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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네 가족이 다녀갔습니다.

이박삼일 삼박사일로 피서 겸해서 휴가를 우리 동네에서 지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어림잡아 6,7년 만에 술잔을 같이 들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한 해에 한두 번은 꼭 만났던 친구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죽이 맞아 늘 같이 쏘다니고 대학 때도 같은 학교라 과는 달라도 사흘이 멀다 하고 어울려 곤죽이 되도록 퍼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리 퍼마시다 보면 술 뒤끝 코드가 달라서 더러 으르릉거리기도 했지만 사상적 공간적 시간적 공유점이 그 중 많아서 그리 되었었습니다.


그러다가 7년 전 쯤에 그 친구에게 얽힌 여차여차한 일로 법정에서 증언을 해야 했었는데

지 기억과 내 기억이 어긋나서 오래 묵은 우정도 어긋났었습니다. 하도 속이 상해서 ‘세월과 세상이 너를 변질 시켰구나’ 운운 잘난 체 하면서 내 손으로 잘랐었습니다. 그 길로 일곱 해가 지나도록 전화 한 통화 안하고 지냈습니다. 간혹 생각이야 났었지만 크게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작년에 그 친구 어머니가 세상을 뜨셨습니다.

술 퍼마시고 다닐 때 수시로 쳐들어가서 속 꽤나 썩여드렸던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다른 친구의 전갈로 전해 듣고 급히 고향 가서 영전에 절하고 그 녀석 등 한번 치고 왔습니다. 7년만이었습니다.


그러고도 몇 달을 연락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봄 한식 때 어머니 산소에 벌초를 하고 돌아오면서 불현듯 녀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마침 지나는 길목에 저그 선산이 있어 저그 형제간에 벌초를 하고 있던 녀석을 그 어름에서 만나 차 한 잔 하고 헤어졌습니다. 헤어지면서 내 새끼들한테 만 원짜리 하나씩 쥐어주면서 잘 가라고 내 차 모퉁이 돌아 갈 때까지 내외간에 지켜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 녀석 아내도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입니다. 내 집 솥뚜껑 몇 개인지도 잘 아는 아지매지요. 만나자 대뜸 왜 그리 연락도 없이 살았냐고 눈물이 글썽 원망을 해 댑디다.

여러 가지 양념에 우거지가 뒤섞인 복잡한 원망이었지요. 너그는 왜 나한테 연락 안했냐고 눙쳤더니 눈을 흘깁디다. 나도 그냥 조금 복잡하게 웃고 넘겼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 들머리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전처럼 휴가를 우리 동네서 지냈으면 한다고. 그래서 다른 친구네 가족이랑 어울려서 들이닥칠 테니 민박 하나 잡아 달라고.

누가 뭐랬습니까.

전화야 심상하니 받았지만 가슴 속으로 뭔가 뜨뜻한 것이 차올랐습니다. 긔거나 말거나 친구나 나나 이제는 나이를 꽤나 먹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따지고 가리고 까탈스럽기야 대충 알만한 사람은 아는 성벽이지만 남부여대 바리바리 이고지고 떠들썩하니 들이닥친 친구네 가족들을 맞고 보니 뭐 더 할 말도 없고 해결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습디다. 집구석이란 게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공히 좁아터져서 내 집에서 먹고 자고를 마련 못해서 좀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대로 좋았습니다. 민박집에서 연 이틀을 못 먹는 술로 날밤을 새다시피 무리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녀석들은 처자식 대동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가기 전에 털털털 시동 걸어놓고 손 한 번 꼭 잡았지요.

젠장, 따지고 가리고 잘났다고 살아온 세월이 아깝고 부질없었습니다. 아웅다웅 옥신각신 재고 따지고 산 세월이 부끄러웠습니다. 백년도 못살 위인들이 천년만년 살 것같이 낭비하고 산 시간이 새끼들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언제 크나 같잖기만 하던 쪼꼬만이들이 벌써 고등학교, 중학교, 지 애비 머리 우에서 노는 꼴도 만만찮았고 녀석들이 보기에는 그 때 생기지도 않았던 우리 집 꼬맹이 녀석이 더 새삼스러웠겠지요.


여차한 사정으로 같이 자리를 못한 다른 한 친구는 겨울에 다시 도모해 보기로 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올 여름 지나면서는 늙어가는 것도 한 편으로는 썩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호호 할배는 아니라서 조금은 더 늙을 여력이 꽤 남은 듯하니 앞으로는 또 얼마나 어떻게 변해갈지 아연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200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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