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아는 진수라는 후배는 낚시광입니다.
언젠가 대낚시 예찬에 장광설이 늘어진 진수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친구가 물었습니다.

'릴도 있잖아?'

그 친구의 말에 진수는 상기된 얼굴로 단호하게 잘라 말했습니다.

'릴을 쓰는 사람은 어부입니다. 釣士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낚시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그 후배의 낚시에 대한 대단한 자긍심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좀 듣기 거북한 비린내도 같이 맡았지요.
어부가 뭘 어쨌다고? 나는 공연히 심사가 뒤틀려서 진수에게 대패질을 했습니다.

'어이, 먹고 사는 일보다 더 숭고한 것이 있다면 어디 한 번 꺼내봐라.'

아, 당연히 그 때나 지금이나 낚시를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나 또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곁눈질로라도 한 번 배워 볼까 싶은 생각이 없지 않은 매력있는 취미 생활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사돈의 팔 촌에 처삼촌까지 뒤져봐도 우리 집안이야 맨 산골 촌놈, 눈귀를 씻고 살펴 봐도 어부라고는 없으니 공연히 어부를 두둔한답시고 무단히 팔 걷고 나서서 구정물 뒤집어 쓸 일은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랑하는 후배 녀석이 낚시에 대한 지나친 애정을 핑계삼아서 그것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을 은근히 조롱하고 비하하는 꼬라지가 뵈기 싫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랄 뿐입니다.

2.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흔히 예술가를 비하하여 부를 때 , 혹은 그대들 스스로 자조하여 칭할 때, '내가 장사꾼이냐?' 하고 비틀어 튕깁니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 비유처럼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이거 아주 웃기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장사꾼이 아닌 줄 알았냐는 겁니다.
나는 진정한 예술가는 진정한 장사꾼과 다를 바 없으며 오히려 다르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예술인들은 우리에게 단순히 지갑을 여는 것 만으로도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중개 해 주는 또 다른 상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논바닥에 발 한 번 담그지 않고도 동네 마트에만 가면 깨끗하게 도정 된 쌀을 사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이것은 오히려 감사한 일이고 아름다운 모습 아닌가요?

물론 저자에 보자하면 간혹 소비자에게 눈을 부라리고 삿대질하는 간뗑이가 부은 장사꾼도 없지는 않지만 그건 아시다시피 곧 망하기를 작정했거나, 아니라면 안면으로 먹고 사는 동네 골목 수퍼나 독과점을 무기삼아 턱주가리로 장사 해 먹는 불한당일 뿐입니다. 이런 저런 까닭으로해서 나는 이 말을 조자룡이 헌 칼 꺼내드끼 써 먹습니다.

'먹고 사는 것보다 더 거룩하고 숭고한 게 어디 있어?'

대낮에 예술적으로 한 잔 꺾고 길바닥에 어질러진 채로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세상을 업신 여기거나 뭇 사람들의 이목이 못내 그리워 조금이라도 남달라보이기 위해서 갖은 애를 써야만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 일에 미친듯이 매달려 있자면 저절로 남 달라 보이기도 하고 그 모습이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이지 남 달라 보이기 위해서 미친듯이 노력하는 모습은 글쎄올시다...
어쨌든 그런 안쓰러운 모습은 순전히 그대들의 개성이고 자유지만, 여기저기서 줏어 모은 유치한 행위 따위나 일삼으며 예술가연하는 그대들. 지 잘난 맛으로 사는 거야 무방하지만 사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실 좀 거시기 하거든요. 꼭 기본 실력은 개차반이면서 오로지 특이함이나 기괴함으로 어필 해보려는 싸구려 상품들을 보는 느낌과 어쩐지 비슷합니다.
단지 품질이 떨어진다는 단순한 사실 이외에도 택도 아닌 것으로 어필하려고 뼁기칠 해 놓은 듯한 불쾌감까지 유발하는 그런 느낌 말입니다. 인간과 삶에 대한 생각이 진지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런 야바위는 못팔아먹지요?
아, 당연히 여기서 싸구려라는 것은 가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껍질만의 이미지로 한 몫 잡으려는 그 의도의 얄팍함에 대한 것이지.

3.
아니 아니, 낫살이나 지긋이 먹어서 희끗한 머리 빵떡모자로 삐딱하게 눌러 쓰고 빨뿌리 담배 뻑뻑 빠는 할배 할매들이야 뭐 어때요. 얼마든지 애교로 봐 줄 용의가 있고 말고지요. 그거야 최백호 말 마따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변두리 낭만을 위한 애절한 탱고 일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건 쉬염이 발등을 덮고 팔다리가 후들거릴 때 쯤 해서야 '그럴 수도 있을 일'입니다. 북망산이 코 앞인 다 늙은 낭만객이 민폐 끼쳐봤자 얼마나 가겠냐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여기저기서 줏어 모은 기행이나 흉내내면서 술주정도 예술, 민폐도 예술, 시건방도 예술, 찍자도 예술, 행패도 예술, 하다 못해 아랫도리 함부로 내돌리는 것도 예술적이라며 숫캐 암캐같이 아무데서나 발정 난 청춘을 변호하느라 기염을 토하는 자칭 타칭 예술가들. 나는 그런 십원짜리들은 예술가로 인정 못합니다. 그 옛날, 으랏차차 차력 보여주고 만병통치 약 팔던 약장사들은 그래도 관중들에게 겸손하기라도 했지. 하다 못해 구경하는 재미라도 있었잖아요?

