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륙십년대 글쟁이들은 담배를 사상초로 불렀지요. 오래 된 책 표지나 속지를 보면 예술 한답시고 빨뿌리나 궐련 삐딱하게 물고 썩다리 폼 잡은 사진들도 더러 많습니다. 아, 물론 표현이야 썩다리라고 눈을 흘겼지만 실은 아주 그럴싸하고 멋진 모습들이지요. 내공 없는 껍데기만 가지고는 흉내낼 수 없는 경지올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꼭 담배 핀다고 사상이 우수하거나 담배 안 핀다고 사상이 건전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쩐지 뭔가 생각이 잘 안 돌때 그 사상초란 걸 피워물고 질겅거리면 뭔가 되는 듯 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이 정말 사상초라 그런 건지 순전히 심리적인 효과인지는 아리송 한 것이 어떨 때는 나 자신 역시 뭔가 해결되지 않는 일을 골몰할 때면 나도 모르게 볼펜 꼭대기를 지근지근 씹어 먹고 있는 나를 발견 할 때도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이들은 담배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학설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심신이 건강한 어떤 사람들은 금연 운동권에서 보여주는 끔찍한 비디오에 현혹 되어서 나 같은 애연가들을 날이면 날마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몹시 핍박하기에 여념이 없기도 한데, 그래도 사는 것이 매우 팍팍하여 쓸쓸할 즈음이면 마당에 나가 별 보고 뒷짐지어 한 연기 하는 것이 그 중 낙일수도 있긴 한데....
그것도 수양이 덜되어 잡스런 것에 좌지우지 되는 범부라 그런 것이라면 또 그럴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만....

너도나도 담배 끊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버린 오늘날 아주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란 놈이 하는 말,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미개인이 있다니!'
그럼 나도 지기 싫어서,
'이렇게 좋은 담배를 끊는 지독한 놈도 있구나!'
맞받아치고 웃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좀 씁쓸해지는 건 사실입니다.

물론 애연가인 나 자신도 자동차 속 같은 밀폐된 좁은 공간이라든지 하는 곳에서 다른 이들이 내 뿜는 담배 연기는 질색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피운 담배 연기도 바람 쐬고 들어 와 다시 맡아 보면 과연 그리 즐거운 내음은 아닌 것을 십분 인정하기는 합니다. 또한 애연가와 혐연가가 혼재하는 장소에서는 당연히 삼가해야 한다고 주장 하는 쪽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디 나 다니다가 담배 한 대 피워 물려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저으기 눈치가 보이는 것이 예전 보다는 적잖이 옹색해진 듯 하여 심사가 꽤나 섭섭합니다.

예전에 이런 저런 이유로 한 두어 해 끊어 본 적도 있고 다시 핀 것도 뭣에 못 이겨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기침 콜록거리면서 다시 피워 문 전력이 있으니 뭐 흰소리 한 마디 쯤 한다고 돌 맞을라는가요.  
인자는 섣불리 끊어 볼래도 담배 떼고 사나흘만에 무섭게 땡기는 그 놈의 단 것들이 무서워서, 그 놈의 먹성 때문에, 겁나게 불어나는 허리때매 고만 작파를 하게 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 시절 그 양반들이라면 제법 생각도 꽤나 하고 글도 꽤나 쓰던 양반들인데 일없이 사상초란 이름을 붙였을까요?
게다가 혹시라도 그런 사상초를 하루 아침에 딱 끊어버리면 사상적으로 매우 부실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어쨌든 세상의 주류에서 밀려 나면 옹색해지기 마련인 것이, 내노라 하는 학자며 석박사들이 나름대로 연구해 놓은 담배의 해악은 킁! 코웃음 한 번으로 날리려고 애쓰면서 담배가 오히려 장수에 도움이 되노라는 이웃의 농사꾼의 말 한마디에 옳다구나 희색이 돌아 거품 물고 대변 하다보면 공연히 혼자 좀 씁쓸히 우습기도 합니다.

때가 되면 끊을 사람은 끊을 것이고 죽어도 못 끊을 사람은 허파에 구멍이 나더라도 자나깨나 물고 살 것을 뭐 그리 끊나 못끊나 악다구니에 심지어는 의지 박약이라는 처방까지 들고 다니면서 애연가를 속상하게 맹그는지 세상 참, 야속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어디 근사한 학위 가지신 석학들 중 흡연의 이로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내놓을 분은 안계실까요. 제 아무리 그럴듯한 이론으로 강변을 해 봐도 도대체 별 볼일 없는 학위라 그런지 내 꺼는 당최 먹히지를 않아요.
어디 누구 깃대 잡으실 분 안계실까요.

백해무익론에 맞서는 '다문일익론'을 그래도 줄기차게 연구하는 애연가 옹이었습니다.



2003. 3.31


// 이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동안 여전히 담배를 놓지 못하다가  몇 해전 초여름 집안에 참 속상한 일이 있어서 그 일을 계기로 담배를 끊기는 했습니다만 아직도 담배란 물건이 사람에게 그리도 해악스러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정갈한 반찬과 갓 지은 밥 한그릇을 아주 맛있게 먹은 뒤에 맛보는 달콤한 과자나 빵. 그리고 그 과자와 빵을 곁들여 마시는 진한 커피한잔. 그리고 입 속에 커피 향을 머금은채로 마당에 서서 깊이 들이마시는 담배 한 모금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는 금연 이후의 애연가이기도 한 옹이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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