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5학년.
코스모스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소풍 갔다가 비 두들겨맞고 오실오실 떨면서 후배들 따라 들어 간 곳이 진주 예하리 그 집이었지. 낡아서 비끄러지는 기와집 마당에 잔칫날처럼 허연 광목 천막 아래 평상에 앉아서 개다리 소반을 받았다.  

'수육에 맑은 탕 한 사발이면 술도 확 깨고... 속이 뜨끈할낍니다.'

그래. 참 좋았다. 
수육도 부드럽고 좋았지만 생강을 채 썰어넣은 그 처음 보는 맑은 국물은 일품이드만.
콧잔등에 땀이 흐르고 젖은 옷에서 김이 무럭무럭 오를만큼 신나게 퍼 먹었다.

'아! 국물 정말 일품이구나.'
'좋치요! 속풀고 술 깨는데는 개탕이 제일입니다. 행님, 개도 묵을만 하지요?'
'??.....................................!!'
'........ 염소'도' 하는 집이라캤지요. 갑돌이가 시켰으니 내는 죄 엄소.'

염소탕 먹으러 가자는 후배 두 놈에게 꼬여서 처음 먹어 본 개고기였다.
속아서 먹기는 했지만 아주 맛이 좋았기때문에 그날 후배 두 놈은 나의 가혹한 응징을 면했다.

그렇게 입문은 괜찮은 편이었다.
술 마신 뒤면 늘 속이 편치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편안한 뱃속을 경험한 탓에 그 뒤로 가까운 이들과 자리를 만들라치면 팔을 걷어부치고 예하리 그 집으로 가자고 굳세게 주장을 하곤 했다.
알고보니 그 집은 내가 몰라 그렇지 개고기로 아주 유명한 집이었는데 마침 내가 가 본 뒤로 얼마 안되어 돈 많이 벌었는지 근사한 건물 새로 지어서 '이전확장개업' 을 하드만. 

그런데 그놈의 '이전확장개업'은 왜 십중 팔구는 뒤끝이 좋지 않은지.
그 새집에는 딱 한 번 가보고는 그냥 발을 끊고 말았다.
널찍한 구식 한옥 마당에서는 못느꼈던 누린내가 새로지은 삼층짜리 철근 콘크리트 건물 구석구석 누릿~ 하게 배어 있었거든.
그리고 그날 그 누릿함을 애써 견디며 먹은 그 비싼 음식은.... 
그 후로는 개탕에 대한 믿음도 그냥 시들시들...  누가 먹으러 가자해도 민적민적.......
하긴 그 후로는 아주 발길을 끊고야 말았으니 지금 또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지금은 우루루 무리 지어서 누군가가 깃대 잡고 분위기 휩쓸리면 그냥 못이겨 따라가기는 하지만 내 지갑 열어서 사 먹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뭐 애초부터 개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선입관은 없다.
개나 소나 그게 무엇이든 한 목숨 부지할라면 어차피 다른 동식물의 보시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니 굳이 혐오스럽지만 않다면 된다 안된다 가리고 유난을 떠는 편은 아니다. 다만 먹어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어쩐지 켕기는 그 정도. 

어쨌든 개고기는 처음 먹었던 것이 몸에 아주 잘 받는 듯 해서 흡족해했지만 이내 한 번 낭패를 보고나니 그 낯설음이 길다. 그 모양으로 지금까지 이십여년이다. 고향 떠나서 이쪽으로 온 첫 집이 부업으로 보신탕용 비육견(?)을 사육하는 집이었는데 그 집에서 개 입장에서 보자면 참 기구하고 참혹한 꼴도 더러 구경하고 그래서 인자는 조금 더 정이 떨어져버렸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집 뒷산에는 이십 여마리의 식용 개들이 사육되고 있었는데 때때로 왈왈거리며 자리다툼하는 소리가 우리집까지 들리기도 했다.해마다 이때 쯤이면 우리 집 앞 산길 입구에다 개장차를 세워놓고 흥정을 해쌓는다. 복날 준비하느라고.
.......
그 개들 목에 올가미 걸고 아주 사색이 되어 끌려 올라가는 꼴 보면 참....
짐승도 제 죽을 길은 아는게지.


추신/
우리 동네 교회는 작다.
애 엄마는 열심신자고 나는 땡땡이 환자다.
마누라가 닥달하지않으면 일년 가도 교회 한 번 갈까말까... 더러더러 원성을 듣기도 한다.
그래도 워낙에 콧구녕만한 교회다보니 목사 사모 장로 집사 해서 다들 알고지낸다.
그런데 이 교회 재미있는 것이 때때로 무슨 제목 붙는 날 밥을 해서 같이 먹는데 심심찮게 올라오는 메뉴가 개탕이다.
뭐, 절도 아니고 중도 아니니 개를 잡건 소를 잡건 탓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룩한 교회에서 개탕을 맹글어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는 것은 공연히 우습다.
내사 안나가는 날이 더 많으니 못얻어먹는 확률이 높기는 한데, 그런 날이면 열성 집사님들이 냄비에 한 가득 담아서 애 엄마 편으로 보내주시는데, 못이긴체 먹어보면 어느 집사 아주머니인지 솜씨는 정말 대단해서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미각적으로 전혀 하잣거리가 없는 일급 개탕이다. 적어도 내가 먹어 본 중에서는.
그래도 좀 거시기하잖아? 개를 즐겨 잡아먹는 교회라...


추신2/
식구들과 근처 공원에 배드민턴 치러 갔다가 공원 주차장에 어슬렁거리는 개 한 마리를 보았다. 그 놈을 보고 아이는 무섭다고 슬그머니 내 곁으로 숨는데 나는 혼자 생각에 복날이 가까운데 저 놈이 어쩌려고 저리 돌아다니나... 객적은 궁리만 굴리다가 주저리 따라나온 이야기다.

개와 인간의 관계에 관한 서양식 잡설들이나 불란서의 어느 늙은 여배우가 뭐란다는 헛소리 등속은 내게는 전혀 무가치하므로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초복 중복 어느 새 지나가고 말복이 코 앞이다.
삼복에 웬 복인지 올 해는 에어컨 리모콘에 손도 안 대보고 삼복 다 지나 간다.
이복이건 저 복이건 어쨌든 복날을 잘 보내야 여름이 편타더라.
부디 복날에 몸보신(뭘로든...)하시고 모쪼록 다들 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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