차 옆에 서서 머리를 땅으로 처박고 뭔가를 중얼거리데. 혼자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하다가 실실 웃기도 하고 혼자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차면서 주절주절 뭘 한참 중얼거리드만.

아니,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다 하더라도 순경마저 실성을 하면 어쩌냔 말이다. 여차하다가 눈이 휙 돌아가서 허리춤에 권총을 빼어들어 빵! 하고 쏘면 거 참 야단이란 말이지.


뭐, 보나마나 핸즈프리니 전화기 이어폰을 귀에 꽂고들 하는 수작이라 요즘에야 그리 낯선 풍경도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뒷집 실성한 할매랑 하는 양이 그리 달라보이지를 않아서 그래 한마디 해 보는거지.

그래서 나도 이어폰 달린 전화기 목걸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거 잘 안 써. 주렁주렁 귀찮기도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어쩐지 남 보기에 정신 나간 얼빠진 이처럼 보일까 찜찜해서. 사람이 구식이라 그런지 전화기는 모름지기 손에 들고 귀에 갖다 붙여야 제 격이라는 생각이야.  


2003. 08.21




 

큰 아이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한 십여 년 전 쯤 이야깁니다.

오래 앓던 천식으로 몸이 약해져서 유치원도 못가고 집에서 책만 보며 애비와 씨름하던 어린놈이 어느 날엔가 어디서 봤는지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에 혼이 나가버렸습니다.


어지간한 장난감에도 좀처럼 욕심을 내지 않던 놈이 아빠 자전거, 아빠 자전거,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전거를 사 내라고 석 달 열흘을 졸라대는데 자식 병 수발 한다고 귓구멍 틀어막은 채로 밥벌이까지 접어버렸던 애비는 자전거를 사 줄 재주가 없었습니다.

새끼 곁을 지키는 것만 소중한 줄 알았지 새끼 소원도 애비에게 달린 것을 몰랐던 어리석은 애비였지요. 어린놈은 자전거에 목을 매고 애비는 빈 주머니만 뒤적거립니다. 이런 막막한 세상아.


제 의논과는 달리 하던 일 다 접고 애한테만 매달린 후로 아내와도 서로 어긋나서 불편했던 때였으니 내 딴에도 허깨비 같은 자존심은 남아서는 말 빚 질까봐 입은 딱 닫아걸고 혼자 냉가슴만 앓았지요.

그렇게 그놈의 자전거 때문에 어린놈과 밀고 당기던 그 어느 날 철딱서니 없이 만만한 애비만 죽어라고 졸라대는 어린놈을 달래다 못해 그만 소리를 꽥 질러서 울려놓고는 훌쩍거리는 어린놈을 보자 하니 기가 막히네요. 그래, 혼자 우울해서 탈기를 하고 방 한 구석에 멍하니 처박혀 있자하니 눈에 띄는 건 고물 오디오에 판때기 밖에 없습니다.


..........아뿔사!!!

이런 등신 같은 인간을 봤나. 자전거에 목숨 거는 어린 새끼를 두고 삼년 가야 손 한 번 안가는 판때기들은 잔뜩 보듬고 있는 꼴이라니.

그 날로 판꽂이를 뒤집어엎어서 손 안 간다는 팔백 장 뽑아내어 트렁크며 뒷자리에 싣고는 중고 음반 산다는 곳 찾아 어린놈을 옆에 태우고 부산으로 대구로 헤매고 다녔습니다.


앗따, 이놈아. 애비도 돈 생겼구나. 인제는 자전거 사러 가자.

그 날로 반짝반짝 노란 자전거를 사서 싣고 왔습니다.

바퀴살에 방울까지 달아서 굴러가면 도로롱 소리도 나는 아주 멋진 자전거였습니다.

비닐도 안 벗긴 새 자전거를 손에 쥔 어린놈은 입 꼬리가 귀에 걸려서 연신 싱글벙글, 애 엄마는 무슨 돈이냐고 물었지만 그냥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입 다물고 암말도 안했었지요.


그렇지요. 아무리 그 당시에 손 안 가는 음반이었다 해도 그렇지. 그거, 딴에는 꽤나 어지럽게 살아왔던 일생, 내 손때에 내 숨소리까지 묻어있는 그런 음반들이었습니다. 참, 내 자식 소원이 아니었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을 그런 난리였지요.


