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

집 뒷산 중턱에 개막사가 두 개 있다.

습하고 컴컴한 도랑을 건너 있는 탓에 귀찮아서 직접 가 보지는 않았지만 짐작에 막사 하나에 예닐곱 마리의 못생긴 놈들이 멍멍거리고 산다. 올라가서 그 놈의 개 머릿수를 세어 볼일이야 없겠지만 간혹 자리다툼 하느라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그리 짐작한다. 술독으로 코 끄티가 빨간 딸기코 이장 영감이랑 배 나무집 중늙은이 하나가 조석으로 짠밥 깡통을 지게에 달고 각기 자기 소유의 개막사로 오르내린다.


사나흘에 한 번씩 대낮에 ‘개애~ 삽니다아~’ 하는 확성기를 달고 트럭들이 오고간다.

내 집이 동네 끄트머리 산길 길목에 있다보니 때가 맞으면 내 집 앞에 트럭 대 놓고 개 목줄 끌어 올리느라 부산을 떨기도 한다. 보신탕용 비육견(?) 이다. 요즘은 알지 못하나 몇 해 전에는 마리당 이삼십을 오갔으니 농사짓는 틈틈이 부업거리로는 괜찮은 듯 하다.


그러니 짐작으로도 뻔 한 것이 무슨 대단한 농장이라고 울 치고 담 치고 했겠는가 말이다.

대충 비닐하우스 뜯어 낸 뼈대 서너 개 둘러치고 판자때기 몇 개 얽어 놓은 위에 깨진 스레트 두어 장 얹어서 삭은 그물로 덮어씌운 이름만 막사다. 이름 하여 ‘영세 양견(?)업자’.

자,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이런 허름한 울쯤이야 송아지만 한 도사 잡종, 성질나면 뜯어 발기고 나서기야 식은 죽 먹기지. 가다 한 번씩 목줄만 감은 채로 허옇게 침 빼어 물고 동네 어귀나 논밭 사이로 대중없이 어슬렁거리는 험상궂은 인상의 도사 잡종을 보노라면 일순에 꼬리뼈 께가 찌릿 한 것이 기분이 썩 편치 않다. 그러니 어른도 그럴진대 아이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바람 쐬러 간다던 큰 놈도 화들짝 놀라서 ‘아빠, 목장 개 풀렸던데요.’ 땀이 송글송글 얼른 뛰어 들어오고 마당에서 모래장난 하던 작은 놈은 아주 기겁을 하면서 거의 경기를 한다. 대문도 없이 사는 남의 집 마당에도 불쑥 들어와서 지 멋대로 어슬렁거리고 기웃거리고 하니 깜짝 놀라고 말고지.


개 주인들에게 항의도 해 보고 참다못해 범 군청 차원에서 조치를 취해달라고 방견 신고도 몇 번 했었지만 ‘예에~ 자알 알아서 조치 하것습니다아~. 매번 말만 비단이다.

비단이고 공단이고 간에 일단 풀린 개를 그럼 당장에 어찌 하냐고.
그 때마다 파출소에서 총을 빌려다가 쾅 쏴버릴 수도 없는 일이고.
떼 지어 짠밥 먹여 몇 달 길러서 어지간하면 팔아먹는 놈들이다 보니 길들이기는커녕 이름조차 있을 턱이 있나. 하다못해 끈 풀린 똥개 찾드끼 ‘워어리, 이리 오너라.’ 라든지, ‘독구야 끌끌’ 이런 말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우습지도 않다. 그런 상황이면 딸기코 이장 영감이며 중년의 사나희는 작대기 하나 꼬나 든 채로 말 한 마디 없이 얼굴이 시뻘거러니 산 중턱이며 논밭 사이를 헐레벌떡 쫓아다니는 게 다다. 목 놓아 부를 이름이 있어야 말이지.

우습게보니 우습기도 하지만 사실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덩치 큰 이름 없는 개는 간헐성 맹수에 다름 아니다. 여차하면 사람을 해꼬지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 

 

2. 대문

그래서 담장만 대충 둘러치고 대문도 없이 살아 온지 어언 십여 년, 비장한 결심을 하고 대문을 짜서 달기로 했다.

