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저녁나절 해거름녘에 느닷없이 부다다다 말방구 소리 들리고
신작로 길 자욱하게 소독 연기 솟아 오르면
골목에 술래잡기 하던 놈들,
빈터에 공차던 놈, 자치기 하던 놈
너나 할 것 없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와와 따라 붙던 소독차.
이놈 시키들아 다칠라
대나무 회초리에 맞아도 일등은 좋은 것이야. 
혓바닥이 빠지도록 길게 빼어물고 목구멍에 단내가 나도록 죽어라 따라붙던 소독차.


자욱한 연기 동네 한 바퀴 돌 무렵이면 
헐떡거리는 다이야표 통고무신 잊어 먹고 동네방네 헤매는 놈,

앞집 순자 열 두살 간장종지 젖가슴 슬쩍 만지다 따귀 맞은 놈,

앞엣놈 뒷발에 걸려 자빠져 무릎 갈아 먹은 놈,
이런 놈 저런 놈 벼라 별 놈 다 있었는데

자욱한 소독 연기 속에 식은 보리밥 덩어리같이 둥실둥실 떠 다니던 옛날 그 얼굴들은 어디 갔을까.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번질번질 땟국 땀 바르고서
누런 이빨 히죽 웃던 기계충 먹은 까까머리들은 다 어디갔냐고.


부다다다 쌍나발 소독연기는 벌써 동구 밖으로 돌아나가는데
좀만것들아 발통에 깔리죽는다
트럭 뒤에 매달려서 회초리 들고 으르딱딱 가오 세우던 오주사 아저씨도 온데간데 없고
소독차 지나간 뒤 신작로 여기저기 흩어져 뒹굴던 다이야표 통고무신도 없고.

다 삭아서 구멍난 난닝구에 건들건들 마른 팔 흔들면서
뱃속에 회충 없앤다고 양껏 들이마시고 눈이 튀어나오도록 시뻘겋게 참고있던 도상아 숭규야
전봇대에 이빨 박고 아아아 입 싸짊어진 민재도 없구나.

저거 얼마나 재미있는 건데 어째 저리 적막강산으로,

사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다다다 말방구 소리만 저 혼자 여전하고
자욱한 하얀 연기 속에 숭늉에 말아 놓은 식은 밥덩어리 같던 그 놈의 손들,
기계충 먹은 까까머리들은 온데간데 없네.

시부럴.
이 나이 먹어서 나 혼자라도 따라 달려볼까나 말까나.

진식아 상모야 다들 어디서 뭐하고 사는지.
골목 어귀에 뒷짐 지고 서서 저 혼자 신나는 소독차 말방구 소리를 듣자하니
공연히 세월이니 뭐니 쓸쓸하기만 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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