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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네 가족이 다녀갔습니다.

이박삼일 삼박사일로 피서 겸해서 휴가를 우리 동네에서 지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어림잡아 6,7년 만에 술잔을 같이 들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한 해에 한두 번은 꼭 만났던 친구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죽이 맞아 늘 같이 쏘다니고 대학 때도 같은 학교라 과는 달라도 사흘이 멀다 하고 어울려 곤죽이 되도록 퍼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리 퍼마시다 보면 술 뒤끝 코드가 달라서 더러 으르릉거리기도 했지만 사상적 공간적 시간적 공유점이 그 중 많아서 그리 되었었습니다.


그러다가 7년 전 쯤에 그 친구에게 얽힌 여차여차한 일로 법정에서 증언을 해야 했었는데

지 기억과 내 기억이 어긋나서 오래 묵은 우정도 어긋났었습니다. 하도 속이 상해서 ‘세월과 세상이 너를 변질 시켰구나’ 운운 잘난 체 하면서 내 손으로 잘랐었습니다. 그 길로 일곱 해가 지나도록 전화 한 통화 안하고 지냈습니다. 간혹 생각이야 났었지만 크게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작년에 그 친구 어머니가 세상을 뜨셨습니다.

술 퍼마시고 다닐 때 수시로 쳐들어가서 속 꽤나 썩여드렸던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다른 친구의 전갈로 전해 듣고 급히 고향 가서 영전에 절하고 그 녀석 등 한번 치고 왔습니다. 7년만이었습니다.


그러고도 몇 달을 연락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봄 한식 때 어머니 산소에 벌초를 하고 돌아오면서 불현듯 녀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마침 지나는 길목에 저그 선산이 있어 저그 형제간에 벌초를 하고 있던 녀석을 그 어름에서 만나 차 한 잔 하고 헤어졌습니다. 헤어지면서 내 새끼들한테 만 원짜리 하나씩 쥐어주면서 잘 가라고 내 차 모퉁이 돌아 갈 때까지 내외간에 지켜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 녀석 아내도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입니다. 내 집 솥뚜껑 몇 개인지도 잘 아는 아지매지요. 만나자 대뜸 왜 그리 연락도 없이 살았냐고 눈물이 글썽 원망을 해 댑디다.

여러 가지 양념에 우거지가 뒤섞인 복잡한 원망이었지요. 너그는 왜 나한테 연락 안했냐고 눙쳤더니 눈을 흘깁디다. 나도 그냥 조금 복잡하게 웃고 넘겼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 들머리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전처럼 휴가를 우리 동네서 지냈으면 한다고. 그래서 다른 친구네 가족이랑 어울려서 들이닥칠 테니 민박 하나 잡아 달라고.

누가 뭐랬습니까.

전화야 심상하니 받았지만 가슴 속으로 뭔가 뜨뜻한 것이 차올랐습니다. 긔거나 말거나 친구나 나나 이제는 나이를 꽤나 먹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따지고 가리고 까탈스럽기야 대충 알만한 사람은 아는 성벽이지만 남부여대 바리바리 이고지고 떠들썩하니 들이닥친 친구네 가족들을 맞고 보니 뭐 더 할 말도 없고 해결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습디다. 집구석이란 게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공히 좁아터져서 내 집에서 먹고 자고를 마련 못해서 좀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대로 좋았습니다. 민박집에서 연 이틀을 못 먹는 술로 날밤을 새다시피 무리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녀석들은 처자식 대동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가기 전에 털털털 시동 걸어놓고 손 한 번 꼭 잡았지요.

젠장, 따지고 가리고 잘났다고 살아온 세월이 아깝고 부질없었습니다. 아웅다웅 옥신각신 재고 따지고 산 세월이 부끄러웠습니다. 백년도 못살 위인들이 천년만년 살 것같이 낭비하고 산 시간이 새끼들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언제 크나 같잖기만 하던 쪼꼬만이들이 벌써 고등학교, 중학교, 지 애비 머리 우에서 노는 꼴도 만만찮았고 녀석들이 보기에는 그 때 생기지도 않았던 우리 집 꼬맹이 녀석이 더 새삼스러웠겠지요.