말이 대문이지 기와지붕 얹어서 소슬 대문 세울 일이 있나. 피죽 먹고는 문고리도 달싹 못할 쇠대문 해 달 일이 있나. 그저 오가는 개만 못 들어오게 하면 만사형통인 울타리 수준의 사립문이다. 큰 맘 먹고 줄자 하나 꼬나들고 나서서 좌우의 폭을 재자하니 사 미터 수십 센치에 그나마 앞길이 비탈이라 마당어귀까지 조금 기울었다. 이런 젠장.

맨들맨들 시멘트 기둥에 여차저차 문을 달아 맬 궁리도 예삿일이 아니고 사 미터 남짓한 폭을 얽어 놓을 목재도 가격이 갑자을축 만만치가 않다. 하릴없이 줄자만 부여잡고 사립 어귀에서 서성거리기를 수삼일, 공언 후에 목을 늘이고 기다리던 애 엄마가 참지 못하고 묻는다.


‘담이 아부지, 대문은 은제 짜요?’

‘그저 궁리 중이로구만.’


코가 석자나 빠져서 시지부지 말 끝에 힘이 안 들어간다.

뻔한 쌈짓돈 통수에 목재며 각종 자재를 꼽아 보니 갑자는 을축이라 일이 십 만원이 우습게 넘어간다. 작업에 필요한 공구까지 챙겨보려니 여간한 부담이 아니었다. 날이면 날마다 사립께만 쳐다보자니 급기야는 대문 노이로제...

이러다가 밤중에 목재에 깔려 허덕이는 꿈을 꾸는 건 아닐까. 또는 목재 울타리에 짐승처럼 갇혀서 밤낮으로 슬피 우는 처량한 꿈은 꾸지 않을까, 각종 망상에 헛꿈까지 오락가락. 에라, 외통순데 일단 밀어나 보자. 한참 집 짓느라 몇 달 간 눈 코 뜰 새 없는 해빈이네 집에 전화를 넣었다.


‘이렇구저렇구 해서 집 짓고 남은 요만 조만한 나무 판때기 여나무 개 없것소?’


버섯 농장을 하는 진영이네 집에는 일전에 다녀오던 길에 언뜻 눈에 띄었던 화물용 파레트 판때기를 눈독 들이고 또 전화를 넣었다.


‘놔두고 불 때는데 쓴대매요? 그거 몇 개 나 주소.’  

이웃이 보배라 트럭까지 빌려 쓰며 목재를 확보했다. 덤으로 회전 톱까지 빌려다가.


마당에 얻어 온 나무를 재 놓고 보니 이게 원래 쓰던 용처가 아니다보니 이걸 어쩌냐 얼른 궁리가 서질 않아서 뒤적뒤적 망서리기를 또 수삼일.

안팎으로 꼬이는 일들에 이래저래 심사가 편치 않아 훌쩍 길 떠나서 사나흘.

죽자하고 내리는 비에 넋 놓고 앉은 채로 사나흘. 안 되겠다 머리 굴리다가 철 지나가겠네.

그리하여 나흘 전부터 작심하고 팔 걷어 부치고 무작정 망치를 들긴 했는데 태생이 헐랭이 삼촌 격이라 도무지 일머리가 안 잡힌다. 에라 모르겠다. 모조리 뜯어 발겨서 명실 공히 울타리나 둘러치고 말자.

그리하여 근 일주일을 살팎에 매여서 패대기를 쳐서 만든 물건이 남새밭 울타리 같은 대문이다. 뭐, 그런대로 생각보다 모양은 잘 나왔으니 사실 몹시 마음이 흡족하기 한정 없어 저으기 만족이다. 밥 먹고 나면 담배 하나 물고 감상하러 나가기도 했다.

못 삼천 원어치에 경첩 여섯 개 구천 원, 뼁끼 한 깡통에 신나 한 통 삼만 원. 싸다!