어찌 됐든 그 놈의 자전거, 어린놈은 학교 운동장에서 넘어지고 무릎 깨고 하면서 익힌 솜씨로 등교 길이며 동네 나들이며 그리도 신나게 끌고 다니더니 점점 키가 크고 무릎이 핸들에 닿을 때가 되니 더 이상 타지 못하고 언젠가부터 헛간에 서 있었습니다. 그놈의 묘한 이력 때문에 남 줄 생각도 못하고, 버릴 생각도 못하고, 그냥 세워만 놓았었습니다. 반짝이던 핸들도 빨갛게 녹이 슬고 바람 빠진 타이어는 납작하게 삭았습니다.


몇 년을 그냥 그대로 세워 두었습니다. 볼 때마다 애틋한 마음에 한번씩 건드려보기도 하고 어쩌다 심사가 사나운 날에는 툭 차보기도 했지만 하도 낡아버려서 작은 놈 줄 생각도 못하고 그 놈의 자전거, 헛간에 세워 둔 채로 눈길만 주고받고 몇 해가 지났습니다.

그러다가 그 어느 날 오후에 무슨 일인지 마음이 선듯해서 이웃집 텃밭에 비닐하우스 뜯으러 온 고물장수 할아버지에게 실어 보냈습니다.
집에 있는 쇠붙이 이것저것 실어 올리다가 충동적으로 얼른 실어 보내 놓고서는, 아니다, 이게 그냥 보낼 일이 아니다 싶어서 그 할아버지 얼른 뒤따라 가서 사진 두어장 찍어 왔지요. 아주 청승이 늘어졌습니다. 
 


‘아빠, 내 자전거 버렸어?’


그 날 밤, 이제 다 커버린 어린놈은 낮에 찍어 둔 자전거 사진을 만지작거리는 날 보고 잠시 들여다보는 듯 하더니 심드렁하게 묻고는 그냥 그만이었습니다. 


.......에라 이놈아, 이 자전거가 그냥 자전거인줄 아느냐.


꼭 정 붙이 사람이나 짐승을 보낸 듯 공연히 마음이 헛헛하고 우울해져서 고물 값으로 받은 삼천 원, 그 돈 손에 쥐고 하도 마음이 얄궂어 차마 쓰지를 못하고 아이 통장에 그냥 넣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니터에 떠 있는 사진을 보다가 혼자서 중얼중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뭐 꼭 인사라기보다는 그냥 차마 그냥 보내기가 애잔해서 마음으로 그렇게 보내 주었다는 말이지요.


........

잘 가라.
그리고 펄펄 끓는 용광로에 몸 한 번 덥혔다가, 다시 태어날 때도 될 수만 있다면 다시 한 번 더 노란 자전거로 태어나 노랑 자전거에 혹해 애비를 졸라대는 작은 계집아이에게로 가거라. 잘 가거라.



2006. 01.21


1.
내가 아는 진수라는 후배는 낚시광입니다.
언젠가 대낚시 예찬에 장광설이 늘어진 진수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친구가 물었습니다.

'릴도 있잖아?'

그 친구의 말에 진수는 상기된 얼굴로 단호하게 잘라 말했습니다.

'릴을 쓰는 사람은 어부입니다. 釣士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낚시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그 후배의 낚시에 대한 대단한 자긍심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좀 듣기 거북한 비린내도 같이 맡았지요.
어부가 뭘 어쨌다고? 나는 공연히 심사가 뒤틀려서 진수에게 대패질을 했습니다.

'어이, 먹고 사는 일보다 더 숭고한 것이 있다면 어디 한 번 꺼내봐라.'

아, 당연히 그 때나 지금이나 낚시를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나 또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곁눈질로라도 한 번 배워 볼까 싶은 생각이 없지 않은 매력있는 취미 생활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사돈의 팔 촌에 처삼촌까지 뒤져봐도 우리 집안이야 맨 산골 촌놈, 눈귀를 씻고 살펴 봐도 어부라고는 없으니 공연히 어부를 두둔한답시고 무단히 팔 걷고 나서서 구정물 뒤집어 쓸 일은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랑하는 후배 녀석이 낚시에 대한 지나친 애정을 핑계삼아서 그것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을 은근히 조롱하고 비하하는 꼬라지가 뵈기 싫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랄 뿐입니다.

