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 1월쯤이었던가 외할아버지의 장례로 벽제 화장장을 갔던 적이 있었다.
장례식이라봐야 외할아버지는 내 장성하고서는 거의 왕래도 없었던데다가 101세로 한 세기를 살고 마감하셨으니 슬프고 섭섭하고 할 일도 없었고

그냥 좀 무료하고 지겨운 장례절차가 얼른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화장장 복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무런 준비된 슬픔도 없고 동기도 없는 내가 그 외마디 울음소리에 불시에 억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까닭없는 울음이 터질 듯해서 황급히 숨을 몰아쉬어야만 했었다.

근처에 있던 다른 장례실의 젊은 엄마였고 영정은 네 다섯살 쯤 되어보이는 사내아이였다.

아마도 예식을 끝내고 시신을 화구 쪽으로 밀고가려던 참이었던 모양인데 그 엄마는 거의 실신지경으로 관이 놓인 수레에 매달려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외마디 울음소리를 질러내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생각만으로 눈물이 도는 몇 안되는 처참한 광경이었고 그 때를 기억하면서 글을 쓰는 지금도 역시 눈물이 난다.
세상의 어떤 아픔이나 슬픔이 그 사무치는 울음소리를 덮을 수 있을까. 아마도 없지 않을까.

사람의 세상에서 사람의 범위에 있는 한.
남의 장례식에 따라붙을 일도 아니었고 혹 그럴 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울음소리의 충격으로 그만 얼이 빠져버렸었으니 그냥 멍하니 그 가족의 행렬를 잠시 지켜보고는 그것으로 그만이었었지만 너무 강렬했던 기억이라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그 장면이 각인이 되어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섣불리 장담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일이다.  
출처: https://shaeong.tistory.com/339#rp [시대착오자의 古物箱子]

1.
아버지 꿈을 꾸었다.
전후의 줄거리야 가닥도 잡히지 않는 개꿈이지만 무엇인지 나와 대립해 있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쏘아붙인 기억은 또렷하다.

'고만 좀 하시지. 
돌아 서 있어도 등이 따가와서 아버지가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를 알것소.'

아버지가 세상을 뜬지도 벌써 십오년이다.
아직까지도 드문드문 꿈에 나타나는 아버지는 거의 예외 없이 내게 친절하지 않다.
이런 꿈을 꾸고나면 아내에게 아버지의 꿈을 꾸었노라고 말을 하곤 했지만 이제는 말하지 않는다.
말 해봤자 '아이고 지겨워라 이제 좀 그만 할 때도 되지않았느냐'는 타박만 돌아오니까.
뭔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닌데 하도 긴 세월이라 애 엄마도 지겨운가보다. 그래서 인자는 고만 혼자 삼키고 만다. 
내게는 아버지가 트라우마인 모양이다.

맨정신에야 뭐 이제는 딱이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탓을 하거나 원망을 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잠재된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꿈에 발현이 되는 모양인데, 난들 그걸 어쩔 수가 있나.  

2.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밥을 먹던 큰 아이의 말이다.
'유정이는 오빠가 싫다던데.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 그랬어.'
작은 아이의 말이다. 유정이는 제 오빠에게 맨날 쥐어박히는 작은 아이의 동무다. 

뭔 실없는 이야기가 몇 마디 오가는 중에
'나는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농 반 진 반으로 불쑥 말했더니 애들 둘과 애 엄마까지 합세해서 아빠는 서울 할머니가 있지않냐고 일제히 타박이다.
머쓱해서 웃고 말았다.

나는 '엄마'를 이야기 한 거라니까. 서울 할머니는 서류상의 '어머니'일 뿐이고. 아니, 오히려 서류상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그 '어머니'와 나는 아무 관계도 아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버지의 妻였던 사람일 뿐. 
언뜻, 
그게 지금 내가 안고있는 안팎 곱사등이 노릇의 뿌리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아빠의 얼굴에 분칠한 가짜 엄마. 혹은 기형의 엄마. 
그래봤자 세월은 다 갔다.