여차한 사정으로 같이 자리를 못한 다른 한 친구는 겨울에 다시 도모해 보기로 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올 여름 지나면서는 늙어가는 것도 한 편으로는 썩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호호 할배는 아니라서 조금은 더 늙을 여력이 꽤 남은 듯하니 앞으로는 또 얼마나 어떻게 변해갈지 아연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2003.8.6 


오륙십년대 글쟁이들은 담배를 사상초로 불렀지요. 오래 된 책 표지나 속지를 보면 예술 한답시고 빨뿌리나 궐련 삐딱하게 물고 썩다리 폼 잡은 사진들도 더러 많습니다. 아, 물론 표현이야 썩다리라고 눈을 흘겼지만 실은 아주 그럴싸하고 멋진 모습들이지요. 내공 없는 껍데기만 가지고는 흉내낼 수 없는 경지올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꼭 담배 핀다고 사상이 우수하거나 담배 안 핀다고 사상이 건전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쩐지 뭔가 생각이 잘 안 돌때 그 사상초란 걸 피워물고 질겅거리면 뭔가 되는 듯 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이 정말 사상초라 그런 건지 순전히 심리적인 효과인지는 아리송 한 것이 어떨 때는 나 자신 역시 뭔가 해결되지 않는 일을 골몰할 때면 나도 모르게 볼펜 꼭대기를 지근지근 씹어 먹고 있는 나를 발견 할 때도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이들은 담배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학설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심신이 건강한 어떤 사람들은 금연 운동권에서 보여주는 끔찍한 비디오에 현혹 되어서 나 같은 애연가들을 날이면 날마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몹시 핍박하기에 여념이 없기도 한데, 그래도 사는 것이 매우 팍팍하여 쓸쓸할 즈음이면 마당에 나가 별 보고 뒷짐지어 한 연기 하는 것이 그 중 낙일수도 있긴 한데....
그것도 수양이 덜되어 잡스런 것에 좌지우지 되는 범부라 그런 것이라면 또 그럴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만....

너도나도 담배 끊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버린 오늘날 아주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란 놈이 하는 말,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미개인이 있다니!'
그럼 나도 지기 싫어서,
'이렇게 좋은 담배를 끊는 지독한 놈도 있구나!'
맞받아치고 웃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좀 씁쓸해지는 건 사실입니다.

물론 애연가인 나 자신도 자동차 속 같은 밀폐된 좁은 공간이라든지 하는 곳에서 다른 이들이 내 뿜는 담배 연기는 질색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피운 담배 연기도 바람 쐬고 들어 와 다시 맡아 보면 과연 그리 즐거운 내음은 아닌 것을 십분 인정하기는 합니다. 또한 애연가와 혐연가가 혼재하는 장소에서는 당연히 삼가해야 한다고 주장 하는 쪽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디 나 다니다가 담배 한 대 피워 물려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저으기 눈치가 보이는 것이 예전 보다는 적잖이 옹색해진 듯 하여 심사가 꽤나 섭섭합니다.

예전에 이런 저런 이유로 한 두어 해 끊어 본 적도 있고 다시 핀 것도 뭣에 못 이겨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기침 콜록거리면서 다시 피워 문 전력이 있으니 뭐 흰소리 한 마디 쯤 한다고 돌 맞을라는가요.  
인자는 섣불리 끊어 볼래도 담배 떼고 사나흘만에 무섭게 땡기는 그 놈의 단 것들이 무서워서, 그 놈의 먹성 때문에, 겁나게 불어나는 허리때매 고만 작파를 하게 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 시절 그 양반들이라면 제법 생각도 꽤나 하고 글도 꽤나 쓰던 양반들인데 일없이 사상초란 이름을 붙였을까요?
게다가 혹시라도 그런 사상초를 하루 아침에 딱 끊어버리면 사상적으로 매우 부실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어쨌든 세상의 주류에서 밀려 나면 옹색해지기 마련인 것이, 내노라 하는 학자며 석박사들이 나름대로 연구해 놓은 담배의 해악은 킁! 코웃음 한 번으로 날리려고 애쓰면서 담배가 오히려 장수에 도움이 되노라는 이웃의 농사꾼의 말 한마디에 옳다구나 희색이 돌아 거품 물고 대변 하다보면 공연히 혼자 좀 씁쓸히 우습기도 합니다.

