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 신을 경배하며 바하를 연주하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하늘의 천사들은 모여서 모짜르트를 노래할 것이 틀림 없다.‘

‘길고 긴 베토벤의 교향곡보다 모짜르트의 음표 서너개가 주는 감동이 더 크다.’

‘신이시여!
어찌하여 내게는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능력밖에 주시지를 않으셨나이까.’


......그리하여.........

‘나이가 들 수록 시도 때도 없이 모짜르트가 좋아지더라.’

‘궁극에는 모짜르트에 이르리라.’

‘모짜르트, 그 천진함에 눈물이 난다.’

‘나이가 들 수록 시도 때도 없이 모짜르트가 좋아지더라.’

‘음악은 모짜르트에서 시작해서 결국엔 모짜르트로 돌아온다.’

모짜르트 모짜르트 모짜르트 모짜르트 모짜르트 모짜르트 모짜르트 모짜르트........
...........

내노라는 연주가들이며 평론가등등,
음악 꽤나 긁어댔거나 들었다는 할배들이 방덕모자에 빨뿌리 물고 끄덕끄덕 하는 말씀이십니다.
앞집 뒷집 영감 할마이 할 것 없이 나이가 들 수록 시도 때도 없이 모짜르트가 좋아진답니다.

그것 참.
알다가도 모를 말씀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참 마음에 안드는 말씀입니다.
어째 사람이 덜되어 그런지 아니면 그 빵떡모자 할배들만큼 근사하게 늙지를 못해 그런지 나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모짜르트가 그리 썩 눈물겹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의례 그래야만한다는 우격다짐으로까지 눈치뵈이는 모짜르트 예찬론을 듣다보면,  

-아니, 그렇다면 모짜르트가 그리 사무치지 않는 나는 쎄가 빠지게 반평생 음악을 들어왔거나 말거나 얼추 좀 모지래는 반편이나 팔푼이란 말씀이지? 이런 떠그럴!

-아니면 대충 낫살이나 먹을만큼 먹었으면 의무적으로 모짜르트를 좋아하든지 아니면 대세를 거스르지 말고 대충 모짜르트에 경도되는 척이라도 하란 말씀이지? 염병!

아니, 그렇다고해서 헤블러 아줌마가 연주한 변주곡집이나 하스킬 할매의 소나타 등속조차도 그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짜르트라서 심취한다기보다는 헤블러라서, 하스킬이기때문에, 굴드니까, 그래서 귀 기울여 듣는다는 혐의가 훨씬 더 짙을 뿐이긴 합니다만.
난들 제아무리 먹통 귀를 가진 잡배라 한들 그 선율이나 화성의 아름다움조차 모르겠습니까? 일찌기 하스킬과 그루미오의 소나타 듀오를 두고 어느 지인은 건반과 현의 넘나듦이 하도 오묘하고 절묘함에 거의 섹스를 방불케한다는 표현을 한 바 있고 나 또한 그 사람의 그 썩어 문드러질만큼 짙은 감성에 무릎을 치고 탄복한 적이 있을만큼 공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모짜르트는 왜 내게 그 이상의 사무침을 허락하지 않는가.

고적한 밤이면 습관처럼 꺼내 듣는 바하만큼,
낙심한 날, 반술에 취해 억장으로 무너져내리던 브람스만큼,
격정으로 휩쓸려 눈 감고 한숨 쉬던 브루흐만큼, 그리 절절히 젖어오지를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
이몸의 성품이 고결하지를 못해 그런가.
잡배라서 그런가.

베토벤. 아.. 과연 베토벤이지요.
흔해빠진, 상투적이다못해 읍내 오일장 좌판에서 울려퍼지는 뽕짝 메들리에서도 더러 떨이로 팔아제끼는 그놈의 베토벤은 이제 어지간히 지겨워질만도 한데 까까머리때 처음으로 카라얀의 땡판으로 얼떨떨 음악 세례를 받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곁을 내 주지않던, 내게는 이미 절실함을 떠나 그 이름만으로도 귀에 딱지가 앉아버린 베토벤도 있습니다.

..........
그렇지요. 잘났습니다. 어쩌자고 하나같이 B란 말이냐고요.
요한 세바스찬 B하.
루드비히 반 B토벤.
요한네스 B람스.
막스 B루흐.