3.
서울의 어머니가 분가를 할 모양이다. 
아들이 사는 집에서 어머니가 분가를 하는 모양새가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지만 몇 년 동안을 아들 눈치 며느리 눈치에 부평초처럼 딸네 집 동생네 집 아들네 집으로 떠돌이로 살던 노인네 입장에서는 그 중 쓸만한 생각이다.
전화 했던 부산의 여동생에게 잘 생각했고, 애 많이 썼노라고 치사를 하고 전화를 끊고 보니 이것 저것 공연한 생각이 많다.  
가도 가도 평행선.
마음을 열지 않는 가족들에게 혈연이라는 관계는 부담일까 아니면 보험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장식일까.  



 




밤중에 자다가 깨 보니 큰 놈 방에 불이 켜져있더라.

'네 시가 다 됐는데 안 자고 뭐하냐' 나무랬더니
'잘꺼야'
얼렁뚱땅 부시럭거리며 뭔가 덮어 놓는다.
짐작 가는 게 있어 그런가 보다 했더니 오늘 아침에 저걸 불쑥 건네 준다.
뭐 용돈이라고는 코딱지 만큼이니 뭘 사다 놓지는 못 할 것이고
편지라도 쓰나보다 생각 했었는데 뜻밖이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센스가 있는 놈이다. '심풀' 하면서도 재미있게 잘 만들었다.
제깐에는 꽤나 신경 쓴 기색이 역력한데
아침 아홉시에 나서야 할 놈이 저거 만드니라고 새벽까지 안자고 ....
아닌 듯 슬쩍 들뜬 듯 기분이 좋다.

사람이 나서 살다 죽는 것을 어찌 짐작 할까마는
가만 생각 해 보면 미래를 짐작 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른다.
누가 그러더라. 누군가에게 미래를 보여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미래를 빼앗는 거라고.  
그래 뭐, 그럴려면 말이 그런 거지 보여 줄 수나 있으려고. 그러니 그러려니, 믿고 사는 거겠지.
살아 온 날이 아까우니 살아 갈 날은 아껴서 살아야겠다.
오늘따라 묵은 사람들이 귀하다.


2006년 1월 14일

뜬금없이 술이 땡기길래 참 오랜만에 맥주를 한 잔 하고, 앗따, 낮술이라 제법이구나, 얼떨떨 해 있는데....
작은 놈이 방학숙제를 도와 달라네. 요리 숙제란다.

옳거니! 요리라면 또 내가 한 요리 하지. 어디보자 뭘 만드나.
저녁에 먹을 찌개를 만들래 했더니 싫단다. 좀 특별한 요리를 하자는데.

궁리궁리 하다가 언뜻 생각 난것이 뜬금없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수삼년 전에 봤던 꽤 괜찮았던 영화 제목이기도 하고 또 그 속에 등장하는 음식 이름이기도 하지.
그렇지. 그런 음식이 있다더라. 맞아. 게다가 토마토는 채소라던데 뭘!

마침 냉장고에는 토마토가 가득.
준비물은 밀가루, 소금, 달걀, 토마토.
어린 놈 데리고 넣어라, 저어라, 잘라라, 얼렁뚱땅 지글지글 지져냈더니..


....
.....
모양이.. 참....
뚝배기보다 장맛이더라도 어느 정도껏이라야지.
...
뭐 그래도 일단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
참...
...
마누래 오기전에 얼른 갖다 버려야겠다. 이런 젠장..


영화 속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만들어서 먹었을까?
낮술 끝머리라 요리가 이지경이 된 것일까?
아니라면,
혹시나 그린 토마토가 아닌 완숙 토마토라서 이지경일까........



덤으로,
곁다리로 출연한 이 영화는 추천.
페미 영화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참 괜찮은 영화.

캐시 베이츠.

캐시 베이츠의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대사 중 각인처럼 날아와서 박히던 말.
/'때로는 악마가 되는 것이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소름 끼치던 공감..


딸과 헤어지는 마지막 신에서 잊을 수 없는 강렬한 표정 연기를 보여줬던 대배우.
내가 알기로는 가장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배우. 

.........
뚱땡이 아줌마의 크고 영롱하지도 않은 눈이 뭐가 아름답냐고?
.........
캐시베이츠의 깊고 그윽하다 못해 섹시하기까지 한 푸른 눈을 
새까만 인조 눈썹 속에 만화처럼 뗑그렇게 박아 놓은 성형 사이보그들의 유리알 눈에다가 도무지 비교하지 말지어다. 

