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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무이, 이거 이름이 뭐다요?’
-‘산나물이라요.’
/‘에고. 산나물인줄은 나도 알지요. 거 이름이라도 알고 묵어야지....’
-‘고만 묵으믄 되지 이름을 알아야 묵능교. 이거는 원추리, 이거는 참나물... 요거는 꽃나물...
아이고 이걸 다 우찌 안대요. 고만 다 산나물이라요.’
/‘이거 할무이가 산에서 캐 오신 거 아입니까?’
-‘맞니더.’
/‘그럼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먹는 건지 아닌지 알고 캐요.’
-‘못묵는기 어데 있어요. 봄에 나는 거는 다 묵어요.’
/‘아니, 참, 그래도 독이 있는 것도 있을끼고,
묵어봤자 득도 실도 없는 별 신통찮은 풀들도 마이 있을 거 아이라요?’
-‘참, 아저씨도 벨 소릴 다하요.
독풀은 캐믄 안되제요. 뉘가 사람 죽으라꼬 독풀을 캐요. 크일 나제.’
/‘..........%%$@!^&^**&(!........그러니 독풀인지 아인지 그걸 우째 아냐고요.’
-‘우째 알기는.... 보믄 알제요...’
/‘....@@...... 거 참...그러니까 내 말이,
산비탈 그 많은 풀 중에 독이 있는지 없는지,
몸에 좋은지 안존지, 묵는 긴지 아인지 우째 다 아냐고요....’
-‘그라이께네........ 호메이 하나 들고 산비딱에 가서 요래- 보믄 뷔요.
조거는 묵는 거, 조거는 묵으마 섯바닥이 아리~~ 한 거, 저거는 손발 저릴 때 묵으마 존 약풀....’
/‘...&((())(_%$@#~@......헛, 그거 참..... 그럼 할무이는 이걸 언제 다 배웠어요?’
-‘배우기는 뭘 배와요. 그깐녀러 산나물 배울 꺼나 뭐 있어요. 핵교 가서 높은 공부를 해야제.’
/‘안배우고 이름도 모르는 그 많은 걸 다 우째 알아요?’
-‘촌사람인게 그냥 알제.’
/‘나도 그리 딱 보고 알면 참 좋것그만....’
-아이고 아제씨야. 그거 알아서 어데 쓸라꼬. 고만 장에 오다가다 한번씩 사서 묵어요.
그래야 장에 앉은 할마이들 점심값도 버얼고 그러제요.‘
/‘!!.......’
빼도 박도 못하게 맞는 말씀이라 끽 소리 안하고 이천원어치 한 소쿠리를 사 왔습니다.
역시 세상에는 고수가 많습니다.
그 많은 고수들은 얼굴에 분칠도 안하고 문패도 안 걸고 그리그리 조용히 살다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지는데. 그런 고수들이 부럽고 거시기해서 시늉이나 내볼까해도 역시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神藥으로 유명한 김일훈 선생도 생전에 뉘가 그걸 다 언제 배웠냐고 묻자 툭! 한마디 했답디다.
‘배워서 아나. 나면서 알아야지.’
이런 젠장.... 배워도 소용 없다는데야 야코가 팍 죽어서...
말하자면 生而知之라는 말씀이겠지요.
고수는 도처에 불시로 부단히 존재하거나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자세를 낮추고 좀 어버버하게 굴어야 낭패를 안당하지요. 대충 둘러보고 어릿하게 잘난 척 하다가는 딱 임자 만나서 이래저래 더듬거리다가 죽도 밥도 막걸리도 아닌 꼬라지로 고만 얼치기 소리나 듣고..... 그런 날은 그만 딱 죽고싶어서 잠도 안옵니다.
내가 사람에 대해 경이롭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산나물 할매의 그것과 같은 자연친화적인 ‘능력’입니다.
땡볕에 밭 매다가 한줄기 바람냄새 딱 맡고는, ‘저녁답에 비오것다.’ 무당같이 중얼거리는 할배라든지, 일기예보는 듣지도 않으면서 방파제에 올라가서 ‘앗따 큰 바람 오것는디.’ 손 끄트머리 침 테테 발라서 이래저래 돌려보는 할배며....
