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그런 날이 있지요.
새끼들 다 건강하고 마누래도 별 탈 없고 나도 뭐 잘 먹고 잘 자고 괜찮아요.

세끼 밥 굶을 일 없고 냉장고에는 과일도 몇 개 뒹굴고.
으랏차차 날씨가 좋은날이면 투덜투덜 고물 차에다가 네 식구 담아싣고 산천경개 구경하러 더러 구불러 댕기니... 뭐 별일 없지요. 잘 있어요.

그러게 말이지요. 콧구녕만한 집구석에 별 걱정거리 없는데도 말이지요.
어쩐지 잠도 안오고 일도 손에 안잡히는 그런 날이 있잖소?
그래, 혼자 오밤중에 이런저런 토달고 앉았노라면 공연한 개똥철학이 오락가락 하는 그런 날 말이야..

어쩌다 생각해보면 기십년 살아온 그 인생 누구 건지 아리송 할 때도 있고
이날 입때껏 살아오면서 대체 어딜 갈려고 쎄가빠지게 열심하여 달려온건지 어리둥절 할 때도 있지요.

그래봤자 구구절절 콩팔칠팔 풀어노면 그거 뉘가 쳐다나 봐준다나.
지 입에 풀칠하기도 바뿐 세상에 남으 숟가락 세고 앉았다더냐.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고 그런 때도 있는갑더라 그러니 시거나 떫거나 대충 그리 여기소서 하는 심사겠지요 뭐.
이만큼들 살아봤으면 너나없이 대충은 알잖아요?

.......
작은 놈 곁에 누워서 졸리는 마누래는
아니, 밤중에 뭘 먹는다고 그러요. 밤중에 먹어 좋을거 읍는데 뭐 어짜고 잔소리를 해싸도

아이고 원수야.
잔소리좀 고만하고 오늘 같은 날은 그냥 혼자 청승 좀 떨다 자게 내버려 둬.
그저 이런 날은 냉장고 뒤져서 한 잔 마시고 곧장 뻗어버려야지.
스티븐 시걸이 부다다다 총질하는 그렇고 그런 뻔한 헐리우드 영화나 켜놓고 말이야.
인생이란게 말이야, 매사에 매순간마다 보람차야 하는 건 아니거든.
때로는 이런 무망한 시간이 지극한 평강일 때도 있는법이야. 어째서 그걸 몰라. 이 웬수야.


창문 열어봤자 창밖으로 들고양이 흘레붙는 소리에 머리카락만 삐죽 곤두서고
이런때는 어두운 마당에 나서서 담배한대 뿜어대면 좋으련마는 그나마 끊어버렸으니 재미없네요.
일없이 어두운 마당에 내려서봤자 오는지 가는지 대숲 너머 귀신새 소리 휘이 휘이 마음만 얄궂지.

뭐가 뭔지도 모르고 공연한 심사만 붙들고 앉았으니 혼자서 한 잔 마시고 투덜댄다고 해서 해결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 밤새 다들 안녕하신지 안부나 물어보지 뭘.
대체 촌구석에서 어데다 다 쓰는지 한달에 육칠만원 전기세가 적잖이 거시기하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밤은 내사 모르것다 오디오 벌겋게 달궈서 한 곡 듣다 자야겠수.
뭘 들을지는 나도 몰라요. 메누리도 모르지 뭘. 곰팡내 나는 판때기들 이리저리 뒤져보면 뭐 하나 나오겠지.

눈물이 핑 돌도록 한 곡 찐하게 듣고서 인자는 자야지. 다들 밤새 안녕히들 주무시오들. 나는 좀 취했거든.
아, 그럼요. 별일 없어요.
멀쩡한 사지육신도 쓰다보면 몸살도 하고 그러는데
수십년 시들어 온 너덜너덜 사나운 심사도 때로는 지 혼자 몸살도 하고싶것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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