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칠십년대 거리를 주름잡던 국적 불명의 마이크로 버스


중학교 때는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이놈의 시내버스란 게 요새처럼 큰 버스가 아니고 요즘의 미니 버스보다 더 작은 마이크로 버스였습니다. 이 마이크로 버스란 물건은 중학생쯤만 되어도 똑바로 설 수도 없이 작고 낮은 버스라 아침 등교시간이면 마구잡이로 구겨서 밀어넣은 남녀 학생들로 북새기통이었지요.

그날따라 그 속에서 설 자리 잡느라고 비비적거리다보니 묘하게 이웃학교 여고생과 마주보고 딱 붙어 서게 되었는데 민망해서 어떻게 자세를 바꿔볼라해도 워낙에 콩나물 시루라 도대체 꼼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여학생도 어쩔수가 없는지 서로 다른 쪽을 쳐다보며 외면한 채로 그 자세로 실려 가는데 우리 학교 앞에서 정차를 하면서 급정거를 했는지 차가 울컥합니다. 모두들 자빠지고 넘어지고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각중에 몸이 확 쏠리는데, 엔진룸 위로 여학생이 자빠지고 내가 그 위로 엎어져버린 겁니다.

그당시 버스들은 운전석 옆 가운데 앞쪽으로 엔진룸이 툭 튀어나와 있었지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자세가 참 거시기하게, 하여튼 그런 자세가 되어버린 겁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랬는지 혼비백산해서 일어나는데, 차가 또 한번 울컥 하면서 이번에는 왼손으로 그 여학생 가슴을 정통으로 짚어버린겁니다.
큰일 났다, 어디, 어리버리하게 얼쩡대고 있다가는 뺨따구라도 한 대 맞을 일이로구나 싶어서 단추가 튿어지는 줄도 모르게 아주 총알같이 튀어 내리는데, 아이고, 그 복잡한 난리통에 고만 아뭇소리도 안들리고 눈앞이 캄캄한데도 거 참 희안한 것이 왼손의 그 포근한 감촉은 또렷하게 기억이 되더란 말이지요.

그래봤자 얼띠기같이 순진하던 시절이라 머리통에 땀이 바짝 나서는 얼렁뚱땅 애들과 섞여서 황망하게 교문으로 향하는데, 발바닥이 땅에 닫는지 마는지 머리끝이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어린 마음에 이거 참 사껀이다 싶은 생각도 들고 해서 친한 친구를 복도로 불러 내다가 숨을 몰아쉬면서 자랑을 했지요.

'자슥. 복도 만타!'

그 친구는 밑도 끝도 없이 부러움이 가득한 눈길로 탄식을 했습니다. 거 참. 그것도 뭔 복인지. 뭐 어쨌든 나는 그날 둥실둥실 구름 위에 떠서 하루를 보냈지요.

그 다음날 아침.
시내버스를 내려서 로타리를 돌아 교문쪽으로 접어드는데 갑자기 내 앞을 누가 가로막습니다. 보니, 어제의 그 여고생이었습니다. 어제 엉겁결에 지나쳐서 잘 몰랐더니 약간 상기된 얼굴이 꽤 이쁜 얼굴입디다.

아이고, 인자 나는 꽃피는 봄날인가보다. 그런데 연상의 여인도 괜찮을라나. 뭐, 사실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지만 하여간 아침 그 바쁜 시간에 대로상에서 이놈 저놈 지나가며 다 기웃거리는데 그 여학생 대담하게 내 앞을 딱 가로막고는,

'너 어제 글마 맞지'
'.....응'
'자. 이거'

딱지 접기를 한 쪽지를 하나 줍니다.
가슴이 콩닥콩닥 목덜미가 화끈한 것이 그 순간의 기분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몇반에 뉘뉘한테 좀 전해주라.'
'.................'

내가 댕기던 중학교는 고등학교와 운동장을 건너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젠장.

'알았지!!'
'^&#$^$%@!$!@$!..........고등학교 들어갈라믄 무섭은데.'
'니 만날라고 여기서 한참 기다렸는데!'
'...........(아이 쉬..)......................'