뭐 어쨌든 대충 영감 할마이가 돼서야 얼추 고수의 반열에 드는 모양인데 나도 늙어지면 그리 될라는가요. 어깨 신경통으로 날궂이 알아맞히기같은 그런 얄궂은 거 말고....
아이다.
고만 산나물 할매 말대로 그냥 장에서 사다 묵고 일기예보나 잘 챙겨보고 그래야지.
뭐, 가당찮은 흉내 내쌓다가 비 두들겨 맞고 고뿔하고 그러다 시난고난 갱신도 못하고 어질러질라. 원 참.
염천에 객이 왔다.
묵은 된장같은 옛 친구 중의 하난데, 그나마 아직 안 죽고 살아있다고 삼 사년 만에 얼굴 디민거는 고맙다마는 그렇다고 이 염천에 처자식 거느리고 이박 삼일이 뭐냐. 너긋들은 한 이틀 즐거운 휴가지만 바닷가에 오막살이는 여름 내내 손님 설겆이에 물 마를 날이 없다.
게다가 예고없이 들이닥쳤다고 아내의 눈꼬리가 심상찮게 올라갔다.
아니, 얼추 늙어가는 차제에 그래도 옛 친구가 왔는데 말이야...
나도 섭섭한 김에 마주 보고 쌍심지를 올려 볼까 싶다가 나이가 벼슬이라 한 박자 늦춰 잡았다.
이 사람아, 사람이 찾을 때가 존 때니라 중얼중얼 대충 말 막음으로 덮어 놓고 얼렁뚱땅 넘어갔다. 입밖으로 꺼내다가 시비를 가려볼작시면 한 여름에 살얼음 끼지 싶어서. 그게 피아간에 도무지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거지. 늙어서 좋아진 건 이런 요령밖에 없다.
아무튼지간에, 옛 친구랑 더불어 새벽 어판장에서 물괴기 사다가 회떠먹고 끓여먹고 튀겨먹고 ...
실컷 먹고 마시고 나서 심심도 하고 해서 가까운 공원에 올라가 어슬렁 거렸다.
한 잔 했겠다, 바닷바람은 살랑거리지, 밤하늘에 은하수는 흐리멍덩... 촌구석 공원에 처음 와본 된장같은 놈이 쭝얼쭝얼 한마디.
‘거.... 촌구석에 차도 많고 사람도 꽤 만쿠나’
‘........ ’
‘그럭저럭 대충 늙어가는 부부들이 어짜구....’
‘...... 부부가 아니니라’
‘...........?’
‘남녀가 앉은 거리를 보아하면 그 진위를 알 수 있거늘, 대저, 그 거리가 이격 없이 밀착되어 있음은 그들이 미혼 내지는 신혼이요, 그 사이에 어린 놈이 한 둘 낑겨 있으면 얼추 몇년 경과한 거시기 일진대... 중간에 어린 놈도 없이 늙수구리 중장년들이 이 염천에 끈적끈적 밀착 되어 있음을 보고도 그들이 대략 부적절한 관계임을 알아 채지 못하겠느냐. 니 같으며는 오늘 저녁같은 날씨에 니 마누래랑 딱 붙어서 여기저기 만지작거리고싶으냐?‘
‘올커니’
‘된장아, 다시 보아라... 세상은 아는만큼 보이나니.... ’
‘그리보니 그렇구나. 상호간에 페로몬을 양껏 발산하고 있구나’
된장이 센스는 없지 않아서 멋진 단어를 생각해 낸 덕분에 오랜만에 즐겁게 웃었다.
............
삼복의 열대야 그 끈적끈적한 바닷바람을 타고 발산하는 페로몬은 얼마만큼의 접착력을 갖고 있을까. 그리고 이제 한 고개를 넘어선 우리는 얼마만큼의 페로몬을 남겨놓고 있을까. 아니, 이런 날씨에 페로몬이 생산 되기는 될까.
게다가 만약에 누군가가 나를 향해 페로몬을 발산하고 있다면 나는 대체 그것을 알아차리고 답장 보낼 페로몬이나 갖고 있는 것일까. 된장은 가고 나 혼자 앉아서 그놈의 페로몬 찾느라고 뒤적뒤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