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목욕을 다녀왔습니다.
볼 일이 있어 먼데 다녀 오는 바람에 목욕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씻고 불가마 들어가서 땀좀 빼고 나오니 한 시가 넘었습니다.
푹 삶겨져서 늘어져 있다가 인자는 샤워하고 집에 가야겠다.. 그래서 비누칠 한 번하고 개운하게 씻었습니다.

선풍기 앞에 서서 거울 보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지요.
내 뒤쪽에서 근육질의 한 사나이가 종이 컵을 들고 다가왔습니다.  
아마도 커피는 부어 넣었는데 저을 티스푼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사나이 박력있게 바로 내 앞에 있는 귀지용 면봉 하나를 집어 들고 아주 능숙하게 커피를 저었습니다.
그러면서 선풍기 옆에 서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사나이와 잠깐 마주 보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순간 나와 그 사나이는 동시에 멈칫 했습니다.
그 사나이가 집어들었던 면봉 상자는 '사용 후' 상자였습니다.

숨이 멎을듯한 그 찰라의 순간동안 그 사나이는
면봉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매우 미묘한 표정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 나를 힐끗 쳐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시바, 그냥 먹지 뭐.'
그리고 체중계 쪽으로 걸어가며 그 귀짓물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나서 종이 컵을 쓰레기통에 구겨 넣고는 옷장 쪽으로 사라졌습니다.

'착하게 살자' '一心' 따위의 상투적인 문신조차도 하나 없었으나
내 생전 그만큼 박력있는 사나이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나는 당분간 커피를 못마실듯 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