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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삼일 전부터 감기가 왔는데...
칭병하고 드러누울만큼에는 좀 모자라고 그렇다고 멀쩡한 척 팔다리 걷어부치고 나서기도 좀 거시기하고.. 딱 사람 고단하기 좋을만치 그래요.

좀 많이 아프면 마누래며 새끼들한테도 애비 아프노라고 생색도 좀 내고 물 가져와라 약 가져와라 드러누워서 심부름 시키는 재미도 있고 살다보면 그것도 또 한재미 하기는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그래노니 지난 주에 마지못해 약속해놨던 교회 가족창도 못빼먹고 그래도 마침 오늘은 추수 감사절이라 교회에서 밥준다던데. 그래도 약속했던 노래라도 불러야 밥 한사발 얻어먹을 염치가 있지않겠냐는 애 멈마의 채근에 못이겨 네식구 꾸역꾸역 나가서 찬송가 한자락 부르고 투닥투닥 박수 한번 받고 가자미 조림에 매운탕에 한 상 잘 받아 먹기는 먹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아무래도 몸이 으시시한 게 기분이 별로 좋지를 안해요.

그래 좋다.
그럼 어디 오늘 한번 제대로 드러누워 볼까 염을 뒀더니 마누래는 또 붙잡아 놓은 약속이라고 휭하니 출타해버리고... 큰놈은 내일부터 기말고사라고 코가 석자나 빠져서 공부한다고 복대기를 치고 작은 놈은 디비디 켜놓고 쏙 빠져서는 정신 못차리고. 명색이 가장이 와병중인데 뭐 누구하나 들여다보는 코끄트머리도 없구나. ..아니, 도대체가 집구석이 계통이 안서요 계통이... 이 무슨...

에라 모르것다 그럼 아주 축수를 해서라도 골병이 들어볼까,
차는 마누래가 갖고 가버렸고 마음은 섭섭한김에 터덜터덜 들판길 걸어 건너 가 보니 날은 흐리고 바람은 불고... 스산한 빈 들판에 온갖 새들만 이리 날고 저리 날고... 에잇! 재미도 한개도 없구나. 고만 집구석에 들어가서 이불이나 뒤집어써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집 지붕 위로 웬 놈이 빙빙 돌다가 공중에 못박힌드끼 딱! 멈추는데,
아뿔사, 저놈 저거 솔개 아니냐. 들판에 새가 많다 싶더니 한 마리 잡아 먹자 하고 망 보는구나 아니면 빈 들에 들쥐 새끼라도 노리는 건지.

내 어릴 때야 솔개가 하도 많아서 우리집 마당에 병아리 채 가는 것도 보고 그랬었는데 말 안듣는 놈 있으면 솔개가 확 채간다고 겁나는 소리도 더러 들었었는데 어디 보자 솔개야 너 거기 가만 그대로 있거라. 얼른 집에 뛰어 들어가서 사진기 들고 나오니 이런, 그 새에 제법 멀리 가버렸구나. 기념으로 한 방 박아 줄랬더니 그 새를 못참고. 멀리 내뺐으나따나 한 방 찍어서 기념으로 올려놓고지고..

그래서 컴퓨터로 솔개 사진 뺀다고 뒤적거리자니 전화가 한 통 왔는데 말이지요, 웬 영감님이 어디어디서 비니루 음반 좋은 거 많이 샀다고 뜬금없이 자랑을 하시는데 폴리니며 조지 쉘이며 클리블랜드에 제르킨에 칼리히터... 레미제라블.
시방은 멀고도 가까운 당신들이구나. 도대체 그 할배들의 그 소리들을 들어 본 적이 그 언제였더냐 그 영감님 염장은 제대로 질렀다. 타이밍이 절묘하구나.
형님. 좋은 판 많이 사셔서 좋으시것습니다아. 대충 들어보니 팔할은 건진듯 하옵니다아....
배는 아프나마나 멀쩡하게 덕담이야 했다마는 장유유서에서 밀리니 욕도 못하지 양반 체면에 얼굴 붉힐 수 있나. 

머리는 띵하고 뼈마디는 쑤시고... 치사하게 비니루 음반 몇 장으로 염장 질렀다고 온순하케 칼쌈을 할 수도 없고...

그러게 아프다는 화상이 책상 앞에서 온갖 해작질에 온갖 간섭 다하고 앉았으니 이러니 아파도 대접을 못 받고 글치요 뭐. 그래도 명색이 와병 중인데 참 문병도 없고 안부 전화도 한 통 없고 말이지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말이지......그럴 수 있는거요? @@..  늙어가면 그저 드문드문 얼굴 들여다보는 재미로 사는법인데 거참.
아니다. 앉아서 떠들고 앉았으니 와병이 아니고 좌병인가.
이렇거나 저렇거나 하여튼 나 아파요. 아프다고 자랑하는 거라니까. 

큰 병이라오. 약 먹어도 잘 안낫는 병. 난치병이지. 감기래니까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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