아니 이런.
조금 이상한 협박 비슷하게 눈을 흘기며 조금 쑥스러워하면서 얼토당토않은 그 백주대로의 희안한 공간에서 밀어붙이는 그 여학생의 부탁을 내가 들어줬는지 어떤지는 진짜로 기억이 희미합니다만 그 쪽지를 받아 든 것은 확실합니다. 특별한 사연이 없는 한 아마도 전해줬것지요. 그리고 그것으로 그만이었습니다.
....네 시작은 심히 창대하였으나 네 끝은 매우 미미하리라. 이런 젠장.

자의건 타의건(자의 반 타의 반이 아닙니다. 믿어 주세요.) 내가 처음으로 여자의 몸을 만져 본 경험이었습니다.
첫 경험이지요 뭐.




///이전자전에 글자 그대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자료를 찾아 뒤적거리다가 저 위의 사진을 보는 순간 그 당시의 마이크로 버스와 그 여학생이 순식간에 연상되어 살아난 기억입니다. 이제는 그런 기억까지 공연히 가슴이 아릿하고 그러네요.
쓰면서 혼자서 조금 웃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서운한 웃음이었습니다. 세월이 참 많이 지났습니다. 


때로는 그런 날이 있지요.
새끼들 다 건강하고 마누래도 별 탈 없고 나도 뭐 잘 먹고 잘 자고 괜찮아요.

세끼 밥 굶을 일 없고 냉장고에는 과일도 몇 개 뒹굴고.
으랏차차 날씨가 좋은날이면 투덜투덜 고물 차에다가 네 식구 담아싣고 산천경개 구경하러 더러 구불러 댕기니... 뭐 별일 없지요. 잘 있어요.

그러게 말이지요. 콧구녕만한 집구석에 별 걱정거리 없는데도 말이지요.
어쩐지 잠도 안오고 일도 손에 안잡히는 그런 날이 있잖소?
그래, 혼자 오밤중에 이런저런 토달고 앉았노라면 공연한 개똥철학이 오락가락 하는 그런 날 말이야..

어쩌다 생각해보면 기십년 살아온 그 인생 누구 건지 아리송 할 때도 있고
이날 입때껏 살아오면서 대체 어딜 갈려고 쎄가빠지게 열심하여 달려온건지 어리둥절 할 때도 있지요.

그래봤자 구구절절 콩팔칠팔 풀어노면 그거 뉘가 쳐다나 봐준다나.
지 입에 풀칠하기도 바뿐 세상에 남으 숟가락 세고 앉았다더냐.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고 그런 때도 있는갑더라 그러니 시거나 떫거나 대충 그리 여기소서 하는 심사겠지요 뭐.
이만큼들 살아봤으면 너나없이 대충은 알잖아요?

.......
작은 놈 곁에 누워서 졸리는 마누래는
아니, 밤중에 뭘 먹는다고 그러요. 밤중에 먹어 좋을거 읍는데 뭐 어짜고 잔소리를 해싸도

아이고 원수야.
잔소리좀 고만하고 오늘 같은 날은 그냥 혼자 청승 좀 떨다 자게 내버려 둬.
그저 이런 날은 냉장고 뒤져서 한 잔 마시고 곧장 뻗어버려야지.
스티븐 시걸이 부다다다 총질하는 그렇고 그런 뻔한 헐리우드 영화나 켜놓고 말이야.
인생이란게 말이야, 매사에 매순간마다 보람차야 하는 건 아니거든.
때로는 이런 무망한 시간이 지극한 평강일 때도 있는법이야. 어째서 그걸 몰라. 이 웬수야.


창문 열어봤자 창밖으로 들고양이 흘레붙는 소리에 머리카락만 삐죽 곤두서고
이런때는 어두운 마당에 나서서 담배한대 뿜어대면 좋으련마는 그나마 끊어버렸으니 재미없네요.
일없이 어두운 마당에 내려서봤자 오는지 가는지 대숲 너머 귀신새 소리 휘이 휘이 마음만 얄궂지.

