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뒷집 실성한 할매는 허구헌날 혼자서 중얼거린다.
어느 집 후처로 들어와 살다가 서방 전처 다 죽고 전처 자식 하나 데불고 살더니 그 전처 자식도 연전에 죽고 달구새끼 몇 마리랑 같이 사는데 그 할매, 간혹 담 너머로 들릴 만큼 괙괙 소리를 질러댄다.
'이년아! 그래서 뭐시 우쨌냐고!!'
'더런 년아! 니가 뭐시 우째서 뭐 어쩌구 그랬단 말이가!!'
원 참, 달구새끼가 뭘 알아들어. 지나가는 들 고양이가 말귀를 알아 듣냐고.
당연히 ‘이년아!’ 라든지 ‘더런 년아!’ 다음의 이야기는 내가 못 알아듣는 말이다.
뭐 무슨 사연인지는 내 알 바 없고 알아봤자 별 것도 없겠지만 대개 '놈'짜는 없고 주로 '년'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남정네한테 원한을 가졌거나 앙심을 품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여서 저으기 안심이기는 하다.
대개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사람인데다가 천성은 착해 보이는 것이 여차한 경우에도 이웃에게 해꼬지를 할만한 사람은 아닌 듯한데, 어떤 날은 밤이 깊도록 혼자 뭔가를 중얼거리고 간혹 소리를 지르고 그러기도 하지.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또 멀쩡하게 제 정신으로 잠시 돌아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뚤레뚤레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서서 뭔가를 부탁하기도 한다.
'아재요. 선풍기가 왜 안 돌아가는지.'
'아재요. 데레비가 안나오네요.'
'춥어 죽것는디 보일라 좀 돌리주소.'
그러다가 살짝 돌아갈 때는 웃기는 소릴 하고.
'아재네 집 전깃줄이 흔들흔들 하니까 우리 집 지붕 따까리가 다 날아갔잖아요!'
'감나무 앞에 서 있을 적에는 마당을 쓸면 안 되지요.'(??)
아무튼 그 할매는 실성을 했다. 뭘로 보고 아냐면 아무도 없는데 저 혼자 쭝얼거리고 히히덕거리는 걸로 알지.
그런데 오늘 청소기를 고치러 나섰다가 실성한 이를 둘이나 더 보았다.
하나는 마티즈 운전석에 앉았던 분칠한 아줌마.
나랑 나란히 서서 신호대기를 하는데 옆자리며 뒷자리에 사람은 아무도 없드만 저 혼자서 '야이 가시나야!'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더니 깔깔 웃기도 하고 연신 뭔가를 주절거리데. 내 신호가 바뀌었으니 그냥 오기는 했는데 영락없이 정신 나간 사람 형상이드만.
읍내 다 와서 엘지 서비스 앞에 차를 세우는데 이번에는 순경 하나가 순찰차 옆에 서서 머리를 땅으로 처박고 뭔가를 중얼거리데. 혼자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하다가 실실 웃기도 하고 혼자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차면서 주절주절 뭘 한참 중얼거리드만.
아니,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다 하더라도 순경마저 실성을 하면 어쩌냔 말이다. 여차하다가 눈이 휙 돌아가서 허리춤에 권총을 빼어들어 빵! 하고 쏘면 거 참 야단이란 말이지.
뭐, 보나마나 핸즈프리니 전화기 이어폰을 귀에 꽂고들 하는 수작이라 요즘에야 그리 낯선 풍경도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뒷집 실성한 할매랑 하는 양이 그리 달라보이지를 않아서 그래 한마디 해 보는거지.
그래서 나도 이어폰 달린 전화기 목걸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거 잘 안 써. 주렁주렁 귀찮기도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어쩐지 남 보기에 정신 나간 얼빠진 이처럼 보일까 찜찜해서. 사람이 구식이라 그런지 전화기는 모름지기 손에 들고 귀에 갖다 붙여야 제 격이라는 생각이야.
2003. 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