2.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흔히 예술가를 비하하여 부를 때 , 혹은 그대들 스스로 자조하여 칭할 때, '내가 장사꾼이냐?' 하고 비틀어 튕깁니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 비유처럼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이거 아주 웃기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장사꾼이 아닌 줄 알았냐는 겁니다.
나는 진정한 예술가는 진정한 장사꾼과 다를 바 없으며 오히려 다르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예술인들은 우리에게 단순히 지갑을 여는 것 만으로도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중개 해 주는 또 다른 상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논바닥에 발 한 번 담그지 않고도 동네 마트에만 가면 깨끗하게 도정 된 쌀을 사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이것은 오히려 감사한 일이고 아름다운 모습 아닌가요?

물론 저자에 보자하면 간혹 소비자에게 눈을 부라리고 삿대질하는 간뗑이가 부은 장사꾼도 없지는 않지만 그건 아시다시피 곧 망하기를 작정했거나, 아니라면 안면으로 먹고 사는 동네 골목 수퍼나 독과점을 무기삼아 턱주가리로 장사 해 먹는 불한당일 뿐입니다. 이런 저런 까닭으로해서 나는 이 말을 조자룡이 헌 칼 꺼내드끼 써 먹습니다.

'먹고 사는 것보다 더 거룩하고 숭고한 게 어디 있어?'

대낮에 예술적으로 한 잔 꺾고 길바닥에 어질러진 채로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세상을 업신 여기거나 뭇 사람들의 이목이 못내 그리워 조금이라도 남달라보이기 위해서 갖은 애를 써야만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 일에 미친듯이 매달려 있자면 저절로 남 달라 보이기도 하고 그 모습이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이지 남 달라 보이기 위해서 미친듯이 노력하는 모습은 글쎄올시다...
어쨌든 그런 안쓰러운 모습은 순전히 그대들의 개성이고 자유지만, 여기저기서 줏어 모은 유치한 행위 따위나 일삼으며 예술가연하는 그대들. 지 잘난 맛으로 사는 거야 무방하지만 사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실 좀 거시기 하거든요. 꼭 기본 실력은 개차반이면서 오로지 특이함이나 기괴함으로 어필 해보려는 싸구려 상품들을 보는 느낌과 어쩐지 비슷합니다.
단지 품질이 떨어진다는 단순한 사실 이외에도 택도 아닌 것으로 어필하려고 뼁기칠 해 놓은 듯한 불쾌감까지 유발하는 그런 느낌 말입니다. 인간과 삶에 대한 생각이 진지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런 야바위는 못팔아먹지요?
아, 당연히 여기서 싸구려라는 것은 가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껍질만의 이미지로 한 몫 잡으려는 그 의도의 얄팍함에 대한 것이지.

3.
아니 아니, 낫살이나 지긋이 먹어서 희끗한 머리 빵떡모자로 삐딱하게 눌러 쓰고 빨뿌리 담배 뻑뻑 빠는 할배 할매들이야 뭐 어때요. 얼마든지 애교로 봐 줄 용의가 있고 말고지요. 그거야 최백호 말 마따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변두리 낭만을 위한 애절한 탱고 일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건 쉬염이 발등을 덮고 팔다리가 후들거릴 때 쯤 해서야 '그럴 수도 있을 일'입니다. 북망산이 코 앞인 다 늙은 낭만객이 민폐 끼쳐봤자 얼마나 가겠냐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여기저기서 줏어 모은 기행이나 흉내내면서 술주정도 예술, 민폐도 예술, 시건방도 예술, 찍자도 예술, 행패도 예술, 하다 못해 아랫도리 함부로 내돌리는 것도 예술적이라며 숫캐 암캐같이 아무데서나 발정 난 청춘을 변호하느라 기염을 토하는 자칭 타칭 예술가들. 나는 그런 십원짜리들은 예술가로 인정 못합니다. 그 옛날, 으랏차차 차력 보여주고 만병통치 약 팔던 약장사들은 그래도 관중들에게 겸손하기라도 했지. 하다 못해 구경하는 재미라도 있었잖아요?