뭐가 뭔지도 모르고 공연한 심사만 붙들고 앉았으니 혼자서 한 잔 마시고 투덜댄다고 해서 해결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 밤새 다들 안녕하신지 안부나 물어보지 뭘.
대체 촌구석에서 어데다 다 쓰는지 한달에 육칠만원 전기세가 적잖이 거시기하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밤은 내사 모르것다 오디오 벌겋게 달궈서 한 곡 듣다 자야겠수.
뭘 들을지는 나도 몰라요. 메누리도 모르지 뭘. 곰팡내 나는 판때기들 이리저리 뒤져보면 뭐 하나 나오겠지.

눈물이 핑 돌도록 한 곡 찐하게 듣고서 인자는 자야지. 다들 밤새 안녕히들 주무시오들. 나는 좀 취했거든.
아, 그럼요. 별일 없어요.
멀쩡한 사지육신도 쓰다보면 몸살도 하고 그러는데
수십년 시들어 온 너덜너덜 사나운 심사도 때로는 지 혼자 몸살도 하고싶것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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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삼일 전부터 감기가 왔는데...
칭병하고 드러누울만큼에는 좀 모자라고 그렇다고 멀쩡한 척 팔다리 걷어부치고 나서기도 좀 거시기하고.. 딱 사람 고단하기 좋을만치 그래요.

좀 많이 아프면 마누래며 새끼들한테도 애비 아프노라고 생색도 좀 내고 물 가져와라 약 가져와라 드러누워서 심부름 시키는 재미도 있고 살다보면 그것도 또 한재미 하기는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그래노니 지난 주에 마지못해 약속해놨던 교회 가족창도 못빼먹고 그래도 마침 오늘은 추수 감사절이라 교회에서 밥준다던데. 그래도 약속했던 노래라도 불러야 밥 한사발 얻어먹을 염치가 있지않겠냐는 애 멈마의 채근에 못이겨 네식구 꾸역꾸역 나가서 찬송가 한자락 부르고 투닥투닥 박수 한번 받고 가자미 조림에 매운탕에 한 상 잘 받아 먹기는 먹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아무래도 몸이 으시시한 게 기분이 별로 좋지를 안해요.

그래 좋다.
그럼 어디 오늘 한번 제대로 드러누워 볼까 염을 뒀더니 마누래는 또 붙잡아 놓은 약속이라고 휭하니 출타해버리고... 큰놈은 내일부터 기말고사라고 코가 석자나 빠져서 공부한다고 복대기를 치고 작은 놈은 디비디 켜놓고 쏙 빠져서는 정신 못차리고. 명색이 가장이 와병중인데 뭐 누구하나 들여다보는 코끄트머리도 없구나. ..아니, 도대체가 집구석이 계통이 안서요 계통이... 이 무슨...

에라 모르것다 그럼 아주 축수를 해서라도 골병이 들어볼까,
차는 마누래가 갖고 가버렸고 마음은 섭섭한김에 터덜터덜 들판길 걸어 건너 가 보니 날은 흐리고 바람은 불고... 스산한 빈 들판에 온갖 새들만 이리 날고 저리 날고... 에잇! 재미도 한개도 없구나. 고만 집구석에 들어가서 이불이나 뒤집어써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집 지붕 위로 웬 놈이 빙빙 돌다가 공중에 못박힌드끼 딱! 멈추는데,
아뿔사, 저놈 저거 솔개 아니냐. 들판에 새가 많다 싶더니 한 마리 잡아 먹자 하고 망 보는구나 아니면 빈 들에 들쥐 새끼라도 노리는 건지.

내 어릴 때야 솔개가 하도 많아서 우리집 마당에 병아리 채 가는 것도 보고 그랬었는데 말 안듣는 놈 있으면 솔개가 확 채간다고 겁나는 소리도 더러 들었었는데 어디 보자 솔개야 너 거기 가만 그대로 있거라. 얼른 집에 뛰어 들어가서 사진기 들고 나오니 이런, 그 새에 제법 멀리 가버렸구나. 기념으로 한 방 박아 줄랬더니 그 새를 못참고. 멀리 내뺐으나따나 한 방 찍어서 기념으로 올려놓고지고..