그러게. 또 모르지요. 모짜르트도 볼프강 아마데우스 B짜르트였다면 나도 일찌감치 모짜르트로 돌아왔을까요? 뭐, 그래 보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도 알파벳 대문자 하나에 목숨걸고 작두타는 박수무당은 아닌가봅니다만.... 벤자민 브리튼, 안톤 브루크너 처럼 같은 B짜 항렬이라도 썩 탐탁찮은 위인들도 없지않으니 말씀입니다.
브리튼은 내사 질겁을 하는 근대 이후의 난해음악 작가이므로 일단 제껴놓고서라도 더러더러 종교적이며 숭고하며 경건하기가 그 짝을 찾기 어렵다는 그놈의 브루크너 교향곡에 적셔볼라고 어느 한 때 기를 쓰고 그 길고 긴 교향곡을 생짜로 붙들고 씨름을 해봤으나 B짜 돌림이라 어딘가에 분명히 내 속살과 맞아떨어지는 주파수가 있으리라 지레짐작으로 덤볐던 기대와는 달리 단 한곡도 맨살을 만져보지 못하고 나가 떨어져버린 가슴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뭐 어쨌든. 나는 지긋한 나이가 되면 그 체온이 저절로 느껴진다는 모짜르트를 아직 근접하지 못했으니, 그렇다면 내가 아직 파릇파릇하여 지긋한 나이가 아니든지, 아니면 지긋한 나이인데도 나이값을 제대로 못한 얼치기 광팔이인지 그건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안다고해도 굳이 그걸 여기서 밝혀서 얼굴 값을 바겐세일하고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요. 하지만 여전히 내심 찜찜하고 뒤숭숭한 것은 사실입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바하가 더 좋아진다든지 늙어가면서 베토벤을 재조명하는 재미로 산다든지 브람스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침잠하여 적셔볼만한 거시기라든지 브루흐의 감성에 눈물짓지 못하는 순간 청춘은 끝장이라는 둥의 그럴싸한 말씀들은 아니 들리고 어째서 주최측의 농간도 아니면서 하나같이 내 마음에는 별로 안드는 모짜르트만 찬송하고 있냐는 말씀이란 말이지요...

그래 뭐, 아무튼 좋습니다.
그대들이 끝끝내 그놈의 천진하고 순진무구한 모짜르트를 찬송하거나 말거나 나는 내 아름다운 청년시절부터 초지일관 나를 길러 온 저 아름다운 B씨 들에게 감사하며 오늘 밤도 변함없이 경배드리려 함이니, 바하의 그 끝모를 심연의 깊이라든지 베토벤의 퀴퀴한 살냄새에 브람스의 무젖은 청승. 곁다리로 끼어든 브루흐까지 그 누구라도 내 생각에 찬동하여 한다리 담궈보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얼마든지 이불 속 구들장 내어드리고 말고지요.

.........
아이 참, 기왕에 그리 될려거든 내 혈액형마저 우연히 'B'였다면 얼마나 근사할 뻔했을까요?
그렇게만 됐더라면야... 유시유종, 시종일관, 수미상관, ..........
뭐 어쨌든 그럴싸하게 아구가 딱 맞아떨어지지않았겠냐고요. 그렇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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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겪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 마흔 몇 개를 묶은 책입니다.
2005년 초에 문학동네에서 나왔습니다.

처음 출간 되었을 당시에는 방송도 타고 여기저기 더러 오르내리기도 해서 뭔가 될줄 알았었는데
문예진흥원 선정도서가 되는 바람에 2쇄까지는 찍었습니다만 더 이상은 소식이 없습니다. ^^
그래도 변변찮은 무명 작가가 처녀 출간한 책 한 권으로 그까지 간 것 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책과 관련된 기사들입니다.

http://www.munhak.com/books/author_view.asp?page=1&code=0&SearchType=1&SearchText=%EC%A0%95%EC%A0%9C%ED%98%B8&aidx=55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080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44029


http://www.booxen.com/book_readers_view.asp?sabo_ho=101&search=정제호&part=3&suppart=2&page=1&seq_no=586


http://www.applebook.co.kr/reason/200604/reason0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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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무이, 이거 이름이 뭐다요?’
-‘산나물이라요.’