기행이란 것은 말이 좋아 기행이지 사실은 별꼴이나 다름 없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별꼴은 운 나쁘게 진짜배기와 맞딱뜨렸을 때 인격이나 실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떨이로 두 손 털고 오링 되는 패지요. 그 싸구려 예술이나 사이비 인격이 통하는 부류라는 것도 어차피 그대들과 비슷하거나 달라봤자 겉모습만 조금 바꾼 마이너체인지 시리즈일뿐이니, 이거나 저거나 쉽게 말해서 주로 예술을 보따리에 싸 다니며 민폐를 끼치는 분이나 뭔가 색달라 보이는 별난 짓을 통해 예술적 악취를 풍기고 다니는 분들을 말합니다. 나는 둘 다 예술적 양아치로 생각합니다.

하긴 별꼴이건 기행이건 사실 뭐, 별 개차반같은 날궂이도 오다가다 언뜻 보면 한 번쯤은 구경해 볼 만도 합니다. 하지만 예술이 무슨 면죄부도 아니고 면허증도 아닌 다음에야 그런 날궂이는 젊을 때 한 두번, 어쩌다 생각 난듯이 한 번쯤 해야 맛이지 그거 뭔 듣기 좋은 꽃노래라고 밤낮으로 불어대면 그 날로 반상회 소집하고 덕석말이 들어갑니다. 동네 사람들이라고 너나 없이 다 순덕이는 아니거든.

그러니 끝까지 고상하게 버텨봤자 장사꾼이 소비자로 인하여 밥을 벌어먹는 것 처럼 예술가 역시도 밥은 먹어야 살고, 결국은 그 놈의 예술이란 것도 역시, 그 짓 아니면 밥 빌어먹고 살 길이 없으니 에라 모르겠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남 보기 좋게 포장해 놓은 하나의 상품이며, 그러나 마나 제아무리 시대를 앞서는 뛰어난 예술이라 하더라도 역시 그 대상은 '사람에게로'지요. 세상에 개나 원숭이를 위해서 우울하게 고뇌하는 예술가는 없을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것을 구매하는 대중이나 그 대중이 세상 먼지 뒤집어쓰면서 시난고난 살아가는 이 먼지투성이 세상이 아니라면 그 놈의 거룩한 예술도 존재 이유가 없는 거 맞지요? 그 수준 낮은 대중이 사실은 다 너그들의 거룩한 예술의 존재 이유에 들어간다는 거 정말 모르겠어요? 송곳 구멍이나 들여다보면서 건방지게 턱주가리나 내 밀줄 알았지 도무지 겸손할 줄 모르는 호마이카 예술가 여러분.
내가 아는 어떤 화상이 그럽디다. 교만은 가장 부서지기 쉬운 값싼 유리그릇이라고. 교만한 인간보다 손쉬운 상대는 없다고. 그거 천만번 옳은 이야기니 귓구멍에 잘 새겨 들어둬요. 
4.
한 가지 더.
그대들이 남다른 재주를 가졌다고 해서 갑남을녀 보통 사람들이 대체로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대들과 같은 별난 재주는 정신적인 결손으로 비롯된 보상 작용의 과부하일 확률이 팔 할이 넘어요. 다친 상처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을 때 아물면서 부풀어 오른 보기 흉한 떡살같은 거 말입니다. 또한 그대들은 그대들 스스로 치열한 싸움 끝에 보통 사람과 같은 평범한 삶을 버린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보통 사람의 삶과 같은 평범한 삶을 누릴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평범하게 사는 거, 그거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땡볕에 어린 놈들 업고 걸리고 양 손에 시장 보따리 들고 콧등에 송글송글 땀방울 달고 골목길 들어서는 동네 아지매로 사는 것, 저녁이면 한 잔 걸치고 콧노래 부르면서 과자 봉다리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옆집 아저씨로 사는 것, 그거 사실은 사람 사는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능력이란 말이지요. 세상의 피와 살과 뼈가 되어 주는. 그런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없는 세상, 즉,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들 같은 '자칭 예술가'로 가득 차 있다는 상상을 해 보면 대번에 짐작이 되지요? 얼마나 끔찍한 세상이 될지.  