그래서 컴퓨터로 솔개 사진 뺀다고 뒤적거리자니 전화가 한 통 왔는데 말이지요, 웬 영감님이 어디어디서 비니루 음반 좋은 거 많이 샀다고 뜬금없이 자랑을 하시는데 폴리니며 조지 쉘이며 클리블랜드에 제르킨에 칼리히터... 레미제라블.
시방은 멀고도 가까운 당신들이구나. 도대체 그 할배들의 그 소리들을 들어 본 적이 그 언제였더냐 그 영감님 염장은 제대로 질렀다. 타이밍이 절묘하구나.
형님. 좋은 판 많이 사셔서 좋으시것습니다아. 대충 들어보니 팔할은 건진듯 하옵니다아....
배는 아프나마나 멀쩡하게 덕담이야 했다마는 장유유서에서 밀리니 욕도 못하지 양반 체면에 얼굴 붉힐 수 있나. 

머리는 띵하고 뼈마디는 쑤시고... 치사하게 비니루 음반 몇 장으로 염장 질렀다고 온순하케 칼쌈을 할 수도 없고...

그러게 아프다는 화상이 책상 앞에서 온갖 해작질에 온갖 간섭 다하고 앉았으니 이러니 아파도 대접을 못 받고 글치요 뭐. 그래도 명색이 와병 중인데 참 문병도 없고 안부 전화도 한 통 없고 말이지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말이지......그럴 수 있는거요? @@..  늙어가면 그저 드문드문 얼굴 들여다보는 재미로 사는법인데 거참.
아니다. 앉아서 떠들고 앉았으니 와병이 아니고 좌병인가.
이렇거나 저렇거나 하여튼 나 아파요. 아프다고 자랑하는 거라니까. 

큰 병이라오. 약 먹어도 잘 안낫는 병. 난치병이지. 감기래니까 감기.




어제 목욕을 다녀왔습니다.
볼 일이 있어 먼데 다녀 오는 바람에 목욕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씻고 불가마 들어가서 땀좀 빼고 나오니 한 시가 넘었습니다.
푹 삶겨져서 늘어져 있다가 인자는 샤워하고 집에 가야겠다.. 그래서 비누칠 한 번하고 개운하게 씻었습니다.

선풍기 앞에 서서 거울 보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지요.
내 뒤쪽에서 근육질의 한 사나이가 종이 컵을 들고 다가왔습니다.  
아마도 커피는 부어 넣었는데 저을 티스푼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사나이 박력있게 바로 내 앞에 있는 귀지용 면봉 하나를 집어 들고 아주 능숙하게 커피를 저었습니다.
그러면서 선풍기 옆에 서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사나이와 잠깐 마주 보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순간 나와 그 사나이는 동시에 멈칫 했습니다.
그 사나이가 집어들었던 면봉 상자는 '사용 후' 상자였습니다.

숨이 멎을듯한 그 찰라의 순간동안 그 사나이는
면봉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매우 미묘한 표정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 나를 힐끗 쳐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시바, 그냥 먹지 뭐.'
그리고 체중계 쪽으로 걸어가며 그 귀짓물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나서 종이 컵을 쓰레기통에 구겨 넣고는 옷장 쪽으로 사라졌습니다.

'착하게 살자' '一心' 따위의 상투적인 문신조차도 하나 없었으나
내 생전 그만큼 박력있는 사나이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나는 당분간 커피를 못마실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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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항 뒷길에 나타난 오징어 외계인

오징어 외계인은 바짝 마르고 나면 물리치기 어렵다. 그저 적당히 피득피득할 때 서둘러 섬멸 해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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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하게 춥던 어느 겨울날 아침에 햇님과 눈싸움을 해봤다.
그리고 이 컷을 찍고 난 직후 내 고물 카메라는 추위에 얼어서 리셋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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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앞산에서 내려다본 7번 국도와 해안선이다.
위로 올라가면 울진, 강릉으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포항, 경주로 통한다.
때로는 좌우로 빠져나갈 곳 없는 내리닫이 단선이 갑갑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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