기행이란 것은 말이 좋아 기행이지 사실은 별꼴이나 다름 없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별꼴은 운 나쁘게 진짜배기와 맞딱뜨렸을 때 인격이나 실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떨이로 두 손 털고 오링 되는 패지요. 그 싸구려 예술이나 사이비 인격이 통하는 부류라는 것도 어차피 그대들과 비슷하거나 달라봤자 겉모습만 조금 바꾼 마이너체인지 시리즈일뿐이니, 이거나 저거나 쉽게 말해서 주로 예술을 보따리에 싸 다니며 민폐를 끼치는 분이나 뭔가 색달라 보이는 별난 짓을 통해 예술적 악취를 풍기고 다니는 분들을 말합니다. 나는 둘 다 예술적 양아치로 생각합니다.

하긴 별꼴이건 기행이건 사실 뭐, 별 개차반같은 날궂이도 오다가다 언뜻 보면 한 번쯤은 구경해 볼 만도 합니다. 하지만 예술이 무슨 면죄부도 아니고 면허증도 아닌 다음에야 그런 날궂이는 젊을 때 한 두번, 어쩌다 생각 난듯이 한 번쯤 해야 맛이지 그거 뭔 듣기 좋은 꽃노래라고 밤낮으로 불어대면 그 날로 반상회 소집하고 덕석말이 들어갑니다. 동네 사람들이라고 너나 없이 다 순덕이는 아니거든.

그러니 끝까지 고상하게 버텨봤자 장사꾼이 소비자로 인하여 밥을 벌어먹는 것 처럼 예술가 역시도 밥은 먹어야 살고, 결국은 그 놈의 예술이란 것도 역시, 그 짓 아니면 밥 빌어먹고 살 길이 없으니 에라 모르겠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남 보기 좋게 포장해 놓은 하나의 상품이며, 그러나 마나 제아무리 시대를 앞서는 뛰어난 예술이라 하더라도 역시 그 대상은 '사람에게로'지요. 세상에 개나 원숭이를 위해서 우울하게 고뇌하는 예술가는 없을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것을 구매하는 대중이나 그 대중이 세상 먼지 뒤집어쓰면서 시난고난 살아가는 이 먼지투성이 세상이 아니라면 그 놈의 거룩한 예술도 존재 이유가 없는 거 맞지요? 그 수준 낮은 대중이 사실은 다 너그들의 거룩한 예술의 존재 이유에 들어간다는 거 정말 모르겠어요? 송곳 구멍이나 들여다보면서 건방지게 턱주가리나 내 밀줄 알았지 도무지 겸손할 줄 모르는 호마이카 예술가 여러분.
내가 아는 어떤 화상이 그럽디다. 교만은 가장 부서지기 쉬운 값싼 유리그릇이라고. 교만한 인간보다 손쉬운 상대는 없다고. 그거 천만번 옳은 이야기니 귓구멍에 잘 새겨 들어둬요. 
4.
한 가지 더.
그대들이 남다른 재주를 가졌다고 해서 갑남을녀 보통 사람들이 대체로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대들과 같은 별난 재주는 정신적인 결손으로 비롯된 보상 작용의 과부하일 확률이 팔 할이 넘어요. 다친 상처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을 때 아물면서 부풀어 오른 보기 흉한 떡살같은 거 말입니다. 또한 그대들은 그대들 스스로 치열한 싸움 끝에 보통 사람과 같은 평범한 삶을 버린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보통 사람의 삶과 같은 평범한 삶을 누릴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평범하게 사는 거, 그거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땡볕에 어린 놈들 업고 걸리고 양 손에 시장 보따리 들고 콧등에 송글송글 땀방울 달고 골목길 들어서는 동네 아지매로 사는 것, 저녁이면 한 잔 걸치고 콧노래 부르면서 과자 봉다리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옆집 아저씨로 사는 것, 그거 사실은 사람 사는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능력이란 말이지요. 세상의 피와 살과 뼈가 되어 주는. 그런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없는 세상, 즉,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들 같은 '자칭 예술가'로 가득 차 있다는 상상을 해 보면 대번에 짐작이 되지요? 얼마나 끔찍한 세상이 될지.  