때가 되면 끊을 사람은 끊을 것이고 죽어도 못 끊을 사람은 허파에 구멍이 나더라도 자나깨나 물고 살 것을 뭐 그리 끊나 못끊나 악다구니에 심지어는 의지 박약이라는 처방까지 들고 다니면서 애연가를 속상하게 맹그는지 세상 참, 야속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어디 근사한 학위 가지신 석학들 중 흡연의 이로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내놓을 분은 안계실까요. 제 아무리 그럴듯한 이론으로 강변을 해 봐도 도대체 별 볼일 없는 학위라 그런지 내 꺼는 당최 먹히지를 않아요.
어디 누구 깃대 잡으실 분 안계실까요.

백해무익론에 맞서는 '다문일익론'을 그래도 줄기차게 연구하는 애연가 옹이었습니다.



2003. 3.31


// 이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동안 여전히 담배를 놓지 못하다가  몇 해전 초여름 집안에 참 속상한 일이 있어서 그 일을 계기로 담배를 끊기는 했습니다만 아직도 담배란 물건이 사람에게 그리도 해악스러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정갈한 반찬과 갓 지은 밥 한그릇을 아주 맛있게 먹은 뒤에 맛보는 달콤한 과자나 빵. 그리고 그 과자와 빵을 곁들여 마시는 진한 커피한잔. 그리고 입 속에 커피 향을 머금은채로 마당에 서서 깊이 들이마시는 담배 한 모금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는 금연 이후의 애연가이기도 한 옹이가 썼습니다.

 

초저녁부터 자불리더니 오밤중 되니 오히려 잠은 다 달아나버리고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무료하니 TV 영화를 하나 본다. 바디 샷.

 

짧은 영어로 대충 몸으로 비벼대기 또는 육탄 돌격 쯤으로 짐작했는데 보아하니 제목 보다는 내용이 조금은 나은 편이다.
뭐 중간중간 늘씬한 여인네 젖가슴도 더러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노천에 자동차 본넷 위에서 거시기 하는 장면도 보여주고 하는 걸로 봐서 얼추 뭐 그렇고 그럴만 하게 후끈한 영화이긴 했지만 주제는 여차저차한 일로 술에 떡이 되어버린 남녀가 어찌어찌 우여곡절을 만들면서 속살 궁합을 맞추고야 말았는데 여자는 강간이라고 울고불고 남자는 화간이라고 박박 우기는 상황이 주제라면 주제다.

 

둘 다 침대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도대체 기억이 없습니다가 되어서 검사니 변호사가 난감해 하는 거며
술에 떡이 된 채로 과연 거시기가 가능하냐는 생리적인 디테일이야 뭐 그렇다손 치더라도
침대에 포개어 눕기까지의 기억이 서로 상반된 거 까지는 대충 뻔하게 상투적이라 그렇고 그런 영화의 소재로 딱 좋은데, 다만 같이 어울려 놀던 친구들 중에 서로가 변호사가 있어 죄없는 남녀 변호사끼리 법정에서 쌈박질을 하게 되어버린 게 또 다른 사단이다.

