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여름이었는데
끝 없는 휴일에
비 한 방울 내리지않고
쓸다 말다 황토 길 누런 먼지만 자욱 일었는데

무슨 재미 있었는지
아무 재미도 없었는지
하얀 꽃 상여 햇빛 속에 눈 부시고

가물가물 높기만 하던 하늘
바람도 없이 하얗게 달아오르던
그날은 여름이었는데


#
어머니의 상여가 나가던 날의 기억이다.
나는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한여름 그 뜨겁던 날에 짚 앞길에 세워진 트럭에 얹혀 있던 하얀 상여와 굴건 제복의 군상들만 남아있을 뿐, 그 이전과 이후의 모든 기억이 잘려 나간 것 처럼 이 날의 기억만 도드라지게 선명하다.
  



아랫도리 벗은 사내 아이
후다닥 뛰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뒤돌아보고 기웃거리다 달려 가버리고

아이 따라 느릿느릿 길 건너는 살찐 개 한 마리 너머로
어디론지 멀리 달아나는 국도

서리 맞아 주저앉은 배추밭은 뭐 하러 지키노
삭은 철조망에 걸쳐 늘어진 겨울 오후 네 시 반

다 식은 햇살 위로 낯 선 곳의 낯 선 조용함
길 보다 낮은 구멍 가게 지붕 위로 키 보다 길게 그림자가 자라나면
풀썩 무너지는 바람

때로는 나도 시린 하늘을 가로지르는 철새 떼처럼.



내 단골 이발소는 신신이용원입니다.
서너평 되는 홀에 이발소 의자 세 개 놓고 직원은 한 명도 없습니다.
반백머리 올백한 남편이 이발하고 오목조목 수더분한 아지매가 세발합니다.
수돗물 찰랑찰랑 시멘트 물덤벙에 구멍 열 개짜리 플라스틱 물조리도 그대로 있습니다.
그 흔한 순간 온수기 아직도 안 쓰고 여직 솥에 불 피워서 물 데웁니다.
빨랫비누로 두 번 감고 샴푸로 한 번 감겨 줍니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닥닥닥닥 면도칼 벼르는 가죽 피대도 달려 있었습니다.
요새는 없어져서 조금 서운하지만 가죽 피대 없어도 면도 날은 잘 듭니다.  
북적북적 비누거품 수삼년 된 두컵짜리 신문지 잘라서 어깨에 턱! 올려놓고   
성인 조발에 면도하고 스팀타올까지 9천원에 모십니다.

도끼다시 바닥에 3인용 고물 쇼파
만화책 열댓권에 신문은 중앙일보.
이 칠 장날 줄 잘 못서면 앉을 자리도 없습니다.

그래도 여름에는 에어컨 나오고 겨울에는 히타 나옵니다.
이발 하고 세발 하고 머리 털고나면 담배 한가치 줍니다.
얄부리 비싼 담배 에쎄 한가치 줍니다.
두달만에 이발 가서 이 참에 담배 끊었다니까

아이고 서애임 대단하니더. 끊을 수만 있다면 끊어야지요. 나도 당최 안끊어져서.
덥은데 이양 가실라능교.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더.
아니, 아니, 대답 들으나마나 아지매는 얼른 드가서 달디 단 진한 커피 한 잔 푸르르 끓여 나옵니다.

집에는 시원치요. 서애임 집은 산 밑에 동네라 밤에는 시원할끼라요.
우리집은 시내 아스팔트 길에 세멘 집이라 밤새 선풍기 돌아가니더. 엊그제 농장에 갔다가 밤에 산기운이 을매나 선하든지. 시골 노인들 촌에 살다가 도회지 아들네 가면 이양 세상 베리는 기 다 뜻이 있디더. 암만 돈 많다고 에어컨 바람 씌아서 졸끼 머 있능교. 나도 요새는 선풍기 바람에도 삭신이 시리서.

면도하느라 누워야 보이는 엽서 넉장만한 새 그림 물어보니

저 그림 말인교. 우리 아아가 그린기라요.
어려서 그리는 재주가 있더니 대학도 미대를 가고.

딸자랑 늘어지면 부리부리 눈초리가 가물가물 가늘어집니다.