예술이랍시고 남다른 뭐 있는듯이 포장해놔봤자 책만 보면 베고 자는 장돌뱅이라도 시장 바닥 돌아가는 데는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훤하며 공부는 젬병이라도 시멘트 바르는 데는 도가 튼 그런 사람들이나 매한가지라는 겁니다. 혹시나 그대들이 세상을 위해 기여한다는 것이 그들의 능력에 비해 뭐가 얼마나 나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아, 그대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 대중보다 최소한 한 세대를 앞서 가는 대 예술가라 자부 한다고요?  그렇다면 참 잘 된 일이군요. 그 참에 밥그릇에는 신경 끊고 예술에만 전념 하시든지. 한 세대 지나고 나면 값 엄청 올라 갈테니 염려 붙들어매시고. 시대를 앞선 대 예술가 체면에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니가 나를 모르느냐 세상이 나를 버리는구나 배고픈 강아지처럼 짖지 말라는 겁니다.

이렇게 알아듣도록 줄줄이 풀어서 이야길 해 줘도, 웃기네, 소용 없다, 밥내 나는 대중 따위와 관계없이 당신 혼자 고고히 존재 해야겠다면 남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혼자 골방에서 다 해 먹든지 말입니다.
그대에게 관심 없어 무심히 지나가는 한 세대 뒤쳐진 무식한 삼돌이 삼순이 여러분들 붙들고 니가 내를 아나 모르나 자다 깨서 봉창 두드리듯 울부짖지 말라는 겁니다.

5.
마지막으로 한 가지.
보통 사람이 봐서는 도대체 재미도 없고 돈도 안되는 어려운 예술이 반드시 존재 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뭐 어쨌든, 난해한 예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재능입니다. 당신이 다행히도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 진심으로 축하를 드려야겠지요. 하지만 뭔 존재 가치고 나발이고를 다 떠나서 그 난해하다는 것은 결국 전달하는 방법일 뿐이란 건 알고 있지요? 난해한 예술이라는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예술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난해한 것이라는 거. 또한 그런 방법을 구사하는 여러분들 역시도 난해하건 불가해하거나 간에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류가 결국 몇 안된다는 것은 역시 잘 알고 시작했을 것이고.

그러니 사람이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하듯이 낫살이나 먹었으면 나이 값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싹수 없고 경박하기로 소문난 요즘 아이들도 사춘기만 지나면 내 코드에 안맞다고 징징거리고 보채지는 안해요. 잘난 척을 하고 싶다면 어떤 게 남사스런 일인지도 알아야지. 내가 내 인생을 사랑하고 예술을 즐기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고 그것이 잘 팔리기까지 한다면 더 좋은 일이지만 그거 빌미로 그 놈의 예술적인 그대의 인생까지 팔아 먹거나 행세 해 먹을 생각은 하지 말자는 겁니다. 

6.
마지막으로 요약해 봅시다.
첫째. 
끝끝내 우중충하게 예술적으로 우울해지고 싶다면 돈벌이에 신경을 끊어라.
둘째.
돈벌이가 목적이라면
그 같잖은 예술가 시늉은 집어치우고 싸구려 장사꾼임을 곱다시 인정하고 제대로 장사를 시작해라.
셋째.
그대가 진짜 훌륭한 예술가라서 둘 다 가져야겠다면
질도 좋고 잘 팔리는 물건을 만들어서 어디 뭔가를 한 번 본때있게 보여주시라.
넷째.
부디 여기저기 줏어 모은 기행 따위들 흉내 내지말고 예술 팔아서 술주정 하지말고, 민폐 끼치지 말고, 시건방 떨지 말고, 항상 소비자에게 겸손할 것이며, 특히 그 놈의 예술적으로 발정 난 아랫도리 함부로 내돌리는 짓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말이 좋아 예술이지, 사랑한다, 미안하다, 죽여라, 못 산다, 울부짖으며 어질러 놓고는 뒷 수습이 안되니 나중에는 사랑했노라 행복했노라 고뇌에 찬 분홍색 꽃 편지지 같은 소리나 하고 뒤로 나자빠질 것이 십중 팔구지요?
별별 사람이 별별 고상하고 거룩한 소리 해싸도 솔직히 들여다 보면 인생 잡사 대부분이 목구멍이나 아랫도리 감당 못해서 시작한 일인 거잖습니까.
세상을 지탱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그대들처럼 고상하게 쉬어 꼬부라진 예술가들이 아니라 새끼들 아파서 밤새 뜬 눈으로 동동거리는 순옥이 어마이, 내 식구 어느 놈이 건드렸냐 앞뒤 없이 괭이 자루 들고 나서는 맹구 아바이, 보리쌀 한 자루 때문에 지게 작대기로 공매를 맞고도 내 새끼 기 죽을라 터진 대가리 싸매고 포커 페이스로 버티는 삼식이 아부지들이에요. 그러니 따신 밥 먹고 식어 빠진 예술같은 소리 해쌓지 말고 일찌감치 정신들 차리기를 바랄 뿐이지요. 