/‘에고. 산나물인줄은 나도 알지요. 거 이름이라도 알고 묵어야지....’
-‘고만 묵으믄 되지 이름을 알아야 묵능교. 이거는 원추리, 이거는 참나물... 요거는 꽃나물...
아이고 이걸 다 우찌 안대요. 고만 다 산나물이라요.’

/‘이거 할무이가 산에서 캐 오신 거 아입니까?’
-‘맞니더.’

/‘그럼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먹는 건지 아닌지 알고 캐요.’
-‘못묵는기 어데 있어요. 봄에 나는 거는 다 묵어요.’

/‘아니, 참, 그래도 독이 있는 것도 있을끼고,
묵어봤자 득도 실도 없는 별 신통찮은 풀들도 마이 있을 거 아이라요?’
-‘참, 아저씨도 벨 소릴 다하요.
독풀은 캐믄 안되제요. 뉘가 사람 죽으라꼬 독풀을 캐요. 크일 나제.’

/‘..........%%$@!^&^**&(!........그러니 독풀인지 아인지 그걸 우째 아냐고요.’
-‘우째 알기는.... 보믄 알제요...’

/‘....@@...... 거 참...그러니까 내 말이,
산비탈 그 많은 풀 중에 독이 있는지 없는지,
몸에 좋은지 안존지, 묵는 긴지 아인지 우째 다 아냐고요....’
-‘그라이께네........ 호메이 하나 들고 산비딱에 가서 요래- 보믄 뷔요.
조거는 묵는 거, 조거는 묵으마 섯바닥이 아리~~ 한 거, 저거는 손발 저릴 때 묵으마 존 약풀....’

/‘...&((())(_%$@#~@......헛, 그거 참..... 그럼 할무이는 이걸 언제 다 배웠어요?’
-‘배우기는 뭘 배와요. 그깐녀러 산나물 배울 꺼나 뭐 있어요. 핵교 가서 높은 공부를 해야제.’

/‘안배우고 이름도 모르는 그 많은 걸 다 우째 알아요?’
-‘촌사람인게 그냥 알제.’

/‘나도 그리 딱 보고 알면 참 좋것그만....’
-아이고 아제씨야. 그거 알아서 어데 쓸라꼬. 고만 장에 오다가다 한번씩 사서 묵어요.
그래야 장에 앉은 할마이들 점심값도 버얼고 그러제요.‘

/‘!!.......’

빼도 박도 못하게 맞는 말씀이라 끽 소리 안하고 이천원어치 한 소쿠리를 사 왔습니다.

역시 세상에는 고수가 많습니다.
그 많은 고수들은 얼굴에 분칠도 안하고 문패도 안 걸고 그리그리 조용히 살다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지는데. 그런 고수들이 부럽고 거시기해서 시늉이나 내볼까해도 역시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神藥으로 유명한 김일훈 선생도 생전에 뉘가 그걸 다 언제 배웠냐고 묻자 툭! 한마디 했답디다.

‘배워서 아나. 나면서 알아야지.’

이런 젠장.... 배워도 소용 없다는데야 야코가 팍 죽어서...
말하자면 生而知之라는 말씀이겠지요.

고수는 도처에 불시로 부단히 존재하거나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자세를 낮추고 좀 어버버하게 굴어야 낭패를 안당하지요. 대충 둘러보고 어릿하게 잘난 척 하다가는 딱 임자 만나서 이래저래 더듬거리다가 죽도 밥도 막걸리도 아닌 꼬라지로 고만 얼치기 소리나 듣고.....  그런 날은 그만 딱 죽고싶어서 잠도 안옵니다.

내가 사람에 대해 경이롭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산나물 할매의 그것과 같은 자연친화적인 ‘능력’입니다.
땡볕에 밭 매다가 한줄기 바람냄새 딱 맡고는, ‘저녁답에 비오것다.’ 무당같이 중얼거리는 할배라든지, 일기예보는 듣지도 않으면서 방파제에 올라가서 ‘앗따 큰 바람 오것는디.’ 손 끄트머리 침 테테 발라서 이래저래 돌려보는 할배며....

뭐 어쨌든 대충 영감 할마이가 돼서야 얼추 고수의 반열에 드는 모양인데 나도 늙어지면 그리 될라는가요. 어깨 신경통으로 날궂이 알아맞히기같은 그런 얄궂은 거 말고....