 

3. 수타면

7번 국도를 북상하다보면 우리 동네 조금 못 미쳐 수타면 집이 있다.

촌구석 짜장면 치고는 꽤 맛이 쓸만하여 아쉬울 때면 한번씩 애용을 하는데 며칠 간 대문 짠답시고 노가다를 하다보니 집구석이 어수선하여 끼니 챙겨먹을 일이 태산이다.

에라, 짜장면이나 먹자, 그래서 찾아간 집이 바로 그 집이다.

작은 놈은 무조건 짜장면, 큰 놈은 국물이 맛있다고 우동, 죽으나 사나 밥을 먹어야하는 나는 짬뽕 밥이다.

맛있다. 그런데 작은 놈이 먹던 짜장면을 조금 뺏어 먹다보니 어쩐지 면발이 예전 같지를 않다. 자세히 살펴보니 질이 썩 나쁘지는 않되 이건 분명히 동글동글한 기계 면이 분명하다.


‘아주머니, 인자는 수타면 안 해요?’

‘에그머니, 맛이 이전만 못하지요?’

‘조금..... 그런데 왜 안한대요?’


7번 국도 근동에서는 수타면의 원조라고 자부심 꽤나 빵빵했던 집이라 조금 의아했다.


‘부자간에 수타면 하느라 어깨가 고장 났대요. 그래서 주방장을 들였는데 월급이 삼백에다 걸핏하면 빼 먹고 배짱을 튕기는 바람에 내 보내고...... 그래서 고만 수타면을 접고 그 대신 가격을 내렸어요.’


언즉시야라, 메뉴판이 몽땅 바뀌었는데 삼천 오백 원하던 짜장면이 이천 원이다!

세상에, 라면 한 사발에 이천 오백 원 하는 세상인데 그래도 명색이 짜장면이 이천 원이라니.

그래도 하던 가락은 있어 볶은 짜장의 맛은 그대로라 썩 먹을 만 한데 말이지. 각박한 세상에 그래도 제 고집으로 승부하는 쟁이를 본 듯해서 맛있게 먹은 저녁에 기분까지 뜨뜻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짜장면이 이천 원, 우동이 삼천 원, 내가 먹은 짬뽕 밥이 사천 원. 셋이 먹은 저녁 식사가 구천 원이다. 돈 벌었다. 만세!


4. 부역.

이맘 때 쯤이면 풀베기 부역이 있다.

그런데 무슨 놈의 부역이 새벽 다섯 시란 말이냐고. 얽어 맨 대문에 뼁끼 칠을 하느라 쪼꼬만이랑 붓 들고 패대기를 치자니 지나가던 혜금이 아부지가 한 마디 거든다.


‘방송 못 들었노?’

‘방송은 못 듣고 어제 영이 할아부지한테 말은 들었소.’

‘자주하는 것도 아인데 나오지 그랬노.’

‘아따, 안 나간게 아니라 못 나갔다니까. 눈 뜨니 여섯신데 나가면 뭐하노.’

‘선생네 집은 부역 나오는 꼴을 못 봤다고 더러 주끼드만, 다음에는 나오것지 하고 말은 막아놨네.’

‘고맙소.’


리듬이 안 맞아서 못 살겠다. 새벽 세시나 되어 잠자리에 드는 내가 무슨 수로 다섯시에 일어나서 낫 들고 나선단 말이냐는 거다. 그나마 생활 패턴이 다르면 그 또한 웬만큼 이해를 해 주면 좋으련만,

하기사 싫은 놈은 업어 줘도 싫고 좋은 놈은 업고 다녀도 좋은 게 인지상정인데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야 말려서 될 일인가. 그렇다고 내가 나 몰라라 그 놈의 부역이란 걸 한 번도 안나간 것도 아닌데 말씀이야.... 앗따 그 놈의 말 많은 영감 할마이들 같으니라고. 에라 떠들라면 떠들어라 배짱으로 튕겨내고 말았다.


5. 끝

그래서 대문을 만든답시고 온 마당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던 그 대 역사가 인자사 끝이 났다는 싱거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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