2006. 8. 22
 



대학교 5학년.
코스모스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소풍 갔다가 비 두들겨맞고 오실오실 떨면서 후배들 따라 들어 간 곳이 진주 예하리 그 집이었지. 낡아서 비끄러지는 기와집 마당에 잔칫날처럼 허연 광목 천막 아래 평상에 앉아서 개다리 소반을 받았다.  

'수육에 맑은 탕 한 사발이면 술도 확 깨고... 속이 뜨끈할낍니다.'

그래. 참 좋았다. 
수육도 부드럽고 좋았지만 생강을 채 썰어넣은 그 처음 보는 맑은 국물은 일품이드만.
콧잔등에 땀이 흐르고 젖은 옷에서 김이 무럭무럭 오를만큼 신나게 퍼 먹었다.

'아! 국물 정말 일품이구나.'
'좋치요! 속풀고 술 깨는데는 개탕이 제일입니다. 행님, 개도 묵을만 하지요?'
'??.....................................!!'
'........ 염소'도' 하는 집이라캤지요. 갑돌이가 시켰으니 내는 죄 엄소.'

염소탕 먹으러 가자는 후배 두 놈에게 꼬여서 처음 먹어 본 개고기였다.
속아서 먹기는 했지만 아주 맛이 좋았기때문에 그날 후배 두 놈은 나의 가혹한 응징을 면했다.

그렇게 입문은 괜찮은 편이었다.
술 마신 뒤면 늘 속이 편치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편안한 뱃속을 경험한 탓에 그 뒤로 가까운 이들과 자리를 만들라치면 팔을 걷어부치고 예하리 그 집으로 가자고 굳세게 주장을 하곤 했다.
알고보니 그 집은 내가 몰라 그렇지 개고기로 아주 유명한 집이었는데 마침 내가 가 본 뒤로 얼마 안되어 돈 많이 벌었는지 근사한 건물 새로 지어서 '이전확장개업' 을 하드만. 

그런데 그놈의 '이전확장개업'은 왜 십중 팔구는 뒤끝이 좋지 않은지.
그 새집에는 딱 한 번 가보고는 그냥 발을 끊고 말았다.
널찍한 구식 한옥 마당에서는 못느꼈던 누린내가 새로지은 삼층짜리 철근 콘크리트 건물 구석구석 누릿~ 하게 배어 있었거든.
그리고 그날 그 누릿함을 애써 견디며 먹은 그 비싼 음식은.... 
그 후로는 개탕에 대한 믿음도 그냥 시들시들...  누가 먹으러 가자해도 민적민적.......
하긴 그 후로는 아주 발길을 끊고야 말았으니 지금 또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지금은 우루루 무리 지어서 누군가가 깃대 잡고 분위기 휩쓸리면 그냥 못이겨 따라가기는 하지만 내 지갑 열어서 사 먹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뭐 애초부터 개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선입관은 없다.
개나 소나 그게 무엇이든 한 목숨 부지할라면 어차피 다른 동식물의 보시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니 굳이 혐오스럽지만 않다면 된다 안된다 가리고 유난을 떠는 편은 아니다. 다만 먹어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어쩐지 켕기는 그 정도. 

어쨌든 개고기는 처음 먹었던 것이 몸에 아주 잘 받는 듯 해서 흡족해했지만 이내 한 번 낭패를 보고나니 그 낯설음이 길다. 그 모양으로 지금까지 이십여년이다. 고향 떠나서 이쪽으로 온 첫 집이 부업으로 보신탕용 비육견(?)을 사육하는 집이었는데 그 집에서 개 입장에서 보자면 참 기구하고 참혹한 꼴도 더러 구경하고 그래서 인자는 조금 더 정이 떨어져버렸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집 뒷산에는 이십 여마리의 식용 개들이 사육되고 있었는데 때때로 왈왈거리며 자리다툼하는 소리가 우리집까지 들리기도 했다.해마다 이때 쯤이면 우리 집 앞 산길 입구에다 개장차를 세워놓고 흥정을 해쌓는다. 복날 준비하느라고.
.......
그 개들 목에 올가미 걸고 아주 사색이 되어 끌려 올라가는 꼴 보면 참....
짐승도 제 죽을 길은 아는게지.