아이다.
고만 산나물 할매 말대로 그냥 장에서 사다 묵고 일기예보나 잘 챙겨보고 그래야지.
뭐, 가당찮은 흉내 내쌓다가 비 두들겨 맞고 고뿔하고 그러다 시난고난 갱신도 못하고 어질러질라. 원 참.     


1.
매일 작은 배낭을 지고 산을 오릅니다.
한시간 반이면 다녀 오고도 남을 작은 산이라 물 한병, 수건 하나면 충분하지만 그래도 굳이 납작한 스포츠 배낭을 지고 갑니다. 내용물은 수건 한장, 물 한병, 핸드폰, 면장갑, 주머니칼 정도. 배낭이 등에 붙으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든든하지요.

2.
나는 오래 전 지리산에서 잠깐동안 배낭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혼자 산을 오르면서 시간에 쫓긴 나머지 등산로를 버리고 희미한 산길을 택했다가 낭패를 당했었습니다. 빤히 보이던 길이 돌아서자 눈앞에서 사라지는 그 낭패감은 당해 보지 않으면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낭패감은 그래도 사치였습니다.
가벼운 몸으로 잃어버린 길을 찾겠노라고 배낭을 잠시 벗어놓고 맨몸으로 안개 자욱한 덤불 속을 헤매던 나는 그만 배낭을 둔 자리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지요. 급기야 해는 지고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그 막막하던 공포와 절망.  
배낭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사이의 시각은 짐작에 한 삼십 분에서 한 시간? 거의 어두워진 산골짜기에서 참 다행히도 돌 덩어리만큼 크고 무거운 배낭을 되찾아 짊어지는데 그 때처럼 등을 압박하는 짐의 무게가 반갑고 고마운 적이 없었습니다.

큰 산을 며칠 일정으로 오르는 장기 등반때 등에 진 배낭은 크고 무겁습니다. 정말 그 압도적인 무게는 살인적이지만 그래도 그 웬수 덩어리같은 배낭 속의 내용물이 없다면 그 깊은 산 속에서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최소한 나는) 자연 속에서 맨 손으로 살아가기에는 완벽하리만치 무능한 존재인가 봅니다. 여기서 쓸데 없는 생각 한 토막... 현 시점에서 인류가 졸지에 석기 시대로 돌아 가야 한다면 대체 몇 명이나 살아 남을 수 있을까요?..

3.
희거나 껌거나 간에 이 풍진 세상, 세상의 모든 너희들을 위해서 어금니 물고 허위허위 살아 가는 거라며 유세 꽤나 떨고있는 우리들이지만 기실은 세상의 그 모든 짐들이 오히려 우리를 붙들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 짐들을 ‘붙들고’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짐들이 우리를 ‘붙들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가족이란 서로에게 닻이며, 혹은 덫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지만 시간이 갈 수록 덫 보다는 닻에 가까워지고 있는 중입니다. 가족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어쨌든 그런 면에서 나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장삼이사, 범부의 범주에 드는 모범 생활인일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 쪽으로도 곁눈질 해 봅니다.
거친 항해도 때로는 더 없이 낭만적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배는 항구와 가까울때 비로소 더 멋있어보이는 법이지요. 그러자면 적당한 곳에 닻을 내리고 갈매기 벗삼아 다소 촌스러운 기념사진이라도 늦기 전에 박아 놓을 일입니다.
......
왼갖 잡설 중에 참 장한 생각 하나 했지요?... @@..

4.
어쩌다 초저녁에 잠이 들어버리는 날이면 더러 한밤중에 잠이 깨어 황망한 경우가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다시 잠 들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불끄고 억지로 누우면 온갖 잡생각으로 오히려 더 심난하기때매 일부러 긴치않은 일거리를 만들어서 밤중에 부시럭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찮아서 미뤄두었던 것들이나 조용할 때 혼자 해 보고싶었던 일이라든지......
하지만 거의가 다 먹고 사는데 별로 요긴하지 않은 일들이라 c/p가 그다지 높지않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때 얼핏 드는 생각은.... 내가 지금 이 늦은 시각에 대체 뭣때매 이러고있지?