 

결국에는 일찌감치 좋아할 뻔 했던 변호사 둘이서 피차에 양쪽의 변호를 맡아 갑론을박 할 말 못할 말에 밑바닥 성질까지 뒤집고보니 사건 종결 후에 그동안 미뤄 왔던 거시기를 해 볼라고 침대에 나란히 눕어서 서로 만져도 보고 끌어안아도 보고 해봤지만 아주 형이상학적이고 고상하고 아리송한 이유 때문에 쓸쓸하게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라 그건 좀 그럴싸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곁다리로 나온 조연 배우가 술이 떡이 되어서 한 밤을 대로변 배수구를 끌어안고 자고 난 뒤에 다음날 쨍쩅 눈부신 늦은 아침에 깨어 아주 푹 젖은 걸레 꼴이 되어서 볕이 눈부시게 가득한 한적한 주택가 골목을 걸어가는 장면에서 한 방 얻어맞은 듯 띵 해져버렸다.

 

그거 나도 해 봤었지.

뭐 그거 해봤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다. 그거 뭔 자랑이라고.

다만 그거..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것처럼 기분 더러운 경우도 참 별로 없다. 초저녁부터 새벽녘이 되도록 인사불성으로 처 부어 마시고는 다음날 깨어 도대체 얼토당토 않은 장소에서 눈을 뜨게 되는 그런 꼴.

 

태생이 모주꾼이라 그런 게 아니라면 그래도 젊은 날 세상 고민 다 끌어안고 나 잘났다고 퍼 마시고 댕기던 자들은 적어도 한 두 번 쯤은 겪어 봤음직한 곤욕스런 그 기분.

처음은 거룩하고 창대히 시작하였으나 그 끄트머리가 가까울수록 서서히 뭉개지고 지워지던, 그리하여 잠 깨어 일어난 아침의 오물 범벅으로 뭉개진 바지가랭이같이 그 더럽기 짝이 없던 그 기분.

지난 밤 고주망태로 어질러졌을 때야 그 시각 그 자리에 지친 몸을 눕혀야 할 절실하고도 절박한 그럴싸한 사연이 열두번도 더 있었겠지만 그거 깡그리 이자뿔고 잠에서 깨어난 그 눈물나게 더럽고 낯설은 이튿날 아침은 그럼 대체 누가 책임지냐는 말이지.

 

술도 덜 깬 어리둥절한 머리로 얼굴은 씨근씨근 여직 울긋불긋 시뻘건데다
머리카락은 마구잡이 쑤세머리로 축축한 아침 이슬에 눈 떠보니 아뿔사 길바닥이었다던지,
아니라도 어디 개 오줌처럼 전봇대에 기대어 어질러져 있다가
그 바쁜 아침 출근 길 서두르는 갑남을녀의 그 야릇한 눈길을 고스란히 받으며 애꿎은 전봇대만 손가락으로 석석 문지르고 앉았던 아, 그 말도 안되는 참혹함이라니.

 

그제서야 간밤의 낭만인지 방만인지에 대해 이를 갈며 후회를 하고 어금니를 물어봤자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골이 빠개지는 지독한 숙취에 술 깨는 드링크 하나 따 줄 손길 하나 없이 흙투성이로 어칠비칠 늦은 아침부터 약국찾아 두리번 거리는 그 절박함. 그렇다고 잘 난 드링크 하나 마셨다고 술이 금새 깨어 방긋 웃으며 상쾌한 아침을 맞게 되냐면 그것도 아니면서.

최소한 아직도 알콜에 푹 쩔어있는 뱃속이 그 놈의 싸구려 얄팍한 드링크 그거 웩웩 뒤집어 올리지만 않아도 감사한 일이지. 아무래도 한나절은 어딘가에 죽은 듯이 누워서 고스란히 앓고나서야만이 겨우 사람 흉내로 일어 설 일인데 그나마 하필 다음날에 잡힌 스케줄은 또 얼마나 빡빡했었던지.