지 잘 살면 됐지요. 나도 이짓 을매나 더하겠능교. 얼릉얼릉 키와서 시집 보내고 묵고 살 걱정 없거등 고만 접어야지요. 그래도 아직은 손이 안떨린께.

나보다 두어살 윗줄에 얼굴도 두툼하고
손도 두껍고 팔뚝도 두껍고 하다 못해 눈두덩도 두껍은 이발소 사나이
언제나 싱글싱글 그 얼굴이 그 얼굴 화 내는 꼴을 못보는데
반백이라 희끗한 저 머리만 아니면 제법 동안이라 대엿살은 족히 아래로 보겠는데
세상에 염색은 꿈도 안꾸는지 저 희끗한 머리는 언제나 길지도 짧지도 않게 꼭 그만큼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혹 이덕화처럼 대머리에 가발인가. 설운도도 글타더라.
행여나 만에 하나 그래보이지는 않더라마는 가발도 반백가발이 어디 있기는 있는지
만약에 가발이 아니라 제 머리라면 허구헌날 반질반질 올백 머리
아니, 중도 제 머리 못깎는다는데 중머리도 아닌 하이칼라 저 머리는 대체 뉘가 깎아주노.
새까만 파마머리 아지매가 깎아주나?
그것 참, 생각을 두다보니 벼라별 게 다 궁금타요.
내사 궁금커나 말거나 제 머리 제 알아서 깎든지 말든지. 참 별일도 다 있어.


 



여름 저녁나절 해거름녘에 느닷없이 부다다다 말방구 소리 들리고
신작로 길 자욱하게 소독 연기 솟아 오르면
골목에 술래잡기 하던 놈들,
빈터에 공차던 놈, 자치기 하던 놈
너나 할 것 없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와와 따라 붙던 소독차.
이놈 시키들아 다칠라
대나무 회초리에 맞아도 일등은 좋은 것이야. 
혓바닥이 빠지도록 길게 빼어물고 목구멍에 단내가 나도록 죽어라 따라붙던 소독차.


자욱한 연기 동네 한 바퀴 돌 무렵이면 
헐떡거리는 다이야표 통고무신 잊어 먹고 동네방네 헤매는 놈,

앞집 순자 열 두살 간장종지 젖가슴 슬쩍 만지다 따귀 맞은 놈,

앞엣놈 뒷발에 걸려 자빠져 무릎 갈아 먹은 놈,
이런 놈 저런 놈 벼라 별 놈 다 있었는데

자욱한 소독 연기 속에 식은 보리밥 덩어리같이 둥실둥실 떠 다니던 옛날 그 얼굴들은 어디 갔을까.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번질번질 땟국 땀 바르고서
누런 이빨 히죽 웃던 기계충 먹은 까까머리들은 다 어디갔냐고.


부다다다 쌍나발 소독연기는 벌써 동구 밖으로 돌아나가는데
좀만것들아 발통에 깔리죽는다
트럭 뒤에 매달려서 회초리 들고 으르딱딱 가오 세우던 오주사 아저씨도 온데간데 없고
소독차 지나간 뒤 신작로 여기저기 흩어져 뒹굴던 다이야표 통고무신도 없고.

다 삭아서 구멍난 난닝구에 건들건들 마른 팔 흔들면서
뱃속에 회충 없앤다고 양껏 들이마시고 눈이 튀어나오도록 시뻘겋게 참고있던 도상아 숭규야
전봇대에 이빨 박고 아아아 입 싸짊어진 민재도 없구나.

저거 얼마나 재미있는 건데 어째 저리 적막강산으로,

사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다다다 말방구 소리만 저 혼자 여전하고
자욱한 하얀 연기 속에 숭늉에 말아 놓은 식은 밥덩어리 같던 그 놈의 손들,
기계충 먹은 까까머리들은 온데간데 없네.

시부럴.
이 나이 먹어서 나 혼자라도 따라 달려볼까나 말까나.

진식아 상모야 다들 어디서 뭐하고 사는지.
골목 어귀에 뒷짐 지고 서서 저 혼자 신나는 소독차 말방구 소리를 듣자하니
공연히 세월이니 뭐니 쓸쓸하기만 해서 말이지.




원작: 마르그리뜨 뒤라스
감독: 장 자끄 아노
주연: 제인 마치. 양가위


낮잠을 잔 덕에 밤늦게 어슬렁거리다가 텔레비전에 눈이 붙잡혔다.