추신/
우리 동네 교회는 작다.
애 엄마는 열심신자고 나는 땡땡이 환자다.
마누라가 닥달하지않으면 일년 가도 교회 한 번 갈까말까... 더러더러 원성을 듣기도 한다.
그래도 워낙에 콧구녕만한 교회다보니 목사 사모 장로 집사 해서 다들 알고지낸다.
그런데 이 교회 재미있는 것이 때때로 무슨 제목 붙는 날 밥을 해서 같이 먹는데 심심찮게 올라오는 메뉴가 개탕이다.
뭐, 절도 아니고 중도 아니니 개를 잡건 소를 잡건 탓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룩한 교회에서 개탕을 맹글어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는 것은 공연히 우습다.
내사 안나가는 날이 더 많으니 못얻어먹는 확률이 높기는 한데, 그런 날이면 열성 집사님들이 냄비에 한 가득 담아서 애 엄마 편으로 보내주시는데, 못이긴체 먹어보면 어느 집사 아주머니인지 솜씨는 정말 대단해서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미각적으로 전혀 하잣거리가 없는 일급 개탕이다. 적어도 내가 먹어 본 중에서는.
그래도 좀 거시기하잖아? 개를 즐겨 잡아먹는 교회라...


추신2/
식구들과 근처 공원에 배드민턴 치러 갔다가 공원 주차장에 어슬렁거리는 개 한 마리를 보았다. 그 놈을 보고 아이는 무섭다고 슬그머니 내 곁으로 숨는데 나는 혼자 생각에 복날이 가까운데 저 놈이 어쩌려고 저리 돌아다니나... 객적은 궁리만 굴리다가 주저리 따라나온 이야기다.

개와 인간의 관계에 관한 서양식 잡설들이나 불란서의 어느 늙은 여배우가 뭐란다는 헛소리 등속은 내게는 전혀 무가치하므로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초복 중복 어느 새 지나가고 말복이 코 앞이다.
삼복에 웬 복인지 올 해는 에어컨 리모콘에 손도 안 대보고 삼복 다 지나 간다.
이복이건 저 복이건 어쨌든 복날을 잘 보내야 여름이 편타더라.
부디 복날에 몸보신(뭘로든...)하시고 모쪼록 다들 건강하소서.

  

 

'아침부터 바쁘시구만.'
'어! 아이고.. 하마 운동 갔다 오시는기라?'

'지금 일 나가실라고?'
'아이라, 그물 손질만 해노마 일이야 은제 나가든지 뭘... 에헤이.. 어제 오싯으마 좋았을걸'

'왜요?'
'고래 한마리 건졌거든'

'어이쿠나! 얼마나 되는데?'
'한 사미터 반... '

'횡재 하셨네. 한턱 내셔야지!'
'한턱이나마나 속이 상해서 이불 디비쓰고 하루 내 누우있다 나왔구마요'

'....?'
'그그지께 바람 불었제, 다음날도 못나가고 이틀이나 물속에 담가놓고 있어노이......
선도가 떨어져 육회거리 안된다고 한 돈천만원 날아갔다요.'

'아이고...글쿠나... 하루 이틀 상관에 돈천만원이 왔다갔다 하는구나...
뭐 그래도 안걸린것보다 좋지 뭘.'
'그야 글체. 흐흐흐...'


황보씨의 어깨는 둥글고 두텁고 겸손하다. 요즘은 저런 어깨를 가진 사내가 잘 없다.
그의 아내도 둥글다.
그의 아내 김씨는 십여년전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회생했는데 아직도 걸음이나 말이 좀 어눌하다.
그래도 두 내외는 여전히 참 둥글다.

황보씨와 그의 아내 김씨는 내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손은 잠깐도 쉬지않는다.
그물에 끼어 털려지지않은 부산물들을 떼어내는 작업중이다.

'그물에서 뜯어내는 것이 솔찮구만. 저것만해도 한사흘 밥 반찬은 되것다.'
'아이고 베라벨끼 다 걸리와요. 한약 껍디기, 주스 깡통, 비니루봉다리에 생리대까지 올라온다니까요.'
'그것 참.'

'요기가 밑바닥이고 요기가 물에 뜨고 .... 그래 조수가 왔다리갔다리 하다보마 게도 걸리고 말미잘도 걸리고...
괴기 잡는거야 뭐... 털어내고 나서 손질하는거이 일이라..'