 

게다가 그 빌어먹을 낯설음이 서서히 가시면서 슬금슬금 생각나는 간밤의 객기라든지, 특히 오랜만에 두둑했던 지갑이 빈털털이로 뒷주머니에 삐죽 꽂혀 있는 사연을 추적하다 보면, 아니, 빌어먹을, 원 별놈의 갑자을축이 다 나오는데, 그거 김장 담궜다가 훗날에 보험금 타 먹을 일은 개 코딱지만큼도 없을 순 껍디기들이더라는 것이 사람 심사를 가일층 더 헛개비로 맹글어버리지 않던가 말이다.

 

그것만이라면 그래도 다행이지.

행여나 들고있던 가방이나 이런 것들이라도 없어졌어 보라지. 욱신욱신 쪼개지는 골머리로 공중전화 박스에 붙어 앉아서 이놈 저놈 여기 저기 전화질을 해대면서 내 가방 못 봤냐 내 보따리 내놔라 이자뿔믄 안되는데 큰일났네 징징거리다 결국은 스케줄이고 뭐고 오만가지 핑계조차 만신이 귀찮아져서 어디 날 샌 심야다방 레지 아가씨들 눈치 봐가면서 겨우겨우 눈 좀 붙이다가 그래도 참 드물게 마음씨 착한 흥부 마누라가 있어서 라면 국물이라도 몇 숟가락 얻어 마시는 날이면 횡재하는 날이었지.

 

아, 그럼요.

그런 날이 잦으면 그거 아주 폐인이지. 사람 못되고 말고지.
그러니 나는 그거 아주 썩 자주 그러지는 않았다오.
그것 참, 어쩌다 이 나이에 쓸데없이 뭔 일없는 영화 장면에 휘둘려서 오래된 영사기 돌아가다 마냐고.

그래서 참 오랜만에 간밤에 혼자 한 잔 했지.
이런 저런 생각 좇다보니 불현듯

쓸쓸한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그런 시절이 그래도 그 때만큼 헛발질은 안하는 걸 보면 철 꽤나 들었지 뭘.


그런데 그런 날이면 왜 그리 맑은 하늘이니 햇볕이 싫었던지.
구름이나 잔뜩 끼고 빗방울이라도 부슬부슬 드는 날이면 그리 끔찍하기까지는 않아서 그나마 견딜 만은 했었는데 내가 무슨 양서류도 아니고 파충류도 아닌 것이 그만 화창하니 개인 날이면 정말 이가 갈리게 싫었던 것이 지금 생각하니 좀 이상하다.

거 참, 왜 그랬을까.
아는 사람 있으면 좀 갈차 주시든지. 아니, 뭐, 이제는 그리 마실 일도 없으니 애절복통으로 꼭 알아야겠다는 건 아니지만...




2003.6.9.

 

 

하늘이 하도나 고요하시니

난초는 궁금해 꽃피는거라


 


내가 서정주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싯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두껍고 낡은 미당 시집의 뒷 표지에 그림으로 그려진 시 이기도 하다.

글의 제목은 까먹었다.
까먹었으나마나 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어찌 해 볼 수 없는, 미치도록 좋아 죽겠는 싯귀이기도 하다.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는.
아니,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 재주로는 더 할 수도 덜 할 수도 없는 것이겠지. 감히 어떻게 섣불리 첨한답시고.
사람의 눈으로 쓴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글의 매무새도 이렇듯 정방형의 결정체처럼 완벽할 수도 있구나.

글 쓸 때 귀신에 씌었거나 아니면 그가 아주 귀신이거나.


이 글을 볼 때마다 내 어릴 때 자라던 낡은 기와집 마당의 둥근 꽃밭에 오월 하순이면 노란 연두색으로 삐죽하게 솟아오르던 난초의 새 순을 생각한다. 간 밤에 비 내려 검게 젖은 땅을 숨막히게 데우던 늦봄의 뜨신 볕도 생각난다. 그 나른하게 녹아내리는 봄 볕 가운데 하얗게 풀 선 바지저고리 입으시고 몰라도 백 개는 넉넉히 넘어서던 갖가지 크고 작은 화분을 자식들보다 어쩌면 더 애지중지 하시면서 철 맞춰 때 맞춰 심고 물 주고 매만지던 아버지의 모습도 생각나지만,