이십세기 중엽 베트남. 몰락한 집안의 백인 소녀와 중국인 부호 청년
어이없이 시작해서 지독하게 계속되는 섹스. 그리고 참 별 것 없이 평면적으로 이어지는 그렇고 그런 스토리. 그렇지만 간혹 가슴팍을 후벼파는 아름다운 장면. 잠시라도 눈을 떼기에는 너무 아까운 군더더기 없는 영상. 지극히 간결한 구성. 그리고 격렬한 섹스 뒤 침침한 방 안에서의 공허한 대사들.

-그 여자 예뻐요?
-부자야.

....
-방금 나한테 했던 짓을 창녀에게 한다면 얼마나 들어요?
-.........얼마가 필요해?

...
-아편 많이 피웠어요?
-나를 봐, 나는 너에 대한 사랑때문에 죽어 갈거야.

.
.
지긋지긋하게 탐미적인 영화.
참 오랜만에 가슴에 남는 영화를 본 것 같아 포만감이 없지는 않으나 이상하게 가슴 밑바닥이 질척해지는 듯 얄궂다.

스토리야 말해 무엇하나.
아는 분은 아실 것이고 궁금한 분이야 찾아 보시면 될 것을.
나른한 여름 밤이면 한번 쯤 거동하여 찾아 볼만 한 영화라고 생각은 하는데.... 다만 지나간 청춘이 겨워 한숨 짓고 눈물 짓는 것 까지는 책임을 못진다.
.
.
가만 있자, 이거 한 십 년 넘어 간 영화라는데...
.. 뭐 그렇거나 말거나.
.,
,,
.

덤으로.
여주인공 제인 마치(여기서 이 여배우의 이름을 처음 알았다)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약간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듯 하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이 영화를 찍었을 당시의 열 여덟살 적 모습이 훨씬 낫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곡하나 찾느라고 여기저기 뒤지다가 봤습니다.
대단한 조어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중국집 주인이 갖고있는 파일일까요?

재미있는 김에 궁금도 하고 해서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藍色// 네이버 백과사전
한국산업규격(KS)에 의하여 제정된 KS A0011에 따르면 색상 10 PB, 명도 3, 채도 11이며, 외국색명은 블루 퍼플(Blue Purple)이다. 외국에서의 분류색명은 디프 블루(Deep Blue), 관습명으로는 페르시안 블루(Persian Blue)라고도 한다.
해맑은 남색, 밝은 회남색, 회남색, 어두운 회남색, 검은 남색, 연남색,
우중충한 남색, 어두운 남색, 밝은 남색, 진남색, 새남색 등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분류된 남색들은 붉은색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파란색에 검정이 섞인 것으로, 어둡고 둔하며 수축성과 후퇴성이 강하다.

아아......몹시도 어려워라....
내가 찾고있는 그 재즈 오케스트라의 랩소디 인 블루는 대체 어떤 곡일까.
'해맑은남색광상곡'일까 아니면 '우중충한남색광상곡'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붉은색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파란색에 검정이 섞인 어둡고 둔하며 수축성과 후퇴성이 강한 남색의 광상곡'일까.....



사족/
좀 귀찮더라도 반드시 한자로 표기했어야하는 건 아닌지. 혹시라도 男色으로 읽고 열어보는 사람이 있을라는지..... @@..




지금으로부터 근 사십년 전쯤인 1967년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여 너그들이 어른이 될 쯤이면
아마도 구닥다리 열두시간짜리 시계는 사라지고 스물네시간짜리 시계가 나타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고가 과학적이지 못한 나는 스물 네시간짜리 시계가 과연 실용적일지, 디자인이나 기능적인 면에서 무리는 없을지 등등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입을 헤 벌리고 ‘우와’ 감탄만 했지요.
그로부터 삼사십년이 흘러서 세상도 변했고 잘은 모르지만 당연히 과학도 좀 발달했겠지요.
그런데 어째 과학이 아직 이푸로쯤 덜 발달했는지 몰라도 존경하는 선생님의 예언과는 달리 아직도 스물네시간짜리 시계는 소식이 없고 뜬금없이 바늘 없는 시계들만 오락가락 하지요.

...................
이런 젠장. 바늘이 없는 시계로는 시간 대중을 어떻게 짐작하지?