예술이랍시고 남다른 뭐 있는듯이 포장해놔봤자 책만 보면 베고 자는 장돌뱅이라도 시장 바닥 돌아가는 데는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훤하며 공부는 젬병이라도 시멘트 바르는 데는 도가 튼 그런 사람들이나 매한가지라는 겁니다. 혹시나 그대들이 세상을 위해 기여한다는 것이 그들의 능력에 비해 뭐가 얼마나 나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아, 그대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 대중보다 최소한 한 세대를 앞서 가는 대 예술가라 자부 한다고요?  그렇다면 참 잘 된 일이군요. 그 참에 밥그릇에는 신경 끊고 예술에만 전념 하시든지. 한 세대 지나고 나면 값 엄청 올라 갈테니 염려 붙들어매시고. 시대를 앞선 대 예술가 체면에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니가 나를 모르느냐 세상이 나를 버리는구나 배고픈 강아지처럼 짖지 말라는 겁니다.

이렇게 알아듣도록 줄줄이 풀어서 이야길 해 줘도, 웃기네, 소용 없다, 밥내 나는 대중 따위와 관계없이 당신 혼자 고고히 존재 해야겠다면 남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혼자 골방에서 다 해 먹든지 말입니다.
그대에게 관심 없어 무심히 지나가는 한 세대 뒤쳐진 무식한 삼돌이 삼순이 여러분들 붙들고 니가 내를 아나 모르나 자다 깨서 봉창 두드리듯 울부짖지 말라는 겁니다.

5.
마지막으로 한 가지.
보통 사람이 봐서는 도대체 재미도 없고 돈도 안되는 어려운 예술이 반드시 존재 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뭐 어쨌든, 난해한 예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재능입니다. 당신이 다행히도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 진심으로 축하를 드려야겠지요. 하지만 뭔 존재 가치고 나발이고를 다 떠나서 그 난해하다는 것은 결국 전달하는 방법일 뿐이란 건 알고 있지요? 난해한 예술이라는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예술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난해한 것이라는 거. 또한 그런 방법을 구사하는 여러분들 역시도 난해하건 불가해하거나 간에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류가 결국 몇 안된다는 것은 역시 잘 알고 시작했을 것이고.

그러니 사람이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하듯이 낫살이나 먹었으면 나이 값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싹수 없고 경박하기로 소문난 요즘 아이들도 사춘기만 지나면 내 코드에 안맞다고 징징거리고 보채지는 안해요. 잘난 척을 하고 싶다면 어떤 게 남사스런 일인지도 알아야지. 내가 내 인생을 사랑하고 예술을 즐기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고 그것이 잘 팔리기까지 한다면 더 좋은 일이지만 그거 빌미로 그 놈의 예술적인 그대의 인생까지 팔아 먹거나 행세 해 먹을 생각은 하지 말자는 겁니다. 

6.
마지막으로 요약해 봅시다.
첫째. 
끝끝내 우중충하게 예술적으로 우울해지고 싶다면 돈벌이에 신경을 끊어라.
둘째.
돈벌이가 목적이라면
그 같잖은 예술가 시늉은 집어치우고 싸구려 장사꾼임을 곱다시 인정하고 제대로 장사를 시작해라.
셋째.
그대가 진짜 훌륭한 예술가라서 둘 다 가져야겠다면
질도 좋고 잘 팔리는 물건을 만들어서 어디 뭔가를 한 번 본때있게 보여주시라.
넷째.
부디 여기저기 줏어 모은 기행 따위들 흉내 내지말고 예술 팔아서 술주정 하지말고, 민폐 끼치지 말고, 시건방 떨지 말고, 항상 소비자에게 겸손할 것이며, 특히 그 놈의 예술적으로 발정 난 아랫도리 함부로 내돌리는 짓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말이 좋아 예술이지, 사랑한다, 미안하다, 죽여라, 못 산다, 울부짖으며 어질러 놓고는 뒷 수습이 안되니 나중에는 사랑했노라 행복했노라 고뇌에 찬 분홍색 꽃 편지지 같은 소리나 하고 뒤로 나자빠질 것이 십중 팔구지요?
별별 사람이 별별 고상하고 거룩한 소리 해싸도 솔직히 들여다 보면 인생 잡사 대부분이 목구멍이나 아랫도리 감당 못해서 시작한 일인 거잖습니까.
세상을 지탱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그대들처럼 고상하게 쉬어 꼬부라진 예술가들이 아니라 새끼들 아파서 밤새 뜬 눈으로 동동거리는 순옥이 어마이, 내 식구 어느 놈이 건드렸냐 앞뒤 없이 괭이 자루 들고 나서는 맹구 아바이, 보리쌀 한 자루 때문에 지게 작대기로 공매를 맞고도 내 새끼 기 죽을라 터진 대가리 싸매고 포커 페이스로 버티는 삼식이 아부지들이에요. 그러니 따신 밥 먹고 식어 빠진 예술같은 소리 해쌓지 말고 일찌감치 정신들 차리기를 바랄 뿐이지요. 


2006 년 8 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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