 

난초 따위가 무슨 생각이 있어 하늘을 궁금해하며
궁금하다한들 제까짓 것들이 무슨 재주로 때 맞추어 꽃을 피운다는 건지?
말장난이지. 허구에다가. 염병이지.
말 몇 마디로 사람의 눈을 현혹하여 마음을 빼앗는 사술이기도 하고.
그러기에 말 장난이며 글의 유희에 마음 빼앗기고 일희일비하는 나같은 종자들은 아마도 태생이 썩 허전하거나 누추하여 그러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좋은 건 어쩔 수가 없는 게 기분이 더럽다는 거다.

‘니 마음이 구리니 그따위 글을 좋아하는 것이니라’ 꾸짖는다면 감수해야지.
다만 당신이 보아 좋지 않았으니 이것 좋아하는 놈은 모두 쥐길놈이다, 도끼 날 세우고 우격다짐만은 없었으면 한다.


미당을 생각할 때 저 난초가 먼저 생각나는 것은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미당의 국물을 조금만 더 기울여 따뤄내면 그 아래 시커먼 건데기 ‘오장 마쓰이 송가’도 드러난다.
몇 줄 읽다 보면 더 읽고 싶지 않을만큼 참 고약하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詩才는 그런 구린 이야기를 과연 어떻게 풀어 나갈까 궁금한 마음에 에라 그래 똥 한 번 밟았다 생각하고 읽어 내려가다 보면 아니나 다를까 기분 더럽다. 확 뜯어 발기고 싶어진다. 그런 마음이 들 적이면 으흠, 나같은 잡배에게도 허당한 것이나마 약간의 애국심 찌끄러기는 남아 있나 싶어 다소 안심도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굳이 아세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 미당의 글이라고 모두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의 글 대부분이 그저 그러하고 내가 호감을 가지는 벌거스럼하니 묘한 정서를 갖고 있는 이전의 글들도 그렇다고 하나같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시건방진 말이지만 중간 쯤의 글들 몇몇에서는 서정주라는 자신의 이름에 기대어 대충 함부로 갈겨 쓴 것이 아닐까 의심 해 본 글들도 더러 있었다.


다른 이의 글 하나가 또 생각난다.


 

/화장터


몸 털고 선명하게 현신하는

한 켤레 신발


 

이 것은 미당의 글이 아니라 이전자전 소싯적 겁 없이 나잘났다 설치고 다니던 시절에 나랑 둘이서 콧구녕만한 찻집에서 詩展을 열었던 어느 시인의 싯귀다.

후에 내 글 몇 편과 남의 글 다수를 지 글인양 슬쩍 등쳐서 얼렁뚱땅 제 시집 속에 끼워 출판해버렸던 매우 괘씸한 엉터리 사이비 시인이다.
나 보다 연배는 훨씬 위였지만 그 일로 해서 이 천하에 본 데 없는 글도둑놈아 어쩌구 죽일 놈 살릴 놈 멱살잡이로 한 번 벅구를 떨었던 반갑잖은 사람. 뭐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도 없고 관심 둬 봤자 잘 난 글 몇 개 가져가면 어떻고 던져주면 또 뭐 어때서.
 


아무튼 그 일 이후로 상종못할 망종이라 치부하고는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고
그 따위 도둑질이나 일삼는 인간이 詩는 무슨 詩! 하고 내쳐버렸지만 저 우에 ‘화장터’라는 글만은 참 흉내내기 어려운 시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글에 나타난 남다른 감수성만큼은 지금도 인정한다. 단, 베껴먹은 글이 아니라면. 
서정주의 난초를 볼 때마다 겹치기로 생각나는 싯귀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안팎으로 비슷한 시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詩仙이라 불리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세에 빌붙어 동포를 팔아 먹은 개자식으로,
이런 제에미 순, 재활용도 못할 더러운 쓰레기 같은 늙은 개 취급을 받는 서정주를 싯줄 깨나 짓는답시고 또한 무조건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 맨 위의 난초는 누가 뭐래도 정말 사랑한다.
글 맛도 맛이려니와 내 기억 속의 무엇인가를 건드려서 촉발시키는 저 끔찍한 감수성은 진저리가 나도록 무섭고 아름답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하자면 안타깝고 아쉽고 부애나고 떨떠름하고 얄궂지.