모름지기 시간이라 함은 가없는 시공을 인간의 임의로 줄 긋고 매겨서 그 살림에 윤택을 주리라 맹근 것이니 시계라는 물건이야 어쩌다 슬쩍 일별하여 바늘의 진행 속도와 각도로 대강의 시각을 짐작하기 위한 것이라고 나는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7시43분39초...40초...41초...깜빡깜빡깜빡 .............환장합니다.

거기다가 말이지요. 예를 들어서 여덟시 약속인데 7:43분이라하면 그 남은 시간이 얼른 짐작이 가지를 않는다는 것이 고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놈의 디지털 액정 시계가 최첨단인지는 몰라도 깜빡깜빡하는 숫자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놈의 것이 앞인지 뒨지 당최 짐작이 가야말이지요. 그래서 내딴에는 머리에 과부하를 걸어가면서 짜 낸 방법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디지털 시계에 찍힌 7:43을 아날로그 시계바늘에다가 대입합니다. 물론 초 단위 이하는 절삭해야합니다. 다 챙기면 용량 딸립니다. 다음으로 분침과 시침이 이루는 각도를 머릿속에 그려넣고 잠시...
....아하, 드디어 얼추 남은 시간의 길이가 겨우 짐작이 됩니다. .......이런 젠장, 최첨단은 뭣이 최첨단. 무턱대고 7:43:45...46초...47초...48초... 깜박거리는 숫자만 들여다 보노라면 막 숨만 가쁘지요. 이게 도대체 걸어가서 될 일인지 조금 늦었으니 뛰어야 할지, 아니면 택시라도 잡아타야할지 도무지 시간이 짐작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거 뭐, 문명 시대의 기물들을 제대로 선용하지 못하는 것이 자랑은 아닙니다. 아닌데, 그 때 그 시절, 바야흐로 시대를 만나 세상에 범람하던 디지털 시계가 구닥다리 아날로그 시계들을 일거에 절단낼 것처럼 거리마다 골목마다 심지어 구루마 좌판 장사들까지 만수로 싣고 다니던, 그 마구마구 찍어낸 지극히 절망적인 디자인의 플라스틱 디지털 시계가 절망적으로 창궐하던 절망적인 시절.
급기야는 밧데리를 교환하는 것 보다는 고만 하나 새로 사는 게 이문이 낫다는,
일회용 시계라는 전대미문의 용어까지 등장하던 팔십년대의 예상과는 달리 정말 다행히도 시계의 겉보기에서만큼은 아날로그 바늘 방식이 다시 자리를 잡은듯 해서 그나마 나는 내심 몹시 다행스러운 중이올시다.

..
다행은 뭘, 당연지사. 사필귀정이지. 보기에도 얼마나 아름다우냐고요.
시각을 알기 위해서는 언제나 확보되어야만 하는 원만하고 고집스러운 둥근 원판의 미덕. 거기다 가일층 아라비아 숫자며 로마 숫자며 기기묘묘 형형색색으로 그 모습이 사뭇 예술적이거나 또는 거의 예술인 문자판 도안들... 그 위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조용히, 가뭇없이 돌아가는 길고 짧은 시계바늘. 거기에 목매어 허위허위 살아가는......... 아, 그 처절하고도 거룩한 삶의 상징이며 심볼이며... @@...

게다가 굳이 숫자를 떠 올릴 필요도 없이 한눈에 딱 떠오르는 그 시간적 공간적 시인성이야말로 소리없는 디지털 액정이 흉내 낼 수 없는 지극히 생물적인 감각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일견 멀쩡하게 생긴 아날로그 문자판의 이면에는 AA사이즈 밧데리를 하나씩 짊어진 대량생산의 싸구려 플라스틱 톱니바퀴들이 음흉하게 나를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음.

하긴 그것들의 위력인지 덕분인지 엊그제 아내랑 쇼핑 다니던 중에 보니 세상에, 옷 파는 가게에서조차 보기에 그럴듯한 벽시계며 괘종시계들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시대적 사명감에 불타는 내가 안빠지고 또 한마디 했지요.

‘아지매. 이거 보나마나 싸구리들이지?’

그랬더니 겉보기에는 일단 우아하게 생긴 옷집 아지매 曰,

‘슨생님은 취향이 고상하신갑다. 요즘 시계가 다 그렇지요 뭐.’