오늘 밤이 꼭 그런 날입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잠이 부족한 날은 명줄이 짧아진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지금같은 때가 꼭 그렇지요. 청춘은 피고지고 세월은 이고지고..

......그러니 될수 있는 한 얼른 한식경이나마 만사 제쳐두고 잠이나 잘 요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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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화분을 싫어하는 것은 아버지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때 살던 진주 칠암동 집 백평남짓 마당에 꽂힌 수십 그루의 갖가지 꽃과 나무들로도 모자라서 이백여개의 크고 작은 화분을 보듬고 사셨습니다.
갖가지 기화요초로 백화만발한 분재들은 아마도 훌륭한 취미임에 틀림없으며 가족들의 정서 순화에도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는 칭송도 들어마지않았겠지요. 옳고말고요. 꽃과 나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이로운 물상입니다.. 다만 문제는, 우아하게 매만지고 그윽히 완상하는 것은 아버지의 몫이었지만 그 화분에 물 주고 들어 나르는 노가다는 순전히 우리 4남매의 몫이었다는겁니다. ..말이 좋아 이백개지.....

비가 옵니다.
‘비 온다. 화분 내다 놔라~~!!’
밤이고 낮이고 없습니다.
젖은 고무신짝이 헐떡거리도록 마루에서 마당으로 들락날락 화분을 내놓습니다.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납니다.
‘화분 들여놔라~~~~!!!’
이건 더 하기 싫습니다.
화분도 물을 흠씬 먹어 훨씬 무거워졌을 뿐더러
빗물에 튀어서 미끈미끈 시퍼렇게 이끼 덮인 오지화분에 흙모래까지 잔뜩 묻어있습니다.

때때로 젖은 화분 밑에 거머리며 지렁이도 붙어서 따라옵니다. 달팽이는 기본입니다. 어디선가 나타나서 대청마루를 슬금슬금 기어다니는 지렁이, 거머리, 달팽이. 그 외에도 이루 형용할 수 없이 많은 각종 발 많거나 발 없는 족속들.......... 질색입니다.

그리 좁지않았던 왜식 구조의 기와집 마루들은 사람 다닐 통로만 남겨둔 채로 그 수많은 화분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나마 조금 끗발이 떨어지는 화분들은 마루 밑 축담 옆이나 굴뚝 부근에서 찬밥 신세였지요.
아버지는 그 끗발 떨어지는 꽃나무들이 차마 애련하고 가엾은 나머지 급기야 마당에 두평 남짓 구덩이를 파다가 반지하 온실을 만듭니다. 남향으로 비스듬히 눕힌 천장에 비닐을 덮고 그 위에 가마니를 두 겹으로 덮어놓습니다. 이제부터는 아침에 해 뜨면 가마니를 걷어놓습니다. 저녁에 해 지면 가마니를 덮어야합니다. 그 짓을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해야합니다.
혹시나 까먹거나 삐딱하게 버티다가 잊어버리면 벼락이 떨어집니다.

/‘빌어묵을 놈들이 고거 하나 제대로 못덮어서 화초들이 다 얼어죽을라..$%^^*&&^@$!.......’

.........

-쉬이벌, 그라마 아부지는 이 삼동에 손발 얼어터지는 자식들보다 그깟녀러 화분이 더 좋단 말이요?

억울하고 신경질나서 이렇게 항거 해보고싶어도 시대적 배경이 일천구백육십년대올습니다.
어디를. 아버지한테는 끽 소리도 못냅니다. 그랬다가는 죽을만치 두들겨맞고도 온 동네 씨도 못받을 말종자로 찍혀서 덕석몰이를 당할....
그리하여 나는 아버지 없을 때 마당에서 제일 굵은 아름드리 은행나무에다 주머니칼 던져 박는 걸로 스트레스를 풉니다. 그 늙은 은행나무는 껍데기가 울퉁불퉁하도록 나한테 수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덕분에 표창 던지기 솜씨가 꽤 괜찮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 그 실력 시방도 갖고 있으면 어디 조폭 영화 단역이라도 한번 꿈꿔보는건데!...