평소에는 부끄럼을 타는 듯 말도 잘 없는 사내가 보따리가 끌러졌는지 이야기가 한참 풀어진다.
말이 어눌한 그의 아내는 한마디 끼어들라다가 잘리고 또 끼어들라다가 잘리고.. 그래도 자꾸 웃기만한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사람이 좋아 잠시 앉아서 곁다리 끼고싶은데 
걷던 서슬이라 그런지 한참 서 있었더니 등짝이 어슬어슬해지는 것이 겨우 나아가는 감기 덧칠라, 
하지만 반갑다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순하게 웃는 얼굴 마주보니
내생각만 한듯 얌체같은 느낌이 들어 좀 미안해진다.
그래도 뭐 어쩌냐. 내몸 내가 챙겨야지...... 

'그럼 나는 인자 가보께요. 고생하이소.'
'어! 가마 있어보소. .....국아! 거 비니루 봉다리 하나 갖고 오이라'

국이는 이 집 큰아들이다. 큰아들은 국이, 작은 아들은 혁이.
아버지나 아들들이나 다 외자 이름이다.

'멫마리 안돼요. 콩나물 넣고 국이나 한냄비 끼리 드시라고.'

연신 아가리를 뻐끔거리는 아구가 다섯마리다.

'이것 참, 애써 잡은 걸 공으로 자꾸 얻어먹어서 어째요.'
'참, 그런 소리 마소. 내가 일부러 갖다디리지는 몬해도 마침 오싯으니 나놔 묵는기지..'
'아이고... 그럼 덕분에 또 맛있게 잘 먹지요 뭐. 고맙습니다.'

부경리 선창에서 우리집까지는 걷자면 한 삼십분 걸린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거워졌다.
이것 장만해서 한나절 슬쩍 바람 쐬었다가 무우 삐져넣고 콩나물 넣고 두부 서너토막 띄워서 맑은 탕을........
황보씨 덕분에 나는 오늘 하루가 다 행복해졌다.


.....
아구가 공짜로 생겨서 행복한거라고?  

흥.....  



2006. 11. 21



'단순히 신발을 만든다는 생각으로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없다.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야 한다.'


언젠가 어떤 갖신쟁이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한 말이다. 이름 뒤에 무슨 번호도 붙은 국가 공인 갖신 장인이라던가.
나 같은 사이비가 일생을 두고 한 가지만 매만져 온 장인의 심오한 정신을 쉽사리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단순히 신발을 만든다는 생각으로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없다.' 는 말에는 그다지 쉽게 동의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어떤 것이 신발이라면 가장 먼저 신발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바꿔 듣자면 그 사람의 말은 단순한 ‘신발’은 ‘작품’이 될 수 없다는 말이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세칭 ‘예술가’들의 ‘예술적 오만’은 아니었을까?
나는 신발을 제대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기능이 우선하다 보면 자연히 기능에 따른 아름다움이 배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것이 꼭 신발이 아닌 그 무엇이더라도.)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자연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신발로서의 충실한 기능보다는 외적인 아름다움이나 작품성에 지우치게 되어 정작 신발이 가져야 할 본연의 미덕인 발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감싸는 역할에는 등한시 될 것이 아닌가.
신발이 신발로서의 기능보다 작품으로서의 그것이 우선하게 되면 발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감싸고 보호한다는 원래의 본분을 잃고 발 보다 훨씬 높은 곳에 제 할 일을 잃고 진열되어 호사를 누리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하나의 작품으로 아름다운 신발을 빚어내어 세간에 널리 보이는 것도 또한 가치 있는 일이겠지만 튼튼하고 편안한 신발을 발에 잘 맞게 맞춰 신고 거친 땅 위를 걸어 낡고 헤지면서 천천히 배어나오는, 그 자연스러운 마모가 주는 친숙한 아름다움 또한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신발은 신어야 신발이고 그릇은 온갖 물건을 담고 비울 수 있어야 하며 북은 쳐서 소리를 내야 북이다. 도난방지 유리 진열장 속에 북채와 헤어져 덩그러니 걸려있는 북은 이미 북이 아니라 '옛날 옛적 그 언젠가 북으로 쓰였던 물건'일 뿐인 것이다.