겉보기에 우아하게 웃으면서 고객의 하이엔드 유머(?..@@..)에 감응하는듯 했으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호 걸린 김에 곰곰 생각해보니

/등신아, 요즘 세상에 누가 쇳덩어리 태엽 벽시계 맹근다더냐?... @..@...

아뿔사. 졸지에 촌놈 되고........ 하기사 촌놈이기는 하지요.
5.1채널이니 7.1채널이니 날고 기는 홈 av 시대에 진공관 앰프 보듬고 앉아서 구관이 명관 타령이나 하고 앉았지요, 엠피쓰리가 광속으로 날아다니는 시대에 아이들러 턴테이블에 쌓인 먼지를 털고 닦고.... 아직도 삐리리 전화기가 마음에 들지않아서 어디서 따르릉 체신부 전화기 구할 데 없나 두리번거리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심지어는 led가 번쩍거리는 시대에 노란 불빛의 부이유메타만 보면 환장을 하고 까만 창에 시푸르딩딩 녹턴형 리시버만 보면 꺼뻑 넘어가서는 괜히 허전한 주머니만 뒤적뒤적...

그래, 이 시대착오적인 꼬라지를 어쩔거냐고요?  아니 뭐 그래도 나는 최소한 태엽 감아서 나발로 듣는 유성기는 차마 구하지 못했수다. 그러니 날더러 갈데없는 골동취미 갖고 설레발 친다고 가재미눈 하지 말자고요. 그냥 내가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보고 듣고 겪어왔던 각종 물품이며 기구들이 몸에 배어 그렇거나 아니면 워낙에 새 세상에 대한 적응력이 일반인에 비교하여 두루 열등하다보니 그래 그런건지.

모르긴해도 지금 두들기고 있는 컴퓨터도 그럴수만 있다면 아마도 철거덕 삐거덕 진공관 기계식을 구매하지 않았을까 의심도 해보는데, 왜 아닐까봐. 그런 옵션만 있다면 두말 없이 얼릉 그랬을걸.

헤헤이........거 뒤에 비시시 웃고 있는 분들, 잘난척 비웃지 맙시다. 멀쩡한 척 하던 컴퓨터 한 번 사보타지 하고 자빠져 보라지. 석달 열흘 쎄가 빠지게 궁리하고 두들겨 넣어놨던 거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휭! 날아가면 뚜껑 열리나 안열리나.

만장하신 여러분의 최신형 새깔깔이 컴퓨터는 절대로 그럴 일 없을거라는거지요? .... 내 장담하건대 이 시대가 가기 전에 장담는 일이 안생기면 내 손에 장 지지지요. 그 증거로 이 광속으로 달리는 첨단 세상의 그 경박한 디지럴 액정 시계의 값없음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멀쩡한 바늘 다 뜯어내고 숫자판으로 개비한 멍텅구리 손목시계며 번쩍번쩍 시뻘건 발광체가 점점이 박힌 디지털 벽시계의 몰취미함은 한 수 접고 밀어두고서라도 전화기에도 시계, 핸드폰에도 시계, 밥솥에도 시계... 그 얼마나 값없고 헤프고....
떠그럴, 이러다가 한 오십년 뒤에는 손가락에도 시계, 발톱에도 시계, 눈구녁에도 시계, 콧구녕에도 시계를 달고 다니지 않을까요...  하다못해 촌동네 시곗방 개업 사은품으로 돌리는 2색볼펜에도 액정시계는 깜빡거리는데...

그래... 그렇다면 순수 골수 호모 아날로그 크로마뇽인 니 시계는 그럼 십팔금 쇠줄 묵직한 로렉스나 뭐 그쯤 되냐고요?
...........
어느 대학에 견학갔더니 납작한 디지털로 방문 기념품 하나 줍디다. 년전에 밧데리 한 번 갈아 준 거 말고는 몇년 지나도 안서고 잘 가길래... 모양도 그저 괜찮고해서 말이지요... 아, 그래도 시침 분침에 초침까지 멀쩡하다니까요. 음.. ..
.....
거 날씨도 꽤 싸늘한데 아무리 그래도 눈 흘기지는 맙시다.. 횡설수설이나마나 얼마나 고민이 됐으면 그랬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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