하여간에 그놈의 화분들은 화분 주제에 넘치는 대접을 받으며 호강을 하다가 마당이 좁은 서부시장 뒤쪽으로 이사를 가서는 대형화 하기시작합니다.
칠암동 시절의 화분들이 그나마 올망졸망한 오지화분들이었다면 서부시장 시절의 화분들은 사람 몸뚱아리만한 덩치에 분재의 키도 보통 일미터를 넘나드는 도자기 화분들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니미, 혼자 들고 들어갈려다가 허리 뿌러집니다. 이 때도 아부지는 변함없이 턱 끄트머리로 분재 취미를 즐기십니다.

‘바람 분다. 디라 놔라.’
‘비 온다. 내다 놔라.’

그 시절까지 출가를 안하고 집에 있던 세째누나와 나는 띵빠리같이 살찐 화분을 마주 들고 낑낑 게걸음을 걸으면서 맹세를 했습니다.

‘내가 커서 분재를 한다면 개자슥이다.’

상대적으로 집을 일찍 떠났던 큰 누나와 둘째 누나는 그래도 좀 덜한 편이라서 시방도 위로 두 분 누님들 집에 들어서면 그렇게 열성적이지는 안해도 아파트 베란다에 보면 더러 볼만한 분재들이 십수개쯤 펄럭이고 있습니다만 상기한 세째 누님과 나는 한세월 아주 오지게 질려버린데다 타고난 게으름도 만만치 않아서 어쩌다 생긴 화분이 아니고서야 내 돈 주고 화분을 사 볼 생각은 꿈도 안꿉니다. 그나마 공으로 생긴 화분들도 시난고난 말려죽이기를 다반사로.....

.............
세월이 가고 결혼을 하고 ....... 어쩌다보니 마당이 있는 집을 지어 이사를 했습니다.
꽃집 딸이었던 아내는 이것도 심자 저것도 심자 화분이 예쁘네 꽃이 어떻네, 아니, 사람의 탈을 쓰고 어째서 식물을 싫어하냐, 세상에 살다보니 꽃을 싫어하는 사람도 다 있구나 긁고 쑤시고 들썩거리지만 그래봤자 내사 요지부동입니다. 웃기지 마라. 분재와 나무와 풀과 그 모든 식물에 얽힌 그 신간스런 인고의 나날들을... ‘니가 내를 아나?’


...........
.......
이 자리에 발 붙이고 산지도 벌써 어언 십오년. 일상에 코가 꿰어 동분서주 살다가 어느 틈에 허리 한 번 펴고 하늘 한 번 보았더니 엇주?
처음 집 짓고 준공검사때매 마지못해 마당에 꽂았던 회초리만했던 묘목들이 지깐에는 나무랍시고 봄이면 꽃 피고 가을이면 낙엽 떨구더니 이것봐라? 어느새 가지들이 넘실넘실 지붕을 넘어다봅니다.
나도 그동안 그럭저럭 먹은 나이가 있다보니 한번씩 그 나무들이 새삼스럽게 돌아다 보입니다. 아무 애정도 없이 되는대로 사다 꽂은 천원짜리 싸구려 묘목들... 나무는 십년을 보고 사람은 백년을 본다더니 그게 그거였던가.

수일 전에 마당에 나무 몇 그루 심고 나서 뭔 심사가 선듯만듯 하더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마음에 내켜 화분 두어 개 만들어봤습니다. 흙 갈고 구근 두어개 옮겨 심고는 물 적셔서 테라스에 두었습니다.
꽤나 무거운 도자기 화분을 영차! 들어 옮기면서 인자는 세상에 안계신 아버지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깐에는 멋낸답시고 마당에 깔린 잔자갈도 한 줌 집어다가 어설프게 깔아놨더니 그걸 본 마누래는 뭔 뜻인지 혼자 씩 웃습디다. ...... 주글래?

....작심삼일로 또 말려 죽일지는 메누리도 모르지만 그래도 근 사오십년만의 변신이니 칭찬할만하지 않은가요. 아니면 어릴 적 그 맹세대로 기어코 나는 개자슥이 되어야할까요. @@....





뒷다리/ 사진 설명
발육상태가 좀 쇠어 꼬부라지긴 했어도 맹세코 내가 마음에 내켜서 만들어 본 첫 화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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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가로줄/ 이것을 뜯으면 자식이 썩는다
맨 아래 가로줄/ 썩기 시작한다. 푹푹 썩어간다

본문/ 자전거 가지고 간
        사람 갖다 놓아라.
        갖다 놓지 않으면
        눈알이 썩고 다리
        가 부러질 것이다.