2006 년 8 월경.  

 

1. 개

집 뒷산 중턱에 개막사가 두 개 있다.

습하고 컴컴한 도랑을 건너 있는 탓에 귀찮아서 직접 가 보지는 않았지만 짐작에 막사 하나에 예닐곱 마리의 못생긴 놈들이 멍멍거리고 산다. 올라가서 그 놈의 개 머릿수를 세어 볼일이야 없겠지만 간혹 자리다툼 하느라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그리 짐작한다. 술독으로 코 끄티가 빨간 딸기코 이장 영감이랑 배 나무집 중늙은이 하나가 조석으로 짠밥 깡통을 지게에 달고 각기 자기 소유의 개막사로 오르내린다.


사나흘에 한 번씩 대낮에 ‘개애~ 삽니다아~’ 하는 확성기를 달고 트럭들이 오고간다.

내 집이 동네 끄트머리 산길 길목에 있다보니 때가 맞으면 내 집 앞에 트럭 대 놓고 개 목줄 끌어 올리느라 부산을 떨기도 한다. 보신탕용 비육견(?) 이다. 요즘은 알지 못하나 몇 해 전에는 마리당 이삼십을 오갔으니 농사짓는 틈틈이 부업거리로는 괜찮은 듯 하다.


그러니 짐작으로도 뻔 한 것이 무슨 대단한 농장이라고 울 치고 담 치고 했겠는가 말이다.

대충 비닐하우스 뜯어 낸 뼈대 서너 개 둘러치고 판자때기 몇 개 얽어 놓은 위에 깨진 스레트 두어 장 얹어서 삭은 그물로 덮어씌운 이름만 막사다. 이름 하여 ‘영세 양견(?)업자’.

자,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이런 허름한 울쯤이야 송아지만 한 도사 잡종, 성질나면 뜯어 발기고 나서기야 식은 죽 먹기지. 가다 한 번씩 목줄만 감은 채로 허옇게 침 빼어 물고 동네 어귀나 논밭 사이로 대중없이 어슬렁거리는 험상궂은 인상의 도사 잡종을 보노라면 일순에 꼬리뼈 께가 찌릿 한 것이 기분이 썩 편치 않다. 그러니 어른도 그럴진대 아이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바람 쐬러 간다던 큰 놈도 화들짝 놀라서 ‘아빠, 목장 개 풀렸던데요.’ 땀이 송글송글 얼른 뛰어 들어오고 마당에서 모래장난 하던 작은 놈은 아주 기겁을 하면서 거의 경기를 한다. 대문도 없이 사는 남의 집 마당에도 불쑥 들어와서 지 멋대로 어슬렁거리고 기웃거리고 하니 깜짝 놀라고 말고지.


개 주인들에게 항의도 해 보고 참다못해 범 군청 차원에서 조치를 취해달라고 방견 신고도 몇 번 했었지만 ‘예에~ 자알 알아서 조치 하것습니다아~. 매번 말만 비단이다.

비단이고 공단이고 간에 일단 풀린 개를 그럼 당장에 어찌 하냐고.
그 때마다 파출소에서 총을 빌려다가 쾅 쏴버릴 수도 없는 일이고.
떼 지어 짠밥 먹여 몇 달 길러서 어지간하면 팔아먹는 놈들이다 보니 길들이기는커녕 이름조차 있을 턱이 있나. 하다못해 끈 풀린 똥개 찾드끼 ‘워어리, 이리 오너라.’ 라든지, ‘독구야 끌끌’ 이런 말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우습지도 않다. 그런 상황이면 딸기코 이장 영감이며 중년의 사나희는 작대기 하나 꼬나 든 채로 말 한 마디 없이 얼굴이 시뻘거러니 산 중턱이며 논밭 사이를 헐레벌떡 쫓아다니는 게 다다. 목 놓아 부를 이름이 있어야 말이지.