나는 이전부터 공예적 수준의 물건들에는 어쩐지 호감이 가지 않았었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고나서 비로소 그 이유를 조금은 짐작 할 수 있었다.
박물관이건 여염집이건 대단히 화려하고 엄밀한 장식성을 자랑하는 물건들의 모습이 그 길고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당시의 반듯하고 말짱한 모습을 온전히 받아 간직하여 장식장 속에 갇혀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까닭 없이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보다는 어딘가 답답하고 지겹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이 생활에서 멀어짐으로 나타나는 부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사람의 손에 부대끼며 닳아가는 생활 도구로서의 그것들이 아니라 다칠라 깨질라 어화둥둥 모셔놓고 조심조심 보존하며 완상하기 위한 공예품적인 그것이 되고야 만 것을 나는 오히려 답답해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러니 나는 사람의 생활 속에서 쓰이고 부딪히고 닳아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장식이 필요하다면 기능이 완성되고 난 이후에 기능과 기능미를 다치거나 넘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기능을 따라 흘러가는 최소한의 장식이 좋지 않을까.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기능적인 구조가 아름답게 배열되어 더 이상의 군더더기의 장식이 필요치 않은 경우다. 대개 완성도가 높은 물건들은 기능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생활에서 늘 가까이하는 물건들도 어지간만 하면 중고품을 별로 꺼려하지 않고 때로는 오히려 새 것보다 더 정겨워하는 것도 이런 데서 나온 습성이 아닐까도 생각해봤다.
나는 옷을 사러 가서도 나는 헌 옷 같은 느낌이 드는 옷을 먼저 집어 든다. 편하니까. 신발도 그렇고 집에서 쓰는 가구들도 마음에 들기만 하면 재활용 센터에서 덜렁 주워 오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애 엄마는 궁상이라고 질색팔색을 하지만.
또 밥을 먹으러 갈 때도 단골집 몇 곳을 줄기차게 반복해서 간다. 갔던 곳을 또 가는 것이 새 밥을 찾아 헤매는 것 보다는 얼마나 편안한가 말이다. 물건이건 생활이건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겠지.


허구헌날 만지고 쑤셔대는 오디오는 어떤가. 내 기억으로는 새 것을 사 본 것이 한 번인지 두 번인지? 명색이 오디오라는 것에 눈을 뜨고 난 뒤로는 새 것을 사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물론 새 것에 비해 값이 싸다는 것도 큰 매력이지만 같은 값을 주고라도 뒷 세대의 물건들에는 선뜻 손이 나가지를 않는다. 요즘 만들어내는 그렇고 그런 물건들의 만듦새며 디자인들은 한 세대 이전의 물건들에 비하면 일단 그 관능적인 느낌에서 많이 가볍다.(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뿐만 아니라 상당한 고가의 물건들도 그 디자인은 같은 급수의 예전 물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금 쓰고 있는 물건만 해도 십여 년 지난 물건들이 대부분에다가 심지어는 삼사십년 묵은 물건들도 있다. 당연히 외관이 조금 낡았다는 것 외에는 기능이나 만족감에 하등 하자가 없다. 오히려 요즘의 날렵하고 어딘지 얍삽해 보이는 디자인과는 다른 구시대의 투박하면서도 진지한 디자인에 저으기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아, 물론 진공관 앰프의 관 이름을 새겨 둔 글자가 지워져서 형번을 찾아 내느라고 진공관을 뽑아 들고 가재미 눈으로 끙끙 앓아보기는 했다.


하지만 중고 물건들에도 이상하게 배짱이 맞지 않는 물건들은 있다.
낡은 품새며 손때들이 어쩐지 내 그것과는 곱게 오버랩 되지 못하고 사납게 느껴지는 물건들 말이다.
아마도 주인을 잘 못 만나 이 손 저 손 하염없이 흘러 다니면서 거칠고 험악하게 다뤄졌거나 대단히 부주의한 사람을 만나 끔찍한 자상을 입거나 심한 타박상으로 몰골이 바뀌어버린 물건들은 그 외관에서도 내, 이렇게 모진 풍상을 겪었노라는 고약한 성정이 배어 정내미가 뚝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자잘한 일상에 부딪히고 시달려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낡음’을 갖고 있는 물건들은 잡티 하나 없이 번쩍거리는 '신품 동(新品 同)'의 물건보다 편안하다. 그 편안함은 친숙함과 취급이 부담스럽지 않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중고 물건을 하나 갖게 되면 한동안 그 물건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닦고 매만진다.
내가 알지 못했던 좋은 점이 보이면 기꺼워하기도 하고
혹 조금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다듬어 보기도 한다.
내 나름대로 새로운 물건에 정을 붙이는 방법이다.
그러다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손에서 사랑을 받다가 또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연유를 가만히 그려보기도 하고 크고 작은 흠집이나 닳은 자국에 묻혀 있을 얼굴도 모르는 그들의 풍상이나 내가 알지 못하는 갖가지 사연들을 상상해 보기도 하는데, 그럴 여지가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이 세월의 흔적을 담은채로 내 눈 앞에 온전히 놓여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멋진 매력인가.