....................

장에 다녀온 이튿날 아침에 아내가 그럽디다.

'여보. 우리 그 할배한테 자전거 하나 선물하까?'
'뉜줄 알고.'
'얼마나 중요한 물건이었으면 저리도 처절하게 써놧스까 싶어서..'
'사람을 어떻게 찾냐고.'
'다음 청하 장날 끄꼬가서 수소문...'

가망없는 이야기지만 기특한 생각이라고 자랑합니다. 흠.

염천에 객이 왔다.
묵은 된장같은 옛 친구 중의 하난데, 그나마 아직 안 죽고 살아있다고 삼 사년 만에 얼굴 디민거는 고맙다마는 그렇다고 이 염천에 처자식 거느리고 이박 삼일이 뭐냐. 너긋들은 한 이틀 즐거운 휴가지만 바닷가에 오막살이는 여름 내내 손님 설겆이에 물 마를 날이 없다.
게다가 예고없이 들이닥쳤다고 아내의 눈꼬리가 심상찮게 올라갔다.

아니, 얼추 늙어가는 차제에 그래도 옛 친구가 왔는데 말이야...
나도 섭섭한 김에 마주 보고 쌍심지를 올려 볼까 싶다가 나이가 벼슬이라 한 박자 늦춰 잡았다.
이 사람아, 사람이 찾을 때가 존 때니라 중얼중얼 대충 말 막음으로 덮어 놓고 얼렁뚱땅 넘어갔다. 입밖으로 꺼내다가 시비를 가려볼작시면 한 여름에 살얼음 끼지 싶어서. 그게 피아간에 도무지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거지. 늙어서 좋아진 건 이런 요령밖에 없다.

아무튼지간에, 옛 친구랑 더불어 새벽 어판장에서 물괴기 사다가 회떠먹고 끓여먹고 튀겨먹고 ...
실컷 먹고 마시고 나서 심심도 하고 해서 가까운 공원에 올라가 어슬렁 거렸다.
한 잔 했겠다, 바닷바람은 살랑거리지, 밤하늘에 은하수는 흐리멍덩... 촌구석 공원에 처음 와본 된장같은 놈이 쭝얼쭝얼 한마디.

‘거.... 촌구석에 차도 많고 사람도 꽤 만쿠나’
‘........ ’
‘그럭저럭 대충 늙어가는 부부들이 어짜구....’
‘...... 부부가 아니니라’
‘...........?’
‘남녀가 앉은 거리를 보아하면 그 진위를 알 수 있거늘, 대저, 그 거리가 이격 없이 밀착되어 있음은 그들이 미혼 내지는 신혼이요, 그 사이에 어린 놈이 한 둘 낑겨 있으면 얼추 몇년 경과한 거시기 일진대... 중간에 어린 놈도 없이 늙수구리 중장년들이 이 염천에 끈적끈적 밀착 되어 있음을 보고도 그들이 대략 부적절한 관계임을 알아 채지 못하겠느냐. 니 같으며는 오늘 저녁같은 날씨에 니 마누래랑 딱 붙어서 여기저기 만지작거리고싶으냐?‘
‘올커니’
‘된장아, 다시 보아라... 세상은 아는만큼 보이나니.... ’
‘그리보니 그렇구나. 상호간에 페로몬을 양껏 발산하고 있구나’

된장이 센스는 없지 않아서 멋진 단어를 생각해 낸 덕분에 오랜만에 즐겁게 웃었다.

............
삼복의 열대야 그 끈적끈적한 바닷바람을 타고 발산하는 페로몬은 얼마만큼의 접착력을 갖고 있을까. 그리고 이제 한 고개를 넘어선 우리는 얼마만큼의 페로몬을 남겨놓고 있을까. 아니, 이런 날씨에 페로몬이 생산 되기는 될까.
게다가 만약에 누군가가 나를 향해 페로몬을 발산하고 있다면 나는 대체 그것을 알아차리고 답장 보낼 페로몬이나 갖고 있는 것일까. 된장은 가고 나 혼자 앉아서 그놈의 페로몬 찾느라고 뒤적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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