돈 보고 부잣집에 팔려 갔다가 패가망신 소박데기로 쫓겨 온 옆집 이뿐이.

행실은 더러바도 얼굴 하나는 정말 끝내 줬는데.

나쁜 년, 이왕에 버릴 몸이면 나나 주지.

다소 비약이 될 수는 있겠으나 뭐 그런 마음 비슷한 거 아닐까 생각한다.


그 시절 세상에 매겨졌던 자신의 위치를 일찌감치 자각하고 미리 붓을 꺾었거나
택도 없는 강단이나마 버럭버럭 부려서 약간의 고초를 감내하였더라면.. 에구, 어림도 없는 아쉬움만 간당간당.
아쉬움이 있다는 것 부터가 서정주가 남긴 글에 대한 미련을 드러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가 남긴 글에 비해 정작 그 자신은 제 시대의 시공에 대한 통찰이 치명적으로 어두웠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부족한 통찰력이 그의 말년이 오욕과 영예로 뒤범벅이 되어버린 단초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마쓰이 오장 송가가 쓰여졌던 1944년, 그것도 가미가제가 등장했을 무렵이면 이미 전세는 기울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내 몰리고 있음을 어지간만 한 지성이라면 충분히 간파할 수 있었을 터인데도 말이지.
그게 아니라면 그 귀기서린 文才 이외에는  아주 귀와 눈이 어두웠던 박약한 인격이었거나.


보듬어 품자면 이 민족의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진 근대사의 한 조각이 될 터이고

배척 하자면 매를 먼저 청하여 맞더라도 제 뒤에 섰는 청년 군상들을 생각해서라도 굳세게 이끌고 나아갔어야 했을... 젠장할.. 선각자로서의 자각은 조옷도 없는 노예 근성에 찌든 한 낱 재주꾼에 불과한 글쟁이일 뿐인 건지.


어느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화두 덕분에 오늘 하루 내내 그 생각이다.

글타. 미당인지 말당인지 하여간 더럽게 질긴 이름이다. 씹어도 씹어도 국물이 나오는...

그래서 김지하가 말했다는 인격과 글의 불일치에 대한 견해에 관한 한 나는 유보다.

맨 위에 쓴 난초처럼 어찌할 수 없이 아름다운 글을 보면 글 쓴 이가 누구이건 간에 그 글은 고스란히 박리되어 두둥실 떠오르는데 그걸 낸들 어쩌냐고.

그 인간의 생애는 용납 못하더라도 글은 글대로 아름다운데 어쩌란 말이냐고...
그렇다고 무슨 대의명분에 짓눌려서 흰 것을 검다하고 눙치고 넘어 갈 일도 아니잖은가 말이다.

제엔장, 밑도 끝도 없이 주절거리고 보니 또 회색분자가 되고야 말았다.
그래도 뭐, 하는 수 없는 잡배의 우거지 근성을 내 힘으로 어쩔 수 있나. 탱자탱자 드러누워서 조상 탓이나 하고 세월 보내는 거지 뭐.  


하여간에 결과적으로 누군가가 뜬금없이 던진 화두에 대한 답장이 되고야 말았지만 도대체가 생겨먹은 쌍통이 안팎으로 동히 몹시 조악하여 그럴싸한 선문답은 커녕 억설만 개발새발 늘어놓은 꼴이 되고야 말았다. 모쪼록 어떤 꼴이든 민폐는 되지말아야 할 텐데.  




2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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