우습게보니 우습기도 하지만 사실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덩치 큰 이름 없는 개는 간헐성 맹수에 다름 아니다. 여차하면 사람을 해꼬지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 

 

2. 대문

그래서 담장만 대충 둘러치고 대문도 없이 살아 온지 어언 십여 년, 비장한 결심을 하고 대문을 짜서 달기로 했다.

말이 대문이지 기와지붕 얹어서 소슬 대문 세울 일이 있나. 피죽 먹고는 문고리도 달싹 못할 쇠대문 해 달 일이 있나. 그저 오가는 개만 못 들어오게 하면 만사형통인 울타리 수준의 사립문이다. 큰 맘 먹고 줄자 하나 꼬나들고 나서서 좌우의 폭을 재자하니 사 미터 수십 센치에 그나마 앞길이 비탈이라 마당어귀까지 조금 기울었다. 이런 젠장.

맨들맨들 시멘트 기둥에 여차저차 문을 달아 맬 궁리도 예삿일이 아니고 사 미터 남짓한 폭을 얽어 놓을 목재도 가격이 갑자을축 만만치가 않다. 하릴없이 줄자만 부여잡고 사립 어귀에서 서성거리기를 수삼일, 공언 후에 목을 늘이고 기다리던 애 엄마가 참지 못하고 묻는다.


‘담이 아부지, 대문은 은제 짜요?’

‘그저 궁리 중이로구만.’


코가 석자나 빠져서 시지부지 말 끝에 힘이 안 들어간다.

뻔한 쌈짓돈 통수에 목재며 각종 자재를 꼽아 보니 갑자는 을축이라 일이 십 만원이 우습게 넘어간다. 작업에 필요한 공구까지 챙겨보려니 여간한 부담이 아니었다. 날이면 날마다 사립께만 쳐다보자니 급기야는 대문 노이로제...

이러다가 밤중에 목재에 깔려 허덕이는 꿈을 꾸는 건 아닐까. 또는 목재 울타리에 짐승처럼 갇혀서 밤낮으로 슬피 우는 처량한 꿈은 꾸지 않을까, 각종 망상에 헛꿈까지 오락가락. 에라, 외통순데 일단 밀어나 보자. 한참 집 짓느라 몇 달 간 눈 코 뜰 새 없는 해빈이네 집에 전화를 넣었다.


‘이렇구저렇구 해서 집 짓고 남은 요만 조만한 나무 판때기 여나무 개 없것소?’


버섯 농장을 하는 진영이네 집에는 일전에 다녀오던 길에 언뜻 눈에 띄었던 화물용 파레트 판때기를 눈독 들이고 또 전화를 넣었다.


‘놔두고 불 때는데 쓴대매요? 그거 몇 개 나 주소.’  

이웃이 보배라 트럭까지 빌려 쓰며 목재를 확보했다. 덤으로 회전 톱까지 빌려다가.


마당에 얻어 온 나무를 재 놓고 보니 이게 원래 쓰던 용처가 아니다보니 이걸 어쩌냐 얼른 궁리가 서질 않아서 뒤적뒤적 망서리기를 또 수삼일.

안팎으로 꼬이는 일들에 이래저래 심사가 편치 않아 훌쩍 길 떠나서 사나흘.

죽자하고 내리는 비에 넋 놓고 앉은 채로 사나흘. 안 되겠다 머리 굴리다가 철 지나가겠네.

그리하여 나흘 전부터 작심하고 팔 걷어 부치고 무작정 망치를 들긴 했는데 태생이 헐랭이 삼촌 격이라 도무지 일머리가 안 잡힌다. 에라 모르겠다. 모조리 뜯어 발겨서 명실 공히 울타리나 둘러치고 말자.

그리하여 근 일주일을 살팎에 매여서 패대기를 쳐서 만든 물건이 남새밭 울타리 같은 대문이다. 뭐, 그런대로 생각보다 모양은 잘 나왔으니 사실 몹시 마음이 흡족하기 한정 없어 저으기 만족이다. 밥 먹고 나면 담배 하나 물고 감상하러 나가기도 했다.