그렇다고 중고품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더라.
몇 년 전에 동해안의 바닷가에 있는 어느 밥집에 묵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낮은 구릉에 바다를 보고 앉은 일견 고즈넉한 너와집이어서 바깥 풍경은 썩 나쁘지 않았으나 정작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물레며 죽부인이며 다듬돌에 다듬이 방망이까지 구색으로 갖추어 놓고 가마니 틀에다 골자리 틀이니 이런 보기 어려운 옛것들이 방 한가득 걸리고 쌓여 있는데 그 물건들의 계통 없는 놓임새며 모습들이 우격다짐으로 갖다 재어놓은 창고를 연상케하여 도무지 정겹지 못하고 저희들끼리도 따로 노는 듯 느꼈었다.


쓰일 곳에 쓰이고 놓일 곳에 놓여야 틀이 잡히는 물건들, 물론 그것들이 사람이 쓰던 물건이 아니었더라면 아예 돌아 볼 것도 없었겠지만 중고품들이 갖고 있는 매력은 그것들을 썼던 사람들의 손자국이고 풍상의 흔적도 그렇지만 그것들을 느낄 수 있는 여유와 여백이 아니겠는가.
만약 그 엉터리 한지를 바른 방 한 구석에 한두 가지 물건이라도 다소곳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더라면 모르긴 해도 나는 저으기 안도하며 아주 편안하게 허리띠를 풀고 묵밥을 먹고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헛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이 그렇게 마구잡이로 귀신 나올 듯 쌓아 둔 모습은 끌어다 모으는 욕심은 넘치면서 맵시 있게 쓸 줄은 모르는 요즘 사람들의 몰취미를 그대로 보는 듯해서 그냥 신기한 구경거리로만 일별하고 말아, 그나마 맛이 괜찮았던 파전도 두어 점 뜯어 먹고는 그냥 일어서고 말았을 뿐이다.


그래도 그 집 마루 한 켠에 되는대로 쌓아 두었던 누군가의 젓가락 자국이 남은 양은 도시락이며 중고등학생용 책가방, 모표 달린 모자 같은 물건들은 강시처럼 썰렁하게 묵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기는 했었어도 한 때 나도 직접 만지고 부대껴 봤던 물건들이라 불현 듯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애틋하게 쓰다듬어 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 목공소에서 새 것을 깎아다가 진열 해 둔 것 보다야 훨씬 낫지.
그렇고말고. 옛 것들이야 상태만 좋다면 묵은 것이 낫다. 타임캡슐에 진공 포장을 해 두었다가 훗날에 기념할 일이 아니라면 그저 사람의 손때가 묻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중고품을 마다하지 않는다. 손때 묻지 않은 말짱한 새 것이야 꼴은 멀쩡하겠지만 몇 백 년 묵은 무덤에서 느닷없이 불쑥 불거진 무슨 부장품같이 그 생경하고 메떨어진 느낌은 다소 끔찍하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그 갖신 장인이 만든 신발도 발에 잘 맞는 이가 신어보면 아연 그 아름답고 정교한 솜씨에 대단히 만족하면서 아껴 신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하다. 아마도 그렇지 않겠는가. 명색이 장인이라는 칭호가 시정잡배며 우수마발에 계통 없이 되는대로 주어지는 것은 아닐테니까. 그런데도 내가 끝끝내 마뜩치 않아서 앙앙불락하는 것은 그런 장인이 만든 훌륭한 신발이 정작 사람의 발에 신겨져서 흙 맛을 보지 못한 채로 고스란히 진열장에 갇혀서 미이라처럼 일생을 보낼 생각을 하니 마냥 답답하고 안쓰러워 그래 보는 것일 게다. 아무리 그래도 그저 신발은 신어야 맛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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