못 삼천 원어치에 경첩 여섯 개 구천 원, 뼁끼 한 깡통에 신나 한 통 삼만 원. 싸다!

 

3. 수타면

7번 국도를 북상하다보면 우리 동네 조금 못 미쳐 수타면 집이 있다.

촌구석 짜장면 치고는 꽤 맛이 쓸만하여 아쉬울 때면 한번씩 애용을 하는데 며칠 간 대문 짠답시고 노가다를 하다보니 집구석이 어수선하여 끼니 챙겨먹을 일이 태산이다.

에라, 짜장면이나 먹자, 그래서 찾아간 집이 바로 그 집이다.

작은 놈은 무조건 짜장면, 큰 놈은 국물이 맛있다고 우동, 죽으나 사나 밥을 먹어야하는 나는 짬뽕 밥이다.

맛있다. 그런데 작은 놈이 먹던 짜장면을 조금 뺏어 먹다보니 어쩐지 면발이 예전 같지를 않다. 자세히 살펴보니 질이 썩 나쁘지는 않되 이건 분명히 동글동글한 기계 면이 분명하다.


‘아주머니, 인자는 수타면 안 해요?’

‘에그머니, 맛이 이전만 못하지요?’

‘조금..... 그런데 왜 안한대요?’


7번 국도 근동에서는 수타면의 원조라고 자부심 꽤나 빵빵했던 집이라 조금 의아했다.


‘부자간에 수타면 하느라 어깨가 고장 났대요. 그래서 주방장을 들였는데 월급이 삼백에다 걸핏하면 빼 먹고 배짱을 튕기는 바람에 내 보내고...... 그래서 고만 수타면을 접고 그 대신 가격을 내렸어요.’


언즉시야라, 메뉴판이 몽땅 바뀌었는데 삼천 오백 원하던 짜장면이 이천 원이다!

세상에, 라면 한 사발에 이천 오백 원 하는 세상인데 그래도 명색이 짜장면이 이천 원이라니.

그래도 하던 가락은 있어 볶은 짜장의 맛은 그대로라 썩 먹을 만 한데 말이지. 각박한 세상에 그래도 제 고집으로 승부하는 쟁이를 본 듯해서 맛있게 먹은 저녁에 기분까지 뜨뜻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짜장면이 이천 원, 우동이 삼천 원, 내가 먹은 짬뽕 밥이 사천 원. 셋이 먹은 저녁 식사가 구천 원이다. 돈 벌었다. 만세!


4. 부역.

이맘 때 쯤이면 풀베기 부역이 있다.

그런데 무슨 놈의 부역이 새벽 다섯 시란 말이냐고. 얽어 맨 대문에 뼁끼 칠을 하느라 쪼꼬만이랑 붓 들고 패대기를 치자니 지나가던 혜금이 아부지가 한 마디 거든다.


‘방송 못 들었노?’

‘방송은 못 듣고 어제 영이 할아부지한테 말은 들었소.’

‘자주하는 것도 아인데 나오지 그랬노.’

‘아따, 안 나간게 아니라 못 나갔다니까. 눈 뜨니 여섯신데 나가면 뭐하노.’

‘선생네 집은 부역 나오는 꼴을 못 봤다고 더러 주끼드만, 다음에는 나오것지 하고 말은 막아놨네.’

‘고맙소.’


리듬이 안 맞아서 못 살겠다. 새벽 세시나 되어 잠자리에 드는 내가 무슨 수로 다섯시에 일어나서 낫 들고 나선단 말이냐는 거다. 그나마 생활 패턴이 다르면 그 또한 웬만큼 이해를 해 주면 좋으련만,

하기사 싫은 놈은 업어 줘도 싫고 좋은 놈은 업고 다녀도 좋은 게 인지상정인데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야 말려서 될 일인가. 그렇다고 내가 나 몰라라 그 놈의 부역이란 걸 한 번도 안나간 것도 아닌데 말씀이야.... 앗따 그 놈의 말 많은 영감 할마이들 같으니라고. 에라 떠들라면 떠들어라 배짱으로 튕겨내고 말았다.


5. 끝

그래서 대문을 만든답시고 온 마당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던 그 대 역사가 인자사 끝이 났다는 싱거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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